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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호흡을 단순한 신체 활동이 아닌 ‘마음을 붙드는 도구’이며, 이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안 ․ 반 ․ 수의’라는 세 개의 단어로 압축하고 있다. 이는 불교 수행에 있어 호흡 명상이 단순한 집중 훈련을 넘어, 신체적 안정과 정신적 통찰을 하나로 잇는 훌륭한 도구임을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첫째, 호흡은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가교架橋’이다. ‘안安’으로 몸을 안정시키고 ‘반般’으로 숨을 다스리는 과정은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한다. 둘째, ‘수의守意’는 단순히 생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호흡이라는 대상에 마음을 온전히 밀착시켜 망상을 지혜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결국 안반수의는 호흡이라는 가장 일상적이고 생명적인 활동을 통해, 우리 내면에 잠재된 자비의 본성을 회복하고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구체적이고도 보편적인 수행 체계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부처님께서는 월지국의 사기유국에 머무셨다. 일명 차닉가라국이라고도 한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90일 동안 앉아서 안반수의를 행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90일을 홀로 앉아 생각을 가다듬어, 온 세상의 모든 인간과 날아다니는 새와 꿈틀대는 동물들까지 구제하고자 하셨다.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안반수의를 90일 행하였으니 안반수의로 자재와 자비의 마음을 얻었다. (그 뒤에) 안반수의를 행하면서 다시 그 마음을 거두어 (이렇게) 생각을 행한다.”
안安은 몸이 되고 반般은 휴식이 되며 수의守意은 도가 된다. (왜냐하면) 수의는 계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금禁은 또한 보호하는 것이다. 보호한다는 것은 일체의 것이 잘못되지 않도록 두루 지키는 것이다. 마음이란 의식이 쉬고 있는 것이니, (이때에) 또한 도가 된다. (정태혁 번역 ․ 해설,『붓다의 호흡과 명상 I』 pp. 23~30.)
2) 안반수의법安般守意法과 육묘문六妙門
붓다의 호흡법이라고 하는 안반수의법安般守意法에는 여섯 가지 관문, 육묘문六妙門이 있다. 안반수의가 호흡을 통해 마음을 지키는 원리라면, 육묘문은 그 원리를 세분화하여 실천하는 여섯 가지 오묘한 문門인 것이다. 즉, 들숨과 날숨을 헤아리는 수식數息, 호흡에 의식이 따라 하나가 되는 상수相隨, 그리고 마음이 호흡을 의식하지 않고 고요히 안정되는 지止, 사물을 관찰하게 되는 정신집중 상태인 관觀, 다시 고요한 자기 주체로 돌아가는 환還, 그리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세계인 정淨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수행법은 열반의 세계로 가게 하는 오묘한 문이다. 호흡을 명상하는 이 오묘한 관법은 여섯 가지 종류로 설해지고 있기 때문에 육묘문이라고 한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대비바사론』 권26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1에 수(數), 2에 수(隨), 3에 지(止), 4에 관(觀), 5에 전(轉), 6에 정(淨)이 있다’고 하였고, 잡아비심론(雜阿毘心論) 권8에서는 수(數), 수(隨), 지(止), 관(觀), 환(還), 정(淨)의 여섯을 들고 있다. 이들 두 문헌으로 보면 다섯 번째의 전(轉)과 환(還)의 명칭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같은 것이다. 한문으로 되어있는 『안반수의경』에서는 환(還)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 이 여섯 가지 오묘한 문은 어떤 내용인가?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 권 60의 설명에 의하면,
① 수(數)란 수식문(數息門)으로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헤아려서 하나로부터 열까지 헤아리면서 정신이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② 수(隨)란 수식문으로서 수행자의 마음이 숨과 같이 따라서 떠나지 않게 하여 숨이 나갈 때에는 그것이 시방에 이르고 들어올 때에는 큰 몸에 두루 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③ 지(止)라는 것은 지문이라고 하는 것이니 생각을 콧등에 머물게 하여 고요히 숨을 생각하는 것이다.
④ 관(觀)이라고 하는 것은 관문이니, 이 몸은 부정하므로 우리의 생각은 이것을 통해서 고(苦)를 받고, 마음은 덧없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며, 이에 의해서 내 몸이 깨끗하다고 하거나 지금 나는 즐겁다고 하거나 내 마음은 영원한 것이라고 하거나, 모든 존재는 절대적인 실체가 있다고 하는 그릇된 집착을 가지는 것을 없애고, 올바르게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다.
⑤ 환(還)이라고 하는 것은, 환문(還門)이니,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관찰하는 것에서 다시 전환하여, 우리의 몸은 부정하여 지나친 애착에서 떠나는 신염처와 우리의 몸에 있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고를 받는다는 진실을 철저히 깨달아 그 감각기관으로부터 받는 고통에서 떠나는 수념처(受念處)와 우리의 마음은 덧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 심념처(心念處)와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어 인연에 의해서 이것과 저것이 모여서 된 것이라는 법념처(法念處)의 네 가지를 닦아서, 드디어 열반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⑥ 정(淨)이라고 하는 것은 정문(淨門)이니, 일체의 번뇌를 없애고 마음이 한 곳에 머물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 청정한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태혁/동국대 명예교수,『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② 숫자 헤아리는데 모든 정신 집중하라 [법보신문 2004년 기획연재. 경전산책]에서 인용.)
