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지맥 02 (비운치~수리재)
2016. 1. 3 (일) 산길 : 비운치~수리재 사람 : 멋진산악회 함께 거리 : 15.3m / 05:50
비운치~1.0~봉암산~3.5~향로봉~3.0~학동치~3.7~수태산~1.4~약사전~2.7~수리재
Cartographic Length = 15.3km Total Time: 05:50
2016 병신년 첫 산행이다. 첫 단추를 잘 꿰어라 라는 말이 있어 그랬는지는 몰라도, 사실 오늘 쉬는 날이 아닌데 무리를 좀 했다. 우짜든동 함께 움직일 때 같이 갔다와야지, 빠져 놓으면 여러모로 불편하다. 예전처럼 물불 안 가릴 때야 모르지만 오만계산 다하는 요즘 같아서야 땜빵이 쉽게 되겠나. '안하고 말지' 하고 외면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난 주에, 조진고문님이 주말에 와룡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분명 들었는데, 정작 주말이 되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 이 기억력을 어이할꼬? 지난 주 이기도 하지만, 해가 지난 작년의 일이 되다 보니 그랬나... 신나게 달리다가 나무에 달린 고문님 리본을 보고, "어, 언제 다녀 가셨지....?", "...아~ 차, 차~! 오늘이구나"
고문님은 예의 그 스타일대로, 어제 첫 구간을 하고 오늘은 2구간이니, 아침 일찍 비운치에서 와룡산으로 올라가셨을 꺼라. 어차피 만날 수는 없는 엇갈린 운명이긴 하다만, 그렇더라도 미리 교감이라도 되었어야 할 일 아닌가 말이다. 그 리본마저 못 봤다면 연락도 못할 뻔했다.
오늘 구간 역시 짧은 거리에 비해 유명산을 둘이나 끼고 있다. 향로봉과 수태산이 그것이고, 봉암산은 유명무실한 봉우리다. 또 월부산이니 돌구산이니 하는게 있는데 둘 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의도하에 그렇게 표시를 해놓은거 같다. 고성군청 어디를 뒤져도 그런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한려해상, 특히 자란만을 내려다보는 조망 또한 빼어난 곳인데 오늘은 날씨가 받쳐주질 않는다. 이 멋진 구간에 파란색 바닷물 한번 못보고 지나가는게 억울하기 짝이없다. 수태산에는 동양최대 규모라 하는 금불상이 있는 보현암 약사전이 지맥 능선상에 자리를 잡고 있어, 일부러 찾아오는 발길도 많은데 지맥 마루금 타면서 이런 유명한 관광코스를 겸해 지나가니 꿩 먹고 알 먹고 횡재한 셈이다. 정초부터 재수가 좋으니 이 끗빨 한 해 내도록 이어질런가 기대를 해보자.
08:55 비운치 09:27 봉암산 09:48 화성재 10:18 운흥사 등산로 10:55 향로봉 11:40 학동재 12:47 수태재 13:13 수태산 13:50 약사전 14:45 수리재(달막동산)
07시 조방앞 현대백화점을 출발한 버스는 4차선의 남해고속도로를 마구마구 달려 달려, 눈 한번 깜박했을 뿐인데 문산휴게소 마당에 정차를 한다. 그런데 안개가 얼마나 자욱하게 끼었는지 기사님이 휴게소 주차장 차 댈곳을 못찾아 한쪽 귀퉁이에 주차를 한다. 둘러보니 차량 모두 안개등에 쌍라이터를 켜고 있다. 에고고... 오늘 조망 또 물건너 갔구나.
비운치
비운치(160m) 사천시 사남면 계양리. 도로 서쪽은 사천시, 동쪽은 고성군이다. 구름이 날아간다고 비운치라는데, 삼천포쪽은 그나마 경사가 좀 있어도 사천쪽은 평지나 다름없어 고개이름은 좀 과장된 듯하다.
오늘 구간은 고성군 서쪽 끝에서 시작해서 하이면, 하일면, 상리면, 삼산면까지 가게 된다. 도로 건너편에 임도 같이 넓은 길이 올라가길래 이게 웬 떡 아닌 길이냐... 노래를 불렀다만, 잠깐 맛베기만 보여주고 어마무시한 크기의 납골묘에서 끝이다.
금녕김씨 충의공파
대단한 규모의 금녕김씨 숭조당(납골묘)이다. 납골묘도 한 때 유행하다가 내부에 구더기가 생긴다고 잘 안하더라만, 여기는 지붕에 환풍구 시설까지 갖췄다. 넓은 길은 여기까지 이고, 위로는 산돼지나 다닐 길이다.
