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사는 곳을 아시나요/ 절영도 봉래자락 휘돌아 눈길 잡히는 곳/태종대, 파도는 밤새 아랫도리를 적시며/발치 아래/설설 끓는 주전자섬 띄워놓고/ 바다로 떠난 어부의 뱃노래 그 설렘만큼이나 억센 희망을 건져 올리면/ 촘촘히 들어와 박힌 금빛 물보라/비늘을 털고/가슴마다엔 물이랑이/안개주의보가 내린//깎아지른 벼랑을 끼고 소금기 머금은 바람/ 그 바람이 머무는/서낭당 서낭할미의 흘러내린 치마폭 아래/저마다의 기도를 묻고 가는 사람들/가슴 높이로 동백꽃 그 마음보다 더 붉은 / 해가 자란다.<해가 사는 곳>-최철훈
시에 있어 '깊이'는 어떻게 시추될까. 시인의 사유와 시적 방법론에 의해서, 그 깊이의 이미지들은 프리즘처럼 조합되지 않을까. 피에르 마슈레의 <깊이의 문학>이 글쓰기에 있어 덕목으로 등장했듯이, 현대시에서 있어 시의 깊이야말로 시의 단단한 골조가 된다 하겠다.
시집 <울긋 불긋 가렵다>의 표제시 <해가 사는 곳>을 우선 읽어 본다. 이 시는 한마디로 최 시인의 바다에 대한 인식, 삶과 바다에 대한 철학과 시인의 시적 방법론 등 자연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시이다.
시는 언어의 그림이라는 말처럼, 시인은 눈에 보이는 실제의 풍경들을 묘사해 나가는데 그 묘사법과 시어의 은유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시의 구조를 만들어간다. 행과 행 사이 여운을 주는 행갈이 시형식에 의존, 영원불멸한 '바다'에 대한 공간을 내면화하는 데 성공한다.
개념적으로 바다의 시간은 융화된 시간이다. 융화된 시원의 공간 바다에서 획득되는 영원불멸성을 가진 바다에서 솟구치는, '해가 사는 곳을 아시나요'라고 제기하는 시적 화자의 질문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시인이 살고 있는 현존의 공간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따라서 '절영도 봉래산 자락 휘돌아 눈길 잡히는 곳'에서 설렘만큼 억센 희망을 건져 올리는 어부의 뱃노래로 직조되는 바다의 공간은, 곧 '서낭당 서낭할미의 흘러내린 치마폭'에서 솟구치는 시원의 시간의 바다와 동일시 된다.
이에 바다에 대한 인식 대상이, 시적 화자의 내면의 바다로 치환되고, <해가 사는 곳을 아시나요>에서 독자는 어렵지 않게 손으로 만지듯이, 시의 깊이를 체감케 된다. 이는 '저마다의 기도를 묻고 가는 사람들, '가슴 높이로 동백꽃 그 마음보다 더 붉은 해가 날마다 자라'는 희망의 깊이로 더욱 확장 고조된 '바다'의 공간으로 형상화된 점에서 그렇다.
저 맑은
속살 좀 봐
어둠까지 보이잖아
이젠
건져 올려봐
바다 가득
고였잖아
가슴
용트림
비상의 꿈이
세상 열고
있잖아
<해>-최철훈
최철훈 시인의 <울긋불긋 가렵다>의 시편들은 대체적으로 짧다. 그러나 여기서 짧다는 것은 시의 행을 말한다. 시인은 시를 통해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해서 시에서 보다 많은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최철훈 시인의 시는 전통적 구조와 존재의 담론을 담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전통시의 개념과는 또 거리가 있다. 전혀 새로운 시적 파괴력을 보이지는 않지만, 난해와 무질서와 난삽의 이미지시들과는 변별력을 갖는다. 해서 최철훈 시인의 시는 조직적이고 구조적이다. 그리고 전통적 시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허나 시적 대상을 낯설게 하는 데 성공한다.
시적화자는 일출의 장엄한 풍경을 보고 있다. 어둠을 밀어내고 붉게 솟아오르는 해를 가리키며 "저 맑은/ 속살 좀 봐"라고 독자에게 권유하고, "어둠까지 다 보이잖아"라고 시적 화자의 내면의 반영된 세계의 공감을 긍정적으로 끌어낸다.
