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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분 |
내 용 | |
목적 |
배경 |
일제시대(1930년대 중반) 경성 분위기 연상추적과 작가의도 탐색, 올해(2011 )는 구보 탄생(1909.12.7) 102주년 |
목적 |
작품과 구보 재조명(조사 분석 평가), 문학·역사적 교훈과 계승발전방안모색 | |
방법 |
방법 |
작가·작품 관련된 선학연구, 조사 분석, 추정, 계승발전 아이디어 창출법 |
내용 |
가정환경, 연보, 의식, 작품, 생활 등 / 탁월한 업적과 씻을 수 없는 과오 | |
접근 |
기존 감성적(극찬, 비난) 설명 해설형(수박 겉핥기)의 예술평론탈피, 객관적 분석아래 계승발전방안 제시 사회과학 실용적 학위논문형(냉철한 논리적 사고와 표현요망) 모색, 새로운 용어 도입접목, 시각적(가독성) 효과위해 도표화 | |
기대효과 |
전체(숲) 투사포착분석, 구보 박태원 재조명, 작품분석(내용, 공간 등), 평론의 새 지평 제시, 추상적인(거리, 장소, 인물 등) 내용을 찾아냄 | |
향후연구과제 |
작품 부분(나무)분석, 구체적 장소와 인물들 확인 / 구보 행적(성장과정, 활동 공간, 생활기록부 열람, 인간관계(친밀, 갈등, 적대관계), 과오(친일·월북이유와 과정) 등 조사 분석, 객관적 종합적평가의 계량수치화) / 관련사진 첨가 |
c chae soo myung 1
8
2. 구보(仇甫) 박태원(朴泰遠)의 일상세계
구분 |
내 용 | |||
1909(1)-1917(9) |
음12.7(양1910.1.6) 경성부 다옥정(茶屋町 : 조부이전부터 천변에서 살아온 경성토박이)4) 7번지(수중박골5)에서 박용환(朴容桓(밀양 박씨, 한약방(공애당) 경영)과 남양 홍(洪)씨 사이에 4남 2녀 중 차남으로 출생(등 한 쪽에 큰 점이 있어 박점성(朴點星, 흑성이)으로 불리다 박태원(朴泰遠)으로 개명) / 1913(조모(장수(長水) 황씨) 사망 : 11.2) / 1915(이야기에 흥미 높아 한글터득, 7세부터 고소설 탐독, 글짓기 재주) / 1916(큰 조부(박규병)에게 천자문터득 후 <통감(通鑑)> 등을 통해 한문수업) |
가문 : 고려 충선(忠宣:몽골식민지 시대)왕 때 밀성군(密城君)으로 봉임된 지(陟) 25대 손, 증조부(종9품), 조부(국장급) | ||
1918(10)-1922 |
1918(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 입학, 한자 이름(박태원(朴太苑))개명(->박태원(朴泰遠, 8.14) / 1920(<춘향전>, <심청전>, <소대성전> 등 동서고금 명작탐독 고소설 섭렵) / 1922(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4년제) 수료 후 입학시험 거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 입학 후 문학에 관심고조(습작기)) | |||
1923(15)-1926 |
1923(동명(東明)지 제33호 소년칼럼난에 <입학> 선정, <달마지> 당선(4.15), 문학서클 만듬) / 1926(3월(경성제일고보 3학년) 시 <누님>(조선문단) 당선, 필명 박태원(泊太苑) 사용, 동아일보와 신민 등에 시와 평론 등 발표시작, 서양문학(톨스토이, 셰익스피어, 모파상, 하이네, 등) 심취번역) | |||
1927(19)-19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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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경성제일고보 휴학(문학공부와 활동에 전념 위함?)) / 1928(부친 사망(3.15), 형 박진원(조선약학교 본과(서울대 약대 전신) 졸업)이 가업(약방 공애당) 이음, 경성제일고보 복학) / 1929(경성제일고보 졸(25회,3.17), 호세이(동경 법정)대학 예과입학, 소설 <무명지>와 꽁뜨 <최후(最後)의 모습(侮辱)>(동아일보,1929.11.12), 12월 필명 몽보(夢甫) 박태원(泊太苑)으로 작품발표(소설, 시(<외로움(신생)>), 평론, 번역 등), <해하의 일야>(동아일보,12.17~24)) | |||
1930(동경 법정대학 예과 2학년 중퇴 후 귀국, 서양예술 전반과 신심리주의문학에 경도, 소설 <반년 간>(동경 유학생활반영), 단편 <적멸(寂滅 : 불교에서 괴로움 끊음 의미)>(동아일보,2.3-3.1)에 연재(삽화직접그림) 후부터 소설 창작에 주력, 단편 <수염>(신생10월호) 후 본격 문단(데뷔)발표 후 필명 몽보(夢甫)로 수필 등 발표, <꿈>(동아일보,11.5-12)) / 1931(<회개한 죄인>(신생,4권2호) / 1933(구인회(九人會)6)에 가입, <사흘 굶은 봄 달>, <피로>, <오월의 훈풍> 등과 장편 <반년간>, <옆집 색시>, <사흘 굶은 봄달>, <피로(疲勞)>(여명 제1권/5), <반년 간>(동아일보,6.15-8.20(57회):직접 삽화그림), <누이>, <5월의 훈풍>, <낙조> 등) / 1934(<소설가 구보씨의 1일>(조선중앙일보,8.1-9.17), 김정애7)와 결혼(10.27), <딱한 사람들>연재(중앙11), <애욕(愛慾)>(조선중앙일보,10.16-23), 창작여록-표현, 묘사, 기교”,“언어와 문장”강연(구인회주최 문학공개강좌)) / 1935(종로6가로 분가,“소설과 기교”와“소설의 감상”강연(구인회주최 조선신문예강좌), 장편 <청춘송>연재(조선중앙일보), <길은 어둡고>(개벽), <거리>(신인문학,11), <비량(悲凉>(중앙1권2호), <顚末>(조광1권12호), 시 <병원>(카톨릭청년3권2호), 탐정 <特進生>연재(소년중앙), <전말>) / 1936(장녀 설영(雪英) 출생(1.16,동대문 부인병원), <천변풍경(川邊風景)>(조광2권8호-10호), <방란장(芳蘭莊) 주인>, <비량>, <진통>, <악마>, <보고>, <향수>, <거리> 등) | ||||
중후반기 |
일제말기 |
1937(29)-1944(36) : 1937(관동:현 교부동) 12-4 번지로 이사, <속 천변풍경>연재(조광), 차녀 소영(小英)출생(7.30)) / 1938(단편집 <소설가 구보씨(仇甫氏)의 일일(一日)>(문장사), 장편집 <천변풍경(川邊風景)>(박문서관) / 1939(예지동 12번지로 이사, 창작집 <박태원단편집>, <제비>(2.22-23,조선중앙일보: 이상이 경영한 다방사건 소재화), 장남 일영(一英) 출생(9.2, 음8.15)) / 1940(성북구 돈암동 487-22로 이사) / 1942(차남 재영(再英) 출생(1.15), 친일 <군국의 어머니>, <수호전>(조광, 연재) 쓰려 지도 놓고 실거리 잼, 잠시 동네반장 / 1944(<서유기> 번역) | ||
해방 |
1945(37)-1950(42) : 1945(조선문학건설본부8)중앙위원회 조직해 임원(소설부) / 1946(조선문학가동맹9) 중앙집행위원, <조선순국열사전>(유문각) / 1947(셋째 딸 은영(恩英) 출생(7.24) / 1948(보도연맹10) 전향, 성북동 230번지 이사) |
이념갈등 | ||
월북( |
1951(43)(7월경 조용만이 목격(“남쪽에서 박태원을 보았다.”는 증언?)으로 보아 북에서 내려온 이태준, 안회남, 정인택(鄭人澤)11) 그 부인 권영희12)등을 따라 9.28 서울수복 전 남조선문학가동맹13) 평양시찰단 일원(종군기자 활동?)으로 월북14) | |||
1953(평양문학대학 교수) / 1956(권영희(문우이자 고 정인택의 미망인)와 재혼(의붓딸과 사망까지 함께 거주), 월북한 장녀 결혼), <갑오농민전쟁> 구상(8부작 16권), 남로당계열로 몰려 함경도 벽지 학교 교장 좌천(작품활동 금지처분) / 1960(작가복귀하나 건강악화) / 1965(망막염 실명) / 1972(반신불수 원고지로 특수틀 이용해 원고 쓰다 부인(권영희)에게 구술 받아씀) / 1977(완전실명 구술로 <갑오농민전쟁> 재혼 아내가 받아써 1986년 완성, 국기훈장 제1급) / 1980(장편 <갑오농민전쟁) / 서울 부인 김정애 뇌졸중사망(4.21.19:30, 서울 관악구 봉천7동 1615-6, 용인천주교공원묘지) / 1981(구술력 상실) / 1986(78세로 사망(고혈압:7.10(음6.1) 21시30분,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 25반), <갑오농민전쟁> 3부(완전실명 전신불수로 아내가 최종집필정리: 북한최고의 소설로 평가) | ||||
1988 |
평양 신미리 애국렬사능 이장(11.8) |
출처 : 차남 박재영 기록 참고, 월북 후 연보는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국제학술회의(2005.12.12,북경혜교호텔)>때 북측인솔단장 박길남(사회과학원 주체문학연구소 실장 겸 교수)이 들고 온 박태원의 연보와 장녀 박설영(평양기계대학 영문학 교수)과 의붓딸 정태은(초등친구이자 문우였건 정인택 딸)의 기록에 의함 / 1990년 8월 평양에서 권영희와 구보 장남(영일)의 만남 / c chae soo myung 2
2) 구보(仇甫)의 문학입문과 활동 및 의식세계
어릴 적부터 영향을 준 숙부·고모의 지원 아래 춘원(春園)15)에게 문학수업과 백화(白華) 양건식(梁健植))16)에게 중국고전문학을 사사 받았다.
단편 <수염>(1930,신생10월호)을 발표 후,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으나 춘원의 제자임에도 계몽주의를 따르지 않고 구인회와 친밀하면서 1930년대 대표적 소설가 의 한사람이 되었다.
구분 |
내 용 | |
문학적집안분위기 |
유교전통(큰 조부(박규병)는 한학자 : <천자문>과 <통감(通鑑)> 등 한문수업 받고 <춘향전>, <심청전>, <소대성전> 등 고전소설 섭렵에 신문화를 수용한(개화 : 부친은 약국경영, 신세대 지식인 숙부·고모의 영향, 중산층으로 어릴 적부터 근대예술전반 접함(영화관(종로2가 우미관) 자주출입) -> 문화·경제적 풍요에 적극적인 근대문물수용) | |
문학수업 |
유년기부터 영향을 준 숙부(박용남)·고모(박용일)은 구보의 문학성을 알고 춘원 이광수(고모는 춘원 재혼녀 허영숙과 친밀) 찾아 문학수업(1926년, 18세), 중국문학(주로 번역)가 백화(白華) 양건식에게 한문사사, 이은상(시인)에게 사사(?) | |
문학기본배경 |
예술적 집안환경(관심과 안목이 새문학세계인 모더니즘문학실천에 중요한 몫) / 유학중퇴(1930년 일본 호세이(法政)대학, 현대예술전반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쌓았음) 후 귀국해 밤늦도록 책(문학)을 읽는 등 불규칙 생활로 건강악화와 시력 해쳐도 몰입 / 도시에서 성장한(세련·조숙) 모던보이답게 예술흐름(문화계 풍미하던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 일어난 아방가르드(avant-garde:전위예술)운동17)과 모더니즘(modernism)18)) 및 다다이즘(dadaism)19) 등)관심 | |
의식 |
독서광이자 능숙한 일어와 영어 해독자(서양과 일본 현대작가 작품 섭렵, 영미모더니즘 십취) / 여급부랑자오하 소시빈민 룸펜예술가 같은 밑바닥계층 중심의 세태풍속 사실화 / 반계몽적이고 반계급주의적인 입장에서 일제당시 세태풍속을 소설로 묘사(문단 확고한 위치 굳힘) / 사실에 입각한 순수예술성 중시와 고뇌속의 실험정신아래 전통적 전개기법 파괴한 시인 이상과 1930년대 대표적인 모더니즘작가 | |
등단 (입문) |
1926년(경성고보3) 시 <누님>(조선문단)이 가작으로 당선되어 등단, 소설(꽁뜨) <최후(最後)의 모욕(侮辱)>(동아일보,1929.11.12), 다음 달 박태원(泊太苑) 몽보(夢甫)라는 필명으로 시 <외로움>(신생)·소설 <해하의 일야>(동아일보,12.17~24)·평론·번역 등 발표 / 단편 <수염>(1930/신생10월호)로 본격 활동 | |
문학활동 |
조용만의 추천으로 구인회참여(1933) / 잡지‘시(詩)와 소설(小說)’등 예술파와 친밀 / 청계천주변의 서민들 풍물 치밀 묘사 / 한국문학최초로 도시산책자를 등장시킨 모더니스트로 도시문학 1세대작가, 경성심장부(종로1.2가, 청계천(광교), 광화문 사거리, 숭례문, 경성 역 일대) 거리를 무대로 도시서민의 애환과 풍물을 묘사한 알림이, 에피소드 스케치한 경성출신 몇 안 되는 최고작가 / 재현한 경성(고향이자 일제식민지 조선수도)을 통해 한국근대사 소용돌이 현장을 표출한 모던보이(구인회 멤버들과 경성 주요거리를 휘젓고 다닌 모더니스트(Modernist:현대감각과 가치를 좇는 사람) / 월북 / 남북에서 존경받는 유일한 작가 | |
30년대 경성분위기 : 근대화의 혼란공간(전통파괴 개방화물결(사대문안 주요 일제건물 제외하곤 기와집, 사대문 밖은 주로 초가집), 자유연애, 볼거리 본격화(도시소음:유성기 라디오, 자동차, 인파) / 섹슈얼리티(카페, 댄스홀, 극장내부와 주변풍경(다양한 시청후각체험, 식민지자본주의체제에서 소비활동, 근대성경험, 심신 쾌락성 경험공간)20), 유흥장 등의 말초적 자극유도) 맛보는 기회 / 근대성 매력과 식민성 거부감으로 분열 / 남촌과 북촌간의 차별성은 식민지의 그림자와 근대적 문물에 대한 동경심 / 사대·사소문 열고 닫는 종각 종소리21) | ||
작품 |
독립된 단편소설 <딱한 사람들>(1934)과 장편소설 <천변풍경>(1938)의 제13절에 <딱한 사람들>은 다른 작품 |
주요무대(경성과 정읍)를 오고 갔음 |
<음우(淫雨 : 1939)>와 <음우(陰雨 : 1940)>는 다른 작품 | ||
공저 |
김윤식과 김현 <한국문학사>(<딱한 사람들(1934)>, <길이 어둡고(1935)>, <전말(1935)>, <비량(悲凉(1935)>, <거리(1936)>, <진통(1936)> 등) | |
번역 |
서양문학 심취번역(외국어 번역 실력 탁월) | |
이미지 |
당시 유행한 갑바 머리에 굵고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산책필수품인 단장(여름엔 빨간 부채)한 도시 산책가(노트를 들고 사적생활 즐기며 거리를 배회), 다방에서 시간 때우기에 무료한 룸펜(당대 최고지식인) | |
문우 |
가장 친한 문우 이상((李箱)22) : 이태준23)이 이야기 하며 운영하던 제비다방24)(조선광업소 1층 건물)에 찾아가 만났는데 뜻이(경성 사대문안 토박이에 집이 가깝고 문학세계동일) 맞아 절친한지라 구보는“이상과 나는 당시에 있어 서로 겨 묻은 개였고 동시에 서로 똥 묻은 개였다.”라고 기술) / 구인회 멤버와 친밀(특히, 시인 이상·소설가 김유정·신문기자 겸 작가 이태준과 친밀) |
c chae soo myung 3
이처럼 구보는 어린 시절, 당대 언론인이자 문학의 대부 춘원(春園)에게 문학수업을 받은지라 처음에는 계몽주의적 현실관이 강했다.