지도에는 왼쪽 골짜기에 채석장(정암레미콘)이 있는걸로 되어 있다만 지맥길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다. 굵은 전깃줄과 삐삐선이 발에 밟힌다. 이 전선은 봉암산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정상부에는 자그마한 태양광 전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저기서 전기가 만들어져 봤자 얼마라고, 그 전기를 마을로 끌어 쓰려고 이렇게 길게 전선을 깔았나 의문이 든다.
봉암산 (蜂岩山 △사천414)
지도에 표기된 봉암산의 봉字가 벌 蜂인데, 한자를 보고 벌(bee)을 생각해서는 안되고, 비운치 북쪽 사남면에 벌바위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이름을 한자화 한게 봉암산이 된것이라. 우리말로 벌바위산이 되는데, 지도에 표기된 벌바위는 이 산이 아니라 마을에 있다. 물론, 다른데도 흔한 '벌바위' 지명에서의 벌이 蜂(bee)인지 아니면 다른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삼각점에는 삼천포414로 새겨져 있지만, 지리원 고시는 '사천414'로 되어있다. 5만지형도 도엽명이 삼천포에서 사천으로 바뀐 결과다.
신라 화랑들이 무공을 닦으면서 주변의 돌을 칼로 썰었다는 전썰이...
바로 인근의 낮은 비운치를 놔두고 이 높은데로 넘어 다녔겠나...? 지도에 표기만 있지 고개도 아니다.
헬기장이었던지 보도블럭 몇개가 밟힌다. 안쪽 나무에 '월부산'이라 적은 코팅지를 걸어놨는데, 월부산은 또 어디서 온 이름인고? 언뜻 마산 진북면에 '대부산'이 생각이 난다. 대부산 산주가 러쉬앤캐쉬라든가? 할부산은 어디 없으까...?
혼자 생각이긴 하지만, 3천산이네, 7천산이네 하며 다니는 사람들이, 자신이 등정한 산 갯수 채우려고 온갖 이름을 동원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여튼간에 사람들요, 제발 산 이름 함부로 짓지 맙시다.
나뭇가지가 고사(枯死)한 형태인데, 그 끝에 별 모양은 뭔지 모르겠네. 누가 일부러 붙인것도 아닌 자연 그대로인데, 희한하게 생겼다.
운흥사 등산로
있는둥 마는 둥 하는 산길을 따라 가다가 문득, 우측에서 올라 온 조은 등산로를 만난다. 이정표 팻말에 글자가 너무 낡아 겨우 알아보겠다. 우측 아래 운흥사에서 올라 온 길이다. 운흥사 창건 유래에도 의상스님이 다녀가셨단다. 우리나라 절 수가 22,000개(2008년) 정도라는데, 웬만한 절 치고 원효 의상 안 다녀간 절이 없으니 둘로 나누면 1만개가 넘는다. 또 대부분 산에 있으니 신라시대에 이미 1만봉 이상 다닌 사람이 두 분이나 계신다. 하물며 요즘 처럼 교통이나 장비가 발전한 시대에 살면서 1만봉 어쩌고 하시는 분들, 명함이나 내겠나.
하이면 와룡리 ◎와룡산 운흥사(臥龍山 雲興寺) 소백산맥의 최남단에 위치한 삼룡(三龍)의 하나인 고성 와룡산 중턱에 자리잡은 운흥사는 기록에 의하면 통도사의 말사(末寺)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13교구) 쌍계사의 말사이다. 운흥사는 서기 676년 신라 문무왕 16년(지금부터 1,300여년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동 사찰에 부속된 천진암과 낙서암은 조선 숙종 8년(서기 1692년)에 응화선사가 창건한 암자로 전하고 있다. 운흥사는 임진왜란때 이 지역 승병의 본거지로 사명대사가 지휘하던 승병 6천명이 왜적에 대항하여 싸운 곳으로 유명하며,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수륙양면 작전을 꾀하기 위하여 의논차 세번이나 이곳에 왔다고 전하고 있다. 절의 규모는 옛날에 부속된 암자가 9개나 있었던 절터와 맷돌이 있으며 절아래에 있는 부도를 미루어 보아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조선후기에는 불화의 화원 도장으로 유명하며 조선 영조때에는 불화의 대가(大家)이신 김의겸(金義謙) 스님 등을 배출한 사찰이기도 하며, 소장 문화재로는 대웅전(大雄殿)과 괘불(掛佛), 경판(經板)등이 보존되어 있다.
