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은 왜 지속되며, 근절 방안은 무엇인가?
● A 프로구단의 농구 감독이 선수를 때리고 고막을 터트린 사건이 일어나 감독을 제명하기로 결정했다.(2000년)
● B 초등학교 씨름부 감독이 자신이 지도하는 씨름부원 11명에게 운동장 20바퀴를 돌도록 했는데 김 모 군이 뒤쳐지자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 실신했으며, 병원으로 후송하지 않고 운동장 내 숙소에 5시간 가량 방치하다 병원으로 옮겼는데 김 모 군은 숨졌다.(2001년)
● C 프로야구단의 감독이 선수의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구타하여 여섯 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2004년)
● 중국의 포털 사이트 시나는‘한국 청소년 축구 선수가 몽둥이 아래서 죽도록 시달리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고교 팀의 구타 사실을 보도했다. 전지훈련 중인 D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에 관한 보도였고, 한국 네티즌의 항의가 빗발쳤다.(2003년)
● E 여고 농구부 코치가 이 학교 이 모 양을 손바닥과 대걸레 자루 등으로 마구 폭행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이 코치는 선수를 학교 체육관에 모이게 한 뒤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발로 차는 등 폭행했다.(2004년)
● 국가대표 쇼트트랙 선수가 코치의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선수촌을 집단 이탈한 사건이 일어났다. 여자선수 6명은 그동안 코칭스태프의 반복되는 구타와 언어폭력, 사생활에 대한 감시와 통제에 시달려왔다고 밝혔다. 하루도 매를 맞지 않고 운동한 날이 없었고, 훈련장에서는 물론이고 국제대회가 열리는 외국에서도 구타는 끊이지 않았다.(2004년)
위의 내용은 2000년 이후 언론에 발표된 대표적인 운동선수 체벌 사례이다. 이런 기사를 접하고 나면 우리나라 운동선수와 스포츠 지도자는 죄다 폭력적인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체벌이 아니면 스포츠 교육이 되지 않는 것인지, “역시 운동하는 사람은 무식해”라는 원색적인 욕을 들어가면서 폭력이라고 할 만한 이런 체벌이 왜 근절되지 않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지도자가 선수에게 체벌을 사용하는 이유는 당장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가장 빠른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 효과가 오래 가지는 않을지라도 욕을 얻어먹거나 몇 대만 맞고 나면 그 이전과 눈빛이나 행동이 달라진다는 걸 많은 지도자가 경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도자는 선수가 훈련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거나, 시합 성적이 부진했을 때, 선수의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운동부 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규율 및 규칙을 어길 경우 체벌하게 되고, 체벌이 신속한 행동교정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또한 우리의‘왜곡된 성적 지상주의’가 체벌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전에 비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1등, 금메달, 우승에 목을 맨다. 경기에 나가 이기는 선수는 모든 것이 용서되고, 경기에 지고나면 어제의 영웅이었던 선수도 하루아침에 지탄의 대상이 된다. 스포츠의 특성상 나라 간의 경쟁이 많은데, 이럴 땐 상황이 더욱 심각해서 경기(특히 축구 한일전)에 지고나면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라도 된 듯 죄인취급을 당하는 수도 있다. 좁은 나라에서 경쟁하면서 살다 보니 우리 사회는 패자를 기억할 만큼 너그럽지 않은 듯하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를 천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해서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전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지도자의 고용 불안’이 보태어져 체벌은 더 심각한 사태를 띤다. 많은 지도자가 계약직으로 채용되어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는 부담감을 갖고 있으며, 메달을 못 따면 해고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계약직 지도자에게는 자신의 소신대로 선수를 가르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선수들을 밀어붙여야 하고,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 선수는 때려서라도 훈련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도자의 체벌이 근절되지 않는 정말 중요한 이유는 그들 역시 맞으면서 운동을 배웠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 용어로‘병적 동일시(pathologic identification)’라고 하는 것인데, ‘며느리 늙어 시어미 된다’는 옛 속담처럼 나는 나중에 저러지 말아야지 라고 결심하지만 자신이 경험한 방식 외에는 알 수가 없으므로 이전에 자신이 윗사람에게 대우받은 그대로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자신이 운동을 배우는 동안 체벌을 많이 당한 지도자일수록 더 많이 체벌을 가한다는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 선수는 자신의 지도자를 모델링함으로써 체벌을 배운다. 선수는 많은 시간을 지도자와 함께 생활하면서 은연중에 지도자의 행동을 흉내내며, 지도자가 체벌하는 것을 본 선수는 체벌이 허용되는 행동으로 믿는다. 이런‘병적 동일시’의 과정을 통해 체벌을 받으며 운동한 선수는 후배에게 체벌을 가하는 선배 선수가 되고, 나중에는 체벌을 가하는 지도자로 성장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앞서 다룬 글(10월호)에서 밝혔듯이 스포츠 교육 현장의 무자비한 체벌은 사실 기대하는 것만큼의 효과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체벌은 진행 중이다. 어떻게 체벌을 줄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체벌을 없앨 수 있을까?