그러나 시대흐름에 독자적 의식세계로 흘렀고 카프파의 거두 임화(林和)25)의 영향을 받았으나 경향파의 사회주의문학이 일제에 탄압받자 구인회를 조직해 새문단세력으로 이효석과 같은 예술지상주의에 버금가는 활약을 하였다.
특히, <창작여록-표현-묘사-기교>(1934)와 구인회에서의 문학 강연‘언어(言語)와 문장(文章)’(1934), ‘소설(小說)의 감상(感想)’(1935))등을 통해 새로운 문학론(文學論) 제시는 이미 그의 위치가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증명한다.
3) 구보의 작품흐름단계와 평가
구분 |
내 용 | |
서술기법 변화 |
1단계 |
1930년대초~1936년(<적멸>에서 <천변풍경> 전까지) : 모더니즘·리얼리즘소설 혼재(1·3인칭 시점, 등장인물 직접 보고들은 경험을 밀도 있게 여러가지 서술기법 상 실험시도) -> 서술내면화와 모더니즘실험 및 식민지식인의 자아의식 |
2단계 |
1936년 <천변풍경(川邊風景)>에서 1945년 해방까지 : 고현학적 관찰이 소설기법의 중요기초특징을 전달, 언어실험과 서술미학 성취 / 소시민적사건 소재화 한 세태소설류(<천변풍경>, <성탄제> 등)과 심리주의수법으로 무기력한 인텔리생태(<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전말> 등) 및 흥미위주의 통속류(신문, 잡지) -> 서술외면화와 서술자 등장, 도시적 삶과 근대화실상 첫 장편 | |
3단계 |
해방 후 사망 전 까지(역사소설) : 언어실험 없고 일상적 어휘와 정상적 어법사용, 서술대상도 한 인물의 내부의식보다 시대배경과 사건진행, 인물행위 등) / 애국소설류(<약산의 의열단> 등) / 사회변천과 역사의식(변모, 작가 주석적 서술, 인간문제) -> 월북 후 공산주의 리얼리즘(역사소설) | |
작품특징 |
특징 |
언어자각, 작품형식과 기교 : 의식적 관심, 광고전단 등의 대담한 삽입, 콤마사용에 의한 장문시도, 중간제목의 강조, 한자남용 등 독특한 문체 |
경향 |
일제강점기 경성의 소시민층 변모양상을 객관적 서술로 묘사, 의식흐름 등의 문체와 표현기교 실험성, 시정풍속을 파노라마식으로 묘사 -> 세태소설의 문학사적 특이성 | |
명작 |
남한에 세태소설 <천변풍경(川邊風景)>이 있다면 북한에 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남김(북한 역사소설의 최고봉) |
c chae soo myung 4)
마치 사진의 몽타주기법처럼 상이한 에피소드 간의 결합된 내재적 리듬창출을 통한 영화기법의 수용은 기존 형식의 틀을 깬 새로운 전개방식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식민치하에 서민층의 변모 상을 객관적인 시정적(市井的) 소시민사회현실을 저회하면서 무기력한 패배자의 시선으로 풍경을 그려낸 1930년대 대표적인 세태작가라는데 이의가 없으나 두 개의 과오(친일, 월북)이다.
구분 |
내 용 | |
과오 |
친일 |
백태원(泊太苑)으로 일제를 미화한 <군국의 어머니>(1942년) 외 조관과 매일신보에 각 한편씩(<한길>(1930.1), <동무에게>(1929.12.26) 써서 이듬해 발표, 조선총독부에서 조선독립을 풍자해 단결투쟁 종용한 시로 적발, 분류해 일본어로 번역, 감시자료)) 기고로(총 3편) 친일행적, 소극적 협력으로 친일인명사전(200 5년 민족문제연구소에 포함)에서 최종제외(2002년, 친일문인 42명단) |
월북 |
해방직후, 사상혼란(좌·우파 간)에서 좌파로(경제적 어려움으로 지배계층에 대한 반발? 미국에 반발? /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 역사소설 쓰다 6·25전쟁 때 북에서 내려 온 종군작가(이태준, 안회남, 정인택 등)를 따라 9.28 서울수복 전 월북(남조선문학가동맹 평양시찰단 일원, 종군기자로 활동?)추정 | |
평양문학대학 교수 등으로 활동(1956년 권영희와 재혼) / 1956년, 박헌영 남로당계열로 몰려(김일성은 6.25전쟁의 책임(박헌영 간의 권력투쟁)) 숙청당해 모든 활동금지 / 구제되어 김일성에게 충성맹세 후 남한체제 비난조건으로 작품활동(역사인물소설 : <심청>, <연개소문>, <을지문덕>, <이순신> 등) 추정 | ||
종합평가 |
작품 |
문학 : 초기(시인으로 출발), 초중기(소설로 전환 : 일제시대 경성 중하민층과 자신의 방황, 리얼리즘소설), 중기(약간 친일), 중말기(해방 후 사상적 갈등 속에 좌파, 반 계급적·친일·역사문학), 말기(월북, 역사적 위인소설) |
계몽주의에서 독자적인 소설전개(관찰자적 입장에서 형식파괴) / 재혼한 권영희(사망한 친구(정인택)의 부인)의 헌신으로(건강악화와 시청각문제와 및 실명 : 받아쓰고 마무리 대필) 소설 집필활동 지속 | ||
인간 |
소탈 서민적, 유행한 갑바 머리에 굵고 검은(데모)테 안경을 쓴 모던보이, 산책필수품인 단장(여름엔 빨간 부채)과 대학노트 들고 사적생활을 즐기며 경성거리를 배회한 도시산책자, 다방에서 시간 때우기에 무료한 당대 최고지식인, 이상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품어준 내성적 친구, 실명을 소설 속에 드러낸 득의만만한 사내/ 소설 하나에 자기 이름을 걸었던 영원한 문인(평생 소설가로 활동) |
c chae soo myung 5
1934년(26세)부터 글을 써 6·25 전쟁 뒤 월북으로(<갑오농민전쟁>를 마무리 하지 못하고 1986년 사망(문필경력 53년)) 가려 있다 1988년 해금조치로 남한국문학사에서 떳떳이 읽히고 연구되어 빛을 발하고 있다.
4) 구보 박태원의 이미지와 편지
호(구보)가 이름(박태원)보다 더 유명한데 그 의미는 이미 박태원의 인생을 의미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구 분 |
내 용 | |||
이름 |
박태원 |
박태원(朴太苑(클콩동산)을 박태원(朴泰遠(클 크고 멀다)으로 개명(1918.8.1 4) -> 1926년과 1929 12월 박태원(泊太苑:설콩동산) | ||
필명 |
구보몽보 |
하루를 떠돌아다닌 후, 그 기록(<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소설이라 우기며 호 구보(仇甫:거만한 사내)를 즐기자 문우들이 구보(九甫:9개 크다)라 낮추면 기어코 구보(丘甫:큰 언덕)임을 주장) 또는 몽보(夢甫:보물을 꿈꾸다. 꿈이 크다)라는 필명으로 작품발표 | ||
의미 |
구 |
仇(일제저항), 傴(노총각 무직자), 久(장기간 문학몰두), 俱(구인회,한민족), 傋(區:친일,월북), 具(자질), 嫗:부인 둘), 媾(재혼), 究(연구열), 姤(권영희), 媾( ), 구( ), 구( ), 구( ), 구( ), 구( ), 구( ). 구( ), 구( ), 구( ), 구( ), 구(仇: 000), 傴(친일, 김일성)..... |
인생과 작품의 포괄성 | |
보 |
寶(黼:30년대 문학), 步(경성 산책자), 烳(세태소설 선구자), 莆(북한 역사소설영웅), 保(역사적 가치), 俌(서민층 세태), 普(남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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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연출된 이미지(오카파머리26), 안경)는 당대로서는 매우 독특했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고 아직도 남아 있고 월북 후에 자식들에게 붙일 수 없는 편지27)는 민족이 낳은 비극사건으로 너무 안타깝다.
3. 1930년대 중반, 경성을 배경으로 한 구보(仇甫) 작품분석
1) <피로(疲勞)> 작품분석
<피로(疲勞)>(부제‘어느 반일(半日)의 기록(記錄))는 <여명>제1권(1933.5)에서 보듯 당대 최고지식인이나 경제·신체·정신적으로 무기력한 자신이 반나절에 걸친 경성의 배회과정을 서술한 세태적(世態的) 여로(旅路)소설이다.