소백산맥이 광주 무등산으로 갔다는 소문을 들어 본거 같기도 하고, 광양 백운산으로 갔다는 설도 있다만, 삼천포로 빠졌다는 보고는 여즉 받은 바 없는데, 어디로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나.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 소백산맥이라니~!, 경남 고성에 소백산맥은 아니라고 전해라~, 하여튼 운흥사는 의상대사 사명대사, 이순신장군까지 다녀가신 유래가 깊은 절임에 틀림없다.
독가스 배출이 심한 잉간이라, 바짝 붙으면 안된다
그래도 자세는 나오네
비스듬히 올라가다가 왼쪽(북)으로 돌출된 바위가 있어 올라서니 조망이 일망무제다. 지난 구간 와룡산 봉우리는 다 들어오고, 멀리 지리산 상봉도 보일 장면인데, 그까지는 보여주질 않네.
천왕봉~새섬봉~민재봉
성수가 묵직한 밀감 봉다리를 하나 꺼내 놓는데, 껍질이 다 까진 밀감이다. 집에서 일일이 다 까서 가져온 모양인데, 정구라님은 원래부터 밭에서 딸 때부터 이런거란다.
저 멀리, 수태산이 모습을 드러낸다(우측 맨뒤)
봉우리 같지도 않는 평평한 능선. 5만 지도에는 표기가 없고 2만5천 지도에 ×534.8 표기가 있다.
옛날에 내가 찡가놨던긴데...(정구라)
돌이 뚫고 들어간건지, 나무가 그렇게 자란건지. 저 돌을 빼 내면 어떻게 생겼을까.
향로봉 직전의 조망바위. 온 산하가 다 보인다
지난 구간 각산에서 민재봉까지
삼천포화력발전소
향로봉 (578.3m △사천303)
헬기장 처럼 넓은 터에 팔각정자가 있고, 정상석에 글자가 새겨진 면이 북쪽을 향하고 있는게 좀 잘 못된듯 하다. 보통 제를 올리더라도 정상석 글자 새겨진 면을 향하게 되고, 그래 절을 올리게 되면 북향재배가 되는게 맞지 싶은데, 어쨌든 그것보다 북쪽면에 글자가 있어 역광이라 사진빨이 영 안받아준다. 별 수 없이 순광으로 찍고 나름대로 글자를 써 넣었다. 향로봉을 지나면서 고성군 상리면을 만난다.
자란만 우측에 좌이산 (左耳山 415.8m)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족보있는 左耳山이다.
백암산 갈림봉은 옆구리로 질러가면, 하이면이 끝나고 하일면을 만난다.
동산리 507.8봉
수태산 앞 능선은 임도를 타고 휘돌았다.
우측 아래 임도가 바짝 붙어 지나간다. 임도로 내려가도 학동치로 연결이 되겠다만, 산길도 순탄하다.
태고적에 와룡지맥을 다녀가신 선답자 발자국 그분의 이름은 공룡이라 카더라
학동재 절개지
학동재
학동치(230m) 남쪽 아래 학림리에 학동마을이 있어 학동치가 된 모양이다. 상리면 동산리로 넘어간다만 교통량은 한적하다. 고개 좌우의 임도를 서로 연결하는 다리가 생태통로 역할을 한다. 임도옆 따뜻한 양지를 찾아 점심상을 폈다.
엄청난 절개면을 만들었다
묵꼬 살라고 하는짓이라...
학동재 건너편 까꼬막 비탈을 피해 우측으로 돌아가는 임도를 타고 수태재까지. 임도가 시간은 더 걸리겠다만, 경치는 더 좋지 않겠나...
학동마을에서 학동재로 올라가는 고갯길. 향로봉
임도 정밀탐구 "지맥하면서 임도타면 안되는 이유 세 가지만 말 해바라~"
약사전
수태재
수태재(350m) 지도에는 수대재라 인쇄되어 있다만 먹물이 조금 모자란 모양이다. 이것도 예산부족 탓인지. 넓은 임도는 수태산을 한 바퀴 돌아, 무이산 아래 문수암까지 계속 넘어가겠다. 잠시 숨 좀 돌리고 570되는 수태산 비탈로 발을 올렸다.
[상리동산]은 상리면 동산마을을 말하고, 학동재 북쪽 아랫마을이다.
민재봉은 아스라하고, 향로봉도 멀어진다.
수태산 직전 조망바위
수태산 (秀泰山 574.8m △사천11)
크게 泰, 빼어난 秀, 산 임에는 두 말이 필요없다. 뻥 좀 보탠다면 제주도까지 보일 장면이다만, 그것도 그만한 德을 쌓아야 하는지 오늘은 자란만도 희미하다. 산이름에 걸맞게 삼각점도 1등이다.
