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꽃이라고?“
어른이 된 소녀는 TV에서 나온 한 마디에 튀어 오를 듯이 깜짝 놀랐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하얀 감자 꽃이 눈 앞에 하얗게 피었다. 잊지 않았다.
까만 밤에 하얀 감자 꽃을 보았다는 기막힌 광경, 환상적인 그 꽃은 아름답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파르스름한 슬픔을 간직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 감자 꽃을 소녀의 아버지가 소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유일한 꽃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 소녀는이제 어른이 되어 허둥지둥 감자 꽃을 보러 나섰다.
'감자 꽃을 보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절대 안 돼,'
가슴에 물결 같은 다급한 마음이 흐르는데 회색빛 무거운 도시에선 감자 꽃이 없었다.
'가야해,'
소녀는 차를 타고 옛날 살던 소녀의 동네로 향했다. 한 시간, 그리고 또 한 시간,
자동차는 감자 꽃을 보고 싶어 하는 소녀를 데리고 털털거리며 달렸다.
'여기야, 여기야?'
자동차는 소녀에게 자꾸만 물었다. 저 어디쯤에, 소녀를 기다리는 감자 꽃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가고 이젠 아무데도 소녀가 살았던 동네에는 감자 꽃이 피었음직한 곳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소녀는 그만 미아가 되고 말았다. 우주에서 둥둥 떠 있는 그런 착각에 빠졌다.
‘안 돼, 감자 꽃 찾아야만 해!’
어디를 가야만 감자 꽃을 볼 수 있는지 마음에 갈증이 왔다. 어느새 어둠이 찾아왔다. 이 어둠은 어제도 또 그제도 그 어떤 날도 있었는데, 오늘은 왜 이다지도 이 어둠에 속을 태우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또 눈을 질끈 감고 생각해본다.
'그게 내 아버지가 보여주고 싶어 하던 어둠속의 감자 꽃이어서 그런가?’
어른이 된 소녀는 왜 이제야 감자 꽃이 보고 싶어졌는지 TV탓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소녀가 이제 다 자라버려선지도 모르겠다.
‘나도 아버지처럼 선생님이 돼야지.’
스무살이 될 즈음에 나는 그렇게 결심을 했다. 그런 것을 꿈이라고 쓰고 희망이라 하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처럼 꼭 선생님이 돼야 한다는 일종의 소명 같은 마음이 자라났다.
아이 같은 순수한 내 아버지,
어른이 되었어도 어둠속의 감자 꽃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 이 세상과 어울릴 수 없어었겠다 는 생각을 했다.
감자는 꽃을 보기 위한 식물이 아니다. 식용으로 감자를 심었고,그리고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을 피운다는 식물의 법칙이었다.
그런 감자를 ‘꽃’이라고 말하던 아버지!
감자 꽃을 보기 위해 깜깜한 깊은 밤중에 어린 소녀를 데리고 논밭을 헤맸을 사람, 사랑스럽고 영광스럽고 처절하기까지 한 내 아버지였던 그 사람,
‘아버지!’
그 사람은 서른 살을 끝으로 푸른 하늘로 가 버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리움을 전한다. 이젠 아버지라 부르기엔 너무 다 자라버린 지금에. 이 여름이면 감자꽃은 언제나 해마다 피어나는 것을,
아버지가 남긴 자리에 하얗고 소박한 하얀 감자 꽃이 한 아름 다가온다.
(추신)
오늘, 6월6일 하얀 감자꽃을 좋아하던 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다.
나는 이 날이 되면 나라를 위해, 그 귀한 목숨을 바친 조국의 영령님들의 추모와 더불어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가 버린 내 아버지의 명복을 빈다, 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