구분 |
내 용 |
이해감상 |
소설가 '나'의 반일 간의 생활을 서술 / 거리로 나와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서술한 작가의 초기작 <적멸> 의 연장선상에 놓이나 현실을 매개로 다양한 연상작용으로 후기소설과 상통 / '나'의 행위(다방에서 나와 거리를 걷다 신문사(M,D)에 들르고 버스타고 한강까지 갔다 다방으로 돌아오는 배회는 무의지에 근거, 이를 통해 '나'가 인식한 현실은 '피로' 뿐(원인은 '나'의 암울하고 피곤한 심사가 식민지현실이라는 당시 보편적 상황과 개인문제(실업자, 가난, 결혼문제, 방황)와 직결됨 짐작 / 서사성 약화 |
다방(낙랑펠러)안에서 글쓰기하다 창틀에 매달려 안을 엿보는 소년을 발견하고 상념에 빠짐, 앞에 앉은 서 너명의 청년들(문학도?)이 조선문단의 침체원인 통매(痛罵)비판(춘원, 이기영, 백구, 노산 시조집 등) / M신문사 앞에서 누구를 만나보고 갈까 망설이다가 수부 앞에 놓인 면회인 명부에 여러 가지 기록해야 될 것을 생각하고는 돌아선다. 다시 다방으로 돌아와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살풍경한 광고들을 가리워짐) 주인이 구보를 위해 틀어 준 엔리코 카루소28)의 <엘레지>를 들으며 고요한 공기를 흔들어 세 개 담배를 피우며 미완성원고를 생각함 | |
부제(‘어느 반일(半日)의 기록(記錄))를 달은 이유는 구체적인 부연설명 인 듯 | |
기타 |
룸펜차문인 3인방(가빠머리에 데모떼 안경 쓴 박태원, 덥수룩한 머리로 검은 양복에 흰 구두 신은 이상, 두루마기 옥양목에 동정을 넓게 달고 술 마시면 달변가인 김유정) 처지(지식층, 가난, 문학인, 자존심 같음)은 거리 배회하며 매일 락낭다방(경성시청 뒤 장곡천 입구, 일본상가 골목으로 경성의 은좌(불빛장관), 지식층의 집합소(당시 아트지 : 낙랑다방, 낙원카페, 아서원(중국음식점), 세련미를 즐긴 모더니스트)에 모여 문학과 잡담으로 소일거리) / 반바지 차림의 김기림, 소공동 곱추화가 구본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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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서술자 내면의식 흐름의 이야기식 전개로 서사적 소설특징이 약화되었다.(인과적 갈증전개보다 내면세계를 묘사)
구분 |
내 용 |
구성 |
추보식 : 전통소설의 구성단계와 불일치(발단(낙랑다방(현 서울시청 뒤)에서 외출하는 '나') -> 전개(M신문사(조선중앙일보)와 D신문사(동아일보) 방문) -> 위기(버스를 타고 노량진으로 감) -> 절정(한강의 삭막한 겨울풍경) -> 결말(다시 다방으로 돌아와 미완성 원고를 생각) / 전통적인 소설개념 탈피 |
전개 |
다방 -> 신문사(M->D) -> 버스 안(노량진 행), 얼어붙은 한강 감상 -> 다방 / 거리배회(암울하고 피곤한 식민지현실) |
등장인물 |
나(작중 화자이자 주인공, 25살의 소설가), 노마(16살의 낙랑다방 여종업원), 교환수(D신문사의 전화교환수. '나'의 질문에 사무적으로만 대답) |
내용증명 |
'나'는 구보자신('나'가 현대예술에의 자부심을 보인 소설가설정은 자전적(自傳的)인 요소농후) / 다방(낙랑 : 이상(李箱) 등과 즐겨 찾아 온 종일 죽치고 앉아 담배피우며 문학이야기와 글을 구상하고 쓰면서 음악감상으로 소일거리 장소) |
핵심정리 |
고현학의 창작방법을 통해 심리소설 시도 / 이듬해 발표된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의 원형 / 구체적 사건 없이 인물의 내면의식탐구를 주력함으로서 서사성과 사건추이를 중요특징의 전통소설에서 이탈 |
갈래(단편 세태적 여로형(旅路型) 심리소설) / 배경(시간(1930년대 어느 하루) / 공간( '낙랑' 다방안과 경성거리) / 시점(1인칭 주인공) / 경향(모더니즘)/ 특징(구체적인 사건 없이 인물의 내면의식 탐구에 주력) / 제재(소설가의 일상사) / 주제 (식민지상황에서의 현실적 피로) / 의의(초기단편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에 이어지는 교량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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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설가 구보씨(仇甫氏)의 일일(一日)> 작품분석
<피로>를 발전시킨 <소설가 구보가 일일(一日)>(조선중앙일보(1934.8.1-9.19. 총30회), 삽화자(단짝 친구인 이상이‘화융’이란 필명)도 동 신문에 <오감도>를 연재하다 독자항의로 중단, 상허 이태준이 신문사 편집일 맡음))의 발표는 파격적이었다.
즉, 26세의 노총각 구보가 하루 동안 경성도심을 보고 느끼며 체험한 일을 시간흐름에 따라 자세히 서술한 희한한 이야기의 단상(斷想)을 50여 일간 연재해 1930년대 나약한 지식인의 일상사(日常事)를 엿보여 논쟁거리가 되었으나 고정관념을 탈피한“새 형식의 소설”이라는 평가로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구분 |
내 용 |
감상 |
시력이 약하고 장가도 안 간 무기력한 소설가 구보씨가 종로 네거리를 바라보고 걷고 다방으로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림(동경유학까지 다녀온 최고지식이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배회하면서 경성거리 여러 풍경에 군중과 마주쳐 상념적, 경성 역 대합실에서 군상들을 보며 환멸을 느끼다 친구와 목적 없는 만남으로 술집에 들러 모든 이들을 정신병자(이상분열증(理想奔逸症), 언어도착증, 과대망상증, 지리멸렬증 등)로 관찰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다가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자기가 이미 하나의 환자임을 깨닫고 웃으며 비가 내리는 거리를 걸어 밤이 되자 종로로 나가 오고 늦은 귀가를 걱정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벗에게 좋은 소설을 쓰리라 다짐) / 1930년대 문학인의 정신구조 드러내 당대 문학인의 이해의 중요한 자료제공 |
관찰 |
구보(소설가 박태원)의 실제생활이 반영된 자전적인 소설(목적 없이 집을 나가 귀가까지 하루 종일 도중에 목격한 단편적 사실들의 떠오른 생각을 정리) |
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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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다옥정:정오쯤):천변 길->광교->종로 네거리 -> 2.화신상회(백화점(1934년 준공(지하1층 지상4층 총면적3천평):현 종로타워) -> 3.종각서 전차 탐->종묘->동대문->경성운동장->을지 6가->훈련원->황금정->을지 명동입구 하차 -> 4.조선(현 한국)은행 앞 -> 5.다방(낙랑펠러(樂浪Parlour)(파라)29):현 프라자호텔) -> 6.부청(시청) 앞->덕수궁 앞 대한문->땡볕아래 태평로 -> 7.남대문(대문통과)->거리(지게꾼 모습) -> 8.경성 역 대합실(고독감, 자존심 강함)->친구 이태준에게 전화->조선은행 앞 -> 9.다방(낙랑펠러:이태준한테 <율리시즈>이야기 듣고 충격)->거리(어느새 황혼녘)->경성우체국->종각 -> 10.다로(친구인 시인 이상이 운영:종로네거리:제일은행 부근, 화신백화점 길 건너)->대창옥(유명설렁탕집:저녁식사(설렁탕))->경성우체국(현 광화문우체국) -> 11.황토나루(광화문사거리) -> 12.다방(낙랑펠러)->광화문사거리->종각 -> 13. 카페(낙원정:낙원동 위치) -> 종각->카페(종각 뒤:여종업원(?) 보러 자주 찾던 곳) -> 14.귀가(새벽 2시(12시 통행금지 무의미):다동 집) / 전차(3번), 도보(3을 제외한 1에서 14번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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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내 용 | |
제재찾기 |
출발점인 구보의 집(광교 천변의 다옥정(다동:현 한국관광공사))->광교, 화신백화점(먼 길이 아니므로 걸어서 도착)->전차(종묘, 대학병원, 경성운동장, 훈련원, 약초정, 본정통을 지나 조선은행 앞).......종로에서 장곡천정(소공동:산책으로 10분 안에 갈 수 있는데도 굳이 먼 거리를 선택한 이유는 전차궤도가 경성외관의 순환선역할로 단시간에 경성공간을 감지가 가능했으리라 추정)까지 / 전차타기(경성공간의 효과적인 문학적 문화장치), 노트를 들고 거리산책이유는 소설의 제재 찾는 과정(독특한 미의식) | |
특징 |
① 작가의 실제생활을 통한 자전적인 소설(특별한 목적 없이 집을 나선 '구보'가 귀가까지 도중에 우연히 부딪히게 되는 단편적인 여러 사실에서 촉발되는 두서없는 생각들의 연속(1930년대 나약한 지식인의 일상사) | |
② 시작부분에 주인공의 현실처지와 향후 전개될 내용암시(주인공은 26세이나 장가를 못가고 일정한 직업이 없는 무능한 룸펜인텔리겐차를 기다리면서 안타깝게 지켜본 어머니의 모습과 그 바래임은 일상적인 행복과 지식인의 무료함은 중요내용의 구조형성) -> 작가 관찰자 시점(일정한 거리를 둔 사건관찰, 작가가 전지적 입장에서 사건을 생각하고 느낀 주관적인 내면세계가 객관적으로 묘사)) | ||
③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방식 탈피(외출해서 귀가까지 작중화자의 관찰과 심리를 서술) -> 구보씨가 어느 날 하루 중에 겪은 일이 에피소드형식으로 제시되나 플롯들은 각기 독립적으로 포석되지 않고 전체구조를 이룬 유기적 요소) | ||
④ 배회형식(산책)은 관찰과 의식흐름의 효과적 장치(관찰은 당시 경성의 여러 풍물, 경성 역을 중심으로 암울한 풍경(지게꾼, 유랑민, 시골노파, 바세도우씨병에 걸린 노동자 등)과 다른 근대화(종로통의 카페를 중심으로 휘황한 모습)의 양면성, 내면의식흐름은 여러 풍경에서 발견되나 자신에게 결여된 두 축(일상적인 행복, 지식인의 고독)을 형성 | ||
⑤ 시간적 배경은 자유연상수법에 의한 독백활용에 현재·과거·미래시간이 교차되는 공시성을 지닌 특정성 | ||
인물 |
구보 : 26세 미혼, 무직의 소설가의 작가분신으로 외출에서 귀가까지의 세태관찰의 주체자(끽다점(喫茶店)의 모더니스트), 신체(시청각)문제로 불안감속에서 무능력에 부끄러움을 가지나 지적 우월감아래 다른 사람들을 속물로 치부 / 현대적 지식인(일본유학), 인간관계형성의 소극성(연인관계의 발전을 거부(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대해 경멸로 세속적 삶을 거부), 세계와 화해추구(의식과 무의식세계에 대한 불편한 심리적 거부와 화해의 과의 관계형성에도 소극적인 태도), 신경쇠약증(세속적 삶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피로가 육체적 고통으로 발전) |
등장인물은 좀 있나 특이한 에피소드형식으로 잠시 등장했다 사라짐 / 일정성격을 지닌 인물은 구보·어머니·친구 정도 일뿐 / 주로 간접묘사방법성격표출 |
어머니 : 미혼의 무능력한 아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늦은 귀가를 염려하며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기를 갈망 | ||
친구(이태준) : 같은 지식인으로 구보의 생각에 동조 | ||
핵심정리 |
갈래(모더니즘 심리적 중편소설) / 성격(사색·관찰적(도시적 감수성이 넘친 주의 깊음) 세태소설) / 배경(1930년대 일제식민지의 경성 중심가) / 공간(현실적(경성의 하루) / 의식적(첫사랑(?)을 시작한 어린소년기∼동경 유학시절)) / 시점(3인칭 전지적 작가) / 구성(일반적 소설구성방식을 파기한 작중화자의 관찰과 심리로 서술) / 표현(1일 동안의 여로 형식(원점 회귀적 여로구조), 무기력한 지식인의 일상적인 심리묘사와 관찰의 조화, 만연체 문장) / 의의(고현학적 창작방법론) / 제재(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생활) / 주제(1930년대 한 지식인의 외로움과 이상과 현실에 대한 갈등, 무기력한 문학인의 눈에 비친 일상사, 소설가로서 느끼는 고독과 자아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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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내 용 |
생각하기 |
작가 이상세계(지식인 소설가의 내적 방황의 극복태도), 형식상 특징(과의 효과(장과 절구분에 소제목을 달고 긴 문장에 적절한 쉼표를 부여해 문법성을 가지며 장면의 전환과 사건의 전이를 꾀해 특이한 시점 선택을 통한 내면의식표출에 일익) / 구보가 어떤 대상파악 시 일정패턴의식(한 가지 사태에서 양면을 보고 상반된 판단(행복하다 생각하다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깨닫는 진실은 회의에 빠질 뿐 단순한 사고패턴) / 구보가 방황을 끝내고 귀가 길에 자기발견(많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피로와 슬픈 기다림에 시달리고 있음, 삶의 진실이란 애환과 연민으로 구체화됨을 깨달은 자신도 긍정) |
1933년, 경성 명동 제비다방 오후 두점(시). 일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그곳 등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이야기를 하면서 레코드를 들었다. 구보는 차를 마시며 문득 끽다점에서 사람들이 취하는 음료를 가져“그들의 성격, 교양, 취미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 아닌가”를 생각한다. 그때 다방주인이자 그의 연재에 삽화를 그리던 하융이 다가와 '혹시 노형은 새로운 애인을 갖고 싶다 생각 않소.'라며 구보는 그에게 저녁을 청했고 속으로 지난날의 조그만 로맨스를 좀더 생각함은 소설가 박태원의 '끽다점(다방 '제비'는 <날개>와 <오감도>의 작가 이상(본명 김해경)에 의해 초현대식으로 설계되고 그의 연인 금홍이가 마담으로 있던 곳이자 등장하는 하융은 이상의 화명(畵名)으로 대형 유리창이 있었는데 늘씬한 다리를 가진 카운터 아가씨의 각선미를 볼 수 있어“커피를 마시면 다리가 늘씬해진다.”는 소문)의 모더니스트'를 비롯한 그의 몇몇 단편에서 묘사 | |
