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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장성군과 함평군 및 광주광주시 광산구의 태청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2년 03월 22일 (화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아침까지 흐리고 안개가 끼었다가 이후 맑고 약간의 박무가 있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02도에서 영상 13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유천고개(유천길 2차선 포장도로)-밭경작지-과수원-197.3봉(이정판)-시누대 군락지-창원황공 묘지들-광산김씨세장비-삼봉로 2차선 포장도로-동래정씨세장산-동래정씨합동제단-널부러진 간벌목
등로-잡목등로-213.8봉(이정판)-149.8봉(이정판)-삼봉산과 삼각점봉 갈림삼거리 안부-145.4 무명봉(무한도전 띠지)-삼봉산(163.1봉, 이정판과 공터)-152.1 삼각점봉(금곡님띠지, 건설부
삼각점, 청주한공 묘지)-삼봉산 복귀-삼봉산 갈림삼거리 복귀-비포장임도(무명묘지, 시누대)-폐쇄된 효사랑요양병원-해삼로 2차선 포장도로-수양사거리(24번 함장로 4차선 포장도로
갈림사거리)-과수원-잔디밭-수양로 2차선 포장도로-잔디밭-밀양박공 납골묘-지독한 잡목등로-무명안부(비실이부부 띠지)-바위묘지와 편백나무-비포장임도-능선진입(다류 띠지)-애국지사
추모단과 충의숭모단복원비(충의숭모단 설명판과 운동시설) 이정표(태매산 0.35 Km, 학산마을 0.2 Km, 숭모단)-비포장임도-태산(206.9봉, 이정판 2개, 무명묘지) 이정표(보생 2.3 Km,
한실 0.7 Km, 숭모단 0.35 Km)-소쿠리명당(벤취쉼터, 시누대) 이정표(마당바위 0.27 Km, 한실마을 0.65 Km, 숭모단 0.22 Km)-통나무계단-시누대터널-육각정자(안부사거리, 시누대)-
시누대터널-사각나무계단-시누대터널-벤취쉼터와 이정표(인지마을 1.1 Km와 생동마을 1.3 Km, 마당바위 0.46 Km)-벌목 후 편백나무 조림지-제당산(158.8봉, 벌목 후 편백나무 조림지)-
편백나무 조림지-158.1봉 갈림삼거리 이정표(생동마을 0.79 Km, 인지마을 0.59 Km, 제당산 0.45 Km)-158.1봉(이정판, 인식불가 삼각점)-갈림삼거리 복귀-시누대터널-벌목 후 잡풀과
잡목등로-시누대터널-시누대터널-이정표(제당산등산로 1.24 Km)-태산로 2차선 포장도로(삼서공업) 이정표(제당산 1.24 Km)-잔디밭-생동길 시멘트 포장도로-잔디밭-시누대터널-생동지구
생활용수 물탱크-이동통신탑2-무명묘지-배과수원-감과수원-초지 밭경작지-보생로 2차선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석마2구 전도마을 표지석)-석마전도길 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감나무
과수원-91.4 삼각점봉(이정판, 나주419 삼각점)-해주최씨합동제단-경주김씨제단-비포장임도-무명묘지들-민가-비포장임도-길주의 지점(우측 밭경작지)-밭경작지-민가와 한우축사-시멘트
포장도로-보생로 2차선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우리자연농원 입간판)-석마1리 마령마을 입간판과 폐민가 3채-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호남조경-미성 태양광발전소-시멘트 포장도로-삼본로
2차선 포장도로 갈림사거리-금산로 비포장임도-잔디밭-태양광 발전시설-잔디밭-밭경작지-잔디밭-능선진입-길주의(걸어서하늘까지 띠지에서 우측)-가선대부 김해김공묘지-무명묘지들-시멘트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밭경작지-비포장임도-밭경작지-잔디밭-능선진입-물탱크-잔디밭-능선진입-비포장임도-돌탑2개와 이정표(월악산 0.1 Km)-월악산 갈림삼거리(띠지들)-
월악산(167.5봉, 이정판, 나주22 삼각점, 팔각정자, 벤취쉼터) 이정표(금산마을 0.9 Km, 내동마을 0.6 Km)-갈림삼거리 복귀-시누대터널-비포장임도-시누대터널-갈림삼거리-편백나무 군락지-
시누대등로-116봉(이정판)-시누대터널-편백나무 군락지-시누대터널-녹색철망(태양관 발전소)-송죽에너지 태양광발전소-비포장임도-명승조경-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사회복지법인
금옥재단 로렌시아의집)-시멘트 포장도로-로렌시아의집-사회복지법인금옥제단 설립자 김옥(로렌시아)선생 공적비-철망통과(개구멍)-비포장임도-칠봉산 갈림삼거리(칠봉산, 110.9봉)-
병풍산(161.4봉, 이정판2개)-물탱크(간이상수도 시설)-비포장임도-외치리 외치마을 시멘트 포장도로-백화정농장 입간판-외치재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절개지통과-신설된 4차선
포장도로-개활지(묵은 공사장)-무명 포장도로 갈림사거리-외치육교(22번 영광로 4차선 통과)-외치교차로(갈림삼거리)-밀재로 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시멘트계단-만중산(101.3봉, 이정판,
인식불가 삼각점)-밀재로 2차선 포장도로(세종축산과 세원하우징 및 천일추모공원 입간판)-능선진입-묘지들-편백나무 군락지-잡목등로-교통호와 콘크리트 벙커 무명봉-편백나무 군락지-
무명묘지-묘지들-무명 묘지들-129봉(이정판과 무명묘지)-무명묘지-갈동길 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편백나무)-길주의 갈림삼거리(묵언띠지에서 좌측)-잡목등로-무명묘지들-대나무 군락지-
비포장임도-월석복만길 1차선 포장도로(거대한 한우축사)-고성이씨세장산-잔디밭-고성이씨 묘지들-능선진입-무명묘지들-대나무 군락지-묘지와 잔디공터-밭경작지-송암길 시멘트 포장도로-
비포장임도(대나무 군락지)-양봉장-가암산(151.4봉, 이정판 2개, 나주437 삼각점)-나주정공 부부묘지-작은 돌탑-무명안부-광산김공 묘지들-벌목지 편백나무 조림등로-지독한 잡목등로-백선
바오로의 집(철망통과)-평택임공 묘지들-노송과 고인돌 군락지-체암로 2차선 포장도로(칠성삼거리 버스정류장, 삼거동고인돌군 표지판)-노암산도로(2차선 포장도로)-822번 노안삼도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철망통과-비포장임도-나주임공 묘지2-묘지지대-사랑산 갈림삼거리(나주오공 부부묘지)-무명봉(늘보띠지)-후박나무 무명안부-무명봉(금곡 띠지)-사랑산(185.4봉,
이정판, 조망)-갈림삼거리 복귀(왕복 1.4 Km)-비포장임도-나주오공 묘지들-지독한 잡목등로-비포장임도(광산김씨 세장산)-822번 노안삼도로 2차선 포장도로-2차선 포장도로-민가와 과수원-
진주정공 묘지들-잡목등로-나주오공 묘지-대야길 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잡목등로-82.5봉(진주정공묘지와 홀대머 최상배 띠지)-진주정공 묘지들-비포장임도-우치고개(대산로 2차선
포장도로)-우치버스정류장과 우치경로당 및 마을회관-산행종료
산행거리 : 29.25 Km (유천고개에서 우치고개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10시간 41분 (06시 24분부터 17시 05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3월 21일 22시 00분 장성역을 향해 집에서 애마로 출발
02시 00분 장성역 앞 편의점 근처의 골목에 주차 후 차박
05시 30분 편의점에서 누룽지와 햇반 및 김치로 아침 해결 후 필요 물품 구입 (11,250.-원)
06시 24분 산행 들머리인 유천고개에 주차 후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곧바로 산행 시작
올때 - 17시 05분 우치고개에서 산행종료 후 우측 우치마을회관 및 버스정류장으로 이동
17시 40분 월야택시를 콜해 탑승 후 유천고개로 출발(061-323-2277, 메터요금으로 30,000.-원)
19시 07분 유천고개에서 애마 회수 후 나주시 하이텔 모텔 투숙(40,000.-원)
20시 30분 모텔 근처의 국밥집에서 나주곰탕으로 저녁 해결 후 모텔 복귀해 업무 처리 (9,000.-원)
태청지맥이란 ???
태청지맥은 영산기맥 태청산(593.3봉)에서 분기해서 삼봉산(163봉, 0.5 Km), 태산(207봉), 제당산(158.8봉), 월악산(168봉), 병풍산(161봉), 외치재, 만중산(101봉), 가암산(151.3봉), 사랑산(186봉, 0.6 Km), 병풍산(265.4봉), 망산(289봉), 구절봉(297.0봉), 국사봉(281.6봉), 백룡산(347.0봉), 대박산(55봉), 청림산(187.2봉)을 지나고 고막원천과 영산강이 합수하는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석관정나루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50.6 Km에 달하는 산줄기로 고막원천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바빠진 일로 산에 들지 못하다 3주만에 다시 2년 전 분기점만 다녀온 후 중단된 태청지맥에 들어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며 힘들게 발자취를 남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태청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남 장성군과 함평군 및 광주광역시 광산구 드리고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대부분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호남지방의 산줄기를 타고 진행해야 할 지맥 산행은 지금 3월부터 4월까지가 적기이지만 갑자기 바빠진 일로 인해 3주 정도 산에 들지 못하니 체중만 늘며 무기력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어 조금은 생활 리듬이 깨진 듯한 느낌이다.
지난 주부터 일기예보를 확인하며 산행지를 결정하는데 2년 전 철성지맥을 마무리하고 올라오는 길에 잠시 들려 분기점만 다녀 온 태청지맥이 가시처럼 남아 있어 진행을 해야 하는데 남아 있는 거리가 애매해 2구간으로 진행하기엔 부담이고 3구간으로 나누기엔 너무 널널한 일정에 고민하다 낮의 길이가 길어져 가능하면 2구간으로 나눠 마무리를 하고 올라 오기로 하고 준비를 한다.
진행하다 보니 걱정했던 가시잡목은 부분적으로 나타나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오랫만에 오르는 산행에 체력적인 어려움이 가중되어 결국 계획된 분매동고개가지 가지 못하고 우치고개에서 마무리를 하고 보니 내일 마무리를 해야 할 거리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진행하다 어둠속에 석관정에 도착할 것 같으면 중간에 포기하고 다시 한번 더 내려오자고 마음 먹으니 마음 편히 산행 전 걱정했던 일들을 모두 극복하고 기분좋게 태청지맥 산행을 완주하고 귀가할 수 있어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몇년전까지 많은 자료와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확인하며 예상보다 힘든 산행을 예상했었는데 최근에 올라 온 산행기를 보면 예전과 달리 등로가 많이 정비되어 진행에 큰 어려움은 없는 듯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왔지만 지맥 산행은 직접 체험하지 못하면 예단할 수 없는 산줄기임을 알기에 약각의 걱정으로 시작하는 산행이다.
