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인류 역사상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은 누구였을까? 성경에 나타난 삼손일 것이다. 그는 사자을 맨손으로 찢어 죽인 사람이다. 그는 여우를 300마리나 붙들어 두 마리의 꼬리를 묶어 그 묶은 꼬리에 홰를 달아 불레셋 사람들의 들에다 불을 놓은 사람이다. 그는 나귀턱뼈로 1000명의 불레셋 사람을 죽이기도 했으며 불레셋 사람들이 새벽에 그를 사로 잡고자 했을 때 그는 성문짝과 문설주 그리고 빗장을 다 빼어 어깨에 매고 헤브론 산 꼭대기까지 메고 가기도 했다. 그냥 산에 오르기도 힘드는데 그런 것을 짊어지고 산에 올랐으니 이 얼마나 힘센 사람인가? 오늘날 씨름 천하장사는 맡아 놓고 스모 1인자가 되었을 것이다.
II. 이렇게 강한 삼손에게는 약점이 있었다. 그 약점이란 여자였다. 세계를 정복하는 것은 남자이지만 그 남자를 정복하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있다. 삼손이 바로 그 케이스였다. 삼손은 그 누구도 당할 수 없었던 장사이지만 그는 여자에게는 넘어가고 만다. 사사기에 나타난 삼손에 대한 기사에는 삼손과 세 여자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바로 이 여자들로 인해 삼손은 자기의 직무를 태만하게 된다.
그는 먼저 딤나의 팔레스타인 여인에게 빠지며, 이후 가자의 기생에게 빠지고, 마지막으로 소렉골짜기의 들릴라에게 빠진다. 불레셋 사람들은 미인에게 약하다는 삼손의 약점을 알고 미인계를 쓰며 삼손은 들리지 말아야 하는 들릴라에게 들린다. 삼손이 불레셋사람의 손에 넘기울 때 어떠한 자세에 있었는가? 그는 들릴라의 무릎벼개로 잠을 하고 있었다.
삼손이 힘을 갖게 된 것은 그에게 특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선택함을 입고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힘을 허락하셨다. 그의 힘의 비결이 무엇인가? 머리털 아니었는가?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그의 머리털과 근육의 힘과는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머리 길게 한다고 다들 힘이 세어지는가? 그러기에 삼손의 힘의 비결은 사실상 하나님이였고 그 힘의 표현방법이 머리카락이었다. 그래서 머리 긴 사람을 보면 삼손이라고 한다.
이렇게 삼손에게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게 하고 힘을 준 것은 머리를 치렁거리며 멋지게 보이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힘을 가지고 힘자랑하라고 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불레셋으로부터 구원하고 나라를 지키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 힘이 주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불레셋을 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지만 삼손은 그들을 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침을 당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삼손은 오히려 쳐야할 적의 유혹을 받아 패배하게 된다. 그 강한 대적은 들릴라였다. 삼손은 들릴라를 다스리고 불레셋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지키고 잘 다스려야 했다. 그러나 삼손이 여자의 그물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우리 인생의 들릴라는 무엇인가? 사람들마다 약점이 있다. 먹는 것, 잠자는 것, 물질 즉 돈, 여자 일, 명예, 정치 등등... 그러한 것들은 다스려야 할 것들인데 우리가 다스림을 받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 있건만 우리는 세상의 유혹으로 인해 얼마나 우리의 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가? 우리 인생의 들릴라는 우리를 넘어지게 만든다. 세상의 들릴라의 쾌락과 안일함이 우리의 판단능력을 흐리게 만들고 우리를 집요하게 조르며 패배케 한다. 들릴라의 의도는 우리를 패배시키고자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스려야 할 대상을 다스리지 못하고 우리가 거기에 약한 자가 되어서는 다스림을 당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되는데, 우리가 오히려 하나님이 만드신 것에 다스림을 받는다면 그것이 우상이 된다. 돈을 다스려야 한다. 우리의 시간과 계획을 다스려야 한다. 우리의 비젼과 우리의 꿈도 다스려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것의 노예가 된다.
III. 대적에게 넘어가는 결과는 어떠한가? 그의 실수의 댓가는 어떠한가? 삼손이 이러한 실수를 인하여 지불하게 되는 댓가는 엄청나다. 그는 수치를 당하게 된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셨던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허랑방탕하게 사용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지 못할 때 그는 욕을 당하게 된다.
