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짜 뉴스, 진짜를 가짜로 누명 씌워 농가 폭삭
● 2015년, 백수오 파동, 내츄럴엔도텍 기업 주가 폭락, 재배 농가 폭삭
2015년 04월 22일. 이른바 '백수오 사태'로 억울한 일이 터진 날이다. 당시 언론은 '가짜 백수오 파동, 진짜는 10%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타전했다. 기사에는 '대부분이 모양 비슷한 중국산 이엽우피소, 신경쇠약 등 부작용'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한국소비자원의 공식 발표를 토대로 작성된 기사였다. 같은 날 백수오 시장을 개척한 내츄럴엔도텍이라는 회사 주가는 하한가를 기록했고, 다른 제약. 바이오 종목 주가도 동반 급락했다. 당시 코스닥에서 시가총액 9위였던 내츄럴엔도텍 주가는 1달 새 90% 폭락했다. 한창 인기 있던 종목이다 보니, 개미투자자 손실도 어마어마했다. 연간 매출이 1,200억원을 넘어서며 유망 중소기업으로 통하던 내츄럴엔도텍은 이후 연매출이 수십억원대로 추락하면서 손실기업으로 전락했다. 백수오 건강기능식품이 시장에서 사라지면서 소비자 선택권도 날아갔다. 농민 피해도 적지 않았다. 내츄럴엔도텍 성공에 힘입어 백수오 재배 농가가 급증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 측과 계약을 맺은 재배 농가가 140곳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1곳으로 줄었다. 나머지 농가는 판로가 막히자, 수확물을 폐기 처분하고, 새 작물을 심을 수밖에 없었다. 고스란히 농가 손실로 이어졌다.
● '가짜 백수오' 검증하는 유전자 검사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기업, 소비자, 농가 모두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백수오 사태는 어떤 결말을 맺었을까? 안타깝게도 누구도 잘못이 없고, 시장에만 충격을 준 해프닝으로 끝났다. 수원지검은 2015년 06월 백수오 사건에 대해 "내츄럴엔도텍이 이엽우피소를 고의로 혼입하거나 혼입을 묵인했다고 보기 어려워 '혐의 없음'으로 처분한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백수오. 이엽우피소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실시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7년 08월 "백수오를 열수 추출물 형태로 가공한 건강기능식품과 일반식품은 모두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양태진 교수는 인삼 유전체를 해독. 완성한 식물 육종 분야 세계적 전문가인데, 그가 백수오. 이엽우피소 연구에 나선 계기가 바로 백수오 사태였다. 양태진 교수는 백수오 사태 당시 소비자원이 이엽우피소가 섞였다고 주장한 근거로 활용한 유전자 검사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백수오와 이엽우피소의 조상이 서로 같다보니 엽록체는 달라도 미토콘드리아 내 유전체가 서로 같은 경우가 있어서 해당 유전자 검사법으로는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 이 논문은 네이처 자매지에도 실렸다. 양태진 교수는 "당시 소비자원은 백수오 유전자 수만 개 중 단 1개를 분석해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 발표했지만, 그런 검사법으로는 진짜 백수오에서도 이엽우피소와 같은 유전자형이 검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엽우피소 자체에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양태진 교수 설명이다. 이엽우피소는 중국이 고향이고, 백수오는 한국이 고향인 사촌 관계의 식물이라는 것이다. 이엽우피소는 주요 성분과 효능이 우리나라 백수오와 일치하여 중국에서는 약재로 활용하면서 아예 백수오라고 불려진다고 한다. 양태진 교수는 "소비자원에서 인용한 중국 논문도 이엽우피소를 과도하게 섭취하면 독성이 있다고 한 것이지, 정상 복용하면 해가 없다는 내용이었지만, '독성이 있다'는 내용만 부각되어 오해를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 백수오 사태, 그린바이오 산업에 찬물을 끼얹었다.
백수오 사태는 시장에만 충격을 준 것이 아니라 한창 꽃피워가던 그린바이오 산업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그린바이오 산업은 식물 유전자원을 이용한 바이오산업을 말한다. 기능성 작물에서 추출한 물질로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의약품을 만드는 산업이다. 백수오에서 추출한 물질로 건강기능식품을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그린 바이오산업 사례였다. 내츄럴엔도텍은 백수오. 당귀. 한속단을 활용해 만든 열수 추출물 'EstroG-100'을 개발하여 국내외에서 갱년기 여성에게 좋은 건강기능식품 개별 인정을 받았다. 당시 연구소장을 맡았던 내츄럴엔도텍 이용욱 대표는 "국내 성공을 발판으로 2014년 미국에 진출한 후, 유럽 진출을 본격화하던 단계에서 백수오 사태가 터지면서 많은 것이 물거품이 됐다. 특히 천연물을 활용한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전반적 인식이 악화되면서 그린바이오 산업 싹이 꺾였던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그린 바이오산업은 농업계 최대 화두 중 하나이다. 농업 영역을 생명산업으로 확대하여 신성장동력이 되게 하려면, 그린 바이오산업 육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농경제학과 임정빈 교수는 "우리나라 농가소득이 늘고 있다고 하지만, 비농업 소득이 아닌 농업소득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다. 농업소득을 늘리려면, 기능성 작물 재배를 통한 그린 바이오산업 쪽으로 농업 영역과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린 바이오산업은 시장 규모도 엄청나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그린 바이오산업 관련 기능성 소재 산업 시장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3,500억 달러, 국내에서는 23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 2018년 나고야 의정서를 오히려 기회로 삼자!
