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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불던 바람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따스한 꽃바람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둠속에 헤매이는
외로운 등불이여
안개속에 헤매이는
희미한 추억이여
사랑은 바보야
사랑은 바보야
사랑은 철부지
사랑은 철부지
그 사람 이름은 꽃바람
그사람 이름은 꽃바람
이제는 안녕
이제는 안녕 안녕
어둠에서 솟아나는
찬란한 태양처럼
따스한 꽃바람도
어디선가 불어오리
상처입은 마음은
허공에 날리우고
사랑하는 마음은
햇살에 묻으리라
사랑은 바보야
사랑은 바보야
사랑은 철부지
사랑은 철부지
그 사람 이름은 꽃바람
그사람 이름은 꽃바람
이제는 안녕
이제는 안녕 안녕
이제는 안녕
이제는 안녕
안녕
이제는 안녕
이제는 안녕
안녕
한국사회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20살이 됩니다. 저는 스무 살 때 객 사리 중앙다방
옆 아인 당구장 앞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허구한 날 일도, 탁곤, 종석 이와 몰려다녔고 당시
라일락 패거리들과 친하게 지낸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고3때 교도소에 들어가셨다가 아마도
6개월 공 징역을 살고 집행유예로 출소 하셨을 것입니다. 그 고생고생해서 버틴 금강 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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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여관, 그리고 민박집을 의논한번 없이 처분해버린 것 때문에 저는 아버지께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도대체가 이해를 할 수 없는 위인입니다. 차라리 도박이나 첩
질을 해서 돈을 날렸으면 이해를 하겠는데 여타한 이유도 없이 업장을 다 뺏겼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이때 저는 ‘꽃바람‘이란 조 용필의 O S T를 들으면서 세상 고독을 혼자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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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양 초를 잡았습니다. 사실 많이 외로웠습니다. 어머니가 출소하자 우리는 앵 비집을
빼서 객 사리로 이사를 했습니다. 당장 먹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정든 집’
이라는 식당을 차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울 어머니도 생활력 하나는 끝내준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만든 홍어 회 무침이나 생태찌개는 일품이었는데 돈을 못 번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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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큰누나는 서울에 취업을 나가 있었고 둘째 누나가 집 앞 ‘동남 여행사‘에 출근을
했을 것입니다. 21살인 누나는 꽃같은 나이로 비주얼이 활짝피었습니다. 우리 식당 바로
옆에 애자라는 여자애가 살고 있었는데 내 동생 진호랑 썸 싱이 있었더라고요. 내 동생
진호는 그리스도인이라서 그만했지 상당한 훈 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때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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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내 동생의 연애 학을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내 동생은 노래도 잘했고 중 고등학교
때에는 금 빼지를 달고 다닐 정도로 공부도 곧 잘해서 광고로 통학을 했습니다. 절친
일도가 2년을 꿇고 사격 특기생으로 내동생과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을 다녔습니다. 아인
당구장이 집 앞 10m거리입니다. 우리들의 선망의 장으로 모였다하면 땅 밀(땅콩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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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 겐빠이를 쳤습니다. 일도, 탁곤, 상준이가 200을 쳤고, 승한이가 400점을 쳤을 것입니다.
저랑 준오가 150을 쳤는데 쓰리 겐뻬이를 치면 항상 상준이 팀이 이기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치는 상준이가 저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개자식. 우리 나와바리는 원래가
올림픽 당구장인데 당구장 카운터가 직접 선배이어서 왔다갔다 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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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장에서 당구를 쳐야 더 재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2년 선배인 재근이 형이나
1년 후배 영 섭, 그리고 1년 선배 창식이 형, 나 상천 형들과 어울려 당구를 치기는 했어도
은근히 우리가 더 센 척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의 20살은 올림픽 당구장에서 한영이 형과
함께 어영부영 했습니다. 일도가 달려가는 바람에 우림 애들과 잦은 트러블이 생겼고 저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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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들을 상대하느라고 생고생을 했어도 나름 야물게 잘 지낸 것 같습니다. 제가 식구들도
없이 혼자 단 한 번도 쪽을 타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저는 이때부터 건달세계의 갈등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올림픽 당구장 시절(고3) 한영이에게 777
칫솔로 자*에 아령을 박는 것을 직접 보고 배웠고 문신이나 칼자국을 만드는 작업을 생생히
목격했습니다. 1년 선배인 한영이나 영종 선배는 무소불휘의 존재이었습니다. 한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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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이가 저를 예뻐한 것은 상두가 준석 이를 챙기는 것이나 매 한가지였을 것입니다.
