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23
핵심 구절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내 아들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누구나 건강, 학업 성공, 직업, 가족의 행복 등이 필요합니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몸이 마비되어 사람들이 들것에 실어 예수님 앞에 내려진 병자를 보시고 그 사람의 죄를 최우선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죄의 용서와 영생이 가장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내려 주시고자 하는 최고의 축복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성경 이야기를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던 장애인을 향한 예수님의 긍휼을 알아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죄 사함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감사하여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1-2)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어부 몇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고 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시고 또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그 후 예수께서는 자기를 찾아온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마을로 가자. 내가 그곳에서도 설교하여야 할 테니, 이를 위하여 내가 왔노라!” (1:38).
그리고 예수님은 다른 도시로 가서 그곳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이것이 1장 마지막 기록입니다.
마가복음 2장의 1절과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예수께서는 다시 가버나움으로 가셨고, 한 집에 계신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방 안이나 방 밖에 빈 공간이 없었습니다...” (1-2)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의 여러 마을에서 활동하셨지만, 가버나움은 그의 사역 중심지였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을 때 이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습니까?
2절은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스스로와 그분의 성품과 역사 그리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나타냅니다.
말씀은 하나님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천지와 우리 각자를 창조하신 창조주로서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 세계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는 자기 자녀를 사랑하듯이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매우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부모의 말씀을 통해 부모의 성품을 인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의 성품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그분의 크신 사랑, 즉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아들을 희생하시기까지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분의 말씀은 그분이 은혜롭고 공의로우시며 거룩하고 전능하신 분임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용서하고 치유하며 질병과 악령으로부터 해방시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왕국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이 땅과 하늘에 왕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에 따뜻하게 맞이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복음, 즉 기쁜 소식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4:12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죄를 드러내고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여 죄에서 해방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사 영생을 주고, 후에 우리의 육신이 잠들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산 소망과 새로운 동기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라”(마 7: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119편 105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의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 방과 방 밖에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 갑자기 소음이 들렸습니다. 그것은 네 사람이 몸이 마비된 한 사람을 들것에 실어 예수님께로 데려와 고침을 받도록 하려 하였으나 빽빽이 모인 군중 때문에 그를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비된 사람을 들것과 함께 지붕 위로 올려서 지붕에 큰 구멍을 뚫고 들것에 실린 사람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았던 것이었습니다.
군중들은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불평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네 사람이 밖에 있는 사람들 뒤에서 있으면서 자기들 차례가 올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했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비된 남자의 비참한 상황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는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도, 스스로 옷을 입거나 자신을 돌볼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스포츠에 참여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밖에서 놀 수도 없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밖에서 신나게 노는 동안 그는 방에서 혼자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모든 꿈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단란한 가정생활에 대한 꿈도 묻어야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내면의 감옥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살았으나 죽은 자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를 불쌍히 여긴 네 사람도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마비된 사람을 반드시 고쳐 주실 수 있는 긍휼과 능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친구를 들것에 떠메고서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빽빽이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그를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서 큰 구멍을 뚫고 들것과 함께 그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설교를 방해하는 네 사람을 꾸짖으셨나요?
예수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내 아들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체가 마비된 사람의 네 친구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외모나 행동과 같은 외적인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이 네 친구는 집 지붕을 부수는 등의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들이 중풍 병자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은 중풍 병자를 고치실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네 친구의 외적인 것 보다 이들 마음 중심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믿음을 보시고 네 친구와 중풍 병자를 축복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왜 이 네 사람의 믿음을 그토록 높이 평가하셨을까요? 히브리서 1장 6절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려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를 찾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네 친구와 하체 마비된 사람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을 축복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그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 큰 구멍을 뚫고 마비된 사람을 들것과 함께 예수님 앞으로 내려보냄으로 장애를 극복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최고의 축복으로 그들의 믿음을 최대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5절에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시되, ‘내 아들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몸이 마비된 사람이 마비 때문에 악한 행동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예수님의 말씀에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풍병자는 육체적으로는 거의 죄를 짓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말로써 또는 생각으로 많이 죄지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죄를 완전히 용서해 주셨습니다.
죄 용서는 우리에게도 최고의 축복입니다.
왜 죄 용서가 최고의 축복일까요?
예수님은 육체의 치유보다 죄 용서가 더 시급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가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죄지은 것을 잊거나 죄의식을 억누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별것 아니라고 합리화하거나 잊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죄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죄를 잊을 수도 없고, 죄가 마음의 평화를 빼앗아 갑니다. 결국 그들은 죄의 결과로 영원한 지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고 모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육신으로 죽은 후에는 천국에 들어가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 사함은 모든 사람에게 최고의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먼저 죄용서 하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죄를 용서한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 즉 당대의 신학자들은 “하나님 외에는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7) 라고 마음속으로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즉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실 권한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이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비된 사람의 죄를 예수님이 용서해 준 것에 대해 불평했던 것입니다. 이들의 불신앙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너희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느냐? 마비된 사람에게 '네 죄가 사해졌다'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침상에서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이제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노라”라고 말씀하시고, 중풍 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중풍 병자는 즉시 일어나 침상을 들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우리는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치유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따라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주실 수 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 소식입니다.
제가 8살쯤 되었을 때 셋째 누나가 저에게 교회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누나의 권유를 거절했습니다. 그 후 제가 8~9살쯤 됐을 때 오른 족 다리를 다쳐서 다리를 절게 됐습니다. 그래서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비관적인 생각 때문에 내면이 어두웠습니다.
그러던 저는 대학 1학년 때 성경 공부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요한복음 1장 1.14.18절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가 되었고 기쁨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 31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시더니 그 눈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매우 아름답게 보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저는 모든 열등감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일어난 복음의 기적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신체적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 모두를 그분께 초대하시며 우리에게 죄 사함과 영생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최고의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