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월터 힐
출연: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질 아이리랜드
케이니(Chaney: 찰스 브론슨 분)는 창고에서 사람을 때려 눕히고 내기 돈을 받는 시합을 목격하게 된다. 돈
한푼없는 건달이지만 싸움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케이니는 곧 스피드(Speed: 제임스
코반 분)에게 접근하여 스트리트 파이터가 된다. 순식간에 그는그 계통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갠덜(Gandil:
마이클 맥과이어 분)의 선수도 때려눕혀 주먹계의 일인자가 되나 돈방석에 앉게된 스피드가 도박으로 돈을
몽땅 날리고 만다. 케이니를 5천불에 산다는 갠덜의 제의까지 수락했다는 스피드의 침통한 어조에 격분한
케이니는 그의 곁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데 갠덜이 스카웃해 온 스트리트 파이터와의 결전을 조건으로 스피드가
빚쟁이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마지막으로 스피드와의 의리를 위해서 결전의장소에 나타나는 케이니,
힘겨운 한판 승부가 시작된다.
야바위꾼 같은 다소 한심한 인물로 출연한
제임스 코반, 그간 전쟁물, 서부극등에서 보여준
강인하고 거친 매력이 이 영화에선 보이지 않는다.
7년만에 콧수염을 자르고 '생얼'로 출연한 찰스 브론슨
60년대 전쟁영화, 서부극등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찰스 브론슨과 제임스 코반, 이 영화에서 스트리트 파이터와 매니저로
다시 만난다.
찰스 브론슨의 70년대 영화에 PPL처럼
단골 등장하는 질 아일랜드
찰스 브론슨이 주연한 '투쟁의 그늘'은 그냥 평범한 70년대 폭력영화로 넘어갈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몇 개의 짚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우선 이 작품은 '월터 힐'감독의 데뷔작입니다. 강인한 남성적 영화를 잘 만들던 대표적인
감독 '존 스타제스'가 50년대와 60년대중반까지 전성기를 보냈다면, 60년대에 등장한
샘 페킨파는 여기에 '폭력'이라는 재료를 써서 '남성적인 폭력미학의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폭력미학'이라는 말이 샘 페킨파에 의해서 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 '폭력영화의 거장'인 '샘 페킨파'의 뒤를 잇는 감독이라고 찬사를
받으며 등장한 인물이 바로 '월터 힐'이었습니다.
월터 힐 감독은 라이언 오닐 주연의 카 체이스 영화 '드라이버'를 비롯하여 히트작
'48시간'과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로 승승장구하였고, 아놀드 슈왈체네거를 등장시킨
'레드 히트'도 연출했습니다. 그의 영화들은 강렬한 '남성적, 마초적'영화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89년 작품 '자니 핸섬'을 시작으로 그는 급격한 한계를 보인 감독입니다.
이후 48시간2, 제로니모, 와일드 빌, 라스트 맨 스탠딩까지 그저 그런 영화들을 만드는
그야말로 '마초적 B급영화감독'으로 전락해 버렸죠.
샘 페킨파가 서부극으로 시작해서 현대물에서 폭력미학을 완성한 감독이라면
월터 힐은 현대물로 시작해서 나중에 밑천이 떨어지자 '서부극'으로 전전한
샘 페킨파가 걸은 길을 거꾸로 간 감독이 되었습니다.
월터 힐의 감독 데뷔작 '투쟁의 그늘'은 컨츄리풍 음악과 허무주의의 색채가 강했던
그 당시의 영화들, '미드나이트 카우보이'로 시작해서 '라스트 픽쳐 쇼'
'파이브 이지 피시즈'같은 영화들과 일면 맥을 같이 하는 영화입니다.
'찰스 브론슨'이라는 배우는 70년대를 대표할 '오락 액션영화'의 단골 배우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기존의 찰스 브론슨이 보여주었던 그런 분위기와 상당히 다릅니다.
찰스 브론슨이 70년대에 출연한 영화들은 오락적 재미가 강하고 악당들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통속적 헐리웃 70년대 오락물의 전형을 따르고 있지만, '투쟁의 그늘'은
오히려 그의 '마지막 생얼 영화'인 '웨스턴(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로 회귀한
분위기입니다. 투쟁의 그늘은 별로 '오락적'인 요소가 없는 허무주의적 '소품'일 따름입니다.
흥행배우인 찰스 브론슨의 다른 영화들을 연상하고 본다면 굉장히 실망할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서 찰스 브론슨은 모처럼 '생얼'로 다시 복귀합니다. 웨스턴 이후
그는 '콧수염배우'였습니다. 하지만 투쟁의 그늘에서 7년만에 다시 '생얼'로 등장한 것이죠.
