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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의성군과 상주시의 보현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7년 11월 12일 (토요무박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서리가 내린 차갑고 약간의 바람이 불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1도에서 영상 12도
산행인원 : 칠갑산과 K산악회 보현지맥 종주대 총 23명
산행코스 : 문암정(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비포장 임도(철조망)-비로재(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잡풀등로(전기 울타리)-과수원-논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갈림삼거리(좌)-169.9 삼각점봉-
158 무명봉-166 묘지봉-소나무 식재지-콘크리트 포장도로-안동김공 묘지들-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징걸재(923번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 임도-만천 김조현선생 사은비-
감나무 과수원-철조망 통과-163.5봉-185 무명봉-206봉 이정표(정상, 효천지, 징걸재 보현지맥)-경상북도의성교육청교육장 공지사항판-바위암릉 우회-전망바위-330 간벌목봉-345 무명봉-바위암릉-
451.1봉-비봉산 04 이정목과 이정표(정상 0.9 Km, 죽림마을 1.8 Km와 달제학생야영장 2.5 Km, 대곡사 1.9 Km)-벤취 쉼터1-전망바위-바위암릉 우회-458 바위봉-비봉산 05 이정목-바위암릉길-
이정표(정상 0.1 Km, 천앙지 1.6 Km와 적조암 1.9 Km 및 대곡사 3.0 Km, 이봉 0.8 Km와 달제학생야영장 3.3 Km 및 대곡사 2.7 Km)와 작은 돌탑-벤취 쉼터2와 사각나무데크-안전목책과 로프구간-계단-
비봉산(579.5미터, 정상석과 삼각점, 비봉정과 산불감시초소, 헬기장) 이정표(산두골 용샘 1.3 Km, 반정고개 2.0 Km, 대곡사 3.1 Km와 달제학생야영장 3.4 Km)-계단-소나무 등로-196 무명봉-
힌티재 이정표(죽림마을 1.5 Km, 정상 1.7 Km)와 작은 돌탑-203.9 벌목봉-171 무명봉-비포장 임도-갈림삼거리(좌)-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사거리-능선진입-139.8봉-시멘트 포장도로-민가-
도암고개(갈림사거리)-양파밭-경주김공묘-능선진입-시멘트 포장도로-사과와 감 과수원-민가와 축사-28번과 59번 2차선 포장도로(공사중)-다인정수장-묘지2기-능선진입-130 벌목봉-무명안부-
비포장 임도-도암동네체육시설-비포장 임도-김녕김씨 묘지들-밭 경작지-서룡고개(59번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 임도-남원양씨가족묘원-시멘트 포장도로-인공수로-감나무 과수원-밭 경작지-
논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1차선 포장도로-민가-감나무 과수원-능선진입-95.2 삼각점봉-93.4봉-비포장 임도-사갑고개(인공수로와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잡초지대-능선진입-비포장임도-
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감나무 과수원-잡풀지대 능선진입-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간벌지대-198.1 삼각점봉-널부러진 간벌목지대-바위턱-잡목과 가시등로-지독한 잡풀지대-비포장 임도-
풍산류공묘지-무명안부-116 무명봉-125 무명봉-벌목지대(좌)-166봉-소나무등로-시멘트포장도로-우무실고개(2차선 포장도로, 수암종택과 우물1리 표지석) 이정표(수암종택 0.3 Km, 나각산전망대 5.2 Km와
경천대 20.5 Km)-능선진입-제2회 우천현인문화제 단상-수암종택 뒷길-밭 경작지-벌목지-비포장 임도-벌목 후 조림지-95 마지막 무명봉-우물리 합수점(위천과 낙동강 합수점)-지맥산행 종료-
수암종택-산행종료
산행거리 : 비봉산을 제외하고 비산비야를 따라 익어가는 감을 따 먹으며 꾸준하게 진행하여 24.08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보현지맥 마루금 : 22.91 Km와 접속구간 위천 합수점에서 수암종택까지 01.17 Km
산행시간 : 영하로 내려간 기온과 불어 오는 찬바람으로 쉬는 시간 없이 꾸준하게 진행하여 07시간 49분 (03시 56분에서 11시 45분까지)
산행트랙 : 20171112 보현지맥 마지막제8구간 비로재-합수점.gpx
교통편 : 보현지맥 전용 40인승 버스 이용
수암종택 앞에서 삼겹살 파티 후 곧바로 귀경
보현지맥이란 ???
백두대간의 매봉산(태백)에서 시작한 낙동정맥은 주왕산과 통점재를 지나 가사령에 내려서기전 1.1 Km 지점에서 서쪽으로 큰 산줄기 하나를 가지치고 가사령으로 내려서 침곡산으로 간다.
서쪽으로 가지친 큰 산줄기는 베틀봉(934봉), 면봉산(1121봉), 보현산(1126봉)을 지나 석심산(750.6봉)에 이르러 다시 두갈래로 갈라진다(분기점에서 39.4 Km).
한줄기는 남서진하며 방가산(755.8봉), 화산(828.1봉)과 팔공산(1,192.8봉)을 지나고 가산(901.6봉)에서 북진하여 좌베틀산(369.2봉)과 청화산(700.7봉)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새띠마을에 이르는 길이120.7 Km되는 산줄기다.
석심산(750.6봉)에서 또 한줄기는 북서진하며 어봉산(634.2봉), 갈비봉(672봉), 산두봉(719봉), 구무산(676.3봉), 푯대산천제봉(359봉), 삼표당(443.7봉), 해망산(400봉), 삿갓봉(290.7봉), 골두봉(314.8봉), 곤지산(330봉), 비봉산(579.3봉) 등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팔공산쪽으로 온 산줄기를 마주보며 끝을내는 길이 127.4 Km가 되는 산줄기다.
두 산줄기는 위천을 남과 북으로 애워싸고 서로 마주보고 달리다가 다시 위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위천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며 만나게 되는데 위천의 북쪽 울타리가 보현지맥이고 위천의 남쪽 울타리가 팔공지맥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팔공산 줄기를 팔공기맥(지) 또는 낙동내륙기맥, 금호북기맥등으로 부르고 있는 모양인데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는 이를 각각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서북쪽 산줄기 전체를 보현지맥으로 석심산에서 남서쪽 팔공산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나도 그렇게 부르는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산세로야 팔공산쪽이 더 크고 유명세도 있지만 우선은 길이가 단 6.7 Km이긴 하지만 긴쪽을 장자로 봐야할 것 같고 석심산에서 북서쪽 산줄기만 따로 떼어내서 이름을 붙이자면 그쪽에서 제일높은산인 산두봉(719봉) 이름을 따야 할텐데 이름없는 산이라 좀 어색하고 잘 알려진 보현산(1124.4봉)의 위상도 감안하여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산두봉 줄기를 보현지맥으로 부르고 석심산에서 남서쪽 팔공산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부르는게 좋을 듯 싶다.
보현지맥 북쪽의 물은 용전천, 길안천, 미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보현지맥 남쪽의 물은 위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위천의 남쪽 울타리인 팔공지맥의 북쪽물은 위천으로 흘러들어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고 팔공지맥의 남쪽물은 금호강으로 흘러들다 가산을 지나고부터는 낙동강에 직접 흘러든다.
비산비야의 마루금을 걸으며 사라져 가는 등로를 확인하고 마지막 합수점에서 팔공기맥의 추억을 떠 올리며 감격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보현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을 위해 떠나는 시간이 아쉬운지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로 인해 몸은 자꾸만 움추러 드는데 마음만은 부자된 느낌으로 장암역으로 향한다.
배낭을 둘러멘 몇명의 승객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장암역에 도착을 하고 찬바람이 불어 오는 버스정류장에서 산악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많은 생각을 정리하게 만들고 있다.
2년 전 가을인 9월 초에 많은 산친구들과 함께 팔공기맥과 보현지맥이 겹치는 낙동정맥 상 가사령에서 출발했던 산행이 이제서야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보현지맥 산행도 추억속으로 멀어지는 순간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돈 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먹고 사는 일을 제외하고 이렇게 큰 열정으로 뚜렷한 목표를 세워 실천 할 수 있음에 더욱 더 애착을 가지고 덤벼 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지만 역시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가 좋아 목표를 세워 실천해 가는 것이 좋아 오늘도 이렇게 달려 온 것은 아닐련지.
가끔은 귀찮기도 하였고 쉬고 싶었으며 게으름 피우고 싶었지만 그 유혹들을 모두 물리치고 이루는 성과물이다 보니 직접 실천하지 못한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큰 애착이 생긴 듯 느껴진다.
겨울을 준비하는 찬바람이 온 몸을 얼리지만 그럴수록 더욱 뜨거운 열정으로 녹이면서 오늘 하루도 멋진 이야기를 만들며 오래토록 잊혀지지 않을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무사히 산행지에 도착을 해 안전하게 산행을 마무리하고 잠시 정들었던 산친구들과 이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무탈하게 귀가할 수 있기를 바음속으로 빌어 보는 시간이다.
단체 산행을 하다 보면 늘 아쉬운 부분이 새벽 너무 이른 시간에 산행을 시작하다 보니 어둠속에 보이는 것 하나 없이 그저 등로를 찾아 걷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이 진행한다는 사실인데 오늘도 역시 새벽 4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산행을 하다 보니 비봉산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는 제대로 된 조망이나 풍경 한번 구경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산행후기를 정리하는 입장에서 보면 어둠속 진행이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역시 많은 미련이 남아 있어 또 다시 홀로 가는 산행을 생각 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약간의 구슬땀을 흘리며 비봉산 정상에 도착을 하니 생각보다 찬 바람이 강하게 불어 추위를 느끼지만 정상에서 가야 할 비산비야의 마루금을 살펴보며 그 등로를 찾아 보는 시간은 그저 꿈결에서 헤매는 시간처럼 다가온다.
