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TV에서 방송되는 자연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을 보면 세상을 함께 살고 있는 지구의 생명체들은 서로 형태들은 각양 각색이지만 서로 뿌리가 다르지 않은 비슷한 생존 방법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끝없는 사바나의 들판에서 종족의 생존을 위해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사자나 자연의 먹이사슬 앞에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사자의 사냥을 피해 재빠르게 도망 다녀야 하는 힘없는 아프리카의 톰슨 가젤 모두 자신의 새끼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암컷의 모정과 모진 자연 환경 앞에서도 목숨을 내건 채 가족의 생존을 위해 무리를 보호하는 수컷의 부정은 다르지 않음을 알수 있다.
생긴 모습이나 살아가는 방법은 조금씩 틀리지만 큰틀에서 볼때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생존하는 방식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모두 비슷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종족을 끊임없이 이어나간다.
인간이라는 무리에서 가족의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수컷의 운명을 타고 태어난 나의 삶의 하루도 여느 동물들과 다름없이 늘 가족을 위한 노동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평생의 노동의 업을 타고난 운명이지만 나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약 없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늘 꿈꾼다.
물론 영원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나의 존재 의미를 상실시키겠지만 잠깐이나마 나의 삶에서 느끼는 자유는 단조롭고 반복적인 일상을 새롭게 변화 시키기도 한다.
이런 삶의 자유를 느끼기 위해 히말라야를 찾았던 지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레킹을 마치고나서 나에게 주어진 삶의 스케쥴에 히말라야란 곳은 마지막 방문지가 아닌 첫 시작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리버사이드 롯지에서 경욱과 함께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나 마음 착한 사람들과의 만남도 감동스러웠지만 적지 않은 시간을 자연과 교감하며 걸으면서 느끼는 자유와 삶의 재충전이 나의 인생을 얼마나 변화시키고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 하는지 체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세계경제가 만들어 준 모처럼의 연말 휴가를 맞아 아내에게 조심스레 히말라야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연말 기간에 가족과 떨어져본 적이 없었지만 내가 결정한 이기심 많은 새로운 계획에 이해심 많은 아내는 흔쾌히 허락했다.
나에게 가장 행복한 것은 낳아준 엄마 만큼이나 나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아내가 있는 것이라고 늘 생각했지만...그래도 나를 전적으로 공감해 주는 사랑하는 아내가 고마웠다.
" 엄만 아빠 다녀 오라고 하면 어떡해" " 아빤 연말에 가족을 배신하는 배신자"
이번 트레킹 목적지는 네팔에서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는 랑탕 계곡으로 정했다. 비행기가 접근 하기 어려운 곳이라 버스로 11시간이나 가야 하는 오지라는 점이 내겐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랑탕가는길
늘 함께 산행을 하며 우정을 쌓아 온 인생의 동반자요 친구인 경욱이와 함께 이런 저런 정보를 얻고 트레킹 준비를 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번의 경험이 있었기에 준비도 간단하고 쉬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놓지 않고 꼼꼼하게 이것 저것 챙기다 보니 어느덧 출발일이 다가왔다.
카투만두로 운항하는 대한항공 직항이 오히려 가격이 저렴했지만 1월4일 출근일보다 하루 더 휴가를 내야 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도 비싸고 싱가폴 공항에서 1박을 해야 하는 싱가폴 항공을 이용해야 하는 것 빼고는 만족스럽게 모든 준비를 끝내고 출발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히말라야로
우리 지우는 6학년이 올라 가는데도 산타 할아버지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인천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 카운터에서 아가씨에게 사정해서 비상구 쪽의 자리를 얻었다. 비지니스석 만큼이나 장거리 비행에 편한 자리라 경욱이와 만족스럽게 비행기에 올랐다. 때로는 저자세와 읍소 외교가 더 잘 통하는 것이 우리네 세상인 듯 싶다.
여행의 설렘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비행기는 온통 주황색 불빛으로 물든 싱가폴 상공에 도착해서 어느덧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싱가폴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약 5시간이 걸리는 짧지 않은 거리인데 주로 직항이 없는 유럽 사람들이나 동남아 쪽 승객들이 많은 듯 했다.
