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 (2)
당신이 인도하시는 길 위에서 마음으로 사람을 만났습니다
박현주(엘리사벳, 자유기고가)
▲ 페르돈 고개 정상에 순례자들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이 설치돼 있다. 옛날부터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다.
말 통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사람 만나는 체험
매일의 걸음, 당신 손에 맡겨진 길임을 깨달아
고독과 침묵 뒤 항상 더 큰 자유와 사랑 살도록
지난 일주일 동안 길 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어디서나 히죽히죽 잘 웃는 넉살 좋은 성격 덕에 사람들과 쉬이 친해졌다. 형편 없는 영어 실력으로 농담도 주고받고, 때로는 식사도 함께 준비해 먹으면서 우정을 나눴다.
보름 동안 쌀밥 구경 못한 딱한 사정을 하느님께서 아신 것일까? 프랑스에서 온 실비아 아줌마와 그의 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밥을 해먹게 됐다. 쌀과 해물볶음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왔는데, 모두들 밥은 내가 잘 할 것 같다며 맡겨주었다. "오늘 저녁에는 돌을 삼킬지도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고 쌀을 씻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에서 온 자존심을 걸고 정성껏 냄비밥을 지어냈다. 즐거운 마음과 좋은 기운 덕에 밥은 꼬들꼬들 잘 됐다.
마음으로 만나는 사람들
함께 시장보고 밥짓고, 빨래하고, 잠자고…. 피부색과 언어는 달라도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도움을 주면, 상대도 그걸 느낀다.
나바레떼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관리인 아저씨는 손수 크레페를 만들어 순례자들에게 돌렸다. 피곤에 지친 순례자들 얼굴에서 피로를 씻어내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소박한 베풂으로 숙소 분위기를 환하게 밝히는 아저씨를 보면서 일터를 기쁨의 자리로 만드는 것 또한 각자 개인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서 와인 한 잔으로 피로를 푸는 순례의 벗들. 순례를 하는 동기와 목적은 얼굴 생김새마냥 제각각이다.
한 번은 순례 여정에서 자주 마주치는 프랑스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그분은 프랑스어 밖에 할 줄 몰랐다. 우리는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상형문자 대화를 나눴다. 그 광경을 보고 베니스에서 온 아저씨가 끼어 들어 짧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오가며 통역을 해줬다.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이 길은 언어가 장벽이 아님을, 그리고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만나는 법을 새겨주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주변을 잘 살피면서 걸어야 한다. 한적한 시골길은 몰라도 큰 도시나 건물이 많은 곳을 지나갈 때 노란 화살표를 놓치면 한참을 헤매야 한다.
팜플로나라는 큰 도시를 지날 때였다. 재밌는 거리 풍경에 취해 걷다 그만 화살표를 놓치고 말았다. 당황해서 사방을 둘러보니 저 멀리 길가 끝에서 노란 화살표가 "이쪽이야"라고 손짓하는듯 하늘거렸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더니 화살표가 아니라 노란 꽃이었다. 그 황당함이란…. 그 후로 길가에 핀 노란 꽃들만 보면 황당했던 그 순간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난다.
아저씨, 정말 미안해요
지인들이나 고마운 분들께 엽서 띄우는 걸 좋아하는 터라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우체국을 먼저 찾는다. 순례 여정에서 처음 엽서를 보내려고 우체국을 찾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우체국같아 보이는 건물이 나타나지 않았다. '우체국'이란 단어 하나 외워오지 못한 게으름을 자책하며 동네를 이리저리 헤맸다.
거리에서 한 아저씨에게 영어로 우체국을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꼬레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선글라스를 낀 인상이 그렇잖아도 무서웠는데, "한국인이냐?"고 반문하는 말투가 예사롭지 않아 무조건 줄행랑을 쳤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쫓아오면서 "꼬레오?"를 외쳤다. 달리기라면 나도 자신있지만 무게가 8㎏나 되는 배낭을 메고 도망가는 게 쉽지 않았다. 무조건 뛰었다.
▲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오늘도 무념(無念)의 순례자가 되어 '비움과 채움'의 길을 뚜벅뚜벅 걷는다.
