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산의 설매암과 귀절암
거제는 육지와 멀리 떨어진 곳이라 특히 수도 한양과는 1000리 이상 떨어져 있고, 섬이기 때문에 귀양을 많이 보냈던 곳이다. 고려 18대 의종이 정중부의 란으로 거제 귀양 오면서 절정을 이룬다. 1170-1173(약3년)년 까지 거제에 머물면서 많은 문화유물을 남겨 놓고 갔다. 절에 관해서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때부터 거제에도 절이 번창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특히 둔덕면 산방산 주변에는 지금도 절이 많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으나 1950년대 까지 절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 위치는 산방산 비원에서 봉원사 가는 산 밑에 작은 저수지가 있는데 거기에서 산방산으로 오르면 약 20분 걸으면 옛 절터를 만났다. 산방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물을 따라 오르면 신우대(시리대)가 우거진 곳과 마주친다. 그 중앙에는 옛 절터가 보인다. 50여평 되어 보이는 절터에는 주줏돌이 간간이 보이고 기와 조각들이 몇 개 보인다. 절터의 주위는 신우대와 왕대가 섞여 자라고 있으며 몇 백 년 된 나무는 보이질 않는다. 양쪽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와 사르륵사르륵 대 비비는 소리는 연상만 해도 절의 고요한 밤이 생각난다.
산방산 부근에는 7개 정도의 크고 작은 사찰이 있어 다고 하며 그 중 귀절암과 설매암은 1950년대 까지 존재하였다고 한다. 그 시기(고려 초기 서기 1000년경)에 지은 것으로 여겨지는 석굴암(암자)은 지금도 현존하고 있다. 더 자세한 자료는 구할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석굴암은 삼신굴이라고도 한다.
산방산의 전설 (스님과 여인)
산방산은 글자 그대로 산이 꽃같이 아름답다. 임진란 때 옥씨가 피난을 했다는 옥굴이 있고, 비가 오지 않을 때 기우제를 지내던 무지개터, 다섯 가지 오색 흙이 나온다는 오색터, 하늘나라 선녀들이 꽃핀 봄구경을 와서 춤을 추며 놀았다는 선녀바위는 100여 평이나 됨 직하고, 염소굴, 베틀굴, 신선대, 왜구들에게 몸을 빼앗기기 싫어서 천 길 낭떠러지에 몸을 날렸다는 절부암 등 많은 명소가 있다.
거제면에서 바라보는 산방산은 뫼산자와 같이 생겼고, 둔덕에서 보면 금강산 같이 생겨서 경치가 아름답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절 때나 봄, 가을, 삼월 삼짓날,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 등에는 충무, 고성 등지를 비롯하여 거제 사람들이 등산을 와서 하루를 즐기는 곳으로 소문난 명산지다.
산방리 쪽에서 보현암 절 뒤 능선을 타고 산방산 팔부 능선쯤 오르면 큰 방 두어 개 될락말락한 석굴이 있다. 이 굴을 삼신굴 또는 석굴암이라고 한다. 이 석굴 안에 돌을 쌓아 불당을 만들고 거기다가 높이 70m 정도 되는 돌부처 두 개를 모셔 두었는데 목이 부러져 있는 것을 다시 올려놓았고 귀가 달아나고 얼굴 여러 곳이 이지러져 있어,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흉칙하게 되어 있다. 서쪽을 향한 이 석굴은, 석양이 질 때면 동굴 깊숙이 까지 햇빛이 들어온다.
경주 석굴암은 동해의 일출이 솟으면 그 빛이 동굴에 들어오는데 산방산 석굴은 그 반대로 석양 때 햇빛이 들어온다. 석굴은 자연 동굴에 약간 인공을 가한 듯하다. 그 연대는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이 석굴에 삼존불상이 있었는데 육지 어느 절에서 삼존불상을 훔쳐가는 것을 산방산 밑에 있는 설매암과 귀절암, 신도들과 쟁탈전을 벌이다가 불상이 망가지고 또 불상 한 개는 그 때 없어졌다고 한다.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산방산과 삼신굴에 얽힌 전설이다. 이조 문종 때 지우라는 대사가 이 곳 삼신굴에 와서 도를 닦기 위해 매일같이 불경만 외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노루한 마리가 지우대사 석굴 앞에까지 와서 지우대사가 불경을 외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또, 지우대사가 기도 정진을 하면 대사의 옆에까지 와서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곤 한다. 그런 생활이 계속된 지 일 년이 지나고 이 년, 삼 년이 지나도 옆을 떠날 줄 모른다.
