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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업과 윤회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천태만상(千態萬象)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자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태어나며,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실패하며, 어떤 사람은 수명 장수하는데, 어떤 사람은 20살도 못 넘기고 단명하며, 어떤 사람은 미인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박색으로 태어나는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 원인을 기독교에서는‘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우리의 조상들은 사주팔자(四柱八字)나, 조상 탓(잘되면 제 탓, 잘 못되면 조상 탓)으로 돌렸으며, 생물학자들은 한 낱 우연으로 돌렸고,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모순, 부조리로 돌렸으며, 불교에서는 업보(業報)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업이란 카르마(Krama)란 범어를 의역한 것인데 원어를 정확하게 우리말로 번역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행위(행동), 습관력, 버릇, 남아 쳐진 힘(殘在力), 꾸며내는 힘(構成力) 등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업은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습니다. 즉 몸으로 살생(殺生)하고, 도둑질(偸盜)하고, 삿된 음행(邪淫)을 하고, 입으로 거짓말(妄言)하고, 두말(兩舌)하고, 욕지거리(惡口), 꾸밈말(綺語)을 하고, 뜻으로 욕심(貪慾)내고, 성내고(瞋恚), 어리석은 짓(愚痴)을 일삼고 있다. 이를 10악업(十惡業)이라고 하며, 그 반대로 몸으로 살려주고(放生), 부지런히 힘쓰고(勤勉), 바른 행동(正婬)을 하고, 입으로 바른 말(正語), 진실된 말(眞語), 사랑스런 말(愛語), 실다운 말(實語)을 하고 뜻으로 베풀어 주고(布施), 자비로 대하고(慈悲), 슬기롭게 행하는 것(智慧)을 십선업(十善業)이라고 합니다.
업을 분석하여 보면 첫째 선악의 의사, 둘째 의사 뒤에 일어나는 실제 행위(행동), 셋째 의사와 행동의 습관적 잠재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선악의 의사란 행위의 동기 목적을 말합니다. 어떠한 행위도 그것이 책임있는 행위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사를 동반하여야 합니다. 예컨대 살인 할 의사와 목적이 없이 잘못하여 사람을 죽였다든가 자기의 자유의사가 아니고 강요된 행위로 인하여 살인하였을 경우에는 완전한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실제 행동이란, 선악의 의사에 의하여 실제로 신체와 언어로서 행해진 선악의 행동을 말합니다. 선악의 의사만 있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거나 실제 행동이 실패하여 미수로 끝나면 그것은 행위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습관적 잠재력이란, 자기가 지은 업이 그대로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그때마다) 습관력이 되어 그 사람에게 남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도둑질을 한 경우에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이나 주위에 대한 두려움, 익숙하지 못한 행동 때문에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두 번 성공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양심이 마비되고 대담해지며 도둑질을 하는 방법도 향상되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무의식적으로 도둑질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악사뿐만 아니라 선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업보설이란 자기가 지은 업(業)은 반드시 자기가 받는다는 것인데,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 금생에 받은 것이 그것이다
욕지래생사(欲知來生事)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 금생에 지은 그대로이다.
원인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지 콩 심은데 팥 나고 팥 심은데 콩 날리 없는 것처럼, 인과(因果)란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만든 결과이며, 미래의 나는 오늘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탓할 것인가? 모두가 내 업보요 내 책임입니다. 흔히 복권 당첨을 한낱 우연으로 돌리지만, 이 세상에 우연이란 결코 없습니다. 모두가 필연입니다.
그런데 업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나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따라서예컨데, 알코올이나 니코친 중독자라 할지라도 금주 ․ 금연을 할 수 있고, 악한 사람도 개과천선(改過遷善)하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얼마든지 변개(變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업보설은 타율설(他律說)이 아니라 자율설(自律說)인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업은 반드시 자기가 받는다면 그 시기가 문제인데, 예컨대 갑이 을의 뺨을 때렸을 때 힘이 비슷하면 즉시 반격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힘이 약하면 마음에 응어리(恨)가 되어 반격할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자기가 지은 업은 조건이 이루어 져야 결과가 발생하는데, 현생에 짓고 현생에 받는 업을 순현수업(順現受業)이라 하고, 현생에 짓고 다음 생에 받는 업을 순생수업(順生受業)이라 하며, 현생에 짓고 한 생 격하여 받는 업을 순후수생업(順後受生業)이라 하고, 업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는 업을 순부정수생업(順不定受生業)이라고 합니다. 한번 지어진 업은 가사 백천 겁을 지나더라도 멸하지 않고 그 값을 치르기 때문에 경전에 이르기를“가사 백천 겁을 지나더라도 자기가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인연을 만날 때에 반드시 그 과보를 되돌려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윤회란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어떤 주체가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면서 계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나비는 알에서 애벌레-번데기-나비로 변화하는데, 알과 나비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알의 상태에서 나비로 되기까지 변하지 않고 옮겨가는 것은 어떤 것도 없지만 알과 나비의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즉 알 속에는 나비가 될 수 있는 조건이 쓰며 있는 것입니다. 이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우리가 짓는 업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윤회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몇 편 하겠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 창건설화>
불국사와 석굴암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제된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입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신라의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지었다는 것은 다들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삼국유사 끝부분에‘대성효 이세 부모(大城孝二世父母)’란 항목이 나오는데, 그 내용인 즉 다음과 같습니다.