당구장에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해 뜨는 집’ 정 수라의 ‘파파‘ ’참새와 허수아비‘
‘인어 이야기’ ‘잃어버린 우산‘ 같은 명곡들을 처음 접하면서 중졸인 한영이가 음악을 상당히
좋아한 건달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희대와 단국 대를 다 떨어지고 중앙다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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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치고 있는데 서 강 대 교수라는 양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1년 장학금 줄 테니 학교에
나오랍니다. 대학교라고 가보니 고등학교랑 똑 같습니다. 제가 응용미술과를 갔는데
우리 과는 예쁜 여자 애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교양과목 도강을 하면서 미인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아인 당구장에서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조상용 씨가 당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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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었는데 상곤이랑 비슷한 대상이었다는 느낌입니다. 당구장 국밥 소동으로 제
뺨을 쳤고 그때 저는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성난 질풍노도가 상옥이 누나네 집에 들어가
부엌칼을 들고 들이 댄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곧바로 입대해버렸습니다. 1984년4월25일
입대를 했는데 한 달 논산훈련소에서 교육 받을 때 제가 병력 2,500명 중에 대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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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이나 조 상철 형은 이 일의 증인입니다. 그리고 헌병대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남한산성(육군종합행정학교)로 차출되어갔습니다. 8주 동안 얼마나 빡세게 교육을
받는지 84년 헌병대 동기들은 알 것입니다. 육, 해병 통합 교육을 받는데 110명 중에
제가 1빠이었습니다. 동기들은 물론 후임이고 선임이고 다들 저를 인정해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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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만든 장우 회‘’ 동기들이 보고 싶긴 합니다. 병탁, 충호, 호승, 상철, 효석 중에
64년생은 저 한명 뿐입니다. 병탁은 제대하고 한 번인가 만났고 충오는 송우리에서 저랑
한1년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바다이야기 게임장 할 때 충오가 바지를 서주었는데 제가
징역을 가는 바람에 충호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중호가 이일로 벌금 징역을 살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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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지금이 56세이니까 30년 전 이야기입니다. 18살 때까지는 일도는 제게
준석 이 같은 존재이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의 일대기가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지나놓고 보니 저는 참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내장산이나 변 산해수욕장에서
철 장사를 했고 군대에서 헌병대 교육 뿐 아니라 남한산성과 수방사 징역을 직접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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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해서 전방으로 전출을 갔고 그곳에서 장교들과 영관급들까지 목침을 때리며 악명을
떨쳤습니다. 얼마 전 산불이 난 3군단 구역에서는 권총차고 술마시러 나간 적도 있습니다.
수방사 있을 때 육사 39기 비서노릇을 하면서 수방사를 뒤집어 놓았고. 3군단장 비서실에
있으면서 인제 원통을 산천초목이 떨게 만들었습니다. 장세동이 전역식이나 전두환 경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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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이 아닙니다. 상택이가 헌병대 대위에게 옷 벗고 검열 받는 장면이 나왔지요? 보안대 출신인
전두환이 보안대를 친위대로 사용을 했으니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당시506보안
대는 지금 공수 처, 아니 중정 같은 곳입니다. 저는 동작 검문소 시절은 전경을 개 박살 내서
그 졸병이 탈영을 한 사실이 있고 보안대를 급습해 초소장이 권총을 장전한 일이 실화입니다.
그래서 제가 병장 때 우리 중대장이 저더러 말뚝을 박으란 말을 했어요.