이 시는 시조로 읽어도 훌륭하다. 이 시는 3장 6구의 단시조로 구조화되어 있다. 시조로서의 초장, 중장, 종장 형식이 완벽하다. 이에 뒷받침되는 것은 최 시인의 투명한 감성적 언어의 성취도 시적 덕목을 더한다.
어업협정 막바지쯤 배를 내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횟집을 차린 어씨쌍글이 그물을 끌던 가슴으로 푸른 바다의 배를 딴다.유선형 등짝을 지나, 미끄러져 아랫도리에 이른다.심호흡 한 번에 물살을 가르며 뛰어오르던 꼬리지느러미를 자르면 등 푸른 파도를 타던 뱃노래가울대 깊이 잦아들고 물보라 치는 칼날로 그리움을 난도질을 하면 등대를 넘어온 바람 그 바람이 소금기를 부리고 팽팽한 그물을 당겨 힘겨루기를 한다.뱃노래가 그리운 바다 어씨의 눈빛을 닮아 간다.
<어씨의 바다>중-최철훈
<어씨의 바다>는 핍진한 한 어부의 추억 속의 바다의 공간을 리얼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물보라 치는 칼날로 그리움을 난도질을 하면 등대를 넘어온 바람 그 바람이 소금기를 부리고 팽팽한 그물을 당겨 힘겨루기를 한다'고 심미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시적화자는, 현재의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횟집 주인.
과거의 원양의 바다에서 쌍글이 그물을 끌던 청춘의 바다와 '푸른 바다의 배'를 따는 현실의 바다는 중첩된다. 시적 화자는 이미 조업의 과거의 바다에서 밀려났으나, 삶의 핍진한 바다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시간의 바다는 현재 과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최 시인의 이러한 일합상(一合相)의 바다의 인식은, <울긋불긋 가렵다>의 시집 전반의 기조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니까 시인의 상상 속의 형상화된 바다는 곧 시인의 내면의 바다로 통하고, 이 융합의 바다의 시간 속에는 현재 과거 미래가 경계가 없다. 해서 범우주적인 바다의 공간에 대한 탐색과 탐구의 성찰도 돋보인다.
최철훈 시인의 시편들은 그러나 대부분이 핍진한 원양의 바다와 어부의 바다를 노래하고 있다. 이는 최철훈 시인이 한국해양문학상을 탄 바 있는 해양시인이란 점과 무관하다 하겠다. 최철훈 시인의 시집 제목 <울긋불긋 가렵다>임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해수독을 앓아 가려운 상태의 어부의 현실 생활을 상징화하고 있다 하겠다.
나는 최 시인의 시를 몇번 반복해 읽으면서, 문득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첫장의 <실수의 분석>을 떠올렸다.
'누군가가 어떤 말을 하려고 하다가 전혀 다른 단어로 잘못 발음하는 실수, 활자나 문서에서 읽어야 할 바와는 다르게 읽는 실수, 마찬가지로 들리는 내용을 틀리게 듣는 잘못 듣기 등 청각 능력의 조직적인 교란의 현상들이다.'
그렇다. 시 읽기야 말로 시인의 의도와 달리, 독자의 상상력에 의한 읽기에서 완성된다. 해서 시와 소설 읽기는 전혀 다르다 하겠다. 그 어떤 시인이 말했던가. 이 세상 시인들은 독자들의 상상의 즐거움을 위해 시를 목숨 걸고 쓴다고.....
|
첫댓글 쵝오!!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최고!!^^ ~~충성
너무~있어 보이고 좋습니다. 발행인님 만세~
최선생님 너무 멎져 보여요.....
시가 주는 감동을 그대로 가슴에 담으며 기쁜 맘으로 머물고 갑니다
시<해>..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아름다운 시를 만날 수 있음은 나의 또 다른 행복입니다^^감사합니다
멋있습니다. 그런데 일주 선생님, 철학자이자 지행일치로 사는 윤구병 전 교수와 너무 닮았습니다. 그 보다 좀 더 멋집니다.
한 해도 건강하시고 <문장21>의 발전을 내내 기원합니다. 휘호도 고맙습니다. 2012.1.6. 박소피 올림.
축하드립니다 . 동백꽃보다 더 붉은 해가 사는곳을 알았습니다 . 님의 좋은글에 흠벅 젖어 갑니다.
"深川深海에서 보물을 건지다."로 표현하고 싶고, 선생님의 시는 바다 속 진주라고 말하고 싶네요. 깊고
심오한 철학이 숨어 있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 마음의 운동장, 배움의 운동장, 그 시심은 꼭 닮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