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펴 본 공의 한시의 세계는 ‘비분강개’ ‘우국충정’
‘결사항전’등의 어휘가 핵심이 아닐까 한다.
이는 작품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터에서
만들어진 것들 이었기에,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전래되는 공의 한시 작품 중에서, 宣居怡(선거이)라는
분과 작별하면서 지은 아래의 송별시는, 인간의 따뜻한 정념
(情念)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으로, 공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보이는 시가 아닌 가 한다.
贈別宣水使(선거이 수사를 작별하며 드림)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평소에 자신을 잘 이해하고 동료로 또는 부하 장수로
오랜 친분을 쌓아 온 선거이 수사에게 전하는 흐뭇한 작별의
시이다.
1595년 9월 경에 충청수사로 재임하다 황해병사(黃海兵使)로
자리를 옮기는 선거이 수사에 대한 송별시로써, 작품의 시기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볼 수 있는 시이다.
태평 성대를 만났다면 충무공께서도 이러한 다정 다감하고
우아한 시를 많이 남기셨을 터인데, 참으로 모질고 혹독한 시대를
만나 숨가쁘게 살다 가신 공에게는, 전장터의 칼바람과 피비린내
풍기는 작품이 대부분임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젊어서는 북쪽 국경에서 여진족을 막아 내는 일에 의기투합하였고,
국난기에는 수군통제사와 충청수사로 만나서 나라 지키는 일에
힘과 지혜를 모았던, 두분 사이의 돈독했던 우정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서, 인간미 물씬 풍겨나는 아래의 오언절구를 감상해 보자.
題 : 贈別宣水使 (선수사를 송별하며 드림)
北 去 同 勤 苦 (북거동근고)
南 來 共 死 生 (남래공사생)
一 杯 今 夜 月 (일배금야월)
明 日 別 離 情 (명일별리정)
북쪽 국경에서 함께 고생하였고
남쪽 바닷가에서도 생사를 함께 하였네
한잔 술 나누는 오늘 밤 달이
내일은 서로 떠나는 이별의 정이 되겠구려
<어휘풀이>
北 去 : 함경도 변방에서 여진족을 막아내던 일을 상기, 당시 충무공은
조산보의 만호로 재임하였고, 선수사는 함경병사 이일(李鎰)의
군관이었다.
누명을 쓰고 충무공께서 첫 백의종군을 하실 때, 宣수사는 공을
적극 변호하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南 來 : 남쪽 바다에서 적과 싸우던 시절 선수사는 충무공 휘하의 충청
수사(忠淸水使)로 재임하면서, 두 분은 왜적을 물리치는 일에 서로
합심하였음.
선수사는 역시 명장으로 행주산성 대첩시에, 권율장군을 도와 공을
세웠고, 충청수사 재임시인 갑오년(1594년)에는 장문포 해전에서
충무공과 함께 부상을 당하기도 한 인물임
別 離 : 작별, 병신년(1595년) 9월 경에, 선수사는 충청수사에서 황해병사로
그 자리를 옮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