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시대에 바울 사도는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토론을 했고 저는 우리 집에서 밥상을
펴놓고 성경공부를 했고만 4년 만에 김 용욱이“차이나는 도올“로 Jtbc에 컴백했습니다.
원형스튜디오에 마련된 객석이 아담하고 강의 칠판이 큼직한 것이 강의할 맛 나겠습니다.
예수님은 12사도가 있었는데 도올의 차이나는 제자10명이 도올의 강의를 도와줄 게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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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란, 2.철민, 3.알베트로 4.조 승연 5.장 성규 6.헤이니 7.박 재민 8.신보라 9.박 가원
10.이 서진(특별게스트, 연극영화과 청년) 9명은 고정이고 매주 1명은 홈페이지로 청강
신청을 받는다고 하네요(www.jtbc.co.kr). 강의를 돕기 위해 패널로 나온 제자들이 먼저
강의실에서 잡담 중이고 강사가 c. c tv로 애들 놀고 있는 것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 풍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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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긴장감이 돕니다. 아마도 시청률이 얼마나 나올까 피디랑 담소를 나누는 것일 겁니다.
교회 같으면 찬양 한 곡 하고 게스트가 기도를 하면 강사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큐즈를 통해 예습을 합니다. 좋은 방법이니 저도 언젠가 꼭 벤치마킹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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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 시진핑 주석이 줄서서 사먹은 음식은 무엇? 만두
Q 2. 시진핑 주석이 좋아하는 스포츠? 축구
Q 3. 중국 대학생들은 시진핑을 어떻게 부르는가? 시따따
Q 4. 대한민국 스타 중에 시진핑과 닮은 사람은? 김 수현
Q 5. 중국 중앙정치국 상임위원은 몇 명인가?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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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가 다른 강의를 위해 강사가 나오고 반장이 차렷 경례를 한 후 강사의 첫마디가
“덥네.”입니다. 조끼 벗고 민소매가 보이는데 민망한 모양입니다. 강사 왈, 예전에 불특정
다수에게 고함치듯 하던 강의가 소그룹 형식으로 바뀐 것이 타이틀의 뜻이랍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아는 것이 필수”라며 칠판에 김밥을 김밥같이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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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강의는 현재 중국의 공시적인 구조와, 시간의 변화를 두는 통시적 역사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라고 합니다. 인구 14억, 군사력3위, 수출1위 중구의 지도자 “시진핑 그는
누구인가? “ 2007년 이전까지 무명이었던 시진핑이 어떻게 14억의 정점으로 떠오르게
되었는가?14억 중 8,800만이 공산당원이라니 한류관광객 15명 중 한 명 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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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년들의 꿈인 공산당원이 되는 길은 쉽지 않은 일인데 공산 당원이라면 누구든
외워야 하는 선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는 것을 지원합니다.
본인은 당을 강렬히 옹호하고, 당의 장점을 준수하고, 당원의 의무를 이행하며, 당의
결정을 집행하고, 당의 규율을 엄수하며, 당의 비밀을 보호하고 지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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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당에 충성하며, 적극적으로 공작하며, 공산주의를 위하여 죽을 때까지 분투할
것입니다. 어느 때고 당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저는 영원히 당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 와, 무시무시하고 엄천 센 공산당 선언문입니다.
공산당 결성 당시(1921.7.1.)57명이 1차 대표자 대회에 참석했는데 모택통이 참석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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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당이 먼저 결성 되고 군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홍군(공농 홍군)이
결성됩니다(1927). 참고로 국가는 당과 군이 만들어진 후 3번째로 만들어진다니 특이합니다.
세기의 혁명가들이 칼로 세계를 제패한데 비해 모택통은 붓 하나로 공산당 서기가 된 전략가
입니다. 1948.10.1.이전 까지 국민당 당수였던 장 개석은 홍군의 모택통 과는 쨉도 안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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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사태 때 막강 공군력을 가지고 있던 국민당 공군 사령관인 주시유가 폭격 명령을
기다렸는데 뜻밖에 장개석이 폭격명령을 하지 않은 것은 천안문의 문화적 가치와 개인적으로
패배를 인정하는 이유라고 합니다. 이미 패했는데, 폭탄 몇 개 떨어뜨린다고 해서 역사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멋진 사나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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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통이 이렇게 장개석을 이긴 데에는 집권 초기에는 공동의 선을 구하는 도덕성이 있었기
때문인데 정권을 잡은 이후 급격히 도덕성을 상실하면서 중국을 쇠락의 길로 이끌고 갔습니다.
“대약진운동“으로 4000만이 아사를 하게 만들었고,”문화대혁명(1966-1976)”으로 지식인
3,000만 명을 학살한 것은 일제에 의해 죽은 수보다 많다고 합니다.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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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등소평이 등장하지만 그 역시 부패의 씨앗이 되었는데 중국인민이 모택통의 사진을 천안
문에서 떼지 못하는 이후가 1949년까지의 공적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역사
에서 이 승만이나 박 정희를 떼어낼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중국의 역사에 있어 '적과 나' 의 관계는 서구에서 이해하는 개념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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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의 출격을 왜 관우에게 맡겼을까?
관우는 과거 조조에게 목숨의 은혜를 단단히 입은 인물입니다.
이런 사람이 조조를 한칼에 날릴 수 있을까?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제갈공명은 관우가 조조를
살려둘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보낸 것입니다. 이것이 중국의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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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누군가를 죽이고 말살시킨다고 곧 자신의 야망이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여간 중국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복잡 다양한 삼국지스타일이 있다고 도올은 이마의
핏대를 세웁니다. 번뜩이는 머릿속에 쉼 없이 쏟아지는 해박한 지식이 놀랍습니다.
중국역사에서 당(1921)-군(1927)-국가(1949)의 체제를 이해해야 하는데 당이 맨 위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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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기관의 맨 위는 당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중국에서는 국군이 없고
당군만 존재합니다.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이 맨 먼저 왕자들의 사병을 혁파해 중앙군에 편입
시켰는데 이방원의 사병을 처리하지 못해 결국 발목을 잡혔지요. 당 군은 어쩌면 조선시대
이성계의 사병 같은 막강한 군사력일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국가 행정부와 독립된 중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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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군은 군사 계열의 기업(보리)을 가지고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른다고 합니다.
3대 후진타오가 퇴임연설 때 “부패를 바로 잡지 않으면 나라도 당도 망한다.”고 했던
말에서 “부패”가 시진핑을 이해하는데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 오늘 차돌상은 김철민이
받았고 “우리의 대화는 역사의 핵심을 꿰뚫었다.” 는 즉석 친필로 강사가 사인을 해줬습니다.
2016.3.30.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