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경(無量壽經)
펴낸곳-佛敎書院 譯-釋淸華
차 례
제1장 서분(序分) 제1절 경문의 증명 제2절 설법의 인연
제2장 정종분(正宗分) 제1절 극락정토를 세운 원인 1. 법장비구의 사십팔원 2. 영겁(永劫)의 수행 제2절 미타성불과 극락정토의 장엄 제3절 극락세계 왕생의 인행(因行) 제4절 극락세계 왕생의 과보(果報) 제5절 부처님의 권유와 경계(勸誡) 1. 삼독(三毒)을 경계함 2. 탐욕(貪慾)의 고통 3. 진심(瞋心)의 고통 4. 우치(愚痴)의 고통 제6절 미륵보살과 여러 대중에게 권유 1. 오악(五惡)을 경계함 2. 첫째의 죄악 3. 둘째의 죄악 4. 셋째의 죄악 5. 넷째의 죄악 6. 다섯째의 죄악 제7절 부처님의 거듭 권유 제8절 이 세상에 나투신 증명 제9절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보살들
제3장 유통분(流通分) 제1절 유통을 부촉 제2절 법문의 공덕 제3절 신묘한 상서와 대중의 환희
--------------------------------------------------------------------------------------------------------------------------
제1장 서분(序分)
제1절 경문의 증명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갈타국의 왕사성 근처의 기사굴산 중에 계셨는데 덕망이 높은 비구들 1만 2천 명이 함께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들은 이미 신통지혜가 통달한 대성인들로서, 그 이름은 요본제존자, 전원존자, 정어존자, 대호존자, 인현존자, 이구존자, 명문존자, 선실존자, 구족존자, 나제가섭존자, 마하가섭존자, 사리불존자, 대목건련존자, 겁빈나존자, 대주존자, 대정지존자, 마하주나존자, 만원자존자, 이장존자, 유관존자, 견복존자, 면왕존자, 이승존자, 인성존자, 가락존자, 선래존자, 라운존자, 아난존자 등 모두 이와 같은 뛰어난 제자들이었다. 또한 대승의 여러 보살들도 함께 있었는데, 보현보살, 묘덕보살, 자씨보살 등 현겁(賢劫) 중의 일체 보살들과, 16보살인 현호보살, 선사의보살, 신혜보살, 공무보살, 신통화보살, 광영보살, 혜상보살, 적근보살, 원혜보살, 향상보살, 보영보살, 중주보살, 제행보살, 해탈보살 등 다 위대한 성인들이었다. 그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보현보살의 덕을 좇아서 모든 보살의 서원과 수행을 갖추고, 일체의 공덕법에 머물러 시방세계에 노닐며 중생을 위하여 갖은 방편을 베푼다. 그리고 불법을 깊이 통달하여 영원한 피안을 밝히고, 무량한 세계에 나투어서 등각(等覺)을 성취한다. 그 보살들이 등각을 성취하는 인연을 밝힌다면, 먼저 도솔천에서 정법(正法)을 널리 베풀다가 그 천상을 버리고 왕궁에 내려와 어머니의 모태(母胎)에 강신(降神)한다. 그래서 달이 차면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나 사방으로 칠보를 걸을 때, 광명이 찬란하여 시방세계의 불국토를 두루 비추니 천지는 여섯 가지로 진동한다. 그때 스스로 소리 높여 “나는 마땅히 세상에서 위없는 성인이 되리라.”고 외치면 제석천과 범천이 받들어 모시고 모든 천인들도 다 우러러 받든다. 장성(長成)함에 따라 수리(數理)와 문학과 활쏘기와 말 타기 등을 익히며, 널리 신선의 도술에 달하고 모든 학문에도 통달한다. 또한 후원에 노닐 때는 무예를 수련하며, 궁중에 있을 때는 세속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가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을 보고는 세상의 무상함을 깨달아 왕위를 버리고 산에 들어가 도(道)를 배우기로 작정한다. 그래서 백마(白馬)를 타고 왕궁으로 빠져나와 출가한다. 그리고 보배관과 영락 목걸이를 돌려보내고는 화려한 옷을 허술한 법복으로 갈아입고, 머리와 수염을 깎는다. 그리하여 보리수 그늘 아래 단정히 앉아 6년간의 괴롭고 처절한 수행을 정법(正法)에 따라 감행한다. 이렇듯 오탁(五濁)의 국토에 태어나서 중생의 인연에 따르므로, 먼지와 때가 끼어 시냇물에 목욕하고 천인(天人)이 드리운 나뭇가지를 더위잡고 강 언덕에 올라오면, 그 때 아름다운 새들은 보리수 아래 도량(度場)에까지 따라 나서고, 길상동자가 성불의 상서(祥瑞)를 의미하는 길상초(吉祥草)를 바치자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를 받아 보리수 밑에 깔고 단정히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깊은 삼매(三昧)에 잠긴다. 그리하여 대광명을 떨치니 마왕이 이를 알고 놀라서 곧 권속을 거느리고 와서 핍박하고 시험한다. 그러자 지혜의 위력으로 이를 모조리 항복받고 깊고 미묘한 법을 얻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고 마침내 부처님이 되신다. 그때 제석천과 범천이 와서 정법(正法)을 전하기를 청하여 빌면 부처님은 자재로이 유행(流行)하사 사자후의 설법을 하신다. 그래서 법(法, 진리)의 북을 치고 법의 소라를 불며 법의 칼을 휘두르고 법의 깃대를 세우며 법의 우레를 떨치고 법의 번개를 번뜩이며 법의 비를 내리고 법의 보시를 베푸는 등 한결같이 오직 법음(法音, 진리의 소리)으로써 모든 세계를 깨우치신다. 그 광명은 무량한 불국토를 두루 비추니 온 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모든 마(魔)의 세계는 그 궁전이 동요하여 마군의 무리들은 겁내고 두려워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삿된 법을 쳐부수어 없애고 망령된 소견을 소멸하여 번뇌의 티끌을 털어버리며, 탐욕의 구렁을 허물어 엄정한 정법을 지키고 불법을 빛내며, 더러움을 씻고 청백(淸白)한 불법의 광명으로 진정한 교화를 베푸신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 들어가서 걸식하실 제, 가지가지의 풍요한 공양을 받으시어 그들이 공덕을 짓고 복을 받도록 하시며, 법을 베풀고자 하실 때는 인자하신 미소를 나투시어 모든 법의 약으로써 중생의 삼고(三苦)를 구제하사 무량공덕의 도심(道心)을 나타내게 하시고, 그들에게 장차 성불하리라는 대승의 수기(授記)를 주시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케 하신다. 그리하여 멸도(滅度, 죽음)를 나투어 보이시나 부처님의 실상인 법신(法身)은 영생하여 중생을 제도함에 제한이 없으시니 그들에게 온갖 선근(善根)을 심게 하사 미묘하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갖추게 하신다. 이와 같이 모든 불국토에 노니시어 두루 불사(佛事)를 베푸시나 행하시는 대행(大行)이 원만하고 청정하사 막히고 걸림이 없으시니, 비유하면 마치 능란한 요술사가 마음대로 갖가지 형상을 나타내어 혹은 남자로 혹은 여자로 자재로이 변현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여기 모인 여러 보살들도 또한 위에 말한 바, 보현보살의 거룩한 공덕과 같아서 일체 모든 법을 다 배우고 통달하여 매양 마음이 평온하고 무수한 불국토에 몸을 나투어 중생을 교화하되 여태껏 교만하고 방자하지 않았으며, 못내 중생을 가엾고 불쌍하게 생각하여 마지않는다. 이와 같이 보살들은 온갖 공덕을 다 갖추었으며, 또한 대승경전의 묘법을 밝히고 그 명망은 시방세계에 두루 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니 헤아릴 수 없는 여러 부처님이 그들을 기억하여 보호하신다. 또한 이 보살들은 부처님이 지니신 공덕을 이미 갖추었으며, 대성인들이 행한 바를 모두 실행하고, 부처님의 교화를 능히 선양하여 다른 보살들을 위한 큰 스승이 되고, 깊은 선정과 지혜로써 중생을 인도하며, 모든 법의 체성에 통달하여 일체 중생의 사정과 모든 국토의 형세를 분명히 알고 있다. 그리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할 때, 그 몸을 나투기를 번개와 같이 하고, 능히 두려움이 없는 일체 지혜를 배워서 인연법을 깨달아 집착이 없으며, 사마외도와 번뇌를 무너뜨리고 성문 연각 등의 낮은 경계를 초월하여 공(空), 무상(無常), 무원(無願)의 삼매를 성취하였다. 그래서 능히 방편을 세워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3승법(三乘法)을 구별하여 밝히고, 성문, 연각, 이승(二乘)인 중(中) 하(下)의 경계에 따라 멸도(滅度, 죽음)를 보이나, 본래 지은 바도 없고 얻은 바도 없으며 일어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평등의 진리를 얻었으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신통지혜와 백천가지의 수많은 삼매와, 중생의 근기를 살피는 지혜를 다 갖추어 성취하였다. 그리고 법계를 두루 관찰하는 깊은 선정으로 보살의 대승 법문을 통달하여 부처님의 화엄삼매를 얻고, 능히 일체의 경전을 연설하고 선양한다. 또한 매양 깊은 선정에 머물러 무량한 모든 부처님을 친견함이 다만 한 생각 동안에 두루 다하지 않음이 없다. 또한 지옥, 아귀, 축생이 삼악도에서 수고하는 중생이나 또는 수행할 틈이 있는 이나 틈이 없는 이의 근기를 따라 진실한 도리를 분별하여 가르치며 모든 부처님의 변재지혜(辯才智慧)를 얻고 일체 언어에 통달하여 무량 중생을 교화한다. 또한 세상의 모든 번뇌를 초월하고 마음은 항상 해탈의 도리에 안주하여 일체 만사에 자유자재하며 모든 중생을 위하여 불청우(不請友)를 보존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며, 또한 대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자비한 변재로 올바른 지혜를 가르치며, 지옥과 아귀와 축생 등 삼악도(三惡道)의 길을 막고 아수라와 인간과 천상 등 삼선도(三善道)의 길을 연다. 그리하여 중생이 청하지 아니하건만 불법으로써 모든 중생에게 베푸는 것이 마치 지극한 효자가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함과 같다. 그리고 모든 중생을 자기와 한 가지로 여기며, 일체의 선근을 심게 하여 모두 다 영생의 피안에 이르게 한다. 이렇듯 모든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갖추고 지혜는 거룩하고 밝아서 그 불가사의한 위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다. 이와 같이 지혜와 복덕이 원만한 수많은 보살들이 일시에 와서 모이게 되었다.
제2절 설법의 인연
그때 부처님께서는 온몸에 기쁨이 넘치시고 기색이 청정하시어 빛나는 얼굴은 거룩하고 엄숙하셨다. 아난은 부처님의 거룩하신 깊은 뜻을 짐작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 무릎을 꿇고 합장 공경하여 부처님께 사뢰었다. “오늘 세존께서는 온몸에 기쁨이 넘치시고 기색이 청정하시며 빛나는 얼굴이 거룩하고 엄숙하심이 마치 맑은 수정이 투명함과 같사오며, 한없이 위엄이 넘치시고 빛나시온데, 저는 일찍이 지금과 같이 신묘하신 모습을 뵈옵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하옵건대 세존(世尊)이시여, 온 세계의 어른이시고 세계의 영웅이시며, 또한 세계의 안목이시고 세계의 지혜이신 세존께서는 오늘 위없는 법에 머무르시고, 모든 부처님의 경계에 머무르시며, 또한 대도사(大導師)의 대행(大行)에 머무르시고, 가장 수승한 도(道)에 머무르시며, 모든 여래(如來)의 덕을 행하심을 뵈올 수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은 서로 상통한다 하시는데, 오늘 세존께서도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왜냐하면 위엄이 넘치시고 신비하신 광명이 이렇듯 희유(稀有)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어찌된 셈이냐? 아난아, 모든 천신들이 너를 가르쳐서 네가 묻는지, 또는 네 스스로의 지혜로써 묻는 것이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기를 “천신들이 제게 와서 가르친 것이 아니옵고 제 소견으로써 여쭐 뿐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도다. 아난아, 참으로 기특한 질문이니라. 너의 깊은 지혜와 묘한 변재로써 중생을 불쌍히 여겨 이러한 지혜로운 질문을 하는구나. 여래(如來)는 언제나 최상의 대자대비(大慈大悲)로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를 가엾이 여기는 것이니,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는 까닭은 진정한 가르침을 널리 밝혀서 중생을 건지고 진실한 이익을 베풀고자 함이니라. 무량억겁의 세월을 두고 여래(부처님)를 만나보기 어려움이 마치 우담바라 꽃이 3천년 만에 한번 피는 것과 같으니라. 이제 그대가 묻는 바는 모든 천상과 중생들을 크게 이익 되게 할 것이니라. 아난아, 분명히 알아라. 여래의 바른 깨달음은 그 지혜가 헤아릴 수 없고 중생을 제도함이 한이 없으며 걸림 없는 신통지혜는 한 끼니의 식사로도 능히 억천만겁의 무량한 수명을 머물게 하느니라. 그리고 온몸이 매양 기쁨에 넘쳐서 흐려지지 않으며 거룩한 모습과 빛나는 얼굴은 변하지 않나니, 그 까닭은 여래는 언제나 선정(禪定)과 지혜가 지극하여 일체법에 자재를 얻었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명심하여 들어라. 이제 그대를 위하여 귀중한 법문을 말할 것이니라.” 아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즐거운 마음으로 듣고자 하나이다.”
제2장 정종분(正宗分)
제1절 극락정토를 세운 원인
1. 법장비구의 사십팔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일찍이 헤아릴 수 없는 먼 옛날에 정광여래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셨는데 무량한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시어 모두 바른 길을 얻게 하시고 열반에 들으셨느니라. 그리고 그 다음을 이어서 여러 부처님들이 계셨는데 그 이름은 광원불(佛), 월광불, 전단향불, 선산왕불, 수미천관불, 수미등요불, 월색불, 정념불, 이구불, 무착불, 용천불, 야광불, 안명정불, 부동지불, 유리묘화불, 유리금색불, 염광불, 염근불, 지동불, 월상불, 일음불, 해탈화불, 장엄광불, 금장불, 해각신통불, 수광불, 대향불, 이진구불, 사염의불, 묘정불, 용립불, 공덕지혜불, 폐일월광불, 일월유리광불, 무상유리광불, 최상수불, 보리화불, 원명불, 화색왕불, 일광불, 수월광불, 제치명불, 도개행불, 정신불, 선숙불, 위신불, 법혜불, 난음불, 사자음불, 용음불, 처세불 등의 여러 부처님들이 나타나셨느니라. 다음에 세자재왕불이란 부처님이 계셨는데 부처님의 공덕에 따른 이름을 또한 여래(如來), 응공(應供), 등정각(等正覺),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일체무상사(一切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佛), 세존(世尊)이라고 하느니라. 그 무렵 국왕이 있었는데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깊은 환희심을 품고 바로 위없는 바른 길을 구하는 뜻을 내었느니라. 그래서 나라와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법장(法藏)이라고 이름하였는데, 그의 재주와 용맹은 세상에 뛰어났었느니라. 그는 세자재왕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의 오른편으로 세 번 돌고 나서,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노래로써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였느니라.”
빛나신 얼굴은 우뚝하시고 위엄과 신통은 그지없으니 이처럼 빛나고 밝은 광명을 뉘라서 감히 닮으리이까?
햇빛 달빛과 마니보주(摩尼寶珠)의 광명이 빛나고 찬란하여도 모두 가리워져 숨어버리고 검은 먹덩어리 되고 맙니다.
부처님의 얼굴 뛰어나시어 이 세상에 다시 견줄 이 없고 바르게 깨달은 크신 음성은 시방세계에 두루 넘치네.
청정한 계율과 지식과 정진 그윽한 삼매와 밝은 지혜와 거룩한 위덕은 짝할 이 없어 한없이 수승하고 희유(稀有)합니다.
모든 부처님의 광대한 법을 자세히 생각하고 깊이 살피어 끝까지 밝히고 속에 사무쳐 끝과 바닥에 두루 미쳤네.
어두운 무명과 탐욕과 성냄을 부처님은 영원히 여의시나니 사자와 같은 위대한 이의 신묘한 공덕을 헤아릴 수 없네.
위없는 도덕과 넓은 공적 밝으신 지혜는 깊고 묘하며 광명에 빛나는 거룩한 상호는 대천세계에 두루 떨치네.
원하옵건대 나도 부처님 되어 거룩한 공덕 저 법왕처럼 생사(生死)하는 중생을 모두 건지고 빠짐없이 고해에서 벗어나 지이다.
보시를 베풀어 뜻을 고르고 계율을 지니며 분한 일 참고 끊임없는 정진을 거듭하면서 삼매와 지혜로 으뜸 삼으리.
나도 맹세코 부처님 되어 이러한 서원을 모두 행하고 두려워 시달리는 중생 위하여 편안한 의지가 되어보리라.
가사, 많은 부처님 계시어 그 수효는 백 천만 억이 되고 헤아릴 수 없는 큰 성인들 항하의 모래보다 많을지라도
이렇듯 많은 부처님들을 받들어 섬겨 공양을 한들 올바른 대도(大道)를 한껏 구하여 물러나지 않을 것만 같지 못하리.
항하의 모래 수효와 같은 많고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 수가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는 그처럼 많은 세계 국토를
부처님의 광명이 널리 비치어 모든 국토를 두루 하거늘 이러한 정진과 위신력을 모든 재주로 세어 보리요.
만약에 내가 부처님 되면 국토의 장엄은 으뜸이 되고 중생들 한결같이 훌륭히 되며 도량은 가장 수승하오리.
그 나라는 영원히 행복하여서 세상에 견줄만한 짝이 없거늘 온갖 중생을 가엾이 여겨 내가 마땅히 제도하리라.