모량리에 가난한 여인 살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경조였습니다. 이 여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머리가 크고 정수리가 평평한 것이 마치 성같이 생겼다고 해서 이름을 대성(大城)이라 했습니다. 경조 부인은 일찍이 남편을 여의었고 집안 형편이 워낙 가난하여 아들 대성이를 제대로 돌볼 수가 없어서 복안이란 사람의 집에 머슴으로 보냈습니다. 그 집에서는 대성이에게 밭을 몇 마지기를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주 흥륜사에서는 대법회를 개설하고자, 한 스님이 복안의 집에 시주를 권하러 오셨습니다.(흥륜사는 신라 23대 법흥왕 때 이곳에서 이차돈이 순교함으로 불교가 공인된 곳입니다. 당시 임금님은 불교를 믿었으나 신하들이 반대하여 불교를 공인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이차돈이 왕의 뜻을 알고 임금님 앞에 나아가“소신이 천경림에 절을 지을테니 대왕께서는 임금의 허락없이 절을 지었다는 죄를 물어 소신의 목을 베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이적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마지못해 이차돈의 목을 베자 목에서는 힌 피가 쏟아났고 그 목이 지금 백율사가 있는 곳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후 그 자리에 (목이 떨어진 자리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도 백율사라고 이름 하였다고 합니다. 이차돈의 목에서 힌 피가 솟구치는 광경을 보고 신하들은 더 이상 불교공인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기적을 보고 반대할 수가 없죠)
그 스님은 염불하시기를,
불제자로서 기쁜 마음으로 보시하면 천신이 항상 보호하도다.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어 생활은 안락하고 수명은 장구하도다.
대성은 스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그 어머니에게 달려가서“제가 어느 스님의 말을 들으니 부처님께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는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전생에 공덕을 많이 짓지 못해서 금생에 이렇게 곤궁한 것입니다. 금생에 또 보시하지 않으면 내생에는 더욱 곤궁해 질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받은 밭을 흥륜사 법회에 보시하여 내세의 좋은 과보를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성이의 이야기를 들은 대성의 어머니는 그 뜻을 갸륵히 여기고 찬성하였습니다.
이에 대성은 세금으로 받은 밭을 흥륜사에 보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성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부처님께 밭을 시주하였으면 오래 살고 부귀를 누려야 할텐데 그만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대성이 죽던 그날 밤, 신라의 재상인 김문량의 집에는 하늘에서“모량리에 살던 대성이 오늘 그대의 집으로 온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집안사람들이 놀라서 모량리에 가서 알아보았습니다. 소리가 들린 그 시각에 대성이 죽은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로부터 10달 후 김문량의 부인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왼손을 꼭 움켜쥐고 있다가 7일 만에 손을 펴는데, 대성이란 두 글자가 완연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그대로 대성이라 하였습니다.
대성이 장성하자 전생 어머니인 모량의 경조부인을 모셔다가 봉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상이 되자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지었습니다. 이와 같이 불국사와 석굴암은 김대성이 금생 부모와 전생부모를 위하여 지은 것입니다.
이처럼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대성에 대한 이야기는 인과응보가 분명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세암 대웅전 현판의 내력>
강원도 설악산에는 신흥사, 백담사, 오세암 등, 절이 많이 있는데, 오세암 대웅전에 조그만 현판이 하나 걸려 있다고 합니다. 혹시 오세암에 갔다 오신 분 있으세요? 저는 신흥사와 백담사는 갔다왔는데, 오세암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현판에 세긴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한문으로 쓰여진 것을 우리말로 풀이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발로 한번 걷어찬 것이 볼 귀 세대로 돌아왔고
떡한 개 준 것이 3년 양식으로 돌아왔네
이와같은 사실이 명백할진데
불자여 모름지기 인과를 한치도 의심하지 말게나.
이 시가 쓰여진 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시대 강원도 설악산은 인제군수의 관할이었습니다. 지금부터 한 400여 년 전, 인제군수가 새로 부임하여 초도순시 차 오세암을 찾았습니다. 마침 점심때가 되었는지라 주지 스님이 점심상을 차려왔는데, 워낙 가난한 절이라 달리 대접 할 것도 없고하여 보리밥 한 그릇에 된장과 꼬치 몇 개를 내어 왔더니, 인제 군수가 벌컥 화를 내고 점심상을 뒤엎으며“이걸 나더러 먹으란 말이냐?"하면서 볼기를 3대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엉겁결에 볼기를 맞은 노승이 저만큼 나가 덜어지자 무슨 마음이 들었던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며, 수행하고 있던 아전에게“앞으로 이 절(오세암)에 3년 먹을 양식을 대 주라."고 분부하고는 훵하니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볼기를 맞은 노승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볼기를 때릴 때는 언제이거, 3년 먹을 양식을 주라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인가?