어언 9년이 지났다. 지우대사와 노루는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의사는 통했다. 초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산방산의 아름다움과 석양빛이 토굴 입구를 조명하는 한나절이었다. 이 날은 노루가 일적 와서 지우대사의 불경소리를 듣고 있는 모양이 처량하고 애처럽게 보였다. 보기가 딱한 지우대사는 노루를 보고 “말 못 하는 짐승아,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길래 9년 동안이나 불경소리를 듣느냐? 너는 비록 짐승이라 할지라도 불경을 많이 듣고 법문을 좋아 했으니 만일 축생의 몸을 벗어버린다면 반드시 인도 환생할 것이다.”
그러던 그 날 밤은 지우대사의 곁을 떠나지 아니 하고 빙빙 돌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뜻하지만 짐승이라 말은 못 하고 애만 태우는 듯하다. 이렇게 하기를 3일이 된 아침에 지우대사가 있는 굴 앞에서 노루가 죽어 있었다. 지우대사는 정이 들었던 노루를 양지쪽에 잘 묻어 주었다. 그 날 밤 꿈에 황색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서 공손히 절을 하면서,
“저는 어제 새벽에 죽은 노루입니다. 대사님의 불경과 법문을 많이들은 공덕으로 이 산 아랫마을 김아무개 댁 아들로 태어날 터인데 왼쪽 겨드랑이의 둥근 점 속에 노루털이 붙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면 짐작하실 것입니다.”대사가 꿈을 깨니 지난날의 노루가 생각났다. 그처럼 불경을 좋아하더니 인도환생 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랫마을 사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김 아무개가 아들을 낳았는데 겨드랑이 밑에 노루털이 있더라고 한다. 대사는 틀림없구나 생각하고 그 아이가 돌이 지나고 말을 할 때쯤 찾아갔다. 어린 아이는 대사를 보자 절을 하고 반가와 하면서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어린아이의 겨드랑이 밑에는 노루털이 나 있었다. 지우대사는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해 주고 아이의 이름을 원묘라 지어 주었다.
“이 아이는 부처님과 깊은 인연이 있는 아이라 일곱살이 되거든 나에게 보내서 상자가 되게 하십시오.”하니 잠시 생각하던 부부는 다 부처님의 은혜로 인도 환생하였으니 그렇게 하리라 하고 일곱 살 되던 해에 지우대사께 보냈다. 원묘는 머리가 영특하여 지우대사가 가르쳐 주는 불경을 잘 배워서 16세에 오계를 받았고, 대승 경전을 두루 읽어 대법사가 되었다.
원묘는 동굴 안에서 밤낮으로 불경에만 정진하고 있었다. 세모가 가까운 어느 추운 겨울날, 날이 저물고 밤이 깊었는데 험한 산중에서 길을 잃은 여인이 동굴을 찾아왔다.
“여보세요. 스님! 소녀는 지아비가 집을 나간 지가 오래 되어 돌아오지 않아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잃고 잘못 산중에서 헤매게 되었습니다. 날씨도 춥고 밤도 깊어 가니 스님이 계시는 토굴에서 하룻밤 자고 가게 하여 주십시오.”
“보아하니 사정은 딱하오 마는 보다시피 토굴은 좁고 또 기도중이라서 재워 드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스님 기도에 지장이 되지 않게 굴 밖에서라도 은신했다가 가게 해 주십시오. 산중에는 사나운 짐승도 우글거리고, 또 다른 곳보다는 덜 추울 것 같으니···.”
“글쎄요. 이곳은 여인들이 올 수 없는 곳입니다. 기도 도장이니까요. 다른 곳을 찾아 보셔요.” 스님은 염주만 굴리면서 돌아 앉아 염불만 외운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여인은 통사정을 하였지만 스님은 들은 척도 않고 돌아앉은 채 눈을 감고 불경만 염송한다. 그같이 냉정한 스님이 밉기도 하고, 매정하기도 하다.
“여보세요. 스님!” 스님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여인을 바라본다. 여인의 얼굴은 절세가인이다. 스님은 다시 눈을 감고 염주만 굴리면서 여인이 어서 떠나 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여인은 화가 났다. 성난 목소리로, “스님” 하고 불렀다.