여섯 단계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 수(數, Counting) - 수를 세어 마음을 묶다: 온갖 잡념을 떨치기 위해 호흡마다 숫자를 붙이는 기초 단계이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에 ‘하나’ 에서 ‘열’까지 수를 세며, 이를 반복한다. 만약 숫자를 놓치는 경우 다시 ‘하나’로부터 시작한다. 잡념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마음을 지키는(수의守意) 단계이다. 즉, 숫자를 도구 삼아 강제로 마음을 묶는 것이다(방황 방지).
2. 수(隨, Following) - 숨의 흐름을 그대로 따르다: 숫자를 세지 않아도 마음이 안정되면, 이제는 숨의 흐름을 관찰한다. 숫자를 버리고 숨이 코끝에서 폐로, 다시 밖으로 나가는 전 과정을 하나하나 따라가듯 관찰한다. 호흡과 마음이 밀착되는 단계로, 숨이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그저 지켜본다. 도구(숫자)를 버리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밀착).
3. 지(止, Stopping) - 거친 호흡과 생각을 멈추다: 거친 호흡이 안정되고 마음이 한곳에 멈춘 상태이다. 마음은 호수처럼 고요해지고 숨은 아주 미세해진다. 안반수의에서 말하는 ‘안(편안함)’의 극치이며, 삼매(선정)에 드는 단계이다. 수행자가 번뇌의 장애를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성자聖者의 적정寂靜” 이라고 하는 단계로, 마침내 움직임이 멈추고 거울 같은 고요함에 도달한다(삼매).
4. 관(觀, Contemplation) - 숨의 실상을 꿰뚫어 보다: 단순히 고요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나아가는 단계이다. “이 숨을 쉬는 ‘나’라는 존재는 과연 누구인가?(무아無我)”, “숨은 머물지 않고 계속 변하는구나!(무상無常)” 등의 진리를 깨닫기 시작한다. 호흡을 통해 몸과 마음의 생멸을 통찰하게 된다.
5. 환(環, Returning) - ‘나’라는 집착을 돌이키다: 관찰하는 주체(나)와 객체(호흡)의 구분이 없어지는 단계이다. 외부로 향했던 마음을 안으로 되돌려, 관찰하고 있는 그 마음조차 비어 있음을 깨닫고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과정이다. ‘내가 관찰한다.’는 마지막 주객의 벽마저 허물고 근원으로 회귀하는 단계이다.
6. 정(淨, Purification) - 본래의 청정함에 머물다: 모든 번뇌와 집착이 사라진 청정한 상태로, 닦을 것도 버릴 것도 없는 본래 깨끗한 상태이다.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져 어떤 대상이 비쳐도 흔들리지 않으며, 인위적인 노력이 사라지고 지혜와 자비가 자재하게 흐르는 해탈의 단계이다.
수를 세는 것으로부터 시작, 점차 발전하여 청정한 세계에 이르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이 육묘문이다. 호흡이라는 도구로 시작 육묘문이라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 요동치는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고요하고 청정한 지혜(명분상明分想)로 연결하는 방편법인 것이다. 천태지의(天台智顗, 538 ~ 597) 대사는 “안반(호흡)은 뗏목이고, 수의(마음 지킴)는 강을 건너는 일이며, 육묘문은 그 강을 건너는 여섯 번의 노질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이들 여섯 가지 문은 첫째 문인 數를 헤아리는 것으로부터 점차로 올라가서 청정한 세계에 이르도록 조직되어 있다. 그러나 낮고 높음은 단지 방편에 지나지 않고, 어느 것이나 궁극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수를 헤아리는 수식문數息門에 철저하면 그것이 점차로 隨와 止와 觀과 還과 淨으로 이어진다. 여섯 문은 각각 다른 문이면서 하나로 통하는 것이다.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정태혁/동국대 명예교수,『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④ 숨이 편안해지면 몸-마음도 가뿐 [법보신문 2004년 기획연재. 경전산책]에서 인용.)
한편 육묘문은 각 단계마다 불교의 핵심 수행 체계인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과도 연결된다. ‘37조도품助道品’이란 초기 불교에서 깨달음(bodhi, 보리菩提)으로 가는 수행을 7과科 37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즉, 7과는 사념처四念處, 사정근四正勤, 사신족四神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이고, 이들 숫자를 모두 더하면 번뇌의 바다를 건너는 37가지 뗏목, 37조도품이 되는 것이다.
육묘문의 여섯 단계인 수식數息은 사념처四念處(사의지四意止)로, 상수相隨는 사정근四正勤(사의단四意斷)으로, 지止는 사여의족四如意足(사신통四神通)으로, 관觀은 오근五根 ․ 오력五力으로, 환還은 칠각지七覺支로, 정淨은 팔정도八正道로 연결된다. 육묘문 수행의 결과 얻어지는 지혜와 힘이 발현되는 구조로, 호흡의 단계와 그에 따라 얻게 되는 ‘수행의 성과’를 차례로 보여준다. 호흡이 깊어질수록 불교의 정수인 사의지, 사의단, 사신통, 오근, 오력, 칠각지 그리고 팔정도가 자연스럽게 완성 되어가는 구조인 것이다.
