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과 함께 시골에서 보낸다
오늘이 벌써 4월 5일이군요.
옆집 할머니가 겨우내 묵었던 김치와 무김치를 주셔서 어제 점심은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사실은 이맘때쯤에는 김치가 숙성이 잘돼 참 맛있다는 사실을 알고, 옆집에 가서 할머니께 김치 좀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11월이나 12월에 김장을 한 김치가 4월이 되면 맛있는 이유는 숙성이 잘되어서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군대생활을 경기도 포천에서 했는데 훈련 나갔을 때, “내 아들도 군에 가 있어” 하시면서 부대 동료들과 같이 나눠 먹으라며 김치를 두세 포기 주시던 그 인심 좋던 아주머니 생각납니다. 그때 먹었던 김치가 4월의 김치였습니다.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합니다.
4월인데도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대의 시간외에는 날씨가 무척 쌀쌀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타다 남은 재를 채 치우지도 못하고 난로에 장작을 넣었습니다.
난로에 장작을 태울 때 제일 힘들고 오래 걸리는 것이 처음에 불을 피우는 것입니다.
바로 근처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 귀찮기도 하지만 사실은 게을러서 그렇습니다. 솔가지 등 불쏘시개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 저는 박스나 아이들이 여러 번 본, 낡은 만화책 등으로 불을 지피기도 했지만 요즘은 약국에 가서 한 병에 보통 천 원 하는 메칠 알코올을 2∼3개 사서 휴지에 그것을 적셔서 불을 피웁니다.
그런데 화력이 오래가지 못하고 금세 불은 꺼져버립니다. 왜냐하면 너무 크고 두꺼운 장작을 처음부터 집어넣거든요.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려서 그런가 봅니다.
4월이지만 장작난로를 피워놓고, 7개의 창문이라는 창문은 다 열어 놓으면 좋은 점이 참 많습니다.
우선 봄 햇살과 무르익은 생명력, 상쾌함을 춥지 않고 즐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소리,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 이런 것들 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빠지면 아이들은 말도 잘 안 듣습니다.
다소 시원하면서도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도 몸은 따뜻하고 상쾌하게 나른합니다.
그런데 밖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난로의 불을 꺼트리면 그럴 땐 몸이 좋지 않았는데도 운전을 하고 온 아내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잽싸게 불을 다시 피워야 합니다. “당신 때문에 감기 걸렸어!” 하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남자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물놀이와 불놀이입니다.
조용하고 얌전한 큰아들은 수도꼭지와 연결해 놓은 호스로 동생을 공격하고, 항상 놀이를 주도하는 명랑한 동생은 노랑과 파랑으로 구성된 물총으로 형을 공격합니다.
작년에 쌓아 놓은 먼지 가득한 장작더미가 그들에겐 재미있는 놀이도구이자 은신처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시작할 때는 엄마도 아빠도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지만, 끝에는 둘 다 옷이 흠뻑 젖어 엄마의 잔소리(“너희들 감기 걸리면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아”, “당신도 왜 그리 생각이 없어요.”)만 잔뜩 듣고 막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투덜거림은 투덜거림이고 애들 옷을 벗기고, 난로 가까이에 있는 벽돌에 걸쳐서 아이들의 옷을 말려 주는 것도 늘 엄마입니다.
항상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물놀이에 대비하여 별도로 준비한 다른 옷이 없으므로,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애들한테 아빠가 입고 온 셔츠와 조끼를 하는 수 없이 입힙니다.
아빠의 몸매와 체격을 닮은 작은아들에게는 아빠의 옷이 너무 커고, 엄마를 닮은 큰아들은 어느덧 아빠보다 덩치가 더 커져 옷의 품은 맞지만, 옷의 기장이 너무 깁니다. 엄마한테 야단을 맞으면서 난로 근처에 속옷만 입고 쪼그리고 앉아서 킥킥 웃어대는 그들을 보면, “제가 어렸을 때도 어머니한테 저렇게 혼난 적도 참 많았었는데 어쩜 저리 아빠를 닮았지!”라고 생각하면서 아내에게 혼이 나는 그들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마당 한 켠에는 지난 가을에 떨어졌던 수많은 은행나무 낙엽들이 방치된 채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방을 청소할 때 쓰는 작은 플라스틱로 만든 빗자루로 쓸어 보았지만 전혀 진척이 없습니다. 할 수 없이 곧장 마당이 붙어 있는 옆집 할아버지, 할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싸리 빗자루 좀 빌려주세요.”