처음에는 사진 우측의 큰 산줄기가 보현지맥 마지막 마루금이라 생각을 하였는데 지도를 확인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우측의 거대한 산줄기 좌측으로 산인지 들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작은 산줄기 하나가 흐르고 그곳이 바로 지금부터 종주대가 걸어 진행을 해야 할 마지막 등로임을 알고는 잠시 여러가지가 복잡하게 내재되어 있는 심정으로 감탄사만 연발해 보는 시간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마루금 잇기 산행이기에 느낄 수 이는 복잡한 마음이 잠시 교차하는 비봉산 정상에서의 풍경이다.
그 비산비야를 따라 가니 저 멀리 위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 부근의 하얀 운무가 아름답고 그 넘어 솟아 있는 팔공기맥의 산군들이 또한 그 옛날 추억을 꺼내며 잠시 추억속 여행을 가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은 산행도 하기 전에 산행대장의 어이없는 결정과 이어진 멘트에 아연 실색을 하면서 홀로 버스에서 내려 운암정까지 왕복 약 2.5 Km를 걸어 진행을 하게 되었다.
지난 10월 말에 보현지맥 제7구간으로 운암정까지 걸어 왔기에 당연히 운암정 앞 도로에서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조금은 이른 시간인 새벽 3시 10여분이 지난 시간에 트랙을 확인해 보니 운암정에서 1.2 Km 정도 앞으로 더 진행된 지점 도로가에 버스가 정차되어 있고 산행대장이 말하기를 시간이 이르니 새벽 4시쯤부터 산행을 시작한다고 해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다 궁금해 새벽 3시 40여분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에 산행대장에게 왜 운암정이 아닌 이곳이냐고 물으니 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여 큰 의미가 없기에 이곳에서 오늘 산행을 시작한다는 답이 돌아 온다.
순간적으로 산행대장에 대한 강한 불신과 함께 내가 있으면 안될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닐까 자문자답하면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먼저 산행 준비를 하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만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이해하지 못할 산행대장의 진행 방식에 불만이 가득하지만 지금까지 몇구간 함께한 산악회이고 또 오늘이 마지막 구간이라 스스로에게 화를 억누르며 홀로 진행하기로 하고 산행대장에게 이 산객은 지금 버스에서 하차 해 지난 구간 마무리한 운암정으로 돌아 가 그곳에서부터 산행을 사작할 예정이니 기다리지 말고 산행대장 계획대로 진행하라고 말해 주고 곧바로 버스에서 내리는 시간이 새벽 3시 40여분으로 마음이 착착하기만 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산행을 해 봤지만 지맥 산행을 주관하는 산행대장이 그것도 맥 잇기 산행을 주목적으로 내려 와 그 목적과 상반되는 내용으로 약 1 Km 가 넘는 거리를 빼먹고 진행을 한다는 사실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아 오늘이 이런 불만스런 산행은 마지막이 되길 간절히 바래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진행될 것이였다면 홀로 내려 와 마음 편히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에 올라 진행을 해도 여유있게 즐기며 진행이 되었을 것을 괜시리 산악회를 이용해 마음 고생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니 앞으로는 더욱 더 산악회를 따라 산행하기가 어려워진 것은 아닐까 고민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10여분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며 도로 우측으로 정상적인 마루금도 확인하고 지난 구간 산행 날머리로 이용했던 운암정에 도착을 해 산행 준비를 한 후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있으니 두명의 산객이 뒤따라 오는데 이 두분들도 역시 맥 잇기 산행에 열정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 산객들이기에 잠시 불만족을 이야기 하고 차가운 새벽 공기에 쌓였던 불만을 날려 버리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보현지맥 마지막 구간은 3명이서 따로 떨어져 정상 마루금을 따라 진행하게 되어 치밀어 올랐던 화도 참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산행을 출발하게 되었는데 나무데크에 하얀 서리가 내렸음에도 생각보다 춥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으로 운암정을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4시가 가까워진 시간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어이없는 상황인지라 앞으로 산행을 주관하는 사람은 그 산행 목적을 특별한 이유없이 훼손하며 진행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꼭 인지하고 리딩을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한동안 진행하면 만나는 징걸재 부근에서 923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게 되는 이름없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잠시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이제 도로를 벗어나 좌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어 들어가 보니 들어가자 마자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나 있고 그 비포장 임도 우측 즉 방금 전 걸어 온 2차선 포장도로 방향으로는 단단한 철조망이 세워져 있다.
그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비포장 임도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시작해 보는 시간이다.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전진하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어느 지도에는 이곳을 비로재로 표기를 해 놨고 또 어느 지도에는 지난 구간 지나 온 한골 들어가는 입구쪽을 비로재로 표기를 해 놔 헷깔리기만 하다.
또한 지명 이름도 비로재와 비릿재 또는 비릇재로 표기를 하고 있어 어느 것이 맞는지 정답은 없는 듯 보인다.
비릿재(비릇재, 비로재)는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삼분리에서 달제리로 넘어가는 경계 지점으로 옛날 한양으로 가는 길목으로 길손들이 산적들의 습격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어 피 비린내가 가시지 않아서 비릿재라고 한다는 유래가 보인다.
이곳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휘어 가는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우측 잡초들이 자랐다 말라 죽어가고 있는 철조망 옆 소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약간의 잡초들이 보이는 등로를 따라 걸어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짧은 나무 조림지를 지나 솔갈비가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그 등로 우측으로는 전기줄이 설치되어 있지만 전기는 흐르지 않는다.
한동안 그 전기줄이 쳐져 있는 솔갈비가 부드러운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 과수원으로 떨어지는데 이 전기줄은 그 과수원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였다.
과수원을 지나니 벼가 수확된 논둑으로 마루금은 이어지고 잠시 더 진행하니 논 둑 좌측 위로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 늘 등장하던 버려진 봉고차 한대와 가전제품이 눈에 들어 온다.
누가 언제 이 산중에 이런 자동차와 가전제품을 버렸는지 오늘 아침 이 산객이 경험한 것과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 나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버렸으리라 생각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논으로 내려 와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계속 벼 수확이 끝난 말라있는 논을 통해 걸어 진행을 하니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고 좌측으로 볓발자국 걸어가니 다시 도로 우측으로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논 경작지가 따라 오는데 잠시 후 곰 인형을 하고 있는 풍선이 나뭇가지에 앙증맞게 걸려 있어 혼자 웃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다시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좌측 임도를 따르고 무명묘지를 지나 약간의 잡초들이 보이는 소나무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멀지 않은 곳에 169.9 삼각점봉을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짙은 어둠속에 걷다 보니 보이는 것이 없어 산행 트랙과 지도만 살피며 이곳이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는 것이 전부이다.
북서쪽 방향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바뀌었던 산행 등로가 이제는 다시 북서쪽으로 이어지고 약간의 잡목이 보이는 좁은 등로를 찾아 걸어 진행을 하니 또 다시 무명묘지 한기와 만난다.
묘지를 지나 여전히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지도 상 166봉 직전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 15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정상 등로를 확인해 본다.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나오지만 걷고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추위를 느끼지는 못하고 다만 얼굴과 손에 느껴지는 감각은 오늘이 상당히 추운 날씨임을 알려주고 있다.
또 다시 만나는 무명묘지를 지나 안동김공 묘지를 통과하니 키 작은 소나무들을 식재한 조림지와 만나 한동안 그 조림지 좌측 상단부를 통해 걸어 본다.
잠시 걸어 진행하니 너럭바위도 만나고 조금은 등로 찾기 까다로운 곳을 지나 어렵게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도로 좌측으로 안동김공 묘지들을 지나고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 잠시 헤매다 어렵게 정상 마루금을 찾아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방금 전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편안하게 진행이 된다.
잠시 후 시멘트 포장도로는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올 가을에 떨어진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종주대가 지날때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남긴다.
잠시 후 923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징걸재에 도착을 해 진행 방향의 등로를 찾아 본다.
이름도 요상한 징걸재이기에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징갈재가 있는 송호리를 찾아보니 산골짜기에 위치하여 특히 솔나무 꽃향기가 가득하여 송화라 칭하고 늪과 모래가 많이 있다고 하여 사부에서 사호로 변하여 송화와 사호가 합하여 송호가 되었다고 한다.
원 마루금은 고갯마루 위로 올라 좌측 철조망이 쳐진 곳 절개지로 오르며 진행을 해야 되지만 오를 수 없어 고갯마루 서쪽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들어가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들어가니 임도 우측으로 만천 김조현선생 사은비가 보이고 그 좌측 과수원을 타고 오르면 징걸재 절개지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 진행되는데 갑자기 녹슨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는다.
주위를 살펴보니 그 철조망을 넘어 등로는 이어지고 한동안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지도산 163.5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165미터봉이라는 하얀 이정판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다.
고도는 낮지만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면서 제법 일반 등로처럼 보이고 계속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18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느낌상으로 이제 본격적인 비봉산 오르막 등로가 시작된 기분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지만 역시나 보이는 것이 없으니 답답하기는 매 마찬가지이가.