내가 나가면 군바리만 못하겠느냐고 거절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군수사관도 괜찮았을 건데
괜히 군복을 벗었나 봅니다. “동사무소에서 나왔습니다. “ 야쿠자가 뜁니다. 소독차트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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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아 타고 토낍니다. 그러나 네가 뛰어봤자 벼룩아이가. 목조르기 해득 록으로 준석 승
입니다. 야쿠자 회장님께서 친구의 우정을 가슴깊이 새기겠답니다. 준석이 영광의 상처로
왼팔 깁스를 했습니다. “인자 우리구역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고 준석이 너 일본
좀 들어갔다 와야겠다. “ ”저는 일본 말도 할 줄 모르고 다른 적임자를 알아보시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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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겠습니다. “ ”이것은 우리 식구들의 미래가 달려있다. 일단 치료부터 잘하고 아버지께
인사하고 올라가라. “ 청송입니다. 동수가 *뺑이 치고 있습니다. ”서유진일세 그동안 잘
지냈나? 너도 총대 매고 들어왔지?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지 내가한 가지만 일러줄게
네가 출소하면 돈만 주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마라. 좋은 오야붕은 없다. 절대로 돈을 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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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되지 말고 돈을 주는 사람이 되라.“ 소지가 책을 교환해줍니다. ”내가 처음 세상과
멀어진 때가 몇 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막상 세상을 나가보니 여기가 그리워지더라.
고마웠다. 열심히 살아가거라. “ ”엄마가 마지막으로 일본 고향집에서 쓴 편지다. 나중에라도
네 안사람 생기면 지 대신에 전해주라는 내용이다. 읽다보니 자꾸 눈에 밟히는 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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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숙이 그 아가 네한테나 나한테나 참 잘해준 아는 진숙이다. 네가 정신을 못 차리고 상곤
이랑 붙어 다닐 적에 내가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했다. 일본가기 전에 한번 챙겨보고
안부나 전해줘라. 아무 잘못도 없는 아한테 모진 소리를 해 마음에 걸려서 하는 소리다.“
감방에서 징역을 깨고 있는 동수가 거랑 맞습니다. “진숙아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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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말이 없구나. 친구로서 남자로서 돌이 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대학만 들어가면 마치 내 세상이 기다리는 줄 알았다. 결코 내 실수에 대하여
너저분한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추억속의 천사를 만나 잠시 자제력을 잃었던
것을 용서해라.“ 이런 편지를 쓸 놈은 상택이 밖에 없습니다. 괜찮다 다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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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수 접견“ 진숙이입니다. ”잘 있었지? 당신 몸은 좀 어때요? “ ”괜찮다.“ 살은 빠져
보이는 게 건강해 보이네. “ ”고맙네 혹시 무슨 일 있나?“ ”아니. 우리 집 팔았다.“
“그래 잘했네.” “금보 씨하고 상의 했고 자세한 것은 편지로 의논할게” “참, 아버님은
어떠시나? “ ”언니가 당분간 모시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도 별일 없지? 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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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보고 싶나? 내 편지할 때 사진 보낼게” “그래 보내라 사진” “힘내야 된다. 알겠지.
잘 버티라“ ”그래 네도 잘 있어줘“ ”내가 당신 사랑하는 거 일지요? “ 연병,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동수가 편지 통방을 합니다. 옥수바리
들던 여자가 대장암으로 죽었답니다.” “여기는 슬픔을 나 혼자 밖에 모르니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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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숙이 동수에게 소포를 보내려고 하는데 마침 준석이가 왔습니다. “웬일이고 연락도 없이”
“진숙아, 선택은 네가 하는 거니까 알아서 해라. 다만 일본에 다녀온 다음에는 합법적인
일을 할기다. 동수 볼 때마다 자꾸 네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 내 첫 여자를
평생 제수씨라고 부를 수 없는 거 아닌가? “ ”참 듣기 불편하네. 만약에 내가 동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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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랑한다고 하면 어쩔 건데? “ ”다행이네?“ ”뭐가?“ 네가 아직은 동수를 사랑 안
해서“ ”그렇게 말한 적 없다. “ ”충고하나 할까? 너무 잘난 척하지 마라“ ”그렇게 보였다면
미안하다. 잘 다냐올게 잘 지내라. “ 진숙이 갈등이 되는 모양입니다. 어쩌면 좋을 까요?