골목에서 아저씨가 안 보이는 듯 싶어서 호흡을 가다듬고, 아주머니 한 분께 우체국을 다시 물었다. 그런데 친히 우체국까지 데려다주신 그 분 덕에 알게된 사실은 우체국이 스페인어로 '꼬레오스(Correos)'라는 것이었다. 맙소사! 그 친절한 아저씨를 파렴치한으로 오해했다니. 그 후로 '꼬레오스'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단어가 됐다. 우체국을 이용할 때마다 그를 기억하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달랬다.
내 자신이 만화 주인공같이 여겨지는 우스운 일들, 어처구니 없는 일들, 그럼에도 계속되는 매일의 걸음, 나는 안다. 이 길은 내가 가는 길이 아니고, 나를 인도해주시는 분의 손길에 내가 맡겨져 가는 길임을….
숙소 사정에 따라 하루에 많게는 30㎞에서 적게는 5㎞를 걷는다. 발가락은 까져 피가 났을지언정, 하루도 쉬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길 위에 오를 생각을 하면 '오늘은 그냥 근처 다른 숙소에서 쉴까?'하는 달콤한 유혹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어제 걸은 걸음이 오늘의 걸음을 대신할 수 없고, 내일 걸을 걸음을 오늘 기약할 수 없기에 다시 길을 나선다. 그러면서 걸음이 가르쳐 주는 성실과 인내를 새긴다.
▲ 순례길 낯선 도시에서 마주친 세례자 요한 성당 십자가.
하찮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100㎞, 500㎞, 800㎞를 만들어 순례를 완성한다고 생각하면 이 순간이, 그리고 삶의 한 걸음이 더없이 소중해 진다.
길 위에서 나 자신의 긍정성과 잠재력을 보게 된다. 아무리 상황이 절망적이라 하더라도 다시 웃으며 발걸음을 떼면 순례자들이 용기를 준다. 그 속에서 힘을 주시는 분의 마음을 만난다.
더 큰 자유 안겨주는 침묵
나 자신을 위한 일에 너무 몰두하면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어 내 것들을 잘 챙기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그게 위선적이고 왜곡된 모습이란 걸 알게 됐다. 진정한 사랑의 첫 걸음은 나 자신을 잘 돌보는 것임을 가르쳐준 발가락에 한 없이 감사했다. 매일 약을 발라주고 다독여준 발가락은 조금씩 좋아졌다.
이른 새벽에 걸을 때는 침묵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 순례를 단순한 걷기여행이나 특별한 여행 정도로 끝내고 싶지 않은 욕심에서 만든 나만의 규칙이다.
고독한 침묵 뒤에 숙소에 도착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더 자유롭게 만나고 도움을 주게 된다. 부부나 친구가 다정히 손잡고 걷는 모습이 이따금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나의 침묵과 고독이 더 큰 자유와 사랑을 살게하기에 감사하다.
"홀로 걷는 여정은 고독하다. 그러나 자유롭다."
고독 안에 잘 머무는 방법을 찾게 된다면 고독은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할 것이다. 아울러 다시 돌아갈 나의 자리를 더 큰 사랑으로 품게 될 것이다.
새는 손을 잡고 날지 않는다. 새는 무리를 지어 날되, 홀로 난다. 창공을 자유로이 비행하며 외로운 순례자를 지켜보는 저 하늘의 새들이 내게 속삭인 이야기다.
산티아고 가는 길 (3)
살다가 진흙탕에 빠지더라도 오늘처럼 웃을 수 있으리라!
박현주(엘리사벳) 자유기고가
▲ 한적한 시골길에서 양떼와 목동이 잠시나마 내 길동무가 되어준다.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이 길을 걷는 동안 양치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연금술사」를 구상했다고 한다.
안개가 자욱한 날,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새벽길을 걸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길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걷는다.
비가 온다고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순례자 숙소 침대에서 조금 더 누워 있는다고 해서 일정이 미뤄지는 것도 아니고 시간만 늦어질 뿐이다. 땡볕 아래, 나무 한 그루 없는 길을 묵묵히 걷는다. 걸어도 걸어도 그늘 한 점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람들은 이 순례길이 인생길을 닮았다고 말하던데, 그 이유를 알겠다.
