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巫堂)의 일생(一生)
옛날 무당(巫堂)들의 일생(一生)은 한 마디로 신의(神意)길
즉 신의 뜻에 따라 자신(自身)의 일생을 살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옛날 어머니는 오늘과 같이 툭 하면 이혼(離婚)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볼 줄도 모른 채 오직 자식과 가정(家庭)만을 생각하면서
시어머니의 심한 시집살이와 밖으로 나도는 신랑의 외도(外道)에도 굴하지 않고
그렇게 힘든 결혼(結婚)생활을 불만 없이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것인지 무당(巫堂)의 생활에도 주어진 운명(運命)처럼
신(神)의 뜻에 따라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오직 신(神)을 섬기며
무당의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새벽이 되면 목욕재계하고 마을 사람들 보다
먼저 우물에서 물을 길러 신당(神堂)의 전안에 옥수(玉水)를 올렸다.
또 배운 지식이 없다 보니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면서 오직 기도(祈禱)에만 매달렸고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신(神)의 뜻에 따라 자신의 일생(一生)을 살아
갔던 것이다.
특히 올바른 굿 문서나 변변한 경문(經文)책 하나 없이 오직 신 부모
나 신 선생의 행동과 구전(口傳)으로 하나하나 배워서 무당(巫堂)의 길을 걸어왔다.
그렇기에 그러한 과정을 배우기 위해서는 최소한 3년이라는 세월(歲月)동안 신 부모의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여야 비로소 조금씩 배울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직 기도(祈禱)와 수련(修練)에 온 몸을 불살랐고,
정식 경문(經文)보다는 신 부모나 신 선생에게서 듣고 배운 내용들을 육도
(여러 가지 복합 내용을 자신의 생각대로 하는 경)로 하고,
굿거리도 하나하나 조금씩 배우다 보니 많은 시간(時間)과 세월(歲月)이 흘러서야 비로소 신 부모를 떠나서 홀로 자립(自立)할 수가 있었던 것이
다.
오늘날 신 굿으로 강신(降神)을 받고 신(神)의 신탁(神託)을 이행해야 하는 무당들은,
어렵고 힘든 신(神)의 길(道)에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또는 다른 직업(職業)으로 바꾸어 볼 기회를 얻고자 노력하는 무당(巫堂)들도 있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특히 전통적(傳統的)인 사회에서는 직업전환(職業轉換)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근래에 와서는 무당들을 신임(信任)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옛날 무당들보다 요즘 무당들의 신명(神明)이 점점 퇴색(退色)되어 가
다보니,
무당집을 찾는 점(占)손님들은 점점 줄어들고,
또 굿과 치성 등 무속 일거리가 줄어 들다보니,
무속계통을 통하여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상사태(非常事態)가 되고 말았다.
불교만물과 굿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무당(巫堂)들을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고,
몇 년 전만해도 정월달에는 굿이나 치성으로 밤과 낮을 구별하지 않고 무속제의가 넘쳐나는 달이건만,
요즘에는 바쁜 달임에도 불구하고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 기도(祈禱)를 다니는 무당들이 부지수이다.
운명적(運命的) 삶으로 무당(巫堂)이 되어 살아가야 할 사람은,
무업(巫業)에 종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많은 시련(試鍊)과 시행착오(試行錯誤)를 통하여 무당(巫堂)의 길에 들어섰으면,
생명(生命)을 불태우는 각오로 기도(祈禱)와 수련(修練)과 기예전수(技藝傳受)에 평생을 받쳐야 하건만,
요즘의 무속제자들은 쉽게 신(神)부모나 스승을 떠나 무속고아(巫俗孤兒)가 되어,
인터넷 무속카페 등에서 쉽게 지식(知識)을 얻으려 하거나,
사이비 형태의 행위 등으로 점(占)손님들을 혹세무민(惑世誣民)하여 영리를 취하려고만 한다.
또 근래에 와서는 직업전환(職業轉換)이 비교적 용이해졌고,
무업으로 살아가기가 어렵다보니 남자 무당들은 점점 수가 줄어들고,
여자 무당들은 노래방 도우미 등으로 직업을 전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다 오늘날의 무속세계가 이지경까지에 이르렀는지 알 수가 없다.
