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기사를 보면, 성균관시와 한성시와 향시를 치른다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 이들 시험은 모두 추시였다고 생각되는데, 하지만 알성시에는 초시가 없었다. 따라서 단종 2년에 치러진 문과는 알성시가 아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문과였는가 그리고 알성시가 아닌데 왜 알성시라고 부르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이 점은 추후 밝혀야 할 것이다. 다만 현재로서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시험의 종류는 별시, 그것도 초시에 향시가 있는 6백별시였을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단종145400909_01
C0035, M0031, 문묘, 취사, 성균관시, 한성시. 향시 전시, 책문, 훈련관시, 기사 격구
@단종실록 12권, 단종 2년 9월 9일 정사
#예조와 병조에 11월 3일 문묘에 알현한 뒤 취사하도록 전지하다
$예조(禮曹)와 병조(兵曹)에 전지하기를, "오는 11월 3일에 문묘(文廟)에 알현(謁見)한 뒤에 취사(取士)하겠는데, 문과(文科)인 성균관시(成均館試)·한성시(漢城試)·향시(鄕試)는 책문(策文) 1도(道)로 시취(試取)하되, 그 액수(額數)는 식년(式年)에 의하고, 전시(殿試) 또한 책문(策文)으로 시취(試取)하되, 정액(定額)에 구애하지 않겠다. 무과(武科)인 훈련관시(訓鍊觀試)·향시(鄕試)는 2백 보(步) 거리의 3시(三矢)로 시취(試取)하되 기사(騎射)를 1차(次)씩 하고, 액수(額數) 또한 식년(式年)에 의하며, 전시(殿試)는 2백 보(步) 거리의 철촉(鐵鏃) 2시(矢)로 시취(試取)하되 기사(騎射)와 격구(擊毬)를 1차씩 행하고, 또 1백 보(步) 거리의 포후(布侯)를 3시(矢)로 하여 2차 행하며, 《사서(四書)》·《오경(五經)》·《병서(兵書)》·《병요(兵要)》·《통감(通鑑)》 중에서 자원(自願)에 따라 1서(書)를 강(講)하되, 그 《병요》를 강(講)하는 자는 배수(倍數) 점수를 주어 뽑고, 또한 정액(定額)에 구애하지 않겠다." 하였다.
○丁巳/傳旨禮、兵曹曰: 來十一月三日, 謁文廟後取士, 文科成均館、漢城、鄕試, 試策一道, 額數依式年; 殿試, 亦試策, 不拘定額。 武科訓鍊觀、鄕試, 試二百步三矢, 騎射一次, 額數亦依式年; 殿試, 二百步鐵鏃二矢, 騎射、擊毬各一次, 百二十步布侯三矢二次, 四書、五經、兵書、《兵要》、《通鑑》中, 從自願講一書, 其講《兵要》者, 倍數給分, 亦不拘定額。
이 기사에는 이번 시험이 알성시가 아니라 초시가 있는 별시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리고 향시가 있는 것으로 보나 육백별시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