이제 800㎞ 길의 절반을 왔다. 400㎞를 남겨두고 있다. 무슨 일이든 고비는 절반 쯤에 찾아오는 것 같다. 처음 며칠 간은 설레는 마음에 힘든 줄을 몰랐는데, 이제 절반 쯤 걸으니 익숙한 나머지 게으름을 피우고픈 마음이 든다. 삶의 자리에서도 그랬다.
"인생 고비마다 이 길을 기억하리"
한낮 태양이 이글거리는 시간이면, 이 곳 온도는 30도를 웃돈다. 모든 게 구워지고 삶아지는 시간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평야를 지날 때는 쉬고 싶어도 쉴 곳이 없어 계속 걸어야 했다. 물 한 잔 얻어마실 곳이 없었다. 그 땡볕 길을 30㎞ 걸으니 마을이 나왔고, 숙소가 나왔다. 숙소에 들어서면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고비라고 느껴지는 순간에 오늘 걸은 길을 기억하리라' 다짐했다.
▲ 누군가가 집 외벽에 카미노 순례자를 코믹하게 묘사한 그림을 그려놨다.
부르고스(Burgos)라는 큰 도시를 향해 갈 때는 표지판을 놓치는 바람에 한없이 풀밭길을 걸어야 했다. 멀찍이 앞에서 어른거리는 움직이는 물체가 순례자 무리인줄 알고 쫓아간 것이 화근이었다. 사람이 아니고 사슴이었다. 풀밭 언덕에 이르니 돌아가기도 난감했다. 그렇다고 다른 길이 보이지도 않았다.
순례준비 중에 직접 만든 기도문만 되뇌었다. "주 예수님, 당신 친히 저의 인도자 되소서." 서쪽으로 가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해를 등에 업고 걸었다. 정말 그분이 인도해 주셨다. 눈짐작으로 대충 방향을 잡았는데도 운좋게 노란색 표지판을 찾아냈다.
순례자들은 각자 자기 등에 자기 짐을 지고 걷는다. 배낭 무게와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예외없이 짐 진 것을 보면서 순례가 정말 우리네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낭이 크든 작든 모두 힘겹게 하루를 걷고 쉰다. 내 짐이 가장 무거운 것 같은데, 사실 다른 사람들 짐을 들어보면 무게가 만만찮다. 단지 누가 그 무게에 눌리지 않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사랑하고, 즐기며 길을 걷느냐 차이다.
길을 걷다 보면 며칠씩 함께 걷는 사람도 생기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도 생긴다. 하지만, 만남이 내 계획이 아니고 생각이 아니었던 것처럼 언제 헤어지는지 모르게 또 헤어진다. 길이 주는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만났을 때 최선을 다해 대하는 것, 그것이 만남을 아쉬워하지 않는 지혜다.
스페인어를 전혀 몰라 숙소에서 접수를 못하고 있던 내게 통역을 해준 고마운 오스트리아 순례자에게 마음의 표시로 요구르트를 준 일이 있다. 그 친구에게 그게 따뜻한 경험이었던지, 다음 마을에서 다시 만났을 때 내게 시원한 음료수를 건넸다. 그리고 내게 이제 다시 만나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함께 있는 순간, 마음과 마음이 충분히 만났다면 아쉬움이 아닌 고마움과 따스함이 남는가보다.
▲ 순례자들의 배낭 크기는 제각각이다. 무겁든 가볍든 다들 힘들게 하루를 걷고 쉴 곳을 찾는다.
발이 초장부터 고생을 톡톡히 해서인지 오히려 지금은 몸 상태가 좋다. 매일 걸을 수 있다는 것, 그저 목적지를 향해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발을 절룩거리며 걷는 순례자를 만날 때면, 내가 그 고통을 알기에, 그저 앞서가기가 미안해서 괜찮냐는 인사라도 건넨다. 짧은 축복이나마 속으로 빈다. 그러고 보면 발이 아파서 질질끌며 걸었던 시간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이의 어려움을 내 것으로 다시 바라보는 공감의 마음을 갖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비가 쏟아지던 날, 땅은 진흙창이 되어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그 더딘 걸음을 재촉하다가 진흙탕에 나자빠졌다. 그런데 넘어져 버둥대는 내 모습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진흙을 뒤집어 쓰고 웃는 내게 지나가던 독일 부부는 웃을 수 있는 마음이 아름답다고 위로해 주었다. 사실, 진흙을 뒤집어 쓰고 뭐가 좋겠는가? 빨래만 더 늘어날 뿐이다. 그러나 넘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터진 웃음은 기왕 벌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털고 일어나 기쁘게 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살다가 진흙 구덩이에 빠지더라도 오늘처럼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정표를 들고 길을 안내하는 길가의 순례자 청동상.