개선 방안으로 그 첫째는 구타에 대해 공개하고, 체벌이 심한 지도자에 대해서 보다 강한 제재를 가하여야 한다. 실제 지도자는 자신이 선수를 구타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교육적 목표를 가지고 구타했다고 생각하더라도 객관적인 모습(CCTV 촬영모습 등)을 보고 나면 자신이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였음을 알 것이고, 결코‘사랑의 매’가 아니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체벌의 강도가 강한 지도자일수록 선수를 다루는데 있어 능력이 부족하며, 점차 그 체벌의 강도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삼진 아웃제와 같이 체벌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지도자는 교육 현장에서 추방하는 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둘째, 정기적인 지도자 교육을 통해 체벌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실제 연구에 대해 알려주어야 하며, 체벌을 대신 할 수 있는 훈육 방법을 학습하여야 한다. 기존의 교육방법이 잘못되었다면 바람직한 대처방안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나는‘바담 풍’해도 너희는‘바람 풍’하라는 교육은 실효성이 없다. ‘바람 풍’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선생이 있어야만‘바람 풍’을 제대로 하는 학생이 있는 것이다. 칭찬과 체벌, 정적 강화와 부적 강화, 학습과 소거와 같은 학습이론에 대한 이해와 이론 적용에 뛰어난 강사를 초빙하여 지도자를 교육하도록 하라. 지도자가 알아야 할 것은 테크닉만이 아니다.
또한 지도자의 고용불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많은 스포츠 지도자가 1년 계약으로 선수를 지도하고 있다. 팀의 성적에 따라 다음해 계약을 연장하거나 해지하다보니, 성적만을 강조하고 빠른 성적 향상을 위해 무리한 체벌도 감행하는 것이다. 계약직을 줄이고 정규직 지도자로 교체하거나, 계약직이라 하더라도 보다 장기적인 계약을 체결하는 방안을 각 스포츠협회 차원에서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즐기면서 운동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뻔한 얘기지만 운동이든 공부든 자발적으로 할 때 오래 갈 수 있다. 따라서 선수도 책과 신문을 읽으면서 스스로‘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선수는‘나는 꼭 맞아야만 정신을 차리는 사람인가?’자문해보고 답을 찾아보도록 하라.
기본적으로 스포츠는 인간을 즐겁게 하는 활동이다. 남들보다 스포츠를 하는데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은 대표 선수로 뽑혀 시합에 참여하면 되고, 재능은 없지만 스포츠가 좋다면 취미로 즐기면 되고, 이도 저도 아니면 남들하는 것 구경만 해도 되고. 그 어디에도 체벌이 필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글∙장덕민 교수
천안 그린필재활병원 신경과 과장, 나사렛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박사수료, 임상심리학
※ 본 자료는 대한축구협회에서 발간하는 <KFA 리포트> 2008년 11월 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스크랩 시 댓글을 남겨주시고, 자료의 무단 복제 및 재배포는 삼가해 주시기바랍니다. - 맹활약사진관(www.mengpho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