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나안으로 돌아온 아브람 ***** 1.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 아브람이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롯의 선택 *****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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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롯의 결별/네가 右하면 나는 左하고
롯에 대한 아브라함의 자비 아브라함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자 마자 연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비춰지는 것은 그에 대한 별다른 애정을 갖게한다. 성서기자 역시 아브라함의 또 다른 면을 찾고자 할 것이다. 창세기 13장은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의 소유가 많아지자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일행들이 함께 살기가 어려워졌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의 가족은 단출한 세식구 뿐이었다. 그런데 13장에서 이들의 가족은 어느덧 대가족이 되었고 시간도 꽤나 흘렀다. 아브라함도 그 조카 롯도 이제는 단순한 가장이 아니라 한 부족을 다스리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변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가리켜 족장(族長)이라고 부르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좋은 예는 창세기 14장에 소개된다. 조카 롯이 이방 왕에게 사로잡혔다는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정예부대 300명을 이끌고 그를 구했다는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한 부족의 장(長)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불러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하고 롯에게 선택권을 부여한다(창 13:9). 롯이 기름진 땅 요단 들판을 택하고 소돔에 이르기까지 생활권을 확장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반대편 헤브론에 거하며 야훼 하나님을 위해 제단을 쌓는다(창 13:18). 머나먼 이국땅까지 자기를 따라 나선 조카 롯을 위해 좋은 땅을 양보한 아브라함을 보라! 그가 언제 사라를 누이라고 속여 이방 왕에게 넘겨준 적이 있었던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브엘세바(베에르세바)유적은 초기 이스라엘의 거주 형태를 보여준다. 브엘세바의 옛자취 : 브엘세바는 '일곱 우물', '언약의 우물'이란 의미가 있으며 현재 브엘세바에서 동쪽으로 약 6.4km 정도 떨어져 있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이 오랜 기간 동안 머물렀던 곳(창21:31)이며 하갈을 내보낸 아비멜렉과 맹세한 곳(창21:14)이기도 하다. ~~~~~~~~~~~~~~~~~~~~~~~~~~~~~~~~~~~~~~~~~~~~~~~~~~~~~~~~~
.`텔 브엘세바'. 네게브 광야를 헤맨 끝에 로빈슨 일행은 `비르 에 세바'라 불리는 조그만 베두인 천막촌에 도착했다. 이곳의 아랍어 지명을 토대로 그는 이곳이 다름아닌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의 도시인 성서 속의 `브엘세바'임을 밝혔다. 1969년 이후 발굴을 통해 솔로몬시대 요새로 건설된 텔 브엘세바의 모습이 밝혀졌다.
단 석비와 역사적 다윗 브엘세바까지의 이스라엘 전역을 가리킨다."> 1993년 7월 21일 이스라엘 북부의 중요한 유적지 텔 단의 한 발굴자는 성문 밖 광장의 나지막한 돌담을 파헤치던 중 잘 다듬어진 새카만 돌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대부분 구조물들이 냇물에 다듬어진 매끈한 석회암이기 때문에 이 조각은 쉽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 돌을 들쳐낸 순간 지금까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 뒷면에는 히브리어와 모양이 비슷한 고대 아람어 기록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문화가 발달했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발굴에서도 이러한 기념비의 발견은 대단한 일인데 기록물이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이스라엘에서 그것도 석비의 형태이기 때문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석비가 발견된 단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북쪽 경계를 이루는 도시였다. 원래 단 지파는 중부지역을 분배받았는데 해안에 이미 정착해있던 블레셋 사람들 때문에 그곳에 자리잡을 수 없었다. 할수없이 그들은 북쪽으로 올라가서 맑은 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도시 레셈(수 19:47), 또는 라이스(삿 18:29)를 점령하고 자신들의 지파 이름을 따서 이 도시를 단이라 명명했다. 요단강의 이름은 원래 단으로부터 흘러 내려온다는 뜻인데 세 군데의 원류 중에서 단의 샘이 가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예루살렘을 비롯해 베들레헴 헤브론 세겜 나사렛 등 주요 성지들은 사람들이 계속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그런 성지들을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벧엘 실로 아이 기브온 므깃도 단 등 구약시대의 도시들과 가버나움 벳세다 거라사 등 신약시대의 마을들은 이미 오래전에 폐허가 된 후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완전히 사라져버렸다.따라서 어느 누구도 정확한 장소를 알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렇듯 확인되지 않는 팔레스타인의 성서 지명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비교언어학적인 방법론으로 접근한 한 미국인 목사에 의해 1838년에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유럽의 자유주의적인 성지탐사와는 달리 철저하게 신앙적 관점에서 비롯된 미국의 성지연구는 뒷날 `성서고고학은 곧 미국적 학문'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더욱 뒷받침해주는 계기가 된다.