할머니는 싸리 빗자루는 없고 대신 대빗자루를 빌려줍니다.
길이가 1미터가 넘는 대나무빗자루. 얇은 대나무를 20∼30개 묶어서 만든 빗자루입니다.
그 빗자루로 묵은 은행나무 낙엽을 쓰는데, 속 시원하게 제대로 잘 쓸립니다. 대나무 빗자루의 장점은 역시 뒷심-처음보다는 나중의 꺾이지 않는 장-이 좋다는 겁니다.
작년에 틈나면 4-4번 잔디를 깎아 주었지만, 가을에 낙엽을 전혀 쓸어주지 못했습니다. 해가 바뀐 다음에야 대나무빗자루로 잔디 위 낙엽을 쓸어주자 그 아래로 파릇파릇한 잔디 새싹들이 군데군데 보였습니다.
30년생 된 은행나무 두 그루 바로 아래에 있는 낙엽들도 다 싹 쓸어버리고, 그리고 내가 제일 아끼는 품위 있는 소나무 아래, 베토벤 머리카락처럼 뻣뻣하면서도 제대로 모양이 통제가 안 되는 해송 아래, 늘 깔끔하고 정갈한 신사인 잣나무 아래에 있는 낙엽들도 다 대빗자루로 깔끔히 쓸어 주었습니다.
작은아들이 가지고 놀고 있던 수돗물 호스에 물걸레를 빨아, 은행나무 아래로 옮겨놓은 온통 먼지투성이인 나무평상 위에 있는 낙엽과 때도 서너 번이나 닦아냅니다. 이곳은 가끔 날씨가 좋으면 아내와 촉감 좋은 평상에서 커피도 한 잔 하는 낭만적인 장소입니다.
은행나무에서 3-4미터 떨어진 곳에 출입하는 길가 방향으로 머리카락이 하얗게 샌 70대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십니다.
그분은 자식도 없고 집도 없어 2평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세 들어 사시는데,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추석이나 설 명절 때도 늘 혼자시죠.
내가 나무평상이라도 청소해 놓으면, 우리 가족이 돌아간 뒤에 그 할머니가 밖으로 나와 그 평상에 나와 앉아서 봄 햇살 아래서 따뜻하게 쉬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그 할머니는 평소에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집 밖으로 잘 나오시질 않거든요. “할머니 평상 닦아 놓았으니, 자주 나와서 여기서 쉬세요.”라고 말씀드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미안했습니다.
작년에는 제가 단감도 2∼3개 드리고 봉지에 있는 삼겹살도 드리고 했습니다. 어제는 집으로 돌아 올 때까지 아무것도 드리지 못해 저의 무관심함 때문에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변명이지만 지저분한 마당 청소를 2시부터 5시 반까지 했거든요.
평소에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5년 전에 내가 몰래 버렸음-그런지 여기만 오면 아이들이 오전 내내 게임과 텔레비전에 빠져 있기에 아내와 둘이서 일부러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작은아들은 조끼를 듬성듬성 주워 입고 과일 깎는 칼을 들고, 큰아들은 중소기업 사장님 같은 배가 나온 멋있는(?) 풍채로 셔츠만 입은 채 부엌에서 김치 자르는 가위를 들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둘이서 쑥을 캐려 동네에서 양지바른 곳으로 나갔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에 비록 뿌리에 흙이 잔득 묻은 쑥이었지만 제법 쑥을 많이 캤더군요. 손이 야무지고 정리정돈 형인 애들 엄마는 그것을 비닐봉지에 소중히(?) 담아 그걸 가방 속에 넣더니 우리가 사는 의왕의 아파트로 가져왔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어제 아들이 캔 그걸로 맛있는 쑥국을 해 달라고 할 참입니다.
쑥을 캔 후 작은아들은 그것을 내 팽개쳐 놓고 어디서 개짓는 소리가 들리자 눈이 반짝이면서, 은행나무 밑에 있는 강아지들에게 갔습니다. 그놈들은 닭집만 한 좁은 쇠창살로 된 감옥-밑바닥은 바닥으로부터 약 40센티미터 떨어져 있음-같은 집에 늘 갇혀 삽니다.
