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9. 7. 13.~14.(주말)
●산행지: 낙동정맥 3/8구간 (아랫삼승령-피나무재)
●산행코스: 아랫삼승령-학산봉-쉰섬재-저시재-지경고개-독경산-창수령-울치재-맹동산-명동산-박점고개-포도산삼거리-장구메기-화매재-삼군봉-황장재-갈평재-대둔산-먹구등-명동재-느지미재-왕거암-대궐령-갓바위전망대-주산재-별바위봉-피나무재
●준비물: 2리터생수, 500cc생수3, 사과,딸기요굴트4, 정통파운드케익, 샌드6종류각1개, 사탕3종류
●거리: 약 74Km
●소요시간: 약 27h
●누구랑: J3클럽 정맥9차종주대 12명
●회비: 100,000원
●날씨:19~28도
●산행경과:
- 11:56 : 아랫삼승령
- 14:07 : 지경고개
- 15:18 : 독경산
- 15:30~16:00 : 창수령(자래목이)
- 17:05~17:16 : 울치재
- 19:06 : 맹동산
- 19:27~20:33 : 저녁
- 21:28 : 명동산
- 22:26~22:43 : 박점고개
- 23:18 : 포도산
- 00:51 : 장구메기(여정봉)
- 02:02~02:13 화매재
- 03:12~03:23 삼군봉
- 03:49~06:52 : 황장재
- 07:23 : 갈평재
- 08:21 : 대둔산
- 09:36 : 태행산
- 11:18 : 금은광이
- 11:52 : 두수람
- 13:10 : 내원마을
- 13:34 : 용연폭포
- 14:30 : 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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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는 삼승령 굴바위봉을 경계로 백암온천이 있는 울진군 온정면에서 영덕군 창수면으로 넘어가고 곧 복숭아 주산지 지품면으로 갑니다.
내륙 낙동쪽으로는 황장재 직전 삼군봉에서, 영양군 석보면에서 청송군 진보면으로 넘어가고 곧 만나게될 청송읍과 주왕산면은 사과 주산지입니다.
영덕 영해에서 영양을 걸쳐 안동으로 오간 간고등어길이 황장재입니다.
이번 구간은 추산대장님이 창수령에서 족발, 막걸리, 산도복숭아를 지원해주시고 그것으로도 모잘라 장구메기와 화매재 중간지점에 음료와 물을 대포시켜 등짐이 한결 가벼울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저 따라다니기만 하는 타성에 젖다보니 그간 스스로 트랭글 따라가기도, 지도보기 조차도 하지않고 예습과 감만 가지고 쫒아다니고 있습니다.
대둔산에서 돌아나와야 되는데 태행산으로 대형 알바를 하며 띠지가 보이지 않아도 비탐구간이라 걷어낸 모양이구나 생각하고, 지금 가는 길이 먹구등일까 태행산일까 의심이 들긴했지만 중간에 지도한번 펼쳐볼 생각을 안했네요.
태행산 정상석을 보고서야 아차차!! 지도를 펼쳐보고 다시 먹구등으로 따라붙으려 했지만 본진과 3시간 이상 쳐져있어, 먹구등 직전에서 내원마을로 탈출을 결정하고 첨벙첨벙 계곡을 따라 트레킹, 용연폭포와 학소대를 구경하고 주왕산 대전사로 나와 고속버스로 상경합니다. 혼자라도 피재까지 가서 막차나 새벽에 상경할까도 싶었지만 월욜 스케쥴을 살리고 정맥 구간을 접기로 했습니다.
사람과 분위기 따위 신경 안쓰고 정맥만 보고 다니고 있습니다만 저로서는 먼저 트랭글 운영방법을 배우는게 급선무네요. 그래야 누구 도움없이 나혼자 다닐 수도 있으니깐요. 체력은 자신이 붙었는데 40km 넘어가면 발뒷꿈치 물집은 여전합니다. 담번에 혼자갈 때는 비행기모드 해제하고 따라가기라도 켜놓던가 갈림길에서 지도를 자주 보던가 이런 일이 없도록 연습을 또 한번 해야 되겠어요.^^ 덕분에 몇 년만에 주왕산 구경은 잘했습니다.
3-1 : 아랫삼승령-맹동산 26km , 3리터
3-2 : 맹동산-황장재 24km, 2리터+사과요굴트750cc
3-3 : 황장재-피나무재 27km, 3리터+딸기요굴트750cc
영양군 수비면 발리 전구간에서 이용했던 식당에서 점식식사를 하고 덕재를 넘어 장파리를 지나 아랫삼승령으로 이동합니다.
♤ 삼승령(三僧嶺/514m)
삼승령은 영양군과 창수면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514m이다. 보림․집희암․자무기 등에 있던 절에서 스님들이 이 고개를 넘어 '영양과 서울을 왕래할 때 반드시 3명의 승려가 동행하여 넘었다 하여 삼승령이란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윗삼승령과 아랫삼승령으로 나뉘어져 있다. 지명의 유래는 윗삼승령과 아랫삼승령 사이 굴아우봉(747.3봉) 좌측으로 큰 바위가 3개 있는데 마치 승려의 형상을 하고 있어 삼승바위라 하고 그 곳을 중심으로 북쪽 고개를 윗삼승령, 아래쪽 고개를 아랫삼승령이라고 한다. 굴아우봉 동쪽으로는 깎아지른듯한 절벽이고 그 곳에 삼승바위가 있지만 정상에서 삼승바위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상을 내려오면서 나무사이로 모습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는데 보이는 옆모습이 마치 사람의 얼굴과 흡사하다.