아름다운 히말라야를 어머니께 보여 드리고 싶은 젊은 아들의 속 깊은 마음에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그리고 경욱이는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 생각에 둘 다 마음이 뭉클했다.
멀리 비행기에서 히말라야를 볼 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비행기 오른쪽에 앉았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여름철 뭉게구름처럼 잔뜩 낀 구름이 네팔 상공을 가려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의 설레임을 경욱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미끄러지듯이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리자 맨 앞자리에 앉았던 경욱이와 먼저 비자를 받기 위해 부리나케 앞으로 뛰어 나갔다. 공항 출입국에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비자피 받는 사람과 도장찍는 사람, 비자 붙이는 사람들이 조금은 거만한 태도로 우리를 맞았다.
친절한 네팔인의 도움에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카트를 가져다 주며 팁을 달라한다. 적은 돈이었지만 카트를 감추고 돈을 요구하는 행동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다시 뺐다.
생각보다 빠르게 짐을 찾아 밖에 나가니 마중 나오기로 한 민박집 류사장님이 안 보였다. 내가 비행기 도착 일자를 잘못 알려준 건 아닌지 오다가 무슨 사고 났는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카트만두 북쪽 지역은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도 모든 트레킹 코스를 즐길 수 있는 지역이다. 안나프르나 지역이나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가 있는 쿰부지역은 경 비행기를 이용해야 하지만 카트만두 북쪽에 위치한 세 지역인 랑탕, 코사인쿤드 그리고 헬람부는 차량을 이용해서 접근해야 한다.
처음 트레킹을 계획 할 때는 로컬버스를 이용 하려고 계획했지만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들은 길이 매우 위험하니 가능하면 짚차를 전세 내서 가는 것이 여러모로 안전하다는 내용 이었다.
이른 아침 지난 안나프르나 트레킹 때 함께 했던 포터 산토스와 씨앰 그리고 낡은 도요다 랜드 크루저 한대가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낡은 차량에 속 마음속에 실망감이 있었지만 샤브로 베시로 가면서 왜 새 차를 쓸 수 없는지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네팔 최고의 Driver
일년 만에 만난 산토스와 씨앰은 입은 옷이나 순박한 모습들이 변한 것이 없었다.
씨엠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고 표정이 없는 무뚝뚝한 친구지만 마음속엔 정이 많은
우리가 탄 차량은 혼잡한 카트만두 시내를 벗어나 트리슐리 방향으로 달렸다. 카투만두 시
카투만두 시내를 벗어나자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 만큼이나 스릴 있는 절벽 위의 도로가 나타났다. 차 한대도 아슬아슬하게 통과 할 것 같은 길에 트럭이며 버스들이 속도를 내며 질주 하는 모습들을 보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살짝 이라도 미끄러지면 몇 백 미터 절벽으로 굴러 떨어 질것 같은 도로에 안전시설 하나 없고 차량들은 도무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곡예사의 줄타기 처럼 오직 클략션만을 의지한채 질주에 질주를 거듭한다. 집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났다.
어느 작은 마을에 도착 했을 때 마침 힌두 축제로 온 마을이 차량들과 사람들로 넘쳐났다. 동네 청년 여러 사람이 교통경찰 처럼 이리저리 나섰지만 좀처럼 러시아워의 막힌 도로 처럼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한참을 지체했다.
드디어 트레킹의 시작 (샤브로베시- 라마호텔-랑탕-걍진곰파- 샤브로베시 4박5일)
샤브로 베시는 랑탕 트레킹의 기점이 되는 마을로 우리 나라의 작은 시골 마을 정도의 크기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블랙티 한잔에 네팔리 브레드란 빵으로 배를 채웠다. 밀가루 반죽 그대로 난로위에 구운 빵에 네팔 벌꿀이라는 잼 같은 것을 찍어 먹는 음식인데 그나마 다른 음식보다는 먹을 만 했다.
드디어 샤브로베시의 마을을 거쳐 랑탕 계곡으로 5일간의 산행을 위해 드디어 출발.
우리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놀 것이 없어 튜브를 뺀 자전거 바퀴로 굴렁쇠를 가지고 놀았는데...