작은아들은 언제부턴가 눈에 보이지 않던 “검둥이가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검둥이는 5년 전에 작은아들이 여기서 처음 만났고 작년에 사라진(?) 나이 많고 작은 아주 몸집이 순한 암컷 개입니다.
나이도 많고 출산도 여러 번 하여 세상 돌아가는 것 다 아는 것 같은 70대의 인자한 할머니처럼 참 말도 없고 온순한 개였습니다.
“우리 집 덜덜거리는 무소가 저녁 늦게 마당에 도착해도, 초라한 고무로 만든 집에서 나와, 항상 말없이 조용히 꼬리를 흔들어 주었죠.”
작은아이는 여기에 도착하면 항상 그 검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밥을 먹다가도 마당으로 내려가 그에게 음식을 갖다 주곤 했습니다.
그 검둥이가 작년에 새끼를 6마리 낳았는데 1마리는 태어나서 1주일 후 병으로 죽고, 3마리는 할머니가 어디로 팔았고-할머니가 팔았는지 그냥 주었는지 정확하진 않음-2마리만 지금 은행나무 밑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검둥이가 낳은 2마리의 밝은 미색의 청순한 소년 같은 강아지가 검둥이의 대를 이어, 쇠창살로 된 좁은 집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은행나무 아래에서 태어났고, 태어나서 한 번도 그곳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작은아이는 “근데 아빠, 그 나이 많은 검둥이는 어디로 갔어?”라고 물어 보더군요.
차마 옆집 할머니가 개장수에게 팔았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글쎄 옆집 할머니가 검둥이를 외할머니 집에 보냈다고 하던데.”라고 말을 얼버무렸습니다.
********
맑은 날-특히 햇빛이 좋은 날-잣나무 숲 속을 걸으면 제일 좋은 것이 두 가지입니다.
우선 수많은 잣나무의 낙엽 때문에 신발을 신고 걸어가는 느낌이 정말 포근하고 깔끔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리고 정말 고요하고 조용하면서 피톤치드가 많아서 그런지 공기도 맑고 상쾌합니다. 음악으로 말하자면 클래식 같은 느낌이죠.
우리가 사는 의왕시 고천동 근방의 동네에도 백운사 길을 가다가 오른쪽 편-정확히는 청평 김씨 제각이 있는 곳인데, 지금은 의왕시에서 숲 가꾸기 사업을 하고 있음-에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아주 좋은 잣나무 숲이 있습니다.
한 50미터쯤 되는 잣나무 숲 속의 오솔길을 지나면 그 다음은 낙엽송 길이 나옵니다.
그 낙엽송 길의 낙엽들 사이사이로 햇볕이 들어오는 곳으로 산 속의 새싹들이 너무나 신선하고 귀엽게 낙엽을 뚫고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더라구요.
봄의 생명은 이른 아침 해 뜨기 전처럼 고요하고 조용하게 다가오고,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단순하고 정결하게 되고, 새싹들은 그들의 측면을 신비스럽게 보여줍니다.
무덤 안으로 곧장 뛰어 들어간 베드로를 포함하여 모든 제자들이 떠나간 후, 무덤 앞에서 마리아는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그런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네가 울고 있느냐?”하고 조용히 속삭이듯 말합니다.
오늘 하루 주변이 다소 소란스럽더라도, 그 말씀 “여인아, 왜 네가 울고 있느냐?”를 묵상하면서, 모두에게 평화로운 하루이길 기원합니다.
글작성
백철우 베드로
첫댓글 나무토막,굴뚝에서 저녁노울 연기 모랑모랑 둘래둘래 모여 가족 웃음 소리 들림니다
왜단산 골짝기 하느님 자연 서적을 보며 붉은 노울 쏟아지는 별
, 더듬어 온길 ,,달님 업고 흐르는 월천 쉼터가 들렷습니다
,,,,
저녁노을 연기가 모락모락 난다는 것은, 가족들이 모여 앉아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는 의미 같습니다.
마루에 앉아서.. 하루 일을 끝내고 - -
밭에서 일하신 후에도 집에서의 일이 끝나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