‘볼기3대 3년 양식, 볼기3대 3년 양식’
노승은 이것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몇날 며칠을 씨름 하던 어느 날, 노승의 눈앞에 전생이 훤히 보였습니다.(불교에서는 도가 터지면 6가지 신통이 열린다고 한다. 여섯가지 신통이란 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신족통 누진통을 말하는데, 천안통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신통, 천이통은 보통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는 신통, 타심통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신통, 숙명통은 지나간 세상의 일을 아는 신통, 신족통은 몸을 마음대로 변화시켜고 날아다니기도 하는 신통, 누진통은 번뇌망상을 끊는 신통을 말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백석이나 하는 시골부자 살았습니다. 섣달 그믐날 점심 때 쯤, 새해 차례에 올릴 떡을 빚어서, 하녀가 쟁반에 담아 주인마님에게 드리려고 가지고 오는데, 집에 기르던 개가 그 떡을 낚아채려고 뛰어오르니, 마루에 앉자있던 주인이 벌떡 일어나서 개의 목을 걷어찼습니다. 그러자 개가‘깨갱갱’하며 저만큼 나가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무슨 맘이 들었던지 떡 한 조각을 떼어서 개에게 던져주니 개는 덥석 그 떡을 받아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생의 부자는 죽어서 노승이 되었고, 개는 죽어서 인제 군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인과가 한 치도 어김없이 명명백백한 것을 깨달은 노승은 후세 사람들을 깨우쳐주기 위해 글을 지어(발로 한번 걷어찬 것이 볼 귀 세대로 돌아왔고 떡한 개 준 것이 3년 양식으로 돌아왔네. 이와같은 사실이 명백할진데, 불자여 모름지기 인과를 한치도 의심하지 말게나) 법당에 달아 두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각국사 의천스님의 전생 이야기>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스님은 고려 제11대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울기 시작하여 잠시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젖을 먹여도 울고 얼러도 울고, 도무지 울음을 그칠 줄 몰랐습니다. 왕자의 탄생을 기뻐하기도 전에 왕실은 근심에 휩싸였고, 마침내 모진 병을 앓는 것이 아닌가 하여 시의(侍醫)에게 진찰토록 하였습니다.
“대왕마마, 아무리 살펴보아도 왕자께서 우는 까닭을 알 길이 없습니다. 하오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왕자님의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종과 왕비는 더욱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멀리서 은은히 들려오는 목어(木魚)소리를 듣기만 하면 왕자가 울음을 뚝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저 목어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보도록 하라.”
이윽고 어명을 받은 두 관리는 목어 소리가 들려오는 서쪽을 향해 길을 떠났고, 서해 바닷가에 이르자 배를 타고 계속 서쪽으로 나아가 중국 항주(抗州)의 경호(鏡湖)에 이르렀습니다. 호숫가에는 절이 있었고, 목어 소리는 법당 안에서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관리는 목어를 치며 염불하는 스님께 찾아온 까닭을 말하고, 고려로 함께 가서 왕자의 병을 고쳐 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오. 어디 함께 가서 봅시다.”
스님은 흔쾌히 허락을 하고, 고려로 와서 왕자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왕자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왕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스님이 두 손을 모으고 정중히 절을 하자, 왕자는 울음을 뚝 그치고 방긋방긋 웃기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종은 스님에게 치하했습니다.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무엇인지요?”
“왕자가 태어난 이후로 아직까지 왼손을 펴지 않고 있습니다. 억지로 펴 보기도 하였으나 도무지 펼 재간이 없습니다.”
“소승이 한 번 펴 보겠습니다.”
천천히 왕자에게 다가간 스님이 살며시 왕자의 왼손을 잡고 몇 번 쓰다듬자 왕자는 손을 활짝 펼쳤습니다. 그런데 왕자의 조그마한 손바닥에는 불무영험(佛無靈驗)이라는 네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글씨를 보자마자 중국에서 온 승려는 왕자 앞에 꿇어앉아 흐느껴 울면서 소리쳤습니다.
“스님, 우리 스님! 여기서 다시 뵙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문종 임금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인연입니다. 저의 스승님께서 환생(還生)하시어 왕자님이 되셨으니…”
“그것이 무슨 말씀이오?”
“저에게는 존경하고 따르던 은사스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본래 가마를 메고 다니던 가마꾼 이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검소하여 번 돈의 일부를 쓰고 나머지는 반드시 우물에 던져 넣어 저축을 했습니다. 몇 십 년이 지나자 우물은 돈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평소 불교를 숭상하던 그분은 경호 호숫가에 절을 짓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덕이 높고 불심이 아주 깊어 주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으며, 저도 그분을 흠모하여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알 수 없는 일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스님은 절을 짓고 목어를 두드리며 염불정진만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일년이 지나자 앉은뱅이가 되었고, 이년이 지나자 장님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삼년이 되던 날, 벼락에 맞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도 기가 막혔습니다.
