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
엄마 소도 얼룩소
남진원
나는 노래 잘 부르는 사람과 술 잘 먹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사람이 태어날 때 어떤 사람들에게는 타고나는 재능이 있는 가보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는 걸 꺼리었다.
그나마 괜찮게 부르는 노래가 있다면 막목월 선생이 지었다는 송아지 노래이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두 귀가 얼룩 귀
귀가 닮았네
이 노래는 부르기 쉬워사 부르다 보면 사람들이 함께 부르기 때문에 무난히 넘어가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을 진학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말리셨다. 그리고 교육대학을 권하셨다. 교육대학에 가려면 음악도 잘 해야 되는 데 나는 음악을 잘 하지 못했다. 노래와 음악하는 일이 부러워서 고등학교 때엔 밴드부에 들거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악기는 불지 못하고 1학년 때 심벌즈를 치다가 3학년부터 드럼을 쳤다. 결국 악기도 부르지 못한 채 마쳤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당시 교육대학이 미달이었다. 들어갈 때 ‘고향의 봄’ 노래 한 소절 부르고 손가락을 구부렸다 펴는 일을 한 후 대학에 들어갔다. 만약 미달이 되지 않았으면 나는 분명코 떨어졌을 것이었다. 음악 문제를 손쉽게 해결한 것도 미달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도 어려워하지는 않는 다. 노래를 부르라고하면 또 송아지 노래를 부르면 되기 때문이다.
술도 한 잔을 먹으면 취해서 걸어가기도 힘들다. 아버지께서는 매일 소주 3 병을 잡수셔도 끄떡 없으셨다. ‘내 술 먹을 양을 아버지께서 다 들고 가셨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해 보았다.
비거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어머님은 꼭 부침개를 부치셨다. 그리고 술상을 봐서 할아버지 방에 들여다 놓으셨다. 할아버지는 소주 한 병이 자작이셨다. 혼자서 부침개를 안주하여 술 한 병을 다 비워내시곤 하셨다. 그때 그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참 부모님을 잘 모셨던 것 같았다. 이젠 항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모두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때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지는 지도 모르겠다.
이른 새벽이면 부엌은 심한 스증기로 가득하였다. 어머니께서 가마솥에 쇠죽을 끓이시기 때문이었다. 날이 밝으면 할아버지는 어미소를 끌고 나오셨다. 그 뒤를 작은 송아지가 졸랑졸랑 따나나셨다. 나도 그 뒤를 송아지처럼 따라다니곤 하였다. 큰 밭에선 종일 “이랴! 이랴” 하는 할아버지 소리가 들리셨다. 그러면 풀이 무성한 밭은 훤히 트여 갔다. 그 모습이 신기하여 나는 쪼그리고 앉아 밭가는 모습을 보며 놀았다.
큰 어머소도 송아지도 없지만 내 미음의 고향 집엔 아직도 부지런하시던 머머니의 모습과 식구들의 정겨운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다.
가끔 심심할 때면 혼자서 노래를 부르곤 한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