“스님은 불경만 읽으실 줄 아시지, 부처님의 자비와 인간 구제를 모르고서야 어찌 불법을 깨우친다 하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원묘는 “아차! 내가 그것을 몰랐구나.” 하며 깜짝 놀라면서 밖에서 떨고 있는 여인을 굴 속 토굴로 들어오게 하였다. 여인은 연약한 몸으로 산을 헤맨 탓인지 따뜻한 굴 속에 들어오자마자 비스듬히 기댄 채 누워서 코를 골며 곤한 잠에 떨어졌다. 비좁은 토굴 속에 여인이 비스듬히 누워 있으니 굴속은 한 치의 여백도 없었다. 젊은 청춘에 처음 맞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과 여체에서 풍기는 향기는 원묘의 정신을 흐리게 한다.
아무리 정신을 가다듬어도 원묘의 마음은 더욱 더 산란해진다. 원묘는 눈을 딱 감고,‘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면서 망상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그럴수록 숨은 가파 오고, 가슴은 뛰고, 여인에게서 풍기는 향취에 몽롱해 촛불이 희미하게 보인다. 연방 관세음보살을 외며 온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원묘는 이 밤이 천 년이나 된 듯 길고 육욕을 벗어나려는 마음은 괴롭기만 했다 밤은 자정을 지났다 타다 남은 촛불가에 화광이 빛나더니 관음보살 상이 나타나서 웃고 있다. 이 때다. 한참 곤하게 잘 자고 있던 여인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서 딩군다.
“스님, 스님! 갑자기 배가 아픈 것을 보니 해산을 할 것 같습니다.”여인이 해산을 한다는 말에 원묘는 앞이 캄캄했다.
“아이쿠 스님 배를 좀 만져 주셔요. 아이쿠 배야.”여인은 스님을 잡고 발버둥 친다. 스님은 정신이 나가서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고 입으로는 연방 관세음보살을 왼다. 도를 닦는 스님으로서는 해산 부정이 제일 큰 부정이라서 도를 닦기란 다 틀렸다.
“스님은 사람이 다 죽어가는 판에 관세음보살만 외옵니까?”여인은 앙칼진 목소리로 스님을 나무란다.
“빨리 나가서. 어린애 목욕물이나 좀 준비해 주셔요.”
이왕에 깨어진 그릇도 닦기는 다 틀렸고 이 여인의 말대로 사람부터 구제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밖에 나가서 함지박에 물을 데워 넣어주고 해산 국에 밥을 지어서 주었다. 여인은 어린애를 안고 해산밥을 맛있게 먹고 또 잠이 들었다. 다도해 수평선 너머로 먼동이 트고, 새벽 햇살이 앞산 마루에 비친다. 밤새도록 지낸 일이 수천 년의 긴 역사 속에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듯하다. 이젠 다 끝난 수도다. 마지막 예불이나 올리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부처님 앞에 기도를 드리는 순간 부처님 모습에 서광이 빛나고 굴 안은 향긋한 향기로 꽉 찼다.
잠자는 여인을 돌아보니 그 여인은 오색구름으로 화해서 하늘높이 둥둥 떠나고 구름 주위에는 새벽에 낳은 아기가 연꽃으로 변하여 방긋이 웃고 있었다. 구름이 움직일 때마다 꽃비가 내린다. 꽃구름 속에 나타난 어제 저녁의 그 여인이 살며시 웃으면서, “나는 호명보살이다. 너는 멀지 않아 보살도를 얻을 것이다. 내가 너를 시험해 보았느니라.” 하며, 꽃구름을 타고 가면서 꽃비를 내렸다.
산방산 주위와 온 마을은 꽃비가 내려 온통 꽃마을이 되었다. 이때부터 이 산을 산방산이라 하고 그 아래 마을을 산방리라 했다.
산방저수지에서 바라보면 깊은 골짜기 중간에 두 절이 있었다고 한다.
망원렌조로 잡아본 절터
폐사지에서 발견된 가와조각
사찰의 주줏돌로 보임.
석굴암(삼신굴,부처굴)에 서식하는 박쥐
목이 달아난 부처
다시 설치된 부처
절터 주변에는 얼음과 다래나무가 무성하여 산방 아줌씨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