시방세계에서 오는 중생들 마음이 즐겁고 청정하리니 그 나라에 와서 살게 되면 상쾌하고 즐거워 안온하리라.
원컨대 부처님 굽어 살피사 저의 참뜻을 증명하소서. 저 국토에 원력을 세워 하려는 일들을 애써 하리다.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 밝으신 지혜는 걸림 없으니 저의 마음과 저의 수행을 부처님들께서 살펴주소서.
만일 이 몸이 어찌하다가 모든 고난에 빠진다 한들 제가 수행하는 바른 정진을 참아내지 못하고 후회하리까?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법장비구는 저 세자재왕부처님 앞에서 이와 같은 게송(偈頌, 노래)으로 부처님을 찬탄한 다음 이렇게 여쭈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위없는 바른 진리를 깨닫고자 결심하였습니다.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저에게 거룩하신 교법을 자세히 말씀하여 주옵소서. 저는 마땅히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불국토를 이룩하고 청정미묘한 국토로 장엄하겠사오니, 저로 하여금 금생에 빨리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고 모든 생사(生死) 고난의 근원을 없애게 하여 주옵소서.’ 그때 세자재왕부처님이 법장비구에게 말씀하셨느니라. ‘그대가 수행하고자 하는 바와, 훌륭한 불국토를 장엄하는 일은 그대 스스로 마땅히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법장비구가 부처님께 사뢰기를, ‘부처님이시여, 그와 같은 뜻은 너무나 크고 깊어서 제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옵니다. 원하옵건대, 모든 부처님들께서 불국토를 이룩하신 수행법을 자세히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소원을 원만히 성취하겠나이다.’ 그래서 세자재왕부처님은 법장비구의 그 뜻과 소원이 고결하며 깊고 넓음을 살피시고, 바로 법장비구에게 법을 가르쳐 주기로 여기시어 말씀하시기를, ‘비유하건대, 비록 큰 바닷물이라도 억겁의 오랜 세월을 두고 쉬지 않고 품어내면 마침내 그 바닥을 다하여 그 가운데 있는 진귀한 보배를 얻을 수 있듯이, 만약 사람이 지성으로 정진하여 도(道)를 구하면 마땅히 원하는 결과를 얻고 마는 것이니, 어떠한 소원인들 성취 안 될 리가 없느니라.’ 하시고 세자재왕부처님은 곧 법장비구를 위하여 2백10억의 여러 불국토와 그 천상 사람들의 선악(善惡)과 국토의 거칠고 묘함을 널리 말씀하시고, 법장비구의 소원대로 이를 낱낱이 나타내 보여 주셨느니라. 이에 법장비구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장엄하고 청정한 나라들을 모조리 보고 나서, 위없니 갸륵하고 가장 뛰어난 서원을 세웠느니라. 그때 그의 마음은 맑고 고요하여 집착하는 바가 없었으니, 일체 세간의 어느 누구도 따르지 못하였느니라. 그리하여 5겁(五劫)의 오랜 세월을 두고 깊은 선정(禪定)에 들어, 불국토를 건설하고 장엄하기 위한 청정한 수행에 온 마음을 다하였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자재왕부처님의 수명은 얼마나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부처님의 수명은 42겁(四十二劫)이니라. 그때 법장비구는 2백10억 불국토의 청정한 수행법을 선택하여 그와 같이 수행하고 나서 다시 세자재왕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부처님의 발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 합장하며 부처님께 사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불국토를 장엄할 청정한 수행을 갖추어 지녔습니다.’ 세자재왕부처님이 법장비구에게 이르시기를, ‘법장비구여, 이제 그대가 대중들에게 그대의 서원과 수행을 널리 알려서 그들로 하여금 보리심을 일으키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할 좋은 기회이니라. 그래서 보살들은 이를 듣고 불국토를 이룩할 무량한 큰 원행(願行)을 성취하게 될 것이니라.’ 법장비구는 다시 부처님께 사뢰기를, ‘세존이시여, 들어 주십시오. 제가 세운 바 마흔 여덟 가지의 서원을 자세히 아뢰어 말씀하겠습니다.
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에 지옥과 아귀와 축생의 삼악도(三惡道)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수명이 다한 뒤에 다시 삼악도에 떨어지는 일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 몸에서, 찬란한 금색 광명이 빛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의 모양이 한결같이 훌륭하지 않고, 잘나고 못난이가 따로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이 숙명통(宿命通)을 얻어 백 천억 나유타 겁의 옛 일들을 알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천안통(天眼通)을 얻어 백 천억 나유타의 모든 세계를 볼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만약 천이통(天耳通)을 얻어 백 천억 나유타의 많은 부처님들의 설법을 듣고, 그 모두를 간직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타심통(他心通)을 얻어 백 천억 나유타의 모든 국토에 있는 중생들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9.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신족통(神足通)을 얻어 순식간에 백 천억 나유타의 모든 나라들을 지나가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0.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모든 번뇌를 여의는 누진통(漏盡通)을 얻지 못하고 망상을 일으켜 자신에게 집착하는 분별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성불하는 정정취(正定聚)에 머물지 못하고 필경에 열반(涅槃)을 얻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저의 광명이 한량이 있어서 백 천억 나유타의 모든 불국토를 비출 수가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저의 수명이 한정이 있어서 백 천억 나유타 겁 동안만 살 수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성문(聲聞)들의 수효가 한량이 있어서 삼천대천세계의 성문과 연각(緣覺)들이 백 천겁 동안 세에서 그 수를 알 수 있는 정도라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의 수명은 한량이 없으리니, 다만 그들이 중생 제도의 서원에 따라 수명의 길고 짧음을 자재로 할 수는 있을지언정, 만약 그 수명에 한량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좋지 않은 일은 물론이요, 나쁜 이름이라도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들이 저의 이름(아미타불)을 찬양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제 이름(아미타불)을 다만 열 번만 불러도 제 나라에 태어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9.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모든 공덕을 쌓고 지성으로 저의 불국토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울 때, 그들의 임종시에 제가 대중들과 함께 가서 그들을 마중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0.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저의 불국토(극락세계)를 흠모하여 많은 선근공덕을 쌓고, 지성으로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마음을 회향(回向)할 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모두 32대인상(大人相)의 훌륭한 상호(相好, 몸매)를 갖추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불국토의 보살들이 제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면 필경에 그들은 한 생(生)만 지나면 반드시 부처가 되는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자리에 이르게 되오리다. 다만 그들의 소원에 따라, 중생을 위하여 큰 서원을 세우고 선근공덕을 쌓아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또는 모든 불국토에 다니며 보살의 행을 닦아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 위없이 바르고 참다운 가르침을 세우고자 예사롭고 순탄한 수행을 초월하여 짐짓 보현보살의 공덕을 닦으려 하는 이들은 자재로 그 원행(願行)에 따를 것이오나, 다른 보살들이 일생보처에 이르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입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기 위하여 한참 동안에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불국토에 두루 이를 수가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드리는 공덕을 세우려 할 제, 그들이 바라는 모든 공양하는 물건들을 마음대로 얻을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부처님의 일체지혜를 연설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천상의 금강역사(金剛力士)인 나라연(那羅延)과 같은 견고한 몸을 얻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과 일체 만물은 정결하고 찬란하게 빛나며 그 모양이 빼어나고 지극히 미묘함을 능히 칭량할 수 없으리니, 만약 천안통을 얻은 이가 그 이름과 수효를 헤아릴 수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스스로 경을 읽고 외우며 또한 남에게 설법하는 변재와 지혜를 얻을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0.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보살들의 지혜와 변재가 한량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불국토가 한없이 청정하여, 시방 일체의 무량무수한 모든 부처님 세계를 모두 낱낱이 비춰봄이 마치 맑은 거울로 얼굴을 비춰보는 것과 같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지상이나 허공에 있는 모든 궁전이나 누각이나 흐르는 물이나 꽃과 나무나, 나라 안에 있는 일체 만물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보배와 백 천 가지의 향으로 이루어지고, 그 장엄하고 기묘함이 인간계나 천상계에서는 비교할 수 없으며, 그 미묘한 향기가 시방세계에 두루 풍기면, 보살들은 그 향기를 맡고 모두 부처님의 행을 닦게 되리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불국토의 중생들로서, 저의 광명이 그들의 몸에 비치어 접촉한 이는 그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상냥하여 인간과 천상을 초월하리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보살의 무생법인(無生法忍)과 깊은 지혜 공덕인 다라니 법문을 얻을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부처님 세계의 여인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환희심을 내어 보리심을 일으키고 여자의 몸을 싫어한 이가 목숨을 마친 후에 다시금 여인이 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수명이 다한 후에도 만약 청정한 수행을 할 수 없고 필경에 성불하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땅에 엎드려 부처님을 예배하며 환희심과 신심을 내어 보살행을 닦을 때, 모든 천신(天神)과 인간들이 그들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의복을 얻고자 하면 생각하는 대로 바로 훌륭한 옷이 저절로 입혀지게 되는 것이, 마치 부처님이 찬탄하시는 가사가 자연히 비구들의 몸에 입혀지는 것과 같으리니, 만약 그렇지 않고 바느질이나 다듬이질이나 물들이거나 빨래할 필요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9.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누리는 상쾌한 즐거움이 일체 번뇌를 모두 여윈 비구와 같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0.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청정한 불국토를 보고자 하면, 그 소원대로 보배나무에서 모두 낱낱이 비쳐 보는 것이 마치, 맑은 거울에 그 얼굴을 비쳐 보는 것과 같으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여러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부처님이 될 때까지 6근(六根)이 원만하여 불구자가 되는 일이 없으리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들은 이는 모두 청정한 해탈삼매를 얻을 것이며, 매양 이 삼매에 머물러 한 생각 동안에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도 오히려 삼매를 잃지 않으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도 수명이 다한 후에 존귀한 집에 태어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한없이 기뻐하며 보살행을 닦아서 모든 공덕을 갖추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들으면, 그들은 모든 부처님을 두루 뵈올 수 있는 삼매을 얻을 것이며, 매양 이 삼매에 머물러 성불하기까지 언제나 불가사의한 일체 모든 부처님을 뵈올 수 있으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은 듣고자 하는 법문을 소원대로 자연히 들을 수 있으리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나서 일체 공덕이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자리에 이를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만 듣고도 바로, 설법을 듣고 깨닫는 음향인(音響忍)과 진리에 수순하는 유순인(柔順忍)과 나지도 죽지도 않는 도리를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성취하지 못하고, 모든 불법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자리를 얻을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아난아, 법장비구는 세자재왕부처님 앞에서 이와 같이 마흔 여덟 가지의 서원을 낱낱이 아뢰고 나서, 게송(노래)으로써 거듭 서원을 밝혔느니라.
내가 세원 서원은 세상에 없는 일 위없는 바른 길 가고야 말리. 이 원을 원만히 성취 못하면 맹세코 부처는 되지 않으리.
한량없는 오랜 겁(劫)의 세월을 두고 내가 만일 큰 시주가 되지 못하여 가난한 고해 중생 제도 못하면 맹세코 부처는 되지 않으리.
내가 만일 위없는 부처가 되어 그 이름 온 누리에 떨쳐 넘칠 때 못 들은 누구라도 있을 적에는 맹세코 부처는 되지 않으리라.
욕심 여읜 바른 길 깊이 지니고 청정한 지혜로 도를 닦아서 위없는 진리를 모두 갖추어 천상과 인간의 스승이 되리.
신통력과 빛나는 광명 나투고 끝없는 모든 세계 두루 비추어 탐진치(貪嗔痴)의 검은 때를 녹여 버리고 중생의 온갖 재난 구제하리라.
그네들의 지혜 눈 밝게 열어서 이 세상 어두운 이 눈뜨게 하며 여러 가지 나쁜 길 막아 버리고 좋은 세상 가는 길 활짝 열리라.
지혜와 공덕을 두루 갖추고 거룩한 광명은 시방에 넘쳐 해와 달이 밝은 빛 내지 못하고 천상의 광명도 숨어 버리네.
중생을 위하여 진리 밝히고 공덕의 보배를 널리 베풀며 언제나 많은 대중 모인 가운데 사자의 외침으로 법을 설하네.
온 세계 부처님께 공양 올리며 한량없는 공덕을 두루 갖추고 서원과 지혜를 모두 이루어 삼계의 영웅인 부처 되리라.
부처님의 걸림 없는 지혜와 같이 모든 것 통달하여 두루 비추니 바라건대 내 공덕 밝은 지혜가 세자재왕부처님과 같을지이다.
정녕 이 서원이 이루어지면 삼천대천세계가 감동을 하고 허공중에 가득한 하늘 사람들 신묘한 꽃비를 뿌려 주리라.
법장비구가 이 게송을 읊고 나자 바로 대지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신묘한 꽃이 비 오듯이 흩날리며, 난데없이 천연한 음악이 은은하게 울리는데 허공중에서, ‘법장비구여, 그대는 결정코 반드시 위없는 대도를 성취하여 부처가 되리라.’고 찬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느니라. 이때 법장비구는 이와 같은 큰 서원을 원만히 성취하려는 진실한 마음이 추호도 흩어지지 않고 모든 세상일을 초월하여 간절히 열반(영생)의 경계를 흠모하여 마지않았느니라.
2. 영겁(永劫)의 수행
아난아, 이렇듯 법장비구는 세자재왕부처님 앞에서 범천과 마왕과 용신 등의 팔부대중과 그 밖에 많은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러한 48의 큰 서원을 세우고 한결같이 뜻을 오로지 하여 불국정토를 건설하고자 굳은 결심을 하였느니라. 그런데 그가 세우려는 불국토는 한없이 넓고 청정미묘하여 비할 데가 없으며 또한 그 나라는 영원불멸하여 모든 것이 변하지 않고 쇠미하지 않는 극락의 정토이니, 법장비구는 이러한 청정하고 장엄한 정토를 세우기 위하여 불가사의한 오래고, 오랜 영겁의 세월을 두고 보살의 헤아릴 수 없는 수행공덕을 쌓았느니라. 그는 탐욕과 성냄과 남을 해치는 생각은 아예 나지도 않고 일으키지도 않았으며, 또는 감관(感官)의 대상인 모든 형상이나 소리나 향기나 맛이나 촉감이나 분별하는 생각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았고, 어려움을 참아내는 인욕(忍辱)의 행을 닦아서 어떠한 고통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으며, 매양 만족함을 알아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三毒)번뇌에 물들지 않고, 항시 삼매에 잠겨서 밝은 지혜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었느니라. 그리고 남을 대할 때는 거짓과 아첨하는 마음이 없이 언제나 온화한 얼굴과 인자한 말로써 미리 중생의 뜻을 보살펴 그들을 기쁘게 하였으며, 또한 애써 용맹 정진하여 그 뜻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청정 결백한 진리를 구하여 모든 중생에게 은혜를 베풀었느니라. 그는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를 공경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섬겼으며, 온갖 수행을 쌓고 복과 지혜의 큰 장엄을 갖추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공덕을 성취하게 하였느니라. 그는 또 일체 모든 현상의 실상은 본래 비어 있으니, 변하지 않는 모양(相)이 없고 바랄 것(願)도 없다는 삼매에 머물러 아예 차별심을 일으키지 않았으며, 모든 것은 다만 인연이 화합하여 이루어졌으니, 허깨비와 같고 뜬 구름 같이 허망함을 관조(觀照)하였느니라. 그리고 그는 자기를 그르치고 남을 해치는 부질없는 말을 멀리 여의고, 자기와 남에게 한결같이 유익하고 공덕이 되는 청정한 수행을 닦았느니라. 그래서 그는 나라와 왕위와 재물과 보배와 처자의 인연까지도 끊어버리고, 몸소 보시와 계율과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 등 6바라밀의 보살행을 수행하였으며, 또한 남에게도 이를 가르쳐 수행하도록 하였으니, 이렇듯 그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을 두고 무수한 공덕을 쌓았느니라. 그래서 법장비구가 태어나는 처소는 마음대로 자유자재하였으며 한량없는 법문이 저절로 우러나와 수없이 많은 중생을 교화하여 안온하게 하고 위없는 바른 진리를 깨달게 하였느니라. 그는 때로는 부귀하고 덕 있는 장자로 태어나기도 하고, 혹은 거사로, 혹은 높은 벼슬아치로, 혹은 국왕으로, 혹은 전륜성왕으로, 혹은 6욕천으로부터 범천왕에 이르기까지 소원대로 태어나서, 매양 음식과 의복과 침구와 약품 등으로써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였나니, 이러한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느니라. 그래서 법장비구의 입에서는 청결한 향기가 마치 우담발라화 꽃향기와 같았고, 몸의 모든 털구멍에서는 전단향의 향기를 내어 그 향훈이 두루 한량없는 세계에 풍겼느니라. 그 모습은 단정하고 상호(相好)는 원만하며, 손에서는 항시 무량한 보배가 소원대로 나왔는데 그 의복과 음식과 진귀하고 미묘한 꽃과 향이며, 갖가지의 비단일산과 깃대 등 아름다운 장식물들이 모두가 천상보다도 한결 뛰어나게 훌륭하였으니, 이와 같이 그는 일체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느니라.”