진행하자마자 약간의 잡목들로 긴장하지만 진행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아 첫 봉우리를 통과하니 예상과 달리 시누대 군락지가 발목을 잡아 오늘 하루의 진행에 긴장감이 시작되나 마무리할 때까지 산죽이나 시누대로 인한 큰 불편은 없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비산비야의 마루금을 따라 이곳 특유의 드넓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진행하다 보니 마석리 지나 다시 드넓은 잔디밭을 따라 걸어가다 등로 우측으로 서쪽을 살펴보니 좌측 가장자리에 마루금에서 떨어져 있는 116.9미터의 계봉산이 보이고 그 바로 우측 뒤 저 멀리 영산기맥 상 불갑산이 희미하게 솟아 있으며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기맥 마루금이 우측 가장자리의 장암지맥 분기점이기도 한 장암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눈길을 사로 잡아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옛 추억을 더듬어 본다.
다만 모바일 폰으로 사진을 담다 보니 장암산 우측으로 더 높게 솟아 있던 이 태청지맥 마루금의 분기점인 태청산은 잘려있어 아쉬움도 남기는 시간이다.
석마리 들판을 지나며 서쪽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영산기맥 산줄기를 확인하며 잠시 옛 추억에 빠져 들다보니 여전히 비산비야의 마루금이 이어지고 눈 앞에 월악산을 두고 이어지는 드넓은 밭경작지와 잔디밭을 걸어가며 이제 등로 우측인 북쪽을 살펴보니 삼서면의 드넓은 들판과 마을들을 지나 좌측 뒤로 이 산줄기의 분기점이기도 한 태청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 뒤로 고산이 머리를 내밀며 그 우측 앞으로는 쌍봉의 모습으로 오늘 이 산객이 넘어 온 태청지맥의 태산과 제당산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어 오늘 산행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는 풍경에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이다.
이제 추위가 물러가며 남아 있는 호남지방의 지맥 산행을 생각해 보는데 가장 먼저 2년 전 철성지맥을 일찍 마무리하고 유천고개에서 태청산 분기점을 왕복하고 남겨 뒀던 태청지맥과 해남의 화원지맥을 계획해 본다.
하지만 진행하다 중단되어 이빨 빠진 듯 남아 있는 태청지맥이 눈에 거슬러 먼저 진행하기로 하지만 남아 있는 거리가 애매해 만발의 준비를 하고 가능하면 2구간으로 마무리를 해 보고 싶지만 3주간 산행을 하지 못한 체력이 문제일 것 같아 장성역 앞 편의점에서 아침식사를 든든하게 먹고 산행 들머리로 이동을 해 거리에 대한 부담없이 할 수 있는 거리까지 진행을 해 보기로 한다.
2년전 겨울에 들렸던 신기리 유천고개에 도착을 하니 과수원 넘어 민가에서 키우는 강아지 한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짖어 어렵게 달래고 산행 준비 후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6시 24분인데 벌써 여명이 밝아 와 헤드렌턴 없이도 진행이 가능할 정도로 낮의 길이가 길어져 있다.
이곳 유천고개(유천길 2차선 포장도로)는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신기리 유천마을에 있는 고개로서 유천마을은 잔등에 장승이 있어 장승배기로 부르다가 마을 앞들에 버드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현재는 유천(柳川)이라고 부르는데 그 마을 위 고개를 말한다.
신기리는 논과 들이 넓고 낮은 고개가 많아 골짜기가 많은데 새로 된 마을이라하여 새터 또는 신기라 하였다.
도로 옆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배낭을 둘러 멘 후 남쪽으로 이어지는 짧은 시멘트 포장도로로 오르며 이틀간 길고도 먼 태청지맥 산행을 시작하는 마음이 비장하기만 하다.
시멘트 포장도로로 오르니 비포장임도로 바뀌고 곧이어 넓은 밭경작지가 펼쳐지는데 좌측으로는 그물망이 설치된 사과과수원 위 저 멀리 잠시 후 올라야 할 197.3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 밭경작지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전진하니 콘테이너 박스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능선으로 진입하며 뒤돌아 보니 2년 전 다녀 온 태청지맥의 분기점인 태청산과 상무대로 막혀있는 사선치로 이어지는 마루금의 모습이 벌써 옛 추억이 되어버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뚜렷하게 나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3주 사이에 분홍빛 진달래꽃과 노란 생강꽃들이 보이면서 길고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봄이 오는 소식을 사진에 담으며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맨발님의 이정판이 걸려있고 무명묘지가 보이는 도상 197.3봉에 도착을 해 추억 몇장 남겨 본다.
이정판과 잡물이 우거졌던 무명묘지가 보이는 도상 197.3봉 지나 동쪽으로 산행을 이어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고 킥 큰 산죽 군락지가 보이는 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서쪽과 북서 방향으로 방금 전 넘어 온 197.3봉과 그 우측 뒤 저 멀리 2년 전 다녀 온 태청지맥의 분기점인 태청산이 빤히 올려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전진하니 키가 큰 산죽이 완전히 등로를 가로막아 보이지 않는 등로를 찾아 참으로 어려운 산행을 이어가다 보니 산죽밭과 대나무 군락지에서 고생한 트라우마가 생각 나 오늘도 쉽지 않은 산행임을 직감해 본다.
키가 크고 우거진 시누대 군락지를 헤치며 어렵게 내려가니 갑자기 시누대가 사라지고 몇기의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지대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 묘지 지나 진행해야 할 태청지맥 마루금 상 어랑고개와 213.8봉 지나 우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사진에 담으며 묘지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니 광산김씨세장비가 보이고 등로 우측으로는 삼서면 들판에 푸른빛이 가득한 생명들이 깨어나고 그 모습이 이국적인 풍경으로 이 산객의 닫혀있던 마음을 깨우고 있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삼봉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어랑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어랑고개(2차선도로)는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삼계리 어랑마을에 있는 고개로서 어랑마을이 배형국의 가옥이 고기같다 하여 어랑이라고 했다고 전하는 마을로서 그 마을 위 고개를 말한다.
삼봉로 2차선 포장도로인 어랑고개를 건너 다시 능선 방향으로 진입하니 동래정씨세장산과 제단이 나타나고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오르막 등로에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잠시 그 간벌목들이 널부러진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잡목 등로가 이어지고 다시 널부러져 있는 간벌목과 잡목 등로가 번갈아 나타나더니 몽우리가 부풀어 오르고 있는 분홍빛 진달래가 그나마 힘겹게 오르는 산객의 친구가 되어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잠시 후 주능선에 도착을 하니 뚜렷한 등로가 우측에서 올라오고 그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준희님의 이정판과 주위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도상 213.8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213.8봉 지나 남동 방향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해피마당쇠님의 신상 띠지가 걸려있고 살펴보니 등로는 남쪽인 우측으로 꺽여 이어지는 길주의 지점이다.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활엽수들 그리고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전진하니 빛바랜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세월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잠시 후 고사목이 쓰러져 있는 무명봉 넘어 조금 더 평이하게 이어지는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능선 상 굵은 소나무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149.8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난 주 부뜰이님이 진행을 하면서 신상의 이정판을 걸어 놔 보는 마음까지 새롭게 다가오는 이정판이다.
능선 상 149.8봉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몇개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등로는 좌측으로 꺽여 내려가며 이어지는데 지도를 보니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마루금에서 벗어 나 있는 163.1미터의 삼봉산과 152.1 삼각점봉이 보여 고민할 것도 없이 배낭 벗어 놓고 삼봉산으로 향한다.
지금과는 달리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전진하니 무한도전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지나 금새 공터의 한쪽에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둔 163.1미터의 이정판이 보이는 삼봉산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삼봉산(163.1m)은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삼계리에 있는 삼봉마을 위에 있는 나즈막한 산을 말하는데 유래는 전해지지 않지만 삼봉마을에서 차용된 이름이거나 다른 지방의 삼봉산처럼 이곳 근처의 세개의 봉우리를 합쳐 불려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그 봉우리 세게가 어느곳인지는 모르겠다.
삼봉산에서 추억을 남기고 남쪽 가까운 곳으로 152.1미터의 삼각점봉이 있어 잠시 다녀오기로 하고 급경사 내리막 활엽수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평이한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잡목들 사이로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고 그 주위로 몇개의 선답자들이 걸어 둔 산행 띠지들이 나풀거리는 152.1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뭇가지에 막혀 풍경이나 조망은 전혀 없는 봉우리이다.
정상부만 사진에 담고 바로 옆에 보이는 묘지와 비석을 확인해 보니 청주한공 묘지인데 부인이 3명이나 있었던 분으로서 비석에 부인 3명 모두를 적어 둔 경우도 흔치 않아 잠시 읽어 보고 곧바로 삼봉산을 거쳐 삼봉산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간다.
몇개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삼봉산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와 벗어 둔 배낭을 둘러메고 이제 진행 방향 우측인 남동 방향으로 내려가니 편백나무들이 보이고 곧이어 무명묘지를 통과하니 뚜렷한 비포장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비포장임도 좌우측으로는 대나무 군락지가 펼쳐지고 그 대나무 군락지를 지나자마자 건물이 눈 앞으로 다가와 그 건물을 통해 전진한 후 뒤돌아 보니 효사랑요양병원인데 지금은 폐쇄된 듯 썰렁하기만 한데 저녁에 택시 기사님에게 들으니 오래 전 불이 난 이후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다고 전해준다.
창문이 깨지고 흉물스럽게 변해있는 효사랑요양병원 건물을 지나 마당으로 걸어가니 마당에도 역시 잡풀들이 자랐다 말라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 오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해삼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수양사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은 24번 함장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사거리이다.
수양리는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에 있는 리(里)로서 논과 들이 넓은 지역이며 수양리의 지명은 행정구역 폐합 당시 통폐합된 여러 지역 중 중수와 양곡의 이름을 따서 이름 붙였다.
자연마을로는 월봉과 중수 및 하수 마을이 있으며 중수마을은 수산마을의 중간에 위치한다 하여 중수라 하고 하수마을은 아래에 위치한다 하여 하수라 한다.
