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04년 1월18일09시
만날곳:불광시외버스 터미날
행선지:도봉산
코스: 송추 유원지 입구 –송추매표소-북능선-포대능선- 망월사-망월매표소
참석자:12명(김부익,김승기,김원탁,김형철,김호경,신상기,윤한근,이명인,이종구,
최해관,한경록 ,윤신한)
금년 첫 산행이라 그랬는지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창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도로는 축축하게 젖어있고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다. 날씨가 추울 것 같아 방한복을 챙겨넣고는 행여 늦을세라 서둘러 집을 나섰다.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날에 도착하니 9시 15분 전인데 형철과 경록이 이미 도착하여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고 있다. 새해들어 첫 만남이라 악수를 하며 덕담을 주고받는 사이 하나둘 낯익은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해서 9시20분까지 김 부익, 김 승기, 김 원탁, 김 형철, 김 호경, 신 상기, 윤 한근, 이 명인, 이 종구, 최 해관, 한 경록 그리고 나 모두 12명이 모였다.
09:25 이번에는 송추로 바로 가는 버스를 타자는 승기의 제안에 따라 36번 버스에 올랐다. 꾸물꾸물 하던 하늘에선 마침내 허연 것이 나풀거리며 내려오기 시작한다. 눈이다. 도심을 벗어난 버스는 간간이 내리는 승객들 때문에 잠깐씩 서는 것을 빼고는 이미 하얀 색으로 뒤덮인 시골길을 달려 우리를 송추유원지 입구에 내려 놓는다 (10:10). 도로가 미끄러운 탓인지 다른 때보다 10여분정도는 더 걸린 것 같다.
일행은 쟈켓의 깃을 세우고 모자를 눌러쓰고 내를 따라 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냇가에 비스듬히 늘어선 나무들 가지마다 이미 3-4cm두께로 쌓인 눈은 국민학교 다닐 때 겨울방학 숙제로 설경을 그리던 옛일을 떠올리게 한다. 먼저 번에 여성봉에 오를 때 건넜던 다리를 오늘은 그냥 지나친다 (10:15). 그 다리 입구에 사패산 3.9Km라고 씌어 있다. 이 지점에서 송추 남능선과 북능선으로 오르는 등산로 갈라지는 셈이다.
10:23 송추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타난다. 우리는 그 길과 반대쪽으로 계류를 끼고 왼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걷는다. 아름드리 노송들이 소리없이 쌓여 내리 누르는 눈의 무게에 힘겨워 하면서도 우리 앞에 커다란 크리스마스 카드 같은 장면을 펼쳐 보인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나라가 많겠지만 이렇게 철마다 구색을 맞춰가며 고운 천연그림을 지닌 나라가 과연 얼마나 될까? 10:35 북한산 국립공원관리소 송추분소 표지가 나타난다. 머지 않아 포장도로가 끝날 것 같다. 만일 눈이 아니었더라면 여기까지 오는 길이 무척 재미없었을 뻔 했다.
10:40 송추2교를 건너 송추매표소를 통과한다. 한근이가 올해부터 국립공원입장료가 인상되었다고 한다 (종전 1,300원에서 1,600원으로 인상되었다). 눈이 덮인 것을 보고는 몇 명이 아이젠 매는 것을 기다려 일행은 10여 cm 이상 쌓인 눈길 위로 첫 발을 내디딘다. 이렇게 오늘의 산행이 시작된다. 눈송이자체는 떡가루 같이 가늘지만 버스에서 내릴 때보다 훨씬 세차게 쏟아진다. 모두들 상산의 첫 산행을 축하하는 서설이라고 한 마디씩 주고 받으며 즐거워한다.
눈이 내리면 좋아하는 것은 비단 강아지만이 아니다. 어른, 아이, 남과 여를 가리지 않고 공중에서부터 춤추며 내려 앉는 눈을 보면 누구나 마음이 들뜨고 즐거운 기분이 든다. 그것은 아마도 눈의 속성때문이 아닌가 싶다. 김 진섭은 백설부에서 ‘눈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덮어줌으로써 하나같이 희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속성이 있다고 했지만, 눈 자체가 순결하고 아름답지 않고서야 어찌 다른 것을 덮어 아름답게 만들 수 있겠는가?