자란만, 좌이산
제주도는 고사하고, 사량도도 희미하다
약사전
상리면 척번정리(滌煩亭里) 척번정리는 마을이 보기에는 평평하지만 비가 오면 빗물이 깨끗이 씻은 듯이 간데 온데도 없이 없어지기 때문에 씻을 척(滌), 번뇌 번(煩), 정자 정(亭)자를 따서 척번정리로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불교적인 의미가 짙은 이름으로 근심 걱정이 없는 마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약 100년 전에는 대나무가 울창하여 죽번정(竹煩亭)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하며, 척정마을은 면소재지 마을로서 상리면의 중심 마을이다.
무이산(武夷山) 중국에도 武夷山이 있는데, 중국말로는 '우이산'이라 읽는다.
[←문수암 1.0km]
왼쪽은 무이산으로 가는 길이고, 지맥은 직진이다.
무이산 (545.6m)
무이산 문수암(文殊菴 고성군 상리면) 쌍계사의 말사인 이 절은 서기 68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기도도량이다. 신라 신문왕 8년 의상대사가 남해 금산을 향해 가다가 날이 저물어 청량산 기슭 마을에 유숙하게 됐다. 때마침 마을을 지나던 두 걸인이 청량산에 들러보시라고 간청했다. 이들이 하도 간청하는지라 의상대사가 청량산을 둘러보기 위해 다음날 길을 나섰다. 두 걸인이 의상대사를 안내해서 따라가 보니 자신들의 집은 문수단이 있는 석벽 사이라고 가리키면서 홀연 사라졌다. 의상은 그 신비한 체험과 빼어난 절경에 반해서 문수암을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신라시대에는 해동의 명승지로 유명했고, 화랑들이 이곳에서 심신을 수련했다고 한다.
중국 武夷山 구경 (EBS 영상)
감치재 왼쪽의 무량산(대곡산), 정면에 누렇게 절개지로 보이는데가 오늘 종점인 이화공동묘지
관광버스도 올라 오겠다
보현암 약사전 금불상. 동양 최대규모란다
약사여래불이라 약 종지를 들고있다
티벳 사원에는 둥근 나무통으로 만든 경통(經筒) 이란게 있는데, 그 안에 불교 경전을 넣거나 바깥면에 새기기도 한다. 무지하여 글을 몰라 불경을 읽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설치했다. 경통을 한 바퀴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것과 같은 효과라 한다. 고시촌에 이런 경통을 만들어 놓으면 장사 되것다. 한 바쿠 돌리면 법과목 하나 읽은거와 같다고 썰을 치면서...
수태산 보현암
무이산 문수암은 신라시대인 서기 688년(신문왕 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천년고찰이다. 특히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상원사, 충북 영동의 백화산 반야사, 서울의 북한산 문수사 등과 함께 대한불교 4대 문수보살 기도성지로 알려져 있다. 문수보살은 대승불교에서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살로서, 항상 석가모니불의 좌협시 보살의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수능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이 치성으로 기도를 드리는 보살로서도 유명하다.
수태산 보현암은 그렇게 오래된 절은 아니다. 1983년 청담 대종사의 제자인 휴암당 정천 스님이 창건했으며 법당 내부의 유리 벽면 뒷편 바위에 석가모니부처님과 문수, 보현 좌우 협시보살을 함께 모시고 있다. 특히 보현보살의 공덕을 기리는 암자다. 사자에 올라타 있는 문수보살이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한다면, 이빨 6개가 난 흰코끼리에 올라탄 것으로 그려지는 보현보살은 그 지혜와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는 '실천'을 상징한다. 아울러 중생들의 생명 연장을 관장하는 보살로도 알려져 있다. (국제신문 근교산)
선두, 후미, 다 떨어지고 그림자와 둘이서 간다
약사전 뒤편 쪽문을 통해 내려가면 우측 절골로 내려가는 안부를 지난다. 지형도에는 '절골고개'가 엉뚱한데 표기가 되었다만 여기 안부가 절골고개로 보이고, 올라서면 하일면, 삼산면, 상리면이 갈라지는 삼면봉인 382봉이다. 지맥은 왼쪽으로 꺾어 상리면과 삼산면계를 따라 간다.
