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나의 거리’ 5회입니다. 드라마 카테고리 정리하다가 5년 만에 다시보기를 꺼내
들었어요. 옥빈은 ‘유나의 거리’에서 가장 빛났던 것 같습니다. 화장에 들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유나는 슬픔을 가슴에 안고 있지만 울면 안됄 것만 같았습니다.
선친 장례 때 저도 직접 보았는데 만감이 교차하더이다. 생각지도 않은 창만의
-
방문에 유나가 든든했을 것입니다. 유나는 아버지의 넋을 강에 뿌리는 시퀀스에서
참았던 눈물을 뱉어 냅니다. 절제된 비정함이 묘한 섹시함을 주는 것 같았어요,
유나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창만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은데 창만은 유나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거리를 걷던 창만(이 희준)은 유나를
-
발견하고 반가움에 화색이 돕니다. 하지만 그도 잠깐 못 볼 걸 봐버렸습니다.
그는 유나가 소매치기 하는 걸 목격하고 말아요. 허겁지겁 유나를 쫓아간 창만,
겨우 유나를 따라 잡아 지갑을 돌려주라고 닦달 하지만 그런 창만에게 유나는 냉담
하고, 뒤쫓아 온 유나의 패거리들 덕분에 뒤돌아 설 수밖에 없습니다. 타이밍 맞춰
나오는 함정‘이라는 O. S. T 죽여줍니다.
-
니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함정
니가 나를 케어 한다는 말은 함정
누가 누굴 욕해
나를 탓해 가만 보면 똑 같은 게
그냥 전부 웃기는 게 함정
어색한 충고는 내게 다신 하지 마.
어떻게 보이든 나는 괜찮아
사랑은 그래 속는 셈
믿어 보자 치면 바로
거짓말처럼 보란 듯이
사라지는 함정
그냥 그렇게 가자
제발 날 좀 버려둬
세상 가는 길이다
내가 가는 길이야
니가 바라는 전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다 함정
니 생각이 맞을거라
믿는 건 함정
참는 자는 복이 온다
생각하면 함정
그런 착해빠진
생각들로 살다보면
당하고 또 당하는 게
세상이다 오~
어색한 충고는
내게 다신 하지마
어떻게 보이든
나는 괜찮아
사랑은 그래 속는 셈
믿어 보자 치면 바로
거짓말처럼 보란 듯이
사라지는 함정
그냥 그렇게 가자
제발 날 좀 버려둬
세상 가는 길이다
내가 가는 길이야
니가 바라는 전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다 함정
-
유나는 아버지(임 현식)가 손가락을 자르며 소매치기의 대를 끊어보려 애쓴 것을
알지만, 그런 아버지의 소원이 무색하게 이젠 아예 작정하고 남수(강 신효) 패거리와
함께 소매치기 사무실을 열고 필요한 인원을 충원하며 사업에 몰두합니다. 물론
그런 유나의 행동이 어떤 야심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유나는 늘 혼자 일하는 게
-
편했지만, 우연히 얽혀들게 된 남수 패거리의 딱한 사정에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고자
마음을 먹게 됩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보다는, 거리의 하이에나라도 조금 덜 외로운
길을 택했다고나 할까. 하지한 이렇게 삶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은 유나만이 아닙니다.
유나와 함께 사는 미선은 이미 간통죄로 감옥을 한번 들어간 경험이 있음에도 여전히
-
유부남의 등을 쳐 먹으며 사는 것을 자신의 주업으로 해요. 돈이라면 사랑 없이도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미선은 헤어지는 조건에 원하는 건 뭐든
해주겠다는 카페 사장 부인의 호소에, 이번에는 어떻게 하든 아파트 한 채는 챙겨야
하겠다고 속내를 밝혀요. 하지만 사랑 없이도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 미선은
-
정작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또 다른 사랑 없이 웃음을 파는 남자들을 만나러
갑니다. ‘유나의 거리’에서 유나도, 미선도 드라마 속 등장하는 여러 가지 삶 중 하나의
유형을 사는 사람일 뿐입니다. 소매치기를 해서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을 가르친
남수처럼, 비록 불법이지만 소매치기도 밑바닥 사 인생살이의 한 방법일까요?
-
‘유나의 거리’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은, 유나가 이제는 손을 턴 선배 소매치기
언니를 양순(오나라)을 만나, 진지하게 자신이 더 나쁜가, 미선이 더 나쁜가를 물어
보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에서, 유나는 자신은 그저 남의 돈을 잠깐 터는 것에 불과
하지만, 미선은 남의 마음을 터는 것이기에 더 나쁘다면서 은연중에 소매치기를
-
하는 자신의 세계관을 토로해요. 물론 미선이 바라보는 유나는 정반대일 테지만.
