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정사로 출발한다. 상원사에서 월정사가지는 9km정도의 거리인데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내려가지만
예전에 이곳을 걸어서 오르내린것을 생각하면 용대리에서 백담사를 오르내린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월정사 주차장엔 아직까지도 주차하기가 수월치 않다.
●월정사의 역사●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인 월정사는 동대 만월산을 뒤로 하고, 그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아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띤다.
그 앞으로는 맑고 시린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금강연이 또한 빼어난 경관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자연 조건이며 풍광이 빼어날뿐더러 예로부터 오만 보살이 상주하는
불교성지로서 신성시 되어 왔다. 그 오대산의중심 사찰로서 신라 때부터 지금까지 1400여 년 동안,
개산조 자장율사에서부터 근대의 한암, 탄허스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난 선지식들이 머물던 곳이려니와,
월정사는 오늘날에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이 곳 전나무 숲의 그 곧음과 푸름으로 승가(僧伽)의 얼을
오롯이 지키고 있는 한국 불교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월정사는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니 그 때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이었다.
자장율사는 636년에 중국 오대산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 문수사에서 기도하던 중에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자장율사는 “너희 나라 동북방에는 일만의 내가 상주하고 있으니 그곳에서 다시 나를 친견하라”는 게송을
문수로부터 듣고 신라에 돌아오자 마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오대산에 들어가 임시로 초가를 짓고 머물면서
다시 문수보살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정진하였다.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하고 태백 정암사에 들어가 입적하게 된다. 비록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뜻은
끝내 이루지 못했으나 이로부터 월정사는 오대산 깊은 계곡에 터를 잡게 되었다.그 뒤로 유동보살(석가모니가 전생에
보살로서 수행할 때 연등불(燃燈佛)에게 공양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당시의 이름)의 화신이라고 전해지는 신효거사와
또 범일국사의 제자였던 두타승 신의 스님이 자장율사가 초가를 지었던 터에 다시 암자를 짓고 살았다.
신의스님 이후로 오랫동안 황폐한 채로 남아 있던 이 암자는 수다사(水多寺 - 진부면 수항리에 있던 절로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의 장로 유연스님이 새로 암자를 짓고 살면서 비로소 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고 그 뒤로 차츰 규모가 커졌다.
그 무렵의 월정사는 금당 뒤쪽이 바로 산인 특수한 산지가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금당 앞에 탑이 있고 그 옆에 강당 등의 건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는 남북자오선(南北子午線) 위에 일직선으로 중문, 탑 ,
금당, 강당 등을 세운 신라시대의 일반적인 가람 배치와는 다르다.
고려 충렬왕 33년(1377)에 화재로 모두 타버린 것을 이일스님이 중창하고 조선시대까지 계속 법등을 밝혀 왔는데
조선 순조 33년(1833)에 또다시 큰 화재를 입고 말았다. 그런 지 12년 뒤인 헌종 10년(1844)에 이르러 영담, 정암 스님 같은 분이
앞장서서 중건하여 큰 사찰로서의 모습을 다시 회복하였다.
1911년에는 전국 31본산의 가운데 하나가 되어 강원도 남부의 사찰을 총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오던 월정사는 1950년 6. 25 전쟁의 참화로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하여 영산전,
광응전, 진영각 등 17동 건물이 모두 불타고 소장 문화재와 사료들도 모두 재가 되어버린 비운을 맞이했다.
지금의 월정사는 1964년 탄허스님이 적광전을 중건하고 그 뒤로 만화스님과 현해스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중건하여 이룩한 것이다.
그리하여 어엿한 대가람의 모습을 되찾게 된 월정사는 비록 몇 차례 화재와 전화로 많은 성물(聖物)과 문화재를 잃긴 하였으나
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징을 지닌 당우들이며 국보로 지정된 팔각구층석탑을 비롯하여 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데
주요 문화재로는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8각 9층석탑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있으며 이 밖에 일명 약왕보살상
(藥王菩薩像)이라고도 하는 보물 제139호인 석조 보살좌상(菩薩坐像)이 있다.
일주문
일주문은 1976년 만화스님이 중건한 것으로 월정사에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만나는 건물이다.
다포계의 공포로 상부의 하중을 분산시키는 시각효과를 이루었고, 기둥 양편으로 판전을 붙여 4위의 신장상을 양각하였다.
그리고 정면에는 탄허스님의 글씨로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일주문을 지나면 호젓한 전마무 숲길이 시작된다
일주문에서 전나무 숲길을 걷지않고 주차장으로 오면 건너게 되는 금강교
금강교 밑의 월정사 계곡
천왕문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1974년 만화스님이 중건했다.