제2절 미타성불과 극락정토의 장엄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법장보살은 이미 성불하시어 영원히 안온한 열반의 경지에 드셨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직 성불하지 못하셨습니까? 혹은 성불하시어 현재 계시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법장보살은 이미 성불하여 서쪽 나라에 계시는데, 그 부처님의 이름을 ‘아미타불’ 혹은 ‘무량수불’이라 하며, 그 나라는 10만억의 나라를 지난 먼 나라로서 극락세계라 하느니라.” 아난이 또 여쭈어 묻기를, “세존이시여, 그러면 그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지는 얼마나 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부처님이 성불하신 이래 벌써 10겁(十劫)이 지났느니라. 그런데 그 불국토는 금, 은, 유리, 산호, 호박, 자거, 마노 등 칠보로 땅이 이루어지고, 그 넓이는 광대하여 끝이 없으며, 그 곳 온갖 보배들은 서로 빛나서 한량없이 찬란하고 미묘 청정하게 장엄되어, 시방세계의 어느 세계보다도 뛰어나게 훌륭하니, 그것들은 모든 보배 중의 으뜸으로서, 마치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보배와도 같으니라. 또한 그 국토에는 수미산과 금강철위산 등 일체 산이 없고, 바다나 강이나 시내나 골짜기 우물 등도 없으나, 보고 싶어 할 때는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바로 나타나느니라. 그리고 지옥과 아귀와 축생 등의 괴로운 경계도 없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도 없으니,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항시 온화하고 상쾌하니라.” 그때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그 불국토에 수미산이 없다면 그 산에 있을 사천왕과 도리천은 어디에 의지하여 살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러면 그대는 야마천(夜摩天)으로부터 색구경천(色究竟天)까지의 모든 천상들은 모두 어디에 의지하여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들은 각기 지은 바 업력의 불가사의한 과보의 힘에 의하여 자기에게 합당한 천계(天界)에 머물고 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업력의 과보가 불가사의하여 그러한 천상계가 있을 수 있다면, 모든 부처님의 세계도 또한 불가사의하여, 그 불국토에 사는 모든 중생들도 그들이 이미 지은 바 공덕과 선업의 힘에 의하여 나타난 땅에 머물러 살 뿐이니라, 그러니 수미산이 없더라도 아무런 불편이 없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그러한 법을 의심하지 않사오나 다만 미래의 중생들을 위하여 그들의 의혹을 풀어주고자 하기에, 짐짓 이러한 뜻을 여쭈어 보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아난아, 이 무량수불(아미타불)의 위신력과 밝은 광명은 가장 높고 뛰어나서 모든 부처님의 광명이 능히 미치지 못하며, 백 천만의 불국토 뿐만 아니라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헤아릴 수 없는 시방세계의 모든 불국토를 두루 비추느니라. 그리고 때에 따라, 부처님의 광명은 일곱 자를 비추기도 하고, 혹은 40리를, 혹은 80리를, 혹은 1백20리를 자유자재로 비추는데, 점점 더하여 드디어는 일체 부처님 세계를 모조리 비추기도 하느니라. 그러므로 무량수불을 달리 십이광불(十二光佛)이라 이름하여 무량광불(無量光佛), 무변광불(無邊光佛), 무애광불(無碍光佛), 무대광불(無對光佛), 염왕광불(焰王光佛), 청정광불(淸淨光佛), 환희광불(歡喜光佛), 지혜광불(智慧光佛), 부단광불(不斷光佛), 난사광불(難思光佛), 무칭광불(無稱光佛), 초일월광불(初日月光佛)이라 찬탄하느니라. 그런데 만약 중생들이 이러한 광명을 만나게 되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자연히 소멸하고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상냥하여 기쁨이 가슴에 넘치며, 진리를 구하는 착한 마음이 솟음쳐 일어나느니라. 그리고 지옥과 아귀와 축생 등의 괴로운 삼악도에서도 이 광명을 만나게 되면 모두 평온한 휴식을 얻어 다시는 고뇌가 없으며, 수명이 다한 뒤에는 해탈을 얻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무량수불(아미타불)의 광명은 너무도 찬란하게 빛나서, 시방세계의 모든 불국토를 비추어 미치지 않는 데가 없고, 그 명성이 떨치지 않은 곳이 없나니, 그래서 나만이 그 광명을 찬탄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부처님과 성문, 연각, 보살들도 또한 다 한결같이 찬탄하느니라. 그리고 만약 중생들이 그 광명의 위신력과 공덕을 듣고 밤낮으로 찬탄하는 지극한 마음이 끊이지 않는다면 그는 소원대로 그 부처님의 나라에 태어나게 되어 모든 보살과 성문들이 그 공덕을 찬양할 것이며, 또한 장차 불도를 성취했을 때에는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지금 무량수불(아미타불)을 공경함과 같이 그의 광명을 찬탄하게 될 것이다. 아난아, 진실로 무량수불(아미타불)의 광명과 위신력이 그지없이 위대하고 미묘함은 내가 1겁(一劫) 동안을 두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한다 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가 없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을 계속하시어, “아난아, 무량수불(아미타불)의 수명은 한량없이 길어서 이루 헤아릴 수 없나니, 어찌 그대가 알 수 있을까보냐? 가령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이 다 성문이나 연각의 성인이 되어 다 같이 한 자리에 모여서, 생각을 고요히 하고 오로지 한마음으로 그들의 지혜를 다하여 백천만겁 동안 세어본다 하더라도 능히 다할 수가 없고 그 한계를 알 수가 없느니라. 그리고 극락세계의 성문과 보살과 천인(天人)들의 수명도 또한 이와 같아서 산수와 비유로 능히 헤아릴 수 없고, 그들 성문과 보살들의 수 또한 한량없이 많은데, 그들은 모두 지혜와 신통이 통달하여 그 위력이 자재하고 능히 손바닥 위에 일체 세계를 올려놓을 수도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무량수불(아미타불)이 성불하시고 나서 처음 설법하신 법회에 모인 성문과 보살들의 수도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하나니, 지금 신통제일의 목건련 같은 이가 백천만 명이 모여서 한없는 겁(劫) 동안 그들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헤아린다 하더라도 그 수를 알 수는 없느니라. 비유하건대, 가령 어떤 사람이 가는 터럭 하나를 백으로 나누어 그 하나의 털끝으로 광대한 바닷물을 한 번 적신다면 얼마나 되겠느냐? 그리고 그 털끝에 적신 물과 큰 바다의 물과는 어느 것이 더 많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대답하여 사뢰었다. “저 털끝에 적신 물과 큰 바닷물을 비교한다면 그 많고 적음을 어찌 산수나 말로써 능히 헤아릴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와 같이 목건련 같은 이들이 수없이 모여 백천만억 나유타의 오랜 세월을 두고 헤아릴 수 있는 수는 오히려 털끝에 묻은 한 방울의 물과 같고, 무량수불(아미타불)의 처음 법회에 모인 성문과 보살들의 수는 큰 바닷물과 같아서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라. 또한 무량수불(아미타불)의 불국토인 극락세계에는 칠보로 된 갖가지의 나무가 온 세계에 충만하여 금으로 된 나무, 은으로 된 나무, 유리나무, 파려나무, 산호나무, 마노나무, 자거나무들이 있는데, 혹은 두 가지 보배로 되고 혹은 세 가지 보배에서 일곱 가지 보배가 합하여 이루어졌느니라. 그리고 금나무에는 은으로 된 잎과 꽃과 열매가 열리기도 하고, 은나무에는 금의 잎과 꽃과 열매가 달리고, 혹은 유리 나무에 파려의 잎과 꽃과 열매가, 수정나무에 유리의 잎과 꽃과 열매가, 산호나무에 마노의 잎과 꽃과 열매가, 마노나무에 유리의 잎과 꽃과 열매가 달리기도 하고, 혹은 자거나무에 잎과 꽃과 열매는 다른 여러 보배가 합하여 이루어지기도 하였느니라. 그리고 어느 보배나무는 자마금(紫磨金)의 뿌리에 백은의 줄기, 유리의 가지, 수정의 줄거리에 산호의 잎, 마노의 꽃, 자거의 열매가 열리고, 어느 보배나무는 백은을 뿌리로 하고 유리의 줄기, 수정의 가지, 산호의 줄거리에 마노의 잎, 자거의 꽃과 자마금의 열매가 달리고 어느 보배나무는 유리를 뿌리로 하고 수정의 줄기, 산호의 가지, 마노의 줄거리에 자거의 잎, 자마금의 꽃과 백은의 열매로 되고, 어느 보배나무는 수정의 뿌리에 산호의 줄기, 마노의 가지, 자거의 줄거리에 자마금의 잎, 백은의 꽃과 유리의 열매로 되고 어느 보배나무는 산호의 뿌리에 마노의 줄기, 자거의 가지, 자마금의 줄거리에는 백은의 잎, 유리의 꽃과 수정의 열매로 되고 어느 보배나무는 마노의 뿌리에 자거의 줄기, 자마금의 가지, 백은의 줄거리에 유리의 잎, 수정의 꽃과 산호의 열매로 되고 혹은 어느 보배나무는 자거를 뿌리로 하고 자마금의 줄기와 백은의 가지와 유리의 줄거리에 수정의 잎과 산호의 꽃과 마노의 열매로 되었나니, 이와 같이 칠보가 서로 번갈아 뿌리가 되고 줄기가 되고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된 보배나무들이 극락세계에 가득하느니라. 그리고 이러한 보배나무들은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데, 줄기는 줄기끼리 마주보고, 가지는 가지끼리, 잎과 잎, 꽃과 꽃, 열매와 열매가 서로 바라고 서로 따르고 하여 그 찬란한 광채는 눈이 부시어 바라볼 수 없으며, 맑은 바람이 보배나무에 살랑거리면 다섯 가지 소리가 미묘하게 울리며 자연히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느니라. 또한 무량수불(아미타불)이 계시는 극락세계에 있는 보리수는 그 높이가 4백만리이고 그 밑둥의 둘레는 50유순이며 그 가지와 잎은 사방으로 20만리나 퍼졌는데, 이 보리수는 온갖 보배로 이루어지고, 더욱 모든 보배의 으뜸인 월광마니(月光摩尼)와 지해윤보(持海輪寶)로 자연스럽게 꾸며져 있느니라. 그리고 이 보리수의 가지와 가지 사이에는 보배로 된 영락을 드리웠는데, 그 빛깔은 백 천 가지로 변화하여 그 광명은 한없이 비치어 다함이 없고, 나무 위에는 그지없이 귀하고 묘한 보배로 된 그물이 덮혔나니, 이와 같이 일체의 아름다운 장엄들이 바라는 대로 저절로 나타나느니라. 가벼운 산들바람이 보배나무 가지에 살랑거리면, 한량없는 묘법(妙法)의 음악을 아뢰고, 그 소리가 울려 퍼져 모든 부처님 나라에 두루 하느니라. 그래서 그 아름다운 소리를 듣거나, 그 향기를 맡거나, 맛을 보거나, 그 광명이 몸에 비치거나, 마음으로 그러한 장엄들을 생각하는 중생들은 모두 생사(生死)를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다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의 자리에 머물러, 성불할 때까지 육근(六根)이 청정하여 아예 번뇌와 시름이 있을 수 없느니라. 아난아, 극락세계에 있는 인간이나 천신들이 이 보리수나무를 보면 삼법인(三法忍)을 얻게 되는데, 첫째는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마음이 안온한 음향인(音響忍)이요, 둘째는 진리에 순종하여 법대로 행하는 유순인(柔順忍)이며, 셋째는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니라. 그런데, 이러한 모든 장엄과 공덕들은 무량수불(아미타불)의 위신력에 의한 것이며, 법장비구 때 세운 본원력 때문이며, 또한 원만하고 분명하고 견고한 원력 때문이며, 끝까지 성취하고자 하는 구경의 서원력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아난아, 극락세계에 있는 보배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은 이 세상 제왕들의 백천가지의 음악보다도 또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음악보다도, 더 나아가서 육욕천상의 모든 재주를 다한 음악보다도 천억만배나 더 훌륭하니라. 또한 보배나무의 음악 외에도 자연히 울리는 천만가지의 음악이 있는데, 그 음향은 모두가 진리를 아뢰는 신묘한 소리로서, 한량없이 맑고 애절하며 미묘하고 아늑하여 시방세계의 모든 음악 가운데 가장 으뜸이니라. 아난아, 저 극락세계의 강당과 절과 궁전과 누각들은 모두 칠보로 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저절로 변화하여 이루어졌으며, 진주와 명월마니주로 엮은 보배 그물로 그 위를 덮었느니라. 그리고 그 안팎과 좌우 양편에는 여기저기에 목욕하는 맑은 호수가 있는데, 그 크기는 10유순에서, 혹은 20유순, 혹은 30유순, 나아가서는 백천유순도 되며, 그 호수들은 각기 그 가로와 세로와 깊이가 다 같고 여덟 가지 공덕이 있는 8공덕수가 충만한데, 청정하고 향기로운 맛은 마치 감로수와 같으니라. 그리고 황금의 못에는 백은의 모래가 깔리고, 백은의 못에는 황금의 모래가 깔리며, 수정의 못에는 유리의 모래가, 유리의 못에는 수정의 모래가, 산호의 못에는 호박의 모래가, 호박의 못에는 산호의 모래가, 자거의 못에는 마노의 모래가, 마노의 못에는 자거의 모래가, 백옥의 못에는 자마금의 모래가, 자마금의 못에는 백옥의 모래가 깔려 있나니, 이렇듯 혹은 두 가지 보배로 혹은 세 가지 보배로 더러는 칠보가 합성하여 이루어졌느니라. 또한 못가 언덕에는 전단향나무의 꽃과 잎이 무성하게 드리웠는데 그 향기는 두루 천지에 풍기며, 물 위에는 아름다운 청련화, 홍련화, 황련화, 백련화 꽃들이 서로 어울려 찬란하게 빛나며 가득히 물 위를 덮었느니라. 극락세계의 보살과 성문들이 보배 못에 들어가면 그들이 바라는 대로 물이 발까지 잠기기를 원하면 물은 바로 발을 적시고, 만약 물이 무릎까지 이르기를 원하면 곧 무릎까지 적시며, 허리까지 적시기를 원하면 물은 바로 허리까지 이르고, 목까지 적시기를 원하면 이내 물은 목까지 차오르며, 온몸을 적시고자 하면 자연히 온몸을 적셔주는데, 물을 다시 물리고자 원하면 물은 바로 본 자리로 물러가나니, 그 물은 또한 차고 덥기가 마음에 바라는 대로 자연히 조절되느니라. 그리고 그 연못에 목욕을 하면 정신이 열리고 몸이 상쾌하여 마음의 때가 말끔히 씻기느니라. 또한 그 물은 너무나 맑고 투명하여 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서, 못 바닥의 보배 모래가 환희 드러나 아무리 깊은 데라도 비치지 않은 데가 없으며, 잔잔한 물결은 빠르지 않고 더디지 않고 그지없이 아늑하게 출렁거리고 있느니라. 이와 같이 청정하게 굽이치는 잔물결은 한량이 없으며, 미묘하고 은은한 파도소리는 자연히 울려나와 진리를 아뢰나니, 듣고자 하는 것은 그 무엇이나 다 들을 수 있느니라. 그 소리 가운데, 부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혹은 법문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스님 네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으며, 또한 고요한 영생 열반의 소리나, 일체만법의 본래 공(空)하여 내가 없다는 소리나, 대자대비의 소리나, 해탈의 피안에 건너가는 6바라밀의 소리며, 혹은 열 가지 뛰어난 지혜인 십력(十力)과 네 가지 두려움 없는 4무소외(四無所畏)와 부처님만이 지니는 18불공법(十八佛供法)의 소리나, 모든 신통 지혜의 소리, 조작이 없는 평등한 이치의 소리며 나고(生) 멸함이 없는 진리에 안주하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의 소리며, 또한 보살이 그 수행을 마칠 때 부처님이 그 정수리에 감로수를 뿌리는 감로관정(甘露灌頂)의 소리 등 가지가지의 미묘한 진리의 소리가 마음에 바라는 대로 들려와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은 한량이 없느니라. 그래서 이러한 소리를 듣는 이는 마음이 청정하여 모든 탐욕을 여의고, 생사를 초월한 참다운 열반의 진리에 따르게 되며 불, 법, 승의 삼보와 4무소외와 18불공법을 따르게 되고, 모든 신통지혜를 통달하여 보살과 성문들이 수행하는 진리의 대도(大道)를 따르게 되느니라. 그리고 그 불국토에는 지옥과 아귀와 축생 등 삼악도의 이름마저도 들을 수 없으며, 다만 상쾌하고 즐거운 음악만이 자연히 들리나니, 그러므로 그 나라의 이름을 극락세계(안락세계)라 부르느니라. 아난아,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이는 누구나 그와 같은 청정한 몸과 아름다운 미묘한 음성과 모든 신통력과 공덕을 갖추게 되며, 그들이 거처하는 궁전을 비롯하여 의복과 음식과 여러 가지의 묘한 꽃과 향이며 장식물들이 마치 제6천(타화자재천)에 자연히 갖추어 있는 것들과 같으니라. 만약 음식이 먹고 싶을 때에는 바로 금, 은, 유리, 자거, 마노, 산호, 호박 등 칠보나 명월주나 진주로 된 그릇들이 원하는 대로 나타나는데, 거기에는 가지가지의 백미(百味) 음식이 자연히 가득 담겨 저절로 앞에 와서 놓이게 되느니라. 