해삼로 2차선 포장도로 끝자락인 수양사거리에서 24번 함장로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다시 보이는 해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이어가야 하지만 우측 콘크리트 옹벽 넘어 오르니 드넓은 사과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과수원을 조성한지 오래되지 않았는지 묘목들이 작아 정상적인 사과 수확을 위해서는 몇년이 더 걸릴 것 같은 과수원을 타고 걸어가니 과수원 좌측으로 등로가 이어지는데 그곳은 조금 더 수령이 많은 사과나무들이 보여 제법 과수원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곳에서 진행방향인 남동쪽을 살펴보니 사과과수원과 잔디밭 지나 저 멀리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태산이 높지 않은 부드러운 모습으로 다가 와 있다.
사과과수원을 따라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꺽이는데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자세히 보니 이미 잔디들을 잘라 판매를 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드넓은 잔디밭을 타고 걸어가며 조금 더 전진하니 비포장임도로 이어지고 곧이어 수양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한다.그 수양로 도로를 건너 언덕으로 오르니 드넓은 잔디밭이 다시 나타나고 살펴보니 이곳 역시 판매된 잔디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 잔디밭에는 거름들이 살포되어 있어 잔디도 정성을 다해 키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드넓은 잔디밭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한동안 걸어가다 그 잔디밭이 끝나는 지점 우측에 밀양박공 납골묘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지나 온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나 온 태청지맥 마루금 상 과수원 지나 폐쇄된 효사랑요양병원 뒤로 149.8봉과 우측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213.8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멀리로는 영산기맥의 고산과 그 우측으로 수련산도 보이는데 고산과 수련산 사이 앞쪽으로는 394.8미터의 팔음산도 둥그런 모습으로 솟아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잔디밭이 끝나는 지점의 밀양박공 납골묘에서 지나 온 마루금을 확인하고 능선으로 들어가니 분홍빛 진달래가 반겨주지만 지독한 잡목들로 인해 전혀 속도가 나질 않는다.
잡목 등로 우측 아래로는 거대한 공장건물이 내려다 보이는데 지도로 확인해 보니 에이테크솔루션과 맘푸드 건물들로서 그곳을 내려다 보며 잡목들을 헤치며 조금씩 전진하니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그 무명안부를 넘으니 굵은 편백나무 사이로 돌로 쌓은 무명묘지 몇기가 나타나는데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고 그곳을 넘어 조금 더 걸어가니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 편안하게 전진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에서 뚜렷한 등로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의 잡목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더 잡목들과 노거수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점점 좋아지더니 드디어 충의숭모단에 도착을 해 주위 건물들과 비문들을 살펴보고 충의숭모단이란 해설판도 읽어 본다.
충의 숭모단(약192m)은 1905.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애국유림들이 이곳에서 일제를 규탄하였으며 합병이 될 때에도 이 곳에서 방성대곡하였고 고종이 승하하자 국장일까지 902일간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순종 승하시에도 제사를 지냈다고 안내판에 기재되어 있고 애국지사추모단 뒤에는 대한광무황제숭모단(고종), 융희황제숭모단(순종숭모단) 향비가 세워져 있으며 이 산의 봉우리가 태산과 제당산이라고 유래된 사연을 알 것 같다.
충의숭모단을 둘러보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운동기구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악산마을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도 서 있는데 오래되었는지 글씨도 많이 지워져 있고 이정표도 기울어져 있어 나뭇가지에 걸쳐 놓고 진행한다.
이제 약간의 활엽수 낙엽들이 깔려 있는 뚜렷한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짧은 시누대 군락지를 통과하니 중앙에 낮아진 봉분이 있는 무명묘지가 보이는 태산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몇장 남겨 본다.
태산(206.9m)은 산 이름에 비하여 봉우리는 조금 허접한 감을 지울 수 없는데 정상에는 지름 10m 정도의 둥그런 함몰지역에 소쿠리처럼 튀어나온 모습이 보이는데 바로 아래에 소쿠리명당이라는 안내판이 있으며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아 이 곳에 분묘를 하였다고 하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어떻게 물이 빠지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태산 이정판이 있는 곳 우측으로 이정표가 서 있는데 보생과 한실마을로 가는 방향과 거리가 표기된 이정표로서 사진에 담고 남동 방향으로 내려가니 다시 마당바위와 한실마을로 갈 수 있는 방향과 거리가 표기된 또 다른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좌측으로는 시누대 군락지도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니 벤취쉼터들이 나타나고 한쪽에는 소쿠리명당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어 읽어 보니 소쿠리처럼 생긴 지형에 비가와도 물이 고이지 않아서 삼서면 수양리 중수마을 상산 김씨가 이곳에 분묘를 하였는데 어느 스님이 부호인 종가집에 시주를 하러 갔지만 잘 사는 종가집에서 시주를 궁색하게 하니 이를 괘씸하게 생각한 스님이 이 집에 명당이 있는데 이 명당이 동서남북으로 막혀서 운이 들어오지 못한다하고 탄식을 했고 이를 듣고 이 집안에서 봉분의 앞을 허물었더니 가세가 기울어지니 종가집에서 고심 끝에 다시 막았더니 옛 영화를 찾았다는 전설의 안내판이다.
소쿠리명당을 지나 통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키가 큰 시누대 군락지의 터널이 나타나고 한동안 길게 그 시누대 터널을 통과하니 갑자기 사각정자와 좌측으로 마당바위가 놓여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우측으로 내리막 등로도 보이는 갈림삼거리이다.
등로 우측으로 대곡리 한실마을은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에 있는 리와 마을로서 논과 들이 넓고 낮은 산이 많아 골짜기가 많으며 대곡리의 지명은 대곡마을의 지명을 그대로 취하였데 이는 큰 골짜기 안이 된다 하여 한실 또는 대곡이라 부른 것이라 한다.
첫 197.3봉 지나 지독하게 우거진 시누대 군락지를 빠져 나오며 고생한 기억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시누대 터널이 잘 정비되어 있어 진행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기에 마음 편히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누대 터널 한가운데에 서 있는 육각정자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짧게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평이한 등로 지나 또 다시 키가 큰 시누대 터널이 나타난다.
길게 이어지는 시누대 터널을 지나니 사각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 넘어 또 다시 시누대 터널이 길게 이어진다.
시누대 터널을 지나니 벤취쉼터와 이정표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거대한 수양저수지가 바로 지척으로 내려다 보인다.
그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갑자기 하늘이 보이는 벌목지에 키가 작은 편백나무들이 조림된 조림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조림지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남쪽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제당산과 158.1봉으로 이어지는 벌목지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제당산 정상은 조금 더 진행을 해야 하는데 다음지도에는 이곳 159.7미터 봉우리를 제당산 정상으로 표기를 해 놔 조금은 헷깔린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벌목되어 이정판은 물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도 보이지 않는데 결정적인 것은 삼각점 표시가 있는데 삼각점이 보이지 않아 남서 방향으로 크게 꺽어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인 남쪽방향으로 장성군 삼서면과 광주광역시 광산구 방향의 농경지들과 마을들 뒤로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좌측 뒤 저 멀리 병풍지맥의 마지막 산줄기인 어등산 방향의 산줄기들이 보이고 그 앞으로 용진산 줄기가 아름답게 솟아 있다.
한동안 더 그 벌목 후 키작은 편백나무들을 식재한 조림지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갔다 오르니 등로 좌측의 삼서면과 광산구 방향의 들판과 산줄기들이 조금씩 다른 풍경으로 다가와 많은 사진으로 남겨 본다.
그렇게 잠시 더 전진하니 굵은 나무들이 보이고 약간의 잡목들이 서 있는 가운데에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고 관목 위에는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158.8미터의 제당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다만 이곳 제당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보이는 자료가 없어 아쉬움을 남기는데 충의숭모단과 관련이 있는 듯 보인다.
잠시 제당산으로 올라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돌아 나오니 벌목 후 편백나무들을 식재한 조림지가 나타나고 조림지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가며 좌측을 보니 삼서면과 광산구의 마을들과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약간의 변화된 모습으로 여전히 아름답게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전진하다 등로 좌측을 보니 벌목지 한가운데에 두 그루의 소나무들이 두 그룹으로 나눠 서 있고 그 뒤 저 멀리 용진산에서 이제는 판사등산과 쪽박등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병풍지맥의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로는 희미하게 광주시내의 산줄기들도 옛 추억들을 들려주고 있어 귀를 기울여 본다.
벌목 후 편백나무들을 식재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편백나무들은 아직 키가 작아 언제 자랄지 모르지만 이렇게 뿌리를 내렸으니 몇년 후 이곳을 지날 후답자들의 산행후기는 또 다른 모습으로 표현이 될 것이다.
잠시 후 드디어 벌목지 끝자락에 도착을 해 지나 온 편백나무 조림지 좌측 가장자리로 이어지는 태청지맥 마루금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능선으로 들어가니 생동마을과 인지마을 갈림삼거리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이곳이 또한 우측의 158.1봉을 다녀올 수 있는 갈림삼거리이기에 우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준희님이 걸어 둔 이정판과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 158.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사진과 추억을 한장씩 남기고 그 158.1봉을 뒤돌아 내려와 벗어 둔 배낭을 메고 남동 방향으로 진행하니 다시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산죽 군락지 한가운데로 넓은 등로가 열려있어 편안하게 따라 전진하니 다시 굵은 소나무 사이로 우거졌다 빛이 바랜 잡풀들이 보이는 평이한 능선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벌목 후 잡목들이 자라는 풍경들이 나타나고 그곳 우측인 남서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상사화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영광의 불갑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는 장암산과 태청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이 좌측인 남쪽으로는 월암산과 병풍산 지나 또 다른 산줄기인 철성지맥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옛 추억을 들려주고 있어 잠시 그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불갑산과 그 사이로 펼쳐진 장성군 삼서면과 함평군 월야면의 드넓은 들판 및 마을들을 살펴보며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다시 시누대 터널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등로는 동쪽으로 크게 휘어져 이어지고 있다.
이제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편안하고 빠르게 전진하니 또 다시 시누대터널이 나타나는데 그 터널 한쪽에 제당산정상까지 1.24 Km 란 이정표가 서 있고 곧이어 태산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생동고개에 도착을 한다.
생동고개는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보생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지석묘가 있고 백제시대 석실분이 있으며 오래 전 남정봉에 남씨와 정씨가 살았다고 한다.
1460년경 하음봉씨가 단종복위 사건때 낙담하였다고 하며 그후 1900년대 초 영월신씨가 들어 왔고 조금 후 함평이씨가 들어왔으며 해방 후 60여호(봉씨 50, 이씨 6, 신씨 4)가 살다가 6·25때 불갑산에서 40여명이 죽었다.
그후 50여호가 살았으며 최근 경주이씨와 광산김씨 및 이천서씨 등이 들어왔으나 현재 39호(하음봉씨 32호등)가 거주하고 있다.
동명유래는 가뭄에도 물이 많아 또는 앞산이 시체형이기 때문에 생골이라 했다고 한다.
