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별곡<460호> / 2020. 10. 29 (목) / 맑음
달릴 길을 다 달려온 선교사
○…오랜만에 선배 선교사에게 전화를 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터진 우한 폐렴 바이러스를 핑계로
시골집에만 머물며 두문불출했었다.
그 선배는 국내 여러 곳의 공소에서
평신도 선교사로 봉사하다가,
중국 방문 선교사로 나섰었다.
그는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 교회와 교우들에게
한글 성경과 성가책을 보급하는 큰 일을 했다.
종교서적의 반입이 금지되어 있는 중국에
성경을 반입하는 것은 좀 모험이 따르는 일이다.
그것도 한두권은 가능하겠지만 몇 십권씩 나르는 일은
많은 위험과 수고가 따르는 일이다.
그는 중국을 왕래하는 따이공(보따리 무역상)들에게
한권당 얼마씩을 주고 반입해
중국 특정 지점에서 만나 회수하고,
조선족 본당과 공소를 돌며 성경과 성가책을 보급하였다.
내가 떠나오기 전까지 조선족 사제들은
그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선배는 중국 방문선교사 일을 접은 뒤에도
국내 한 공소에서 선교사로 봉사했다.
선배의 목소리는 예전만 못해보였다.
“어떻게 지내세요?”
“들어왔다는 얘기는 들었어. 난 은퇴했어.”
그는 공소 선교사 봉사를 마치고,
지금은 선교사가 아닌 마을 주민의 신분으로
부근에 머물며 시골살이를 하고 있었다.
“몸도 안좋고… 이젠 아무것도 못해.”
“왜요? 아직 선교사로 한창 일하실 나이인데….”
“내 나이 칠십이야. 이젠 한쪽 팔이 아파서 일도 못해.”
선배와 통화를 마치고 혼자 시골에
살고 있을 모습이 머리에 그려졌다.
예전에 공소에 딸린 숙소를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사람 겨우 누울 방안에 한쪽에는
책꽂이 겸 수납장, 한쪽에는 학교 책상에 올려놓은 텔레비전,
뒷 문 앞에는 전기 밥솥이 있었다.
은퇴하고 교우들이 마련해준 빈집에 차린
혼자 살림도 안봐도 알 것 같았다.
그는 오래전에 교리신학원을 나와
뜨거운 마음으로 선교사의 길에 나섰다.
전국의 외진 공소를 여기저기 다니면서도
신앙과 건강과 열정적인 동료들이 있어서 늘 즐거웠다.
이제 일선에서 물러난 그에게 남은 것은
나이와 노후 생활의 어려움뿐이다.
달릴 길을 다 달려온 선교사의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프다.
선교사가 보상을 바라고 선교사업을 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열정과
교회의 선교 필요성을 온 몸으로 떠 안고 자원한 것 뿐이다.
평신도 선교사는 세속의 친구들이 하는 말처럼
‘지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선교를 그렇게 강조하는 교리나,
세계 복음화를 외치는 교회의 가르침을
자원해서 따른 결과치고는 너무나 냉혹한 현실이다.
나이 칠십에 공소 선교사를 물러난
그 선배를 위로할 말이 딱히 없었다.
선배도 잘 알기에 위로 받을 생각도 없을 것이다.
오늘 저녁 묵상거리가 생겼다.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마태 19, 29
<460-끝>
-------------------------------------------------------
전남 장성군 서삼면 초곡길 21 / 최요안 / 010-8839-5383
OFS / joahnch@hanmail.net / cafe.daum.net/haizofs
-------------------------------------------------------
첫댓글 아,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