어머니 생각 : 스물여섯 살임에도 노총각, 딱히 없고 버는 돈도 시원찮으나“가지 못했다.”기 보다“가지 않았다.”는 어머니는 “그 애(지난해 여름에 만난 색시)면 저 두 싫다구는 않겠지”라 짐작하는 빠질 것 없는 자식 /“보통학교만 졸업하고도, 고등학교만 나오고도, 회사에서 관청에서 일들만 잘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어머니는 고등학교 졸업에 또 동경엘 건너가 공부하고 온 내 아들이 구하여도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 |
소설속 찾은 사실 |
주인공 구보(도쿄 유학생 출신이나 백수) / 일어난 시간(낮 11시~12시쯤) / 집밖으로 나온 시간(정오) / 집을 나온 이유(어머니의 말없는 잔소리) / 첫 출발점인 집(다동) / 다리(광통(광)교) / 화신상회(조선인 자본으로 세워진 당시의 새로운 도시문물로 경성대표적 백화점, 현 종로타워) / 앞에서 멈춰 잠시 발길 돌려 목격한 점(젊은 부부(중산층)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신문물)를 기다리는 모습(식당에 올라가 밥을 먹으려는 듯?) / 전차(1899년 일제가 시공운행, 근대도시가 제공한 볼거리제공) / 전차 안(근대도시가 제공한 볼거리제공) / 종묘 앞을 지날 때(차장이 표를 끊으라하면 주머니에서 꺼낸 동전에 새긴 연도를 보고 의미부여 등) / 경성운동장(1926년 일제가 건립) / 전차에서 들은 내용(라디오에서 경기뉴스가 없음) / 전차 안에서 생각한 이동장소 어디(장충단·청량리·성북동 등 교외? 창경궁(원)이나 정신병을 연구하는 친구가 있는 대학병원(서울대병원)?) / 훈련원(조선시대 병사들 훈련장, 현 을지로 5가 공원) / 조선은행(한국은행) / 장곡천정(長谷川町:소공동) / 다방((낙랑펠러:문화예술인들이 자주 찾음, 프라자호텔근처) / 경성시청(현 서울시청) / 덕수궁(德壽宮:1920년대 초 일부 건물이 헐렸고 1933년부터 어린이유원지를 겸한 공원화, 현 전체규모는 과거 고종황제 거처하던 때보다 축소) / 대한문(大韓門:현 1960년대 도로확장공사 하면서 원래보다 안쪽으로 옮겨 놓았음) / 유동의자(의자처럼 생긴 그네) / 마음을 바꾼 이유(‘그 빈약한, 너무나 빈약한 옛 궁전은 역시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여 주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 / 한여름 땡볕(오후 1-2시경으로 추정)아래 남대문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낮선 용어(‘모데르놀로지(modernology:고현학(考現學))발견(구보 자신의 창작방법론 소개) / 남대(숭례)문 통과하며 본 모습(불어 드는 바람도 없이 양옆에 웅숭그리고 앉아 있는 서너 명의 지게꾼들의 맥없음) / 경성역(일제가 1925년 세움) / 생각들(‘사람들이 있는 곳,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도회의 소설가는 모름지기 이 도회의 항구(기차역)와 친하여야 한다.’) / 대합실의 고독감(빽빽하게 모여든 이들 저마다 분주) / 자존심 상함(반갑지 않은 옛 친구(보잘 것 없었던 동창?) 옆에 있는 미모의 여성) / 음료수(칼피스) / 친구 가는 곳(‘월미도로 놀러 가는 듯) / 친구와 헤어진 후 생각(졸부와 돈) / 보고 싶은 친구(시인이자 신문(조선중앙일보)기자:이태준)에게 전화해 낙랑펠러다방에서 만나 들은 이야기 딱하게 여겨(시 대신 매일 살인강도·방화범 등 기사를 씀) 귀 기울여 듣지 않다(문학) 흥미로운 점 발견(<율리시즈>(아일랜드 문호 제임스 조이스, 주인공들이 하루 동안 겪는 일을 펼친 장편소설)가 언급)하고 작품 구상 한듯(<울리시스>와 같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어느새 황혼녘(저녁노을 시간:19.5-20시경) / 귀가 서두를 필요 없는 이유(생활 없기 때문) / 혼자 만나러 간 친구(종로 네거리로 다료(제비다방:주인이 친구(시인 이상)) / 저녁 식사(유명한 설렁탕집 대창옥(大昌屋:종로네거리 부근)서 설렁탕)) / 도쿄 유학시절에 만나 떠올린 한 여인(?) / 친구 급한 일로 다시 다방에서 만나자는 시간(밤 10시나 10시 반쯤) / 혼자 찾은 황토마루(현 광화문 네거리) / 광화문통(경복궁 앞길, 조선시대 관아가 즐비했던 육조거리를 일제시대에 이른 말) / 길(멋없이 넓고 쓸쓸함) / 걷는 방법(여유) / 걷는 길이 쓸쓸한 이유(1927년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지으면서 광화문을 헐자 여론반발로 경복궁 동쪽에 옮겨 놓아 없었기 때문) / 경성우편국(광화문우체국) / 황금(黃金)정(금융 일번지:구리개(을지로 1가와 2가 사이 언덕)) / 자주 찾았던 술집(종각 뒤) / 밖으로 나온 이유(자주 보던 여종업원이“낙원정 카페로 옮겼다.”) / 여종업원(권영희?) / 낙원정(낙원(지상낙원)동 고급 음식점?:낙원동) / 귀가시간(새벽 2시)30) / 소설을 쓴 충격적 원인(다방(낙랑펠러)에서 친구 이태준로부터 전해들은 <율리시스> 이야기를 듣고 흉내 냄) |
낮 12시께 집을 나와 새벽 2시까지 경성 시내 곳곳을 들름 / 계산(도보이동거리(9.6km)+전차이동거리(5.7km)=총15.3km, 14시간(시속1.1km 약간 못 미침, 경성역까지 갔다 돌아와 두 개의 찻집을 두 번씩 들린 시간 등등 포함) | |
후편 |
구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구보씨의 일일(<조선중앙일보(1934.8.1-9.19))>의 직접적인 연장선 -> <애욕(愛慾)>(조선중앙일보/1934.10.16-23)), <자화상> 연작(1화, 2화, 3화)이라 부리는 <음우(陰雨 : 1940)>, <투도(偸盜 : 1941)>, <채가(債家 : 1941)> : 예술가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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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구보는“흡사‘불룸스 데이’(소설 <율리시즈>의 주인공 레오폴드 불룸의 이름을 따 그 하루 동안의 여정을 되밟는 아일랜드의 문학행사)처럼 경성을 다시 볼 수 있는 여정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 명성을 얻은 듯 그리도 반대하던 장모의 허락을 받아 작품발표를 끝낸 다음 달(10.27) 다옥정에서 김정애와 혼례를 올렸다.
서사적 구조의 중심체 없이 여러 가지 계기를 통해 신변잡기처럼 서술했기에 내면묘사흐름의 자유연상전개가 내레이션과 독백이 엉켜 난해한 만연체의 느슨한 문장을 보완하려 쉼표를 이용해 속도감 저하, 장면전환, 새 사건의 이행 등을 꾀했다.
3) <천변풍경(川邊風景)> 작품분석
제목에서 보듯 <천변풍경(川邊風景)>(조광, 1936.8.~1937.9), 장정(동생 박문원31))은 시골에서 상경해 호기심 많은 재봉이(15,16세 정도의 이발소 사환)가 1년 간 시간만 나면 창밖을 내다보고(광교부근 이발소·빨래터·골목주변에서 일어난 대소사를 목격) 은방주인과 민주사의 눈에 비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구분 |
내 용 |
특징 |
1년 간(2월 초부터 다음해 정월 말까지) 청계천변을 중심으로 다양한 서민생활모습을 50개의 절의 서술양식을 수용, 70여 명의 인물등장을 통한 각양각색의 삶의 생태와 음영(陰影)을 드러내 특정주인공이 없어 산만함 |
기법 |
소설의 구심점을 잃지 않으려 삽화적 이야기를 다중화 시키고자 영화기법인 카메라 아이((Camera eye)32)를 통해 상이(相異)한 장소에서 동시 일어난 사건을 보여줘 시간성과 공간성을 극대화(빨래터(여인들의 집합소)와 이발소(남성들의 시교장)를 중심으로 초점화 시켜 일상적 생활양식과 생태재현에 대성공 |
1930년대 경성에 거주하던 각종 직업(행랑살이 어멈, 신전 주인, 이발사, 포목전주인, 한약국과 양약국 주인, 부의회 의원, 사법 서사, 금은방 주인, 카페 여급, 기생, 미장이, 첩, 여관 주인, 당구장 보이, 아이스케이크 장수, 전매청 직원, 공장 노동자 등)의 인물들을 마치 모자이크식으로 등장시켜 실제거리·지형·동명·건물과 같은 도시의 물리적 사실들을 재현 | |
혼재 |
전통적인 인습과 근대적인 문물이 혼재(混在) / 세태소설이자 도시소설에 대한 논의(세태와 도시풍속을 세밀한 세태묘사로 당대의 진실을 추구 한 작가정신) |
서술방식 |
특정 화자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양식을 수용, 해설자·서술자(전지적 시점)에서 등장인물의 서술자(1인칭 시점)·관찰자이자 서술자(작가 관찰자 시점)까지 다양, 서술시점상이 혼란 할 다양한 방식구사, 각 장이 지닌 독립된 단점을 다양한 삶의 양태를 역동성으로 인식 |
기타 |
<속 천변풍경> 연재(조광,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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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당시 경성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50개의 절이 피카레스크(Picaresque)33)식 구성을 지져 각 에피소드마다 인물을 작품화시킨 기교작가로 단순·미묘함까지 풍부하고 흥미 있는 이야기를 담아 작가적 역량에 모더니즘작가로 평가된다.
구분 |
내 용 |
풍속묘사 |
1년간(2월 초부터 다음해 정월 말까지) 청계천(淸溪川 : 광교(廣橋34))변을 중심으로 일어난 다양한 서민생활 모습을 50개의 절로 나누어 서술(장삼이사들의 삶의 이모저모, 특정주인공 없이 70여 명의 등장으로 다양한 삶의 생태해부학적 음영표출 |
서민의 생활모습을 50개의 절 |
제1절(청계천 빨래터), 제2절(이발소의 소년), 제3절(시골서 온 아이), 제4절(불행한 여인), 제5절(경사), 제6절(몰락), 제7절(민주사의 우울), 제8절(선거와 포목전 주인), 제9절(다사(多事)한 민주사), 제10절(사월 팔일), 제11절(가엾은 사람들), 제12절(소년의 애수), 제13절(딱한 사람들), 제14절(허실(虛實)), 제15절(어느 날 아침), 제16절(방황하는 처녀성(處女性)), 제17절(샘터 문답), 제18절(저녁에 찾아온 손님), 제19절(어머니), 제20절(어느 날의 삽화), 제21절(그들의 생활설계), 제22절(종말 없는 비극), 제23절(장마 풍경), 제24절(창수의 금의환향), 제25절(중산모), 제26절(불운한 파락호), 제27절(여급 하나꼬), 제28절(비 갠 날), 제29절(행복), 제30절(꿈), 제31절(희화(戱畵)), 제32절(오십 원), 제33절(금순의 생활), 제34절(그 날의 감격), 제35절(그들의 일요일), 제36절(구락부의 소년 소녀), 제37절(삼 인), 제38절(다정한 아내), 제39절(관철동집), 제40절(시집살이), 제41절(젊은 녀석들), 제42절(강모(姜某)의 사상), 제43절(흉몽), 제44절(거리), 제45절(민주사의 감상(感傷)), 제46절(근화식당), 제47절(영이의 비애), 제48절(평화), 제49절(손주사와 그의 딸), 제50절(천변풍경) |
주요등장인물 |
재봉이(15-16세 정도의 이발소사환, 손님이 없을 때 창밖 내다보며 청계천변 이발소와 빨래터 골목에서 일어나는 대소사(大小事)를 목격하고 자신기준으로 평가를 하며 은방주인과 민주사가 그의 눈에 주로 비치는 인물) / 창수(재봉이 또래로 시골에서 아버지와 상경해 홀로 돈을 벌려 한약방의 사환으로 복잡한 경성풍경에 충격을 받으나 점차 이해타산적인 인간으로 변화(봉급을 적게 주는 주인을 비판한 아이) / 민 주사(재력 있는 50대 사법서사, 안성집과 취옥 사이를 오가며 주색잡기(酒色雜技)에 골몰하는 배금주의자로 부의회 선거에 낙선하고 마작 놀음에 밤을 새움) / 종로 은방주인(순박한 시골처녀를 서울로 유린해 온 금점꾼 여급에게 돈을 주어 환심을 삼) / 하나꼬(스무 살의 카페여급, 남정네의(손 주사, 은방주인, 강 서방 등) 표적) / 이쁜이(천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했으나 남편의 횡포로 친정으로 쫓겨나나 점룡이가 짝사랑) / 금순이(순박한 시골색시. 가족들과 헤어져 기미꼬와 하나꼬와 함께 살아감) / 만돌 어멈(포악한 남편과 사는 행랑어멈) / 신전 주인, 이발사, 포목전 주인, 한약국과 양약국 주인, 부의회 의원, 사법 서사, 카페 여급, 기생, 미장이, 첩, 여관 주인, 당구장 보이 등 |
작은 충격반전 : 창수의 변화(시골에서 상경해 두려움에서 어느새 경성인이 됨) | |
형식적 특징 |
피카레스크구성, 카메라아이기법 |
청계천변 광교를 중심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우나 오순도순 갈등 속에 운명적으로 살아가는 여러 인물들이 빨래터, 이발소, 한약국, 이쁜이네 집, 포목점, 행랑집, 카페 등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유형의 일상사들이 작가에 의해 세밀히 관찰 | |
핵심 정리 |
갈래(장편의 세태소설) / 배경(시간 : 1930년대 어느 해 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 공간(청계천변을 중심으로 한 경성)) / 성격(모더니즘 계열) / 의의(세태소설과 경아리(서울) 문학의 대표작) /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 표현특징(서민의 생활모습을 50개의 절로 나누어 서술) / 제재(청계천변을 중심으로 한 서민들의 일상사) / 주제(1930년대 경성 중하층민의 삶과 애환) |
과제 |
공간·배경적 기능(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빨래터(여자들이 모여 빨래하며 수다)와 이발소(남자들이 모여 온갖 농담을 주고받아 마을의 온갖 대소사에 관한 정보교환장소이자 가장 평범한 일상모습을 알게 함) / 서술초점이 여러 인물에 걸친 서술양식(주인공의 부재 분산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생활편린에 대한 연결고리 없이 객관적인 재생, 여러 등장인물의 행동을 통한 파노라마식 일상묘사, 일정한 사건결여로 구성력 미확보) / 여러 사건 동시발생의 특징(순차적 시간구조로 드러난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거부, 상이한 장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인과관계 없이 동시에 병치시켜 공간다면성 확보) / 작품에서 나오는 실제위치와 인물 확인 |
c chae soo myung 13
이는 1930년대 모더니즘문학의 대표적인 문학작품다운 청계천변(광교)을 중심으로 서민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걸작이다.