레옹(Leon)에서는 길을 잃었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 같아서 따라간 길은 전혀 다른 곳으로 나 있었다. 무려 5㎞를 걸어왔는데 되돌아 나가야 할 판이었다. 계속가면 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걷기를 고집하려다가 행인들에게 물으니 전혀 갈 수 없는 길이란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걸어온 길이 너무도 허무하고 또 허무했다. 5㎞를 걷느라 쏟은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아까워 화가 났다. 그때 문득 '이 길을 걷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원초적 생각이 떠올랐다. 누구와 경쟁하려고 이 길에 오른 것도 아니고, 가장 먼저 도착해야 할 의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왜 서두르는가? 그리고 왜 꼭 바로바로 길을 찾아야 하는가? 때론 길을 잃을 수도, 길을 잘못 들 수도 있지 않은가?
그 길을 되돌아나와 순례자들이 이미 제 길을 찾아 떠난 길을 홀로 걸었다. 서둘러 가야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버렸다. 그랬더니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가 밀려왔다. 다시 시작하는 길에서 나의 삶도 볼 수 있었다. 삶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걷고 또 매일 걷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다시 걷기 위해서는 자신을 추스르고 위로하고 격려할 에너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순례 중 어떤 깨달음 하나가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나에게 닥쳐올 일들을 미리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모든 것에 다 대비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집 떠난 순례자'는 그렇다. 그래서 순례자는 충분한 돈을 지니지 못해도, 지팡이가 없어도, 옷이 넉넉지 않아도 괜찮다. 말을 잘 하지 못해도, 몸이 성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순례자는 믿음 없이 순례길에 오를 수 없다. 순례자는 자신을 이끄는 손, 무언(無言)의 손을 믿어야 하며, 그 손에 자신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하다고 길에 오르는 것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순례 여정이 온전한 의탁과 신뢰로 이끌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 (4)
'야고보의 길'에서 '나의 산티아고'를 찾아…
박현주(엘리사벳, 자유기고가)
▲ 몰리나세카 인근 해발 1504m 고지에 우뚝 서 있는 철십자가와 돌무더기. 순례자들은 이곳에 근심과 마음의 상처를 내려놓듯 돌을 하나씩 던져놓고 떠난다.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죽을 만큼 성심 다해야
무거운 짐, 긴 길 걷게 해준 힘이었음을 깨달아
종착지 다가옴에 따라 '나의 산티아고' 묵상
걸어갈 길보다 걸어온 길이 더 길다. 이제 200㎞ 남짓 남았다. 많이도 왔다.
초반에 발가락에서 피가 나 고생한 것 외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걸어올 수 있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여정에 기도를 보태주었다. 마음으로 나와 함께 길을 걷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죽을 만큼 온 힘을 다해…
길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때론 산티아고를 가리키는 화살표 반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을 만났다. 여느 순례자들과 다르게 걷는 그 사람들은 잘못 가는 게 아니었다. 길이 조금 다를 뿐이다.
우리가 걷고 있다는 것, 자신을 진솔하게 만나는 여정 안에 있다는 것은 화살표를 따라 걷는 이에게나 거꾸로 걷는 이에게나 똑같다. 그동안 내가 가는 길과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을 종종 비난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의 화살표를 따라 걷는 것이었으리라.