할아버지 조폭 도끼(정 종준)가 후배 조폭 똘마니들을 앞에 놓고 장황하게 자신이
몸담아 왔던 주먹의 역사를 설명하고, 한 만복(이 문식)이 말끝마다 주먹으로서의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유나의 거리’ 속 인물들은 꼴에
-
그것이 불법이든 어떻든 자신의 세계에 대한 자부심, 아니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요.
바로 그것을, 윈터 플라이의 입을 빌어 말하자면 그건 삶의 함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런 삶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걸까?
-
유나가 좋아진 창만은 같은 처지인 양숙과 결혼한 봉 달호(안 내상)를 찾아갑니다.
소매치기를 하던 여자의 손을 씻게 만들려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봐요. 그런 창만에게
봉 반장은 회의적인 답을 전합니다. 유나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기술이 뛰어나고,
본인이 그걸 잘 알기에 아마도 손을 씻기 어려울 거라며. 배운 도둑질이라고 할 줄
-
아는 게 소매치기 밖에 없는 이십대 후반의 유나가, 감방을 나온 지 얼마 안 된
유나가 그나마 세상에서 자기 것이라며 내세울 것이 어쩌면 소매치기 밖에 없답니다.
아는 사람은 알 뜻이 막상 손을 씻은 양 순의 삶도 그리 만만치 않아요. 경찰을
그만두고 노래방을 차린 남편을 위해 틈만 나면 노래방 전단지를 돌리고, 겨우
-
온 손님을 위해 도우미를 자청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녀가, 도우미로 들어가 부르는
'에레나의 노래'에서는 묘하게 양 순의 처지가 오버랩 되는 것 같았어요. 군대있을
때 들어보고 30년 만에 처음 듣는 에레나 송 살짝 슬퍼지더이다.
-
물론 유나와 정반대의 선택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상 남자창만 입니다.
유나가 소개한 유나의 이웃에 싼 값으로 방을 얻어 들어오게 된 창만, 싼 게 비지떡
이라고 방을 헐값에 주었다는 핑계로, 창민은 만복의 요구에 이리저리 불려 다녀요.
망치를 손봐주러 가는 도끼의 똘마니 역에, 결국 만복이 하는 콜라텍의 기도 비슷한
-
역할을 맡게 됩니다. 하지만, 몇 번 이리저리 만복의 요구에 따라 끌려 다니던 창만은
단호하게 그 세계에서 발을 뺍니다. 그 집에서 쫓겨날 수도, 그래서 더 이상 유나
가까이에 지낼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는데도, 창만은 그것을 거부합니다. 리스펙트!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왔다는, 하지만 대학생인 주인집 딸보다도 아는 게 더 많은
-
공무원 시험 준비생, 몇 달을 월급도 받지 못한 채 폐업한 식당을 지키던, 하지만,
자신의 길이 아니다 생각하니 단칼에 주먹 세계와 발을 끊는 청년 창만은, 근자에
보기 드문 드라마 남자 주인공 캐릭터입니다. 허긴, 소매치기 여주 주인공 역시
드물긴 마찬가지지만.
-
그러나 창만의 선택이 ‘유나의 거리’에서 환영받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 어떤 이해
관계에 얽힌 적이 없는 창만임에도, 그가 자신이 하는 콜라텍을 그만두었다는 이유
만으로 만복은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몇 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때
창만과 함께 '노가다'를 뛰던, 그래서 창만이 만복의 수하로 들어가자 그건 너의 길이
-
아니라고 충고를 하던 칠복(김 영웅)은 막상 자신이 일도 얻지 못하는 처지가 되자,
꼬박꼬박 나오는 콜라텍을 그만 둔 창만을 아쉬워해요. 하지만, 단호하게 왜곡된 삶의
함정에서 빠져 나온 창만을 기다리는 건, 정작 사랑의 함정입니다. 새로 돈을 들어
방을 재계약하고, 봉반방과 특별 수사반을 꾸려 유나의 소매치기를 감시 하겠다고
-
결정한 창만의 선택은, 삶의 함정은 피했으되, 사랑의 함정으로 한발 더 깊숙이 빠진
셈입니다. 한나절이 지나도록 일감을 얻지 못한 칠복은 그만 그럴 땐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어쩌지 못해, 살던 가락이 그거라서, 혹은 죽고 싶지
않기 위해, 저마다 자신의 삶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들어가는 것, 그것이 ‘유나의 거리’
에서 사는 밑바닥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2020.11.17.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