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어린이날 특집 5. 꽃과 풀과 나무를 듣는 방법
심상우가 짓고 강정구가 해설한 ≪심상우 동화선집≫
바람과 새와 나비, 아니면 자연의 언어
사람은 동물에서, 동물은 식물에서, 식물은 광물에서 자란다. 꽃과 풀과 나무는 사람의 고향이다. 바람과 새와 나비는 사람의 기억이다. 자연의 언어다.
나도 어느새 엄마의 재미있는 꽃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엄마의 이야기는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팻말이 없는 한 꽃 앞에 서게 되었다. 엄마의 발걸음이 딱 멎고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셨다. 그러고는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이상하다. 전에는 없던 꽃이 있네. 이건 동자꽃일 텐데….”
엄마가 머뭇거리자 주영이는 꽃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주영이를 따라서 나도 무릎을 구부리고 고개를 숙여 꽃을 보았다.
주황색 꽃잎이 동그랗게 나 있는 꽃이었다.
“엄마! 뭐가 이상해요?”
“글쎄다. 이 꽃은 저쪽 사람과 관련 있는 꽃 속에 심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래요?”
“근데 이 꽃 이름이 뭐예요?”
“동자꽃이란다. 동자꽃!”
“동자꽃!”
주영이와 나는 합창을 하듯 “동자꽃”이라고 했다.
그때였다.
“아이고,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네.”
갑자기 웬 동자 스님이 나타나 투덜거렸다. 나는 물론 엄마와 주영이도 깜짝 놀랐다. 동자 스님은 길게 기지개를 켜면서 우리들에게 물었다.
“왜 잠을 깨웠어요?”
우리는 모두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특히 더 놀랐는지 다리를 휘청거리셨다.
“세상에나! 동자꽃이 동자 스님하고 관련이 있다더니….”
엄마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주영이는 동자 스님을 바라보며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엄마 팔을 붙잡고 물었다.
“아줌마! 동자꽃하고 동자 스님이 무슨 관련이 있어요?”
“그, 그건 마, 말이다….”
엄마가 말을 더듬으시는 건 상당히 충격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엄마가 동자 스님을 보고 뭐라고 말씀하시려 할 때, 동자 스님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원래 고려 시대 때 동자 스님이었거든. 그런데 우리 절 흰 수염 할아버지 스님이 멀리 탁발을 나가시면서 나를 동자꽃으로 만들었어. 그래서 나는 자고 있었지. 그런데 너희들이 나를 불렀어. 나하고 나이가 같은 남자애하고 여자애가 함께 부르면 잠을 깨고 일어날 수가 있거든. 그나저나 흰 수염 할아버지 스님은 탁발을 다 끝내셨는지 몰라?”
“와! 굉장하다. 동자꽃에 그런 비밀이 숨어 있을 줄이야!”
주영이의 말에 나도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러니까 동자 스님은 천 년을 건너뛰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때서야 엄마가 정신을 차리셨는지, 동자 스님을 똑바로 쳐다보며 질문을 하셨다.
“동자 스님은 잠자는 동안 무얼 하셨어요?”
“해탈하는 꿈을 꾸었지요!”
“고려 시대 언제인가요?”
“북쪽에서 원나라 몽고 장수 살리타가 쳐들어오던 때이지요.”
“아이쿠! 그렇게나 오래됐어요?”
“그게 뭐가 오래인가요? 며칠 지나지 않았지요. 흰 수염 할아버지 스님은 단군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대로 다녀오기도 하는데요.”
동자 스님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우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 꽃 이름을 불러 주세요>, ≪심상우 동화선집≫, 심상우 지음, 강정구 해설, 134~136쪽
꽃이 사람이 되는 것인가, 사람이 꽃이 된 것인가?
동자승은 흰 수염 할아버지 스님이 자신을 동자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동수는 동자승의 말을 믿는가?
믿지 않는다.
믿지 않는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꽃에 ‘무슨 영혼이 있어? 다 꾸며 낸 이야기야!’라고 생각한다.
꽃에 대한 동수의 생각은 어떤 것인가?