아랫삼승령에서 잠깐 오르면 처음 만나는 조그마한 봉우리 학산봉입니다.
쉰섬재도 지나는군요.
어느 시절에는 재너머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던 요긴한 교통로였을텐데...
영화 밀정에서 활약한 상해 임정의 애국여성 남자현 선생의 시댁이 이곳 아래에 있는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입니다.
이름도 없는 고개를 또 지나고....
♤ 독경산(獨慶山/684m)
경상북도 영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영덕군 북서쪽 창수면 창수리에 있는 산으로 삼승령을 비롯하여 창수령, 울치재 등과 이어져 있다. 정상에는 무인 산불감시탑과 헬기장이 있다.
창수면 수리 집희암마을의 성왕사·보림리 오현사·백청리에 걸쳐 있는 스님들의 독경 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져 이름 붙은 독경산(讀經山/564m)과는 다른 산이다.
♤ 창수령(자래목이/울팃재/泣嶺/行哭嶺/918지방도/490m)
영덕군 창수면에서 영양읍 무창리로 넘어가는 해발 490m의 918번 2차선 포장도로로 창수면쪽에서 올려다 보면 자라의 목 같이 생겼다고 해서 자래목이라고도 한다.
작가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 배경지로 알려진 곳으로 예전에는 영해에서 내륙을 잇는 주요 길목이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20여 km 이어져 있는 산줄기를 통칭 서읍령이라 한다. 고려말 몰락해가는 왕족들이 한 많은 눈물을 뿌리며 이 고개를 지났다 하여 읍령이라 전해진다는 설화가 있는 곳이다. 고갯마루엔 "낙동정맥 영양5구간"을 알리는 안내판과 이동통신 안테나가 서 있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읍령(泣嶺) 혹은 울티재라고 불렸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의 창수령 남쪽에 비포장 울티재가 남아 있다. 고개가 너무 험해서 울면서 넘었다는 뜻이며, 후삼국 시대 때 왕건과의 전쟁에서 패한 궁예 부하들이 울면서 넘어 도망간 고개라는 설과 조선시대 백성들이 관리들에게 세금으로 바칠 곡물 등을 짊어지고 울면서 넘어간 고개라는 설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인근 동네 이름인 창수리를 따서 창수령이라고 이름붙였다. 일제가 군 경계선을 확정지을 때 정상보다 600m 정도 서쪽으로 그었고, 따라서 군 경계선과 창수령 정상 사이의 구간은 태백 산맥 서쪽이지만 행정 구역으로는 영덕이며 창수령은 창수리 한가운데 있는 고개가 되었다.
♤ 울치재(泣嶺)
조선조까지만 해도 영양은 영해부에 속한 작은 현이었습니다.
영양읍에서 영덕군 영해로 넘나들던 고개로 옛날 영양현이 폐현되고 영해부로 통합되면서 조세와 환곡을 짊어지고 이삼백리를 운반하다보니 힘들고 고통스럽고 서러워 울고 넘었다고 하여 읍령(泣嶺/울치재)이라고 불렀다는 선인들의 신산한 삶의 모습이 이 고개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다른 이야기로는 재가 높고 험하여 옛날에는 석양에 이 재를 넘으면 필시 화를 당했다고 해서 울고 넘었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 풍력발전(風力發電)
영양풍력단지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풍차를 이용하여 자연의 바람 에너지를 기계 에너지로 변환시켜 발전하는 방식
전력선을 공급할 수 없는 오지나 섬에서 실용되기도 한다. 풍력발전에는 직접식과 축전식이 있다. 직접식은 교류 풍력발전기를 직접 전력계통에 이용하는데, 풍차를 일정한 속도로 회전시키기 위해 풍속에 따라 날개의 기울기를 변화시키는 등의 제어장치를 달기도 한다.
축전식은 풍력발전기에서 얻은 전기를 축전지에 축적한 후 이용하는데, 이것은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하지만 설비비가 비싼 것이 결점이다. 이밖에 디젤 발전기를 함께 설치하기도 한다. 풍력 에너지는 바람을 받는 면적이 반지름 1m의 원일 경우 풍속이 10m/s이면 약 1MΩ의 전기를 얻을 수 있다.
풍력은 풍부하고 재생가능하고 깨끗하며 온실 효과를 유발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매력적인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풍력 발전단지 자체는 시각, 청각적인 거부감과 기타 다른 환경에 미치는 영향때문에 항상 환영받지는 못하고 있다.