4) 세 작품 종합평가
구보는 구인회가담 후 반계몽, 반계급주의 입장에서 세태풍속을 묘사한 초기소설답게 특별한 사건을 중심으로 갈등과 인과적(因果的)인 사건전개약화로 작중인물의 내면세계에 대한 섬세한 반응을 묘사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즉, 전위적인 인상기법을 주나 소재의 구체성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자연주의수법으로 의식의 열패감으로 식민지시대 막다른 문학형식을 주었다.
구분 |
<피로>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천변풍경> | |
발표 |
여명제1권,1933년 5월 / 부제(어느 반일(半日)의 기록(記錄)) / 단편소설 |
조선중앙일보,1934.8.1-9.1 9) / 삽화(이상이 화융’이란 필명) / 중편소설 |
조광,1936.8.~1937.9) / 장정(동생 박문원2) / 장편소설 | |
시대배경 |
일제식민지 문화통치시대(독립투쟁·친일·무관파), 빈부격차 심각) / 시대상황 : 민족말살기(1931-1945:병참기지화, 민족말살, 약탈), 내선일체와 일선동조론(황국신민화정책), 신사참배->조선어말살, 창씨개명, 문화재 약탈, 징용, 위안부 등) /친일파(절대대다수 문인들은 개인적인 부귀영화(권세, 자유, 주색), 선량한 소시민들에게 일제천황충성, 징용·위안부주장 | |||
이인직(친일문학 선두자), 춘원(친일 극렬자)) / 친일, 양심이 있는 지식인(무기력증 : 고민, 갈등, 배회 방랑, 유랑, 낙향) | ||||
경성 : 북촌(귀족 부유층), 남촌(남산골샌님 : 가난한 선비), 중인(4대문 안 변두리), 서민(청개천변 판자집 토굴, 대부분 부채로 자주 자살 발생)) / 생활환경 : 천변, 화신백화점, YMCA, 낙랑다방, 제비다방, 조계사, 학교(정독도서관), 종로경찰서(포도청 의금부), 시청, 광화문, 덕수궁, 총독부, 조선은행, 숭례문, 경성역 | ||||
경성 락낭다방 |
경성 중심가(종로, 중구) / 전차 |
경성 청계천변(광교) | ||
시간 |
상대적 |
1930년대(1933-1936) | ||
어느 날 반나절(초미협적) |
하루(미협적) |
1년(1936년 2월 초부터 다음해 정월까지) | ||
공간 |
경성 다방->버스안(노량진)->다방)) / 초미협적 |
다방 / 현실적(경성의 하루), 의식적(첫사랑을 시작한 어린소년기∼동경 유학시절) |
청계천(광교):빨래터(여성공간),이발소(남성 공간)간 2분법 / 미협적 | |
낙랑펠러다방(1930년대 지식인층의 집합소, 도회의 세련된 취미를 즐기던 모더니스트들이 즐겨 찾은 곳(문우들과 매일 만나는 장소) |
광교(서민적 아낙들이 모였던 청계천 1가 빨래터) | |||
문명 |
신문명(유학 지식인들의 사교장소) |
경성역(암울한 인물풍경)과신문명(카페) 간의 격차 |
서민들(소외계층들) | |
시점 |
1인칭 주인공 |
3인칭 전지적 작가 | ||
주인공 |
‘나’(자각, 박태원) |
구보(작가 박태원) |
재봉이(관찰자) / 70여명(열패의식의 영세민) | |
표현특성 |
반나절 여로형식 |
하루 여로형식(원점회귀), 무기력한 지식인의 심리묘사와 관찰의 조화, 만연체문장 |
서민생활모습을 50개의 절로 나누어 서술, 카메라 아이기법 | |
갈래 |
체험적 단편소설 |
사색체험 관찰적 중편소설 |
관찰적 장편소설 | |
구성 |
추보식 |
기존소설구성방식 파기한 작중화자 관찰과 심리로 서술 |
이발소 소년이 천변 빨래터주변 지켜본 일상사 | |
제재 |
소설가의 일상사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생활 |
청계천변을 중심으로 한 서민들의 일상사 | |
주제 |
식민지상황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람들의 현실적 피로 |
무기력한 지식인의 외로움·이상·현실갈등(일상사에서 느낀 고독과 자아의식) |
경성 중하층민(청계천 주변)의 삶과 애환 | |
메세지 |
배회(피로감 : 일제 식미지상 간접표현) |
방황과 미안감(무기력한 지식인의, 모친에 미안감) |
서민들이 생활상 | |
특성 |
자전적 / 지식인의 무기력 |
타인에 의한 관찰자적 입장 |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연계 |
관찰방법을 장편 <천변풍경>에게 혼재함 연결 | |||
의의 |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에 이어진 교량구실 |
고현학적 창작방법론 |
세태소설과 경아리(경성) 문학의 대표작 | |
공통점 |
배경(일제시대), 공간(경성 중심지), 경향(모더니즘), 인과적(因果的) / 제목의 이슈력에 비해 내용이 지루해 흥미가 떨어짐, 일제 당시 생활모습 표출,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실상을 간접적이라도 다루지 않음 / 모더니즘 심리적 세태소설 | |||
평가 |
자전적(작가의 실제생활 반영)인 작품발표 직후 기존형식(구성전개) 파괴한 새 형식 소설 / 당대(민족수난 항일기) 최고지식 문학인이나 무기력한 자아의식 형상화(일정한 의식기준의 통일된 입장에서 벗어나 부딪히는 단편적 사실로 촉발된 두서없는 생각들 |
알제강점기 문화통치시대에 각계각층 서민들의 애환을 리얼하게 표출 | ||
공간변화(현) |
빌딩화 |
빌딩화, 지하전철화 |
청계천변(도시 현대화) | |
당시 경성 중심거리(본 작품 공간적 배경)는 일부(조명, 한옥(기와, 초가)마을)만 제외하고는 띄엄띄엄 르네상스식(일제 설계)풍경 | ||||
이미 75여년이 지났기에 당시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 / 전통문화차원에서 일부 복원 필요(문학적 관광의 문화사적인 가치) |
c chae soo myung 14
“내가 쓰고 있는 소설형식은 심경(心境)소설35)이다.”라 자평했듯이 체험적 자전소설이자 일제식민지시절 패배자들의 어려운 생활상을 지켜본 관찰적 소설이다.
이는 영국과 아일랜드관계와 제임스 조이스의 공간 더블린처럼 박태원의 작품공간(경성)은 식민지통치로 인해 지배자(일제)와 피지배자(조선)가 부딪친 공간36)이기에 피폐해진 각종 인간군상의 쇠약하고 누추한 모습을 자기소외로 괴로워 방랑하는 지식인의37) 체험과 관찰자입장을 수사법을 동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당대 모더니즘의 최고논객 최재서 <“천변풍경”과“날개”에 관하야>는“천변풍경은 도회의 일각에 움직이고 있는 세태인정을 그렸고 날개는 고도로 지식화한 소피스트의 주관세계를 그렸다.”,“박씨는 객관적 태도로써 객관을 보았고(리얼리즘 확대) 이씨는 객관적 태도로써 주관을 보았음으로(리얼리즘 심화)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주관을 떠나서 대상을 보고자 했다.”38)고 피력했다.
구 분 |
내 용 | |||||
가치 |
피로 |
배회할수록 피로함(이유 밝히지 않았으나 말미에 암울하고 피곤한 심사가 식민지현실의 보편적 상황에 직결됨을 간접 표현) |
체험관찰자적 수필형식소설 | |||
구보씨의 일일 |
지식인의 자의식을 모더니즘기법 묘사 / 비슷한 주제를 사(私)소설형식에 한자가 많이 섞이고 도표삽입 등 장면 복합 구성 |
역사의식수법(인간내면의 심정소설) | ||||
천변풍경 |
경성의 영세민사회에서 산송장이 되가는 인간의 열패의식(劣敗意識) |
객관적 외부세계 묘사충실39) | ||||
미흡점 |
피로 |
소설로서 플롯(Plot:인물, 주제, 배경, 전개, 문체, 장소 등)이 너무 단순하고 자신의 체험을 기술한 수필형식의 소설 중간성격(기존의 소설형식을 완전히 파괴로 논쟁거리화) |
제목 이슈력에 비해 플롯이 빈약해 지루하고 흥미가 떨어지며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생활 모습을 알 수 있지만 실상을 직접(리얼리티, 처참성 빈약)다루지 않음 | |||
구보씨의 일일 | ||||||
천변풍경 |
등장인물 많아 분산되어 집중력과 갈등전개 및 이슈력 부족 | |||||
종합평가 |
피로 |
식민지 상황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람들의 현실적 피로 | ||||
구보씨의 일일 |
최고지식인이나 무기력한 문학인의 일상사를 진솔하고 자세하게 드러냄 / 단편들( <성탄제>과 <비량> 등)에서 인물의 심리를 면밀하게 탐구하고 장편 <천변풍경>에서 관찰방법과 혼재, 작품변모과정을 이해 | |||||
천변풍경 |
흔히 경아리(“서울 사람을 약고 간사하다.”한 비속어) 문학과 세태소설의 대명사격 / 작가의 문학적 역량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작품(1936년 2월 초부터 다음 해 정월까지 일어난 일, 50개 절, 70여 명 등장, 도시인의 다양한 삶의 양태와 풍속을 사실적으로 제시) | |||||
종합평가 |
제목 이슈성(19:간단명료 탁월) + 시대정신성(18:일제 소시민생활 반영탁월) + 작품 플롯성(12:소설이슈취약하나 실험성 탁월) + 작품표현성(13:체험과 관찰자적인 관계로 보편성) + 작품파급성(20:탁월) = 82(우수) |
각 20점 만점(혼합평가:상대+절대) |
c chae soo myung 15
일제당시 경성의 소시민생활을 소재로 한 심리세태소설의 대표작 <피로(疲勞)>, <소설가 구보씨(仇甫氏)의 일일(一日)>, <천변풍경(川邊風景)>은 최고의 기교작품(문학보다 강력한 영화의 역동성과 오버랩수법 및 몽타주 실험)인지라 춘원 이광수와 월탄 박종화 등도 격찬 했다.
<적멸(寂滅)> |
-> |
<피로(疲勞)> |
->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 |
<천변풍경(川邊風景)> |
-> |
<속 천변풍경> |
-> |
<이발소>40) |
조광, 1939 | ||||||||||
동아일보 ,1930 |
부제(어느 반일(半日)의 기록(記錄)) /여명제1권, 193 3.5 / 단편소설 |
조선중앙일보, 1934.8.1 -9.19 /삽화(이상이 화융’이란 필명) / 중편 |
조광,1936 .8~1937.9/장정(동생 박문원) / 장편 |
매신사진순보 294호,194 2.8.11 | ||||||
무기력 비친 모습(자전적) |
무기력 지식인 모습(자전적) |
관찰방법 혼재 |
미적 자의식 |
성문밖 한가한 공간 |
c chae soo myung 16
이처럼 <피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이 경성중심가인 성문안 근대화물결의 작동공간이라면 <이발소>는 동서문 밖(성문 밖)이라는 점에서 근대화물결의 작동 외 한가한 공간 대비로 보아 식민지적인 근대화물결에 갈등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친일 3작품과 월북 후 김일성정권에의 충성맹세(?)를 통한 작품 활동은 큰 오점으로 남는다.
5. 구보(仇甫)작품흐름과 계승발전방안
1) 구보(仇甫)의 작품세계 계승발전
월북작가들의 작품 해금조치41) 후, 되살아 재평가 되고 있으나 지나치게 감성적(맹목적 극찬과 극비난의 양분화)이다.
우선, 지적과 예술적 감각아래 영화를 좋아했던 구보의 문학성을 가족42)이 계승·발전되고 있으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몇몇 작가들에 의해 패러디되었다.