샤브로베시에서 하루 거리인 라마 호텔 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리는 거리이다. 랑탕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빙하 녹은 물이 푸른 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바위 사이를 굽어 흐르며 굉음을 내는 계곡의 모습이 흡사 우리나라의 지리산 칠선계곡이나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을 생각나게 했다.
오랜만에 걷는 산길이었지만 긴장된 마음 때문인지 힘든지 모르고 점심을 먹기로 한 뱀부 로지에 어느새 도착하니 정오를 넘기고 있었다.
더욱이 한국에서 온 트레커들도 많이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부부함께 트레킹을 온 분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늘 와이프와 함께 산행을 희망하는 나로서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산행로 중간에는 한가로이 풀을 뜰어 먹은 소들이 많았는데 개구장이 기질이 많은 가이드 줌세가 하도 장난을 치는 바람에 소가 화가나서 절벽쪽으로 나를 뿔로 밀면 어떻하나 걱정이 되었다.
네팔의 트레킹 루트에는 늘 로지로 물건을 나르는 포터들로 넘쳐난다. 상상이 안가는 무게의 짐을 메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포터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생이 얼마나 행복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물론 상대적으로 느끼는 나의 주관적인 행복이겠지만 그래도 물질적으로 풍요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사람들의 얼굴에서 도무지 어두운 그늘이 없고 늘 행복한 미소를 보게 되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드디어 힘든 산행을 마치고 라마 호텔에 도착했다. 해발 2500미터의 라마호텔은 지명처럼 어떤 호텔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몇 개의 로지가 모여 있는 트레커들을 위한 쉼터이다.
라마호텔의 아주머니와 함께
경욱이가 저녁 식사를 하고 아주머니 하고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티벳과 우리나라의 문화가 비슷한 것도 놀라웠지만 언어에 비슷한 표현이 적지 않게 많아 다시 한번 놀랐다.
그 옛날 바이칼 호수를 누비던 몽골인들이 티벳으로 아메리카로 혹은 우리나라로....역사나 지리를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서로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밤이었다.
해발 2500미터의 밤은 그런대로 지낼 만 했다 지난 트래킹 때에는 3000미터 이상만 되어도 밤에 잠이 안 와 고생 했는데 중간에 몇 번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잘 수 있었다.
난 잠은 잘 자는 대신 지난 안나푸르나 때와는 다르게 먹을 거리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음식을 도무지 맛있게 먹을 수가 없어 삶은 계란이나 후라이 빵 등으로 때우다 보니 체력이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다음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랑탕 마을로 출발했다. 가이드 줌세 말로는 고라타벨라 이후는 경사가 완만해서 산행이 쉽다고 해서 마음속으로 안심을 했는데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에서 3000미터 이상의 고지를 걷는다는 것이 막상 쉽지 않았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랑탕 계곡의 하얀 설산들이 우리의 힘든 산행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경욱아 산 진짜 근사하다, 이래서 히말라야에 온다니까!!"
가이드 줌세와 함께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은 노력하지 않는 자가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육체의 고통을 이겨 내면서 한 발 한 발 목표를 향에 전진하는 자에게만 그 하얀 여인네 같은 속살을 보여준다.
"만약 비행기를 타고 와서 쉽게 볼 수 있었다면 이렇게 아름답게 느끼지 못했을 거야"
그러나 생각보다 멀리 보이는 랑탕 마을은 쉽게 가깝게 다가오지 않았다.
인터넷의 정보에는 '랑탕 밸리를 방문하면 촌락을 탐구하고 낮은 고도에서 편안하게 작은 봉우리를 오르고 빙하를 구경할 수 있다.' 라고 나와있는데 실제로는 하루 종일 안나푸르나 지역의 산행보다 더 힘들게 오르는 느낌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어떤 스님이 도망가는 야크를 따라가다가 이 골짜기를 발견했다고 해서 랑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랑(lang)이란 티벳어로 "야크"를, 텡(teng-더 정확하게는 dhang)이란 "따라가다" 라는 뜻이란다. 랑탕 지역은 안나푸르나와는 다르게 밤이면 화목으로 난로를 피우기 때문에 밤 8시 정도 까지는 그런대로 추위를 잊을 수 있었다.
