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감상문
2021190262 영어교육과 임찬호
종수의 직업은 소설가이다. 그러나 요즘 무슨 일을 하느냐는 해미의 질문에, 종수 자신도 정확히 무엇을 쓰려는지, 어떤 소설가가 될 것인지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렇게 시작된 종수의 이야기는 다양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설을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전개되기 시작한다. 해미는 종수와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버지의 변호인이 아버지 이야기를 써보라 권유하기도 하며, 본인에게 흥미를 느낀 벤도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주기를 원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영화에 모두 뒤섞여 내용을 구성하게 되었으며, 종수 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 자체가 영화 <버닝>이라고 느껴졌다.
이처럼 영화는 그 구조와 전개 자체부터 소설가로 설정된 종수의 소설을 쓰는 행위와 직결되어 있다. 소설은 현실과 차이가 있지만, 때로는 그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다. 특히 픽션fiction 소설의 경우, 현실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일부는 현실은 반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현실과 경계가 모호한 소설처럼, 종수가 듣는 인물들의 이야기나, 종수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 진위여부가 모호하다. 즉, 소설이라는 현실과 허구의 모호성은 영화 전체 플롯 내 진실과 거짓의 모호성으로 연결되어, 관객에게 혼란을 준다. 사소하게는 해미가 정말 고양이가 키우는 것인지부터, 우물이 정말 존재하던 것이었는지 등 종수는 앞뒤가 다른 이야기를 듣거나 사건을 직접 경험한다. 벤이 정말 비닐하우스를 태우는지 종수는 궁금해 한다. 또한 후반부에 벤이 정말 해미를 살해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없어진 것인지, 그리고 엔딩 장면에서 종수가 벤을 살해하고 차를 태운 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종수의 소설 내용인지도 종수의 소설을 접하는 관객은 명확히 알 수 없다. 이처럼 종수와 관객이 동시에 겪는 불확실성은 의심과 두려움을 가중시키고, 내면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영화는 소설과 현실의 모호성, 진실과 거짓의 모호성을 통해 다시 종수라는 주체로 돌아와, 정체성의 상실 문제라는 종수의 고민을 생각해보게 한다. 종수는 벤과 대비되게 정착하지 못하고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러한 불안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며, 해미, 벤, 아버지, 그리고 해미가 사라지며 나타난 어머니 등 다양한 이야기꾼과의 만남은 그에게 더욱 큰 혼란을 안겨준다. 그렇기 때문에 벤은 영화 내내 타인과의 일종의 긴장감을 형성하게 되며, 사회적 관계로 연결되기보다는 지속적인 소외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을 통해 자아를 탐색하려는 그의 노력은 주변 환경과의 혼란과 갈등 속에서 좌절되며, 종수의 정체성은 점점 더 흐릿해진다.
이번에는 종수가 아닌 다른 인물들, 이야기꾼들의 정체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해미는 ‘그레이트 헝거’에 대한 열망이 있어보인다. 초반에 아르바이트로 춤을 추는 그녀는 ‘리틀 헝거’였지만, 삶의 의미를 위해 춤을 춰보았다. 그러나 알몸으로 춤을 추었다는 이유로 종수가 상처를 주는 말을 하여 좌절된다. 종수의 아버지는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후에 종수가 벤을 살해하기 위한 (또는 그런 소설을 쓰기 위한) 도구인 ‘칼’과 ‘다정한 이웃’이 아니라는 점을 통해 분노를 정체성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벤은 ‘재미’와 ‘베이스’로 모든 행위를 규정짓는 것으로 보아, 모든 것을 일종의 유희로 생각하는 삶의 태도를 지닌 인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정체성의 인물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종수의 소설로 합쳐져 영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