작가 |
박태원 |
주인석 |
최인훈 |
제목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검은 상처의 불루스> 부제-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발표 |
조선중앙일보 / 19 34.8.1-9.19 / 삽화(화융:이상 필명) |
문학정신 / 1992 |
문학과 지성사 / 2009.3.31 |
-> 56년 |
->17년(75년) | ||
공통점 |
소설가의 글쓰기에 대한 자아 의식적 반성, 각 작가들이 처한 시대배경은 다르나 작가가 살고 있는 당대현실(정치, 문화적 풍토)에 대해 반성적 태도, 문학적 기법(작가개성에 따라 약간 차이나나 주로 "의식의 흐름" 수법, 소설가의 내면을 보여주고 이로써 외부적 현실을 반영) | ||
차이점(주제) |
1930년대 식민지하 소외된 26세의 지식인 구보씨(일제에 의해 기형적으로 급격한 도시화는 진정한 근대화가 아닌 일제필요)가 경성시내를 전차차고 거닐며(종로, 경성역 대합실) 단편 스케치 |
1980년대 이데올로기대립이 무너지며 소설과 소설가의 존재에 대한 반성(왜곡된 역사체험을 한 소설가의 고민) |
1960년대의 사회문화적 풍토에서 소외된 지식인(구보씨 하루 일과를 통한 소설쓰기 성찰)의 고뇌 / 박태원작품보다 더 관념적이고 더 지적인 태도 / 갈래(패러디 연작소설), 특징(의식의 흐름) |
시간(1980년대 말-90년대 초) / 공간(서울:집->거리->버스 안->결혼식장->피로연장->거리->서대문형무소->거리->집) / 인물(구보씨(28세, 80년대 대학시절 국가보안법위반으로 3년 수형생활 후 소설 쓰려함), H(구보씨 친구로 시인지망생) | |||
기타 |
박태원의 작품이후(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고학력시대에 실직(청년, 명퇴, 사업실패, 가족해체 등)에 따른 경제적 정신적 고통)에 관한 작품들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 | ||
관련 문학 |
박태원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깊은샘,1989)> / 수필집 <구보가 아직 박태원일 때(깊은샘, 2005)> / 조이담,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바람구두, 2005)> |
c chae soo myung 17
특히, 주인석 작 <검은 상처의 불루스(부제-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문학정신,19
92)>을, 김종희 작 <박태원>(한길사,2008),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문학과지성사,2009)이 각각 출간, 시대요청에 따라 계승발전되고 있다.
1930,45년대 |
-> |
1945-50년대 |
-> |
1960,70년대 |
-> |
1980-1993년 |
-> |
1994-2007년 |
-> |
2008- |
일제강점기(식민지 / 청계천 참상) |
산업화시대(유신시대, 한강기적(도농 계층격차) / 청계천 공사) |
개방화 민주화시대(신군부, 지역갈등 /청계천 공포) |
혼란시대(IMF사태, 문민정부 열림 / 청계천 복원) |
빈익빈 부익부 사회갈등, 지도층 문제 | ||||||
해방, 민족상잔비 극(극빈최악 / 청계천 비극) | ||||||||||
김동인 작 |
- |
- |
주인석 작 |
- |
김종희, 최인훈 작 |
c chae soo myung 18
이처럼 현대소설사에서 하나의 소설테마가 성공적인 패러디의 계보를 형성한 것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유일하여43) 그 영향력과 파급효과를 짐작케 해 앞으로 패러디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더불어 문학인으로 드물게 구보학회가 발족되어 사업회 및 청계천문화관과 함께 구보정신을 계승발전 시키기 위한 종합·과학적이며 체계·효율성이 필요하다.
구 분 |
내 용 | ||
구보 박태원 탄생 100주년 행사 |
기념전 |
구보 박태원 탄생 100주년 '구보(仇甫)따라 걷기' 행사(2009.10.10 : 숨결의 발자취 |
구보학회와 청계천문화관 공동 |
구보 박태원전 |
‘청계천에서 만난 사람, 구보 박태원’전(청계천문화회관 기획전시실) | ||
친필엽서, 결혼식 방명록, 친필엽서와 인지도장, 부친 둥근 대모테안경, 재떨이, 서랍장(원고지 보관함), 책장 등 20여 점 / 남한과 북한에서 쓴 문학작품 등 100여 점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초판본, 연재잡지(조광, 신시대, 소학생 등), 이상을 모델로 쓴 <애욕>과 부친이 직접삽화를 그린 신문(반년간이 실림), 결혼식 방명록44) | |||
연극<깃븐우리절믄날> |
두산아트센터(Space111(2010.12.2-31), 서울 종로5가, 연출 성웅기):창작자육성 프로그램 네 번째 작품 <소설가 구보씨의 1일> 공연) / 소설 속 문장과 영상전달과 매체를 통해 입체적이고 흥미롭게 재구성해 극찬 | ||
기타(학회,가족) |
구보학회(발족, 학술대회) / 가족:박재영(구보의 차남, 국내 저작권자, 구보탄생 100주년기념 사업회 부회장, 경기 용인 거주), 장남 재영은 미국거주 |
출처 :기존자료수집 정리도표화
이처럼 구보 박태원 문학정신 계승발전을 위해 학술연구를 통한 재평가(의식과 작품세계 세미나 토론대회(남복), 대학(원)생 논문현상 모집), 문학(문예대회, 구보문학상(학술, 작품) 제정), 기념(구보 문학비(광교근처)와 기념관 건립), 이벤트(문학답사 걷기, 천변(청계천)축제), 확대(당시상황 복원(모형화) 문화관광화(서울시, 종로·중구청 협력)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작품성이 탁월해도 민족이 암울한 시기에 지식인으로서 양심을 버리고 친일 세 작품과 사상적 혼란기의 월북해 충성맹세(?)로 작품활동하다 사망 후 애국렬사능 안장은 현재로서 씻을 수 없는 옥에 티로 후배문인들에게 교훈을 준다.
6. 맺는 말
이상에서 1930년대 중반, 필명 구보(丘甫, 仇甫, 九甫)·몽보(夢甫)다운 문학작품을 토해냈고 넓은 의미에서 구보다운 인생을 살았던 박태원의 대표작이자 경성을 중심으로 한 작품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는 조선후기, 최고 권력층들의 내적갈등으로 동북아정세에 대처하지 못한 결과 치욕적인 일제 문화통치기에 무기력한 지식인으로서 경성 한복판을 방황한 자신의 자각과 천변(광교)에서 서민층 관찰을 표현한 작품연구결과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구분 |
내 용 |
요약 |
단편 <피로(疲勞)>는 25살의 당대 최고지식인이자 소설가 구보가 경성 낙랑다방에서 버스타고 노량진까지 갔다 돌아온 암울하고 피곤한 식민지시대의 무기력한 반나절의 체험적 생활상을 고백적인 모습 |
다음해 중편 <소설가 구보씨(仇甫氏)의 일일(一日)>은 노총각 실업자 구보가 경성복판 자택(다동)을 나서 귀가까지 의식세계와 생활상을 반영한 자전소설답게 그 서술양식이 독특 / 짧은 시·공간은 경성에서의 하루, 의식공간은 첫사랑이 시작인 소년기에서 동경유학시절까지 확대되어 플롯(plot)중심의 서사구조가 취약하나 과거회상과 의식추이강화로 지각과 의식유동이 순조로워 전통소설관념(사건, 행위, 갈등)을 파괴 | |
장편 <천변풍경(川邊風景)>은 1년간 청계천변의 70여명에 이르는 사람들 일상의 관찰했는데 식민지 경성의 도시공간은 근대를 맞이한 이들에게 신생존원리와 가치관, 금전감각을 요구하는 곳이자 기층민중들의 생활과 고통묘사 등 부르주아대변을 풍자 | |
종합평가 |
작품 : 장점(공통분모는 일제 1930년대 중반, 경성의 중·하민 층에 대한 관찰자적 문체, 실험적 표현기교, 시정신변의 속물과 풍속세태를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한 풍속소설이자 사회참여 비판적 고발성이 강한 세태소설이라는 점, 정치개념인 이데올로기보다 리얼리즘확대, 서사성과 사건주의의 전통소설파괴에 모더니즘기법강도를 약화시켜 새방향을 모색한 신소설방식(초기소설로 기법과 주제 등에서 모더니즘소설문체, 표현기교의 실험성, 시정신변의 속물과 풍속세태를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한 세태소설 문장자체의 독자적 예술성을 보임)으로 논쟁거리, 인물 내면적 의식묘사 등을 중시한 실험정신이 돋보여 이상(李箱)과 함께 1930년대 모더니즘기교작가답게 단순·미묘함이 풍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역량을 발휘 / 취약점(소설의 핵심인 플롯 미흡) |
의식 교훈 : 이육사처럼 간접저항문학도, 춘원처럼 극렬친일분자도 아니나 일제를 미화한 <군국의 어머니>(1942) 외 두 편의 소극협력 친일, 6.25때 월북해 종군활동, 숙청시 구제되어 충성맹세 후 작품 활동하다 사후 애국렬사능 안장(현 이념갈등 미해결 상태)은 구보의 옥에 티 |
c chae soo myung 19
1923년, 시로 등단했으나 1929년 단편소설 <무명지>(동아일보)를 발표하면서 본격저인 소설을 쓰면서 1933년 구인회가입 후부터 일제에 간접저항한 반계몽·반계급주문학입장에서 자전적 <피로(疲勞)>와 세태풍속을 묘사한 <소설가 구보(仇甫)씨의 일일(一日)>, <천변풍경(川邊風景)>등으로 예술파 작가로 지위를 확립하였다.
이는 지구촌이 하나 된 오늘날, 경제적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갈등(극단이기·편리·천민자본주의, 성적주의, 대량실업, 고령화, 빈부격차, 유행중시)에 개방화·자유화물결 및 기술경제전쟁으로 현대적 한국병을 낳았다는 점에서 구보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매우 넓고 깊다.
이런 점에서 본 작품들은 일반적인 소설처럼 등장인물과 사건전개과정 등이 드라마틱하지는 않으나 민족이 암울했던 일제시대 룸펜인텔리겐차가 경성을 투사하고 포착하며 체험한 천태만상의 파노라마 극치를 보여준 수작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더욱 폭넓고 심오한 조사연구와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서울시, 중구)과 협력 하에 보다 더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계승·발전을 위한 문학마케팅의 문화화45) 표본으로서 인프라(infra)형성 하에 핵심역량발휘로 21세기 글로벌 문학 패러다임(Paradigm)46)구축 기회로 삼아 문학융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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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문학에 발표한(2009년 가을·겨울호) 내용을 수정·보완한 평론임을 밝힙니다.
** 문학컨설턴트란 미시적인 문학평론(문학적 해설과 칭찬 평가) 넘어 문학작품에 관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이며 시스템적이고 해부학적인 조사와 분석 및 진단평가(오류 재평가) 그리고 지도(첨삭, 육성, 의식개혁, 정신, 문학적 접근법과 표현법)는 물론 문학 시장환경변화를 분석예측하는 한편 전략전술적 경쟁력강화방안과 신문학이론을 창안하여 문학의 문화화접근에 기여하는 전문가를 말한다.(필자가 창안한 용어)
1) 룸펜(Lumpen) 방랑자·실업자란 의미로 룸펜인텔리겐챠(Lumpen Intelligentsia(독일어))는 지식층의 실업자를 의미한다.
2) 고고학(考古學, archaeology)이란 말에서 따온(古자를 現자로 바꾸어) 용어로 엣(古)것에 대한 연구가 아닌 오늘(現)에 대한 연구(學)(임영천, 앞 연구, p30) / 현대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그 일상생활과 풍속 등 유행의 변천을 조직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탐구 연구하여 현대진상을 규명하려는 학문이다.
3) 분산된 상태의 집단이나 개개가 서로 적응해 통합시킨 에너지 극대화의 총체(시너지 효과란 2+3=5가 아닌 6, 7, 8, 9, 10..... 그 이상의 효과, 시너지역효과란 2+3=5가 아닌 4, 3, 2, 1, 0,-1.....를 말한다.).
4) 부친(박용환(朴容桓))이 경영하던 약방(공애당)자리(현 한국관광공사)로 부친이 그곳에서 사망(다옥정(광교 옆 다동 7번지(수중박골)는 같은 장소인지 아니면 타 장소라면 이사했을 가능성)
5) 현 수동송, 당시 숲이 우거진 작은 골짜기로 추정된다.
6) 1933년 7월 설립(6.17:무교동 오동나무집서 첫 만남), 목적(계급주의와 공리주의문학 배격, 순수문학표방), 주요활동(순수문학확립), 작가 9명(김기림·이효석·이종명·김유영·유치진·조용만·이태준·정지용·이무영) 결성, 얼마 후 이종명·김유영·이효석 탈퇴하고 박태원·이상·박팔양 가입, 유치진·조용만이 탈퇴로 김유정·김환태 가입, 9명 회원유지 / 마르크시즘의 리얼리즘과 기성순수문학론자들의 감상주의에 반발해 근대도시생활체험을 미적으로 형상화, 카프문학침체로 1930년대 모더니즘문학의 중심세력으로 부상(근대도시의 체험과 미적 모더니티), 근대도시 경성의 체험은 이전 세대와 구분된 새로운 감수성의 토대(1930년대 도시에 자본주의 경제가 집중되나 모두에게 근대화된 도시혜택이 돌감이 아닌 소수자본가는 부를 갖으나 절대다수의 하층민들은 궁핍함에 시달려 물질과 돈이 최고의 가치를 갖는 공간에서 도덕적 타락과 가치 혼란 속에 물질우위의 세계에서 지식인들, 특히 예술가들은 고등실업자인 룸펜으로 전락)
7) 김중하(한약국 : 수민제중원 경영)와 이연사 사이의 무남독녀. 숙명여고보 시절 배구선수, 구보 는 고모 박용일(朴容日)와 숙명여고보(4년제) 졸업연극(영어)을 보러갔다가 유창한 영어로 연극하는 것(영어성적 99점)을 보고 반해 중매장이를 통해 청혼했으나 나이 많은 무명소설가였기에 장모(한약국집 부인)가“특정한 직업도 없는 사람에게 무남독녀를 줄수 없다고 안된다.”고 반대, 21회 수석졸업(74 명중 1등 졸업), 도일 유학 부모의 반대로 경성사범학교(현 서울사대) 연수과 졸업(1931), 충북 진천국민학교 교사(1933), 전차에서 만났으나 아는 척 하지 않고 양산형태를 보고 아직 미혼녀인 즐 안고 청혼의 편지를 보내 양가허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8.1-9.19, 조선중앙일보에 연재), 다옥정에서 구식으로 결혼(19.27)했다.