인물로는 봉단의(임난때의병장), 봉태열(서울지방국세청장), 봉태영(초등학교장), 봉만전(의사), 봉석호(군수) 등이 있으며 유물유적으로는 지석묘 3기의 대형고분(대곡리 경계 도로변에 있었는데 1995년경 없어졌다.)이 있으며 이 생동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태산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생동고개를 건너 눈 앞으로 보이는 민가와 공장 건물로 진행을 해야 하지만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공장 건물 좌측 옆으로 보이는 잔디밭을 타고 걸어 전진하니 이곳 잔디밭도 이미 판매가 이뤄져 잔디들은 거의 모두 사라진 이후이다.
건물을 지나니 드넓은 잔디밭이 새롭게 이어지는데 이곳은 잔디가 그대로 남아 있어 푹신하게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보생리 생동마을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내려다 보여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진행한다.
지나 온 제당산 방향과 잔디밭 및 건물을 뒤돌아 보고 우측으로는 보생리 생동마을을 내려다 보며 조금은 빠르게 전진하니 또 다시 판매된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지는데 그 잔디밭 뒤 저 멀리로는 이동탑3개가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혹시나 하고 지도를 살펴보니 무명봉이다.
그렇게 진행 방향도 살펴보며 사진에 담고 계속 편안한 잔디밭을 타고 걸어가니 좌측으로는 보생리 이문마을이 보이고 그렇게 조금 더 전진하니 생동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한다.
생동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는 고갯마루 건너 오르니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지며 이국적인 풍경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하고 그 잔디밭을 걸어 전진하니 키가 큰 시누대 터널이 길게 이어진다.
그 시누대 터널을통과하니 등로 좌측으로 생동마을 농촌농업용수와 생활용수 급수시설이 나타나고 무명안부 지나 활엽수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있는 언덕으로 오르니 이동통신탑2개와 전봇대 하나가 차례로 설치되어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이동통신탑들을 지나 여전히 푹신하게 깔려있는 활엽수 낙엽 위로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무명묘지 지나 눈 앞으로 거대한 과수원이 나타나는데 과수원 좌측으로는 파란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고 잡목들이 우거져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잘려있는 잡목 더미들을 어렵게 통과해 사과과수원 좌측 가장자리로 내려가 과수원을 타고 어렵게 산행을 이어간다.
사과과수원을 통해 걸어 진행하니 다시 언덕이 나타나고 그 언덕을 넘으니 이제는 감나무 과수원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저 반대쪽에서 아주머니가 감나무 가지치기를 하면서 나무들을 손보고 있어 방해되지 않토록 조심하며 재빠르게 통과한다.
진행하면서 등로 좌측으로 보생리 남산마을과 석마리마을을 살펴보니 높은 산은 보이지 않고 드넓은 평야지대에 거대한 과수원들과 창고 건물들 그리고 태양광 발전시설들이 보이면서 조금은 특이한 풍경들을 선물하고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전진하니 독사풀이 마치 초지같이 파란빛으로 변해있는 밭경작지 지나 보생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 옆으로는 석마2구 전도마을이란 커다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갈림삼거리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석마전도길이란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포장도로는 비포장임도로 변하고 임도 좌우측으로는 드넓은 잔디밭과 과수원들이 펼쳐져 있어 등산이 아닌 둘레길을 걷는듯한 착각속에 진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잠시 더 비포장임도를 타고 걸어 오르다 뒷쪽으로 지나온 마루금이 보이는 북쪽을 살펴보니 2년 전 올랐던 태청산에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고 사진에 담은 후 이제 등로 우측으로 서쪽방향을 보니 영산기맥의 불갑산에서 우측인 북쪽 방향으로 장암산 지나 태청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산줄기가 오래 전 맺었던 소중한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많은 사진을 담고 조금 더 전진하니 좌측으로 감나무과수원이 나타나고 그곳으로 오르니 감나무 가지에 맨발님이 이정판을 걸어 두고 그 아래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는 91.4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살펴보니 좌측 과수원이 끝나는 지점에는 우거진 시누대 군락지가 눈길을 잡는다.
감나무과수원 한가운데에 설치된 이정판을 제거하지 않은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그 감나무 과수원을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해주최씨합동제단과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니 이제 경주김씨제단과 묘지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묘지들과 제단들을 지나 보이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임도 좌우측으로 잡목들과 시누대가 혼재되어 있는 풍경들이 눈에 들어 오고 곧이어 무명묘지 3기가 있는 곳을 지나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고 내려가니 강아지가 울부짖고 좌측으로 민가와 널부러져 있는 생활도구들 및 작은 창고들이 보이는데 주민에게 피해가 되지 않토록 강아지를 달래며 재빠르게 통과하니 또 다른 비포장임도가 나타난다.
민가 지나 나타나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서쪽으로 진행하니 좌측으로는 시누대 군락지가 나타나고 우측으로는 잡목 넘어 드넓은 밭경작지가 펼쳐진 모습이 눈길을 잡는다.
그렇게 잠시 더 전진하니 임도 우측으로 파란 지붕을 한 거대한 축사가 나타나고 그 축사 직전 우측 나뭇가지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곳에서 짧은 절개지를 타고 밭경작지로 내려가니 좌측으로 거대한 한우농장이 지척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우측으로는 드넓은 밭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밭경작지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다시 판매된 드넓은 잔디밭 옆으로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판매된 드넓은 잔디밭 넘어 저 멀리 뾰족하게 솟아 있는 불갑산과 그 우측 장암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좌측으로 드넓은 잔디밭을 두고 영산기맥 상 불갑산 방향을 살펴보며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등로는 민가 앞마당과 축사로 이어지는데 마침 주인이 보이지 않아 조심스럽게 재빠르게 통과하니 이제 거대한 한우 축사를 우측에 두고 진행된다.
축사를 지나 북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계속 걸어가니 비포장임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는데 도로 좌우측으로는 거대한 사과과수원과 잔디밭이 펼쳐지며 이국적인 풍경에 어리둥절해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국적인 풍경들을 가슴에 담고 사진으로 남기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보생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니 좌측으로 유리자연농원이란 입간판이 보인다.
갈림삼거리에서 이제 좌측으로 보생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 1차선 포장도로 방향으로는 석마1리 마령마을로 들어 갈 수 있는 도로표지판이 서 있어 자료를 찾아보니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석마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마령마을은 뒷산이 말 형국이라 붙은 이름이다.
그 갈림삼거리를 통과하니 도로 우측으로는 폐가들이 보여 녹녹치 않은 농촌의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고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버생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으로 비포장임도가 갈리는 갈림삼거리가 다시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보생로라는 도로 표지판도 보이는 곳에서 도로를 버리고 비포장임도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우측으로 보생로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비포장임도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우측으로 녹이 슬어있는 콘테이너 박스 3개가 차례로 나타나는 언덕을 넘어 완만하게 내려가자마자 임도 우측으로 드넓은 잔디밭과 과수원들 그리고 마을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산줄기 하나가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져 있어 잠시 몇장의 사진으로 담은 후 지도로 확인해 보니 우측의 태청산을 시작으로 그 좌측으로 장암산 그리고 나즈막한 영산기맥 산줄기를 따라 좌측의 뾰족하게 솟아 있는 불갑산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아름답게 눈에 들어 와 몇장의 사진으로 다시 담아 본다.
이제 눈을 좌측으로 조금 돌리니 사진으로 보이지 않던 불갑산이 뾰족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그 좌측으로 월암산과 병풍산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희미하게 펼쳐져 있다.
그 영산기맥 마루금 앞으로는 우측 불갑산 앞으로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계봉산이 둥그런 모습으로 언덕을 이루고 그 좌측 뒤로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태청지맥의 월악산이 솟아 있는데 그 정상에 세워져 있는 정자는 아직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저 월악산으로 이어지는 비산비야의 마루금은 주위로 잔디밭과 과수원들이 분포되어 있어 산행이라기 보다는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어가는 시간이다.
우측으로 드넓은 잔디밭을 두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며 태청산에서 장암산 지나 불갑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영산기맥 마루금과 그곳으로 이어지는 중간에 펼쳐진 드넓은 평야와 과수원들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부터는 비포장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진행해야 할 방향의 월악산과 그 뒤 저 멀리 영산기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포장도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드넓은 평야를 사진에 담다 보니 우측으로 묘목들이 식재된 호남조경 지나 드넓은 미성태양광발전소가 나타나고 곧이어 민가를 통과하니 삼본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삼본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사거리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오르니 임도 좌우측으로는 여전히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곧이어 공장건물들과 민가들이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돌아 진행된다.
좌측으로 돌아가니 태양광발전소 사무실이라 생각되는 건물이 나타나는데 금산로 374-8번지란 주소가 보이는 곳으로 그 사무실 건물 좌측으로 보이는 잔디밭을 따르니 우측으로는 거대한 태양광발전시설들이 펼쳐져 있다.
잔디밭이 끝이나고 태양광발전시설 가장자리에 설치된 녹색철망을 따라 전진하니 등로 우측 뒤로 거대한 태양광발전시설 뒤로 태청산과 장암산 그리고 그 좌측으로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자꾸만 눈길을 잡는다.
그 태양광발전시설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다시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그 잔디밭을 걸어가며 진행 방향을 보니 저 멀리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월악산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와 있다.
잠시 후 잔디밭이 끝이나고 작인 밭경작지를 통과하니 또 다시 잔디밭이 펼쳐지고 그 잔디밭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묵은 비포장임도에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가 열려있다.
잠시 더 그 잡목들이 등로 좌우측으로 보이는 묵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오르니 해피마당쇠님의 산랭 띠지가 걸려있는 73.9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인 북서 방향으로 크게 꺽여 이어지고 있어 길주의 지점이다.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어 걸어가니 이곳 역시 굵은 소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이어지고 조금 더 전진하니 푸른 잎들이 보이는 키작은 동백나무들이 지금과는 달리 눈의 피로도를 격감시켜주고 있다.
잠시 후 잡목등로가 끝이나고 가선대부김해김공 묘지를 지나니 몇기의 무명묘지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드넓은 밭경작지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갈림사거리와 민가 지나 월악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눈 엎으로 다가와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남서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가니 무슨 공사를 하는지 아니면 밭갈이를 하기 위함인지 몇기의 거대한 농기구들이 도로에 정차되어 있고 곧이어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니 우측으로 민가들도 보인다.
그 갈림사거리를 통과하니 좌측으로 거대한 잔디밭을 두고 우측 가장자리에 보이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봄꽃들이 밭둑에 아름답게 피어있고 곧이어 잔디밭이 끝이나며 동백나무와 측백나무들이 보이는 넓은 비포장임도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 잡목과 동백나무 지대를 통과하니 이제 임도 좌측 뒤로 드넓은 평야지대와 마을 지나 광주시 광산구의 나즈막한 산줄기에 솟아 있는 많은 봉우리들이 올망졸망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는데 병풍지맥 마루금도 있을 것이지만 눈으로 정확하게 분간하기는 쉽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다.