1)육신의 수치: 눈을 빼임을 당했다(21절). 무엇보다도 그 고통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생눈을 잡아 빼는 그 고통을 생각해 보라. 또한 이후에 보지 못하는 고통은 어떠하리. 눈은 우리 몸의 부분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가장 치명적인 불구는 눈을 못 보는 것이리라. 눈을 잃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소경 바디매오를 보라.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구걸이다. 소경은 구걸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힘이 세면 무엇하겠는가? 방향도 제대로 잡을 수 없고 공격할 타겟도 제대로 맞출 수 없는데... 눈을 빼었다는 것은 더 이상 삼손은 능동적으로 살 수 없고 타인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삼손도 그의 눈의 빼임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불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다(28절).
그리고 그는 눈을 빼였을 뿐 아니라, 가사로 내려가 놋줄로 묶여져 옥중에서 맷돌을 갈도록 강요되었다.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 일할 사사였다. 그런 그가 옥중에서 마저 남은 힘으로 불레셋 사람들을 위해 곡식을 찧기 위한 멧돌을 돌리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하나님께서 왜 그에게 그러한 힘을 주셨는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그 힘을 쓰라고 준 것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지금 그 힘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있지 않는가!
2)삼손 자신의 인격적 수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삼손을 조롱하다가 흥겨울 때에 그를 불러 재주를 넘게 한다(25, 27절). 그들의 쾌감은 극에 달할 것이다. 모욕을 주었을 것이다. 그동안 불레셋의 원수였고 그놈 때문에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는데 그를 사로 잡아 눈을 빼고 놋줄에 묶어 두었으니 얼마나 신나겠는가? 그리고 그를 불러다가 재주를 보고자 했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있을 것인가! 그의 자존심을 죽이면 죽일수록 불레셋 사람들은 신이 났을 것이다. 한대씩 쥐어박고... 혀 내밀어봐... 그리고 머리털도 몇줌씩 빼고...
3)영혼의 수치: 삼손의 패배로 하나님마저도 수치를 당하신다(23,24절).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사람 삼손을 포로로 잡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 다곤이 삼손을 이기게 했다고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졸지에 하나님은 패배한 하나님이 된다. 다곤은 곡식의 신으로 농사를 짓는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신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린다. 그리고 자기들의 신을 칭송한다. 우리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승리하지 못하고 주님의 이름에 명예를 더럽히게 되면 주님이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잘못을 할 때 꼭 우리 뿐 아니라, 하나님께 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다. 우리가 잘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곳에 풍성히 열매 맺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
IV. 삼손은 이제 눈을 잃은 후에 그가 했었어야 하는 임무를 깨닫게 된다. 그의 육신의 시력을 잃은 뒤에 영혼의 안목을 갖게 된다.
그는 낮아질 대로 낮아졌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의 완전한 육신, 그의 인격, 그의 능력, 그의 명예... 이 모든 것을 잃었다. 특별히 눈을 빼이고 시력을 잃은 것은 그가 어두움에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는 어두움 속에 있어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그의 눈의 시력을 잃었다는 것은 영적으로 그가 응당해야 할 그의 사명, 이스라엘의 사사로 팔레스타인을 물리치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사실, 그의 육신의 눈에 빼어지기 이전에 그의 눈은 시력을 잃었다. 바로 들릴라를 인하여 그의 눈은 멀어 있었다. 여자에 눈이 먼 것이다.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육신의 눈을 잃은 다음에 삼손은 들릴라가 보이지 않게 되었고 들릴라가 그를 배반하고 빠져버리니 비록 그가 눈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보게 되는 깨달음이 있게 되었다. 그는 눈을 잃은 다음에 그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자신의 눈이 여자로 인해 어두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력을 잃게 되면 시력의 중요성을 알고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을 잃을 때 그 의미를 알게 되듯, 삼손은 그의 시력을 잃게 되자 그가 보아야 될 하나님을 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보는 눈이 생긴 것은 그가 자신의 눈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여기서 삼손의 역사가 시작된다. 모든 것을 잃고야 하나님을 본다. 그는 육신의 눈은 잃어버렸지만 영혼의 눈은 떠서 하나님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그의 사명을 바로 깨닫게 되고 이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다.