♤ 당집
무당이 가장 보편화된 명칭이며, 이밖에도 무인(巫人)·무격(巫覡)이라고도 한다. 지역별로 각기 독특한 명칭이 있다. 서울·경기도 지역에서는 기자(祈子)·만신·박수(남자무당), 호남지방에서는 단골·단골레, 영남지방에서는 무당·무당각시, 제주도에서는 심방이라 한다. 무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속의 제의(祭儀)인 굿을 주관하는 사제로서의 역할이며, 이외에도 예언·치병 등의 역할을 한다.
무당의 유형은 크게 강신무(降神巫)와 세습무(世襲巫)로 나뉜다. 강신무는 무당이 되기 전에 '신이 내렸다', '신이 지폈다', '신이 들렸다' 등으로 표현되는 강신체험인 신병(神病)을 통해서 된 무당이다. 가계(家系)를 통해 이어지는 세습무와는 달리 남녀노소·빈부귀천의 차이없이 어느 계층, 어느 연령에서도 강신무는 나올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세습무는 무당의 가계에서 태어나 무업을 이어받아 된 무당을 말한다. 강신무가 한강 이북의 경기도·황해도·평안도·함경도와 태백산맥 서쪽으로 한강 북쪽에 해당되는 강원도지역에 분포하는 데 비해 한강 이남의 경기도·경상도·전라도와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 일대의 무당들은 모두 세습무이며, 제주도지역에도 존재한다. 강신무의 경우 남녀가 모두 무당이 될 수 있지만, 세습무의 경우 동해안지방과 영호남지방의 무당들은 모두 여성이며 제주도에만 남녀 무당이 공존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강신무의 경우, 무당이 되기 위해서는 무병이라는 강신체험을 겪어야 하고, 무당이 되기 위한 제의인 내림굿을 해야 하며, 내림굿을 해준 무당으로부터 무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는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비록 신이 내렸을지라도 큰굿의 절차를 주관할 수 없으면 정식 무당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강신무가 되는 과정에서 무업에 관한 것을 배우는 수련 과정은 필수적이다. 세습무의 경우 가계를 통한 무업의 전승으로 무당이 되며, 강신무의 무병 같은 강신체험이 없다.
강신무와 세습무의 성무(成巫) 과정의 차이는 다른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먼저 강신무의 경우 자신에게 내린 신을 모시는 신단(神壇)이 있는데, 세습무에게는 신단이 없다. 자신에게 내린 신이 없기 때문에 신을 모시는 개인신단이 불필요한 것이다. 강신무의 경우, 굿의 과정중에 신내림을 통해 신의 말인 공수를 인간에게 직접 전할 수 있으나, 신을 내릴 수 없는 세습무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강신무가 주재하는 굿에서는 무당 자신이 신들려 직접적으로 신의 역할을 하고 신의 말을 전하는 것이 중심요소가 되지만, 세습무가 주재하는 굿에서는 그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며, 노래·춤·재담·놀이가 중심이 되어 연희성(演戱性)·예술성이 부각된다. 무악(巫樂)에 있어서, 강신무의 굿은 신내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타악기가 위주가 되며 가무(歌舞)의 가락과 속도가 몹시 빠르고 흥분된 도무(跳舞)가 뒤따르는데 세습무의 굿에서는 타악기 외에 취타악기·현악기까지 다양하게 동원되며, 노래의 가락이나 춤의 속도가 완만하다. 또한 굿의 과정에서 강신무는 각각의 신을 나타내는 신복(神服)을 입어야 되는 데 반해, 세습무의 경우 그러한 신복이 거의 없다. 그리고 세습무의 굿에서는 신의 하강로를 의미하는 기다란 신간(神竿)을 세우지만, 강신무의 굿에서는 무당 자신이 직접 신을 내릴 수 있으므로 신간이 필요없다. 한국 무속에서 이러한 강신무와 세습무의 구분은 사회의 발달과 함께 지역간의 차이가 사라지면서 점차 약화되어가고 있다.
♤ 맹동산(萌東山/756m)
풍력단지 맹동산을 가기 직전 동해쪽으로 400m 벗어난 곳에 명동산이 있습니다.
♤ 명동산(明東山 上峰/807.5m)
목장 임도 옆 절개지의 남은 부분인 이곳은 높이가 807.5m이다.
주위의 다른 산보다 높고 특히 바람이 세어서 나무들은 잘 자라지 못하고 풀들만 자란다고 하여 맹동산(민둥산)이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높이는 756m이다. 지금은 그 반쪽이 잘려져 나가 도로로 변해버렸고 나머지 반쪽엔 옛 이름을 간직하고 싶은듯 조그만 정상석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의 위치는 낙동정맥이 백암산을 지나 동해바다와 나란히 하며 내려오다가 창수령(자래목이)에서 한번 곤두박질 치다가 주왕산 초입 황장재 중간지점이다. 광활한 목장이 있으며, 들머리인 삼의계곡은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르며 사계절이 공존하는 산이다. 활엽수가 많으나 강한 바람 때문에 우산과 같이 위가 벌어져서 자라는 모양을 한 나무가 많다. 자연마을로는 산밑골(삼의골), 상삼의, 중삼의, 하삼의, 맹동산, 벙이골 등이 있다. 산밑골은 마을이 산 밑에 자리잡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벙이골은 금박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벙이(부엉이)가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