쓰래산과 내왕산 및 용진산 좌측 뒤로 솟아 있는 판사등산 방향의 산줄기가 바로 병풍지맥의 마루금이라 생각되는 풍경들이다.
등로 좌측 뒤로 병풍지맥과 광주시 광산구의 나즈막한 무명 산줄기들을 살펴보며 조금 더 전진하니 다시 임도 좌우측으로 굵은 활엽수 사이로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비포장임도가 길게 열리고 편안하게 그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눈 앞으로 드넓은 밭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그 밭경작지 뒤로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월악산이 이제 바로 눈 앞으로 솟아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밭경작지를 지나 월악산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데 밭경작지 좌측 능선 방향을 보니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밭갈이를 잘 해 놓은 밭경작지로 내려가 그 밭을 관통해 진행하기로 한다.
등산화가 빠지는 잘 정리정돈 되어 있는 황톳빛 밭경작지를 타고 통과하니 등로 우측으로 계봉산과 삼서면 들판 및 마을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영산기맥의 태청산과 장암산 및 불갑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계속 눈에 들어 온다.
그 밭경작지를 통과하니 다시 드넓은 잔디밤이 펼쳐지고 그 잔디밭을 지나 둔덕으로 오르니 물탱크가 보이고 약간의 잡목 등로를 통과하니 다시 판매된 드넓은 잔디밭이 나타난다.
그 잔디밭을 타고 오르며 우측을 보니 삼서면 마을과 오늘 아침에 지나 온 태청지맥 마루금 뒤 저 멀리 영산기맥이 보이고 우측 바로 앞으로는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계봉산이 둔덕봉처럼 펼쳐져 있다.
판매된 드넓은 잔디밭을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며 등로 우측을 조망하다 보니 어느덧 잔디밭 끝자락에 도착을 하고 우거진 잡목 사이로 걸려있는 선답자의 산행띠지를 확인하며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가 사라지고 잡목들이 우거진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 방향만 보고 어렵게 걸어 오른다.
한동안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힘들게 오르니 우측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 진행하니 갑자기 커다란 돌탑2개가 나타나고 그 돌탑을 지나자마자 월악산정상까지 0.1 Km 거리라는 이정표도 보여 뒤돌아 서서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간다.
2개의 돌탑과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해피마당쇠님의 산행띠지와 다른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살펴보니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이기에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곳이 정상 태청지맥 마루금으로서 직진 방향의 월악산은 정상 마루금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ㅗ민할 것도 없이 갈림삼거리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작은 돌탑 위에 이정표와 정상판이 걸려있고 팔각정자와 삼각점 그리고 벤취쉼터들이 보이는 167.5미터의 월악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월악산(167.5m, 돌탑과 이정판 및 이정표, 나주22 삼각점, 팔각정자, 벤취쉼터들)은 함평군 월야면과 장성군 삼서면 및 광주광역시 광산구와의 경계지점에 있으며 오수산과 함께 남북의 뚜렷한 산지로 보이는 산으로 태청지맥의 산줄기를 가르는 고막원천의 발원지이다.
산 위에 정확한 축성연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백제 때 쌓았다고 전해오는 토석 혼축성이 있으며 1872년지방지도(함평)의 월악면에 월악산으로 보이는 서쪽의 높은 봉우리가 산명은 표기되지 않았으나 산세가 뚜렷이 나타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함평지에 동쪽으로 40리 월야면에 있고 기가 모여 엄숙히 솟았고 인재가 뭉쳐 나오며 명랑한 숙기(淑氣)가 완연히 달과 같기에 월악산이라 한다고 수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의 월악면에 월악산은 우리말로 달악산이며 내동리 뒤편에 있다고 기재되어 있고 조선지형도에는 지명이 나타나지 않는데 일설에는 함평노씨 7세손인 신이 고려 말 벼슬을 하다가 나라가 망하자 이곳에 와 살면서 달 밝은 밤이면 산에 올라 송악(松岳)을 바라보며 고려의 임금을 그리워하여 월악산이라고 하였다 한다.
월악산 정상에 도착을 해 주변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팔각정으로 올라 조망을 살펴보니 제한된 부분도 있지만 생각보다 좋은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많은 사진을 담으며 그 이름들을 불러 본다.
제일 먼저 서쪽을 살펴보니 함평군 월야면과 해보면 들판 넘어 영산기맥 상 불갑산이 중앙에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우측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좌측으로는 모악산에서 분기하는 철성산 줄기도 살짝 드러나기 시작한다.
불갑산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는 함평군 월야면 마을이 사진 중앙으로 내려다 보이고 그 뒤와 우측으로는 월암산과 병풍산이 보이고 월야면 좌측으로는 오수산 뒤로 모악산에서 분기한 철성지맥의 나즈막한 마루금이 비산비야처럼 흐르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는데 영산기맥은 불갑산에서 서쪽으로 멀리 진행하다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어지기에 이 사진에서는 영산기맥 산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월야면은 전라남도 함평군의 북동단에 위치한 면으로 북으로 삼서면과 영광군 묘량에 접하고 동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경계를 이룬다.
대체로 북서부와 남동부에 2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뻗어 있을 뿐 대체로 50m 이내의 낮고 완만한 구릉지와 고막원천 주변 곡저 평야부가 넓다.
금석천을 비롯하여 소하천 들이 구릉지 곡저를 이루고 대부분 고막원천에 유입되어 남류하고 광주무안고속국도와 22번 국도가 지나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면 소재지인 월야리(月也里)를 비롯해 영월(令月)과 용월(龍月), 계림(桂林) 등 12개의 법정리를 관할한다.
백제 시대에는 다지련, 신라 시대에는 다기현, 고려와 조선 초에는 모평현에 속했다가 1409년(태종 9) 함평현에 속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월악(月岳)과 갈동(葛洞) 및 대야(大也)면으로 되어 있었다.
광여도와 여지도에는 월악면이 표기되지 않았지만 대야면(大也面)이 대야면(大野面)으로 표기되어 큰 들이라는 뜻이 분명하며 지승에는 대야면과 월악면도 함께 나타난다.
1914년 월악면과 갈동면 및 대야면이 합쳐 월야면으로 개칭되었고 이때 해보면과 삼서면 및 삼가면의 일부가 편입되었으며 일부 지역은 해보면, 광산군 삼도면과 본양면 및 삼서면, 영광군 묘량면 등으로 귀속되었다.
월악산 정상에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주위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본 후 다시 뒤돌아 나와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이제 진행 방향 우측으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며 동쪽으로 내려가니 우거진 시누대터널이 펼쳐지고 그 시누대터널을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로프가 설치된 갈림삼거리가 보인다.
그 갈림삼거리를 지나 편백나무 군락지를 따르니 다시 시누대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니 활엽수 낙엽들이 깔려있는 관목의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활엽수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116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116봉 지나 약간의 잡목지대를 지나니 편백나무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시누대 군락지가 이어지는데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리 등로와 터널이 보이지 않아 우거진 시누대를 헤치며 전진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리저리 약간의 공간이 보이는 우거진 시누대 숲을 헤치며 방향을 찾아 힘들게 전진하니 굵은 편백나무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 있는 군락지로 이어지고 길게 이어지는 군락지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지대를 지나 또 다른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편백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또 다시 우거진 시누대 군락지가 나타나는데 이곳 역시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아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우거진 대나무 숲에서 고생한 경험들이 몇번인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트라우마를 느끼며 이리저리 조심해 전진하니 갑자기 시누대 군락지 좌측 앞으로 녹색철망이 나타난다.
그 철망을 타고 우측으로 천천히 내려가니 그 철망 좌측 넘어로는 거대한 태양광발전설비들이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짧은 가시잡목들을 지나 넓은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 철망에는 이곳이 송죽에너지 태양광과 ESS라는 이정판이 보인다.
거대한 태양광발전소를 좌측에 두고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태양광발전소가 끝이나고 짧은 밭경작지가 보이고 곧이어 민가가 나타나는데 강아지 몇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짖고 주인 아주머니가 나타나더니 이곳은 사유지라 들어오면 안된다고 싫은 소리를 하는데 미안하다고 사정을 이야기하고 내려가니 민가가 아니고 명승조명이란 회사 사업장이었다.
그 건물과 입간판을 지나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는 로렌시아의집이란 입간판과 철 대문이 보인다.
로렌시아의집은 장애인을 위한 거주시설로서 장애인들이 모여 생활용품들을 제조 판매하는 사업장으로 법인으로 이용되는 시설인데 그 중앙 도로를 타고 오르다 보니 많은 장애인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흘러 나오고 있었다.
갈림사거리에서 남동방향으로 보이는 철문 방향의 로렌시아의집 방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사회복지법인금옥재단 로렌시아의집이란 3층 건물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사회복지법인금옥재단 설립자 김옥(로렌시아)선생 공적비가 서 있어 자료를 찾아 보니 백금옥여사는 일제강점기인 1918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장사와 부동산 사업으로 부를 쌓아 금옥여중을 설립하였으나 학생들이 입학도 하기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날 것을 알고 전재산을 들여 금옥재단을 설립하였다는 자료가 눈에 들어 온다.
사회복지법인금옥재단 설립자김옥(로렌시아)선생 공적비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조금 더 위로 걸어 오르니 높은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다시 내려 와 좌측의 건물 위로 오르니 그곳에도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진행이 불가능해 보이는데 어떻게 그 철망을 통과할까 고민하며 살펴보니 건물 우측 뒤 안부 방향으로 하단부에 약간의 공간이 보여 스틱과 배낭을 먼저 내 보내고 어렵게 몸을 빠져 나가 좌측에 철망을 두고 잡목등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뚜렷한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진행을 하게 된다.
금옥재단 로렌시아의잡 둘레에 설치된 철망을 빠져 나오면서 고생하고 다시 잡목 등로를 헤치고 뚜렷한 등로를 만나 빠르게 오르니 능선 상 굵은 소나무에 두개의 이정판이 설치된 161.4미터의 병풍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리 자료를 찾아 봐도 보이는 자료는 없다.
이곳 태청지맥엔 이곳 함평군 월야면의 병풍산과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병풍산이란 두개의 병풍산이 있는데 두곳 모두 자료는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곧바로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봉우리같지 않은 능선 상 161.4미터의 이정판이 두개나 달려있는 병풍산을 지나 활엽수 낙엽들이 깔려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흐렸던 날씨가 맑아지며 햇살이 비추는데 생각보다 기온이 올랐는지 굵은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 등로 좌측 잡목 속에 물탱크가 나타나고 갈림삼거리 지나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전원주택지가 나타나고 그 주택 사이로 밭경작지와 비포장임도가 보인다.