사람이란 평안하면 그때 조심해야 할 때이다. 자신감이 넘칠 때 조심해야 할 때이다. 무엇인가 있고 능력이 있고 할 일이 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겁나는 게 없는 사람은 정말 겁난다.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도 그 아들이 언제 아버지를 먼 이국땅에서 생각하게 되었는가? 그에게 재산의 분깃을 나누어준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그 재산을 다 싸 짊어지고 먼 나라로 아무에게 간섭받지 않는 곳에서 모두 쾌락을 위해 허랑방탕하게 탕진한다. 바로 이 모든 것을 없이한 후에 아버지가 생각난 것이다. 그전에는 괘락과 자기의 인생을 사느라고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무엇인가 있을 때 그것이 오히려 그의 삶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을 보는데 백내장처럼 뿌옇게 만들어 버린다. 무엇인가 잘 되어지고 힘이 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우리 자신도 무엇이 있을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이 있을 때 조심해야 한다. 능력이 있을 때 조심해야 한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 일이 풀려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 알아서 겨야하는 것이다. 건강할 때 알아서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이 잘 대해줄 때 알아서 겨야 한다.
예)옆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잘 해주시는지...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 해줄 때 잘해야 한다. 더욱 조용히 해야 하고... 만나면 무거운 것도 들어드리고... 혹 아이들이 피아노하고 바이올린 첼로를 하는데 소리가 너무 들리지 않느냐고 용서하라고 이해하라고 말해야 하고... 얼마 전에는 설주를 만났는데 첼로소리 피아노 소리 바이올린 소리가 나도 염려 말고 열심히 연습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욱 조심하고 알아서 겨야 한다. 사람이 겸손해져서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
삼손의 위기는 그가 힘이 있었을 때였다. 그가 두 눈이 멀쩡했을 때가 문제였다. 삼손이 참 힘을 쓸 시기는 언제인가? 그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였다. 이전에 삼손이 힘이 있었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쓸모 짝에도 없는 힘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힘자랑을 했다. 뻐기면서 자기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겨야 하고 정복할 대상과 교제하였고 놀았다.
삼손은 힘을 잃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다. 삼손에게 희망이 보인 것은 그가 강할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연약하고 무기력할 때였다. 우리가 승리하는 것은 얼마나 강한가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의지하는가이다. 우리는 시험을 볼 때 연습하고 연습해서 준비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약할 때 나의 강함이 되심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겸손하게 모든 것 하나 쉽게 생각하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
여기서 삼손의 울부짖는 간절한 기도가 있다. “나를 생각하옵소서...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서서.” 이전에는 그러한 기도가 없었다. 그의 힘을 믿었다. 사실, 그가 믿었어야 하는 것은 그 힘의 참 근원인 하나님이었는데 오직 그의 머리카락에만 의존했었다.
그 기도는 통성 기도는 아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간절한 기도였다.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 우리는 얼마나 실수가 많은 사람들입니까? 문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이번 만 나로 강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이다. 삼손이 힘이 있을 때 그는 기도하지 않았다. 여인의 무릎베게에서 잠이나 자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힘이 없어졌을 때 그는 제대로 된 궤도로 들어선 것이다. 우리에게 실수가 많고 부족한 것이 많을지라도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V. 삼손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의 응답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시고 당신의 섭리 속에서 삼손의 사사역할을 감당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회를 주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그의 목숨을 부지시킨 것이다. 그의 눈을 빼고 감옥에서 맷돌을 갈게 하셔서 그에게 하나님께 대한 집중력을 주시고 목숨만을 유지시킨 것이다. 불레셋사람들로서는 삼손을 죽이려면 확실히 죽였어야 했다.
예)필리핀의 구테타한 호나산 대령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푸샾시키고 보내고 가볍게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근절시키지 못할 때 계속 그 불씨가 남아 있었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마지막 쓰시기 위해 섭리 속에 그를 그렇게 목숨만을 유지시켜 주셨던 것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위해 살려 놓으신다.
예)딜릭케라는 사람은 나찌에 반대하다가 나찌 정권에 사형받을 사람으로 찍힌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살아나게 된 것은 살생부의 명단종이가 하도 접고 또 접는 바람에 접힌 부분의 이름이 잘 알 수 없어서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나치의 만행을 말하고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신 하나님을 위해 살았다. 하나님께서는 살리시려면 죽음의 현장에서도 생명을 연장시키신다.
2)하나님께서는 삼손의 머리가 다시 자라도록 했다(22). 그것은 하나님의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삼손의 힘의 비밀은 그의 머리카락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머리카락을 다시 자라나게 하신 것은 그로 하여금 대사를 이루게 하실려고 계획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삼손의 머리가 자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이것이 우리의 의문이었다. 왜 사람들이 삼손이 머리가 자라려고 하면 깍아버리고 또 깍고 하지 아니했을까! 살려두고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이고 이스라엘을 수치스럽게 만들려면 철저히 삼손의 머리카락 담당자를 임명해 두었어야 할 것인데...