8) 해방 다음날(8.16)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소장파 핵심인물(임화와 김남천 등)으로 조직, 조선문학건설본부는 비슷한 성격의 다른 장르 예술인 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결성, 추진력을 발휘, 조선문화건설주앙협의회 조직(8.18)한 뒤 타 분야단체를 산하단체로 규합(이태준, 이원조, 엄흥섭 등)
9) 태평양전쟁 종결 후 좌익계열의 문학단체가 온건한 조선문학건설본부와 강경한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앵이 통합확정(1945.12.6), 5대강령(일본제국주의 잔재소탕, 봉건주의 잔재청산, 국수주의의 배격, 진보적 민족문화의 건설, 조선문학의 국제문학과의 제휴)
10) 국가보안법의 운용책의 하나로 법에 저촉된 자 또는 전향자로 분류된 인사들을 이 단체에 빠짐없이 가입하도록 규정, 회유와 통제, 1949년 말까지 가입자 약 30만 명(서울 1만 9,800명), 1949~50년에 좌익세력와해 결정적 역할, 6·25전쟁으로“일부 위장전향자들과 북한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세력을 뿌리 뽑는다.”는 정부방침으로 무차별 검속과 즉결처분 실시(미공개)
11) 정운복(의친왕 명명을 꾀한 대동단사건에 연루된 언론인)의 아들로 한성부에서 출생(1909.9.12) , 사·심리소설 위주로 약 40여 편 발표, 절친한 문우 이상을 짝사랑했던 권영희(못 잊어 정인택 음독자살미수사건)와 결혼, 6.25전쟁 중 가족과 함께 월북(일제강점기부터 이념성과 먼 작품 집필, 광복 후 보도연맹가입기록 뿐 문단활동 하지 않아 월북경위 미확인) 후 얼마 후 폐병으로 병사(1952.8.4)전 구보에게 유언(“처(권영희)자를 돌봐 달라.”) 후 이들 간에 재혼했다.(1956)
12) 이상이 동거녀이자 카페운영자 금홍이 가출하자 다시 카페운영 시 여급 / 이상과 사귀다 자살소동을 일으킨 정인택에게 양보로 결혼, 월북 후 그가 사망하자 구보와 재혼, 구보 문학활동 보살펴줌
13) 종전 후 미군정기 서울에서 좌익계열 문학단체가 양분(온건한 조선문학건설본부와 강경파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되면서 통합움직임, 조선문학가동맹은 두 단체가 통합성명(1945.12.6) 가칭 조선문학동맹 결성, 조선문학자대회(1946.2.8-9)를 통해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확정(5대 강령 : 일본제국주의 잔재소탕, 봉건주의 잔재의 청산, 국수주의의 배격, 진보적 민족문화의 건설, 조선문학의 국제문학과 제휴), 전국 각 도 지부 확대하자 미군정은 좌익활동 탄압강화로 위축, 방향전환으로 대중화'의 기치에 1947년 8월 이후 탄압강화로 회관폐쇄 지도급 다수는 검거피해 월북하자 소강상태, 이듬해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운동과 연관해 구국문학운동, 남한에 단독정부수립으로 와해
14) 동생 박문원·여동생 경원(숙명여고보 졸 좌익운동참여) 장녀 설영(雪英)도 월북해 평양서 재회했다.(1956년 결혼)
15) 유년기부터 영향을 받은 숙부 박용남(관립경성의학교 제2회 졸, 양의사)과 고모 박용일(이화여학교 영어교사)이 문학성을 알고 허영숙(춘원 재혼녀)과 친분으로 춘원을 찾아가 부탁함으로서 문학수업을 받았다.
16) 1889년 경기 양주 출생, 한성관립학교 수학, 불교진흥회월보의 편집책임자로 불교소설과 비평영역에서 활동으로 한국신문학의 개척, 1930년대 중국문학번역문학가로 활동, 1938년 사망하였다.
17) 전위(아방가르드)란 전투 시 선두에 서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란 뜻이 변해 러시아혁명 전야 계급투쟁의 선봉 목적 의식적의 일관된 집단으로 정당과 그 당원지칭이 예술에 전용되어 미지의 문제와 대결해 혁명적인 예술경향과 그 운동
18) 거시의미(교회의 권위와 봉건성을 비판하며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고 근대화지향), 미시의미(기계문명과 도회감각을 중시해 현대풍추구), 예술상은 1920년대 여러 운동(표현미래 다다미즘·미래주의·구성주의운동 및 형식주의(포멀리즘) 등의 감각·추상·초현실적인 경향)으로 오늘날 기성예술의 반항과 혁명정신이 대중사회의 다양한 풍속의 확산된 전위예술은 특정유파나 운동을 넘어 첨단적 경향의 총칭 / 유럽과 미국에서 여러 운동을 통틀어 모던아트(modern art:19세기 예술의 근간인 리얼리즘(사실주의)에 대한 반항운동으로 1차 대전 후 일어난 전위예술운동의 한 형태)
19) 처음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시작한 다다(dada : 불어로 어린이들이 타고 노는 목마(木馬)를 가리키는 말이나 다다이즘의 본질에 뿌리를 둔‘무의미함의 의미’를 암시)는 조형예술을 넘어 문학·음악의 영역까지 포함)
20) 박명진, 1930년대 경성의 시청각 환경과 극장문화, 한국극예술연구, P61-91 요약정리
21) 33번 타종(조선시대:1935), 오경(인(寅)時:새벽4시)에“하늘이 열린다.”고 여겨 33천(天(제석천):불교수호신)을 상징하는 33번을 타종(파루(罷漏:하늘의 삼심삼천에게 하루의 국태민안(國泰民安) 무병장수를 기원)해 통행금지 해제), 저녁 유(酉(이경, 인정):밤10)시에 하늘의 별자리(우주의 일월성신) 28수(宿)를 상징해 28번 타종(밤의 안녕(식)기원) 해 통행금지 알림)(불교우주관 28계 33천 신앙) / 시계가 없던 시절, 태양을 보고 시간흐름을 짐작, 하루 24시간(각 2시간으로 구분:자시(子時:11-1시), 축시(丑時:1-3시), 인시(寅時: 3-5시), 묘시(卯時:5-7시), 진시(辰時:7-9시), 사시(巳時:9-11시), 오시(午時:11-1시, 정오는 오시의 중간인 12시), 미시(未時:1-3시), 신시(申時:3-5시), 유시(酉時:5-7시), 술시(戌時:7-9시), 해시(亥時:9-11시)) / 오경 (五更:고대중국의 시각제도, 하룻밤을 다섯시각으로 구분, 경(更)은 야경(夜警)을 하는 사람이 교대하는 것(오후 7시 또는 8시부터 순차적으로 2시간씩을 단위로 초경(初更;甲夜·一鼓)·이경(乙夜·二鼓)·삼경(丙夜·三鼓)·사경(丁夜·四鼓)·오경(戊夜·五鼓) 등으로 구분 / 원래 종은 파손되어 박물관 전시, 현재 종은 1895년 시민성금 / 사대문(동(흥인문(興仁門:동대문), 서(돈의문(敦義門:서대문), 남(숭례문(崇禮門:남대문), 북(숙청문(肅淸門:북대문))과 사소문(동북(혜화문(惠化門:동소문), 서남(소의문(昭義門:서소문), 남동(광희문(光熙門:남소문), 북서(창의문(彰義門:북소문))
22) 본명 김해경(金海卿)은 경성출생(1910.8.20), 보성고보 거쳐 경성고공 건축과 졸(수학천재), 양아버지 숙부소개로 총독부 건축기수 근무, 처녀작(1931) 시〈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파편의 경치〉를 <조선과 건축>, 1932년 동지에 시〈건축무한 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발표('이상(李箱)' 필명, 공사장 인부들이 이름을 잘 모르고 '리상(李씨)', 학창시절 별명), 객혈(폐병)로 건축기수직 사임(1933.3) 후 요양차 곱추화가 구본웅과 황해도 백천온천에 갔다 18살의 기생 금홍(이상의 소설 <날개>(1936,조광)에 나오는 연심이(금홍 실제 이름), 종로통(피맛골(조선 때 종로를 행차하는 양반을 피하려 간난한 선비나 서민들이 다니던 좁은 골목길), 1가)에 제비다방(백부 집문서 저당:1933.7) 경영마담, 자신은 골방에 박혀 거울장난 치며 사랑하다 친구들과 잠을 자게 해놓고(간혹 금홍에게 구타당헤 천변 건너 박태원 집에 가서 잠) 질투로 친구들과 싸운 적도 있는 괴상한 성격 / 박태원이 이상이 운영하던 제비다방에 드나듬, 구인회 가입케 했고 오랫동안 친밀하게 지냄. 1934년 시 <오감도(烏瞰圖)>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시작(난해하다는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중단), 황금정(을지 1,2가 사이) 근처에서 변동림이 신혼살림하게 된 허술하고 어두침침한 이상셋집으로 페결핵 앓게 됨 / 폐결핵 갱생하려 도쿄행을 결행했다 경찰체포(불온사상혐의) 후 병보석 석방 도쿄대부속병원에서 병사(1937.4.17)
23) 호 상허(常虛)·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은 철원출생(1904.11.4)으로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중퇴, 조치대학 예과에서 공부, 귀국 후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중외일보·조선중앙일보 기자, 구인회 수장(1933), 1930년 말 문장지 소설 추천위원, 작품은 현실과는 무관한 인물이나 토착적인 생활의 단면을 서정성, 문학의 자율성과 언어의 정련(精練)을 강조해 작품완성까지 몇 번을 되풀이해 고침(소설의 기법적 완숙과 예술적 가치를 높인 것으로 평가), 해방 후 임화·김남천 등과 조선문학건설본부 조직활동하다 월북(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 국가학위수여위원회 문학분과 심사위원 등 역임), 1947년 방소문화사절단으로 소련기행, 6·25 때 북한종군작가로 참가, 남조선노동당 인물들과 숙청(1953) 시 위기모면, 미군에 적개심, 1955년 소련파가 숙청될 때 가혹한 비판을 받고 숙청. 자강도 산간 협동농장에서 막노동을 하다 1960년대 초에 병사
24) 종로 44번지, 공평동 제일은행 본점 자리(종로 49번지)와 광화문방향으로 몇 개 건물을 두고 떨어져 있음
25) 본명 인식(仁植)은 서울 출생(1908.10.13), 1926년 카프가입 후 중추적 역할, 8·15광복 후 조선문학건설본부와 그 후신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에 주도적 참여 후 월북 / 1953년 남로당 숙청 (미제스파이라는 죄목:1953.8.6)
26) 일본인 화가 후지타 쓰구하루((藤田嗣治, Leonard Tsuguhara Foujita, 1886~1968:일본인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나 정작 자국에서는 제대로 평가 받은 적이 없음)는 1913년 파리에 건너가 1차 대전을 이방인들(모딜리아니, 수틴, 파스킨 등)과 지낸 에꼴 드 파리(Ecole de Paris)의 화가, 명문가문의 아들이나 대전으로 송금이 끊겨 궁핍에 시달려야만 했다. 구보가 오카빠머리(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모양의 일본어)를 시작한 것은“가난했던 시절, 이발소에 갈 돈이 없어서 앞머리가 눈까지 내려오는 게 귀찮았거든요. 그래서 머리를 잘라 앞이 보이게끔 창구를 연 것입니다.-(중략)-1931년 도쿄에 있던 구보가“이마위에다 가즈런히 추려 가지고 한일자로 짜른 머리”(박태원, <여백을 위한 잡답> 1939)를 보고 사람들은“그가 후지타를 흉내 냈다.”고 말했다. 이에 구보는“정작 기르고 보니나의 머리는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나의 생각대로‘슬적 뒤로’넘어 가거나, 그래 주지는 않았다.-(중략)-그러나 약간 량의 포마드쯤이 능히 나의 흥분 할대로 흥분한 머리털을 위무할 도리는 없는 것이다. 그래 나는 취침 전에 반드시 머리네 기름을 바르고 빗질을 하고 그위에 수건을 싀워 잔뜩 머리를 졸라메고서 잤다. 며칠 후에는 귀찮아져서 앞머리를 일자로 잘라버리기로 했다.-(중략)- / 구보의 오카빠머리는 도쿄에 있을 때보다 경성에서 더 이질적이었기에 욕설(“악취미”,“괴팍”,“자가선전”등)을 들으면서도 10년 정도(1940년대 그 머리모양 포기) 고집한지라 그의 이름이 알려져 머리도 유명해졌으니 자신만의 예술을 확립하려는 의지로 고생과 노력 끝에 성공한 파리의 이방인 후지타에게 여러모로 공감한 것이