그러나 이와 같은 풍족한 음식이 있더라도 실제로는 먹는 것이 아니며, 다만 그 색깔을 보고 향기만을 맡으면 먹었다는 생각이 들어 자연히 배가 부르게 되느니라. 또한 몸도 마음도 부드럽고 상쾌하여 음식의 맛에 집착하지 않으며, 이러한 식사를 마치면 그릇과 음식은 자연히 사라지고, 바라는 때가 되면 다시금 나타나느니라. 또한 극락세계는 청정하고 안온하며 미묘하고 상쾌하여 영생 안온한 열반의 경계와 같으니라. 그리고 그 곳에 있는 성문과 보살과 인간과 천신들은 지혜가 한량없이 밝고 신통이 자재하여 모두 한결같은 모양으로서 달리 생긴 형상이 없으나, 다만 다른 세계의 인연에 수순(隨順)하여 인간과 천상의 이름이 있을 뿐이며, 그 얼굴과 모습은 단정하고 미묘하여 세상에서 뛰어나 천상과 인간에 배교할 수 없나니, 그들은 모두 허공과 같이 형상이 없는 몸이며, 그지없이 즐거운 영생불멸의 몸을 가지고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가령 이 세상의 지극히 가난한 거지가 임금의 곁에 앉는다면 그 형상이 어떠하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대답하여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그 거지의 모양은 파리하고 추악하여 도저히 비교할 수 없나이다. 그 빈궁한 거지는 지극히 천하여 그의 복은 몸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음식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로 매양 굶주리고 춥고 괴로워서 인정과 의리도 거의 끊어질 지경이오나, 이는 모두가 과거 전생에 공덕은 짓지 않고 재물을 모으기만 하여 베풀지 않았으며,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탐내고 구하여 조금도 선은 닦지 않고, 태산같이 악만 범한 데서 오는 과보입니다. 이와 같이 탐욕만 부리다가 수명이 다하면, 애써 고생하고 모아 놓은 재물은 도리어 근심과 괴로움의 근본이 되고, 자기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필경 남의 것이 되어 흩어지고 마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믿고 의지할 만한 선도 닦지 않고 덕도 쌓지 않았으므로 죽은 뒤에는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 등의 악도에 떨어져 오랜 동안 괴로움을 받으며, 지은 바 죄의 과보를 겨우 마치고 빠져 나와서는 다시 천하고 어리석고 추악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되나이다. 그러나 세상의 임금이 인간 중에서 존귀한 까닭도 또한 모두가 과거 숙세(宿世)에 많은 공덕을 쌓은 데서 오는 과보입니다. 그들은 자비한 마음이 깊어서 남에게 널리 베풀고, 어진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며, 매양 신용을 지키고 선을 닦아서 남과 다투고 싸우는 일이 없었나이다. 그러하기에 목숨을 마치면 닦은바 공덕의 과보로 바로 천상에 태어나서 많은 복과 안락을 누리기도 하고, 인간이 되면 왕가에 태어나서 자연히 존엄하고 용모와 거동이 단정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경을 받으며, 좋은 의복과 귀한 음식을 마음대로 받아 쓸 수 있사오니, 그것은 모두 과거 숙세에 지은 복덕의 인연으로 능히 그럴 수 있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대의 말이 옳으니라. 그러나 아무리 인간 중에서 가장 존귀하고 용모가 단정한 임금이라 하더라도, 이를 전륜성왕에 비한다면 그 천하고 볼품이 없음이 마치 저 빈궁한 거지를 임금의 곁에 앉혀 놓은 것과 같으며, 비록 전륜성왕의 그 위엄이 늠름하고 빼어나서 천하에 제일이라 하지마는 이를 도리천왕에 비교한다면 또한 천하고 추하기가 만억 배나 차이가 나며, 나아가서 도리천왕을 제6천의 타화자재천왕에 비한다면 또한 그 차이가 백천억 배도 지나는데, 그 타화자재천왕을 저 무량수불(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있는 보살이나 성문들에게 견준다면, 그 빛나는 얼굴과 단정한 용모의 차이는 백천만 배나 되어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극락세계의 모든 천신과 인간들의 의복과 음식과 꽃과 향과 영락과 비단일산과 깃대와 미묘한 음악과 거처하는 저택, 궁전, 누각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은 천신과 인간들의 모양과 처지에 따라서 그 높고 낮고 크고 작음이 잘 어울리도록 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한 가지 보배로 되기도 하고 혹은 두 가지 보배로, 혹은 헤아릴 수 없는 여러 보배로 이루어져 그들이 바라는 대로 나타나느니라. 또한 가지각색의 보배로 수놓은 아름다운 비단이 두루 땅에 깔려 있는데, 천신과 인간들이 사뿐히 밟고 거닐며, 한량없는 보배 그물은 널리 온 불국토를 덮었는데, 그것은 금실과 진주와 백천 가지의 기묘하고 진귀한 보배로 장엄하게 꾸며졌으며, 사방에는 보배 방울이 드리워 미묘하게 울리나니, 그 찬란하고 청정한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느니라. 그리고 자연히 덕스러운 온화한 미풍이 일고 있는데, 그 바람은 잘 조화되어 춥지 않고 덥지 않으며 서늘하고 따스하며 세지도 약하지도 않느니라. 이러한 아늑한 바람이 보배 그물과 보배 나무에 살랑거리면 한량없이 미묘한 진리의 소리가 유량하게 울리고, 천만 가지의 상냥한 덕의 향기가 그윽이 풍기는데, 이러한 소리를 듣고 향기를 맡으면, 모든 번뇌와 때 묻은 버릇들이 자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또한 그 바람이 몸에 닿으면 그지없이 상쾌함이 마치 수행자가 일체 번뇌와 모든 분별 시비를 모조리 끊어버리는 멸진삼매(滅盡三昧)를 얻어서 안온한 고요를 즐기는 것과 같으니라. 또한 맑은 바람은 미묘한 꽃잎을 불어와서 두루 불국토에 뿌리는데, 그 꽃잎은 가지각색으로 어울리게 아롱져 보드랍고 찬란하게 빛나고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꽃잎을 밟으면 네 치나 들어가고 발을 들면 다시 전과 같이 올라오며, 꽃잎의 쓸모가 다하면 문득 땅이 저절로 갈라져 땅 속으로 쓸듯이 사라지고 한 송이의 흔적도 없으며, 꽃이 필요하게 되면 바람은 다시금 꽃잎을 불어오는데 이와 같이 밤낮 여섯 차례를 되풀이하느니라. 아난아, 또한 극락세계는 여러 가지 보배로 된 아름다운 연꽃이 온 불국토에 가득 피었는데, 보배 꽃송이마다 백천 억의 꽃잎이 있고 꽃에서 발하는 광명은 한량없는 빛깔로 이루어졌느니라. 그리고 그 푸른 빛깔에는 푸른 광명이 빛나고, 하얀 빛깔에는 하얀 광명이 빛나는데, 이와 같이 검은 빛, 노란 빛, 붉은 빛, 자주 빛 등이 각기 광명을 발하여 그 찬란함은 해와 달보다도 한결 빛나고 밝으니라. 그리고 그 꽃송이마다 36백천억의 헤아릴 수 없는 광명을 발하고, 그 하나하나의 광명 속에서는 또한 36백천억의 부처님이 나투시는데, 몸은 자마금색(紫磨金色)으로 빛나고 그 상호는 뛰어나게 훌륭하시니라. 이 부처님들은 각기 헤아릴 수 없는 백천의 광명을 비추시고, 두루 시방세계의 중생을 위하사 미묘한 법문을 설하시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량한 중생들을 부처님의 바른 도리에 안온히 머물게 하시느니라.”
제3절 극락세계 왕생의 인행(因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저 극락세계에 왕생(往生)하는 중생들은 모두 반드시 성불할 수 있는 이들로서, 성불이 결정된 정정취(正定聚)에 머물게 되는데, 그 까닭은 극락세계에는 성불하는데 잘못 결정된 사정취(邪定聚)나 아직 성불하기로 결정되지 않은 부정취(不定聚)는 없기 때문이니라. 그래서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무수한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들도 모두 한결같이 무량수불(아미타불)의 위신력과 공덕이 불가사의함을 찬탄하시느니라. 그런데, 누구든지 무량수불(아미타불)의 명호(名號, 이름)를 듣고 기쁜 마음으로 신심을 내어 잠시라도 지성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이는, 그 부처님의 원력으로 바로 왕생(往生)하여 마음이 다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자리에 머물게 되느니라. 그러나 5역죄를 범한 자와 정법(正法)을 비방한 자는 그럴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시방세계의 모든 천신과 인간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저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이들은 그 근기와 수행을 따라 상, 중, 하의 차별, 곧 상배(上輩)와 중배(中輩)와 하배(下輩) 등의 3배(三輩)로 구별이 있느니라. 그 중에 상배자(上輩者)란 욕심을 버리고 출가하여 사문(沙門, 중)이 되고 보리심을 일으켜 오로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량수불(아미타불)을 생각하며, 여러 가지의 선근공덕을 쌓고,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고자 원을 세우는 이들을 말하느니라. 이러한 사람이 임종할 때에는 무량수불(아미타불)이 여러 대중과 더불어 그의 앞에 나타나시니, 그러면 그는 그 부처님을 따라서 극락세계에 왕생하는데, 바로 칠보 연꽃 가운데 자연히 화생(化生)하여 다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자리에 머물며, 지혜와 용맹을 갖추고 신통이 자재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이 세상에서 아미타불을 뵈옵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여 많은 공덕을 쌓고 저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중배자(中輩者)란, 시방세계의 여러 천신과 인간들 중에서 그들의 정성을 다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우고 비록 출가한 사문이 되어 큰 공덕을 닦지는 못하더라도, 마땅히 위없는 보리심을 내어 오로지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생각하며, 다소의 착한 일도 하고 계율을 받들어 지키며, 탑을 세우고 불상도 조성하고, 스님들에게 공양도 하며, 부처님 앞에 비단 일산을 바치고 등불을 밝히며 꽃을 뿌리고 향을 사르며, 이러한 공덕을 회향(回向)하여 저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우는 이들을 말하느니라. 이러한 사람이 임종할 때에는 아미타불이 화신(化身)을 나투시는데, 그 상호가 광명이 찬란하여 실제 아미타불과 같으시며, 여러 대중과 더불어 이 사람 앞에 나타나시느니라. 그러면 그는 나투신 화신불을 따라서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자리에 머물게 되나니, 그 공덕과 지혜는 상배(上輩)의 다음이 가느니라. 아난아, 그 하배자(下輩者)라 하는 것은 시방세계의 여러 천신과 인간들 중에서 설령 그들이 여러 가지 공덕을 쌓지는 못하더라도, 마땅히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고 생각을 오로지하여 다만 열 번이라도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그 명호(이름)를 외우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우는 이나 혹은 심오한 법문을 듣고 즐거운 환희심으로 믿고 의지하여 의혹을 일으키지 않고 다만 한 생각만이라도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그 명호를 외우며 지극한 마음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우는 이들을 말하느니라. 그런데 이러한 사람이 임종할 때에는 꿈결에 아미타불을 뵈옵고 극락세계에 왕생하는데, 그 공덕과 지혜는 중배(中輩)의 다음 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아미타불의 위신력은 너무나 뛰어나서 한량이 없으므로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들께서 아미타불을 찬탄하지 않으신 분이 없느니라. 그리고 동방의 무량 무수한 여러 보살들도 모두 아미타불이 계신 극락세계에 나아가서 아미타불과 보살들과 성문들을 공경 공양하느니라. 그래서 진리의 교법을 듣고 널리 중생들을 교화하느니라. 그리고 남방과 서방과 북방과 4유(四維)와 상방, 하방의 모든 불국토의 보살들도 또한 그와 같이 공경하고 공양하느니라.” 이때에 부처님께서는 무량수불(아미타불)의 공덕을 다시 게송으로 밝히셨다.
동방의 여러 불국토는 항하의 모래알 같이 많은데 그 많은 나라 보살들이 극락에 나아가 아미타불을 뵈옵네.
남방과 서방 북방과 4유(四維)와 상방 하방도 또한 같아서 수많은 불국토의 보살 대중이 극락에 나아가 아미타불을 뵈옵네.
시방세계의 모든 보살들이 아름다운 하늘 꽃과 향과 보배와 한량없는 하늘 옷을 가지고 와서 아미타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모두들 미묘한 하늘 음악 아뢸 때 맑고 밝은 평화로운 노래를 불러 가장 높은 부처님 찬탄을 하며 아미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네.
신통과 지혜를 통달하시어 모든 깊은 법문 다 아시고 한량없는 공덕을 두루 갖추니 미묘한 밝은 지혜 짝할 이 없네.
이 세상을 비추는 밝은 지혜는 생사의 먹구름을 지우시나니 보살들은 공경하여 세 번 돌고 위없는 부처님께 예배드리네.
장엄하고 청정한 극락을 보니 그지없이 미묘하고 부사의하여 보는 사람 위없는 보리심내고 우리 국토 그와 같이 되어지이다.
그때에 아미타 부처님께서 기쁜 얼굴로 미소하시니 입에서 눈부신 광명이 나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네.
그 광명을 되돌려 몸을 둘러싸 세 번 돌고 정수리로 들어가나니 온 세계 천상인간 모든 대중들 환희심에 뛰놀며 즐거워하네.
그때에 관음보살 옷깃 여미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뢰는 말씀 부처님 무슨 일로 웃으시는지 바라오니 그 뜻을 일러주소서.
우레처럼 우렁찬 맑은 음성은 여덟 가지 미묘한 소리를 내어 이제 보살들께 수기(授記)주리니 자세히 명심하여 들을지니라.
시방세계에서 모인 보살들 그대들 지닌 소원 내가 아노니 지성으로 장엄한 국토 원하면 반드시 수기(授記)받아 성불하리라.
모든 법은 꿈같고 요술 같으며 메아리 같은 줄을 훤히 깨달아 미묘한 모든 서원 이루게 되면 이러한 극락세계 이룩하리라.
제법이 번개나 그림자 같음을 알고 보살도를 끝까지 두루 닦아서 여러 가지 공덕을 모두 갖추면 반드시 수기 받아 부처되리라.
일체법의 성품은 본래 공(空)하고 나도 없는 무아(無我)임을 통달하고서 청정한 불국토를 힘써 구하면 반드시 극락정토 성취하리라.
부처님들 보살들께 이르신 말씀 극락세계 아미타불 가서 뵈오라. 법문 듣고 기꺼이 받아 행하면 청정한 극락세계 빨리 얻으리.
청정한 그 나라에 가기만 하면 불현듯 신통 지혜 두루 갖추고 아미타 부처님께 수기를 받아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리라.
저 부처님 본래에 세우신 원력 그 이름(아미타불)을 듣고서 극락 원하면 누구나 그 나라에 왕생을 하여 저절로 불퇴전에 이르게 되리.
보살들아 지극한 서원을 세워 자기 국토 극락과 같이 하려고 모든 중생 제도하는 다짐을 하면 그 이름은 시방세계 두루 떨치리.
억만의 부처님을 섬길 적에는 두루 모든 세계 날아다니며 정성껏 기쁨으로 공양올리고 다시금 극락세계 돌아오리라.
전생에 착한 공덕 못 쌓은 이는 이 경전 말씀을 들을 길 없고 청정한 계행을 지킨 이라야 부처님의 바른 법문 받아 들으리.
일찍이 부처님을 뵈온 사람은 의심 없이 이런 일을 믿을 것이니 공경하고 겸손하게 듣고 행하여 환희심에 뛰놀며 기뻐하리라.
교만하고 삿되고 게으른 사람 이 법문을 믿기가 심히 어렵고 숙세에 부처님을 뵈온 이라야 이러한 가르침을 즐겨 들으리.
성문이나 혹은 보살이라도 부처님의 크신 마음 알길 없네. 비유하면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가는 길 인도하려 함과 같도다.
부처님의 거룩하신 지혜 바다는 깊고 넓어서 끝간데 없어 성문이나 보살로는 측량 못하고 오직 홀로 부처님만 밝게 아시네.
가령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원만하게 두루 다 도를 이루어 맑은 지혜로 공(空)을 깨닫고 억겁 동안 부처 지혜 생각하고서
있는 힘을 기울여 해설을 하고 한평생 다하여도 알지 못하니 부처님의 지혜는 한량이 없어 이렇듯 지극히 청정하니라.
목숨은 오래 살기 어려운 일 부처님 만나 뵙기 더욱 어렵고 믿음과 지혜 갖기는 또한 어려워 바른 법 들었을 때 힘써 닦으라.
법문 듣고 능히 잊지 않으며 뵈옵고 공경하면 큰 경사되니 그는 바로 나의 착한 친구라 그러므로 마땅히 발심할지니,
온 세계에 불길이 가득하여도 반드시 뚫고 나가 불법을 듣고 모두 다 마땅히 부처가 되어 생사에 헤매는 이 구제하여라.