그중 수를 헤아리는 1) 수식數息의 단계에는 네 가지 마음의 힘 사의지四意止를 얻고, 2) 상수相隨의 단계에서는 또 다른 네 가지 마음의 힘으로써 사의단四意斷을 없애며, 3) 지止의 단계에서는 네 가지 신통력, 즉 초능력 사신통四神通을 얻고, 4) 관觀의 단계에서는 다섯 가지 정신력인 오력五力을 얻으며, 5) 환還의 단계에서는 일곱 가지 깨달음인 칠각지七覺支를 얻고, 6) 정淨의 단계에서는 여덟 가지 올바른 길 팔정도八正道를 얻게 된다고 하였다. (정태혁 번역 ․ 해설,『붓다의 호흡과 명상 I』 pp. 21~22.)
부연하자면, 안반수의법은 단순한 호흡명상을 넘어 불교 수행의 모든 정수(37조도품助道品)를 관통하는 종합 수행법임을 보여주고 있다. 각 단계에서 얻는 힘들이 마치 계단을 오르듯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숫자를 세는 기초적인 행위인 수식數息에서 시작하여, 삶의 모든 방식을 올바르게 바꾸는 팔정도八正道의 경지까지 나아가는 거대한 영적 여정인 것이다.
3) 안반수의법安般守意法과 오정심관五停心觀 수식관數息觀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은 오정심관五停心觀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하고 있다. 오정심五停心이란 다섯 가지 마음을 안정시키는(停) 수행체계이다. 마음의 병, 즉 번뇌의 종류에 따라 그에 적합한 약(명상법)을 제시하고 있다. 부정관不淨觀, 자비관慈悲觀, 인연관因緣觀, 계분별관界分別觀, 그리고 수식관數息觀 등이 그것으로 일종의 맞춤형 ‘대치수행법對治修行法’이다. 수행자마다 각기 다른 번뇌의 양상에 따라 다르게 약을 처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수식관數息觀>이 등장하는데 앞에서도 설명하였지만 호흡에 따라 숫자를 헤아리는 수행법이다. 이는 들숨[入息, āna]과 날숨[出息, apāna]에 온전하게 집중하도록 고안된 명상법으로, 마음이 몹시 산만하여 집중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권장되는 수행법이다. 이와 관련하여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 5권 「수식품數息品」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수식이란 무엇인가? 한가한 곳에 앉아서 마음을 잡아 흐트러지지 않게 한 후 나가는 숨과 들어오는 숨을 헤아려서 ‘10’에 이르고, 다시 하나에서부터 센다. 만일 마음이 흐트러지면 다시 헤아려서 하나에서부터 센다. 수련자는 이와 같이 주야로 수식을 익혀서 한 달, 1년, 마침내 완전한 수식을 얻으면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나니, 자재하여 움직이지 않음을 마치 산과 같이 하면서 출입식을 헤아려 ‘10’에 이르게 하여 낮과 밤, 달과 해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수행하여 이와 같이 수식을 지킨다. 수식이 이미 정해지면 마땅히 상수相隨를 행할지니 비유하면 사람이 있어 앞에서 가면 그를 따르듯 하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한다. 수행도 이와 같다. 숨의 출입에 따라서 다른 생각이 없다.
선도회에서는 안반수의법安般守意法 중 들숨과 날숨을 헤아리는 <수식관數息觀>으로 예비수행을 한다. 초심자는 먼저 수식관을 통해 흐트러진 마음을 모으고 집중력을 키우면서 동시에 본격적인 화두話頭 참구로 들어간다. 수식관과 화두 참구를 병행하면, 화두 집중에도 도움을 주지만 기운이 머리로 치솟는 상기병上氣病도 예방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수행자는 호흡의 중요성을 점진적으로 터득하게 되고, 호흡이 안정된 상태에서 화두를 살피게 된다.
우리가 늘상 행하는 무의식적인 호흡은 선천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반사능력을 이용하고 있으므로, 대뇌는 호흡을 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자유자재로 정신활동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호흡을 선천적으로 주어진 그대로 내버려두되 정신활동을 방해하는 요소만 제거해 주면 그만이다. 이것이 안반수의법의 요체이다. (정태혁 번역 ․ 해설,『붓다의 호흡과 명상 I』 p. 221.)