27) <싸워라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북쪽 문학신문, 1961년 / 최혜실(2002년 당시 KAIST 교수) 입수)은 분단의 아품과 투쟁(고단할 삶, 남한정권 도전)을 보여 너무 안타깝다. / -(전략)-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아비는 지금 무한한 감격과 흥분 속에 떨리는 가슴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여 펜을 잡아 이 글을 쓴다.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국토가 양단되고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진지 이미 15년이 되는구나. 조국의 비운이, 민족의 불행이 너희들과 이 아비 사이를 갈라놓아 내가 암흑의 땅 남조선에다 너희들을 두어둔 체 이곳 공화국 북반부로 들어 온지도 어언 10년이 되었다. 어디 이름들이나 한 번 불러 보자. 소영이, 일영이, 재영이, 은영이, 내 그지없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소영이는 올해 스물 넷, 혹은 벌써 시집을 갔을 지도 모를 나이, 일영이는 스물 둘, 재영이는 갓 스물, 내가 집을 떠 날 때 네 살이었던 은영이는 너도 이제는 열네 살, 몰라보게 의젓한 계집아이가 되었겠구나........ / 여기서 남한(남조선)을‘암흑의 땅’으로까지 극렬하게 표현한 것은 북한체제 눈치와 충성습관에서 기인한 것으로 오직 생존을 위한 고뇌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28)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이탈리아 테너가수(18732.25나폴리 출생, 1891년부터 롬바르디에게서 성악을 배워 1894년 카세르타에서 파우스트를 노래하여 데뷔. 1902년 모나코의 몬테카를로에서 푸치니 작곡의 <라보엠>을 소프라노가수 멜바와 공연성공,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리골레토>공연성공 후 세계적인 테너 가수로서 명성. -1921.8.2))의 엘레지(elegie:슬픈 노래 악곡)를 들으며 미완성한 작품에 대해 생각하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되풀어 더듬어봄
29) 장곡천정(長谷川町:현 소공동) 초입(현 프라자호텔) / 오픈(1931) 2칭 화실, 1층(다방귀족적 폐쇄적 고답적 고급다방), 구본웅 변동우(구본웅 계모 이복동생), 근처 우고당(우(友)고(古)당(堂) 구본웅 대동 매주 금요일 명곡감상회 / 삼천리(1933.10) 기사에 의하면“낙랑파라는 1931년에 개업, 주인은 이순석(동경 우에노미술학교 도안과를 졸), 낙랑파라의 이름은 강서(江西) 고구려 문화의 정화(精華)를 따다가 관사(冠辭)를 붙여 만들었, 2층 건물로 아래층은 끽다점, 위층은 아틀리에로 사용하였다. 입구에는 파초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슈베르트와 같은 예술가의 사진과 영화배우의 사진, 그리고 뎃생을 걸어 놓았다. 화가, 음악가, 문인들이 많이 모였고 일본촌과 가까워 일본인들도 많이 드나들었으며 맛있는 차와 케이크 등을 팔았다. 매주 금요일에는 빅타 레코드의 신곡이 발표되었고, 명곡 연주회도 매주 두어 번 열렸다.‘괴테의 밤’과 같은 모임과 전람회도 열었다.9이후 김연실에게 인수인계를 하면서 상호를 낙랑으로 변경하였다. 김연실이 맡아 경영한 낙랑은 1940년까지 이어짐, 김연실이 마담이 된 후 예술인들의 안식처이자 창작의 장소로 자리 잡아 특히 문예파들의 이용잦음) / 낙랑의 주 음악은 세레나데, 스코틀랜드, 스페인 무용곡 등 / 기존의 다방이 적자를 면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거의 처음으로 수지맞는 경영을 하였는데 이 이유를 청색지에 실린 <동경다방성쇠기>에서 확인("성공에 주인(主因)을 생각해보면 장소를 대담한 곳에 안친 것이 의외로 성공하야 내지인 손을 많이 끌 수 있었고 또한 종로근방 차점에 가장 큰 폐단이었던 기생이나 주정꾼 출입이 태무(殆無)하야 다객의 취미에 적당한 기분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 등에 있지 않엇든가 한다. 금요일마다 명고신보를 돌리고 어늬 해엔가는 노문호「트르게네프」백년제를 거행하야 유명하였다.", "북촌하고 떠러진 이 아스팔드 길 엽헤 위치를 정하는 것이 성공하겟느냐 엇저겟느냐고 퍽도 의구하엿스나 경영자의 견식은 결국 탁월하엿든 모양으로 전차의 소음을 피하여 강철과 석재로 다신 양옥의 이 삼림가에 조고마한 쉬임터를 만든 것이 세인의 기호에 마젓섯다." / 1935년 춘풍의 밤을 열고 십오 전씩의 돈을 받아 문예영화 <춘풍(春風)>상영, 1936년 화가 길진섭(吉鎭燮)의 소품전시(한 점당 십 전에서 사십 전의 가격으로 판매), 구본웅의 개인전, 시인들의 시집출판기념회, 경성제대 학생들의 만돌린회 같은 행사 / 낙랑에는 <스크린>같은 외국잡지와 여러 문고를 비치 // 고종황제는 최초로 커피를 마신 한국인, 안토니엣 손탁(러시아공사관 웨베르의 처형)은 독살노이로제에 시달리던 고종황제의 식수발을 들면서 그녀의 권유에 의해 처음 커피를 접한 애호가, 아관파천(俄館播遷)을 통해 커피의 맛에 빠져 환궁 후에 그녀에게 정동에 땅을 마련하여 손탁호텔을 지어선물(커피숍을 겸한 식당은 한국최초의 커피숍(외국문물을 접한 개화파 인사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러일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들어온 마크 트웨인이 들어와 프레스룸으로 사용)), 1938년 문예지 청색지1호에 익명의 노다객이 쓴 <동경다방성쇄기(東京茶房盛衰期)>에 낙랑의 성공 원인발표(주인(主因)을 생각해보면 장소를 대담한 곳에 안친 것이 의외로 성공하야 내지인 손을 많이 끌 수 있었고 종로근방 차점에 가장 큰 폐단이던 기생이나 주정꾼 출입이 태무(殆無)하야 다객의 취미에 적당한 기분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 등에 있지 않았음 / 금요일마다 명고신보를 돌리고 어느 해엔가는 노문호「트르게네프」백년제를 거행하야 유명) / 이후, 수많은 다방들이 탄생하고 명멸하면서 다방전성시대를 열였음 / 인천의 대불(大佛)호텔과 슈트워드호텔, 1914년 조선호텔이 개화기에 귀족다방으로 태동, 커피 살롱 청목당(靑木堂)과 최초의 공식다방인 이견(후다미 1923년)는 일본인에, 카카듀(1927년), 명과(明菓), 멕시코(1929년 )등은 한국인에 의해 각각 오픈
30) 최혜실, 구보 100주년 걷기 행사 해설 일부참고
31) 구보 동생, 일본서 서영화 전공, 미술가동맹 대표, 사회주의계열의 미술평론가, 6.25 전 월북
32) 상이한 장소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여 시공간성을 극대화로 기법이 돋보임
33) 미천한 환경에서 태어나 의지할 사람 없는 주인공(picaro)이 가정(혹은, 사회, 국가)을 떠나 여러 가지 모험을 에피소드형식으로 나열(기본구성에서 벗어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 옴니버스식 구성(영화, 연극, 소설 등에서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독립된 짧은 한편의 이야기를 만든 방법)
34) 처음에는 북광통교(北廣通橋)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라 했으나 이후 대광통교(大廣通橋:광통방(廣通坊)에 있던 큰 다리였)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광통교(廣通橋)<도성지도(都城地圖)>, 대광교(大廣橋) <수선전도(首善全圖)> 등으로 불리었다. 대광통교(大廣通橋):전차통과로 인해 견고하고 넓음). 태종9년(1409) 2월 황화방(皇華坊) 정동(貞洞)에 있던 이 태조(李太祖)의 계비 강씨(繼妃 康氏)의 묘지를 옮기고(현 성북구 정릉(貞陵)) 그 돌을 빼다가 광교를 놓았다.
35) 작가자신의 생활과 심리적인 감각세계를 새로운 문체로 묘사하려는 1인칭소설로 객관세계의 묘사보다 객관화된 주관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하며 삶의 총체성 보다 개별성 실현을 의도하며 객관적 진실보다 주관적 진실을 추구하기 때문에 전통적 소설양식과 차별된다.(서준섭, 한국모더니즘문학연구, 일지사, 1988, p89.91 참조 보완)
36) 임영천,‘박태원의 소설문학에 대하여’, <박태원 안희남 김내성 최인호>, 류재엽 외 공저, 빛나리, 2010, P29.
37) 임영천, 앞 논문, P30.
38) 김종회, 박태원, 한길사, 2008, p131.30) / 최재서, <리얼리즘의 확대와 심화>(1936.10.31-11
.7,조선일보)
39) 김교봉,“박태원의 <천변풍경>연구”, 이선영 편 “1930년대 민족문학 인식”, 한길사, 1990, p400.
40) 소설 속 화자는 동소(혜화)문 밖의 이발소(시설이 빈약, 빨랫비누를 쓰고 수통도 없으며 드라이어도 늘 고장 나 찾고 또 찾고 하는 것이 내 스스로 괴이쩍은 곳, 세 명의 이발사는 점심을 먹을 때마다 내기(제비를 뽑아 일등은 공짜로 먹고, 이등은 제 몫만 내고, 삼등은 일등 몫까지 낸다. 화자는 오늘도 점심내기 제비뽑기를 하며 가벼운 말다툼)를 하는 모습을 이야기로 말미에 "천하는 태평이었다…."(새로질서 수렴하지 않고 태평명랑한 세계추구)라고 했다.(계간지 ‘작가세계`(통권 83호)에 <이발소> 수록)
41) 88서울올림픽 전(1988.7.19) 월북문인 대대적 해금조치로 문학사 복원가능 / 시기(조선문학가동맹(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조선문학건설본부')~6.25 전쟁 / 1차(조선문학건설본부와 연결하면서 주도권 상실 : 이기영, 한설야, 한효, 이동규, 윤기정, 박세영, 안함광, 송영, 안막), 2차(미군정이 공산당을 불법단체로 인정, 탄압한(1947) 후부터 정부수립직전 : 임화, 김남천, 이원조, 오장환, 이태준, 임학수, 박팔양, 김오성, 윤세중, 안희남), 3차(6.25전쟁(납월북):정지용, 김기림, 박태원, 설정식, 이용악, 송완순, 홍효민, 김용호, 이광수, 김동환, 박영희, 김진섭, 김억, 현덕, 윤태웅, 양운한 등)
42) 구보 소설들에서 영화적 수법을 차용했던 예술적 유전자가 후손(차남 박재영(소설가)과 외손자(차녀 박소영의 남편(구보 사위) 봉상균(전 서울산업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사이의 아들(구보 외손자)이 영화 <괴물>의 감독 봉준호))에게 물려주었다
43) 김종회, 박태원, 한길사, 2008, p131.
44) 당대 문인들의 글과 예술가들의 그림 및 시 등의 축하메시지 : 시인 겸 소설가 이상(李箱,)이 절친한 친구였던 소설가 구보(仇甫)의 결혼식 방명록에 남긴 친필 축하 글이 확인(‘이상(以上)’:“結婚(결혼)은 卽(즉) 慢畵(만화)에 틀님 업고/ 慢畵의 實演(실연)에 틀님 업다/ 慢畵實演의 眞摯味(진지미)는/ 또다시 慢畵로-輪廻(윤회)한다.”첫머리에‘面會拒絶 反對’(면회거절 반대)라는‘애교 섞인’주문을 적고 끝에는 1934년 10월 27일이라는 날짜와 이상의‘箱’(상) 자가 적혀 있음), 시인 정지용, 소설가 이태준, 시인 겸 소설가 조벽암, 삽화가 이승만 등 당대 유명문인과 예술인들의 축하 글과 그림
45) 마케팅(Marketing)적 문학(시장환경변화에 부합되면서 타켓고객만족 창출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문학) / 시대정신에 입각한 사상성에 경제적 가치창출로 대중 속에 파고 들어가 문화의 주축을 이룸필자가 창안한 이론(채수명, 문학마케팅 로드맵방법론과 패러다임에 관한 연구, 서울문학, 2008)
46) 어떤 한 시대의 혁신적 지식인(전문가)들의 합의로(또는 개인) 형성된 지식의 구조적(생각의 틀(방식))인 집합체(사람들의 견해나 사고에 영향을 줌)
<참고문헌>
* 단행본
1. 강진호 외, 박태원 소설연구, 깊은샘, 1995.
2. 구보학회, 박태원과 모더니즘, 깊은샘, 2007.
3.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문학과지성사, 1993.
4. ______, 천변풍경, 열림원, 2007.
5. ______, 피로, 디지털교보문고, 2005.
6. 신동욱, 1930년대 한국소설연구, 한샘, 1994.
7. 조용만, 30년대의 문화예술인들, 범양사출판부, 1988.
8. 조이담,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 바람구두, 2005.
* 논문
1. 김영숙, 박태원소설연구, 서울대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8. 2. 김주리, 1930년대 후반 세태소설의 현실재현양상 연구, 서울대대학원 석사논문, 1998. 3. 박영순, 1930년대 세태소설 연구. 이화여대 대학원 박사논문. 1992. 4. 신동한, 박태원론, 월간문학, 1988. 5. 여지영, 1930년대 심리소설의 서사적 정체성 연구(이상의 날개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중심으로), 서강대대학원, 2000. 6. 진용우, 박태원 소설연구(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을 대상으로), 한국교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4.
7. 정현숙, 박태원 문학연구, 이화여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0.
8. 채수명, 친일문인 친일문학에 관한 조사연구, 문학저널, 2010. 9. 한상규,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의 미적 자의식, 한국학보55집, 1989.10. ______, 박태원의 천변풍경에 나타난 창작기술의 양상,11, 박태원의 피로 소설 공간의 이분화 연구, 대학보고서, 2007.
* 기타
1. 두산백과사전.
2. 야후, 네이버, 다음.
3. 인터뷰, 검토 : 박재영(구보 박태원 차남)
첫댓글 강서문단 5호의 평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