불심이 깊고 염불정진을 열심히 하신 스승님을 이토록 허무하게 돌아가시게 하다니! 부처님의 영험은 없는 것이 아닌가? 저는 허무한 마음을 누를 길 없어 은사스님의 왼쪽 손바닥에 불무영험(佛無靈驗)이라는 글씨를 새긴 다음 장례를 치렀습니다.”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은사스님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길이 없어, 날마다 그분이 생전에 쓰시던 목어를 두드리며 명복을 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사스님이 바다 건너 고려 땅에서 왕자의 몸으로 환생하셨으니…이제야 부처님의 참뜻을 알 것만 같습니다.”
이러한 사연을 들은 문종은 몹시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불무영험이 아니라 불유영험(佛有靈驗)이구려. 그 스님이 갖가지 어려움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부처님의 영험이 아니겠소? 삼생(三生)에 걸쳐 받아야 할 전생의 죄 값을 3년 만에 모두 받았으니 말이오. 이제 왕자가 모든 죄를 씻고 새롭게 태어났으니 틀림없이 이 세상을 위해 큰일을 하게 될 것이오.”
이 문종의 예언처럼 뒷날 왕자는 출가하여 남달리 불도를 닦았고 마침내 천태종(天台宗)을 세워 고려에 새로운 불교를 꽃피웠습니다.
<재상 허묵의 아내가 숯장사 아내가 된 사연>
조선 숙종 때 허묵이란 재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남인의 거두로서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 등 노론세력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유명한 사람인데, 포양 양포에 가면 허묵에게 쫒겨 귀양살이한 송시열의 유적이 남아있고, 포항시에서는 현재 그곳을 복원하여 관광 자원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달 신문에 허묵이 쓴 글이 국보로 지정되었다는 기사가 났던데, 그는 한석봉 못지않게 대단한 명필가였던 모양입니다.
허묵은 벼슬도 재상의 자리에 있었고, 살림은 풍족했으며, 더욱이 빼어난 미모를 지닌 아내를 두었습니다. 허묵은 어여쁜 아내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니 하인들이 저들끼리 수근 거리는 것이었습니다. 허묵은 하인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냐?”
하인 중에서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마님이 아니 계십니다.”
“마님이 아니 계시다니, 정녕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구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안 계셨습니다요. 소인들은 그 이상도 이하도 모르고 있사옵니다.”
허묵은 아내가 쓰는 내당으로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과연 하인들의 말대로 그곳에는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중을 드는 몸종 아이는 분명 간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잠자리에 든 아내가 밤사이에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감히 어느 댁이라고, 누가 야밤에 월장을 하여 보쌈을 해 갈수 있었겠는가? 그렇다고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진 것도 아닐 터였습니다. 그런데도 온데 간데 자취가 없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사랑하는 아내가 행방불명이 된 변고를 당한 재상은 사방으로 사람을 놓아 수소문했지만 종적이 묘연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갔습니다. 재상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아내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사가 된 그의 친구(박문수)가 찾아왔습니다. 어사 친구는 수인사가 끝나자 말했습니다.
“내가 재 너머 숯막을 지나오다가…”
“어서 계속하게…”
“숯 굽는 영감의 아낙으로 보이는 여자를 보았는데, 아무래도 자네 부인을 닮아 있더란 말일세.”
“뭐라구?”
“내가 잘못 보았는지도 모르지. 자네 부인이 숯장이의 아내가 되어 있을리는 만무하고…아마 얼굴생김이 비슷한 여자가 있었던 게야.”
어사 친구의 말을 들은 재상은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숯 굽는 영감의 아내가 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닮았다는 말만으로도 가서 확인을 해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허묵은 기어이 재 너머 심산유곡에 있는 숯막을 찾았습니다. 그가 숯막에 당도해 보니, 숯 굽는 영감의 아낙은 허름한 옷을 입고 얼굴이 온통 숯검정으로 칠해져 있지만 자기 아내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세상이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마침 숯막에는 영감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그를 보자 깜짝 놀랐습니다.
“어째서 당신이 이곳에 와서 갖은 고생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요. 보쌈이라도 당한 것이요.”
“지금의 영감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그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일이요?”
