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4m에서 보낸 편지 / 남정언
궁금하다. 사람들이 왜 그곳을 가는지. 몇 년 동안 불교신문에 <봉정암에서 보낸 편지>가 매주 한 편씩 실렸다. 도대체 어떤 곳일까. 무엇이 있기에 거기만 가면 절절한 편지를 쓰는지 의문이 들었다.
한가위 보름달이 떴다. 올 추석 달은 유난히 크고 밝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맑은 기운이 흐르는 늦은 밤, 설악산으로 향한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라 불안하다. 여행하는 명확한 목적을 알 수 없다. 어떤 기도를 할지 나도 모른다. 버스는 칠흑의 어둠을 매달고 밤을 새우며 고속도로를 달린다. 무박 2일 여정이라 잠을 제대로 자기는 힘들 것이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백담사로 향한다. 확연하게 느껴지는 찬 기온에 몸이 떨린다. 추석 연휴에 왜 여길 왔을까.
백담사는 절 안팎이 청정한 절이다. 고요한 새벽에 마당을 쓰는 스님들의 분주한 몸놀림에 티끌 하나 떨어지기 미안해진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시를 읽으며 어디서 살든지 무엇을 하든지 올라갈 때 못 보고 내려올 때도 못 보는 사람은 되지 않기 위해 잠시 참회의 시간을 가진다. 깨어있어야 한다.
눈이 쌓인 줄 알았다. 온통 화강암 흰 돌이 계곡에 널려있다. 언뜻 보면 지난밤에 함박눈이 내렸나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흰색 돌은 물색을 깨끗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계곡물은 희다 못해 비췻빛이 감돈다. 민낯 얼굴로 돌무더기에 앉아 돌탑을 쌓아본다. 하늘을 향해 염원하는 작은 탑들은 기도하는 사람의 몸체와 꼭 같은 모습이다. 욕심 없이 돌 다섯 개를 올려 탑을 쌓는다. 작은 탑은 돌탑밭에 묻힌다. 내 마음이 편안하다.
봉정암 가는 길은 순례길이다. 언젠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가는 길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해마다 수만 명의 순례자가 걷는다는 천 킬로미터의 길. 끝이 없을 것 같은 길을 아름다운 고행이라고 했다. 봉정암을 찾아 돌길을 오르며 어리석은 물음으로 나는 왜 여기 왔을까 묻는다. 석가세존의 뇌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으므로 탑을 보러 간다고 답해 본다. 오대 적멸보궁 중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봉정암 가는 길이 이 땅 최고 순례자의 길이라고 한다. 과연 그것뿐일까.
설악이 단풍 들 준비를 한다. 영시암을 지나니 전나무 숲이 울창한 산속에서 손을 흔드는 붉은 단풍이 반갑다. 수백 년 묵은 금강송과 흰 돌, 푸른 물이 어우러진 계곡은 아름답다 못해 마치 꿈속을 걷는 듯하다. 하염없이 걷다가 철교를 만나고 구곡담 폭포에서 잠시 쉰다. 큰 바위를 안고 오로지 올라만 가는 사람들을 따라 이정표를 확인한다. 아직 사리탑까지는 멀었다. 설마 저 돌산 꼭대기 바위 위에 소나무가 있는 곳은 아니겠지. 구불구불한 바윗길을 걷는다. 얼음물에 발을 담그며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하며 사과 한 알을 나누는 인정人情을 느낀다.
최고로 힘든 길이 남았다. 직선 바위 절벽이 오백 미터 깔딱고개라 하는데 그곳을 올라가야 봉정암이다. 오르막길 마지막 순간에 생각났다. 그래 맞다. 봉정암에 가보는 것이 내 기도였다. 그런데 무언가가 흡족하지 못한 건 무슨 이유일까. 다섯 시간을 걸어 사리탑을 보려고? 분명히 아닌 것 같았다.
가파른 돌계단 위에 서서 자유로운 삶은 없는가.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를 꿈꾸며 바라본 하늘빛이 파랗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은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정신 차리라고 말을 건넨다. 질문은 했지만,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미흡한 가슴은 편하게 쉬지를 못한다.
봉정암은 봉황의 정수리 터다. 천 미터가 넘는 곳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절이다. 설악산 전체가 큰 돌이라 날카로운 공룡능선은 소름 돋을 정도로 아찔하다. 용 이빨 모양의 거친 용아장성이 병풍으로 무방비한 나와 이마받이한다. 보고픈 적멸보궁의 사리탑이 보인다. 높은 산과 파란 하늘은 준비하지 않고 허술하게 지냈던 내 삶을 말없이 내려다본다. 사자바위가 청정한 기운으로 두려움을 슬며시 훑어준다. 순간, 발밑 시멘트 바닥에 분명하게 1,224m라 새겨져 있다. 사리탑에 앞에서 뒤통수를 한 대 맞았다. 봉정암의 높이는 12월 24일에 태어난 딸 생일과 같은 숫자이다. 나는 지금 딸을 위한 기도를 하러 왔구나. 감사하다고. 정말 고맙다고.
딸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난 유월부터 구월까지 서울에 있는 병원에 취업 면접을 혼자 보러 다녔다. 서류를 접수하고 3주 후에 일차 면접, 2주 후 발표, 일차 합격해야 적성, 인성시험을 보고 2주를 기다리면 또 이차 토론과 면접시험이다. 면접부터 최종 발표까지는 평균 두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여러 곳에 취업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일하는 엄마라 미안한 날이 많았다. 더운 여름날 열차 시간을 맞추느라 허덕이는 딸을 보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길 바라는 소망을 품었다. 아무리 간호학과가 취업이 잘된다고 해도 원하는 병원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씩씩하게 견디는 모습이 애잔해 보인다.
두루 원만한 보름달이 떴다. 오로지 감사기도 외에 할 발원이 없다. 법당에서 밤새우며 기도하던 사람들이 별빛 속살거리는 캄캄한 새벽, 세 시 반에 주먹밥 한 개를 먹고 소리 없이 하산을 준비한다. 어둠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절벽 바위를 내려가다 지쳐버린 사람들이 보인다. 까닥 잘못하면 다치기 쉬운 길이라 조심해야 하리라. 발끝에 힘을 주며 헛디디지 않으려 천천히 내려오는데 찌르르 풀벌레들이 합창한다. 올라갈 때 보았던 산속 아름다움은 내려올 때 귀로만 들리니 보이지 않는 불안이 생겨 조심, 또 조심한다. 거대한 자연 속에 아주 작은 나는 은은한 달빛과 별빛, 앞선 사람이 보내는 불빛 배려를 받고 천천히 걷는다.
정신이 맑아진다. 그러나 다리는 후들거린다. 무사히 내려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은 느끼지 않기로 한다. 부정적인 말은 한마디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결연함이 생긴다. 무탈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하늘과 가까워진다고 극락이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 내가 사는 곳이 시끄러운 극락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백담사 계곡은 하얗다. 수천 년 풍화작용으로 큰 돌들이 깨어지고 계곡을 따라 굴러서 작은 돌들이 되었을 것이다. 흰 돌이 모나게 살지 말라며 말을 건넨다. 산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눈은 넓고 시원해야 하지만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길이 깊고 그윽해야 한다고.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용기를 가져야 할 때다. 삶이 특별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자연을 바라보며 이제 나를 이겨내는 고행의 산, 생활의 산으로 내려온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제대로 표현하며 살아가고 싶다.
내 삶은 언제나 기도로 이어왔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