제4절 극락세계 왕생의 과보(果報)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아, 극락세계의 보살들은 모두 보살의 가장 높은 자리인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이르게 되느니라. 그러나 그 원력에 따라서, 중생을 위한 큰 서원의 공덕으로 스스로를 장엄하고 두루 일체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고자 하는 보살들은 다음 생에는 부처가 되는 일생보처에 머물지 않느니라. 아난아, 극락세계의 모든 성문(聲聞)들은 그 몸에서 발하는 광명이 한 길이며, 보살들의 광명은 1백 유순(由旬)을 비추느니라. 그런데 그 보살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두 보살이 있는데, 뛰어나고 불가사의한 광명은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비추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어 물었다. “그 두 보살의 이름은 무엇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분은 관세음(觀世音)이라 하고 또 한 분은 대세지(大勢至)라 하느니라. 이 두 보살은 일찍이 이 사바세계에서 보살행을 닦다가 수명이 다하자 홀연히 몸이 바뀌어, 저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되었느니라. 아난아, 누구든지 극락세계에 태어난 중생들은 모두 32상(相)을 갖추었고, 지혜가 충만하여 모든 법의 이치를 깊이 깨달아 묘법을 밝히고 신통이 자재하며, 눈, 코 등 육근이 청정하고 밝으니라.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둔한 사람이라도 법문을 듣고 깨닫는 음향인(音響忍)과 진리에 수순하는 유순인(柔順忍)의 2인(二忍)을 얻게 되고, 근기가 수승한 사람은 본래 생멸이 없는 실상을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느니라. 또한 저 극락세계의 보살들은 성불할 때까지 지옥 아귀 축생의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신통이 자재하며 과거를 사무쳐 아는 숙명통을 얻느니라. 그러나 자신의 서원이, 흐리고 악한 오탁악세(五濁惡世)의 말세 중생들을 제도하려는 이는 마치 내가 일부러 사바세계에 태어나듯이 자재로이 다른 국토에도 태어나느니라. 아난아, 극락세계의 보살들은 아미타불의 위신력으로 한 식경(食頃) 동안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국토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부처님들을 공경하고 공양하느니라. 그런데 마음으로 생각만 하면 바로 꽃과 향과 음악과 일산과 깃발 등 모든 공양거리가 자연히 나타나는데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한량없이 진귀하고 미묘한 보물들이니라. 보살들은 그러한 귀중한 공양거리로 여러 부처님과 보살과 성문 대중에게 받들어 뿌리면 그 공양거리는 이내 허공중에서 아름다운 꽃 일산으로 변화하는데 그 광명은 찬란하게 빛나고 향기는 한없이 온 세계에 풍기느니라. 그런데 그 꽃 일산은 둘레가 4백리나 되는 것으로부터 삼천대천세계를 뒤덮는 것까지도 있는데, 그것들은 공양하는 일이 끝나면 앞뒤의 차례대로 자연히 사라져 가느니라. 그때 모든 보살들은 한없이 기뻐하여 다 함께 미묘한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고 아름다운 음성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며 법문을 듣고 환희하여 마지않느니라. 이렇듯 공양을 올리고 나서 보살들은 미처 한 식경이 지나기도 전에 홀연히 가볍게 날아서 극락세계에 돌아오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문과 보살들을 위하여 법문을 하실 때에는 모두 다 칠보로 된 강당에 모이게 하여 자세히 성불하는 가르침을 말씀하시며 미묘한 진리를 밝히시느니라. 법문을 들은 대중들은 환희에 넘치며 마음이 열리고 진리를 깨닫지 않는 이가 없느니라. 이때 사방에서 자연히 미풍이 불어와 보배나무에 살랑거리면 다섯 가지의 미묘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헤아릴 수 없는 천상의 꽃들이 바람에 날려 와서 비 오듯이 온 세계에 흩날려 춤을 추느니라. 이와 같이 자연의 공양이 끊임이 없는데, 모든 천신들도 백천 가지의 꽃과 향과 천만 가지의 음악으로 아미타불과 여러 성문과 보살들을 공양하고 꽃과 향을 뿌리며 갖가지 음악을 연주하면서 서로 앞뒤를 연달아 오고 가고 하는데 이때 대중들의 즐거움은 말로는 다할 수 없느니라. 아난아, 극락세계에 태어난 보살들은 법을 설할 때에는 언제나 바른 진리만을 말하고 부처님의 지혜에 수순(隨順)하여 그릇됨이 없고 모자람도 없느니라. 그리고 그 불국토에 있는 모든 물건에 대하여 내 것이라는 욕심이 없으니 그것들에 집착하는 마음도 없나니, 그래서 가고 오고 머무는 데에 조금도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 내키는 대로 자재로우니라. 또한 친하고 스스러운 간격이 없고 너와 나의 차별심이 없으니 서로 시새우고 시비를 다투는 마음이 나지 않으며, 다만 모든 중생을 사랑하는 큰 자비심만 가득하니 매양 상냥하고 부드러워 분하고 한스러운 마음이 없느니라. 그래서 모든 마음의 번뇌를 여의고 청정하여 중생 제도에 싫어하고 게으른 마음이 없느니라. 또한 보살에게는 평등하고 고결한 마음과 깊은 자비심과 평온한 마음으로 오직 진리만을 사랑하는 기쁘고 즐거운 환희심 뿐이니, 모든 번뇌를 소멸하고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의 마음을 멀리 여의었느니라. 그리고 보살들은 모든 보살행을 닦아서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느니라. 그들은 깊은 선정과 바른 지혜의 힘으로 마음의 작용과 몸의 동작이 자유자재한 3명(三明)과 6신통(六神通)을 얻고, 마음은 언제나 참과 거짓을 가려 닦는 7각지(七覺支)에 머물게 하여 오로지 불법을 닦는데 전념하느니라. 그래서 보살들은 5안(五眼)을 원만히 갖추고 있는데, 형상을 보는 육안(肉眼)은 맑고 밝아서 모든 사물을 분명히 알아보지 못함이 없고, 천안(天眼)을 통달하여 시방세계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 등 무한한 시간 공간을 꿰뚫어 보는데 걸림이 없으며, 법안(法眼)을 통달하여 일체 만유의 차별상을 관찰하고 가지가지의 가르침을 밝히며, 혜안(慧眼)을 통달하여, 심오한 진리를 깨달아 능히 영생의 피안에 이르며 또한 위에 말한 네 가지 지혜의 안목을 원만히 갖춘 불안(佛眼)으로 일체 만법의 근본 실상을 사무쳐 깨달았느니라. 그리고 보살들은 걸림 없는 지혜로 중생을 위하여 불법을 연설하며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등 3계(三界)가 본래 공(空)하여 집착하고 취할 바가 없음을 관찰하여 오로지 불법만을 받들어 행하고, 모든 변재를 갖추어 중생의 번뇌 병을 없게 하느니라. 보살은 본래 진여(眞如)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모든 법이 진여와 같이 생멸이 없이 여여(如如)함을 깨달았으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4제(四諦) 등 능히 사악(邪惡)을 멸하는 방편의 가르침을 베풀며, 또한 세속의 속된 말을 좋아하지 않고, 매양 정법(正法)의 진리만을 즐겨 말하느니라. 또한 보살들은 모든 선근(善根)을 닦고 그 뜻은 항시 불도를 숭상하며, 일체 만법의 본질이 생멸을 여읜 적멸(寂滅)임을 깨달아 생사(生死)와 번뇌를 다 여의었느니라. 그래서 심오한 불법을 들어도 마음은 추호도 의혹과 두려움이 없이 한결같이 올바르게 수행하느니라. 그리고 그 보살들의 대자대비는 모든 중생을 다 감싸고 거두지 않음이 없으며, 마침내 모든 중생이 성불하는 일승법(一乘法)을 밝히고 일체 중생을 영생의 피안에 인도하느니라. 이렇듯 보살들은 이미 의혹의 그물을 끊었으니 지혜는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갖추어 남음이 없느니라. 또한 보살들의 지혜는 한량이 없어 바다와 같고, 삼매(三昧)는 수미산과 같이 고요하여 동요가 없으며, 해와 달보다도 더 밝은 지혜 광명은 청정하고 결백한 불법을 원만히 갖추었느니라. 그래서 보살들의 고결한 마음은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설산(雪山)과 같아서 모든 공덕을 평등하게 갖추어 치우침이 없고, 또한 대지와 같아서 정결하고 더럽고, 좋고 궂은 차별심이 없으며, 또한 모든 번뇌의 때를 말끔히 씻는 청정한 물과 같고, 마치 타오르는 불길과 같이 일체 번뇌의 숲을 태워 없애며, 폭풍과 같이 모든 장애를 무너뜨리며, 허공과 같아서 일체 모든 것에 대하여 집착이 없고, 또한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과도 같이 세속에 처하여도 오염되지 않느니라. 그리고 또한 보살들의 마음은 마치 큰 수레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을 태우고 생사(生死)의 불바다를 빠져나오게 하며, 우렁찬 불법의 뇌성으로 중생들을 깨우치는 것은 짙은 구름과 같고, 감로수와 같은 법문으로 중생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것은 산천을 흠뻑 적시는 단비와 같고, 마군의 무리와 외도들의 핍박에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견고한 금강산과 같고, 또한 저 범천왕과 같아서 모든 착한 일체는 언제나 으뜸이 되며 또한 가장 높이 우거져 다른 나무들을 뒤덮는 니구류나무와 같이 두루 일체 중생을 감싸는 자비의 그늘이 되나니, 참으로 이러한 보살들은 3천년 만에 한 번 피는 우담바라 꽃과도 같이 드물고 고귀하여 만나보기 어렵우리라. 또한 보살들은 새들의 왕인 금시조와 같아서 위신력으로써 외도들을 항복받으며, 또한 마음이 담백하여 저장하고 쌓아놓지 않고 욕심이 없는 것은 떼를 지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와 같으며, 황소와 같이 한사코 모든 번뇌를 이기며, 거대한 코끼리와 같이 능히 삿된 무리들을 항복 받으며, 또한 용맹무쌍한 사자왕과도 같이 일체 모든 것에 두려움이 없으며, 또한 저 광대무변한 허공과도 같아서 넓고 평등한 대자대비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느니라. 아난아, 보살들은 또한 질투심을 모조리 끊어버렸기 때문에 남을 이기려 하거나 시새우지 않고 오로지 불법만을 즐겨 닦아서 싫고 만족하는 일이 없으며, 항상 중생을 위하여 널리 설법함을 좋아하고 아예 피로하고 게으른 마음이 없느니라. 그래서 보살들은 매양 진리의 북을 치고, 법의 깃발을 세우고, 지혜의 광명을 비추어 중생의 어두운 어리석음을 없애며, 항시 육화경(六和敬)을 닦아서 모든 중생과 화합하며, 언제나 진리를 베푸는 법시(法施)를 행함에 더욱 세차게 정진하여 조금도 물러서는 마음이 없느니라. 또한 보살들은 세상의 등불이 되어 가장 수승한 복밭(福田)이 되고, 항상 중생을 평등하게 인도하는 도사가 되어 사랑하고 미워하는 차별이 없으며, 오직 바른 진리만을 즐기고 다른 기쁨과 시름이 없느니라. 또한 모든 중생의 탐욕의 가시를 뽑아내어 그들의 마음을 온화하게 하는 등 보살들의 모든 공덕은 참으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느니라. 그리고 보살들은 탐심과 진심과 치심 등 삼독(三毒)의 장애를 없애고 온갖 신통에 자재하며, 모든 인연의 힘과 의지의 힘과 서원(誓願)의 힘과 또는 방편의 힘과 끝내 변심하지 않는 힘, 선의 힘, 선정의 힘, 지혜의 힘, 많은 지식의 힘과 보살이 수행하는 육바라밀의 힘과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관찰하는 힘과 3명, 6통의 힘과, 모든 중생을 불법으로 다스려 조복 받는 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위신력을 모두 갖추어 자재롭게 중생을 제도하느니라. 그래서 극락세계의 보살들은 그 몸의 상호와 공덕과 변재를 원만하고 장엄하게 갖추어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이 보살들은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며 또한 항상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보살들을 칭찬하시어 마지않느니라. 그리고 보살들은 성불하는 모든 바라밀(波羅蜜)을 끝까지 밝히고 공무상무원삼매(空無相無願三昧)와 불생불멸한 모든 삼매를 닦아서 성문과 연각 등 소승의 경계를 멀리 여의었느니라. 아난아, 저 극락세계의 보살들은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느니라.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하여 그 대강만을 간략히 말했을 뿐이며 만약 그 공덕을 자세히 말한다면 백천만겁의 오랜 세월을 두고도 다할 수 없느니라.”
제5절 부처님의 권유와 경계 (권계勸誡)
1. 삼독(三毒)을 경계함
부처님께서 미륵보살과 천신과 인간 등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극락세계의 성문과 보살들의 공덕과 지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며 또한 극락세계는 한량없이 미묘하고 안락하며 청정하고 장엄함은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으니라. 그러니 어찌하여 중생들은 힘써 선을 닦고 천연한 대도(大道)에 순응하여 상하 귀천의 차별이 없이 평등하고 한없이 자유로운 보람을 얻지 않을까 보냐? 모름지기 다 각기 부지런히 노력하고 정진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공덕을 닦을지니라. 그러면 반드시 생사의 바다를 뛰어넘어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수라와 인간 등 5악취(五惡趣)의 인연을 여의고 공덕이 한량없는 성불의 길에 오르게 되느니라. 참으로 극락세계에 가는 길은 쉽건마는 가는 사람이 없구나! 저 아미타불의 정토인 극락세계는 어느 누구도 방해하지 않으며, 아미타불의 원력을 의심 없이 믿기만 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자연히 이끌려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될 터인데 어찌하여 세상일을 뒤로 미루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성불의 공덕을 구하지 않을 것인가! 극락세계에 태어나면 영원히 불멸한 한량없는 수명을 얻고 지극한 즐거움이 한이 없느니라.
2. 탐욕(貪慾)의 고통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저속하여 급히 닦아야 할 성불의 길은 뒤로 미루고 하잘 것 없는 세속 일에 골몰하여 서로 다투느니라. 그들은 세상의 모진 죄악과 심란한 고통 속에서 다만 자신을 위하여 생활에 허덕이고 있느니라. 그래서 그 신분이 귀하거나 천하거나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모두 한결같이 재물에만 눈이 어두워 애를 쓰니, 있는 이나 없는 이나 그 시름은 마찬가지니라. 그리하여 매양 서둘고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얽히고 쌓인 욕심과 근심으로 사뭇 쫓기고 싸대야 하나니 잠시도 마음 편할 사이가 없느니라. 그래서 논밭이 있으면 논밭 때문에 걱정하고, 집이 있으면 집 때문에 걱정하며 소나 말 등의 가축이나 노비나 금전, 의복, 음식 등 세간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재산을 가진 사람은 또한 그것 때문에 근심과 걱정을 거듭하여 시름과 두려움이 끊이지 않느니라. 그런데 뜻밖에 수재나 화재를 만나서 불에 태우고 물에 떠 날리기도 하며, 도적이나 원한이 있는 이나 빚쟁이들한테 빼앗기기도 하여 재물이 흩어져 없어지면 마음은 답답하고 분한 괴로움에 풀릴 날이 없으며, 옹졸하고 굳어진 마음에서 헤어날 수 없느니라. 그래서 마음이 멍들고 몸이 허물어져 목숨이 다하게 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지 않을 수 없건만, 그 아무 것도 따르는 것이 없나니, 이러한 서글픔은 존귀한 이나 부자나 매 한가지니라. 이와 같이 갖가지 근심과 두려움과 애타는 괴로움은 끝이 없으니, 마치 어둠 속이나 불 속의 괴로움과 같으니라. 그런데 가난하고 천한 사람은 매양 군색하고 불만한 마음이 그치지 않으며 논밭이 없으면 논밭을 가지려고 애쓰고, 집이 없으면 또한 그것을 가지려고 애쓰며, 마소(馬牛) 등의 가축이나 종들이나 금전, 의복, 음식 등의 재산이 없으면 이를 가지려고 사뭇 안달하며 괴로워하느니라. 그래서 한 가지가 있으면 다른 것이 부족하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부족하여, 애써 이것저것을 다 함께 가지려 하며, 어쩌다가 모두 갖추어 가졌다 할지라도 오래가지 못하고 어느덧 없어지고 마느니라. 결국 근심하고 괴로워하여 다시금 구하려 찾아 헤매나 얻을 수 없으면 부질없이 마음만 태우고 몸도 마음도 지치고 피곤하여 안절부절 못하게 되느니라. 그리하여 매양 근심과 괴로움이 끊이지 않고 마치 얼음을 안고 불을 품고 있는 것과 같으니라. 그리고 그러한 괴로움과 근심 때문에 몸을 상하고 목숨을 잃기도 하나니, 평소에 착한 일을 하지 않고 진리를 닦거나 공덕을 쌓지도 못한 채 몸을 버리고 허무히 홀로 돌아가게 되느니라. 그래서 악업에 이끌려 악도(惡道)에 태어날 수밖에 없지마는 그 선악의 길마저도 모르고 가느니라.