“제 발로 영감을 따라 온 것입니다. 죄를 묻는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허묵은 더욱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숯 굽는 영감의 마누라가 지체 높은 선비의 꾐에 빠져 영감을 버리고 야반도주를 했다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지만,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호의호식하며 잘 살던 반가(班家)의 아녀자가 자기를 사랑하는 남편을 버리고 도주하여 신분이 낮은 숯 굽는 영감과 살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부인도 자기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납득을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집을 나오던 날 밤, 저는 분명히 잠을 자기 위해 이부자리 속에 들었습니다. 그때 창문을 통해‘숯 사시오'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숯 사라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내가 언젠가 많이 들었던 목소리 같았고, 나를 밖으로 불러내는 목소리 같았습니다. 나는 지남철에 이끌리듯 밖으로 나와 숯장사를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이끌려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이곳에 당도하자 마치 전에 살았던 곳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곳에서 비록 굳은 일을하며 구차하게 살고 있지만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평온하며 행복했습니다.”
허묵은 당시의 법도에 따라 자기를 배반한 아내에게 벌을 내려야 마땅하겠지만 차마 아내를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이곳에 살지 말고 백리 밖으로 거처를 옮기시오. 이곳에 계속 있다면 남의 눈 때문에라도 나는 당신에게 벌을 줄 수밖에 없게 되니까요.”
말을 마친 허묵은 돌아섰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천근 무쇠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습니다. 사랑하던 아내가 자신을 배반했는데, 여전히 아내도 자신도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산마루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자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정녕 무엇 때문에 아내는 자신을 배신했던 것일까?’그는 점점 깊숙이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을 잊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도달하여 일순간에 깨칠 수 있었습니다.
깨닫고 보니 아내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자신은 전생에 선객(禪客)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탁발승이 되어 떠돌다가 바로 자기가 지금 앉아 있는 산마루의 바위에 앉아 쉬어 간 적이 있었습니다. 바위에 앉아 있으니, 이 한 마리가 스물거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는 이를 손으로 집어내었습니다. 스님이어서 차마 이를 죽일 수가 없어서 바위 위에 버리고 다시 길을 떠나갔습니다. 내버려진 이는 마침 이곳에서 머물다 간 산돼지의 몸에 붙어 생명을 연장했습니다.
이는 참선을 한 스님의 살을 뜯어먹은 인연으로 사람으로 환생하여 그 살을 뜯어먹은 세월만큼을 전생의 스님이었던 현생의 재상과 결혼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선객이 이를 버렸으므로 지금의 아내도 재상을 버리고, 산돼지가 환생한 숯 굽는 영감에게로 이끌려와 살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가 사람이 되다니...? 이 말을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사람과 쇠파리의 유전자(DAN)를 조사해 보니 84%가 닮아 있었다고 하며, 침팬지와 사람은 98%가 동일하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實有佛性)-일체 중생이 다 부처님의 씨앗, 부처님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나 미물이나 본래 마음자리는 한가지라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마음이 얼마나 깨어 있느냐 무명에 가려 있는냐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쥐가 왜 쥐약을 먹느냐? 어리석기 때문에 지 죽을 줄 모르고 쥐약을 먹는 것입니다. 고기가 왜 낚시밥을 덥석 무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동물이 비하여 지혜(지능)롭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천태지의 대사는 “한마음을 깨달은 이가 부처이고, 한마음 착한 마음을 낸 이가 사람이며, 한마음 투쟁한 마음을 낸 이가 아수라이고 한마음 어리석은 이가 축생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얼른 이해가 안되겠지만 깊이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윤회의 과학적 증명
그런데 근대에 와서 과학문명만이 아니라 정신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영혼이 있다는 것이, 윤회가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인과가 분명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윤회한다는 것이 오늘날에 와서 과학적으로 증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첫째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는 대개 두서너 살 되는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나는데, 아이들이 말을 배우면서 전생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곧“나는 어느 곳에 살던 누구인데, 이러이러한 생활을 했다."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을 따라서 조사를 해보면 모두 사실과 맞다는 것입니다.
흔히 천재니 신동이니 생이지지(生而知之, 태어날 때부터 아는 것)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태어난 뒤로 한 번도 글을 배운 일이 없는데 글자를 다 아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이지지라고 합니다.
1993년(벌써 한 20여년이 지났네요), 4월16일 아침 8시 MBC TV에 부산에 사는 13살 된 정연득이란 아이가 출연하여, 일어로 물으면 일어로 대답하고, 영어로 물으면 영어로 대답하고, 중국어 러시아어 불란서어로 물으면 중국어 러시아어 불란서어로 대답하는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 아나운서가“누구한테 배웠느냐?"고 물으니“아무한테도 배운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한국에 태어나기 전에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1968년 일본에서 개최한 동경올림픽경기를 직접 참관하였다고 하며, 그때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사실과 똑 같았습니다. 그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내 눈으로 직접 보았는데, 그때 그걸 보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때 TV에서 본 정연득군의 얼굴색은 마치 병자처럼 노랗게 보였고, 몸이 허약하여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가 중퇴하였다고 했는데(5개 국어를 하는데, 학교에 다닐 필요도 없겠지만), 금년 봄에 정연득이 TV에 또 한 번 출연 하였습니다. 정연군은 이제 어엿한 30대 중반의 모습이었고, 몸이 뚱뚱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지금 대구에서 살고 있는데, 텔레비전에 나온 이후 기자들이 하도 찾아 와서 숨어 지냈다고 하며, 이제는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몇 년 전 KBS 방송에 경북 안동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생인 여자아이가 출연하여 피아노를 치는데, 아나운서가“피아노 누구한테 배웠어요?”하고 물으니“그냥쳐요."라고 답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연득 군이나, 안동에 사는 여자 아이는 배우지 않고 알고 있으니, 다 전생의 기억(전생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있으면 말해 보세요?.