다시 이어지는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며 이어가니 효천지 갈림 이정표를 만나는데 거리 표시 없이 그저 방향 표시만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효천지는 의성군 다인면 송호리에 있는 저수지로서 만조시에는 1만 헥타르 정도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효천지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등로 좌측으로 경상북도의성교육청교육장이 자기들 소유재산이라며 공지사항이 크게 세워놨는데 허가 없이 무단 사용이나 점유를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잠시 더 수묵히 쌓여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는 점점 우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지도를 살펴보니 바위암릉 우회길로서 우측 끝 가장자리에는 전망대라는 표시가 있어 이 어둠속에 보이는 것이 없을 것 같아 좌측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직등으로 오르니 거대한 바위암벽이 눈 앞에 나타나며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보여 다시 사면 등로로 뒤돌아 내려오며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밝은 대낮에는 그 바위암릉을 통해 진행하며 멋진 풍경과 조망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어둠속에 보이는 것이 없는 시간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커 뒤돌아 내려 온 바위암릉 구간이다.
사면 등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이제 정동 방향으로 진행이 되고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이 시작되는데 가끔 커다란 바위들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잠시 더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로 올라 뒤돌아 보니 다인면쪽 불빛이 아름답게 빛나는데 몇장의 사진에 담아도 잘 보이지 않아 아쉬운 시간이다.
그 바위 전망대를 지나 오르면서 잠시 등롤를 헷깔려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곳으로 잘못 들어가 심한 고생을 한다음 정상 등로를 찾아 오르니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흩어져 있는 지도 상 300봉에 도착을 한다.
지도 상 300봉이지만 이 산객의 오룩스 트랙에는 330미터라 표시되는 봉우리를 내려가니 여전히 널부러져 있는 간벌목들이 보이더니 어느 순간 그 벌목들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열린다.
점점 해발 고도를 높혀 345미터 봉도 지나니 눈 앞에 다시 거대한 바위 암벽이 가로막고 좌측으로 우회하며 오르니 우측 사면 등로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계속 된비알 오르막 등로를 따라 굵은 땀방울들을 흘리다 보니 등로 우측 뒤에서 붉게 빛나는 하늘이 열리기 시작하고 곧이어 선답자들의 띠지가 많이 붙어 있는 451.1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3000산 오르기의 한현우님은 이곳을 비봉산2봉으로 표기를 해 놨고 이정표에서 그렇게 표시가 되어 있는데 지도에는 이름없이 그저 평범한 451.1미터봉으로만 표기가 되어 있다.
비봉산2봉이라는 451.1봉을 지나 내려가니 비봉산 04라는 이정목이 보이고 이제 정상까지 0.9 Km 거리라는 이정표도 다시 만난다.
대곡사와 죽림마을 하산 등로 표시가 보이는 비봉산2봉이라는 이정표를 지나 벤취 쉼터 하나를 통과하니 등로 앞에 거대한 바위암봉이 가로막고 등로는 그 바위암봉을 우측으로 크게 우회하며 내려가게 되어 있는데 내려가기 직전 좌측으로 너럭바위가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니 멋진 풍경과 조망이 펼쳐져 있어 잠시 어둠속에 사진 몇장 남기고 출발한다.
남쪽으로 다인면 들판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우측으로 눈을 돌려 서쪽 방향을 살펴보니 잠시 후 올랐다 내려 와야 할 비봉산에서 낮아지는 보현지맥 마루금 넘어 뚜렷하게 내려가는 산줄기 하나가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예천과 상주의 경계에 솟아 있는 건지봉쪽 산줄기가 여명의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잠시 더 그 너럭바위에 머물며 날이 밝아 오길 기다려 보지만 시간이 더 필요해 포기하고 지금부터 올라가야 할 비봉산 정상부만 어렵게 사진에 담고 가파른 내리막 바위 등로를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좌측 사면 낙엽 등로로 이어지는데 우측으로는 낭떨어지 절벽이 숨어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다시 바위들이 보이고 잠시 후 바위 몇개가 산재되어 있는 458 바위무명봉에 도착을 해 시원하게 불어 오는 새벽 찬바람에 흐르는 땀방울을 말려 본다.
잠시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비봉산 05라는 이정목을 지나고 바위 등로를 타고 낙엽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오르니 시멘트처럼 보이는 공사 자재들이 쌓여 있는 능선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또 다른 바위를 넘어 정상까지 0.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지나온 방향으로 2봉까지 0.8 Km 라는 거리 표시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천앙지와 적조암 그리고 대곡사 하산 등로가 표시되어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이정표를 출발하니 등로 좌측으로는 벤취 쉼터2개가 그리고 우측 숲속으로는 넓은 사각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여름날 시원하게 불어 오는 바람을 맞으며 쉬어가기 편하도록 되어 있지만 오늘은 찬바람이 불어 와 한기를 느끼기에 그냥 지나쳐 오른다.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우측으로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등로와 좌측으로 계단 등로가 나뉘는데 처음에는 나무계단이 보이지 않아 좌측 낙엽 등로를 선택했는데 결국 비봉산 정상으로 오르는 곳에는 많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비봉산 정상을 다녀 와 이곳으로 내려오며 보현지맥 마지막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야 하기에 갈림삼거리도 확인하고 오르니 드넓은 공터에 비봉정이란 팔각정과 정상석 그리고 삼각점과 산불감시초소 그리고 이정표와 헬기장이 보이는 비봉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사진 한장 남기고 찬바람이 불어 추워지기에 열려있는 비봉정이라는 팔각정으로 들어 가 아침식사를 하면서 허기를 달래고 잠시 후 떠 오르는 일출을 감상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아침식사 후 아침 7시 3분이 지나자 남동쪽으로 지난 구간 걸었던 해망산과 문암산 좌측 저 멀리 낙동정맥 마루금이라 생각되는 능선 위로 두꺼운 구름을 뚫고 아침 햇살이 어렵게 올라오고 있어 차가워진 손을 호호 불어가며 멋진 추억을 다시 남겨 본다.
비봉산(579.5미터)은 일명 자미산이라고도 부르는 명산으로 고려시대 이전에는 태행산 또는 대항산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삼국시대에 견훤이 이곳에 성을 쌓고 응거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산을 동쪽에서 바라보면 봉이 날개를 펼치고 앉아 있는 모습이며 남쪽에서 보면 장군이 투구를 쓰고 서있는 형국이고 북쪽에서 건너다보면 옥녀봉을 바라보는 용기찬 장군기상으로 보인다.
북쪽에서 건너다보면 옥녀봉을 바라보는 용기찬 장군기상으로 보이고 북쪽 산밑으로는 예천군 지보면과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이 하얀 비단처럼 가로 놓여있고 사방으로 넓은 평야와 학가산, 팔공산, 보현산, 갑장산, 노악산, 속리산 등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중턱 아래에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년)에 왕사였던 지공 선사와 나옹선사가 창건한 대곡사가 자리하고 있다.
맑으면 환상의 일출로 오늘처럼 두꺼운 구름속을 빠져 나오면 구름과 함께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일출이기에 또 많은 사진을 남겨 본다.
멋진 일출까지 감상하고 이제 남쪽 안전목책이 설치되어 잇는 곳으로 가 진행 방향과 다인면 방향을 살펴 본다.
처음에는 이곳 비봉산에서 남서쪽으로 흘러 내려가는 모습으로 보이는 커다란 산줄기가 보현지맥 마루금이라 생각을 하였는데 그 산줄기는 예천군 풍양면에서 이어져 내려 온 이름없는 산줄기로서 보현지맥은 사진으로 보이는 산줄기 좌측으로 비산비야를 이루고 있는 산줄기이다.
그 산줄기를 따라가면 저 멀리 하얀 이불을 뒤집어 쓴 듯 보이는 낙동강과 위천이 만나는 지점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오고 그 건너편으로는 팔공기맥 상 냉산과 청화산 지나 우측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토산까지 아름답게 조망이 되고 있어 얼어가는 손가락을 데워가며 많은 사진으로 남겨 본다.
그렇게 남쪽 방면을 살펴보고 잠시 후 헬기장이 보이는 북쪽 방향으로 가 운이 좋다면 엊그제 마무리를 했던 운달지맥의 산줄기와 지난 달 마무리 한 문수지맥 마루금을 볼 수 잇을 것 같아 찾아 보지만 헬기장 주위를 둘러 싼 잡목들로 인해 보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봉산 정중앙부에 위치한 산불감시초소로 올라 잠겨진 문 앞에서 살펴 보지만 역시나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낙동강과 그 좌측으로 흐릿하게 문수지맥의 검무산이 최대치로 보이고 그 뒤로 학가산을 찾아 보지만 아침부터 짙게 드리워진 박무로 인해 안타깝게도 학가산은 구경도 못하고 내려간다.
이곳 예천과 상주 그리고 의성쪽 낙동강에는 총 7개의 지맥 합수점들이 모여 있어 전국 그 어느 지역보다도 다양한 산행이 이뤄지고 있는 곳인데 오늘은 아쉽게도 팔공기맥 산줄기 하나만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던 아쉬운 시간이었다.