아무도 가지 않은 신설(新雪) 위로, 어릴 적에 다식판으로 눌러 다식을 박듯 뽀드득 소리를 내며 산길을 걷는 재미는 겨울등산의 백미이다. 하지만 오늘은 몇 사람 (발자국 수로 보아 5명 안쪽인 듯 싶다)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우리도 그 발자국을 따라 설경을 지나 선경(仙境) 속으로 들어간다. 순백색의 이 귀한 손님들은 이제 우리 눈 앞에 갖은 모양의 꽃잔치를 열기 시작한다. 가지만 남은 나무들 위에 내려앉아 이건 목련 저건 진달래, 그 너머엔 별꽃, 그리고 이쪽에는 아직 피지 않은 장미꽃 봉오리를 만들어 보인다.
11:00 흰 모자를 쓴 노송 밑을 지난다. 관리공단에서 나온 인부들이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철교의 눈을 치우고 있다. 우리는 그 곁을 지나며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넨다. 산에 들면 모두가 이렇게 다정한 이웃이 된다. 다리 아래 계곡도 모두 하얀데 한 가운데엔 투명한 얼음이 드러나 보이고 또 그 한 복판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사랑스럽다. 얼지 않는 물-그것을 보고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부지런한 물레방아는 얼 새도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눈은 오늘 그치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이제는 고운 가루눈으로 변하여 우리의 온 시야를 가득 채운다. 도봉의 연봉들은 그 모습을 감춘 지 이미 오래다. 일행은 나무들이 머리에 눈을 이고 늘어선 ‘눈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고요하다. 눈을 맞으며, 그것도 산 속에서 있을 때면 어느 새 어릴 적 아니 그 이전의 아득한 옛날 생각에 잠겨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아마도 눈은 겉으로 보이는 추한 것을 가려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쌓인 오물과 얼룩을 걷어내어 우리를 지순(至純)의 세계로 이끄는 마력을 지녔나 보다.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일행은 눈을 맞으며 한 줄로 늘어서서 작은 도랑을 건넌다. 열 발자국쯤 앞에는 경록과 상기가 나란히 가고 내 뒤 열 발자국 뒤엔 나머지 일행이 뒤 따른다. 이 때 고사성어 풀이가 침묵을 깨뜨린다. 승기가 입을 연다. 고진감래-고생진탕하면 감기온다. 삼고초려-(고스톱에서) 쓰리고 할 때는 초자(이설(異說)=초단)를 조심하라. 군계일학-군대에선 학력보다 계급이 우선한다.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모두 기억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그런데 군계일학의 새 버전은 매끄럽지 못하다고 부익이 지적하자, 승기는 그 다음부턴 부익에게 일일이 확인을 받아(?) 가며 고사성어풀이를 이어 나갔다. 듣고만 있던 한근이가 한국은행판 새 버전도 발표했다. 적자생존-(받아) 적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나.
11:10 오리나무로 둘러싸인 공터에서 처음으로 쉬었다. 종구가 ‘갈대숲’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중요한 대목에 지방 사투리가 들어 있었는데 해석을 해 주지 않아 그 의미를 알 수 없다). 5분 쉬고 다시 길을 간다. 처음으로 작은 깔딱고개가 나타난다. 10여분 오르막길을 따라 오른 끝에 능선에 올라선다 (11:25). 왼쪽으로 가면 사패산(1.2 Km)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포대능선이다. 그러니까 1시간 10분 동안에 2.7Km를 주파한 셈인데 이것은 지금까지는 길이 대체로 평탄했다는 뜻이다. 다른 등산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 옆으로 비켜서서 후미를 기다렸다가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11:35 나무터널의 한 켠이 뻥 뚫린 곳으로 건너편 산봉우리가 부옇게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잠시, 안개인지 구름인지 연기 같은 것이 피어 오르는가 싶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우리가 서 있는 곳까지 밀려온다. 참으로 오랜만에 맞는 눈보라다. 앞에서 가던 부익이가 영화에 나오는 폭풍설(blizzard)같다고 한 마디 한다. 이제는 길이 미끄럽고 바위길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해서 아이젠을 하지 않고는 걷기가 어렵다. 모두들 아이젠을 꺼낸다. 내 아이젠은 끈으로 매는 구식인데 일단 매면 그 기능은 확실하지만 매고 푸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게 흠이다. 일행에게 지장을 주니 이젠 신형으로 교체해야 할 것 같다. 앞서 가던 형철이가 아이젠 끈이 떨어져 나갔다며 그걸 찾느라고 되돌아 온다.
12:00 포대능선에 올라 대피소에서 쉬었다. 이제 눈은 폭설로 변했다. 바로 앞의 절벽에 기대어 선 굽은 소나무 말고는 모두가 하얀 색 일색이다. 사방이 흰색 아니면 검은 색인 이 산중에서 다른 색깔이라곤 우리의 배낭과 등산복 뿐이다. 모두들 말은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내려가지 않고 며칠이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눈치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침에 산길을 올라온 것처럼 또 내려가야 한다. 형철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평상시 같으면 수월했을 바위길도 눈이 쌓이니 신경이 쓰인다. 우리는 능선을 따라 조금 걷다가 망월사로 빠지는 왼쪽길로 접어들었다. 이제부턴 경사면을 따라 내려간다.