4) 사념처四念處와 위빠사나(Vipassana)
오정심관의 주된 목적은 ‘지(止, 사마타Samatha)’이다. 탐욕, 분노, 산란함 등 거친 번뇌를 잠재워 마음을 호수처럼 고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번뇌의 뿌리를 완전히 뽑으려면 고요함 속에서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관(觀, Vipassana 위빠사나)’ 수행이 필요하다. 안반수의법 육묘문과 비교하면 수數 · 수隨 · 지止가 오정심관의 영역에서 마음을 모으는 역할이라면, 관觀 · 환環 · 정淨은 그 마음에서 한 발 더 나가 지혜를 밝히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차제지관次第止觀, 즉 ‘순차적으로 닦는 지止와 관觀’의 체계로, 육묘문의 여섯 단계 중 1에서 3까지의 단계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과정(止, Samatha)이고, 다음 4~5단계는 지혜를 밝히는 과정(觀, Vipassana)이다. 지止가 외부로 흐트러지려는 마음의 에너지를 한곳으로 모아 고요함을 만드는 단계라면, 관觀은 고요해진 마음 거울을 통해 존재의 실상을 파악하고 집착을 깨는 단계인 것이다. 그리고 6단계는 완성의 단계(淨, Nirvana)로 수행의 흔적조차 사라진 본래의 자리이다. 중요한 것은 3단계인 지止에서 얻는 신통력에 머물지 않고, 반드시 4단계 관觀 이상의 지혜를 통해 무상과 무아를 깨달아야만, 진정한 해탈인 6단계인 정淨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오정심관이 ‘마음의 응급처치’라면, 이른바 관觀은 ‘체질 개선과 근본 치료’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처럼 불교 수행은 매우 논리적이고 단계적인 심리 훈련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사마타(止)에서 위빠사나(觀)로의 확장으로, 이를 설명한 경전이『대념처경大念處經(Satipaṭṭhāna Sutta)』이다. 『대념처경大念處經』은 몸[身], 느낌[受], 마음[心], 법[法] 등으로 나누어 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수행하는 네 가지 대상, 즉 ‘사념처四念處(Cattāro Satipaṭṭhanā)’라고 한다.
1) 몸[身]에 대한 관찰, Kāyānupassanā
몸의 움직임에 따라 경험되는 감각(Sensation)과 몸을 구성하는 성분에 대한 관찰, 그리고 백골관白骨觀이라 하여 죽은 후에 몸이 부패해 가는 과정에 대한 관찰 등을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 들숨날숨의 호흡(Ānāpāna)관찰, 네 가지 몸의 자세(Iriyāpatha, 사위의四威儀, 행주좌와行住坐臥)와 무상無常에 대한 철저한 알아차림, 몸 32가지 부위에 대한 혐오감에 대한 반조返照, 네 가지 물질(四大, 지수화풍地水火風)에 대한 관찰 그리고 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 등으로 구성되는데, 몸 안팎의 움직임과 고요함에 대하여 관찰하는 것이다.
2) 느낌[受]에 대한 관찰, Vedanānupassanā
현대적 개념으로는 느낌(feeling)이라고 할 수 있다. 매순간 우리가 느끼는 쾌(樂), 불쾌(苦), 그리고 쾌도 불쾌도 아닌 느낌(非苦非樂)에 대한 모든 관찰을 말한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세속을 여읜 즐거운 느낌, 세속을 여읜 괴로운 느낌, 세속을 여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등 9가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3) 마음[心]에 대한 관찰, Cittāanupassanā
마음에 대한 관찰은 탐욕이 있는(매인) 마음, 탐욕을 여읜 마음, 성냄이 있는(매인) 마음, 성냄을 여읜 마음, 미혹(어리석음)이 있는 마음, 미혹을 여읜 마음, 위축된 마음, 산란한 마음, 고귀한 마음, 고귀하지 않은 마음, (아직도) 위가 남아 있는 (탁월한)마음, (더 이상) 위가 없는 (저열한)마음, 삼매에 든 (집중된)마음,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 해탈한 마음, 해탈하지 않은 마음 등 16가지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4) 법[法]에 대한 관찰, Dhammānupassanā
다섯 가지 장애인 오개五蓋(탐욕, 분노, 게으름과 나태, 불안과 근심, 의심)를 파악하고, 오온五蘊(색수상행식色修想行識)을 파악하고, 감각장소인 12처(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를 파악하고, 7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인 칠각지七覺支(염각지念覺支, 택법각지擇法覺支, 정진각지精進覺支, 희각지喜覺支, 경안각지經安覺支, 정각지定覺支, 사각지捨覺支)를 파악하며, 네 가지 고귀한 진리인 사성제四聖諦(고집멸도苦集滅道)를 파악하는 것이다.
『대념처경』은 『장아함경長阿含經』과 『중아함경中阿含經』등에도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이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매우 실천적이다. 사념처를 집중해서 관찰하면,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여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고, 괴로움과 고통을 소멸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고,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념처 역시 마음을 집중하여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관법觀法’ 수행이다.
사념처를 간단히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1. 신관신념처身觀身念處, 몸의 관찰: 숨을 들이쉬고 내쉼을 자각하고, 숨의 길고 짧음을 알며 온몸으로 숨 쉬는 것을 느낀다. 몸의 활동(거친 기운)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쉰다.
2. 수관수념처受觀受念處, 느낌의 관찰: 수행 중 일어나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을 알아차린다. 마음의 작용(心行)을 알아차리고, 그 움직임을 고요히 가라앉히며 숨을 쉰다.
3. 심관심념처心觀心念處, 마음의 관찰: 현재 내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알아차린다. 마음을 기쁘게 하거나(心悅), 집중하여 안정시키거나(心定), 번뇌로부터 해탈시키며(心解脫) 숨을 쉰다.
4. 법관법념처法觀法念處, 진리의 관찰: 모든 것이 변한다는 무상無常을 관찰한다. 집착을 끊고(斷), 욕심을 버리며(無慾), 번뇌가 사라지는 것(滅)을 관찰하며 숨을 쉰다.