3)하나님께서 삼손이 어떻게 마지막 결전을 벌이고 어디서 벌여야 할 줄을 아시고 기회를 주셨다.
그곳은 다곤신전이었다. 적의 본거지에서 싸움을 벌이게 된다. 삼손은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기둥에다가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얘기했고 하나님과 삼손의 계획을 알아차리지 못한 팔레스타인사람들은 삼손을 그 기둥사이로 데리고 갔다. - 그 신전은 니콜라이 교회(약 4000천명수용)보다 컸으리라. 그곳은 다곤신에게 큰 제사를 드릴 수 있고 찬송할 수 있는 곳이었고 불레셋 모든 방백이 모이고 지붕에는 남녀가 삼천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싸우면서 이스라엘이 아주 힘들어 하는 것이 자살폭탄 공격이다. 자살 폭탄은 정신있는 사람이 목표지점까지 바로 가서 터뜨리는 것이기에 막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한다. 이라크와 같은 아랍세계의 테러리스트들은 지하드로서 자살폭탄으로 공격한다고 한다. 하지만 자살 폭탄의 원조는 삼손이다. 함께 그는 죽어갔다.
우리는 삼손의 절망적인 상태를 보면서 모든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게임의 과정도 중요할 수 있지만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과정은 무의미하다. 게임은 결국 마지막 승점을 누가 내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역전 만루홈런이다. 삼손은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삼손은 9회말 투아웃과 같은 상황이다.
예)오래 전 일본과의 결승경기에서 한국이 1점차로 뒤지고 있었다. 9회말 투아웃. 한국이 점수를 못 내면 지는 것이다. 당시 김재박이 번트로 진루해나간다. 그리고 나선 타자는 한 대화! 그가 홈런으로 완전히 역전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켜 놓는다. 그 희열을 맛보아라. 하나님은 우리의 고개와 어깨가 쳐지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운데 역사하신다.
예)축구에도 그런 것이 있다. 월드컵본선 진출 티켓을 놓고 중동과 아시아가 싸우고 있었다. 우리는 북한과 마지막 일전을 두고 있는데 최소한 3:0으로 이겨야 한다. 그리고 가장 유력한 일본은 이라크와 한판승부를 벌이는데 비기기만 해도 본선에 올라간다. 두 경기는 동시에 다른 곳에서 벌어진다. 두 경기하는 팀이 경기를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북한을 3:0으로 이겼다. 그리고 게임에서는 이겼는데 선수들이 어깨가 축 늘어서 있다. 왜인가? 일본이 이라크를 1:0으로 이기고 경기가 거의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 벌어 졌는가? 루즈타임 마지막 이라크의 코너킥 공격! 여기서 이라크의 스트라이커가 머리로 1초를 앞두고 골을 넣었던 것이다. 아직도 기억한다. 일본의 모든 선수는 땅에 쓸어졌다. 그리고 일본열도는 슬픔 속에 잠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패배한 줄로 알았던 한국선수와 온 국민의 기쁨에 넘쳤다.
게임은 끝나봐야 안다!!!!
삼손은 9회말 투아웃부터 일을 했다. 삼손은 루즈타임에 일을 해냈다. 아직 성급하게 인생의 게임을 단정하지 말라. 아직도 남아 있는 시간이 있다. 비록 나의 믿었던 재능이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나의 기대에 스스로 부응하지 못한다 할찌라도 당신의 인생의 게임을 속단하지 말라. 오직 나의 힘을 믿지 말고 그 힘자랑을 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내게 힘을 달라고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라.
VI. 사사기에서의 사이클이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이다. 그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교만하여져 하나님의 심판의 채칙을 맞고 깨어진다. 사람이 볼 때 실패한 인생이다. 그리고 그들은 회개한다. 회개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사사를 보내어 주시고 승리를 주신다.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영광을 돌린다. 그리고 다시 이스라엘은 안일해지고 하나님께 범죄한다. 이러한 사이클이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우리 인생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인생은 연약함으로 늘 실패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쓰시고자 작정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감독이 되신다.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게임이 끝나기까지 실망해서는 안된다. 우리 주님의 지시를 따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신다.
여러분의 인생이 실패하셨는가? 하나님의 기회를 믿으라! 문제가 있는가? 바로 기도할 때이다. 어려움에 봉착했는가? 삼손의 기도를 상기하라. 내게 한번의 기회를 더 주십시오. “주여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당신의 일을 이루게 하소서”의 기도를 하라.
지금이 그 기회인가? 삼손과 같이 몸을 날려라! 하나님이 주신 임무를 완성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