이제 보현지맥과 팔공기맥 그리고 운달지맥과 문수지맥을 마무리하였으니 남아 있는 숭덕과 작약 그리고 국사지맥 산행을 위해 적어도 세번 이상을 더 다녀가야 할 곳들이기에 저 멀리 보이지 않는 북쪽 낙동강을 살펴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는 사이 종주대들은 모두 비봉산을 떠나 이 산객 홀로 남겨지고 조금 더 아쉬운 마음 달래며 비봉산 정상부와 비봉정 그리고 주위 풍경들을 다시 한번 천천히 사진에 담고 방금 전 올라 왔던 남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타고 비봉산을 출발해 본다.
비봉산 정상에서 가파른 내리막 계단을 타고 빠르게 내려가니 소나무 등로가 반겨주고 이제 막 떠오른 햇살의 빛내림이 그 소나무 사이로 파고들며 환상의 등로를 만들고 있다.
잠시 후 몇명의 종주대를 앞질러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이제 등로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바뀌면서 등로에 떨어져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들로 인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잠시 후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 있는 196 무명봉을 지나는데 생각해 보니 먼 거리도 아닌데 갑자기 400여 미터의 고도차이를 극복하고 가파르게 내려왔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만큼 산세가 낮아져 있다.
생각보다 등로는 뚜렷하게 잘 나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이 걸어 진행이 되고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이정표와 함께 바위 그리고 나즈막한 돌무덤들이 보인다.
지도를 살펴보니 아무 표식이 없는데 선답자들은 이곳을 힌티재라 하였고 집에 돌아 와 찾아 보니 흰티재는 공식적인 이곳 지명 이름이었다.
흰티재는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평림리에 있는 고개로서 평림리는 약 1400년경 박평년이란 사람이 정착하였다고 전하고 서당이 있었기에 서당마을 이라고도 하는데 서당 앞에는 큰 소나무 둘이 있었으므로 하여 평림 또는 평지라고도 한다.
흰티재는 조선시대에는 보행으로 한양을 왕래하려면 이 고개가 중심 도로여서 누구나 이 고개를 넘으려면 흰 의관에 기우제를 지냈으며 과거 객들은 백의에 책 보자기를 놓고 제를 지내고 간다고 전하며 백영현 또는 흰티재라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공식적인 이름과 유래까지 가지고 있는데 지도에는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을까 궁금해지는 흰티재이다.
흰티재에서 죽림마을 1.5 Km라 표기된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 다시 몇명의 종주대를 앞지르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참나무가 간벌되어 있는 203.9봉에 도착을 하지만 잡목들로 막혀있어 조망도 없기에 정상 모습만 사진에 담고 곧바로 출발한다.
잠시 자작나무가 예쁘게 서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고 다시 평이한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금새 가을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억새 등로도 만나 잠시 만추도 즐겨보는 시간이다.
억새지대를 지나니 깊게 깔려있는 활엽수 낙엽들이 종주대가 지날때마다 바스락 거리며 계절의 변화를 실감시키고 있다.
한동안 그렇게 빠르게 진행을 하다 잠시 잡목이 사라진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비봉산과 그 우측으로 451.1봉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방금 전 떠 오른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다시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여러갈래 가지를 치고 있는 벗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17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출발하는 시간이다.
아침식사부터 급격하게 내려간 기온으로 인해 약간의 한기를 느껴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다시 온 몸에 열기가 퍼지고 발걸음은 자꾸만 더 빨라지는 느낌이다.
방풍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빠르게 걸어가니 저 앞으로 종주대 선두가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능선을 벗어나 비포장 임도를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간다.
비포장 임도 주변으로도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모습으로 이 종주대를 반겨주지만 그 가는 가을을 느끼지도 못하게 발걸음이 빨라 계획보다 일찍 산행이 끝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이제부터 한동안 비포장 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 아니면 나즈막한 야산을 따라 진행하게 되기에 등로 자체보다는 주위 풍경에 더욱 신경을 쓰면서 산행을 해 본다.
잠시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나무들이 낮아진 곳을 통해 방금 전 내려온 비봉산이 빼꼼히 올려다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멀어지는 선두팀을 잡기 위해 더욱 빠르게 걸어 본다.
별 특징 없는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갈림사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는 좌측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며ㅛ지들이 나타나고 그 넘어 저 멀리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따스하게 반짝이는 비봉산과 그 우측으로 451.1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그 아래 조용히 아침을 맞이하는 평림리 죽림마을이 평화롭게 보이는 아름다운 아침이다.
다시 빠르게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임도 좌측 위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몇기를 지나고 곧이어 임도 우측으로 다인면 덕지리와 서룡리 마을쪽 풍경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덕지리 끝자락에서는 우측으로 휘돌아 가는 보현지맥 마루금도 살짝 보이고 있는데 워낙 비산비야로 이뤄진 마루금이다 보니 정확한 판단은 쉽지 않다.
잠시 후 비포장 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우측 묘지 아래 조금 더 선명한 조망과 풍경을 살핀 후 내려가니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는 우측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야 한다.
비포장 임도로 오르니 풀섶에 내려 앉은 서리가 하얗게 세상을 바꿔 놓고 보기만 해도 추위가 밀려오는 아침이다.
잠시 후 잔디가 잘 자라고 있는 묘지들을 지나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활엽수 낙엽만이 두껍게 깔려 있다.
조심하며 산초가시나무를 피해 완만하게 오르니 참나무들이 보이는 139.8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을 하는데 이 산객보다 앞서 진행하던 선두 종주대는 직진으로 내려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우측으로 크게 꺽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완만하게 휘어지며 진행이 되고 잠시 후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와 다시 만난다.
이제부터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도암리 마을을 통과하는 시간이다.
잠시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따지 못한 감들이 익어가고 드넓은 밭 경작지에는 올 가을에 심어 놓은 양파의 푸른 싹들이 비닐하우스에 보호를 받으며 자라고 있다.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민가 한채를 지나 이동통신탑이 서 있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은 마을 이름을 따 도암고개라 불리는 곳이다.
도암고개는 도암리에 있는 고개로서 도암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넓은 편이나 지반이 암석으로 되어 있고 주변에 산과 바위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도암리는 마을의 지반이 암석으로 되어 있고 부근에 질그릇을 굽던 가마골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자연마을로는 동마람, 마산두, 백암(뱀실), 가마골, 조산지가 있다.
동마람은 마을 동쪽에 말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동마암이라 부르던 것이 바뀐 이름이고 마산두는 마을 뒷산의 형태가 말의 머리처럼 생겨서 지어진 이름이며 백암(뱀실)은 마을 뒤에 희고 큰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뱀이 많이 서식했다 하여 뱀실이라고도 불리며 가마골은 질그릇을 구워내는 가마가 있어서 이름 붙여졌고 조산지는 못 가운데 작은 산이 있었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도암고개 안부를 지나서도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올라가니 도로 우측 저 멀리 밭에서는 지역 주민들 몇명이 양파를 비닐하우스 밭에 심고 있다.
도암고개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걸으며 도로 우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예천과 상주시의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계속 따라오고 있어 지도를 펴 놓고 확인을 해 보지만 이름 없는 살줄기들이다.
잠시 더 걸어 오르며 진행하다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멀어지는 비봉산이 아쉬운 작별인사를 건네고 도암마을로 통하는 시멘트 포장도로엔 선두로 앞서가던 종주대들이 이제서야 정상적인 도로를 타고 이 산객이 지나온 등로를 걸어 내려온다.
갑자기 선두가 되어 홀로 걸어 오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바로 우측 아래로 양파를 심고 있는 주민들이 보여 몇마다 말을 나누고 앞에 보이는 감나무에서 익은 감 몇개를 따먹어도 되느냐고 물으니 모두 따 먹어도 된다고 알려준다.
잘 익은 감 두어개를 따 먹으니 얼어있어 이가 시리지만 맛은 최고의 달콤함으로 이 산객의 허기를 달래주고 있다.
감나무에서 몇개의 익은 감을 더 따 먹고 있으니 종주대 선두팀이 도착을 하고 잠시 후갈림삼거리에서 직진으로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들어가니 경주김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다시 선두팀은 좌측 능선으로 사라지고 정상 마루금을 확인하니 이곳에서 원 마루금은 묘지 위 뒷쪽으로 나 있어 그곳으로 걸어 간다.
잠시 후 능선에서 내려가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는데 선두팀은 좌측 저 멀리 또 다른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 아래로 사과 과수원이 보이는데 아직 수확하지 못한 붉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그 바로 위에는 대봉감들 역시 수확하지 못하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붉게 익어가고 있어 다시 두어개의 익은 대봉감을 먹으니 배가 불러오며 식수를 한모금도 마시지 않은 산행으로 기록되었던 보현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이 되었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살피고 익어가는 감을 따 먹고 진행을 하니 배낭 무게가 줄지 않아 어깨가 짓눌리는 느낌이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언덕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비봉산과 451.1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곳에서 이곳 감나무 과수원까지 이어지는 비산비야의 마루금도 끊어질듯 이어지며 이 산객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그 언덕을 넘으니 시멘트 포장도로에는 두껍게 깔려 있는 소나무 갈비가 인상적이다.
계속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우측으로 양파가 심어진 밭 경작지들이 보이고 잠시 후 도로 우측 아래로는 거대한 축사 건물도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축사 분뇨 냄새가 상쾌한 아침 공기를 희석시키며 코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이동통신탑이 서 있는 민가 한채를 지나 내려가니 저 멀리 이제부터 올라야 할 다인정수장 건물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등로 좌측 아래로는 의성군 다인면이 있는데 면소재는 보이지 않지만 거리상으로는 상당히 가까운 거리이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고 있는지 공사가 한장 진행중이라 직접 그 도로를 건너 진행하지 못하고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 우측 다인정수장 방향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올라 본다.