금강교를 지나 제일 먼저 만나는 문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전각이다.
측면에는 중국 선종의 제2대조인 혜가대사와 자장율사ㆍ지장보살ㆍ포대화상, 한산ㆍ습득의 설화가 그려져 있다.
사천왕
차를 마실수 있는 청류다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고즈넉한 산사(山寺)에서 물소리ㆍ새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운치있는 공간이다.
금강루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1997년 12월 현해스님이 착공하여 1999년 10월에 낙성하였다.
양쪽의 문에는 나라연금강과 밀적금강을 부조(浮彫)하였으며, 2층에는 2004년에 윤장대를 설치하였다.
금강루를 지나면 금강문이 보이며 천장에는 문수동자 그림을 볼 수 있다.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한국사찰의 가람배치에 있어서 월정사는 불이문의 자리에 금강문을 두고 있다.
금강문의 오른쪽에는 움금강역사상이라고도 하는 나라연금강이, 왼쪽에는 훔금강역사상이라고도 불리우는 밀적금강이 있으며
특히 밀적금강역사는 지혜의 무기인 금강저를 들고 부처님을 호위한다.
이는 일체만물의 생성에서부터 소멸까지를 표현한 것으로 금강역사의 강한 힘과 지혜로 불법을 호지護持하고 사찰을 수호하며
불교의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전면 3칸, 측면 2칸, 2층 누각으로 1997년 12월 현해스님이 착공하여 1999년 10월에 낙성했다.
금강역사 모습 . 외국인이 신기한듯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금강루 위에는 윤장대가 놓여있다.
보장각 (성보박물관)
보장각은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월정사 성보박물관의 다른 이름이다.
연건평 206평 건물로 지상 1층, 지하 1층의 전시실에서는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를 전시주제로 삼아 불교 문화유산들을
전시하고 있다.
1999년 10월 개관한 이후 2000년 7월 문화관광부에 불교전문박물관으로 등록함으로써 강원도의 유일한 불교전문박물관으로
국보인 상원사 중창권선문을 비롯하여 보물 수타사 월인석보와 월정사 8각9층석탑 사리구 11점, 조선전기 상원사 문수동자상 복장유물 23점을 비롯하여 강원도유형문화재 20여 점, 말사에서 이운한 조선후기 불화·불상·전적, 근대 한암·탄허 스님의 유품에 이르기까지 약 500여 점의 성보들을 소장하고 있다.
용금루.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7년 만화스님이 중건하였다.
본래 용금루는 8각9층석탑 가까이 있던 것을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누각의 기초를 화강석 기둥으로 하였고 밑으로는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였으며,
현재 월정사 성보박물관 특별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종고루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누각형 팔작지붕 건물로 1994년 현해스님이 보수하였다.
종고루는 범종루라고도 불리우며 범종ㆍ법고ㆍ목어ㆍ운판 등 사물(四物)을 걸어두고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하루에 두 번씩 두드린다.
즉, 북은 육지에 살고 있는 모든 중생을 위해, 목어는 물 속에 사는 중생들을 위해 범음(梵音)을 들려주는 것이다.
종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치는데, 종소리를 들으면 지옥 옥졸들이 지옥중생들을 괴롭히다가 잠깐 쉬게 된다고 한다.
운판은 청동이나 철로 만든 구름 모양의 넓은 판으로, 날아다니는 중생들을 위한 것이다.
현재 종고루 아래에는 불교서적과 불구용품을 판매하는 석경원(碩經院)이 있다.
대강당. 월정사 단기출가학교
적광전 오른쪽의 서당(西堂)으로 불리는 정면 11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6년에 만화스님이 중건하였다.
수광전 앞의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요사와 연결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ㄱ'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대강당은 탄허스님이 주석할 당시 경전을 공부하는 강원(講院)의 용도로 지어졌으나, 근래에는 스님들의 요사채로 사용하는 한편
각종 행사장이나 수련법회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면에는 탄허스님의 필적인 ‘설청구민(說聽俱泯)’, ‘대강당(大講堂)’과 경봉스님의 필적인 ‘정법보각(正法寶閣)’ 편액이 걸려 있다.
적광전
적광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매우 큰 법당으로,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을 갖추고 있었다.
원래 이 자리는 과거 7불을 보신 칠불보전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6.25 때 소실된 것을 1964년 주지인 만화스님이 다시 중건한 것이다.
특히 적광전의 외부 기둥은 모두 18개인데 이 가운데 16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이고 2개는 괴목이며, 내부기둥 10개 등도 모두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전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적광전 뒷면에는 동자가 소를 찾아다니는 이야기를 그린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져 있으며, 현판과 주련(柱聯) 글씨는 모두 탄허스님의
친필이다. 내부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과 근래에 조성한 석가모니후불탱, 1975년에 조성한 신중탱ㆍ감로탱, 반자 등이 봉안되어 있다.