전원주택 옆 비포장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주택 정원에서 손질을 하는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 와 놀라지 않토록 조심하며 조용히 빠져 내려가니 도상 오치재란 장소에 도착을 하는데 지형이 변해 고갯마루처럼 보이지 않는 곳이다.
전원주택지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주택 안에 보이는 매화나무에선 벌써 하얀 매화꽃이 활짝 펴 봄이 왔음을 알려주고 등로 옆으로는 이름모를 식물들이 파란 잎을 선보이며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사각정자가 보이고 그곳을 통과해 조금 더 내려가니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한쪽 모퉁이에는 백화정농장이라는 입간판도 보이는 외치마을을 통과한다.
외치리는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에 있는 리(里)로서 지명은 외치재 밑에 있다 하여 외치리라 했다.
자연마을로는 백야마을과 외치마을이 있는데 백야(白野)마을은 마을 모양이 반월(半月)체라 해서 달이 뜨니 밝다는 뜻에서 흰백(白)자와 밤야(夜)자를 써서 백야(白夜)라 했다고 하고 외치(外峙)마을의 지명은 처음에는 마을형국이 꿩 5마리가 앉아있는 것 같다 해서 오치(五雉)라 했었다 하며 후에 이 마을이 광주광역시와 인접한 마을로 면내 자연마을 중 유일하게 재(峙)를 넘어야야지 갈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재(峙) 밖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외치(外峙)라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외치마을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포장도로 우측 작은 밭경작지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어 좌측으로 내려가는 포장도로를 따르려다 우측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제법 높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발 아래로는 신설된 무명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그 도로 우측인 서쪽과 북서쪽 방향으로 함평군 월야면과 해보면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으며 그 평야지대 넘어 저 멀리로는 여전히 뾰족하게 솟아 있는 불갑산을 중심으로 우측으로는 영산기맥이 좌측으로는 나즈막한 철성지맥 마루금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진행 방향인 서쪽 방향으로는 신설된 4차선 무명 4차선 포장도로 건너 절개지가 보이고 그 뒤로 101.3미터의 삼각점이 박혀있는 섬처럼 떠 있는 만중산 지나 저 멀리 이동통신탑이 서 있는 무명산줄기와 봉우리들이 보이는데 처음에는 태청지맥 마루금이 아닐까 궁금해 지도를 살펴보니 지맥 마루금과는 관계없는 봉우리들이다.
잠시 더 그 절개지 상단에서 주위 풍경과 조망들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고 그 절개지를 타고 내려가니 키 작은 소나무들이 조림되어 있어 그 나무들을 잡고 조심하며 내려가지만 결국 두어번 미끄러진 이후에야 4차선 신설 4차선 포장도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렵게 높은 절개지를 타고 미끄러지며 내려가 신설된 4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니 지나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어 편안하게 건너고 그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우측으로 드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마쇄된 자갈들이 깔려 있는 공사장을 조성하고 있는 듯 보이는 공터이다.
도로 따라 직진으로 걸어 가 나타나는 갈림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도로 타고 걸어 진행을 해도 되겠지만 우측 공터를 가로질러 직선으로 진행하니 다음지도에는 이곳 공터를 외치고개라 하였고 다시 계속 전진하니 우측으로 외치육교가 보이는 신설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차량통행이 많지 않기에 곧바로 우측의 외치육교 방향으로 도로를 건너 그 외치육교를 통과하는데 외치육교 위로는 22번 영광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도로를 통과하는 중이다.
외치육교를 통해 22번 영광로 4차선 포장도로를 관통하니 도로공사가 한장 진행중이라 많은 차량들이 주정차 되어 있어 복잡하고 우측으로 걸어 오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도로 사이 가운데로 섬처럼 떠 있는 만중산이 외롭게 올려다 보인다.
그곳에서 좌측의 밀재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다 우측 능선으로 붙어 잡목들을 헤치며 힘들게 나즈막한 서ㅗㅁ같은 만중산으로 오르니 갑자기 잡목들이 사라지고 콘크리트 계단이 정상부까지 길게 설치되어 있어 편안하게 걸어 오른다.
좁고 길게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 오르니 계단 좌우측으로 관목의 소나무들과 빛바랜 억새들이 보이고 곧이어 잡목이 잘려있는 뒷쪽으로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고 그 뒤로 부뜰이님이 지난주에 걸어 놓은 준희선생님의 신상인 이정판이 걸려있는 101.3미터의 만중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나뭇가지에 막혀 주위 풍경과 조망은 전혀 없기에 정상부만 사진과 추억으로 남기고 좌측의 잡목지대를 타고 가파르게 내려가며 만중산을 출발한다.
워낙 낮고 섬처럼 떠 있는 산이라서 그런지 만중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전혀 나타나지 않아 아쉬움만 남기고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내리막 잡목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방금 전 만중산으로 오르며 헤어졌던 밀재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는 세종축산과 세원하우징 및 천일추모공원으로 들어 갈 수 있다는 이정판들이 세워져 있는 갈림삼거리이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방금 전 지나 온 외치교차로 방향의 공사현장을 사진에 담고 밀재로 2차선 포장도로 건너 콘크리트 옹벽 넘어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만중산을 다녀 와 밀재로 2차선 포장도로로 되돌아 내려 온 후 콘크리트 옹벽 넘어 능선으로 오르니 묘비가 있는 묘지 2기가 나타나고 그 묘지 우측으로 편백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그 편백나무 군락지를 타고 오르니 편백나무 군락지가 끝이나고 지독한 잡목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바위들이 보이는 무명바위봉에 도착을 한다.
그 바위봉을 지나 평이하게 이어지는 잡목 능선을 타고 걸어가니 콘크리트 군용초소와 그 옆으로 교통호가 보이는 126.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교통호와 벙커가 보이는 무명봉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다시 멋진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 군락지가 끝이나는 지점에서 잡목등로가 열리더니 무명묘지가 잡목 사이로 놓여 있다.
무명묘지 지나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잡목들이 나타나는데 그 잡목 가지들마다 연두빛 새순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계절의 변화를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잡목지대를 지나니 다시 몇기의 묘지들이 연달아 나타나고 묘지 지나 좌측인 남쪽으로 크게 꺽어 전진하니 굵은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봉 넘어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등로가 휘어지고 곧이어 무명묘지들 지나 굵은 소나무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129봉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이정판 앞에는 무명묘지 한기도 보이는데 지난 주 부뜰이님이 걸어 둔 신상 이정판이 인상적이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129봉 지나 약간의 잡목들과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무명묘지 지나 갈림삼거리이자 갈동길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은 좌측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외치리와 우측의 양정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우측 옆으로는 비포장임도가 분기되는 지점이다.
이곳은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영월리 덕룡마을과 양정리 양지마을의 중간지점으로 양지(陽地)마을은 마을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햇볕이 잘드는 쪽은 양지(陽地)라 하고 햇볕이 들지 않는 쪽은 음지(陰地)라 하였으나 지금은 이를 합쳐 양지(陽地)마을이라 하는 마을이다.
갈동길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반대쪽인 남동 방향으로 나 있는 잡목 등로로 진입하니 굵은 편백나무들이 나타나고 그 나뭇가지에는 몇개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편백나무 군락지 지나 잡목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그곳에서 좌측인 북동 방향으로 크게 꺽어 진행되는 길주의 지점이다.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약간의 잡목 등로를 따라 평이하게 걸어가니 다시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그 무명묘지를 지나니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더니 대나무 군락지 사이로 소나무들이 보이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 대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니 다시 임도 옆으로 드넓은 잔디밭이 보이더니 월석복만길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건너편으로는 거데한 한우축사가 보인다.
월석복만길 1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좌측에 거대한 한우축사를 두고 굵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고성이씨세장산이 보이고 우측으로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 그 잔디밭 좌측 가장자리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는 좌측 잡목 사이로 뚜력하게 나 있는 비포장임도 같은 곳을 지나 많은 고성이씨 묘지들이 나타난다.
그 묘지들을 지나 다시 잡목 등로로 들어가니 무명묘지들이 나타나고 대나무 군락지가 보이는데 그 끝자락에서 좌측을 보니 방금 전 좌측으로 보였던 거대한 한우축사도 끝이 난다.
대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다시 드넓은 잔디밭에 묘지들이 나타나고 밭경작지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송암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좌측으로 밭경작지와 민가들이 보인다.
송암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에서 직진의 비포장임도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 송암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도심에서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광역시와는 다른 농촌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지역 편차가 큰 풍경을 실감해 본다.
마을을 지나니 대나무 군락지 사이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계속 따르니 눈 앞으로 밭경작지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비닐하우스같은 건물이 보여 그 앞으로 다가가 보니 벌통들로서 이곳은 벌써 벌들이 활성화되어 각 벌통마다 벌들이 가득하여 계절이 완전히 변화하였음을 알려주고 있어 잠시 살펴보고 몇장의 사진에 담고 다시 능선으로 들어간다.
올 들어 처음 보는 양봉장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을 담고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능선으로 오르니 활엽수 낙엽들이 깔려 있는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열리고 그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점점 더 잡목들이 우거지더니 금새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고 관목의 소나무에 151.4미터와 150.8미터란 두개의 각기 다른 높이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가암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처음 듣는 산 이름이고 흔치 않은 지명이기에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느곳에서도 가암산에 대한 자료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나무들에 막혀 주위 풍경과 조망이 전혀 없기에 정상부만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하니 나주정공 부부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자마자 작은 돌탑도 보인다.
돌탑 지나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전진하니 다시 등로 좌우측으로 파란 잎이 인상적인 키 작은 동백나무들이 보이고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많은 광산김공 묘지들을 통과하니 갑자기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 사이로 좁은 등로가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몇년 전 벌목 후 편백나무들을 식재한 조림지로 보이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듯 보인다.
우거진 잡목 사이로 희미하게 나 있는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또 다른 키 작은 잡목 사이로 식재된 편백나무들이 산객의 키보다 조금 더 크게 자란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 풍경들을 사진에 담다 보니 분홍빛 진달래 몽우리들이 막 펼쳐지려는듯 부풀어 올라 있다.
그렇게 조금 더 전진하니 진행 방향으로 벌목 후 편백나무들을 식재해 놓은 조림지가 펼쳐지는데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편백나무보다는 잡목들이 더 우거져 있는 등로가 열려 있다.