이 중 첫째인 몸에 대한 가르침을 보면, 들숨과 날숨, 몸의 여러 곳에 대한 직관을 통해 정신집중이 이루어지면 드디어 올바른 견해를 얻어 몸에 대한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생긴 고뇌를 멸하게 된다고 되어 있다. 이처럼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깊은 선정에 들면 그 사물 의 실상을 알게 되어 구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지止와 관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정과 혜慧가 모두 닦아진다.
흔히 우리는 화두話頭라는 공안公案을 이용하여 선을 통해 정과 혜를 닦으려고 하지만, 이 경은 이러한 방편을 통하지 않고 직관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소개한다. 따라서 계戒와 정과 혜를 분리하지 않고 동일시하고 있다.
붓다의 명상은 이와 같이 어떤 방편을 통해서 사물의 실상을 아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고요히 일체의 법이 되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바로 알아내는 것이다. 바로 현법現法에서 구경지를 얻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붓다가 6년 고행을 포기하고 나이란자나 강기슭에서 깊은 명상에 들어 모든 것이 있게 되거나 없게 되는 참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알아내고자 했을 때, 이 경전에서 설법한 명상을 실행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전은 깨달음에 이르게 된 명상인 동시에 깨달음 그 자체이기도 하다. (정태혁 번역 ․ 해설,『붓다의 호흡과 명상 I』 pp. 244~245. )
『대념처경大念處經』은 사념처四念處 수행을 통해 모든 존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직접적인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열반(涅槃, Nibbāna)에 이르는 길을 친절하게 가르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또 『잡아함경雜阿含經』 제29권 雜阿含經卷第二十九, 803. 안나반나념경(安那般那念經) ② 등에 종합적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다소 길지만 참고로 인용한다.
803. 안나반나념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안나반나념을 닦고 익혀라. 만일 비구가 안나반나념을 닦아 익히되 많이 닦아 익힌 사람은 몸과 마음이 그쳐 쉬게 되고 거친 생각[覺]도 있고 세밀한 생각[觀]도 있으며, 고요하고 순일하여 분명한 생각을 닦아 익혀 만족하게 되느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修習安那般那念。若比丘修習安那般那念,多修習者,得身心止息,有覺有觀,寂滅、純一、明分想修習滿足。
어떤 것을 안나반나념을 닦아 익히되 많이 닦아 익히고 나면 몸과 마음이 그쳐 쉬게 되고 거친 생각도 있고 세밀한 생각도 있으며, 고요하고 순일하여 분명한 생각을 닦아 익혀 만족하게 된다고 하는가?
何等爲修習安那般那念多修習已,身心止息,有覺有觀,寂滅、純一、明分想修習滿足?
만일 그 비구가 촌락(村落)에 의지해 살거나 성읍(城邑)에 머물러 살면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에는, 그 몸을 잘 단속하고 여러 감관의 문[根門]을 지키고 마음을 잘 매어두어야 한다. 걸식을 마치고 나서는 머물던 곳으로 돌아와 가사와 발우를 챙겨두고 발을 씻은 다음, 혹 숲 속이나 고요한 방이나 나무 아래든지, 혹은 텅 빈 노지(露地)에서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앉아야 한다. 그리고 생각[念]을 눈앞에 매어두고, 세상의 탐욕과 애정을 끊고 욕심을 여의어 청정하게 하고, 성냄[瞋恚]ㆍ잠[睡眠]ㆍ들뜸[掉悔]ㆍ의심[疑]을 끊어, 모든 의혹에서 벗어나고 온갖 착한 법에 대해 마음으로 확고히 증득하면, 지혜의 힘을 약하게 하고 장애거리가 되어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5개(蓋)의 번뇌심(煩惱心)을 멀리 여의게 될 것이다.
是比丘若依聚落、城邑止住,晨朝著衣持鉢,入村乞食,善護其身,守諸根門,善繫心住。乞食已,還住處,擧衣鉢,洗足已,或入林中、閑房、樹下,或空露地,端身正坐,繫念面前,斷世貪愛,離欲淸淨,瞋恚、睡眠、掉悔、疑斷,度諸疑惑,於諸善法心得決定。遠離五蓋煩惱於心,令慧力羸,爲障㝵分,不趣涅槃。
그러니 숨을 들이쉬고[內息:入息] 있다고 생각하고는 생각을 잡아매어 잘 배우고, 숨을 내쉬고[外息:出息] 있다고 생각하고는 생각을 잡아매어 잘 배워야 한다. 또 긴 숨인지 짧은 숨인지와, 온 몸으로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는 온 몸으로 숨을 들이쉬고 있다고 잘 배우고, 온 몸으로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는 온 몸으로 숨을 내쉬고 있다고 잘 배워야 한다. 또 온 몸으로 행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는 온 몸으로 행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있다고 잘 배워야 하며, 온 몸으로 행하면서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는 온 몸으로 행하면서 숨을 내쉬고 있다고 잘 배워야 한다. (이상은 4념처(念處) 중 신관신념처(身觀身念處)에서 안나반나념을 닦는 것을 말한다.)
念於內息,繫念善學,念於外息,繫念善學。息長息短,覺知一切身入息,於一切身入息善學,覺知一切身出息,於一切身出息學。覺知一切身行息入息,於一切身行息入息善學,覺知一切身行息出息,於一切身行息出息善學。
또 기쁨[喜]을 깨달아 알고 즐거움[樂]을 깨달아 알며, 마음이 행하는 것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행할 때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행할 때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 잘 배우며, 마음이 행할 때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행할 때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 잘 배워야 한다. (이상은 4념처 중 수관수념처(受觀受念處)에서 안나반나념을 닦는 것을 말한다.)