외래 신앙(信仰)은 거대 종교(宗敎)로 탈바꿈 하였지만,
우리나라 전통신앙인 무속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에게 점점 소외되고 있는 느낌을 100만인의 무속 인들은 아직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를 모른다.
옛날 선배 무당(巫堂)들 중에는 신령(神靈)의 접신(接神)으로 인하여
상담자들이 왜 왔는가를 족집게처럼 뽑아내던 무당들이 많았다.
오늘날 같이 큰 굿을 하지 않아도 제가(당가)집의 대소사로 인하여 사
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는 일들은 작은 치성으로도
신령(神靈)의 힘을 빌려 신병(神病)이나 길흉(吉凶)들의 소원(所願)이 이루어지게 하기도 하였다.
대부분 무병(巫病)도 역시 부자(富者)보다는 빈천(貧賤)한 자에게 생겨 신 부모 될 사람과 같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걸립(乞粒)을 하여 생긴 곡식이나 재물을 모아 신 내림굿을 하였다.
또한 자신의 이름도 겨우 쓸 정도이고 지식(知識)도 없다보니 오직 신 부모와 명산대천(名山大川)과 전안 기도(祈禱)에 목숨(生命)을 걸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대부분 기도(祈禱)와 수련(修練)으로 반신반인(半神半人)적인 영통(靈通)능력자가 되어야 하고,
또 신령(神靈)님들과 접신(接神)과 통신(通神)이 가능해져, 그로인해 부채와 방울만 들고 상담자들의 대소사와 길흉(吉凶)사를 신점(神占)으로 족집게처럼 뽑아내 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무당(巫堂)들은 어떠한가!
상담자가 오면 먼저 생년월일 등 주소와 사주를 적거나,
때로는 적당한 점사축원(占辭祝願)도
없고, 부채와 방울도 없이, 자신들의 편리한 행동(行動)으로 점을 보고 있다.
신명(神明)의 무당으로 신령(神靈)을 통해 신점(神占)을 본다면 상담자의 주소와 사주(四柱)가 왜 필요한 것인가!
요즘 신(神)굿으로 강신(降神)을 받고 신당을 차리고 점(占)을 보는 무당의 점(占)은 신(神)을 통하여 보는 신점(神占)이 아니고,
신(神)을 모시고 있는 신당(神堂)에서 점(占)을 보기 때문에 그냥 신점(神占)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옛날 무속(巫俗)의 구시대 무당(巫堂)들은 정해진 문서가 없어 스승이나 신 부모의 구음에 의존하였으며,
또 구음을 전수받는 과정도 까다롭고 어려워 많은 시간과 세월이 흘러가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구시대 무당들은 그저 천지신명(天地神明)전에 비손을 하
거나,
무당의 몸 주에 실려서 신(神)의 공수를 주고 덕과 복과 재수를 주었다.
세상이 변하여 요즘에 와서는 인터넷상의 무속카페에 수없이 많은 짜깁기식의 문서(文書)들이 많이 돌고 있지만
그렇게 꼭 필요하거니 중요한 문서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옛날부터 신(神)의 제자(무당)는 문서(文書)나 사설(辭說)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神)의 영험(靈驗)이였으며,
위대한 신(神)의 능력(能力)을 빌고 빌어서 죽을 사람도 살리고 어렵고 힘든 것도 구원(救援)의 기적(奇蹟)을
만드는 것이 신(神)의 일이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월(歲月)이 흐르고 변하여,
인간들이 신(神)께 향하는 마음들이 옛날처럼 간절하고 애절하지 못하고,
신께 향하는 마음보다 신(神)을 빙자(憑藉)하여 금전(金錢)에 더 관심을 가지다 보니,
허울 좋은 신명(神明)이라는 말은 흔해지고, 대부분 신(神)의 신탁(神託)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옛날무당들의 신점(神占)의 맥(脈)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전 이야기이다.
현올바른 성무수업(成巫修業)과 명상수련(瞑想修練)으로 심령술(心
靈術)을 배워 진정한 신명(神明)의 세계(世界)를 접하고,
올바른 전통신앙(傳統信仰)의 진정한 사제(司祭)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무당(巫堂)의 성무수업(成巫修業)이란 그만큼 무당(巫堂)의 길에 획을 긋는 중요(重要)한 마지막 배움의 길인 것이다.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 신앙을 이제는 바로 잡을때가 된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