다인면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의성군 북서부에 있는 면으로 면의 동쪽은 독점산(311미터)과 문암산을 연결하는 일월산맥이 안동시와 경계를 이루고 북쪽에는 비봉산(579미터)이 솟아 있으며 남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완만하여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미곡생산이 주산업이며 양서 양수장에서 공급되는 관개용수로 전농토가 수리안전답인데 양서 양수장은 1966에서 1976년에 건설된 몽리면적 29.36 Km2에 이르는 양수장으로 다인면뿐만 아니라 인근의 단북면과 안계면에도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원리에는 관개시설물 제조업체 등이 입주한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봉정리에 대곡사가 있으며 그 경내에 13층석탑이 있다.
행정구역은 서릉리, 산내리, 가원리, 송호리, 도암리, 평림리, 덕지리, 덕미리, 양서리, 용곡리, 봉정리, 달제리, 삼분리, 외정리, 신락리, 용무리 등 16개리가 있으며(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 38개리) 면사무소 소재지는 다인면 서릉길 37이다.
먼지가 폴폴 나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그 공사중인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오르니 등로는 다시 낡은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편안하게 걸어 올라 본다.
잠시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건물이 서 있는데 그 주위로는 철조망까지 쳐져 있고 접근금지라는 안내판까지 걸려있어 일반 민가는 아닌 듯 싶어 가다가 정문쪽을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다인전수장이었다.
그 다인정수장 건물 입구를 지나 뒤돌아 보니 여전히 비봉산과 그 좌우측으로 이어지는 보현지맥 마루금이 끊어질듯 이어지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잠시 더 걸어 올라 능선으로 들어가니 묘지2기가 보이고 그곳에서 앞서 도착한 선두팀들이 쉬면서 우측 아래에 있는 감나무에서 익은 감을 따 먹고 있어 다른 산우님 한분을 모시고 이 산객은 먼저 출발한다.
잡목이 우거지고 산초나무 가시가 방해를 하는 능선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오르니 갑자기 등로에는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더욱 어려움을 느끼고 길찾기에도 잠시 애를 먹는다.
어렵게 그 간벌목들을 헤치며 진행하여 소나무들이 보이는 130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으로 휘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잎이 큰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등로를 만나 걸어 내려가고 잠시 후 이름없는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른다.
약간의 잡목들과 키 큰 소나무 그리고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려있는 소나무 등로를 만나 어렵게 진행을 하고 잠시 후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를 만나 눈 앞에 보이는 147.1 삼각점봉을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그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그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니 멋진 소나무들이 보이고 그 소나무 숲에는 벤취쉼터와 사각탁자 그리고 조금 더 지나 넓은 공터에 운동시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임도 좌측으로 보이는 안내판을 살펴보니 이곳은 도암동네체육시설로서 과연 얼마나 많은 도암 주민들이 이곳으로 운동을 하러 오는지 의문스러운 공원이었다.
자기 돈이 아니라고 마구 쓰는 지자체와 돈을 주고도 제대로 감사하지 못하는 국가 기관 역시 아쉽고 불편하기는 매 마찬가지처럼 보인다.
도암동네체육시설이 있는 공원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지나온 비봉산에서 이곳 도암리까지의 비산비야로 이뤄진 마루금이 한눈에 펼쳐져 있고 다시 낙엽이 쌓여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맥 잇기 산행에 충실해 본다.
잠시 후 갈림삼거리에서는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꺽이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이 되고 잠시 후 임도 좌측으로 묘지들을 만난 후 논과 밭 경작지들이 보이는 곳으로 나와 우측 위로 이어지는 밭 가장자리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눈 앞 정면 방향으로는 다인면사무소가 있는 마을들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오늘 새벽 어둠속에 걸었던 나즈막한 보현지맥 마루금 뒤로 의성군에서 새로 개설한 일월산맥이라는 산줄기도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밭 경작지를 좌측에 두고 우측 가장자리로 올라가니 다시 감나무들이 보이고 종주대들이 감을 따 먹는 동안 오르다 우측을 보니 거대한 양파 밭이 펼쳐져 있고 좌측으로는 잘 갈아 엎은 밭 뒤로 다인면 마을이 가깝게 다가와 있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구경하며 진행을 하니 금새 수로삼거리로 표기가 되어 있는 59번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좌측 다인면 도암리에서 우측의 산내리를 이어주는 도로 고갯마루인 이곳에서 59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보이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계속 진행해 본다.
잠시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비포장 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면서 갈림삼거리가 보이는데 그 삼거리 한쪽에는 남원양씨가족묘원이란 이정석이 보이고 아무리 살펴봐도 가족묘원이 없어 이정석만 세우고 묘지는 만들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곳을 지나 도로 우측으로 드넓은 양파 밭을 구경하며 걸어 전진하니 이제부터 끝도 보이지 않을 밭 둑이 길게 이어지고 그 우측으로는 콘크리트로 만든 인공수로도 일직선으로 보현지맥 마루금과 같이 진행되고 있어 엊그저께 운달지맥에서 걸었던 기억에 이번에도 그 인공수로를 타고 걸어가니 몇명의 종주대도 뒤를 따라 그 인공수로 안을 걸어 보는 색다른 경험도 해 본다.
인공수로가 잡목들과 잡풀들로 더ㅏ 이상 진행하기 어려운 곳에서 좌측으로 탈출하니 과수언이 짧게 나타나고 곧이어 감나무 과수원이 펼쳐지는데 그곳 감나무에도 몇개의 감들이 남아 있지만 이제 배가 부르니 보기만 하고 통과한다.
감나무 과수원을 지나 좌우측으로 밭 경작지를 두고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논 둑으로 이어지는데 등로 우측 아래로는 거대한 축사단지가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벼 수확이 끝난 논 둑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같은 농로를 따라 걸어가는 기분이 묘하기만 하다.
계속 이어지는 논둑을 타고 걸어가니 진행 방향 저 앞쪽으로 흰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잠시 후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걸어 전진하는데 곧이어 갈림삼거리에서는 좌측으로 틀어 걸어 본다.
잠시 걸어가니 도로 우측의 민가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짖어대기 시작하고 흰 연기는 바로 그 민가 앞 배추밭에서 말린 식물들을 태우는 중이었다.
다시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틀어 민가 앞 방향으로 걸어 진행하다 주인장에게 왜 감을 따지 않았는지 물어 보니 사람도 없고 감이 작아 특별히 사용할 곳도 없어 그냥 놔 뒀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그 민가 앞에서 직진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위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다시 감나무 과수원 가장자리를 돌아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감나무 과수원을 휘돌아 파란 물통이 보이는 곳에서 좌측 능선 방향으로 진입을 하고 약간의 잡목과 잡풀들을 헤치며 걸어 전진을 하니 바로 앞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는데 바로 95.2 삼각점봉에서 나는 소리이다.
다가 가 살펴보니 종주대 후미가 비봉산을 오르지 않고 우회해 이곳 95.2봉으로 먼저 와 사진을 담고 있는 중이기에 반갑게 인사 나누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안계412번 삼각점인데 오래되었는지 표식을 전혀 알아 볼 수 없었지만 그 옆 안내판을 보고서야 해발고도와 삼각점 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더 많아진 종주대들과 함께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와 같은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소나무 등로가 환상으로 열려 있다.
잠시 멈춰 사진 몇장 남기는 사이 선두팀은 앞서 달아나고 잠시 후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소나무들이 보이는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상의 93.4봉을 넘는다.
잠시 트랙에 위치를 입력하는 사이 나머지 종주대도 앞서 달아나 이 산객은 주위 풍경과 포인트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종주대 선두를 뒤따라 걸어 본다.
계속 이어지는 환상의 소나무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들이 보이고 그 아래 산내리와 상주시 중동면쪽 산줄기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산내리를 찾아 보니 많은 정보들이 보이고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어 정리를 해 보면 산내리는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리로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동과 신촌동 일부를 병합하여 산내동이라 하였다.
내동은 조선시대 1609년 황의중이라는 선비가 개척하였는데 양지바르고 아늑한 산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동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음달은 불당 남동쪽에 있는 산밑 음지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햇빛이 오후가 되어야만 들므로 음달이라 부르게 되었고 새터는 밀양 박씨와 안동 김씨가 새로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새터라 부르게 되었으며 사갑은 마을 뒷산 기슭이 뱀이 누워있는 형태라 하여 사갑이라 부르게 되었다.
용승골은 마을 중턱의 큰 골짜기가 용이 승천하는 형상과 같아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뱀골은 용승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냇가 옆이라 뱀이 많이 있었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신라 시대에는 상주군 다인현에 속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밀성군 다인현에 속하였다가 조선 시대가 되어서는 예천군 다인현에 속하였으며 1906년 비안군 현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동과 신촌동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군 다인면 산내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1225호에 의거하여 산내리로 개칭되었다.
서쪽과 북쪽에는 비봉산(579봉)의 남쪽 사면 끝자락에 위치한 높이 200미터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가로 놓여 있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비교적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비봉산 줄기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합류하여 만들어진 말지천이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하는데 말지천을 중심으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곡과 함께 특용 작물을 재배하고 있으며, 배산 임수의 지형에 소규모의 자연 부락이 산재하여 있다.