覺知喜,覺知樂,覺知心行,覺知心行息入息,於覺知心行息入息善學;覺知心行息出息,於覺知心行息出息善學。
또 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의 기쁨을 깨달아 알며, 마음의 안정됨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해탈하여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해탈하여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 잘 배우고, 마음이 해탈하여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해탈하여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 잘 배워야 한다. (이상은 4념처 중 심관심념처(心觀心念處)에서 안나반나념을 닦는 것을 말한다.)
覺知心,覺知心悅,覺知心定,覺知心解脫入息,於覺知心解脫入息善學,覺知心解脫出息,於覺知心解脫出息善學。
무상함[無常]을 관찰하고 사라짐[斷]을 관찰하며, 욕심 없음[無欲]을 관찰하고 들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하며, 들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하는 것에 대해 잘 배우고 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하며, 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하는 것에 대해 잘 배워야 하나니,(이상은 4념처 중 법관법념처(法觀法念處)에서 안나반나념을 닦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안나반나념을 닦으면 몸이 그쳐 쉬게 되고[止息] 마음이 그쳐 쉬게 되며, 거친 생각도 있고 세밀한 생각도 있어서, 몸과 마음이 그쳐 쉬게 되고 거친 생각도 있고 세밀한 생각도 있으며, 고요하고 순일하여 분명한 생각을 닦아 익혀 만족하게 된다고 말한 것이니라.”
觀察無常,觀察斷,觀察無欲,觀察滅入息,於觀察滅入息善學;觀察滅出息,於觀察滅出息善學,是名修安那般那念,身止息、心止息有覺有觀,寂滅、純一、明分想修習滿足。”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잡아함경雜阿含經』 제29권 卷第二十九, 송宋 천축삼장 구나발타라 한역 宋天竺三藏求那跋陁羅譯.)
이 경전 역시 호흡을 통해 어떻게 사념처四念處를 완성하고 깨달음(涅槃)에 이르는지를 체계적으로 아주 쉽게 보여주고 있다. 즉, 숲속, 나무 아래, 빈 방 등 고요한 곳을 택해 몸을 단정히 하고 앉아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탐욕, 성냄, 게으름, 들뜸, 의심이라는 다섯 가지 장애를 멀리하며, 다음 호흡을 매개로 하여 사념처, 즉 몸(身), 느낌(受), 마음(心), 법(法)을 차례로 관찰한다.
이 경전은 숨 쉬는 것 하나만 제대로 알아차려도 연이어 사념처를 모두 닦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호흡은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끈이며, 이 끈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면 결국 탐욕과 번뇌가 멸한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안반수의에서 시작하여 사념처로 나아가는 과정은 거친 번뇌의 응급처치(오정심관)를 넘어, 존재의 무상함을 꿰뚫는 근본 치료(지혜의 확립)에 이르는 논리적이고 단계적인 여정이다. 이를 통해 수행자는 슬픔과 괴로움을 극복하고 열반의 경지로 나아가게 된다. 무상함을 관찰하고, 욕심 없음을 관찰하며, 멸함을 관찰하며 숨을 쉬면,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강력한 지혜의 도구임을 드러내고 있다.
위빠사나를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념처로 넘어왔는데, 그럼 위빠사나와 사념처 는 어떻게 다른가. 사념처(四念處, Cattāro Satipaṭṭhanā)는 ‘네 가지(四) 마음챙김(念)의 확립(處)’을 의미한다. 즉, 깨달음을 얻기 위해 우리가 관찰해야 할 네 가지 대상(몸, 느낌, 마음, 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위빠사나(Vipassana, 觀)는 ‘특별하게(Vi) 보다(Passana)’라는 뜻으로, 사물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지혜의 작용’을 의미한다. 즉,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 실천적 ‘수행의 방법’이자 ‘통찰력’ 그 자체이다.
사념처가 수행자가 머물며 관찰해야 할 네 가지 ‘수행의 영역(몸, 느낌, 마음, 법)’이라면, 위빠사나는 그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생멸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지혜의 칼날인 것이다. 즉, 사념처라는 올바른 토대 위에 마음을 굳건히 매어둘 때, 비로소 존재의 무상함과 무아를 통찰하는 위빠사나의 지혜가 발현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념처가 위빠사나를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자 장소라고 한다면, 위빠사나는 사념처 수행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결과이자 심화 과정인 것이다.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위빠사나(통찰)는 일어날 수 없다. 단순히 몸의 감각을 느끼는 단계(사념처)를 넘어, 그 감각이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 단계가 위빠사나이다.