동수 역시 청송 징역을 버티는 이유가 순전히 진숙이 때문입니다. 눈물보이지마~ 청소2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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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 중오가 대기하는 것이 동수가 출감이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영치금 플러스 월급에
사인을 했으니 드디어 출감입니다. “준석 이는 아직 일본 있어서 마중 못나왔다. 건강하지
얼굴 좋다. “ ”친구야, 축하한다. 며칠만 기다려라 진하게 한잔 하자. 내가 지금 너랑
같이 못 있는 거 진짜 스트레스다. 조금만 기다려라“ 동수가 나와서 도루코가 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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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습니다. “은기 싸가지 없는 세끼는 가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가야지” 양 의원이 월남 파병
중대장을 비서관으로 픽업했답니다. 양 의원의 3선을 위하여! 동수가 차에서 내리면서
번호하나 번호 끝을 외치는 것을 너무 어이없어하지 마시라. 동수가 출소해서 돈까스를
시켰네요. “저화장실 좀 댕겨 와도 되나? “ ”여기 감방 아니다.“ 다음코스는 중오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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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에 왔습니다. “중오야, 와? 고맙다. 문둥이 코 빠는 소리하고 있네. 아마 네보다는
다 잘 있었을 거다. 성애랑 식을 언제 올릴 거고? 올림픽 끝나면 할기다.“ ”역시 중오는
역사와 함께 하네. 독방 혼자 있다 보면 혼자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대부분
자살은 독방에서 한다.“ ”상택 이는 신문사 기자된 거 알지?“ ”은기가 말은 안 해도 도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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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에 많이 힘들었나 보다“ ”참 진숙이 캉은 이작 편지 없지?“ ”가끔씩“ ”잘 있지“
“억 수로 악착같아졌다더라.” “중오야, 내가 각방에 있는 동안에 젤 하고 싶었던 게 뭔
줄 아냐?“ 많이 해라. 진숙이 스폰서와 함께 있습니다. ”어제 이사는 잘했나? 내 뭐하나만
물어보자. 네 목표가 얼마고? 돈을 얼마나 모으면 좋겠냐고?“ ”한 20억?“ ”그래 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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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네 남자 있나?“ ”애인이라기보다는 친구들입니다.“ 20억을 모으려면 그 전까지 연애
하지 말라 혹시 누가 네 통장에 20억을 꼽아준다고 하면 그 남자랑 살림해라.“ 이게 누구야?
오매불망 그리던 내님이 아닙니까? “나왔네. 내는 아침에 나오는 줄 알았지. 그래 아픈
데는 없고 다행이다.“ ”네 보고 싶다. 혹시 퇴근시간에 기다려도 되냐?“ ”내가 계속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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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삐삐해라” “동수야 미안” “그래 수고해” 동수네 부자가 모처럼 망중한을 맞았습니다.
“관속에 들어가는 사람 보면 대충 안다. 나는 솔직히 네가 준석이랑 하는 일 그만 뒀으면
좋겠다. 네는 그일 때문에 옥살이 한 것이 억울하겠지만 세상만사가 다 새옹지마다 네가
내 제사상은 안 차려줘도 된다. 대신 네가 다른 일 하고 살면 좋겠다.“ 은기가 동수를 찾아
왔습니다. '형님, 큰 형님이 보자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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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에 해 뜰 때 어머님 날 낳으시고 귀엽던 아가야 내 인생 시작됐네. 열두 살 시절엔
꿈 있어 좋았네. 샛별의 눈동자로 별을 헤던 시절 커피를 알았고 낭만을 찾던 스무 살
시절에 나는 사랑했네. 너밖에 몰랐던 너만을 그리며 마음과 마음이 주고받던 밀어 그러나
둘이는 마음이 변해서 서로가 냉정하게 토라져 버렸네. 새파란 하늘처럼 그렇게 살리라
앞날을 생각하며 인생을 생각하리."
2019.4.12.fri.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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