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박... 이제 사회는 천재를 허 하라!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하고 처음 한국 무대에 섰던 1996년 이후, 선 보이는 연주마다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뿜어냈던 그였다. ‘천재음악가’, ‘한국의 바네사메이’로 불리던 유진박은 왜 ‘불쌍한 음악가’가 돼 버렸을까.
대학을 갓 졸업한 그가 등푸른 생선처럼 연미복을 흔들며 은빛 비늘 날리며, 미친 듯 현을 가르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98년 공중파로 보았던 재즈피아니스트 진보라와의 협연도 그러하거니와 그가 연주했던 곡들은 음악 문외한인 내 귀엔 절대 대가의 연주로 들렸었다. 이를테면 루마니아의 무명 집시 바이올리니스트가 작곡한 곡을 J 하이페츠가 정말 어렵게 편곡해 바이올린의 궁극 기교를 들려준다는 ‘호라 스타카토’Hora staccato나 ‘왕벌의 비행‘, ’캐논변주곡‘ 같은 곡을 연주할 때 유진의 모습은 (음맹인 내 눈엔)파가니니의 빙의 그 자체로 보였던 것이다.
98년 유진과 보라의 협연은 환상이었다.
그러기에 97년 발매한 첫 앨범 <The Bridge>는 클래식 음악계에선 유례 드물게 백만 장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던 그였다.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유진박이 7일부터 방영된 KBS 1TV '인간극장-유진 박, 다시 날다‘ 편으로 다시 세간의 논란에 올랐다. 방송이 나간 이튿날 ’인간극장‘ 게시판은 시청자들의 항의로 시끄러웠다. 게시판을 여러 페이지나 달군 항의 글 중 하나다.
[출처] 지금은 매니저가 아니군요(유진박을 아끼는 사람들) |작성자 000
방송에 나오는 현 매니저 이상배씨... 감금과 폭행사건 때의 전 소속사 매니저입니다.
이상조에서 이름 개명하고 콧털 깎고 나왔네요.
도대체 KBS는 제대로 조사나 하고 방송하는 겁니까?
유진박씨 힘든 시기 때의 매니저를 버젓이 10년 지기 지인으로 소개하며
지금 매니저인양 연기하는 모습 보기 역겹습니다. 08:53
사태가 커질 기미가 보이자 '인간극장' 제작진이 서둘러 “절대 아니다“며 ”전 소속사 대표 김 모 씨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며 현 매니저는 전 소속사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항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인간극장 제작진의 ‘전 소속사 대표 김 모 씨와는 전혀 다른 인물‘ 주장은 맞다. 하지만 현 매니저 이상배 씨는 2년 전 유진박을 노예에 가까운 ’구금 연주자’로 전락시켰던 ‘이전 소속사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주장은 틀린 것이다.
유진박 과거 방송 캡처 장면
8일 인간극장 캡처 장면
이상배 씨는 분명 유진박의 이전 소속사에서도 매니저였다. 유진박의 2년 전, 경악할 천재연주자의 상태를 기억한 시청자들이 그 놀람이 너무 커 당시 이상배(이상조) 씨의 역할을 잠시 잊었던 듯 하다. 전 소속사 사장 김모 씨의 구속 이후 여러 방송을 통해 방영된 유진박의 재기 프로그램에서 이상배 씨는 유진박을 도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고, 유진박 또한 진심 이상배 씨를 의지하고 있었다.
“음악만 연주할 수 있으면 어디라도 좋아요. 난 음악 없이 못 살아요.”
당시 유진박이 했던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동영상을 보며 경악했던 그의 산골마을 연주나, 우스꽝스런 한복 차림으로 노인들을 모시고 그렇고 그런 구민회관에서 연주했던 공연들은 유진이 진정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음악을 할 수 있다면, 연주를 할 수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고 서야 한다'는 천재들이 할 법한 순진무구한 갈망 말이다.
현재 방영하고 있는 ‘인간극장’에서 유진의 음악외적 일상이 어눌해 사회부적응자나 미숙자로 비춰지는 점 역시 이런 천재성에 기인하지 않을까.
전 소속사 사장 구속 이후 “제발 천재 유진박을 구해주세요!” 제목으로 올라온 인터넷 카페 게시물을 보면 유진박의 생활이 이전과 별 달라진 점이 없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소속사를 옮긴 후 유진박의 빽빽한 스케줄이다. 축제홍보기사로 소개된 2009년 상반기 일정표는 작은 행사는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해도 넘치게 버겁다.
1월 한달 내내 김천세계악기체험장
2월7일 남양주 갤러리 단독 콘서트
2월13일 대국보건대학원 졸업식
3월14일 3.15기념 전국태권도 대회
3월 21일 세계명화체험전 전시장 콘서트
3월28일29일 대구 보건대 봄맞이 공연
4월14일 구미 직장인을 위한 정오의 예술무대
4월18일 가야문화축제
4월21일 AK 플라자
4월25,26 대전 동춘당 문화제
5월2일 AK 플라자 분당점
5월12일 김천스포츠페스티벌
5월15일 스승의날 축제의 장
6월6일 나라사랑 한마당행사
7월8월 주말 곤지암 리조트 주말공연
7월17일 구미 예스록 페스티벌
......
사건 이후 현재까지 유사한 연주 일정을 소화했을 유진박. 고통스런 기억에 대한 트라우마로 여전히 조울증에 시달리는 그에게 진정 필요한 건 단 한 가지다. 그가 영롱한 음악가로 살 수 있게 하는 것! 정 어쩔 수 없다면 사회적 장치를 통해서라도 유진박에게 천재에 걸맞는 환경을 주어야 한다. 이제 그는 천재다운 음악을 연주할 때가 됐다.
현 소속사 사장이자 매니저인 이상배 씨가 유진박을 지역의 소규모 단발성 행사까지 연주하게 한 저간의 사정은 알 수 없다. 다만 다행인 것은 이번 ‘인간극장-유진박 다시 날다’편 항의 사건으로 그가 “유진이 큰 연주를 할 수 있도록 큰 기획사가 부르면 보내 주겠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힌 사실이다. 1회성 발언에 그칠 게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살다보면 누구나 질곡이 있게 마련이다.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유진박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 좀 힘든 ‘곡谷’을 걸어도 조만간 빛을 만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천재 유진박. 그러나 많은 이에게 불행한 천재로 각인된 그가 현으로 행복한 날개를 지칠 수 있도록...
이제 사회는 천재를 허 하라!
▼ 클릭~ 10년 전 유진박의 연주...
http://www.youtube.com/watch?v=c9J84bcnwx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