불교 수행론에서 사념처와 위빠사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념처가 수행의 구체적인 콘텐츠(Contents)를 제공한다면, 위빠사나는 그 콘텐츠를 해석하는 통찰적 시각(Insight)을 제공한다. 따라서 사념처 수행이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위빠사나의 지혜로 이행하게 되며, 이 둘의 결합을 통해 수행자는 탐진치貪瞋癡의 번뇌를 끊고 해탈의 경지로 나아가게 된다.
| 사념처 (대상과 토대) | 위빠사나 (방법과 지혜) | |
| 초점 | 어디를 관찰할 것인가? (대상) | 어떻게 꿰뚫어 볼 것인가? (기능) |
| 구성요소 | 신身 · 수受 · 심心 · 법法 | 무상無常 · 고苦 · 무아無我의 통찰 |
| 비유 | 관찰해야 할 지도地圖 혹은 분야 | 지도를 읽는 눈 혹은 현미경 |
| 성격 |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의 공통 토대 | 번뇌를 끊어내는 지혜(慧)의 실천 |
한편 넓게 보면 몸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마음을 거기에 묶어 떠나지 않되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마음을 매어 두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이다. 결과적으로 지止(Samatha)와 관觀(Vipassna)이 동시에 이루어지 것으로서 정定과 혜慧를 모두 닦는 것이다. 다만 요사이 지止와 관觀을 통한 위빠사나 수행을 도입하여 조계종의 종지인 임제종 간화선법을 대치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스님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옳은 수행 태도가 아니다.
미얀마, 태국 등 남방 불교에서의 명상수행과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위빠사나 수행법 또한 『대념처경大念處經』을 토대로 하고 있다. 『대념처경』에서 시작 중국에서는 불교의 전래 초기 호흡, 명상수행 등 그러한 과정들을 이미 거쳤고, 일본에서는 근대에 들어 이런 과정들을 다시 겪었다. 서로 연결되고 변형되면서 발전해 온 것이다. 다시 말해 불교 초기 단계에 있었던 상황재연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황순일 교수에 의하면, 1990년대 이후 많은 사람들이 미얀마를 중심으로 남방 불교권에서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하고 돌아와 위빠사나야 말로 부처님의 명상이며, 초기불교의 명상이고, 불교고유의 수행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미얀마 등에서 위빠사나 명상센터들이 생겨나는 과정들을 돌아보면, 현재 남방불교에서 유행하고 있는 수행법은 1,800년대 중반 이후 새롭게 개발되어 1,90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수행법이라고 한다.
따라서 아비달마 교학 위주의 미얀마 불교는 일종의 단절을 겪으면서 수행위주의 불교로 전환되기 시작했고, 위빳사나의 정체성 및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수행법을 초기경전의 몇몇 가르침과 일치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위빳사나 수행법이야말로 남방불교의 수행법이자 부처님 수행법이며 초기 불교의 명상이라고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 제 8차 국제학술 포럼「불교의 명상: 고대 인도에서 현대아시아까지」, 2012. 11. 29~30, 포럼주제 p. 16.)
현재 유행하는 위빠사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한데, 첫째,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현재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대중화는 1800년대 후반 이후 새롭게 개발된 측면이 있다. 이를 초기 불교 고유의 유일한 수행법으로만 단정 짓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행의 태도 측면에서 보면 조계종의 종지인 간화선을 위빠사나로 대체하려는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 각 수행법의 역사적 과정과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올바른 정진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5) 사념처四念處와 마음챙김(Mindfulness)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마음챙김’은 통상 산스크리트어의 스므리티(Smriti), 팔리어에서의 사띠(Sati) 등에서 유래한 용어로 ‘매 순간 순간의 알아차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띠(Sati)가 원래는 ‘기억하다, 잊지 않다’라는 뜻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단순 집중이 아니라 대상을 잊지 않고 계속 알아차리는 상태를 말한다. 사띠는 시대와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번역되어 왔는데, ‘수의守意’ ‘념念’ 혹은 ‘사념처四念處’ 등으로 번역되어 오다가 현대에 이르러 ‘마음챙김’ ‘알아차림’ 또는 ‘주의/깨어있음’으로 그 외연을 넓히고 있다.
동양의 지혜인 사념처나 현대의 마음챙김은, 두 방법 모두 몸(身), 느낌(受), 마음(心), 법(法)이라는 네 가지 영역을 대상으로 한다. 대상을 조작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고,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거나 ‘있는 그대로’ 지켜본다는 점에서 실천 원리는 동일하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빠지지 않고, 오직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호흡이나 감각에 집중한다는 것 또한 동일하다.
어쨌든 오늘날 유행하는 ‘마음챙김 호흡 명상’의 뿌리 역시 안반수의법인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해탈’과 ‘심리적 치유’라는 점에서 사념처와 마음챙김은 차이가 있다. 불교의 고전적 수행 체계인 사념처가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열반’을 위한 수행 체계라면, 마음챙김은 이를 의학·심리학적으로 재해석한 현대의 대중적 기법이다.
목적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념처가 존재의 본질인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통찰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열반)에 이르는 것이라면, 마음챙김은 스트레스 완화, 집중력 향상, 정서적 안정 등 현대인의 심리적 웰빙(Well Being)과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맞춘다.