그 7년간 '조연배우'에서 메이저영화 흥행배우로 탈바꿈한 그가, 모처럼 '작품'을 골라서
출연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오락적 요소가 별로 없는, 영웅이 아닌 '밑바닥 군상'의
이야기, 길거리 스트리트 파이터와 야바위꾼 남자 둘이 주인공인 영화,
물론 찰스 브론슨은 이 작품 이후 여전히 다시 '통속오락물'로 복귀하고 콧수염도 기르고
출연했습니다. 어쩌면 '투쟁의 그늘'은 '오락액션배우'인 찰스 브론슨이 과거의 '조연시절'을
회상하면서 향수에 젖어 출연한, '작품으로서의 영화에의 목마름'때문에 잠시 외도하여
출연한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아뭏든 '스타'시절의 찰스 브론슨이 출연한 덕분에 영화는 이름을 알릴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월터 힐 감독은 주목받는 신예감독으로 떠오를 수 있었습니다.
'투쟁의 그늘'은 1930년대의 스트리트 파이터 이야기입니다. 딱히 오갈데 없는 중년의
찰스 브론슨은 우연히 창고같은데서 벌어지는 '주먹싸움'을 보고 스트리트 파이터가
되어 그런 싸움을 주선하면서 돈을 버는 야바위꾼같은 제임스 코반과 손을 잡고
최고의 스트리트 파이터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런 와중에 돈 많은 사업가의 제안도 받고,
자신이 벌어준 돈을 도박으로 탕진하는 제임스 코반에 실망하기도 하고, 그런 인간군상들의
밑바닥 이야기가 '별 재미없이, 별 오락적 요소 없이' 펼쳐집니다. 이러한 오락적 요소가
아닌 인간적 드라마에다가 폭력이라는 소재, 거친 남성의 이야기를 적절히 조화롭게 섞어서,
신인감독 치고는 괜찮은 작품을 보여준 월터 힐에 대한 기대가 컷을텐데, 결국 월터 힐은 흥행적
재미에 발을 붙인 이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감독이 되어 버린 것이 안타까운 결과입니다.
강하고 굳센 남성상을 가진 배우인 제임스 코반은 여기서는 돈과 여자를 좋아하는 자유분방한
한심한 인간같은 역을 보기 드물게 하였습니다. 딱 우리나라 고전배우인 '허장강'의 역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100% 허장강에게 돌아갈 역할입니다. 물론 허장강이
훨씬 잘했을 것입니다)
찰스 브론슨의 작품에 마치 PPL처럼 등장하는 질 아일랜드가 여기서도 별 비중없는 역으로
등장하여 찰스 브론슨과 짧은 로맨스를 벌입니다. 아마도 찰스 브론슨은 자신이 출연하는
모든 영화에 부인인 질 아일랜드가 함께 출연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는 모양입니다.
찰스 브론슨이 펼치는 스트리트 파이트 장면은 요즘 폭력물이나 액션물에 비하면 거의
오락적이지 않고 싱겁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심히 보면 요즘 K-1이나 프라이드에
나오는 '로킥'이나 펀치공격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주먹으로 여러 대 치고 받아도 별로
얼굴이 망가지거나 피가 나지 않아서 영화의 리얼리티가 많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50대의 찰스 브론슨은 나름 대로 몸 관리를 잘 했는지 외모는 할아버지같지만 상체의 근육은
정말 잘 빠졌스니다. (영화중 '맞기에는 너무 늙은 것 같은데'라는 대사가 웃음을 터지게
합니다.)
질 아일랜드의 '남을 때려 눕히면 기분이 어때요?라는 질문에 '내가 때려 눕혀서 눕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기분이지'라는 찰스 브론슨의 대답이 그럴듯 합니다.
복싱,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 등 요즘에도 많은 격투기 경기들이 있지만 로마의 검투사 시절부터
강한 남자들이 치고 때리고 맞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심리인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되고 체계를 갖추기 이전인 30년대 '스트리트 파이터'의
일면을 보여 주던 '투쟁의 그늘'은 잘 나가던 흥행배우가 신인감독의 데뷔작에 모처럼 출연한,
오락적 요소가 떨어지 무미건조할 수도 있는 작품에 출연한 모험을 한 이례적인 영화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70년대에 한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찰스 브론슨의 영화중에서 드물게
'개봉'이 안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