내동에서 상주군 중동면으로 넘어가는 동막 고개, 용신골에서 상주군 중동면으로 넘어가는 뒷고개, 내동에서 용산리로 넘어가는 모산재, 내동에서 서릉리로 넘어가는 통보재 등의 고개가 있으며 가실들, 방골들, 봉림들, 사갑들, 살구재들, 앞가매, 집앞들 등의 들이 있다.
새터 앞 들판에 그 물을 마시면 무병 장수 한다는 전설이 깃든 우물이 있었는데 1983년 이 자리에 상수도를 설치하여 현재는 이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의성군의 서쪽 다인면 내에서도 서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구릉성 산지의 산간 마을이다.
내동, 용승골, 사갑, 새터 등의 자연 마을이 있는데 동쪽으로는 서릉리와 가원리, 서쪽으로는 상주시 중동면, 남쪽으로는 용무리, 북쪽으로는 덕지리, 서릉리와 면하고 있다.
의성군 서부를 관통하는 지방도 923호선이 지나가고 있고 최근 벼농사를 대신해 수익이 좋은 가지 하우스를 시작하는 농가가 있으며 그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사갑 저수지가 있다.
다시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조금 더 걸어가니 우측으로 밭 경작지를 지나 방금 전 헤어졌던 인공수로가 보이는 갈림사거리의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이 바로 사갑고개라 불리는 곳이다.
이 사갑고개는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산내리의 마을 중 마을 뒷산 기슭이 뱀이 누워있는 형태라 하여 사갑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사갑마을에 있는 고개라 사갑고개라 불려진다.
사갑고개를 지나 인공수로를 위에 두고 통과한 후 다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휘어 올라가니 한여름 지독했을 잡초지대가 나타나는데 이제는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죽어가는 갈색 초원을 넘어 간다.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능선으로 들어가며 잠시 뒤돌아 보니 비봉산에서 이곳으로 이어져 온 마루금이 여전히 길게 펼쳐져 있고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희미한 등로가 멋진 소나무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소나무 능선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따라 진행이 되고 잠시 후 만나는 갈림사거리 안부에서는 직진으로 오르니 또 다시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 역시 직진의 비포장 임도로 진행을 한다.
이제 우측으로는 상주시 중동면과 우측으로는 다인면 용무리를 경계로 진행되는 듯 싶은 등로이다.
잠시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임도 우측 밭 경작지에 남자 두명이 무엇인가를 캐고 있어 물어 보니 냉이를 캐고 있다며 보여 준다.
인사 나누고 계속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또 다시 드넓은 양파밭이 나타나고 그 양파밭을 우측에 두고 좌측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그 양파밭 위쪽으로 크게 휘어지며 우측으로 이어진다.
밭 가운데로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 양쪽으로 다시 감나무 몇그루가 보이고 그 감나무를 지나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를 지나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그리고 잡풀들이 우거졌던 능선으로 이어진다.
능선으로 직접 오르기가 까다로워 우측 밭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니 다시 평해황씨와 몇기의 묘지들이 보이는 곳을 지나 좌측 능선으로 올라 본다.
여전히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들 그리고 잡풀이 앞을 가로막지만 올라야 하기에 조심하며 오르니 능선은 그런대로 진행이 가능해 보인다.
능선을 지나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그 나즈막한 능선을 지나 묘지와 밭 경작지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로 연결되어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그 비포장 임도는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이어지고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에 논을 두고 우측에는 밭 경작지를 두고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양파밭에 스프링 쿨러까지 설치를 해 양파밭에 물을 주고 있는 듯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해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비봉산이 제법 멀어지며 그곳에서 이곳 산객이 서 있는 곳으로 이어진 보현지맥 마지막 구간의 나즈막한 등로가 눈에 들어 온다.
걷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았지만 사라지는 등로를 찾아 농사철에는 논과 밭 경작지를 피해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듯 보이는 등로이고 특히나 원 마루금이 개발되면서 자꾸만 변하기에 이렇게 산줄기를 이어가며 걸어 보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기만 하다.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다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그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이나고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그 임도는 밭 경작지 위 가장자리를 휘돌아 산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커다란 바위 두개가 임도 양쪽에 서 보초를 서듯 보이는 곳을 지나 오르니 등로 우측 양파밭에 방굿돌이 박혀 이는데 위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만졌는지 반들거리고 있다.
그곳에서 다시 비봉산 방향의 마루금을 확인하고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가 사라지며 산초나무 가시가 앞길을 막고 있어 참으로 어렵게 올라가는 시간이다.
어렵게 정상 마루금을 찾아 오르니 등로는 다시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더욱 진행을 어렵게 만들고 힘들게 간벌된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오르니 198.1 삼각점봉이 나타난다.
안계303번이라는 삼각점이 박혀 있고 해발고도는 198.1미터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준.희님의 산패에는 삼각점봉 197.5미터라 적어 놓고 있다.
그곳 198.1 삼각점봉에서 일부 선두 종주대는 쉬었다 가기로 하고 이 산객과 다른 종주대 한명은 먼저 출발하기로 하고 널부러진 간벌목들을 헤치며 사라진 등로를 찾아 어렵게 그 삼각점봉을 내려가 본다.
방향만 잡고 그 널부러진 간벌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이번에는 잡목과 아카시아 그리고 산초나무 가시들이 앞을 가로막아 온 몸에 약간의 생채기를 만들며 진행을 한다.
조금은 편안하게 진행이 되는 줄 알았는데 지맥 산줄기임을 각인시켜 주듯 등로는 그렇게 잠시 험악한 등로를 보여주고 있다.
기묘하게 생긴 바위턱을 지나 지독한 가시나무 지대를 통과하니 등로는 다시 지독한 잡목지대로 이어지고 있어 한동안 진행에 애를 먹는다.
그렇게 그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지대를 어렵게 빠져 나오니 이제는 종주대 키 보다 더 웃자랐던 쑥부쟁이와 야생 식물들이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죽어 있는 잡풀지대를 통과하는데 한여름 이곳을 통과한 선답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시간이다.
지독했을 그 잡풀지대를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진행하니 그 끝자락에는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있어 조금은 안심을 해 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이어 풍산유공 묘지들이 있는 곳을 지나 그 묘지 뒷쪽 능선으로 오르니 지독한 산초나무 가시들이 악마의 이빨을 드러내고 기다렸다는 듯 온 몸을 사정없이 찌르고 있어 비명소리가 절로 나는 시간이다.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지대를 지나 어렵게 진행을 하니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 죽어가는 무명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곳 등로에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주종을 이루며 산객을 긴장 시키고 있다.
잘못 진행하면 사방으로 뻗어 나온 악마의 이빨 같은 가시들이 사정없이 종주대를 찔러대며 자신도 모르게 비명소리를 질러보는 구간이기도 하다.
잠시 후 등로 좌측에서 커다란 라디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진행하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116 무명봉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다시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오늘 오전에 파헤쳐 놓은 듯한 멧돼지들의 식흔이 등로 이곳 저곳에 선명하게 나 있어 잠시 긴장을 하면서 진행을 해 본다.
약간의 단풍이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는 등로를 타고 희미한 등로를 찾아 어렵게 진행을 하니 다시 아카시아 나무들과 잡목이 우거진 등로와 만나고 이리저리 조심하며 올라 멋진 소나무 두그루가 반겨주는 12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더 해 보는 시간이다.
역시 지맥 산행은 끝나야 끝나는 것으로 이처럼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등로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큰 고통과 아품을 수반하는 산행 시간이 되고 있다.
손등에 몇개의 붉은 선을 만들고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벌목된 지대가 나타나는데 그 벌목된 나뭇가지들이 등로 이곳저곳에 제멋대로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한동안 어려움을 겪는다.
커다란 라디오 음악소리가 들리는 등로 좌측을 빼꼼히 살펴보니 기대했던 과수원도 없고 민가도 보이지 않는데 무슨 용도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작은 가건물 하나가 잡목 사이로 보여 과수원 아니면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곳은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그렇게 한동안 좌측에 발목지대를 두고 그 경계선에 널부러져 있는 간벌목들을 치우며 어렵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의 자연마을 중 한 곳인 가사리마을과 가사리 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가사리마을은 우물리의 우무실 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솥골 마을에서 서쪽에 있는 위천의 건너에 있으며 선비들이 세운 여러 정자와 아름다운 대가 있어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 수원 백씨가 정착했고 약 300년 전 풍산 유씨가 이주해 왔는데 마을을 개척할 당시 가시덩굴이 우거져 가시리라 했고 그 약 150여 년 뒤 유주목이 사당을 세워 많은 선비를 배출했으므로 가사리라고 했다 한다.
계속 큰 소리로 들려 오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벌목지대 경계선에 널부러져 있는 간벌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제법 큰 리끼다 소나무와 그 아래로 자라나기 시작한 잡목들이 발목을 잡는다.
잠시 후 우거진 잡목을 헤치며 오르니 잠시 솔갈비가 멋진 등로도 만나 오르고 다시 우거진 잡목에 발목이 잡힐쯤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166봉에 도착을 해 지도를 살펴보니 이제 보현지맥 마루금 잇기 산행도 그 종착지가 가깝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다.
그 166봉을 지나 게속 이어지는 잡목 숲을 헤치며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드디어 그 지독한 잡목과 간벌지대를 벗어 난 듯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린다.