우리 생각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사는 ‘주위세계’에서는 꽃을 도구적으로만 본다.
‘도구적’이란 어떤 시선을 가리키는가?
꽃을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생명이라고 보지 못한다. 꽃을 영혼이 없는 물질로 생각한다.
당신에게 꽃은 영혼이 있는 생명인가?
꽃뿐 아니라 풀, 나무는 지구에서 오래도록 산 생명체다. 사실 지구의 주인은 그들이다.
우리가 그것을 만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꽃, 풀, 나무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것은 바람, 새, 나비다. 이들에 주의를 기울이면 자연의 이야기를 죄다 들을 수 있다.
바람과 새, 나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가?
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들어보라. 그들은 꽃과 풀과 나무의 사이에서 산다. 그들은 자연의 언어다.
생명과 우리가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풀, 나무야 늘 있으니까 어디로 달아나거나 없어지지 않겠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풀과 나무가 사라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라는 뜻인가?
집착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의 의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왜 도구적 시선에 갇혀 있는 것인가?
해설자 강정구와 비슷한 생각이다. ‘사람은 도시화·공업화·산업화를 거치면서 주위세계를 전부 재화의 산출을 위한 도구적 세계로 바꾸었다’고 했다.
동자꽃은 실재하는가?
석죽과의 꽃이다. 깊은 산에서 자라며 다년생이다.
실재하는 꽃과 기억의 인물을 오버랩 시킨 이유가 뭔가?
실제 존재하는 꽃에서 고려 시대 동자승을 등장시키고자 ‘환상’을 방법으로 썼다. 꽃과의 대화를 통해 동수는 주위세계를 확장하고 다채롭게 꾸릴 수 있게 된다.
<도도새는 정말 살아 있다>는 어떤 이야기인가?
멸종한 줄 알았던 생명체가 나타난다. 그것도 이역만리 한국 땅에 나타났다. 인간의 무지와 욕심으로 인해 자연을 훼손시킨 사례 얘기다. 특정 동물 하나를 지정한 것이 특징이다.
도도새는 실재했던 동물인가?
그렇다. 인도양 모리셔스 섬에 살았던 새다. 칠면조 비슷하게 생겼다. 인간의 눈에 띈 지 약 100년 만에 사냥으로 멸종됐다.
이 이야기에서는 인간과 생명의 교감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멸종한 도도새가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닐 거야’라는 생각이 교감의 실마리가 된다. 이런 생각이 없었으면 도도새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멸종한 도도새를 어디서 만나는가?
희한하게도 유치원 동물 우리에서 발견한다. 주인공 정욱은 동물 연구원인 삼촌에게 도도새 얘기를 들었다. 평소 관심을 가졌던 터라 남들은 ‘칠면조네’ 하고 지나쳐 버리는 희귀 동물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집에 급히 뛰어와 삼촌에게 전화한다. 카메라를 가지고 다시 유치원으로 갔는데 도도새는 사라졌다.
그러고는 끝인가?
도도새는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도도 나무’를 발견한다.
도도 나무는 또 뭔가?
도도새와 공생 관계였던 나무다. 유치원 옆에서 자라고 있었다.
정욱이 봤던 ‘환상의 도도새’는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 행위의 해악과 그 반성이다. 사라진 도도새를 아동의 시선으로 되살려 놓음으로써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무지와 무관심과 욕망을 성찰하려 했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를 어떻게 표현했는가?
상상력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도도새 울음소리는 “우큐콸걀 칼걀돌두, 칼걀돌두!”라고 썼다.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통로, 곧 환상이란 어떤 것인가?
풀과 나무와 바람과 새와 나비,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 다르다. 그러나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면 환상을 통해 서로 들여다볼 수 있다.
당신이 자연 생물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뭔가?
자연과학에서는 ‘식물은 물, 공기, 햇빛만 있으면 산다’고 한다. 그러다가는 그것들 모두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교감할 상대를 잃게 되고 외톨이가 된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인간 아닌 것, 인간 밖에 있는 것들과 교감해야 한다. 인간밖에 없는 인간이란 이미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심상우다. 동화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