그렇게 한동안 더 잡목사이로 식재된 편백나무들을 살펴보며 그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뾰족한 봉우리가 나타나고 그 우측으로 드넓은 공단지대와 도시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오늘 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병풍산과 망산줄기와 그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는 함평군 나산면의 도시와 공단지역처럼 보이는 풍경들이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벌목 후 편백나무 조림지 능선을 따라 걸어가다 이제 등로 좌측 앞을 보니 남동 방향으로 이제부터 걸어 내려가 만나야 할 마루금 상 822번 노안삼도로 4차선 포장도로 뒤로 사한산 줄기가 아름답고 다시 우측으로 내려 와 병풍산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벌써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도로와 마을들 그리고 그 뒤로 솟아 있는 사랑산 줄기를 확인하고 그 좌측인 동쪽으로는 광주시를 가르는 병풍지맥의 어등산 줄기가 희미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알리는데 몇년 전 대전의 산지산인님과 함께 고운 추억을 남겼던 곳이기에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이제 눈을 북동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 광주시립제1용양병원과 광주인화학교가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옆으로 22번 영광로 4차선 포장도로가 좌측 끝자락의 만중산과 그 뒤로 월악산 방향으로 이어기고 그 우측으로 함평군 월야면의 빛그린산업단지의 거대한 공장지데가 펼쳐져 있으며 그 좌측 뒤로는 오늘 이 산객이 넘어 온 병풍산과 그 마루금 옆으로 보였던 칠봉산이 이어진 산줄기처럼 보이고 그 우측으로 평림천 넘어 광주시 광산구의 쓰래산과 내왕산 뒤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351미터의 용진산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그렇게 등로 좌측인 남동에서 북동 방향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함평군과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풍경들과 도시들을 확인하고 다시 이어지는 능선 편백나무 조림지를 따르니 잡목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조림된 편백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잡기 시작한다.
잠시 더 그렇게 편안하고 완만하게 편백나무 조림지 능선을 따라 오르다 잠시 뒤돌아 북쪽 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걸어 넘어 온 가암산이 가운데로 뾰족하게 솟아 있고 그 우측 뒤로 함평군 월야면의 빛그린산업단지 뒤로 병풍산과 칠봉산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원야면 뒤로 무명의 나즈막한 산줄기가 펼쳐져 있는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이제 눈을 북서에서 서쪽 방향으로 돌리니 우측 뒤 가장 먼 곳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영산기맥 상 불갑산이 길라잡이를 해주고 그 뒤로 돌아가는 영산기맥 마루금은 그 불갑산 뒤로 숨어 보이지 않는데 좌측 앞으로 월암산 뒤로 이어지는 철성지맥 마루금이 좌측의 병풍산과 천주봉 사이로 흐르는 모습도 어렴풋이 눈에 들어 오는데 철성봉은 사진 더 좌측 아랴ㅐ로 숨어 있어 이 사진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도 저 철성지맥을 진행하기 전 지독한 잡목능선으로 고생을 했다는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 크게 긴장하며 들었는데 걱정보다는 가시잡목이 덜해 쉽게 잘 마무리했던 추억을 떠 올려 보는 시간이다.
조금 더 눈을 남서 방향으로 돌리니 드디어 희미하게 철성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고 눈을 다시 남쪽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앞으로 무명봉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사진 좌측 중간의 뾰족하게 솟아 있는 오늘 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병풍산과 망산이 솟아 있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희미하게 나주시의 진산인 금성산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다시 눈을 병풍산 우측인 사진 중앙부로 돌리니 내일 만나야 할 백룡산 줄기가 생각보다 드높은 모습으로 이 산객을 부르는데 저곳에서 이곳을 바라보며 느끼는 생각은 어떨지 벌써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능선 등로에는 잡목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제법 잘 크고 있는 식재된 편백나들이 보이는 등로를 따르니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더 편안하게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진행 방향인 남동 방향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마을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중앙부에는 아파트같은 효정요양병원이 서 있으며 그 좌측 뒤 저 멀리로는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사한산 줄기가 벌써 이 산객의 두 다리에 힘을 빼고 있지만 아쉬움을 남기기에 잠시 다녀 오기로 하며 사진에 담고 천천히 내려가 본다.
벌목된 편백나무 조림지에서 많은 사진을 담으며 사방팔방을 둘러 본 후 다시 천천히 내려가니 갑자기 편백나무 조림지가 끝이나더니 지독한 잡목 등로가 앞을 가로막기 시작한다.
잡목 사이를 헤치며 주의해 천천히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으로 철망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돌아가 보지만 가시잡목들로 길이 막혀 뒤돌아 와 보이는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밭경작지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건물들이 보이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백선바오로의집이란 곳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 역시 로렌시아의집과 마찬가지로 장애인들을 위한 용양시설처럼 보이는 곳으로 좌측 마당을 지나 다시 우측 철망 한쪽으로 철문이 열려있는 곳으로 백선바이오의집을 빠져 나간다.
장애인 시설인 백선바오로의집을 통과해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통시랑 평택임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자마자 삼거동고인돌군이 소나무 숲 사이로 펼쳐져 있어 잠시 사진에 담으며 살펴보고 진행을 이어간다.
삼거동 고인돌은 평동과 삼도간 도로와 함평과 나산간 도로의 삼각 지점에 위치하는 구릉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이 곳에는 반경 200m 이내의 구릉상에 2개군 49기가 분포되어 있다.
고인돌의 형태는 덮개 돌과 덮개 돌을 받치는 굄돌과 무덤방으로 이루어지나 굄돌이 없는 경우도 있으며 굄돌의 유무와 높이에 따라 남방식과 북방식으로 구분되는데 이 곳 고인돌은 모두 굄돌이 낮거나 없는 남방식이다.
49기 중 굄돌이 없는 고인돌은 20여기이며 10여기는 무덤방이 노출되었으며 덮개돌의 형태는 장방형이 일부 있으나 대부분 원형이나 타원형이다.
가군은 23기로 군집 형태는 동서 2열이며 굄돌은 판석형이나 자연석을 이용하였는데 덮개돌은 2기만 100m에서 130m로 비교적 두꺼운 편이고 나머지는 얇고 밑부분이 땅에 밀착되어 있으며 덮개돌의 장축 방향은 동서 방향이 대부분이다.
나군은 26기로 구릉 경사면에 남북 1열로 분포되어 있는데 북두칠성의 배치와 비슷하고 크기는 비교적 소형으로 가군과 비교하여도 작은 편이며 덮개돌은 땅에 밀착되어 있고 장축은 모두 군집방향과 같은 남북이다.
그리고 마을 이름도 나군 고인돌에서 유래된 것 인듯하다.
삼거동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는 곳에는 채석장이 없으므로 이곳의 고인돌을 만드는 데에 쓰인 석재는 외부에서 가져와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인돌 주변에 최영남이 경작하는 밭에는 유약이 없는 경질의 토기 조각들과 강돌이 흩어져 있으며 이로써 이곳이 선사인들의 취락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거동 고인돌 군락지를 사진에 담고 확인한 후 조금 더 걸어가니 체암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칠성삼거리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우측 옆으로는 방금 전 지나 온 삼거동고인돌군이란 도로표지판이 서 있다.
그곳에서 체암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갈림사거리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갈리는 옛날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는데 그 도로 좌측 옆으로는 새로 신설된 듯한 822번 노안삼도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있다.
구도로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접속도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신설된 822번 노안삼도로 4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그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야 하지만 중앙분리대가 높아 무단횡단하기에 부담스러워 우측으로 길게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효정요양병원이 보이는 갈림사거리 앞에 횡단보도가 있어 그곳을 통해 도로를 통과한다.
그 822번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다 좌측으로 보니 사한산으로 올라야 할 능선 방향으로는 길게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진입하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마침 횡단보도를 건너며 확인해 보니 그곳 가까운 곳에 철문이 있어 어렵게 사한산 방향으로 진입을 한다.
횡단보도를 통해 822번 노안삼도로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철망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찾아 오르니 눈 앞으로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져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다시 철망을 좌측에 두고 북쪽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우측으로 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능선 방향으로 들어가니 잘 관리되고 있는 나주임공 묘지2기가 차례로 보인다.
묘지2기 뒤로 오르니 다시 통정대부 나주임공 묘지 한기가 보이고 능선으로 오르니 제선충 방지용 나무더미들이 무덤처럼 펼쳐져 있다.
그곳을 지나니 연속적으로 많은 묘지들이 나타나고 묘지 옆 편안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소나무 능선 지나 무명묘지 4기가 다시 나타나고 사진에 담고 뚜렷하게 나 있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잘 관리되고 있는 나주오공 묘지 몇기들이 보이는데 마루금은 이 묘지지대에서 우측 소나무 능선을 타고 내려가며 진행되지만 좌측으로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지도에 이름이 보이는 사한산이 보여 체력적인 문제는 있지만 그냥 지나치며 후회될 것 같아 배낭을 내려 놓고 사한산으로 향한다.
나주오공 묘지를 지나 오르자마자 잡목등로가 나타나고 그곳 한쪽에 배낭을 내려 놓고 사한산(일명 사랑산) 방향인 좌측의 북동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134.1미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우측인 동쪽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잠시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비포장임도가 지나면서 후박나무들이 식재되어 있어 잠시 살펴보고 사진에 담고 그 비포장임도가 올라 온 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사한산으로 향한다.
후박나무가 조림된 비포장임도 안부를 지나 잡목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173.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을 남긴 후 계속 이어지는 동쪽 방향으로 나즈막하게 내려갔다 급격하게 고도르르 높히니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이정판이 보이는 185.4미터의 사랑산 일명 사한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잡목들로 약간 막혀 있는 주위 풍경들을 살펴본다.
사랑산 일명 사한산은 광주광역시의 광산구 삼도동 관할 삼거동과 오운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86m이며 칠봉산에서 남동쪽 기암산을 거쳐 내려선 능선이 네거리 마을 뒷등을 지나 동쪽으로 솟아있다.
남쪽으로 향하다 동쪽 희여치에서 낮아지고 오운동 광암과 복림 마을의 배산이 되는데 삼도동의 명산으로 형세가 사자를 닮아 사한산(獅恨山)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사랑산은 기우제를 올린 무제봉이라 묘를 쓰지 못했는데 만약 묘를 쓰면 가뭄이 들기 때문에 아낙네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묘를 파냈다고 한다.
영험하게도 동이에 물을 이고 가서 뿌리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고 하며 지금도 양력 1월 1일이면 삼도동 유지들이 간단히 의식을 치른다.
장성 태청산과 연결되어 동학농민 혁명 때 농민군과 한국전쟁 때 인민군의 통로가 되었다고 하는데 광암 마을은 사랑산이 바위로 되어 있어 칭했고 복림 마을은 호랑이가 수풀 속에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 복호(伏虎)라고 했다.
사한산 일명 사랑산 정상에서 추억과 사진을 남기고 약간의 잡목들로 막혀 있는 주위 풍경과 조망을 찾아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그 이름들을 찾아 본다.