이러한 전생기억에 대해 누구보다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이안 스티븐슨 교수입니다. 이안 스티븐슨 교수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서 사실을 조사하고 확인하거나 다른 학자들을 보내어 조사토록 했는데, 1973년까지 2,000여건의 전생기억을 가진 사례를 조사하여 학계에 보고하고, 그중 대표적인 사례를 뽑아서「윤회를 나타내는 20가지 사례」라는 책으로 출판하였는데, 어떤 사람이든 반대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두 번째, 차시환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내 몸뚱이는 아주 죽어 버리고, 남의 송장을 의지해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입니다. 1916년 2월26일자 중국 신주일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중국 산동성에 최천선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무식한 석공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서른 두 살 되든 해에 그만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죽은 뒤 3일 후에 장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관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부랴부랴 곽을 열고 보니 죽은 사람이 살아나 멀뚱멀뚱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우리 아빠가 살았다."
“아이구 여보.
그 부모, 자식, 부인들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식구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라고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죽었다가 깨어나더니 정신착란이 되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수일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에 기운을 차리고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식구들을 못 알아보고, 또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주위에 붓과 벼루가 있는 것을 보더니 종위 위에 글을 쓰는데, 본시 최천선이라는 사람은 일자 무식꾼인데 글을 아주 잘 쓰는 것입니다. 그 글의 내용인 즉‘자기는 월남에 사는 유건중이라는 사람인데, 병이 들어서 치료하기 위해 어머니가 땀을 낸다고 두꺼운 이불을 씌워 땀을 내다가 그만 꼬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여기 이렇게 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월남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한자문화권으로, 말은 다르지만 한자를 쓰면 통합니다.
월남 사는 유건중의 육신은 죽어버리고 혼만 중국 산동성에 사는 최천선의 몸을 빌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가 기력을 완전히 회복한 후 중국말을 조금씩 가르쳐서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자꾸 전생에 살던 곳으로 갈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꾸 소문이 나서 중국 북경대학에서 데리고 가서 정신감정을 해 보았는데, 정신은 조금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한 월남에 유건중이라는 사람이 살다가 죽었는지 조회를 해보니 모두 다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참으로 희귀한 일이라 하여 중국 정부에서 이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연금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최면을 걸어 전생을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분야에 유명한 사람은 영국의 케논 박사입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에서도 몇 년 전에 연예인을 대상으로 최면을 걸어 전생을 알아보는 프로를 방영한 일이 있었는데, 가령 스무 살이 되는 사람을 최면을 걸어서 열 살 때로 돌아가면 그때의 말이나 행동을 하며, 세 살 때로 돌아가면 세 살 먹은 어린 아이의 말과 행동을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50년 전에 어디 있었느냐고 최면을 걸면 성명이나 주소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고 맙니다. 그것을 조사하여 사실과 맞춰보면 모두 일치하는 것입니다.
케논은 1,382명에 대한 전생사례를 수집하여 학계에 보고하고, 1952년에「인간의 잠재력」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는데,「케논 보고서」에 의하면 환자를 아무리 치료해도 병이 낫지 않아 최면을 걸어 전생회귀(前生回歸)를 해 보니, 그 병이 전생에서 넘어 온 것을 알고, 그 전생의 발병원인에 의거해서 치료하여, 병을 고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전생요법인데, 이 전생요법은 요즘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전생투시(前生透視, 불교에서 말하는 숙명통과 유사함)를 통하여 전생을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분야에 유명한 사람은 미국의 에드가 케이시인데, 에드가 케이시는 사람을 딱보면-사진만 보아도-전생을 알아내는 사람이어서, 사람들은 그를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라하여 기적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드가 케이시는 2,500명의 전생을 조사하여「초능력의 비밀」.「윤회의 비밀」이란 책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번역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책입니다.
그러면 죽은 뒤에 다음 생이 있고, 윤회를 한다고 할 때 어떤 법칙에 의해서 윤회를 하는가? 내가 내 마음대로 천당을 가고 지옥을 가고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는가? 에드가 케이시의 보고서에 의거해서 살펴보아도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내가 지은대로 받는다는 인과법칙(因果法則)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내가 아주 오래 전에 학생회 법회에 가서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한 학생이 일어나서“방금 법사님께서는 윤회를 말씀을 하셨는데, 윤회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왜 윤회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라고 물으니까, 그 학생이“죽고 나면 끝이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내 마음대로 하겠는데, 내생이 있고 인과가 있다고 하니 겁이 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윤회도 없고, 인과도 없으면 저도 좋겠습니다. 그러나 윤회가 있고, 인과가 있다니 어떻게 합니까? 이는 마치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해를,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지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사에 자유자재한 스님들
이와 같이 우리 중생들은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끝없이 나고 죽고, 나고 죽는 생사윤회를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견성성불(見性成佛)한 이에게 죽음은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이요, 번뇌의 적멸이며, 법신(法身)의 탄생입니다.