누군가 내 별명을 '연연'이라고 지어줬다. 정(情)에 연연하고, 지나간 시간에 연연한다고 붙여준 별명이었는데,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문득 그 별명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왜 이 순례길에서는 지나온 마을과 지나온 길, 혹은 만났다 헤어진 사람들과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 것일까? 지나온 마을 중에 한 폭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마을도 많았고, 추억을 새겨놓은 소중한 길도 많았는데, 그리고 천사 같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하루하루를 온 힘을 다해, 죽을 만큼 온 힘을 다해 걸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락된 시간이 오늘 하루뿐이라는 '하루살이 정신'으로 걸었다. 아프다고 성화를 부리는 다리를 살살 달래가며 매일 많게는 43㎞, 적게는 5㎞라도 걸었다. 내가 머무는 시간과 자리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을 죽도록, 죽을만큼 성심껏 대한다면 '연연'이라는 별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 풀을 뜯으러 가는 소떼는 길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쓰레기를 줍는 아름다운 손
라바날(Rabanal)을 향해 걷던 날, 검은 얼굴 더 검어질까 걱정돼 열심히 발라오던 로션과 썬크림을 배낭에서 꺼내기 귀찮아 맨 얼굴로 그냥 출발했다. 3시간 남짓 걷고나서 콜라 한 잔 뽑아 그늘에서 양말까지 말리며 한숨 돌리고 있는데, 검은 점들이 허공에 가득했다.
자세히 보니 앉은 자리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벌집이 있는 듯 했다. 수백 마리 벌들이 어느새 모여들어 "윙윙" "붕붕"거리는데 무서워서 손이 다 떨렸다. 더위를 순식간에 싹 날려준 것은 콜라가 아니라 벌떼였다. 풀썩 주저 앉고만 싶어하는 엉덩이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양말도 신지 못한 채 벌들이 들을세라 살금살금 뛰어서 도망을 쳤다. 아침에 로션을 바르지 않은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아직 까미노 여정이 끝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이 여정은 그렇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순례자 니키를 만났다. 그녀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 때문이다. 그녀는 한 손에 쓰레기 봉투를, 다른 한 손에 장갑을 끼고 다른 이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우면서 걸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던지는 나에게 부끄러운 듯 미소를 던지며 할 일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버리는 손이 있지만, 조용히 줍는 손이 있기에 산티아고 가는 길이 더 아름답다.
하루는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온종일 어깨를 짓눌러온 배낭을 침대에 휙 내던졌다. 속이 다 시원했다. 저 무거운 배낭만 없으면 더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배낭이 미워서 던져본 것이다.
▲ 사모스 성베네딕도회 수도원
그런 내게 한 순례자가 말해주었다. 어느 날, 짐이 없으면 더 잘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짐을 택시 서비스로 보냈는데, 등이 허전하니까 오랜 시간 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내던졌던 배낭을 다시 끌어다 추스렸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십자가가 무겁다고 얼마나 많이 벗어 던지려고 했던가? 그 무거움이 곧 기나긴 길을 걷게해 준 어떤 힘이라는 것을 알았다.
난 그동안 배낭 무게가 8㎏ 남짓 되는 줄 알았다. 숙소에서 내 배낭을 들어본 어느 아저씨가 "10㎏은 족히 될 것 같다"고 하길래 저울에 달아보았다. 10.5㎏! 맙소사! 여지껏 8㎏인 줄 알고 600㎞를 메고 왔다니. 갑자기 몸이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옆 사람들은 "그 작은 체구에 어떻게 이걸 메고 왔냐?"며 놀랐다. 어떻게 지고 왔는지 나도 놀랍다. 난 체구가 작고 체중도 얼마 나가지 않아 배낭 무게 1~2㎏ 차이도 크게 느껴진다. 한국에 소식을 띄우기 위해 챙겨온 넷북과 전원 연결선 때문에 무게가 늘어났다. 이 때문에 "작은 체구의 한국 아가씨는 넷북까지 지고 걷는다"는 입소문이 한 동안 길 위에 퍼졌다. 버릴 수 없는 것들이기에 지고 온 사정을 누가 알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숙소 빨래 건조기에 젖은 옷을 넣고 살포시 잠이 들었다. 놀라서 깼을 때는 이미 어둑한 시간이었다. 달려가 빨래를 찾았는데 보이지 않아 잠시 당황했다. 옆을 두리번거리니 내 빨래는 한쪽 켠에 가지런히 정말 예쁘게 개켜져 있었다. 가슴 한 구석이 따스해졌다. 100명 가량 머무는 숙소에서 알지도 못하는 남의 빨래를 누가 그토록 예쁘게 개켜놓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기도 한다. 이름 없는 천사가….