제일 먼저 남쪽과 남남동쪽을 살펴보니 잡목사이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방향의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보이고 우측 뒤 저 멀리 희미하게 나주시의 진산인 금성산이 보인다.
이제 눈을 남동과 동쪽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로는 광산구 오운동의 오운제도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뒤로 옥녀봉과 복룡산 좌측 뒤로 황룡강 건너 병풍지맥 산줄기와 그 근처의 석봉과 어등산 줄기가 옛 추억을 들려주고 있어 추억에 젖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몇 년 전 대전의 산지산인님과 함께 비를 맞으며 진행도 하고 드릅을 채취해 소맥 몇잔에 조금 더 가까워진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겨질 시간들 이었다.
이제 눈을 북동방향으로 돌리니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지나 본량동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평야지대와 그 주위로 펼쳐진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박무속에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사한산에어 유일하게 잡목 없이 편안하게 조망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본량동 우측으로는 병풍지맥의 어등산 줄기가 보이고 좌측 뒤로는 쓰래산과 내왕산 뒤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용진산이 여전히 길라잡이 노릇을 하면서 방향을 잡아주고 있다.
용진산은 광주광역시의 광산구 임곡동 관할 사호동과 본량동 관할 선동과 지산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351m이며 장성에서 남쪽으로 내려선 능선이 본량에서 솟아 배산을 이룬다.
동쪽으로 황룡강이 흐르고 임곡동과 마주하며 남쪽으로는 어등산과 마주보고 있는데 멀리서 보면 쌍봉이며 날카로운 서편이 석봉(石峰)이고 동편은 토봉(土峰)이라 부른다.
두 봉우리 사이 고개는 배가 넘어간다고 '배넘어재'라 칭하며 우뚝 솟아 솟돌뫼를 한자로 표기하면 용진산(聳珍山)이 되는데 뾰쪽산을 풍수에서는 화산(火山)으로 보고 문(文)을 취하면 필봉(筆峰)이 된다.
북동쪽 광곡 마을 빙월당에서 문필봉으로 칭하며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을 예로 든다.
사호천(沙湖川) 벼랑 소금강(小金剛)에 불당일월용진수석(佛堂日月聳珍水石)이란 명문과 함께 마애불이 그려져 있고 황룡강이 조망되는 곳에 죽림처사 박경(朴璟)이 1601년 지은 가학정(駕鶴亭)이 있다.
이제 눈을 북쪽과 북서 방향으로 돌리니 우측으로 용진산으로 이어지는 쓰래산줄기가 여전히 보이고 그 좌측 아래로는 광산구 명도동 들판과 나즈막하지만 섬처럼 보이는 감도산 좌측으로 오늘 진행하며 등로 좌측으로 보였던 빛그린산업단지와 그 좌측 뒤로 태청지맥 상 칠봉산과 병풍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좌측으로 월악산을 찾아보지만 바로 앞 산줄기와 나뭇가지들로 막혀 보이지 않아 더 이상 살펴보지 못하고 사랑산 일명 사한산 정상부를 사진에 담고 다시 나주오공 묘지들이 있는 사한산 갈림삼거리 방향으로 되돌아 진행한다.
사랑산 일명 사한산을 출발해 무명봉과 비포장임도가 지나는 무명안부 그리고 다시 무명봉 지나 묘지들이 보이는 사랑산 갈림삼거리로 돌아 오니 왕복 약 1.4 Km 거리를 45분 정도 걸렸다.
배낭 찾아 둘러메고 나주오공 묘지로 뒤돌아 나와 묘지 넘어 서쪽과 남서쪽 방향을 살펴보니 우측으로 효정요양병원이 아파트 단지처럼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어수산과 오수산 지나 희미하게 영산기맥 마루금도 보이기 시작한다.
묘지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나주오공 묘지들로 통하는 넓은 비포장임도가 길게 나 있어 내려가는 등로는 걱정 없이 편안하게 진행을 이어가 본다.
나주오공 묘지들 위에서 서쪽 방향으로 멋진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고 다시 넓게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연속하여 관직을 지낸 나주오공 묘지들이 비석들과 함께 나타나고 사진에 담으며 계속 전진하니 묘지가 끝나는 지점부터 짧게 지독하게 우거진 가시잡목 등로가 나타나고 어렵게 그 잡목등로를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광산김씨세장산 지나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난다.
지도를 보니 마루금은 직진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데 가시잡목들이 너무 우거져 도저히 짆ㅇ이 불가능해 보여 그 비포장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돌아 편안하게 진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비포장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며 혹시 좌측 잡목등로를 타고 진행이 가능할까 살펴보지만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보며 마음 편히 비포장임도 끝까지 걸어가니 사랑산으로 가기 위해 통과했던 822번 노안삼도로 4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건너 우측으로 2차선 포장도로가 갈리는 분기점이 보인다.
그곳에서 차량 통행도 많지 않아 천천히 도로를 건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우측 포장도로로 오르니 2차선 포장도로로 변하고 도로 우측으로 민가와 밭경작지가 보이는데 그 앞에 강아지 한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짖고 있어 재빨리 그 민가 앞 밭경작지 가장자리를 타고 묘지 지나 과수원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과수원 지나 다시 나타나는 진주곽공 부부묘지를 통과하니 다시 몇기의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뒤 능선으로 오르니 굵은 소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가 보이고 잡목들을 헤치며 천천히 전진하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92.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무명봉 지나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나주오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가장자르를 타고 내려가니 드넓은 밭경작지가 나타나는데 밭경작지에는 벌써 봄이 오는지 파란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며 세상의 빛이 바뀌고 있고 그 좌측 옆으로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의 대야길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는 멋진 민가가 보인다.
그 대야로라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짧은 밭경작지를 타고 능선 방향으로 걸어가니 지독하게 우거졌다 말라있는 가시잡목과 잡풀들이 망설이게 만드는데 방법이 없으니 두 다리에 생채기를 만들며 힘들게 진행을 이어간다.
온 몸에 따가운 생채기를 만들며 지독한 가시잡목 지대를 어렵게 빠져 나가니 도상 82.5봉이 보이는데 마루금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어 이리저리 왔다리 갔다리 헤매다 보니 등로 좌측 잡목속에 굵은 소나무가 보이고 그 소나무 가지에 홀대모의 최상배님이 띠지 위에 이곳이 82.5봉임을 알리는 고도 표시를 해 놔 어렵게 사진에 담고 그곳을 빠져 나온다.
이제 3주만에 산상에 든 어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체력적으로도 힘이 드는데 남아 있는 거리와 내일 진행해야 할 난이도를 생각하면 분매동까지 약 2시간을 더 진행해야 편할 것 같아 고민을 하면서 잡목들을 헤치며 천천히 내려간다.
산행 띠지에 82.5봉을 알리는 고도 표시를 확인하고 내려가니 진주정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모지를 지나 전진하니 묵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는데 이곳은 벌써 이름모를 잡풀들이 자라면서 파란 세상으로 변해 버렸다.
비포장임도 좌우측으로 그물망이 설치된 밭경작지들을 두고 조금 더 걸어 진행하며 진행방향을 보니 잠시 후 올라야 할 265.4미터의 병풍산과 망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벌써 체력적으로 힘이 드는 것을 느끼는 이 산객의 마음을 완전히 녹초화 시키고 있어 어떻게 오를지 걱정이 앞선다.
그렇게 걱정을 하면서 묵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좌우측에 밭경작지를 두고 걸어가며 진행 방향으로 병풍산을 올려다 보며 조금은 빠르게 걸ㅇ 가니 드디어 대산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우치고개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잠시 고민하는데 아저씨 한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 몇마디 질문을 해 보지만 외국분이라 질문이 어려워 대산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가다 보니 이곳이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 우치마을임을 알게 되었다.
우치(대산로 2차선 포장도로, 좌측은 망월과 우측은 우치마을, 광주 광산구 대산동 우치마을)고개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인 우치마을에 있는 고개로서 예전에는 나주시 우치리였다가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으로 편입된 우치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산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우치경로당과 마을회관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우치버스정류장이 보여 그곳으로 들어 가 배낭 정리하고 오늘 산행은 이곳에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내일 산행을 생각하면 조금 더 걸어 병풍산과 추선사 지나 망산을 넘어 나타나는 불매동고개까지 진행을 해야 되는데 3주만에 진행하는 산행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이 들고 우치고개에서 한번 열정이 꺽이니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려워 우치마을에서 산행을 마무리하지만 마음은 영 개운치 못하다.
대산동은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동으로 원래 나주군 도림면에 속한 지역이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산리와 대야리 및 우치리를 합하여 삼도면 대산리가 되었다.
1949년 광산군(光山郡)에 편입되었고 1988년 광산구가 신설되면서 광주직할시 광산구 대산동이 되었으며 1995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이 되었는데 대산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삼도동(三道洞) 관할하에 있다.
가매봉과 노적봉 및 말뚝봉 등의 야산과 곗들과 고래기, 수랑굴 등의 들판 및 금광재와 두더발재, 소재 등의 고개 그리고 남생이바우와 베락바우 등의 바위가 있으며 넉바윗골과 엄나뭇골, 황장목골 등의 골짜기 및 가산과 댓말, 멍소울, 삼바재 등의 옛마을이 있다.
노적봉은 산세가 노적처럼 생겼다는 데서 남생이바우는 남생이처럼 생겼다는 데서 베락바우는 바위가 벼락을 맞았다는 데서 엄나뭇골은 엄나무가 있었다는 데서 댓말은 대나무가 많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우치 버스정류장에서 배낭 정리하고 마침 지나가는 할머니가 있어 어느 택시를 이용하면 좋은지 문의하지만 버스만 타고 다녀 모르신다고 하여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 보니 함평군 월여면 탸ㅐㄱ시가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전화로 콜 하니 약 20여분이 걸려 택시가 달려오는데 메터 요금으로 무사히 신기리 유천마을로 복귀하게 되었다.
3주만에 다시 산상에 들어 많은 걱정으로 진행을 하였지만 무탈하게 우치고개까지 도착을 해 잘 마무리하였지만 처음 계획하였던 분매동고개까지 진행을 하지 못해 내일 산행이 걱정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일 역시 중간에 마무리하지 못하고 중탈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다시 이곳 우치고개로 와 애마를 주차시키고 진행하기로 하고 나주시로 들어가 하룻밤 묵으며 쉬고 나니 몸이 조금은 좋아지며 결국 다음날 고막원천 합수점인 석관정까지 도착을 해 계획대로 3구간만에 태청지맥을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다음주에는 화원에 들어 가장 길게 남아 있는 호남지방의 지맥을 마무리하고 4월 안에 호남지방에 남아 있는 전지맥 완주를 목표로 진행을 해 보기로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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