근대 한국불교를 새롭게 일으킨 스님으로 방한암 스님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그 스님이 나이 겨우 일곱 살에 시골 서당에서 사략(史略)을 알고 있었습니다.
“태고(太古)에 천황씨(天皇氏)가 있었다.”첫 대목을 읽던 소년은 선생님을 향하여 물었습니다.
“태고에 천황씨가 있었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천황씨 이전에는 누가 있었습니까?”당돌한 물음에 선생은 당황했습니다.
“그렇지, 천황씨 이전에는 반고씨가 있었지.”소년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반고씨 이전에는 누가 있었습니까?”스승은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학의 어느 경전에도 그에 대한 해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암스님은 어릴 때부터 우주와 인간의 근원에 대해서 이렇게 회의하였으며, 어떤 것이든 해답을 얻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였습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22세 되든 해, 금강산에 있는 유점사에 찾아 들어가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경북 성주 수도암에서 한국불교의 중흥조라 일컬어지는 경허화상을 만나 가르침을 청하였는데, 화상은 금강경에 있는 한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니
제상 비상(諸相 非相)- 만약 형상있는 것에서 형상없는 것을 알면
즉견여래(卽見如來)-곧 부처를 보리라.
한암은 이 구절을 듣자 안광이 홀연이 열리면서 한 눈에 우주전체가 환히 들여다 보였습니다. 그리고 듣는 것이나 보는 것이 모두 자신이 아님이 없었습니다. 아홉살 때 서당에서 처음 가진 회의-반고 이전에 누가 있었느냐?-는 비로소 아침 안개 걷히듯이 풀렸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24세, 입산하여 3년째 되는 가을이었습니다.
도를 깨달은 한암스님은 바람따라 구름따라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인연있는 스님과 중생들을 제도하다가 50세 되든 해, 오대산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27년 동안 그는 동구 밖에 나오지 않은 채 76세의 나이로 일생을 거기서 마쳤습니다. 그는 오대산에 처음 들어올 때 소지했던 단풍나무 지팡이를 중대(中臺) 뜰앞에 꽃았습니다. 일영(日影, 해그림자)를 재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꽃인 자리에 잎사귀가 돋아 나와서 하나의 훌륭한 정자나무가 되었습니다. 지금 오대산 중대 앞에 서 있는 정자나무가 바로 스님의 지팡이였다고 합니다.
영주 부석사에는 의상대사가 꽃았다는 지팡이가 살아 있고, 순천 송광사에는 보조국사가 꽃았다는 지팡이가 살아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신라 고승과 고려 국사의 지팡이와 오대산 중대에 서 있는 지팡이나무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오대산하면 방한암 스님, 방한암하면 오대산이라고 할 만큼 오대산고 방한암 사이에는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대산에 있는 사찰과 암자와 적멸보궁의 주변에는 한암의 면목을 전하여 주는 이야기가 많이 숨어있습니다.
1.4후퇴 때였습니다. 오대산 내의 모든 승려는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한암만은 시자 두 세명과 함께 상원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1.4후퇴 직전 월정사와 상원사를 포함한 오대산 내의 모든 사암과 민가들이 우리 국군의 작전상 소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적군이 머무를 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밤에 대원들을 이끌고 찾아온 장교는 절을 소각한다고 알렸습니다. 한암은 기다리라고 이르고 방에 들어가 가사와 장삼으로 갈아입고 나와, 법당으로 들어가 불상 앞에 정좌하고 난 뒤 합장하며, 장교에게 이제 불을 질러도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장교는 놀라면서“스님 이러시면 어떡합니까?"라고 말하자, 한암은“나는 부처님의 제자요, 부처님은 이런 경우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소. 당신은 어서 불을 지르시오."라며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그 장교는 한암의 인격과 거룩한 모습에 압도되고 감동 되어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부하에게 명령하여 법당의 문짝만을 떼어내 마당에서 불사르게 하고는 그대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로 인해 상원사는 소실을 면했고 가장 오래된 동종인 국보 36호인 상원사 동종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1.4후퇴로 모두 피난을 떠난 지 두 달쯤 지나 1951년 3월 초 한암은 가벼운 병에 걸렸습니다. 병이 난 지 7일이 되는 날 아침,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을 마시고는 손가락을 꼽으며“오늘이 음력으로 2월 14일이지."라고 말한 후 사시(오전 10시) 에 이르러 가사와 장삼을 찾아서 입고 선상(禪床)에 단정히 앉아서 태연한 자세를 갖추고 입적하였습니다.