12:15 길가에 자리를 잡았다. 소나무들로 둘러싸여 어느 정도 눈도 가릴 수 있고 제법 널직한 곳이다. 호경이가 들고온 차일을 치고나니 오늘이 우리 잔칫날 같다. 술이 두어 바퀴 도는 사이 승기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보온병에서 무언가를 쏟아 놓는다. 우리 상산 모임에서 처음 선보인 오뎅국물이다. 옆에서 그걸 바라보던 호경의 입에서 아차!하는 탄식이 흘러 나온다. 호경이도 우리를 놀래 주려고 같은 오뎅을 준비해 왔는데 승기에게 선수를 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서가 무슨 상관이랴? 모두들 두 사람의 정성에 고마워 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참가한 원탁은 라면에 더운 물을 붓느라고 바쁘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그건 원탁과 세훈의 몫이었기 때문에 더욱 반가왔다.
일행이 양주 두병을 바닥내고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소주까지 넘보는 사이에도 눈보라는 계속 몰아치고 있었고 자리를 걷을 무렵에는 기온도 몹시 내려가 있었다. 모두들 쟈켓을 꺼내입고 모자의 귀가리개를 내린다. 차일을 풀던 호경의 손이 얼어 입으로 호호 불고 있는데 마침 옆에 있던 해관이 벙어리장갑을 얼른 벗어주며 거기에 손을 녹이라고 한다. 늘 하던 것처럼 쓰레기를 담아 배낭에 달고 거기를 떴다(13:25).
나무토막을 가로질러 만든 간이계단을 따라 조심조심 내려온다. 다른 때 같으면 무척이나 귀찮다고 생각했을 이 계단들이 눈길을 내려오는 지금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밑에선 다른 등산객들이 올라오고 뒤에도 계속 사람들이 내려오니 우리도 잠시 쉴 틈도 없이 1시간 가까이 아래만 바라보고 눈 속을 걸었다. 앞서가던 호경이 구성진 목소리로 한 곡조 뽑는다. 눈 덮인 절벽과 그 옆에 눈을 지고 선 노송을 무대삼아 판소리를 펼치는 가객의 모습이다. 여전히 눈은 내리는 데 말이다. 저 경치와 노래하는 저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아름답다고 할 것인가? 잠시 생각했으나 답을 얻지 못했다.
14:10 한참 걷다 보니 목련꽃같은 눈꽃이 가득한 나무 뒤로 암봉(岩峰)들이 키를 재고 있다. 마침 우리 앞 뒤로 다른 등산객들도 없어 쉬어가기로 했다. 남은 술을 꺼내어 나눠 먹는다. 주변 경치가 마음에 들어 해관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승기도 그리했다. 그러자 이왕이면 단체사진을 찍기로 하여 모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마침 밑에서 부부인 듯한 중년 남녀 한 쌍이 올라오기에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빨간 쟈켓을 입은 그 여자가 한 쪽 무릎을 끓고 셔터를 누르려고 하는데 같이 가던 남자가 그 옆으로 지나면서 당부한다. “잘 박아드려. 잘 박으라고” 그러자, 그 여성도 고개를 돌려 그 등 뒤에 대고 가로되 “뺄 때 잘 빼야지요”. 글쎄, 사진은 박(찍)기도 잘 해야 하고 빼기도 잘 빼야 하는 건 맞는데, 그 두 사람이 사진 이야기를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말한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막상막하인 것만은 분명하다.
14:35 망월매표소를 통과했다. 그리고 20여분 뒤에는 종원이 개척해 둔 원도봉감자탕집에 짐을 풀었다 (15:00). 종원은 오늘 한라산에 가느라고 이곳에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다. 약 5시간에 걸친 비교적 긴 산행이었지만 전체 등산로가 아기자기하면서도 평탄하고 재미있었다. 거기에다 눈까지 내렸으니 일행은 푸근한 마음으로 점심을 들었다. 우리가 한 마디하면 열 마디씩 대답하는 주인여자의 싼 입담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한 잔씩 더 했다. 그리고 작년의 회비집행결과 보고가 있었고 금년도 회비를 작년처럼 한 사람당 5만원씩 걷기로 했다. 배낭을 메고 식당을 나서니 눈은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저 너머로는 도봉의 연봉들이 하얗게 서 있었다.<끝> 윤 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