우리나라가 약용 작물을 비롯한 기능성 작물 재배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2018년 나고야 의정서 때문이기도 하다. 2018년 나고야 의정서는 생물 유전자원으로 기능성 식품이나 의약품. 화장품 등의 연구개발. 상품화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을 유전자원 제공국과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국제 협약으로 2018년 08월 발효됐다. 한마디로 해외에서 들여온 작물로 건강 식품. 의약품을 만들어 돈을 벌면, 일정 금액을 해당국에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생물 유전자원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한국 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활용하고 있는 생물 유전 자원 해외 의존도가 식물은 68.9%에 달한다. 나고야 의정서 영향으로 다른 나라에 지불해야 할 로열티가 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백수오 사태 와중에 국내에서 재배되던 이엽우피소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나고야 의정서는 생물다양성 협약이 발효된 1993년 말 이전에 해외에서 들여온 유전 자원은 그 나라 유전자원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 농가들이 이엽우피소를 중국에서 들여오기 시작한 것이 대략 1990년대 초반부터이다. 따라서, 이엽우피소를 지금까지 재배하고 있었다면, 우리나라 유전자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백수오 사태 이후, 이엽우피소에 '가짜'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당시까지 이엽우피소 재배를 독려하던 농촌진흥청이 거꾸로 이엽우피소 소탕에 나서면서 지금은 이엽우피소 자원이 전부 사라졌다. 앞으로 이엽우피소를 이용해 새로운 물질을 개발한다면, 중국에 로열티를 내야 할 수도 있고, 나아가 아예 반출 자체가 차단될 수도 있다.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양태진 교수는 "다행히 연구실에서는 이엽우피소 유전자원 일부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애꿎은 백수오 사태로 귀중한 유전자원을 놓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기능성 작물을 활용한 소재 개발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약콩(쥐눈이콩)을 활용해 다양한 식품과 의약품. 화장품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이기원 교수팀은 약콩에서 다양한 약리 성분을 추출해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농진청에서 제공받은 다양한 약콩 종자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품종을 골라낸 뒤, 기능성 물질을 추출한 것이다. 이를 통해 근력, 면역력, 피부 등에 좋은 건강 기능식품을 개발하고, 아토피에 좋은 기능성 화장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또한 효소 기술과 합성 기술까지 더해 다양한 의약품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양태진 교수는 제주도. 울릉도. 금오도 등 전국 각지에서 식방풍 자원을 수집해 우량 계통 육성에 나서고 있다. 식방풍이 갖고 있는 항산화. 항염 등 기능을 활용하여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장명초(長命草)라는 이름으로 식방풍이 다양하게 상품화되고 있다. 알약 형태의 건강 기능식품도 나온다. 최근 한 대형 제약사에서 내츄럴엔도텍과 손잡고 백수오를 활용한 새로운 건강 기능식품을 출시했다는 소식도 반갑게 들린다.
● 국내 자생하는 약용 자원만 대략 2,000종에 이른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기능성 식물 자원이 풍부한 나라에 속한다. 국내 자생하는 약용 자원만 대략 2,000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작물로 재배되고 있는 것이 120여 종이다. 그중에서도 재배 면적이 일정 규모 이상이어서 공식 통계에 반영되는 작물은 50-60종에 달한다. 물론, 약용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국립원예 특작과학원 안태진 농업연구관은 "약용 작물은 재배 역사가 오래된 벼나 밭 작물에 비해 재배 기술 자체가 덜 발전해 있다. 재배가 어렵긴 하지만, 성공하게 되면, 소득 측면에서는 일반 작물 보다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농가에서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토로한다. 약용 작물은 노지에서 재배되는 특성상 파종. 관리. 수확 등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구인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이후 외국인 근로자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이다. 백수오 등 다양한 약초를 대규모로 재배하고 있는 영동 약초 영농조합 유덕종 대표는 "외국인 근로자가 귀해지면서 하루 일당을 기존보다 40-50% 올려 주겠다고 해도 사람을 구할 수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건강 기능식품이나 화장품에 비해 고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의약품 분야에서는 기능성 작물을 소재로 활용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인삼만 하더라도 고유 성분을 의약품에 쓰려면, 유효 물질과 약리 메커니즘을 규명해야 하지만, 아직 그 단계에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기원 교수는 "유효 물질과 약리 메커니즘 규명을 위해서는 한 연구자가 한 작물에 평생을 바쳐도 쉽지 않은 일"이라며, "한국 농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농업 분야 연구 역량을 기능성 소재 개발 쪽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