그곳에서 잠시 등로 좌측 벌목지댑 아향으로 나 와 뒤 돌아 보니 저 멀리 비봉산이 이제 얼굴만 내밀고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느냐며 아쉬운 이별을 노래하기에 손 한번 흔들어 주고 다시 멋지게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드디어 숨어 있던 위천이 내려다 보이고 그 위천 건너편으로 팔공기맥 마루금이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다.
바쁜 발걸음속에서도 잠시 멈춰 그 아름다운 위천과 팔공기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출잘해 본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다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지금까지 지독하게 우거져 있던 잡목 구간보다는 훨씬 수월한 등로가 열린다.
별 특징 없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잡목을 헤치며 내려가니 등로는 솔갈비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연결되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곧이어 좌측 능선으로 들어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 선다.
중동단밀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유시완선생 추모비도 있으며 수암종택과 우물1리 표지석이 서 있는 갈림 삼거리로서 우측으로 300미터 걸어 들어가면 수암종택이 있다는 표지판도 서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우물리 우무실마을이 있어 찾아보니 가시리의 서쪽과 작은 마을의 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사이가 준말인 새(간)는 그 뿌리를 삳으로 본다.
수암종택은 산행이 마무리된 후 돌아 나오면서 잠시 들려 구경하고 그 앞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기로 하였기에 삼거리 가운데로 나 있는 능선 방향의 등로를 타고 마지막 발걸음을 옮겨 본다.
잠시 둔덕을 넘어가니 소나무 숲 가운데에 제2회 우천현인문화제가 열렸었는지 커다란 플랭카드가 걸려 있어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들이 보인다.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 소재한 수암종택에서는 작년부터 매년 10월 중순에 지역 내외 유림 관계자, 지역 문화단체임원, 주민, 학생 등 6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제2회 우천현인 문화제 개막식을 가졌다.
수암종택은 강사 류시완 선생을 비롯하여 수암 류진선생 등 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곳이다.
(사)강사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한 이번행사는 강사 류시완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인간의 향기가 넘치는 문화제를 주제로 개막공연, 개막식, 우천학맥 학술발표회, 우천학생 백일장, 인형극, 스토리텔링, 우천현인 산길 걷기 퀴즈대회 등 다채로운 공연과 문화행사 등이 펼쳐졌다.
우천은 태백산, 팔공산 그리고 속리산의 끝자락이며 낙동강과 위천이 합류하는 곳으로 예부터 삼산이수가 만나는 지점으로 매화락지의 명당으로 꼽히던 곳이다.
그렇게 우천현인문화제 플랭카드를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를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수암종택 뒷 모습이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하니 비닐이 씌워진 묵은 밭 경작지가 나타나는데 작물을 심었다 수확 후 전혀 관리가 되지 않는 듯 보인다.
그 밭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가니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잠시 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는 이제 벌목되어 널부러져 있는 나무 사이로 나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한동안 그 벌목지대 가장자리를 따라 나즈막한 둔덕에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낙동강 푸른 물이 아름답게 펼쳐져 보이기 사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벌목지대를 통괗며 살펴보니 벌목지대에는 키 작은 벗나무들이 보이는데 일부러 식재를 한 것인지 자연적으로 자라고 있는데 벌목을 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계속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 아래로 첨모각이 보이고 그 아래로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잠시 후 합수점에서 만난 후 다시 올라오며 만나야 할 낙동강이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빠른 걸음으로 합수점 방향으로 걸어 본다.
잠시 후 넓은 비포장 임도를 잠시 만나 걸어가고 다시 벗나무가 식재된 간벌된 지역을 지나니 오늘 산행의 마지막 95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95 마지막 봉우리를 지나 합수점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들이 보이고 곧이어 그 전망바위에서 낙동강을 배경으로 사진 몇장 남겨 본다.
다시 묘지들을 지나 수북히 쌓여 있는 낙엽을 헤치며 걸어 내려가니 가파른 절개지를 지나 드디어 위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 마지막 추억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좌측이 위천이고 우측이 낙동강으로 두 물줄기가 합쳐져 낙동강이 되어 흐르고 저 멀리 상주낙동강교도 아름답게 보인다.
낙동강은 유로연장 521.5 Km, 유역면적 23,817 Km2으로 압록강 다음가는 한국 제2의 강으로 강원 태백 함백산(1573봉)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서는 안동을 중심으로 반변천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서쪽으로 곡류하다가 함창 부근에서 다시 내성천과 영강 등 여러 지류를 구심상으로 받아들이고 유로를 남쪽으로 돌려 상주 남쪽에서 위천을, 선산 부근에서 감천, 대구 부근에서 금호강, 남지 부근에서 남강을 합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삼랑진 부근에서 밀양강을 합치고 나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낙동강은 가락국(또는 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을 의미하는데 옛날 가야의 터전이었던 경북의 고령과 상주, 선산, 경남의 합천, 의령, 함안, 고성 지방은 모두 낙동강의 서쪽 지역에 자리를 잡았으며 이들 지역에서 보면 낙동강은 동쪽 편에 위치한다.
고려 시대 때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낙동강을 황산진 또는 가야진으로 표기했으나 조선 초기의 역사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는 낙동강을 낙수 혹은 낙동강이라고 썼다.
이 책에는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 36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18세기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도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 라고 적고 있고 이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낙동강이란 이름이 표시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낙동강의 이름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추억 한장 남기고 2년 전 팔공기맥 산행을 마무리하며 위천물에 손을 담궜던 장소도 돌아 보며 감회에 젖어 보는 시간이다.
위천은 경상북도 군위군의 고로면과 의흥군 및 군위읍에 있는 하천으로 고로면 학암리와 낙전리에 있는 화산에서 발원하여 고로면, 산성면, 의흥면을 경유한 후 효령면 병수리에서 남천을 합하여 병천이 되고 북쪽으로 꺾여 군위읍과 의성군 단밀면 부근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구체적인 유로를 한국지명총람의 위천, 위수, 금천, 병천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이칭인 위수, 금천, 병천도 기록되어 있다.
위천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에 상류 유역을 남천으로 중상류를 병천으로 기록하고 통용하였으며 병천의 하류 부근에 한해 위천으로 불렀다가 이후 위천이라는 하류의 유역명이 상류로 확대되어 통칭되어 왔다.
우선 병천이라는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군위)에 병천은 현 남쪽 11리에 있으며 의흥현의 남천 및 부계현의 남천이 합쳐서 하나의 개울이 된 것이므로 붙은 이름으로 현 서쪽을 지나 북쪽으로 가서 비안현의 남천이 된다라는 기록으로 병천이 처음 등장한다.
유사한 기록이 여지도서(군위)에 나타나며 같은 문헌의 교량조에는 병천교라는 다리 이름도 확인되며 이후 표기자의 변화 없이 해동지도(군위)와 대동여지도에 병천이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의 상주목 단밀현 부근에 위수가 표기되어 있어 병천의 하류 부근 명칭으로 위수와 위천이 등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872년지방지도(군위)의 군위 읍내 남쪽 부근의 하천에 병천교가 표기되어 있어 다리 명칭과 함께 병이 병으로 표기자가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지지자료(군위)에도 병천이 중리면 관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같은 문헌의 의흥군 하리면 천계명에 금과 한글로 금기가 병기되어 있는 것을 통해 병천의 이칭인 금계와 그 고유지명을 알 수 있다.
한편 조선지지자료(의성)의 기록을 통해 의성군을 흐르는 병천 하류의 유역명으로 위수와 위천, 위수강, 위수천 등 다양한 이칭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위천의 중류 유역에는 한국지명총람에 병수동(수동)은 위천과 남천이 마을 앞에 흐르므로 병수동이라 하며라는 기록이 있어 병천에서 파생된 촌락 지명으로서의 병수동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팔공기맥과 보현지맥 산행이 마무리 되었으니 언제 다시 이곳 우물리로 내려 와 위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와 볼 수 있을지 기약도 할 수 없는 시간이기에 시원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만 강물에 흘려 보내고 있다.
두물머리 우측으로 낙동강 넘어 저 멀리 나각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2년 전에는 보이지 않던 출렁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나각산은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240미터이고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하여 1300리를 흘러가는 낙동강의 낙동이라는 이름을 유일하게 가진 상주시 낙동면에 낙동강과 어우러져 솟아 있는 산이다.
산 전체가 둥글어 소라 형국이고 봉을 쌓아올린 암반은 나각이며 정상 못미처 좌우측에 있는 봉 중 하나는 원봉이고 또 하나는 첨봉으로 두 개의 봉이 쌍립하여 기묘한데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고 정상의 봉우리는 토봉으로 필봉이고 노적봉이어서 부와 귀를 겸함으로써 산 밑에는 120만 평의 낙동공단이 들어설 예정이다.
산세가 부드럽고 완만하여 가족 동반 산행을 하기에 좋은 산으로 소나무가 많이 우거져 있어 삼림욕을 하기에도 적당한 곳이며 산행의 시작은 낙동리 또는 물량리에서 하게 되는데 어느 코스이든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낙동리 코스는 교통이 편리한 반면 물량리는 교통이 불편한 것이 큰 흠인데 낙동리 코스로 오를 경우 낙동중학교 못미처 좌측 농로를 이용, 도수로 옆 산능선으로 붙어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솔향기에 취하며 40분 정도 오르면 정상에 오를 수 있고 5분이면 암봉에 닿게 된다.
정상에는 정상 표석이 설치되어 있으나 잡목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암봉에 올라서서 낙동강을 감상해야 하고 주변에 훈련장이 있기 때문에 비행훈련시 귀가 멍멍해지니 이를 염두에 두고 산행할 일이다.