한편 사념처는 단순한 집중을 넘어, 팔정도八正道라는 도덕적 실천(戒)과 지혜를 함께 닦는다. 즉, 올바른 가치관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반해, 마음챙김은 종교적 색채를 걷어내고 기법 중심으로 접근하는 ‘탈종교화’ 과정을 거쳐, 누구나 종교적 신념과 상관없이 훈련할 수 있는 도구로 보편화 되었다. 그리고 사념처가 ‘나’라는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 철저한 통찰(Vipassana)의 과정을 거쳐 근본적인 존재의 변화를 꾀했다면, 마음챙김은 주로 현재의 감각에 머무는 법을 익힘으로써 평온함을 유지하는 심리적 기술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 사념처四念處 (Traditonal) | 마음챙김Mindfulness (Modern) | |
| 성격 | 불교의 핵심 수행 (열반 지향) | 심리 치료 및 자기계발 (치유 지향) |
| 핵심기제 | 지(止)와 관(觀)의 병행 | 비판단적 알아차림 |
| 실천 영역 | 사찰 및 명상 센터 (전문화) | 병원, 기업, 학교 (대중화) |
사념처가 깨달음이라는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정교한 지도라면, 마음챙김은 그 지도에서 ‘숨 가쁨을 진정시키고 길을 잃지 않게 돕는 핵심 기술’을 뽑아내어 누구나 쉽게 사용하도록 만든 응용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수행자 입장에서 보면 현대적 마음챙김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는 법을 먼저 익히고(止), 점차 사념처의 깊은 통찰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觀)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번뇌의 바다를 건너는 뗏목이었던 사념처가 고대 수행자들의 전유물이었다면, 그 깊은 통찰의 정수를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현대인의 산란한 마음을 잠재우고 삶의 본질을 회복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정신적 도구로 재창조 된 것이다. 현대 심리학과 명상 과학을 통해 마음챙김이라는 보편적 언어로 재탄생하게 되었고, 인류의 정신적 치유를 돕는 핵심 기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6) 마음챙김(Mindfulness)과 위빠사나(Vipassna)
마음챙김(Mindfulness)과 위빠사나(Vipassana)는 매우 밀접하게 얽혀 있어 혼용되기도 하지만, 수행의 범위와 깊이, 그리고 지향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개념적인 측면에서 보면 위빠사나(Vipassana)는 팔리어 ‘위(Vi, 분리하여/특별하게)’와 ‘빠사나(Passana, 보다)’의 합성어다. 즉, ‘사물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지혜’ 또는 ‘통찰(Insight)’을 의미하는데, 불교의 정통 수행법으로서 존재의 세 가지 특성인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아를 깨닫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에 마음챙김(Mindfulness)은 팔리어 ‘사띠(Sati)’의 현대적 번역어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비판단적非判斷的으로 현재 이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위빠사나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인 ‘기제(Mechanism)’이자 ‘마음의 근육’이라고 할 수 있다.
| 위빠사나(Vipassana) | 마음챙김(Mindfulness) | |
| 성격 | 수행의 체계 및 결과 (지혜/통찰) | 수행의 방법 및 기술 (알아차림) |
| 목적 | 번뇌의 완전한 소멸과 해탈(Nirvana) | 스트레스 완화, 정서 조절, 심리적 웰빙 |
| 관찰의 깊이 | 존재가 비어있음(空)을 깨닫는 철저한 분석 | 현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깨어 있음 |
| 종교적 맥락 | 불교적 세계관과 윤리(戒)가 필수적임 | 종교적 색채를 배제한 과학적/보편적 접근 |
마음챙김이 거울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는 ‘행위’와 ‘집중력’이라면, 위빠사나는 그 맑아진 거울을 통해 사물의 본래 모습을 가감 없이 비추어 보는 ‘지혜의 빛’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마음챙김이라는 올바른 도구를 통해 대상을 쉼 없이 알아차릴 때, 비로소 존재의 무상함과 무아를 꿰뚫는 위빠사나의 통찰이 발현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심리학계에서는 위빠사나를 ‘통찰 명상(Insight Meditation)’으로, 마음챙김을 ‘알아차림 훈련’으로 구분하여 정의하기도 한다. 마음챙김이 현재 일어나는 감각에 머무는 법을 가르친다면(예: “지금 화가 났구나”라고 알아차림), 위빠사나는 그 감각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나’의 것이 아닌지를 탐구한다(예: “이 화라는 에너지는 인연에 의해 일어났을 뿐, 고정된 ‘나’는 없다”는 지혜). 그러므로 마음챙김은 위빠사나로 나아가기 위한 문門이 되며, 위빠사나는 마음챙김이 도달하고자 하는 지혜의 완성이 되는 것이다.
선도회 등 현대 선禪 수행에서는 안반수의의 수식법을 예비 수행으로 활용한다. 수식관은 1. 집중력 강화: 초보자가 화두를 잡기 전, 숫자를 세며 마음을 모으는 토대를 마련하고, 2. 상기병上氣病 예방: 화두에만 몰두할 때 기운이 머리로 치솟는 부작용을 호흡과의 병행으로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3. 정혜쌍수定慧雙修: 호흡 수행과 화두 참구를 통해 선정과 지혜를 동시에 닦을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왜 호흡과 간화선을 연결시켜 글을 쓰게 되었냐는 것이다. 나중에 다시 논의하겠지만 간화선 수행을 머리로만 하려는 병폐를 바로 잡고자 함이다. 지금까지 살핀 대로 간화선 수행 역시 그 뿌리는 호흡에 있다. 화두에 집중하는 만큼 호흡 혹은 명상 수행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간화선을 위한 참선은 호흡수행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