3. 진심(瞋心)의 고통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부자나 형제나 부부, 가족, 일가, 친척 간에는 마땅히 서로 공경하고 사랑해야 하며 결코 미워하거나 시새우지 말지니, 있는 것 없는 것을 서로 상통하여 탐내거나 인색하지 말며, 매양 상냥한 말과 부드럽고 화평한 얼굴로 상대하여 아예 다투지 말아야 하느니라. 혹시 다투게 되어 분한 마음이 남게 디면 비록 이 세상의 원한은 적다고 할지라도 그 쌓이고 쌓인 미워하는 마음으로 다음 세상에서는 큰 원수가 되고 마느니라.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이 세상일이란 서로서로 미워하고 괴롭히고 하여도 그것이 바로 드러나서 크게 벌어지지는 않지마는 서로 마음속으로 독을 품고 노여움을 쌓고 분함을 맺어서 풀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고 자라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니 필경에는 다 같이 한 세상에 태어나서 서로 앙갚음을 하게 되느니라. 인간은 이 세상 애욕의 바다에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는 것이며 어떠한 고락(苦樂)의 처소에서도 자기가 지은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는 스스로 받고 스스로 감당해야 하며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는 없느니라. 그래서 착한 일을 행한 사람은 몸을 바꿀 때 행복한 처소에 태어나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재앙이 많은 처소로 각기 태어날 곳을 달리하여 업에 따라 엄연히 정해진 처소로 어김없이 나아가야 하느니라. 그래서 멀리 떨어진 다른 처소에 태어나게 되면 이승에서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도 서로 만나볼 수 없나니, 이와 같이 금생에 지은 선악의 행위와 내세에서 받는 고락의 과보는, 변함없는 자연의 도리로서, 각기 지은바 소행에 따라서 태어날 뿐이니라. 그리하여 가는 길은 멀고도 어두워 서로 오랜 이별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에 다시 만나볼 기약이 없으니, 서글프고 아득하여 다시금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느니라. 그러한데도 세상 사람들은 어찌하여 덧없고 너절한 세상일을 뒤로 미루지 않고, 몸이 젊고 건강할 때에 힘을 다하여 선을 닦고 더욱 정진하여 고해를 벗어나려 하지를 않는가. 어찌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의 대도를 구하려 하지 않는 것인가. 도대체 이 세상에서 그 무엇을 기대하고 그 어떠한 즐거움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4. 우치(愚痴)의 고통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은 선을 행하여 안락을 얻고 진리를 닦으면 불도를 성취하는 도리를 믿지 않고, 또한 사람은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는 것과 은혜를 베풀면 반드시 복을 받는다는 선악 인과의 엄연한 사실을 믿지도 않으며 세상일이란 그렇지가 않다고 그릇 생각하고 끝내 바른 가르침을 믿으려 하지 않느니라. 그리고 이러한 그릇된 생각에 의지하여 더욱 이것을 옳다고 고집하여 우기는데, 늙은이나 젊은이나 다 한결같이 그러하니라. 따라서 인과의 도리를 부정하는 그릇된 생각을 대대로 이어받고 부모는 자식에게 그것을 도리어 교훈으로 가르치게 되느니라. 따라서 선배나 조상들도 아예 선을 닦지 않고 도덕을 모르기 때문에 깨달을 기회가 없으며, 그래서 그 행동은 어리석고 정신은 더욱 어두워서 마음은 막히고 옹졸하게 되느니라. 그렇기에 죽고 사는 생사의 이치와 선악 인과의 도리를 알 수도 없고, 또한 그에게 말하여 들려줄 사람도 없느니라. 그러나 정녕, 인간의 길흉화복은 인과의 도리에 의하여 어김없이 스스로 이를 받는 것이니 추호도 다를 리가 없느니라. 인간이 죽고 사는 생사의 법칙은 언제나 변함없는 떳떳한 도리로서 영원히 이어나가고 있느니라. 혹은 부모는 자식을 잃고 슬퍼하고, 자식은 부모가 돌아가서 통곡하며 형제간 부부간에도 서로 죽음을 당하여 애통해 하지 않을 수 없느니라. 그런데 죽음에는 늙고 젊음의 차례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은 무상(無常)한 인생의 실상이니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마는 것, 항상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그런데 이러한 무상의 도리를 말하여 깨우치려 하나, 이를 믿는 사람은 너무나 적고 그렇기에 생사는 유전하여 잠시도 그칠 사이가 없느니라. 또한 이러한 사람은 마음이 어리석고 어두워 반항적이기 때문에 성인의 말씀을 믿지 않고 멀리 앞을 내다보는 슬기 없이 다만 각자의 쾌락만을 탐하여 마지않느니라. 그래서 애욕에 미혹되어 도덕을 깨닫지 못하고 매양 애착과 미움과 분노에 잠겨, 마치 이리와도 같이 다만 처자 권속과 재물만을 아끼고 탐낼 뿐이니라. 그렇기에 생사를 여의는 대도(大道)를 얻지 못하고 마침내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 등 삼악도에 떨어져서 생사윤회(生死輪廻)가 끝이 없나니,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하기 그지없느니라. 세상살이란, 어떤 때는 한 가족의 부모 자식이나 형제나 부부간에 누군가가 먼저 죽게 되면, 남은 사람은 못내 슬퍼하고 못 잊어하여 마지않느니라. 그래서 그 은혜와 사랑으로 마음이 얽매어 쓰라리고 그리운 심정은 가슴에 사무치고, 날이 가고 달이 바뀌어도 맺힌 마음은 풀릴 길이 없느니라. 그렇기에 참된 도리를 말하여 일러주어도 그들의 마음은 열리지 않고, 먼저 가버린 사람과의 정리를 생각하면서 마음은 혼미하고 답답하여 더욱 어리석은 미망에 덮이게 되느니라. 그래서 깊이 생각하여 헤아릴 아량이 없고, 마음을 돌이켜 오로지 불도에 정진할 만한 결단이 없으며, 끝내 덧없고 너절한 세상일을 단념할 수 없느니라. 그리하여 한 세상 허둥지둥 헤매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나니, 이미 목숨이 다하면 진리의 길은 닦을 수도 얻을 수도 없고 참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느니라. 세상은 온통 혼탁하여 인심은 어리석고 어지러워 거의 다 애욕만을 탐하고 있으니, 인생의 길을 헤매는 사람은 수없이 많고 진리를 깨달은 이는 지극히 드무니라. 그러니 세상일이란 부질없이 바쁘고 어지럽기만 하여 믿고 의지할 아무 것도 없느니라. 또한 빈, 부, 귀, 천이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결같이 애쓰고 싸대며 그러다가 서로 이해가 충돌하면 원수같이 미워하나니 그 사납고 표독한 마음은 마침내 불행한 재앙을 일으키게 되느니라. 이렇듯 천지의 바른 도리를 거스르고 인간의 참다운 본심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저절로 그릇된 악업은 앞뒤를 다투어 거듭되고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다만 그 죄업의 결과만을 기다릴 뿐 달리 어찌할 수 없느니라. 그래서 미처 그 수명이 다하기도 전에 죄업의 힘은 별안간에 그의 목숨을 빼앗아 악도(惡道)에 떨어뜨리고 마는 것이니, 몇 생을 거듭하며 지독한 괴로움을 받지 않을 수 없느니라. 그리고 그 사나운 악도 가운데서 돌고 돌며 몇 천만 겁의 오랜 세월이 지나도 나올 기약이 없고 그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나니,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한 일이니라.”
제6절 미륵보살과 여러 대중에게 권유
부처님께서는 다시 미륵보살과 천신들과 여러 대중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그대들에게 어지러운 세상일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부질없는 세상의 번뇌에 얽매어 살기 때문에 성불의 길을 닦지 못하게 되느니라. 그러니 마땅히 깊이 생각하고 잘 살펴서 모든 악업을 멀리 여의고 옳고 착한 일을 가려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런데 인간의 애욕과 영화는 아침 이슬과 같아서 오래 보존하지 못하고 모두 덧없이 흩어지고 마는 것이며, 세속 일에는 참다운 즐거움이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니 다행히 부처님의 법을 만났을 때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해야 하느니라. 정성을 다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서원을 세우는 이는 그 지혜가 밝게 통달하고 그 공덕 또한 한량이 없을 것이니, 모름지기 욕심 내키는 대로 행하지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거역하지 말며, 올바른 일에는 남에게 뒤지지 말도록 하여라. 그리고 만약 의심이 있거나 불법을 잘 모르는 이는 남에게 낱낱이 물을지니 내 그대들을 위하여 자세히 말하여 주리라.” 그때 미륵보살이 무릎을 꿇고 공손히 예배하고 나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위신력이 고귀하시고 말씀하신 법문은 참으로 거룩하시어 충심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깊이 생각할 때 세상 사람들은 참으로 천박하기 그지없으니, 부처님의 말씀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이제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성불의 대도를 밝혀 주시니 저희는 눈과 귀가 뚫리고 미혹된 마음이 열려 영원한 구제를 얻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거룩하신 가르침을 듣고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많은 천신이나 인간들이나 미물 곤충에 이르기까지도,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혜를 입고 근심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부처님의 교훈은 한없이 깊고 위없이 높으시며 지혜의 광명은 한량없이 밝으시어 시방삼세의 모든 일을 두루 살피시고 추호도 막힘이 없으십니다. 이제 저희들이 제도를 받게 된 것은 오로지 부처님께서 과거 전생에 진리를 구하시기 위하여 매양 겸허하시고 갖은 난행, 고행을 다하신 덕분이며 그 은혜는 천지를 뒤덮고도 남음이 있고 그 복과 덕은 태산보다도 더 높으십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광명은 온 세계를 두루 비추시고, 일체 만법이 공(空)한 이치를 통달하시어 중생으로 하여금 영생의 열반에 들게 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때로는 경전으로 가르치시고 혹은 위엄으로써 항복을 받아 교화하시는 등 그 은덕은 두루 시방세계를 감동케 하나이다. 참으로 부처님께서는 진리의 왕이시고 모든 성인보다 뛰어나게 높으시어 일체 천신과 인간의 스승이 되시고 중생들의 근기를 따라서 모두 다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저희들은 이제 부처님을 만나 뵈옵고, 또한 아미타불과 극락세계에 대한 말씀까지를 들었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참으로 부처님의 은혜로 마음이 열리고 광명을 얻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말한 것은 모두 옳으니라. 누구든지 부처님을 따르고 공경하게 되면 진실로 위대한 공덕이 되는 것이니, 부처님은 천상, 천하를 통하여 오랜 세월로 두고도 출현하기는 지극히 드문 일인데, 지금 나투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부처를 이루고 불법을 연설하여 온갖 의혹의 그물을 끊고 애욕의 뿌리를 뽑아서 모든 죄악의 근원을 막았으며, 욕계, 색계, 무색계의 3계 중생을 제도하는데 걸림이 없느니라. 그리고 내가 이 경전에서 말하는 법문은 모든 진리의 정수로서, 가장 요긴한 지혜를 지니고 있으며 소상하고 분명하느니라. 내 이제 이 법문을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상 등 5취(五趣)의 중생에게 베풀어 아직 미혹한 이를 제도하여 생사고해를 여의고 결정코 영생의 열반에 이르도록 인도하고자 하느니라. 미륵이여, 잘 알아 두어라. 그대는 헤아릴 수 없는 오랜 과거로부터 보살행을 닦아서 중생을 제도하려고 힘써 왔느니라. 그리하여 그대의 가르침에 따라서 진리를 깨닫고 영생의 열반에 이른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라. 그러나 그런데도 그대를 비롯하여 시방세계의 모든 천신과 인간과 여러 중생들이 영겁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량없는 세월을 두고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상 등 5도(五道)에 굴러다니며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고생함은 이루 말할 수 없나니, 그 덧없는 생사의 흐름은 금생까지도 계속되고 있느니라. 그런데 그대들은 이제 부처님을 만나서 생사를 벗어나는 법문을 듣고 또한 다시 아미타불의 한량없는 공덕을 알게 되었으니, 어찌 통쾌하고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 그대들의 기쁨과 행복을 도와주고자 하느니라. 그러니, 그대들은 이제 한결 절실하게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싫어하는 마음을 자아내야 하느니라. 이 세상에는 언제나 죄악이 넘치고 부정하여 진정한 즐거움은 없는 것이니, 모름지기 몸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더욱 더욱 많은 선행을 닦도록 하여라.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마음의 때를 없애며, 항시 말과 행동을 성실히 하여 표리가 없고, 자기만을 제도할 뿐만 아니라 남도 구제하며, 언제나 맑은 정신으로 성불의 서원을 굳게 세워 많은 공덕을 쌓도록 하여라. 한평생 애쓰고 수행하는 고생은 어느덧 지나고 마는 것, 그러나 후세에는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태어나서 안온한 즐거움은 한이 없으며, 공덕과 지혜는 더욱 쌓이고 밝아서 영원히 생사의 뿌리를 뽑고, 아예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은 고뇌가 있을 수 없느니라. 그리고 그 수명은 1겁이든 백겁이든 천만겁 동안이라도 마음대로 자재롭게 누릴 수가 있느니라. 또한 극락세계는 모든 것이 진리에 따라 자연히 이루어진 실상의 세계로서 영원히 안락한 열반의 경지와 같으니라. 그러니 그대들은 모름지기 각기 정진을 거듭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서원을 실천하도록 하여라. 부질없이 의혹을 일으켜 가다가 그만두면, 그것이 허물이 되어 저 극락의 변두리에 있는 칠보 궁전에 태어나 5백 년 동안이나 삼보를 만나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져서 여러 가지 재난을 받아야만 하느니라.” 미륵보살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사뢰기를, “부처님의 간곡하신 가르침을 받자오니 오로지 정성을 다하여 불도를 닦아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받들어 행하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겠사옵니다.”
1. 오악(五惡)을 경계함
부처님께서 다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이 세상에서 마음과 몸을 바르게 하고 악한 일을 범하지 않으면 참으로 훌륭한 공덕이 아닐 수 없느니라. 그리고 그것은 시방세계의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수승한 일이 되나니,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모든 국토의 천신과 인간들이 스스로 선을 행하고 악을 짓지 않으면, 그들을 교화하기가 지극히 쉽기 때문이니라. 이제 내가 이 세상에서 부처님이 되어, 다섯 가지 죄악인 살생 도둑질 음행 망어 음주 등의 5악(五惡)과 그 5악으로 말미암은 현재의 다섯 가지 고통인 5통(五痛)과 미래에 받을 다섯 가지 고통인 5소(五燒)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내는 것은, 지극히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느니라. 그래서 중생들을 교화하여 다섯 가지 죄악을 버리게 하고, 다섯 가지 고통을 여의게 하며, 다섯 가지 죄보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그들의 마음을 달래어 다섯 가지 선업을 닦아서 복덕과 구원과 장수(長壽)와 영생의 열반을 얻게 하려 하느니라. 그러면 어떠한 것이 5악(五惡)이고 무엇이 5통(五痛)과 5소(五燒)이며, 또한 어떻게 하면 오악을 없애고 5선(五善)을 닦아서 그 공덕으로 생사고해를 여의고 한량없는 수명을 누리는 열반의 행복을 얻게 되는지를 자세히 말하리라.”
2. 첫째의 죄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그 5악(五惡) 중에서 첫째의 죄악에 대하여 말하리라. 무릇 천신이나 인간을 비롯하여 곤충 등의 미물에 이르기까지 매양 갖가지 악한 행동을 하는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억누르고, 또한 서로 해치고 죽이고 하며, 잡아먹고 먹히고 하느니라. 그래서 착한 일을 할 줄 모르고 극악무도하여 그 과보로 재앙과 벌을 받게 되며, 필경에는 악도에 떨어져 한량없는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것이니라. 천지신명은 모든 중생의 소행을 기억하여 그 죄업을 용서하지 않는 것이니, 그렇기에 가난한 사람과 천한 사람, 거지와 고독한 사람,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 바보 또는 포악한 자, 미치광이, 병신 등의 차별이 있는 것이니라. 그러나 한편 존귀한 사람이나 부자나 지혜가 밝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과거세에 자비롭고 효순하여 선을 닦고 덕을 쌓은 과보이니라. 세상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인간의 떳떳한 도리가 있고, 나라에도 그 국법에 따른 감옥이 있어서 죄를 삼가지 않고 법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 악의 죄보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어, 벗어나려 하여도 모면하기 어려운데, 이러한 일은 이 세상에서도 눈앞에 흔히 볼 수 있는 사실이니라. 그런데 수명을 마치고 후세에 받는 괴로움은 더욱 심각하고 험난하여, 어두운 저승에 들어가서 다른 못된 몸으로 태어나서 받는 고통은 마치 이 세상 법에서 지극히 무거운 형벌을 받는 것과 같으니라. 그리하여 악업의 힘으로 피할 길 없이 3악도(三惡道)의 한량없는 고뇌를 받는 것이니, 이와 같이 그 업에 따라 몸을 바꾸고 태어나는 처소를 달리하여 그 수명이 혹은 길기도 하고 혹은 짧기도 한데, 정신은 자연히 그 몸에 따라 굴러가느니라. 그리고 태어날 때는 혼자이나, 전생에 원한이 있으면 서로 같은 곳에 태어나서 보복하여 마지않으며, 그 악업의 종자가 다하기 전에는 서로 떠날래야 떠날 수도 없느니라. 이와 같이 그러한 악도(惡道)에 굴러다니며 나올 기약이 없고 벗어날 도리가 없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느니라. 이렇듯, 천지에는 자연히 엄연한 인과의 도리가 있는 것이니, 비록 선과 악을 행하고 바로 즉시에 안락하고 괴로운 처소에 이르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조만간에 반드시 그 과보를 받지 않을 수 없느니라. 그래서 이러한 것을 ‘첫째의 죄악’이라 하고 그 과보로서 현세에 받는 괴로움을 ‘첫째의 고통’이라 하며 후세에 받을 죄보를 ‘첫째의 불길’이라 하나니, 그 지독한 고통은 마치 타오르는 맹렬한 불로 그 몸을 태우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러한 혼탁한 세상에서도 능히 마음을 가다듬어 사악한 마음을 억제하고 행동을 바르게 하며 힘써 선을 닦고 악을 범하지 않으면, 그는 죄보의 괴로움을 벗어날 뿐 아니라 그 복덕으로 필경에는 생사의 고해를 초월하여 영원한 열반의 길을 얻게 되나니, 이것을 ‘첫째의 큰 선(大善)’이라 하느니라.
3. 둘째의 죄악
이제 그 둘째의 죄악에 대하여 말하리라. 세상 사람들이 부모 자식이나 형제간 부부 친구들 사이에 서로 의리가 없고 법도에 따르지 않으며, 사치하고 음란하고 교만 방종하여 각기 자기의 쾌락만을 추구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여 서로 속이며 마음과 말이 같지 않고 아예 진실한 마음이 없느니라. 또는 한 나라의 임금과 신하 사이에도, 신하는 충성이 없고 간사하여 말과 겉만을 꾸며서 아첨하며, 어진 이을 시새우고 착한 이를 비방하여 부당하게 죄에 떨어뜨리며 또한 임금은 밝은 안목이 없이 함부로 신하를 등용하므로 신하는 마음대로 삿된 짓을 하느니라. 더러는 충실한 신하가 있어서 나라의 법도를 잘 지키고 행위가 바르며 능히 나라를 다스리는 경륜이 밝더라도 위에 있는 자가 바르지 못하면 그는 모함을 당하여 필경에는 어진 신하를 잃고 마는 것이니 이는 천지의 도리를 배반하는 일이니라. 이와 같이 신하는 임금을 속이고 자식은 그 부모를 속이며 형제나 부부나 친한 벗들 사이에도 서로 속이고 제각기 탐욕과 노여움과 사특한 마음을 품고 매양 자신만을 위하여 많이 가지려고만 탐착하느니라. 그리고 이러한 것은 귀한 자나 천한 자나 상하 귀천이 다 그러하며 그래서 드디어는 집을 망하고 자신을 해치고 나아가서는 여러 친족이나 나라까지도 멸망하게 하느니라. 혹은 어떤 때에는 가족이나 벗들이나 마을 사람들이나 간에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끼리 같이 일을 도모하는데 그 이해가 틀리면 서로 미워하고 원한을 맺게 되느니라. 또한 어떤 사람은 부자이면서도 인색하여 남에게 베풀 줄을 모르며 다만 재물만을 탐착하는 마음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하다가 필경에는 의지할 데가 없느니라. 진정 인간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아무도 그를 따르는 사람이 없느니라. 그러나 선을 행하여 복을 받고 악을 범하여 재난을 당하는 엄연한 인과의 도리는 몸을 바꾸어도 떠나지 않고 따라와서 혹은 안락한 처소에 태어나고 혹은 고통의 구렁에 들어가게 되나니 뒤늦게 아무리 뉘우쳐도 돌이킬 수 없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고 슬기가 없어서 착한 이를 도리어 미워하고 비방하여 그의 착함을 따르려 하지 않고, 다만 그릇된 일만을 좇아서 함부로 법도를 어기고 마느니라. 또한 어떤 사람은 매양 도둑 마음을 품고 남의 재물과 이익을 시새우고 부러워하며, 혹 재물을 얻을 때에는 부질없이 소비하여 흩어 버리고는 다시 탐하여 마지않느니라. 그와 같이 마음이 삿되고 바르지 않기 때문에 매양 남의 눈을 두려워하며, 미리 헤아리는 마음이 없어, 불행한 일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후회하느니라. 금생에는 나라의 법에 따른 감옥이 있어서 죄에 따라 그 벌을 받아야 하고 또한 전생에 도덕을 믿지 않고 선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금생에 와서도 다시 죄를 짓게 되느니라. 천지신명은 그 죄를 기억하고 인과의 명부에 기록하여 그 태어날 처소를 구별하게 되는 것이니, 그래서 수명이 다하면 영혼은 악도(惡道)에 떨어지고 업력에 의하여 자연히 지옥 아귀 축생 등의 한량없는 고뇌를 받게 되느니라. 그리고 그러한 삼악도에서 굴러다니며 몇 천겁을 거듭하여도 나올 기약이 없고 풀려날 길이 없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느니라. 이러한 것을 ‘둘째의 죄악’이라 하고 그 과보로써 현세에 받는 고통을 ‘둘째의 고통’이라 하며, 내세에 받을 죄보를 ‘둘째의 불길’이라 하는데, 이와 같은 지독한 괴로움은 마치 타오르는 맹렬한 불로 몸을 태우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러한 혼탁한 세상에서도 능히 일심으로 삿된 마음을 억제하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여 애써 선을 행하고 악을 범하지 않으면 저절로 악도에서 벗어나, 그 복덕으로 구원을 얻어 천상에 태어나고 나아가 영생하는 열반의 행복을 얻을 수 있나니 이러한 것을 ‘둘째의 큰 선(大善)’이라 하느니라.”
