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 대화 vs 독백 】
드라마를 보다보면 극중 독백이 나옵니다. 우리 시청자는 들을 수 있지만, 정작 극의 주인공들을 알지 못하게 말입니다. 이 독백을 통해 극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는 것도 맞습니다. 독백은 이렇게 정작 들어야 될 사람은 듣지 못하고 제 삼자의 이해를 돕는데 활용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상대방에게 있어 독백은 침묵과도 같은 효과를 가진다고 봅니다. 알아들을 수 있게 표현하여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백과도 같은 방법이 우리 일상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시간적인 차가 있을 뿐 서로의 독백이 대화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바로 편지 혹은 이메일, 문자입니다. 이메일과 문자를 우리는 주고받고 합니다. 스마트 폰을 활용하여 실시간 채팅이 지원되고 있지만, 예의를 조금 더 갖춘다면 우린 정중한 표현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이메일을 활용하고, 급하지 않은 내용은 방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답을 받을 수 있는 자신의 번호를 함께 남길 수 있는 문자를 사용합니다. 이는 독백과도 같지만, 들어주는 상대를 지정하여 분명히 전달이 됩니다. 따라서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에 이들은 해당 되지 않습니다. 오늘은 “대화중”에 독백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화중인데 어떻게 독백이 활용될 수가 있을까요?
독백이 대화를 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대로 인해 나의 이야기가 독백이 되기도 합니다. 자칫 이런 상황은 이야기 하는 이가 불쾌감을 느끼게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할 때는 마주보고 시선을 맞추며 적절한 음성으로 하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대화를 원활하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면 대화중에 방해가 되는 요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자신이 가진 요소보다 상대로 인한 요소가 더 많이 떠오를 것입니다. 넓게는 대화를 나누는 주변 환경을 시작으로 하여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개인적인 친분정도까지 말입니다. 이중에서 독백과도 같은 화법이 대화중의 방해요소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독백처럼 느껴질 만큼의 대화방법 하면 떠오르는 것은, 말하는 시간이 혼자 너무 길어 상대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이런 대화,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보통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어른들이 활용하는 화법이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화법이기에 그럴 수 있고 이 목적에는 적합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중간 중간 이해여부를 확인하며 한다면 보다 좋은 대화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화중에 독백과도 화법이 사용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같은 세상을 바라본다고 전제합니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며 코끼리를 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코끼리 코를 만진 장님과 코끼리 몸통을 만진 장님, 그리고 코끼리 다리를 만진 장님 세 명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 본다면 그들은 그들이 만진 것이 코끼리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세 명의 장님이 원활하게 대화를 하였다면 얻었을 결과물이지만, 만약 한 명이라도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자신만의 기준을 내세우며 대화를 지속하게 된다면, 이는 대화의 방해요소가 되며 대화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사용하는 대화체 중에 “그래서요?”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칫 이 말을 들은 어른은 우리 아이들에게 화가 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껏 아이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한 말들인데 아이가 지신과 상관없다는 어투로 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대화 자체와 관련된 반응이 아닌 것입니다. 대화 따로 자신의 생각 따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독백과 같은 느낌을 주는 말을 우리의 아이들이 사용합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외계어와 같은 말은 거의 독백입니다. 누군가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사용하는 말들이라는 것입니다. 슴가, 지못미, 근자감 등 상대에게 직접 전달할 수도 필요도 없지만 자신의 것을 표현하는 데에는 이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일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표현하는 것에만 공을 들인 것으로 독백처럼 보여 집니다. “그래서요?” 라는 말은 자신을 방어만 하려고 하는 어투로 볼 수가 있습니다. 상대에게 자신의 기준이나 이해정도를 알려주지 못 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할 때 우리는 ‘눈높이’ 대화가 필요함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높이가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그 높이를 조정하게 됩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새로운 단어를 듣게 되고 그 뜻을 알게 되고 자신이 그 대화에서 적절히 활용해 보며 높이를 맞춰준 것에 대해 반응을 합니다. 자신의 기준에 휩싸여서 수준이 높거나 낮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반응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것은 ‘독백’과 같다고 봅니다. 벽과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독백은 대화의 방해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에서 독백처럼 쏟아내는 말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이는 중간중간 이해여부를 확인하여 보완 될 수 있습니다. 또는 자식의 독백 같은 말을, 자신의 기준만을 내세우고 있는 말을 들을 때 우리 어른이 벽이 되어 안 들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는 아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독백이기에 되려 이해하기는 쉬울 것입니다. 따라서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한 반응으로 알려주어 대화로 바꾸어 나가셔야 합니다. 어른이 되어 신입사원 면접을 가면, 면접관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대화를 시도합니다. 질문은 형식일 뿐이지, 미리 문제지를 예상하고 그에 따른 답을 외워가서 면접관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면접관은 우리의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아이와 나누는 대화중에 독백이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세요. 아마 대부분의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독백은 서로에게 편함을 제공합지만, 공감까지 주지는 않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대화, 시도해 보세요.<행가래로 1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