나의 산티아고는 어디인가?
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쳤을 때, 내 발가락 치료에 전심을 쏟았던 '아저씨 부대'를 만나 힘을 얻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걸어 이곳까지 온 것을 아저씨들은 놀라며 반가워했다. 이 길 위에서 헤어짐이 약속되지 않듯, 다시 만남도 약속되지 않기에 더 정겹고 반가운가보다.
계획에 없던 멋진 곳에 머문 적도 있다. 사모스(Samos)라는 곳에 있는 성베네딕도회 수도원인데, 그 마을에 가려면 약간 둘러가는 길을 가야 한다. 길이 두 갈래일 경우 가급적 빠른 길을 택하곤 했는데, 전날 밤 한 아주머니가 그 수도원에 꼭 들러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수도원은 론센스발레스에서 머문 수도원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처럼 큰 알베르게다. 옆에 오래된 성베네딕도회 수도원이 있는데, 50분 정도 수도원 곳곳을 둘러볼 수 있도록 안내도 해준다. 수도원에는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신기한 벽화가 있다.
종착지 산티아고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나의 산티아고는 어디인가 생각한다. 내가 성실히 한발한발 딛어 설레이고 기다리며 맞이하는 나의 산티아고는 어디일까?
어떤 이는 있던 자리를 떠나기 위해 떠난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다시 돌아가기 위해 떠난다고 한다. 나의 떠남은 떠나기 위한 떠남인가? 돌아가기 위한 떠남인가?
산티아고 가는 길 (5 끝)
아! 여정의 끝에는 또 다른 길이…
박현주(엘리사벳, 자유기고가)
▲ 큰 향로에서 향이 피어오르는 순례자 미사
사연 없는 세월은 없으며 갈망 없이 숨쉬는 존재도 없다. 모든 간절한 염원에는 숭고함이 있으며 사소한 모든 것도 의미가 된다.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이야기를 지니고 있었다. 3년 전 남편이 순례 중에 길에서 세상을 떠나 매년 이 길을 걷는다는 아주머니, 산티아고 순례가 4번째라는 아저씨, 새로운 삶에 대한 각오를 다지려고 길에 오른 언니, 그리고 아직 다 이야기를 듣지 못한 사람들…. 다들 밤새 풀어내도 다 풀어내지 못할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피곤에 지쳐 곪아 떨어지는 것도 축복
하루 6시간 이상씩 40여일 되는 여정을 걷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안에 내재된 힘을 느꼈다. 그것은 '갈망'이었다. 그것은 내면 깊숙이 간직된, 어쩌면 빚어 만드신 분의 숨결이 아닐까 생각했다. 누구나 다 무엇인가를 목마르게 찾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토록 목마른지 정확히 알지 못할 뿐이다.
돌 하나를 집어들고 올라가 거대한 돌무더기에 내려놓는 손길을 보았다. 성당에 들어가 초 하나 밝히고 무릎을 꿇는 사람들도 보았다.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과 땀방울 하나 하나가 '지향'처럼 느껴지는 순례자도 만났다. 그 모든 간절한 염원은 숭고했다. 그 간절함 중에 어느 것 하나 선하지 않은 것이 있으랴.
산티아고 순례는 매일 일어나 걷고, 먹고, 자는 단순한 일상의 연속이다. 그러나 어느날도 같은 날이 없었다. 걷는 것이 매일 새롭고 감사했다. 먹는 것도 당연함이 아닌 은혜 그 자체였다. 밤이 되면 피곤에 지쳐 곯아떨어지는 게 얼마나 큰 쉼의 기회인지도 느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어떤 답을 구했는지 모르겠다. 설령 답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 가지 확실하게 얻은 깨달음은 더 이상 답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길은 삶에서 다가오는 모든 것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길에서 그분을 진하게 만났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상황에 늘 함께 하신 분, 어려움을 이겨내고 인내할 힘을 주신 분, 나의 내재된 긍정성을 알고 계신 분. 그분을 만나 다시 삶의 터전으로 돌아간다.