4. 셋째의 죄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그 셋째의 죄악에 대하여 말하리라. 세상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이 천지간에 살고 있는데, 그들이 누리는 수명은 별로 길지 못한 무상한 것이니라. 그리고 위로는 현명한 사람, 덕이 있는 사람, 존귀한 사람이나 부자 등이 있고, 아래로는 가난한 사람, 미천한 사람, 불구자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악한 자가 있어서 매양 삿된 마음을 품고 애욕의 번뇌로 가슴은 답답하여 마음이 설레고 안절부절 못하여 다만 부질없이 이익만을 얻으려고 하느니라. 그리고 이성에 눈독을 올려 음란한 마음을 품고 자기 배우자를 싫어하고 미워하며, 남모르게 다른 이성과 사귀면서 재산을 낭비하고 드디어 법도를 어기게 되느니라. 또한 어떤 때는 한 패거리가 모여서 싸움을 일으켜 서로 때리고 찌르고 하며 무도한 강탈을 감행하느니라. 또는 삿된 마음으로 항상 남의 재물에 탐을 내어 스스로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도둑질이나 사기를 해서 얼마간의 이익이 있으면 욕심은 더욱 불타서 엉뚱한 큰일을 꾸미게 되느니라.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항상 겁내고 두려워하지만 남에게는 협박 공갈을 일삼고 다만 자기 처치만을 위하느니라. 또한 마음에 절제가 없이 항시 쾌락만을 좇아서 즐기며, 친족이나 위아래를 가리지도 않고 매양 부질없는 짓을 하여 가족과 사회가 다 근심하고 괴로워하느니라. 이러한 사람들은 또한 나라의 법령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없느니라. 이러한 악한 짓은 비단 사람에게만 알려질 뿐 아니라, 안 보이는 귀신에게도 알려지고, 해와 달도 비쳐보며, 천지신명도 이를 소상히 기억하게 되느니라. 그리하여 자연히 삼악도(三惡道)의 무량한 고뇌를 받게 되고, 또한 그 가운데서 오랜 겁 동안 삶을 거듭하여 굴러다니면서 나올 기약이 없고 풀려 날 도리가 없나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느니라. 그래서 이러한 것을 ‘셋째의 죄악’이라 하고 그 죄의 과보로 현세에 받는 고통을 ‘셋째의 고통’이라 하며 내세에 받을 죄보를 ‘셋째의 불길’이라 하는데 지극한 괴로움이 한량이 없어서 마치 큰 불더미로 몸을 태우는 것과 같으니라. 그런데 이러한 중생들 가운데서도 일심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행동을 바르게 하여 모든 선을 닦고 악을 범하지 않으면, 이러한 사람은 비단 악도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그 복덕으로 구원을 얻어 천상에 태어나고, 나아가서는 삼계를 뛰어넘어 영생하는 열반의 행복을 얻을 수 있나니, 이러한 것을 ‘셋째의 큰 선(大善)’이라 하느니라.”
5. 넷째의 죄악
부처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그 넷째의 죄악에 대하여 말하리라. 세상 사람들은 선을 닦으려 생각하지도 않고 서로 충동하여 나쁜 짓을 하며, 매양 이간질과 욕설과 거짓말과 음란한 말을 일삼고, 남을 참소하여 서로 원수가 되고 서로 싸우고 소란을 피우며, 착한 이를 시새워 미워하고 현명한 사람을 무너뜨리고 마느니라. 또한 다만 자기들 내외간만 즐기려 하고 부모에게 불효하고, 스승과 어른들을 소홀히 하고 친구 간에도 전혀 성실한 의리가 없느니라. 그리고 존귀한 자리에 오르면 더욱 뽐내고 자기가 마치 천지의 도리를 아는 듯이 장담하여 함부로 위세를 부리고 남을 가벼이 하느니라. 그러나 자기 분수를 모르기 때문에 악을 범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며, 스스로 강함을 내세워 남의 공경과 두려움을 사려 하느니라. 그리고 천지신명과 해와 달도 두려워하지 않고 선을 닦을 줄 모르므로, 이를 항복받아 다스리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니라. 또한 어리석고 못났으면서도 자기 스스로는 잘나고 옳거니 생각하고 근심과 두려움마저도 없이 항상 교만한 마음을 지니고 있느니라. 이러한 모든 악은 천지신명이 기억하는 것이며 전생에 얼마간의 복덕을 쌓은 보람으로 금생에는 작은 선(善)으로 겨우 부지하고 보호가 되지만 금생에 악을 범하여 그 복덕을 다 소모해 버리면 모든 선신(善神)은 그를 떠나고 마는 것이니, 몸은 홀로 고단하여 의지할 데가 없느니라. 그래서 수명이 다하면 지은 바 악업만이 자기에게 돌아와서 자연히 쫓기어 할 일 없이 삼악도에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모든 죄업은 천지신명이 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니, 그 죄와 허물의 사슬에 끌려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수 없으며, 이는 인과 자연의 엄연한 도리로서 아예 벗어날 길이 없느니라. 따라서 전생에 지은 바 악업에 끌려 지옥의 불가마 속에 들어가서 몸은 허물어지고 정신은 한없이 괴로우나, 이때를 당하여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이렇듯, 천지자연의 인과의 도리는 조금도 어긋남이 없으며, 죄업을 지으면 자연히 삼악도의 무량한 고뇌를 받지 않을 수 없느니라. 그리고 그 삼악도에서 한없이 윤회하며 오랜 겁을 두고 생사를 거듭하나 나올 기약이 없고 벗어날 도리가 없나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느니라. 그래서 이러한 것을 ‘넷째의 죄악’이라 하고 그 과보로써 현세에 받는 고통을 ‘넷째의 고통’이라 하며 내세에 받을 죄보를 ‘넷째의 불길’이라 하는데 그 지극한 고통은 마치 맹렬한 불길에 몸을 태우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지성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올바르게 행동하여 자기 혼자만이라도 많은 선을 닦고 악을 범하지 않으면, 자기만은 삼악도를 벗어나 그 복덕으로 구원을 얻어 천상에 태어나고 나아가서는 삼계를 뛰어넘어 영생하는 열반의 행복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을 ‘넷째의 큰 선(大善)’이라 하느니라.”
6. 다섯째의 죄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그 다섯째의 죄악에 대하여 말하리라. 세상 사람들은 주책이 없이 매양 머뭇거리고 게을러서 선을 닦으려 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도 않으므로 그 가족과 권속들이 굶주리고 추워 떨며 빈궁하고 괴로워하느니라. 그러나 어른들이 충고하고 타이르면 도리어 눈을 부라리고 말대꾸하며 사납고 거칠게 반항하여 마치 원수와 같이 지내나니 차라리 자식이 없음만 같지 못하니라. 그리고 남과 사귀는데 있어서도 아무런 절도가 없으니, 모두들 꺼리고 싫어하며, 매양 은혜를 배반하여 의리가 없고 보답하여 갚는 마음이 없으므로, 더욱 가난하고 곤란한 경우에 다시 얻을 길이 없느니라. 그러한 사람들은 마음이 옹졸하여 곧잘 서로 다투고 빼앗고 하며 얼마간의 소득이 있으면 제 멋대로 노름으로 흩어 버리고, 남의 것을 거저 얻는 못된 버릇이 붙어 노상 그것으로 자기 생활을 지탱하려고 하느니라. 그리고 매양 술에 잠기는 생활에 구미에 당신 음식만을 탐하여 조금도 절제가 없으며 마음 내키는 대로 방탕하고 날뛰며 걸핏하면 남과 충돌하고 남의 사정도 모르고서 우격으로 남을 억누르려고만 드느니라. 또한 남의 선량함을 보면 도리어 시새우고 미워하여 이를 비방하며, 의리도 예의도 없고 조금도 뉘우치고 삼가는 마음이 없으면서 자기 자신은 정당하거니 생각하니 어느 누구도 이를 타일러 깨우칠 수 없느니라. 그리고 집안 살림이 있고 없는 것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으며, 부모의 은혜도 모르고 스승이나 친구 간에 대한 의리도 없느니라. 그래서 마음은 항상 삿된 일을 생각하고 말은 매양 욕설을 일삼으며, 사뭇 못된 행동만 저질러 착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느니라. 따라서 옛 성인들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으려 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위없는 바른 길을 닦아서 생사 고해를 벗어날 수 있음을 믿지 않느니라. 또한 죽은 뒤에 영혼이 다시 태어남을 믿지도 않으며 선을 닦으면 안락의 과보가 있고 악을 범하면 괴로움을 죄벌이 있는 인과의 도리도 믿지 않느니라. 그리하여 심지어는 성인을 살해하고 화합한 승가(僧伽)를 교란하려 도모하며 또한 부모 형제나 친척들까지도 해치려 하나니, 육친 권속들이 모두 다 그를 증오하고 차라리 그가 죽는 것을 바라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은 거의가 다 그러하며, 지극히 어리석고 어두우면서도 자기 스스로는 현명하다고 그릇 생각하느니라. 그렇기에 인생이 어디에서 와서 또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이러한 생사의 도리를 알 까닭이 없느니라. 따라서 어질고 순량한 마음이 없으며 천지의 도리에 거역하면서도 그 가운데서 요행을 희망하며 못내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죽음을 면할 길이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을 자비심으로 가르치고 타일러 착한 일을 생각게 하려하고 생사와 선악에 대한 인과의 도리를 말하여 깨우치려 하나 아무런 보람도 없느니라. 이렇듯 그들의 마음은 두터운 번뇌에 갇히고 막혀서 밝은 슬기가 열리지 못하고 삿된 버릇에서 풀릴 수 없느니라. 그러나 이러한 사람도 그 수명이 다할 임종 시에는 뉘우치고 두려워 마지않으나, 미리 선을 닦지 않고 마지막에 이르러 뒤늦게 사이를 후회한들 이제 와서 어찌할 도리가 있을 것인가? 이 천지 사이에는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인간과 천상 등의 5도(五道)로 굴러다니는 생사윤회의 도리가 분명하며, 그 법칙은 참으로 넓고 깊고 미묘 하느니라. 그래서 선과 악을 지으면 그 과보로 복과 재앙을 자연히 받게 마련이며 자신이 지은 업보는 자기 스스로 이를 받고 아무도 대신할 수 없음은 엄연한 인과의 도리이니라. 그러므로 오직 그가 저지른 소행에 따라서 그 죄벌이 목숨을 좇아 따라다니며 떠나지 않느니라. 착한 사람은 선을 닦아서 안락한 처소에서 한결 더 안락한 처소로 나아가고 그 지혜는 더욱 밝아지며 또한 악한 사람은 악을 범하고 괴로운 처소에서 더욱 더 괴로운 처소로 들어가며 그 마음은 보다 심하게 어두워지게 되느니라. 그런데 이러한 깊고 묘한 도리를 어느 누가 능히 알 수 있을 것인가? 다만 홀로 부처님만이 알 뿐이니라. 그래서 이 가르침을 말로써 타일러 보이나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느니라. 따라서 생사윤회는 쉴 사이가 없고 지옥, 아귀, 축생의 3악도의 고통은 끊어지지 않는 것이니 이러한 중생들의 무리는 영원히 다하지 않고 생사고해에 넘치느니라. 그러므로 자연히 삼악도의 한량없는 고뇌가 있게 되고, 그 가운데 굴러다니며 죽고 나기를 몇 겁을 거듭하여도 나올 기약이 없고 벗어날 도리가 없나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느니라. 이러한 것을 ‘다섯째의 죄악’이라 하고 그 악의 과보로 받는 현세의 고통을 ‘다섯째의 고통’이라 하며 마땅히 내세에 받을 무서운 업력의 불길을 ‘다섯째의 불길’이라 하느니라. 참으로 그 지독한 괴로움이 이와 같아서 마치 타오르는 맹렬한 불길에 몸을 태우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나 사람들이 능히 이러한 가운데서도 지성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행동을 바르게 하여 언행이 서로 어긋남이 없고 자기 혼자만이라도 많은 선을 닦고 악을 범하지 않으면 자기만은 번뇌를 벗어나서 그 복덕으로 구원을 얻어 천상에 태어나고 나아가서는 생사고해를 초월하여 영생불멸의 열반을 얻을 수 있나니 이것을 ‘다섯째의 큰 선(大善)’이라 하느니라.”