문수곡 갈림봉
북서쪽으로 올라가다가 우측으로 급하게 꺾이는 봉우리. 나무의자 두 개가 있고, 준희님 팻말 [405.1m]에 누군가 매직으로 '돌구산'이라 적어놨다. 돌구산이란 이름은 국제신문 근교산 개념도에 표기를 했는데 그 이름에 대한 언급은 없고, 검색을 해봐도 그 유래나 근거를 찾지 못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여기서 무심코 직진하면 문수곡으로 떨어지게 되고 지맥은 오른쪽으로 사정없이 틀어야 되는데, 우틀하는 순간 산길 분위기는 사납게 돌변한다.
이리저리 긁어대고 훑는 와중에도 길을 잘 찾아야겠다. 맥을 잡기가 애매하기도 하지만, 도면상 삼산면계를 따라 약간 우측으로 휘도는 기분으로 내려간다.
철망 울타리 사이에 쪽문이 나있다
처사여양진공. 비석을 보니 이 어른도 마누라(配)가 둘이다.
달막동산
달막마을 뒷동산이라
삼산면 장치리(長峙里) 중촌(中村) 중촌마을은 1914년 3월 1일자 조선총독부 경상남도령 제2호로 상남·상서면이 병합되어 삼산면으로 개칭될 당시 장치리(長峙里)의 행정구역에 속하여 있다가 1918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능골· 달막· 뒷골· 중땀· 들땀· 솟도골의 자연마을을 묶어서 상촌과 하촌 중간에 있다하여 중촌(中村)으로 이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중촌마을을 일명 "수리치(재)"라고 하는데 마을 뒤(북쪽) 산세가 마치 수리가 날아가는 모양과 같다하여 "수리치"라 불렀으며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상리면 자은리로 통하는 고개(재)가 수리치 고개로서 지금은 "수리재"라 부르고 있다.
수리재 (180m) 고성 삼산면과 상리면을 가르는 고개로, [달막동산]이라는 표석이 있어 달막재란 이름이 쉽게 불러진다만, 현지 달막마을에서는 수리재라 부른다하니 우리도 당연히 수리재로 불러야겠다. 산꾼들이 객지로 다니면서 그 동네에서 부르는 고유의 이름이 있음에도 임의로 작명하여 남의 동네 고개이름을 바꾸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날씨가 받쳐줘야 조망이다
제대로 된 그림 (펌)
고성읍에서 목욕하고, 마산으로 넘어간다. 오늘의 메뉴는 마산 아구찜이다.
진짜 오리지날 원조 초가집 아구찜
원조쯩을 붙여놨다.
마산아구찜
마산아구찜은 마른 아구를 쓴다. 그래서 '건아구찜'이라 하는데, 마산만에서 잡은 생아귀를 추운 겨울 덕장에서 3개월여 간 "꾸득하게" 말려 찜으로 낸다. 말린 아구가 아닌 생아구찜에 익숙한 타지방 사람들은 별 맛을 못 느끼나, 어릴때 부터 먹어 온 마산 출신들에게는 그 "쫄깃하고 꾸득하게 씹히는 맛"에 중독이 되었단다.
처음 먹을때는 매운줄 모르다가 먹으면 먹을수록 맵고, 씹으면 씹을수록 깊고 담백한 아구살 맛이 서서히 우러나오는게 마산아구찜의 특징이라고, 아구는 경상도사투리이고 사전에 나오는 표준말은 '아귀'다. 그렇다고 아구찜을 '아귀찜'으로 불러서야 그 맵싹하고 쫀득한 맛이 나오겠나. 아귀찜이 아니고 아구찜이라야 제맛인 이유다.
메뉴판을 보니 생아구찜도 있긴 한데, 생아구찜 먹으러 역부러 여기까지 올 일없다. 그건 그렇다치고, 요즘 마산 앞바다에 아구가 잡히기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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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은산 원문보기 글쓴이: 조은산
첫댓글 이틀에 걸쳐 와룡지맥을 진행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겨울철 산행지로 남녁의 와룡 산줄기가 각광을 받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멋스러운 풍광과 더불어 함께하는 모습이 즐겁기만 합니다.^^
올 한해 뜻하시는 모든 일 성취하시고 건강한 산행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각중에 와룡지맥이 난리네요. ㅎㅎ
한나절 구간 남겨 두셨네요.. 생략인가요? 어디로 더 연장해서 가시나요..?? 남은 구간 벨 볼일 없어 보이는데..예비군 훈련장 외에는..
아-! 권할만한 사항---공동묘지를 지난때 묘지에 쓰던 납작한 돌들이 많이 쌓여 있는데, 그중 한두개 골라서 괴기구워 먹을때 사용 하셔요.."강추"
감치재로 안가고, 고성읍으로 직행할겁니다
납짝돌 몇개 챙겨놓겠습니다. 단, 괴기는 고문님이 갖고 오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