옛날부터 득도한 분들이 모두 생사에 자재(自在)함은 그 경지가 이미 생사를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3조 승찬대사는 법회를 마치고 방에서 쉬다가 떠날 때가 됐음을 알고 바깥으로 나서 뜰을 거닐다가 나뭇가지를 잡은 채 임종했습니다. 경통은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앉자 불을 붙이고 소신(燒身)공양을 했습니다. 당나라 등은봉 선사는 어느 날 제자에게“내가 앉아서 돌아가신 스님은 많이 보았다.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더냐?”하고 물었습니다. 제자가“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그러면 거꾸로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더냐?”하고 되물었습니다. 제자가“그런 스님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하고 대답하자“그르면 나는 거꾸로 서서 입적해야겠다.”라고 하면서 물구나무서기 한 채로 입적했습니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스님은 법상에 올라가 백문백답(제자들이 의심나는 것을 묻고 스님께서 대답을 하시고)을 마친 뒤“나 그만 갈란다."고 하시며 열반하셨습니다. 20여년 전에 돌아가신 성철스님을 화장을 하니 사리가 130여과가 나왔을 뿐만 아니라, 화장하던 날, 한 밤중에 성철스님이 머무르고 계시던 백련암에는 오색 무지개가 일곱 번이나 나타나, 당시 여성동아 등 잡지에서 특집으로 보도된 바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아직까지 괴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는 백양사 방장 서옹스님이 가부좌한 채 열반에 든 모습이 메스콤을 통해 공개되어 세인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죽음이 범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공포와 괴로움이 되고 있으나 보조국사나 한안선사같이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서는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못합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만나더라도 밤이 잠이 들듯 아주 태연하게 죽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일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큰일을 많이 겪게 됩니다. 중학교는 추첨으로 들어가니까 복불복(福不福)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고등학교부터는 시험을 치러 들어가기 때문에 일류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큰일이고, 또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큰일이며,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도 큰일이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 것도 큰일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나고 죽는 일을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라고 하여 제일 큰 일로 치고 있습니다. 죽는 일이 큰일이란 것은 이해가 가지만, 태어나는 일이 큰일이란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큰일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열반경에서 사람의 몸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맹귀우목(盲龜遇木)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맹귀우목이란 목숨을 헤아릴 수 없으리만치 오래 산 눈 먼 거북이가 바다 한 가운데 살고 있는데, 이 거북이는 백년마다 한 번씩 바다 위에 목을 내 민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다 위에는 구멍 하나만 뚫린 나무 한토막 하나가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떠다니다가 마침 눈먼 거북이가 바다 위로 목을 쑥 내밀 때, 거북기가 그 구멍으로 머리를 뚫고 머리를 내 미는 것처럼, 사람 몸 받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의학적으로도 3억개의 정자 중 단 하나만의 정자만이 난자를 만나 자궁에 들어 사람이 되고, 나머지는 다 자궁 밖에서 죽어 버린다고 하니 사람 몸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 수 있습니다. 여기 모이신 모든 분들 모두, 3억 대 1의 경쟁을 뚫고 이 세상에 나왔으니 다들 장한 분들이십니다.
제가 어떤 강연회에 갔더니 강사가“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부모님의 실수때문"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그 사람은 웃으개 소리로 한 말인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불교적으로 볼 때 내가 태어난 것은 부모님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부모님과 지중한 인연이 이 있어서 정자와 난자가 결합할 때, 빛보다도 더 빠른 내 마음이 그 속에 들어가서-이것을 불교적인 용어로 탁퇴라고 하는데-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는 결혼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안 생겨, 남편이나 아내 중 어느 한 쪽에 문제가 있는가 싶어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았더니, 둘 다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대도 임신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식이 될 인연이 없어서 그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요즈음 자식들 중에 부모를 잘못 만나서 자기가 고생한다고 부모를 원망하는 자식들이 많이 있는데, 자기가 부모를 선택해서 이 세상에 나와 놓고 누구를 원망한단 말입니까?(이 강의를 젊은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데). 부모를 원망하는 것은 불교를 몰라서, 아니 생명탄생의 원리를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 몸 받기도 어렵거니와, 사람 몸 받았어도 온전한 몸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온전한 몸으로 태어나도 잘 사는 나라(부잣집)에 태어나기 어렵다고 했는데, 다행히 우리는 건강한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아프리카 우간다나 북한 같은 나라에는 태어나지 않고(이들 나라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났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이때(인간의 몸을 받았을 때) 이 몸을 제도하지 않으면 또 어느 때를 기약하겠습니까? 다시는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계에 태어나거나 인간의 몸을 받으려면, 노느니 염불한다는 옛 말이 있듯이 염불도 많이 하고 참선도 많이 하고 선근공덕을 많이 지어야 하겠습니다.
(20002년 3월28일 경주교도소 재소자 법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