제7절 부처님의 거듭 권유
부처님께서는 다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까지 그대들에게 말한 것은 세상의 다섯 가지 죄악(五惡)과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바로 현세에 받는 다섯 가지 고통(五痛)과 또한 그 죄보로 내세에 받을 고통인 다섯 가지 불길(五燒)에 대한 법문이었느니라. 이러한 죄악과 그 과보가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어 끝없이 굴러다니게 되느니라. 그래서 다만 악만을 범하고 선을 닦지 않으면 모두 자연히 여러 갈래의 악도에 떨어지게 되는데, 혹은 바로 금생에 그 앙화로 인한 무거운 업병에 걸려서 차라리 죽음을 구하나 죽을 수도 업고, 편히 살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도 업이, 스스로 저지른 죄보로 받는 것임을 남에게 내보이게 되느니라. 그리하여 죽은 후에도 그 전생의 소행에 따라서 삼악도에 떨어져 한량없는 괴로움 속에서 스스로 몸을 불태우게 되느니라. 그리고 이러한 고통을 오래 오래 받는 동안에도 그 업장으로 인하여 서로 원한을 맺게 되는 것이니 처음에는 작은 원한이 점차로 쌓이고 쌓여서 드디어는 큰 원수로 자라고 마느니라. 이러한 것은 모두가 재물과 애욕에 탐착하여 남에게 베풀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며, 마음은 언제나 어리석은 욕망에 시달리고 모은 일을 욕심으로 헤아리게 되어 마음은 더욱 번뇌에 얽매이고 풀려날 수 없느니라. 또한 매양 자기만을 위한 이욕 때문에 남과 곧잘 다투기를 잘하며, 악을 범하고도 반성하지 않고 선을 닦으려 하지도 않느니라. 어쩌다가 부귀 영화한 시절을 당하는 경우에도 다만 자기 한 몸의 쾌락만을 즐기고 절제할 줄을 모르며, 힘써서 선을 닦지 않으므로 그 위세는 얼마 가지 못하여 닳아 없어지고 마느니라. 그래서 업보로 받는 괴로움은 더욱 심하게 자라서 드디어 지극히 치성한 고통이 되고 마느니라. 참으로 인과응보에 관한 천지의 도리는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그래서 자연히 그 지은 바 소행은 낱낱이 드러나고 엄연한 인과의 법칙은 상하 귀천의 차별이 없이 그가 지은 업력대로 받지 않을 수 없느니라. 그리하여 다만 홀로 황겁(惶怯)히 그 업력의 힘에 말려들고 마는 것이니, 이러한 것은 예나 이제나 변함없는 도리로서 참으로 고통스럽고 가엾은 일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이란 이와 같이 괴로움이 충만한 곳이니,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은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위신력으로써 모든 죄악을 부수어 없애고 누구나가 다 선으로 나아가게 하시느니라. 그래서 다섯 가지 죄악(五惡)을 범하는 마음을 버리고 계율을 받들어 지키게 하고, 불도를 수행하여 물러남이 없이 필경에는 생사고해를 벗어나서 영생의 열반을 얻게 하시느니라.”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대들 모든 천신과 인간들과 후세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불법을 잘 듣고 마땅히 이를 깊이 생각해야 하며, 능히 그 가르침대로 마음을 가다듬고 행동을 올바르게 가져야 하느니라.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보다 한결 착실히 선을 닦아서 아랫사람을 잘 다스리고 잘 교화하여 불법을 더욱 널리 유통하도록 힘써야 하느니라. 그리고 제각기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지니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매양 선을 숭상하고, 어질고 인자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사랑하며, 감히 부처님의 가르침에 추호도 어긋남이 있어서는 안 되느니라. 또한 마땅히 생사고해를 벗어날 것을 굳게 서원하여 모든 악의 뿌리를 뽑아 없애고, 한사코 삼악도의 한량없는 근심과 두려움과 괴로움을 떠나야만 하느니라. 이 혼탁한 세상에서 그대들은 마땅히 공덕의 근본인 선을 심어야 하며, 항상 은혜와 자비를 베풀며 추호도 불법의 도리에 어긋나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래서 능히 인욕하고 정진하여 항시 마음을 청정히 하고 지혜로써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여 더욱 공을 쌓고 선을 닦아야 하느니라. 이렇듯 마음을 바르게 하고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것은 한량없는 공덕이 되는 것이니, 다만 밤낮 하루 동안만 계율을 지닐지라도 극락세계에서 백 년 동안 선을 닦는 것보다도 더 나으니라. 왜 그런가 하면 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는 번뇌의 번거로움이 없으므로, 누구나가 다 많은 선만을 쌓고 털끝만한 악도 없기 때문이니라. 또한 이 세상에서 다만 열흘 동안만 선을 닦는다 하여도 다른 부처님의 국토에서 천 년 동안 선을 닦는 것보다도 더 수승하니라. 어찌 그런가 하면, 다른 불국토에는 선을 닦는 이는 많고 악을 범하는 이는 지극히 드문데, 그러한 불국토는 자연히 복덕을 갖추고 있어서 죄악을 짓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이 세상에는 죄악이 많아서 사람들이 자연의 도리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지어서 고생하며, 매양 욕심만을 부려서 서로 속이고 미워하나니, 그렇기에 마음은 더욱 괴롭고 몸은 사뭇 피곤하여 마치 소태 같은 쓴 물을 마시고 독(毒)을 먹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매양 바쁘고 괴롭기만 하여 잠시도 편안하게 쉴 겨를이 없느니라. 그래서 나는 그대들 천신과 인간들을 가엾이 여겨 간곡히 타이르고 가르쳐서 선을 닦게 하고, 근기에 따라서 인도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려 하느니라, 그러니 지성으로 받들어 행하면 각기 소원에 따라서 반드시 불도를 성취할 것이며 내가 돌아다니는 나라마다 도시와 마을이 모두 한결같이 교화를 입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니라. 그리하여 천하는 태평하고 해와 달은 청명하여 비바람이 순조롭고 재난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나라는 풍요하고 백성들은 평온하여, 싸우는 병사와 무기가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니라. 그리고 사람들은 덕을 숭상하여 인자한 마음을 기르고 부지런히 예절을 닦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대들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한결 더 깊으니라.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부처가 되어, 다섯 가지 죄악(五惡)을 항복받고, 다섯 가지 고통(五痛)을 없애며, 다섯 가지 불길(五燒)을 지워버리고, 선으로써 악을 다스리며 나아가 생사의 고뇌를 뽑아내고 五덕(德)을 얻게 하여, 영원하고 안락한 열반의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내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사람들은 다시금 거짓이 늘어나서 모든 죄악을 범하게 될 것이니라. 그리하여 ‘다섯 가지 고통’과 내세에 받을 ‘다섯 가지 불길’은 다시 이전과 같이 드러나서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심하게 될 것이니, 이를 낱낱이 다 말할 수는 없는 일이나, 우선 그대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간략히 이러한 것을 말하여 당부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을 비롯한 여러 대중에게 당부하셨다. “그대들은 내가 말한 가르침을 자세히 생각하고 한껏 서로 깨우치며 불법의 가르침대로 행하여 아예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이때 미륵보살은 합장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는 참으로 절실하고 간곡하시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실로 저속하기 그지없습니다. 부처님께서 큰 자비를 베푸시어 불쌍히 여기시고 모두 다 고해를 벗어나게 하여 주시오니, 부처님의 간절하신 가르침을 받들어 결코 어그러짐이 없도록 굳게 다짐하겠사옵니다.”
제8절 이 세상에 나투신 증명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일어서서 법의(法依)를 단정히 하고 합장하여 공경히 아미타불을 예배하여라.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들도 항상 저 아미타불의 한량없는 지혜와 공덕을 우러러 찬탄하시느라.” 이때 아난은 일어서서 법의를 바로하고 단정히 서쪽을 향하여 공경히 합장하고 엎드려 아미타불을 예배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께 사뢰기를,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와 거기 계신 모든 보살들과 성문 대중들을 뵈옵게 하여 주옵소서.” 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아미타불께서 큰 광명을 나투시어 두루 일체 모든 불국토를 비추시니, 금강철위산을 비롯하여 수미산과 크고 작은 모든 산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일체 만물은 다 한결같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그것은 마치, 세상의 종말에 오는 수재겁(水災劫) 때 홍수가 세계에 충만하여 그 가운데 만물은 모조리 잠기고 다만 넓고 망망한 물바다만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 저 아미타불의 광명도 이와 같아서 성문과 보살들의 일체 광명은 모두 다 가리워 스러지고 다만 부처님의 광명만이 청정하게 빛나고 있음을 뵈올 수 있었다. 그때에 아난은 아미타불을 우러러 뵈오니 그 부처님의 높고 크신 위덕은 마치 수미산이 세계의 어느 산보다도 높이 솟아 있는 것과 같이 우뚝하게 뵈었으며 그 상호는 빛나고 광명은 시방세계에 두루 비추지 않은 데가 없었다. 그리고 이 설법의 자리에 모인 비구 비구니와 선남선녀의 사부대중도 모두 다 함께 아미타불을 뵈옵고 극락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으며, 한편 저 극락세계에서 이곳을 바라보는 것도 또한 그와 같았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아난과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극락세계를 바라볼 때 그 땅 위에서 저 정거천(淨居天)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있는 미묘하고 청정한 자연의 만물들을 다 볼 수가 있었느냐?” 아난이 대답하여 사뢰기를, “네, 이미 다 보았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그러면 그대들은 아미타불의 청정하고 미묘한 음성이 일체 세계에 울려 퍼져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심을 들을 수 있었느냐?” 아난이 대답하여 사뢰기를, “네, 이미 들었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저 극락세계의 사람들이 백 천 유순이나 되는 칠보 궁전을 타고 살면서 아무런 걸림이 없이 시방세계를 두루 다니면서 모든 부처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것을 그대들은 볼 수 있었느냐?” 아난이 대답하여 사뢰기를, “네, 이미 보았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사람 중에는 태(胎)에 의지해서 태어나는 태생(胎生)이 있는데 그것도 보았느냐?” 아난이 사뢰기를, “네, 그것도 이미 보았사옵니다. 그 태생한 이들이 사는 궁전은 1백 유순도 되고 혹은 5백 유순도 되오며, 각기 그 가운데서 온갖 쾌락만을 누리는 것이 마치 저 도리천상(?利天上)에서 자연히 쾌락을 받는 것과 같사옵니다.” 이때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극락세계의 사람들은 태(胎)에 의지해서 태어나는 태생(胎生)과, 태에 의탁하지 않고 홀연히 태어나는 화생(化生)의 구별이 있사옵니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어떤 중생들은 부처님의 한량없는 지혜 공덕에 대하여 의혹을 품고 다만 자기 힘(自力)으로 공덕을 닦아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아직 부처님의 지혜 공덕이 부사의하여 이루 말로 다할 수 없고, 또한 그 지혜가 크고 넓어서 무엇으로도 비길 데가 없는 최상 무비의 지혜임을 깨닫지 못한 탓이니라. 그러나 그들은 부처님의 부사의한 지혜를 의심하여 믿지는 않으나 그래도 죄와 복에 대한 인간의 도리는 믿고 스스로 선을 닦아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우고는 있느니라. 이와 같이 부처님의 지혜 공덕을 의심하고 수행하는 중생들이 저 극락세계의 변두리에 있는 칠보 궁전에 태어나는 것이니라. 그리고 그들은 5백세 동안이나 전혀 부처님을 뵈옵지 못하고 불법을 듣지도 못하며 보살과 성문 등의 거룩한 이들을 만나볼 수도 없는 것이니, 극락세계에서 그들을 가리켜 태생(胎生)이라 하느니라. 그러나 누구든지 부처님의 지혜 공덕이 헤아릴 수 없음을 분명히 믿고 가지가지의 공덕을 쌓아서, 의심 없는 신심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서원을 세운다면 이러한 중생들도 바로 극락세계의 칠보 연꽃 속에 자연히 화생(化生)하여 가부좌를 하고 앉게 되느니라. 그리고 순간 사이에 몸의 상호와 광명과 지혜 공덕이 극락세계의 여러 보살들과 똑같이 원만하게 갖추게 되느니라. 미륵이여, 다른 불국토의 여러 보살들도 발심하여 아미타불과 극락세계의 여러 보살들과 성문들을 뵈옵고, 공경하고 공양하고자 한다면, 그이들도 또한 수명이 다하면 자연히 극락세계의 칠보 연꽃 속에 화생(化生)하게 되느니라. 미륵이여, 잘 알아라. 저 극락세계에 화생하는 이들은 지혜가 수승하기 때문이며 그에 반하여 태생하는 이들은 모두 지혜가 없기 때문이니라. 그래서 그들은 5백세 동안이나 전혀 부처님을 만나 뵈옵지 못하고, 불법을 듣지도 못하며, 보살과 성문들을 보지도 못하고, 또한 부처님을 공양할 수도 없으며, 보살의 법도를 모르기 때문에 많은 공덕을 쌓을 수도 없느니라. 마땅히 알아야 할지니, 이러한 사람들은 과거 숙세에서 지혜를 닦지 않고 부처님의 부사의한 의심한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미륵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가령 비유하건대, 전륜성왕의 궁전에 따로 칠보로 된 방을 마련하여 화려한 자리를 깔고 장막을 치고 가지가지의 아름다운 비단 깃발을 걸고 하여 장엄하여 놓고, 만약 왕자가 죄를 범하면, 부왕은 그를 벌하여 바로 이 칠보 방안에 황금 사슬로 매어서 감금하느니라. 그러나 음식이나 의복, 이부자리나 꽃과 향이나 음악 등은 전륜성왕과 똑같이 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배려하느니라. 이러할 때 왕자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그 왕자는 그래도 그 화려한 칠보 방안에 계속 있고 싶어 할 것인가?” 미륵보살이 대답하여 사뢰기를, “그렇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 왕자는 무슨 방편을 써서라도 힘이 센 역사(力士)를 구하여 빠져나오려고 할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저 극락세계에 태생(胎生)하는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아서 부처님의 한량없는 지혜 공덕을 의심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저 극락세계의 변두리에 있는 칠보 궁전에 태어나서, 아무런 벌을 받지도 않고 나쁜 일이란 생각조차 나지 않으나, 다만 5백 년 동안이나 부처님과 불법과 성중(聖衆) 등 삼보를 만나보지 못하고, 따라서 삼보를 공양하여 가지가지의 공덕을 쌓을 수도 없느니라. 이러한 것이 큰 괴로움이 되어 비록 다른 어떤 즐거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곳에 있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나 그들이 부처님의 지혜 공덕을 의심한 그 근본 허물을 깨닫고 깊이 참회하여 칠보 궁전을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바로 뜻대로 되어 아미타불의 처소에 나아가서 공경하고 공양하게 되며, 또한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도 두루 돌아다니며 더욱 많은 공덕을 쌓을 수가 있느니라. 미륵이여, 잘 명심하여라. 누구든지 부처님의 지혜 공덕에 의혹을 품는 것은 가장 큰 이익을 잃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지혜 공덕을 분명히 믿어야 하느니라.”
제9절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보살들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어 물었다. “세존이시여, 이 세계에서는 불법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자리에 오른 보살들이 얼마나 저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되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바세계에는 67억이나 되는 불퇴전의 보살들이 있는데, 그들이 모두 극락세계에 왕생(往生)할 것이니라. 이러한 보살들은 일찍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들을 공양하였으며, 그 높은 공덕은 거의 미륵 그대와 같으니라. 그리고 아직 수행 공덕이 부족한 여러 보살들과 작은 공덕을 닦는 소승(小乘) 수행자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그들도 또한 모두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교화하고 있는 이 사바세계의 여러 보살들만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불국토에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첫째로, 원조불(遠照佛)의 세계에서는 1백80억 보살들이 왕생할 것이고, 둘째로, 보장불(寶藏佛)의 세계에서는 90억 보살들이 왕생할 것이며, 셋째, 무량음불(無量音佛)의 세계에서는 2백20억 보살들이 왕생할 것이며, 넷째, 감로미불(甘露味佛)의 세계에서는 2백50억 보살들이 왕생할 것이며, 다섯째, 용승불(龍勝佛)의 세계에서는 14억 보살들이 왕생할 것이고, 여섯째, 승력불(勝力佛)의 세계에서는 1만4천 보살들이 왕생할 것이며, 일곱째, 사자불(師子佛)의 세계에서는 5백억 보살들이 왕생할 것이고, 여덟째, 이구광불(離垢光佛)의 세계에서는 80억 보살들이 왕생할 것이며, 아홉째, 덕수불(德首佛)의 세계에서는 60억 보살들이 왕생할 것이고, 열째, 묘덕산불(妙德山佛)의 세계에서는 60억 보살들이 왕생할 것이며, 열한째, 인왕불(人王佛)의 세계에서는 10억 보살들이 왕생할 것이고, 열두째, 무상화불(無上華佛)의 세계에서는 한량없이 많은 보살들이 모두 왕생할 것이니라. 그들은 모두 불도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자리를 얻고 지혜가 뛰어났으며, 일찍이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겨우 7일 동안에 능히 다른 보살이 백천억겁 동안 닦아서 얻을 견고한 법력을 갖추어 지니고 있느니라. 열셋째, 무외불(無畏佛)의 세계에서는 7백90억의 대승 보살들과, 작은 공덕의 여러 보살들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출가 수행자들이 모두 다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이니라. 미륵이여, 지금 말한 열 네 개의 불국 세계에 있는 보살들만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이 아니라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불국토에서도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이들은 이와 같이 수없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내가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명호(名號)와 불국토에서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보살들과 출가 수행자들의 수를 헤아린다면 밤낮 1겁 동안을 두고도 오히려 다할 수 없는 것이니 아는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간략히 그 대강만을 말한 것이니라.”
제3장 유통분(流通分)
제1절 유통을 부촉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듣고, 그지없이 기뻐하여 아미타불을 다만 한 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큰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니라. 분명히 알아두어라. 바로 이것은 위없는 공덕을 갖추게 되는 것이니라. 미륵이여, 설사 맹렬한 큰 불이 삼천대천세계에 충만 한다 할지라도 한사코 뚫고 나가서 이 경전의 가르침을 들어야 하느니라. 그래서 환희심으로 믿고 지니며 외우고 기억하여 가르침과 같이 수행해야 하느니라. 어찌 그런가 하면 많은 보살들이 이 경전(經典)을 들으려 하여도 과거에 큰 공덕이 없으면 들을 수 없는 귀중한 진리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의 가르침을 듣기만 하여도, 그는 위없는 대도(大道)에서 끝내 퇴전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그대들은 마땅히 정성을 다하여 믿고 지니며 외우고 기억하여 가르침대로 수행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여러 중생들을 위하여 이 무량수경을 설(說)하고 아미타불(무량수불)과 극락세계에 관한 모든 공덕과 장엄을 그대들이 듣고 보고 알도록 하였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수행 정진하여 모두 극락세계에 왕생함을 간구해야 하며 내가 돌아간 뒤에 다시 의혹을 품어서는 안 되느니라. 먼 미래에 이 세상에서 불법이 망하고 모든 경전이 다 없어진다 하더라도 나는 자비한 마음으로 말세 중생을 가엾이 여겨 특히 이 『무량수경』만은 백년을 더 오래 머물게 할 것이니라. 그래서 누구든지 이 『무량수경』을 만나서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이는 그들의 소원대로 모두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함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니라. 또한 여러 부처님의 경전을 얻는 것도 어렵고 설법을 듣는 것도 어려우니라. 그리고 보살행의 위대한 법인 6바라밀을 듣는 것도 또한 어려우며 선지식을 만나서 법문을 듣고 능히 수행하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니라. 그러나 만약 이 『무량수경』의 진리를 듣고 환희심으로 믿고 지니어 기억함은 참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더욱 어려운 일로서,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무량수경』의 법문을, 진리 그대로 이와 같이 마련하고(如是作), 진리 그대로를 이와 같이 말하여(如是說), 진리 그대로를 이와 같이 가르치는 것이니, 그대들은 마땅히 믿고 의지하여 가르침과 같이 수행해야 하느니라.”
제2절 법문의 공덕
그때 부처님께서 무량수경을 설법하실 적에 한량없는 중생들이 모두 위없는 보리심(菩提心)을 내었다. 그 가운데서, 1만2천 나유타의 사람들은 일체 만법을 분명히 비춰보는 청정한 법안(法眼)을 얻고, 22억의 천신과 인간들은 다시 욕계(欲界)에 미혹되지 않는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고, 80만 출가 수행자들은 모든 번뇌를 끊고 마음이 걸림이 없는 누진통(漏盡通)을 얻었다. 그리고 40억의 보살들은 위없는 대도(大道)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의 자리를 얻었는데, 그들은 중생을 제도하려는 큰 서원의 공덕으로 스스로를 장엄하고, 장차 오는 세상에서는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다.
제3절 신묘한 상서와 대중의 환희
그때에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찬란한 광명은 두루 시방세계(十方世界)를 비추는데, 백 천 가지 음악이 자연히 울려 퍼지고 헤아릴 수 없는 신묘한 꽃들은 비 오듯이 펄펄 흩날렸다. 부처님께서 『무량수경』의 법문을 끝 마치니시니, 미륵보살과 시방세계에서 모여든 많은 보살들과 장로 아난을 비롯한 여러 큰 성문들과 다른 모든 대중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누구 하나 사뭇 기뻐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무량수경 끝
|
출처: namas-amitabha 원문보기 글쓴이: 연화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