적광전의 석가모니불과 후불탱화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
팔각구층석탑. 국보 제 48 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8각 모양의 2단 기단 위에 9층 탑신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새겨 놓았고, 아래ㆍ위층 기단 윗부분에는 받침돌을 마련하여 윗돌을 괴어주도록 하였다.
탑신부는 일반적인 석탑이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1층 탑신의 4면에 작은 규모의 감실(龕室)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계단 모양의 받침을 두지 않고 간략하게 마무리하였고, 가볍게 들려 있는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아 놓았다.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서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려시대가 되면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게 되는데,
이 탑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이 착실하여
다각다층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통해 금속공예의 수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국보 제4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조보살좌상 보물 제 139 호
월정사 경내의 팔각구층석탑을 향해서 정중하게 오른쪽 무릎을 꿇고 왼다리를 세운 채 탑을 향해 공양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높이 1.8m의 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높다란 원통형의 관(冠)을 쓰고 있으며 갸름하면서도 복스러운 얼굴에는 만면에 미소가 어려 있다.
머리칼은 옆으로 길게 늘어져 어깨를 덮고 있고, 목에는 뚜렷한 3줄의 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목걸이는 매우 섬세하고 곱게 조각하여 가슴에까지 늘어지게 장식하였다. 보살이 입고 있는 옷은 얇고 가벼워 몸에 밀착되어 있고
옷주름은 모두 희미하다.
오른쪽 팔꿈치는 동자상을 받침으로 고이고 있으며 동자상의 머리에 팔꿈치를 올려놓아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석조 보살좌상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릉 신복사지 석불좌상(보물 제84호)과 같은 형식이지만 상체에 비해 하체가 빈약하여
조형상 다소 불균형한 모습이다. 그러나 개태사와 신복사지 탑 공양상과 더불어 고려시대 화엄종 계통사원에서 만든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며, 당대 불교사상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며 보물 제1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등
삼성각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6.25 때 소실된 것을 1994년 주지 현해스님이 중건하였다.
내부에는 상단에 칠성탱화와 칠성상을 모시고, 향우측으로 산신탱과 산신상을, 향좌측으로 독성탱과 독성상을 봉안하고 있다.
수광전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로 1989년 도명스님 때 시작하여 1992년 현해스님이 완공하였다.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을 봉안한 전각을 무량수전(無量壽殿)ㆍ수광전(壽光殿)ㆍ극락전(極樂殿) 등으로 불리는데
월정사에서는 수광전이라 이름하였다.
전각의 바깥 벽면에는 문수ㆍ보현보살, 관음ㆍ대세지보살 등의 벽화를 그려 장엄하였으며, 정면에는 수광전 편액을, 남쪽 측면에는
지장전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전각 내부의 상단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봉안하였으며,
뒤쪽으로 극락의 법회장면을 묘사한 목각탱화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를 봉안하였다.
중단에는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목각 지장시왕탱을 봉안하였고, 하단에는 지옥의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인로왕보살을 금선묘
(金線描)의 불화로 봉안하고 있다.
수광전 내부의 아미타불
수광전 내부의 지장보살
수광전 앞의 괘불대
개산조각
예전에 조사당을 새로 지은것 같다. 예전의 조사당에는 월정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었다.
진영각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1975년 만화스님이 중건하고 1994년 현해스님이 증축한 것이다.
내부에는 근래 월정사에 주석했던 조계종 초대 종정이신 한암스님을 비롯하여 탄허스님, 지암스님, 이종욱(李鍾郁) 스님, 대하(大河) 스님,
보문(普門) 스님, 희섭스님, 그리고 6.25 이후 월정사를 중건한 만화스님의 진영 등을 모시고 있다.
대법륜전
정면 11칸 측면 5칸 규모의 중층 팔작지붕 건물로 2004년에 완공하였다.
대법륜전은 ‘큰 법을 굴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사찰에서의 강당을 의미한다. 1층에는 강당, 지하에는 공양간이 위치하고 있다.
부도전
월정사에서 상원사 쪽으로 500m 정도 가다보면 오른쪽 전나무 숲속에 부도전이 자리하고 있다.
이 부도전에는 역대 월정사에 머물렀던 스님들의 부도 23기와 탑비가 모셔져 있다.
월정사 부도는 원탑형의 부도도 있으나 대부분이 석종형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부도는 2미터가 넘는데,
임산부가 눈을 가리고 부도를 잡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월정사 부도전은 전체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2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