히말라야의 야크와 함께
트레킹을 하거나 해외 여행을 하면서 짧은 영어를 구사하다 보면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늘 느끼는데...이 아이들을 보니 우리나라 영어 교육을 방향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걍진곰파로 출발했다.
가는 길목마다 야크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모습이 소와 비슷하면서도 수컷들은 털이 멋지게 나있어 우리가 히말라야의 고산에 와 있음을 느끼게 했다.
걍진 곰파에 도착해서 우리는 한국에서 약 3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는 '빤질이'란 주인의 롯지에 묵었다.
걍진곰파에서
다음 날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출발해서 해발 4620M정도의 키모슝리를 다녀 오기로 했기 때문에 체력도 비축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했기 때문에 경욱이와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다른 트레커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늘 그렇듯이 경욱이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한 4시쯤 되었던 것 같은데 밤하늘에 별이 총총 뜨고 새벽이라기 보다는 한 밤중의 느낌이었다.
걍진리를 지나 잠시휴식
타루쵸는 불경과 기도문을 적어 놓은 깃발인데 바람에 경문을 서역으로 보낸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기도 한다고한다 .
룽다는 5가지 색깔의 깃발을 줄에 연결해 높은 곳에 걸어두는 것인데 각 색깔마다 복을 비는 의미의 경전이 인쇄되어 있다. 바람이 부는 날은 벌판을 질주하는 말의 갈기와 같다고 하여' 윈드 호스(wind horse)'라 부르기도 한단다.
히말라야 산정에서 보는 타르쵸와 룽다는 무언가 특별한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바람에 나부끼는 타루쵸와 룽다의 소리는 사바세계의 희노애락을 버리고 무소유의 선을 추구하는 구도자의 마음처럼 나를 무아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날씨가 너무 추워 몇 분 쉬지 못하고 다시 까마득하게 보이는 키모슝리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키모슝리로
올 해의 희망은 아버지를 여위고 슬퍼하는 아내를 위로하고 다시 행복을 찾아 줄 수 있는 남편이 될 수 있도록 노력 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소망인데 히말라야의 힘을 빌어 꼭 이루게 해달라고 눈을 감고 기도하니 웬 지 모를 감동이 가슴 저편에서 올라왔다.
힘들게 올라 갔던 길을 내려 오면서 삶의 가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수 많은 인연을 가지고 지구상의 생명체로 태어나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내삶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씨앰이 눈물을 그렁그렁 두눈에 담고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을 도저히 마주 보고 바라 볼 수 없었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7일간의 긴 여정 동안 우리는 하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어 있었고 헤어짐의 시간은 너무 마음이 아팠다.
경욱이도 태어 나서 이런 감정은 처음 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짧았지만 아쉬운 경욱이와 내 인생의 또 하나의 기록 랑탕 트레킹은 아쉬운 막을 내렸다.
이제 짧은 노동의 해방으로부터의 자유를 뒤로 하고 다시 약육강식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 온 지금 내게 주어진 숙명을 위해 히말라야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신발끈을 조여 맨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다시 시간이 흐르면 자유를 찾아 히말라야를 찾아 올 것을 약속하면서...
사 진 들
걍진곰파입구에서
가이드 줌세의 엽기적인 표정연기
걍진으로.. 경욱의 뒷모습
키모슝리 정상에서
너무 추웠던 정상
랑탕마을 쯤에서
체르코리를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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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행의 즐거움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아래
첫댓글 쭘세가 이 글을 읽고 이해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네요 ㅎㅎ. 늘 새록새록 생각나는 즐거운 트레킹이었습니다.후년쯤에나 함 다시 가볼 수 있을것 같은데..독일 본사 높은 분들한테 임자체 가면 회사이름으로 후원 받기로 했는데 ㅎㅎㅎ
이해를 해야할 것입니다.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반복하고, 생각하고...ㅎㅎ
쭘세가 어느 때는 사장 일을 해야할 것이니까 노력할 때까지 공부하겠지요.
모르면 저한테 물어봐야 하구요.^^
임자체 또는 메라피크 한번 도전해보시죠. 히말라야 신이 받아주면 어렵지 않게 정상에 설 수 있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