물량리 코스를 선택할 경우 물량 간이승강장에서 자원재생공사 두번째 문을 통과하여 잣나무 조림지 안에 서 있는 큰 소나무 옆을 지나면 등산로가 나타난다.
등산로를 따라 30분이면 첫번째 암봉에 서게 되고 암봉을 되돌아 두번째 암봉을 거치면 정상에 닿게 되며 하산은 가급적 교통이 편리한 낙동리 방향으로 하는 것이 좋다.
특이한 것은 이 산은 원래 강으로서 융기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을 바위에 박혀 있는 강돌과 등산로 주변에 흩어져 있는 둥근돌 등을 보면 금방 알 수가 있고 정상 주변의 바위에는 군락을 이루고 있는 부처손들이 특징이다.
산행시간이 짧기 때문에 비봉산과 연계해 산행하는 것이 좋으며 산행 후 낙단교 휴양단지에서 낙동강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다.
상주버스터미널에서 대구광역시나 구미시행 직행버스를 타고 가다가 낙동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최근에는 나각산 정상에 출렁다리가 설치되어 있어 많은 여행객들과 등산객들이 찾아 와 붐비는 산이 되었다.
나중에 기회되면 저 나각산에 올라 비박 한번 했으면 하고 바래본다.
그렇게 위천과 낙동강의 합수점인 두물머리에서 마지막 의식을 거행하고 다시 내려갔던 등로를 뒤돌아 올라 와 벗나무들을 식재해 놓은 곳에서 정상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가 청모각과 주위 풍경을 살펴보고 천천히 걸어 수암종택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 본다.
박종률님의 자료를 보니 첨모각은 안에 부암처사 양공 유허비라 새긴 비석이 있는걸 보면 지형도에 있는 양처사굴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비봉산에서 수십리 남쪽으로 달리니 이수삼산(二水三山)이 조화하고 비봉산과 봉황산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나각산과 마주보며 천길 기암절벽은 굽이쳐 흐르는 낙위합강에 떠 있으니 그 천작절경은 오남국에서 보기드문 명승지라 비봉산 가파른 천장절벽 속에 비조가 아니고는 찾지 못할 석굴이 있으니 이 굴을 세인은 양허사굴이라 부른다.
그 옛날 임진왜란 때 오조처사 부군께서 병화로 집도 잃고 가족과도 흩어져서 홀홀단신 도성을 빠져나와 유유적적 하신 끝에 이 굴에서 병화난팔년을 피하신 유적지이다.
갈색으로 변해가는 들판이 아름답게 이 산객의 가슴에 투영되고 그 투영된 한장의 그림속에 지난 2년간 걸었던 보현지맥 마루금에서의 많은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고 있다.
오늘 이 걸어가는 길이 생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그 한순간 한순간이 그리 소중할 수가 없다.
저 멀리 보이는 산악회 버스를 보며 시원하면서도 아쉬운 발길을 돌려 본다.
그렇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수암종택 앞 버스에 도착을 하고 배낭 정리해 2년간 걸었던 보현지맥 산행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수암종택은 경북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 있는 경북민속자료 제70호로서 풍산유씨 우천파의 종택이다.
1986년 12월 11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풍산유씨 후손 유영하가 소유하고 관리한다.
1700년대 중기에 건축하였는데 이강정사(二江精舍) 또는 우천세가(遇川世家)라고도 하며 전체적으로 ‘ㅁ’자형 몸채와 ‘ㄴ’자형 녹사청(祿使廳) 그리고 ‘一’자형 사당채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몸채)은 정면 6칸, 측면 6칸의 합각지붕 건물이고 막돌로 쌓은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으며 ‘ㅁ’자형의 정면 6칸 규모이다.
안마당으로 드나드는 중간칸과 사랑방 부엌은 통칸으로 되어 있고 중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에 이르는데 정면 4칸 중 왼쪽 2칸은 툇마루와 그 뒤쪽에 안방이 차지했고 오른쪽 2칸은 안대청이 자리잡았다.
안방 왼쪽의 부엌은 마당 쪽으로 길게 3칸으로 만들었고 그 앞에 마루를 깔아 놓은 고방과 흙바닥 고방을 한 칸씩 만들어 앞채인 중간칸에 닿게 했고 고방 지하에는 광을 만들어 계단을 통해 부엌으로 드나들게 했다.
안대청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대청 오른쪽에는 마루방과 상방을 각 1칸씩 배치하였는데 마루방은 바닥을 45㎝ 가량 들어올려 누마루같이 만들었다.
녹사청은 7칸이며 ‘ㄴ’자 모양 정면 4칸, 측면 4칸의 우진각지붕 집이며 ‘ㄴ’자로 꺾어지는 부분에 설치된 부엌 1칸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방 1칸, 마루방 2칸을 배치했고, 동쪽에는 온돌방 2칸과 마루방 1칸을 꾸몄으며 ‘ㄴ’자의 안쪽으로 쪽마루를 돌려서 다른 방들과 연결되게 했다.
이 녹사청은 주인의 비서가 기거하며 녹봉을 지고오는 지방 관리들을 영접하고 쉬어가게 하던 특별한 역할을 담당한 건물이다.
이 집은 풍산유씨 우천파의 종택으로 유성룡 선생의 아들 유진이 자리잡은 곳에 1700년대 중기에 건립하였는데 일명 우천세가라 전하여 오며 또 대감댁이라고도 불리어 왔다.
안으로 들어가 잠시 살펴보니 오래되어서 그런지 여러곳이 보수가 필요해 보이고 조금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 보였다.
산행을 모두 마무리하고 시원한 탁배기 몇잔을 연거푸 마시니 갈증이 해갈되며 허기가 사라진다.
이곳 수암종택이 있는 우물리는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에 있는 리로서 경지가 넓은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하천이 흐르며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위천변에 자리한 마을이므로 우물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우무실, 가사리, 말골, 벙갈미, 유정마을 등이 있다.
우무실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우물리의 그것과 같으며 가사리마을은 낙동강 가가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말골마을은 조선시대에 말을 길렀던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벙갈미마을은 범이 숨어있던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 유정마을은 버드나무 샘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잠시 더 기다렸다 모든 종주대가 도착을 해 준비한 삼겹살과 탁배기 그리고 이슬이로 보현지맥 완주를 자축하며 시간을 보내고 다시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벌써 여주를 지나 막히는 도로를 따라 장암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목요일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까지 금요일 하루를 쉬고 3일 연속 산행을 하다 보니 몸이 피곤하였는지 계속 하품만 나오고 있다.
그래도 숙제로 남겨 뒀던 보현지맥 산행을 말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 기분 좋게 올라 왔지만 마지막 구간 산행 들머리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 개운한 산행은 아니어서 조금은 아쉬움도 남긴다.
이제 다음주엔 강원도 산친구들과 영월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을 마치면 또 다시 새롭게 춘천지맥에 들게 되고 그 춘천지맥에 들지 않는 격주마다 남도의 긴 지맥 산행에 들어 진행하다 중단된 고흥과 여수지맥 그리고 화원지맥과 진도지맥까지 마치면 조금 더 산줄기 잇기 산행에 속도가 붙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무탈한 산행을 위해 늘 건강관리 잘하고 계획 잘 세워 계획했던 시기에 기대한 산행이 이뤄질 수 있기를 희망도 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첫댓글 위천합수점에 이르시면서 2년만의 보현지맥 마무리를 축하드립니다.
숙제로 남겨두셨던 부분을 말끔히 해결하셨으니 뿌듯함도 있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어지는 영월지맥길 멋진 마무리 기대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방장님
2년 전 팔공기맥이란 이름으로 2구간 날머리인 노귀재까지 가 놓고
이제서야 나머지 6구간을 마무리 할 수 있었네요
영월지맥 뿐만 아니라 진행하다 남겨 둔 몇개의 지맥 산행을 먼저
마무리한 후 다른 새로운 지맥에 들어야 할까 봅니다
늘 성원해 주심에 감사 드림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같은날 마지막 구간을 같이 걸어가게 되었군요~
저는 토요일 새벽04시 30분에 돌고개에서 출발하여
위천 합수점에 오후 4시20분에 도착했느데요~
고생하셨습니다~
저보다 하루 먼저 완주를 하셨군요 법광님
보현지맥 완주를 축하 드림니다.
비산비야를 걸으며 농민들과 이야기 나누고
익어가는 감을 따 먹는 재미는 있었지만 사라지는 마루금은 아쉽기도 하였답니다
이어지는 산행도 안전하게 즐기시는 시간 되시기 바람니다
감사 합니다~
칠갑산님! 님의 열정에 감사의 깊은 맘을 보냅니다. 산행기 잘 참고하여 보현지맥에 임하여야 되겠군요.님의 산행기를 참고하여 화목재에서 잠시 그친 보현지맥 맥길을 이어 가겠습니다. 항상 안산 즐산하시고요..^^
그러셨군요 현상님
맥 잇기 산행을 하면서 선배님의 띠지를 자주 봤던 기억이 있네요
화목재에서 시작하시면 구무산 오름길을 조심하셔야 될 것 같네요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산행길 되세요
8번에 걸친 보현지맥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조만간에 걸어야할 산줄기...칠갑산님의 산기 많은 참고 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헌님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또 하나의 산줄기 잇기 산행을 마무리하였네요
블방을보니 좋은곳 다녀오셨나 봅니다
추워지는 계절에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시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