1794년 미국 코네티컷주의 사우딩턴에서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에드워드 로빈슨은 일찍부터 그리스어에 능통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관한 주석서를 편찬하는 등 고대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당시 하버드대학의 자유주의적 신학에 대항하기 위해 새로 설립된 엔도버신학교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던 그는 성서의 철저한 언어학적 연구를 토대로 보수적인 신학을 견지하는 한편 4년간의 프랑스·독일유학을 통해 유럽의 비교언어학을 터득하였다. 미국인 학자로서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된 그는 1837년 뉴욕의 유니온신학교로부터 성서학 주임교수로 초빙을 받자 먼저 성지를 탐사할 시간을 달라는 조건을 내세웠고,마침내 1838년 3월 카이로에 도착함으로써 그의 성지탐사는 시작되었다. 로빈슨의 성지탐사에는 그의 제자이며 목사로서 레바논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엘리 스미트가 동행했고,그의 뛰어난 아랍어 실력은 팔레스타인의 현지인들과 접촉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민족의 출애굽 경로를 따라 카이로를 출발,홍해를 건너 시내산을 등정한 후 요단 건너편을 지나 여리고로 들어가는 여정을 계획했다. 비록 현지 탐사의 위험 때문에 요단 건너편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그들은 당시 서구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네게브 광야를 처음으로 탐사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내세운 성지탐사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기독교 유적지마다 위치해 있는 기념교회의 수도사들을 피할 것. 둘째,현지 팔레스타인의 아랍인 마을을 주로 찾아다닐 것. 셋째,되도록 대로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을 찾아다닐 것.
수주일동안 네게브 광야를 헤맨 끝에 `비르 에 세바'라 불리는 조그만 샘을 중심으로 형성된 베두인 마을에 도착한 그들은 그곳이 바로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의 도시였던 브엘세바임을 밝혀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로빈슨은 성전 터의 축대 둘레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유태인들의 기도장소인 `통곡의 벽'의 남쪽 모퉁이 근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진의 결과라고 믿었던 돌출부를 자세히 관찰한 그는 요세푸스의 헤롯 성전에 관한 서술을 참고로 그곳이 바로 성전으로 향하는 입구를 받치고 있던 아치의 한 부분임을 확인했다. BC 20년 경부터 헤롯왕이 건설하기 시작한 성전 터의 남쪽 끝에는 로마의 공회당을 본떠서 만든 웅장한 규모의 바실리카가 있었다.그곳은 귀족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별도의 다리로 연결돼 있었는데,로빈슨이 발견한 아치의 일부는 바로 이 통로를 받치고 있던 것이었다. 1967년 이후 이 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발굴을 통하여 아치의 무너진 돌들이 15m 깊이의 땅 속에서 발견됨으로써 로빈슨의 예리한 관찰은 사실로 입증됐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성지 안내원들은 오늘날 이 부분을 `로빈슨의 아치'라고 부른다. 로빈슨은 `어느 지역이든지 고대의 지명은 비록 그 지방의 주민과 언어가 바뀌더라도 발음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전제 하에 현지의 아랍어 지명을 참고로 성서 속의 도시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1838년 5월4~5일 로빈슨은 예루살렘 북쪽의 유적지들을 탐사하여 아나타를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으로,제바를 게바로,묵크마스를 믹마스로,엘 지브를 기브온으로,그리고 베이틴을 야곱이 제단을 쌓았던 벧엘로 확인했다.
[사진 설명] 1. 에드워드 로빈슨(Edward Robinson:1794~1863년) 미국의 목사이며 언어학자인 로빈슨은 성서의 문자적 정확성을 입증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지역에 위치한,미확인된 성서 속의 여러 지명들을 지리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2.`텔 브엘세바'. 네게브 광야를 헤맨 끝에 로빈슨 일행은 `비르 에 세바'라 불리는 조그만 베두인 천막촌에 도착했다. 이곳의 아랍어 지명을 토대로 그는 이곳이 다름아닌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의 도시인 성서 속의 `브엘세바'임을 밝혔다. 1969년 이후 발굴을 통해 솔로몬시대 요새로 건설된 텔 브엘세바의 모습이 밝혀졌다. 3. 로빈슨의 아치(1850년대) 1838년 예루살렘의 성전 터의 축대 부분을 관찰하던 로빈슨은 지진으로 인해 튀어나왔다는 돌출부를 성전 부속건물로 통하는 통로를 받치기 위한 아치의 일부라고 요세푸스의 기록에 근거하여 밝혔다. 4.로빈슨의 아치(현재).
로빈슨과 스미트는 하루종일 길없는 외딴 곳에 위치한 유적지들을 따라 당나귀를 타거나 걸어서 탐사하고,밤에는 천막을 치고 모닥불 옆에서 낮동안에 다닌 지역들의 아랍어 지명을 일일이 기록해 성서의 히브리어 지명과 비교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들은 연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두 사람이 각각 별도로 탐사일지를 기록했다. 로빈슨의 업적을 계기로 중요한 성서 속의 지명들이 많이 확인되었지만,아직도 성서와 관련된 많은 유적지들이 학자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김성(협성대교수·성서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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