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유공자 모임에 가셨다
일만 하시려는 엄마에게 적극 권장.
아빠는 6.25 참전 유공자다
그유명한 백마고지에서 (사상자가 가장 심했단다,작은아빠의 말씀)
부상으로 병원에 후송 당하셔서 살아 남으셨단다
(우리들이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어린 기억이지만 비쩍 마르신 아빠의 왼쪽 가슴에는 흉터가 남아있다
파편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당시의 의술로는 불가능 했나보다
아빠는 40대 한창 일하실 나이에 간경화증으로 돌아가셨다
지금의 의술이라면 고칠수도 있었겠지만..
전쟁에서 입은 부상이 원인일수도...
몇년전에 남동생이 유공자 신청을 해서 아빠는 대전 현충원에 모셨다
하지만 남은 가족들은 다 자라버려서 국가로 부터 혜택이 없다
가장이 없는 엄마에게나 자식에게 국가는 아무것도 주지않는다
일년에 한번정도 작은 예산으로 당일치기 여행정도..
오늘 점심도 임실 현충원에서 공짜밥..
노인들이 드실만한게 아니라고 하신다
가끔 생각 한다
나라를 위해 몸바쳤던 사람들의 남은 가족들에게 국가는 너무 무관심한거 아닌가.
나라를 팔았던 이들은 잘만 살던데...
국가를 위해 몸바친 그들과 가족들은 몸부림치며 살아간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만날 싸움만 하고
자기 사리사욕에 몸부림치고..
이슬비가 내린다
그래도 완두콩 따기..
마을 제일 젊은이 셋이 모였다(40~50대)
술상 놓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다
우선 궁금한거 알아보기 귀농 지원금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니 교육도 받아야 된단다 했더니 쉽지않단다
자기명의의 땅이 있어야 저리로 대출이 되고 빚이란다
농촌은 슬레이트 지붕이 많다
내기억에 50년전 아빠가 우리집을 지으실때 초가지붕이었다
그다음에 새마을 운동으로 지붕 개량에 양철로 바뀐듯하다
그다음이 슬레이트 이게 석면이라 환경호르몬이 나온다 하여
뉴스에 정부에서 보조한다 해서 이장에게 물어봤다
빚좋은 개살구..
정부에 신청하면 철거만 해준단다
그것도 새하얀 전면 방독복을 입고 , 쓰고 자기들 스케줄에 맞추어 뜯어놓고 가면
이쪽에서 가기 돈으로 지붕을 하는 날짜와 맞지 않아서 재수 없으면 기다리다 비라도 맞으면 꽝..
그래서 작년인가에 태풍에 우리지붕도 망가졌지만 그냥 포기했단다
돈있는 집들은 모두 기와로 새단장을 했다
그냥 스레이트위에 기와를 얺었단다
정부의 지원은 언제나 탁상공론..
현실과는 다르다
귀농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금 남아 있는 노년한 농촌 인구가 없어지면 우리의 먹거리는 다 수입에 의존할건가...
우리동네에 빈집들이 여러채다
외부사람들이 집을 사서(약천만원정도) 보수해 산다
새집 짓는것 보다 싸단다
요즘은 조립식으로도 많이 짓는다
우리집도 오십년 동안 많이 고쳐졌다
작은방과 곡식 창고가 욕실이 되고
불을 때워 밥을 짓던 부억은 싱크대가 들어간 입식이 되고
식량저장고는 방이되고
엄마방에 침대가 들어가서 엄마가 편해지셨다
마당이 넓고 식사중에 쌈이 부족하면 밥먹다 띁어서 먹고..
불편한것은 없다
살기 편하다
서울에서 느끼던 고독감과 외로움이 엄마곁에서 치유되는듯 하다
돈만 있다면 좀더 편할수도 있을텐데..
첫댓글 행복 바구니에 채곡이 쌓아 올리는 그 아름다움이 듬북한 그 모습이 그려지네요울 님 정말 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