▲ 사도 야고버(산티아고) 무덤이 발견된 지점에 세워진 산티아고 대성당. 1078년 건축을 시작해 1128년 미완성 상태로 봉헌식을 가진 성당으로, 중세시대부터 로마와 예루살렘과 함께 3대 순례지로 꼽혔다.
가장 거룩한 나의 산티아고는?
목적지 산티아고에 들어설 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그동안 지나온 풍경과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코끝만 찡해졌을 뿐이다. 어려웠던 시간들, 아름다운 기억들, 가슴 깊이 간직한 아름다움이 모여서 산티아고가 됐다.
산티아고는 800㎞를 걸어 도착한 그곳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곳을 향해 걸었던 모든 길이 산티아고였으며, 콤포스텔라(별이 빛나는 들판)였다. 그리고 이제 돌아갈 삶의 자리가 가장 거룩한 나의 산티아고다. 여정을 마치고 산티아고 대성당에 들어가 야고보 성인상에 이마를 갖다댔다. 아니,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기라도 하듯 쿵 부딪쳤다.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나를 성장시켜준 또다른 야고보 성인이었음을 알았다.
정오에 봉헌되는 산티아고 대성당 순례자 미사에 참례했다. 어른 키 정도 되는 거대한 향로(香爐)에서 향이 피어올랐다. 순례자들을 향한 축복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순례자들의 가슴에 작은 축제를 열어주는 것 같았다.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던 길 위의 친구들을 산티아고에서 다시 만났으며, 고마움을 한껏 표하지 못했던 고마운 마음들도 다시 만났다. 우리는 결국 한 곳에서 만났다. 한 곳을 향해서인가?
길을 걷는 동안 산티아고가 서쪽에 있는 것에 감사했다. 뜨거운 태양을 등지고 걸었기에 망정이지 마주하고 걸었다면 벌써 녹아버렸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 그림자를 보면서 걷는 것도 큰 의미로 다가왔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주 내 그림자를 그토록 오래 마주할까? 내 삶의 소리 없는 동반자인 그림자에게 묻기도 하고 듣기도 한 여정이었다.
▲ 800킬로미터를 걸은 산티아고 순례길
두 시간을 기다려 순례증명서를 받았다. 졸업장을 받은 것 처럼 기뻤다. 단순히 끝남을 확인해서 기쁘기보다는 무엇인가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감사했다. 이번 순례는 나를 끌어준 무언의 손길이 함께 이룬 것이다. 단순히 걷고자 하는 의지만으로는 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끌어 주고픈 분의 의지만으로도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순례는 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과 이끌어 주시는 분의 마음이 합쳐져 이뤄지는 작품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불러주시는 삶의 몫이 있다. 그 몫을 이루고자 또한 올바로 걷고자 하는 인간의 염원, 즉 기꺼이 기쁘게 드리는 응답이 있기에 삶의 몫이 이뤄진다. 부름과 응답의 합일점을 찾는다면 그 자리가 고되고 거칠어도 걸을 수 있다. 나는 이 길 위로 불려졌다고 믿는다. 그 분의 부르심에 기쁘게, 기꺼이 응답했다. 이것이 은총아닐까?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 "한국에 돌아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순례를 권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물론 권하고 싶다. 기대는 미리 챙기지 않고 준비를 철저히 할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30여 일 자신과 대면하면서 고독하게 걷듯 삶의 자리에서 단 3분이라도 자신과 대면할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사람들이 이 여정에서 크든 작든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긴 여정이 철저한 고독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미리 알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어쩌면 철저한 고독이다. 그런 낯섬과 고독은 새로운 용기를 준다.
산티아고에서 이틀을 푹 쉬고 다시 짐을 꾸렸다. 땅 끝이라는 휘니스테라(Fisterra)와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처음 닿았다는 무시아(Muxia)라는 마을에 가기 위해서다. 약 100㎞, 사흘을 더 걸어가야 한다.
나의 순례는 도착점에 이르면 끝난다. 그러나 이 여정의 끝에는 또 다른 길이, 또 다른 순례가, 또 다른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도착점을 알지 못하는 삶의 길이.
그래, 다시 걷는 거다. 길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내 가슴에 아직 숨결이 살아있다면 다시 걷는 거다.
[평화신문, 제1025호(2009년 6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