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전 8월의 어느 날이었다. 독일은 ‘지구 온난화’로 이상 기후에 휩싸여 찜통처럼 푹푹 쪘다. 정오가 되기 전 수은주는 이미 38도를 육박했다. 내가 서 있던 곳은 독일 남부 외티하임의 어느 울창한 숲. 눈앞에 유니목이란, 아주 낯설고 거대한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유니목은 생김새뿐 아니라 성능 또한 낯설었다. 38°의 가파른 계단을 꾸역꾸역 전진으로, 또 후진으로 오르내렸고, 45°의 급경사를 기어올랐다. 접근각 41°, 이탈각 51°의 장애물과 38° 옆으로 기울어진 협로, 30° 협각으로 파인 1.2m 깊이의 물길도 닥치는 대로 달렸다. 레드 존에 육박하도록 엔진을 돌리면서 엉금엉금 걷기도 했다. 유니목은 동춘 서커스단도 울고 갈, 고난도의 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웠다. 그날의 시승 이후 유니목은 기자의 드림 카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반세기 넘도록 사랑받아온 다목적 차
유니목은 1972년부터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니목은 의식하지 못했을 뿐 생각보다 우리 곁 가까이 있어 왔다. 폭설이 내릴 때마다 경광등 번쩍이며 나타나는, 커다란 바퀴의 주황색 제설차가 바로 유니목이었다. 30년 이상 국내에 유니목을 들여오고 있는 주인공은 (주)대진 STC. 4년 전 본지의 독일 현지 취재를 물심양면 지원했던 고마운 은인이다.
지난 호 마감에 정신없을 즈음, (주)대진 STC의 김영훈 전무가 한 통의 초청장을 보내왔다. 대구 EXCO에서 열리는 ‘한국 소방재 엑스포’에 산불 진압 및 재난 구조용 소방차로 꾸민 유니목을 출품할 예정인데, 한 번 시승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였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지난 4월 26일, 마감을 끝내기 무섭게 대구행 KTX에 몸을 싣고 시속 300Km로 달렸다.
2시간여 만에 도착한 대구 EXCO 앞마당. 오전 내내 드리웠던 구름이 서서히 개면서, 작열하는 태양이 아스팔트를 절절 끓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콧잔등 시큰해지는 기름 냄새가 은은히 풍겨왔다. 한껏 달궈진 공기는 규칙적인 진동에 겨워 파르르 떨며 어디론가 퍼져 나갔다. 심상치 않은 냄새와 진동의 진원지에 새빨간 유니목 U3000과 U1650이 거친 숨을 내쉬며 서 있었다. 4년 만의 재회. 압도적인 위용은 변함없었다.
유니목(UNIMOG)은 ‘다목적 작업 차’(UNIversal MOtor Gerat)의 줄임말로, 그 이름처럼 산업 전반 그리고 우리네 일상생활에 밑거름이 될 궂은일을 도맡는 알토란 같은 일꾼이다. 900톤의 기차를 끄는 터프함과 최저 시속 0.36km로 이동하며 거리의 낙엽을 쓸어 담는 섬세함을 겸비했다. 보조 장비만 얹어주면 땅도 파고, 눈도 치우며 불도 끈다.
유니목 역사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에서는 많은 이들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농업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자연스럽게 농업용 기계의 수요가 빗발쳤다. 밭도 갈고 짐도 실어 나르되 일반 도로도 달릴 수 있는, 다목적 차의 존재가 절실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등에 업고, 영국에서는 모리스 윌크스와 스펜서 형제가 랜드로버를, 독일에서는 다임러 벤츠의 항공 엔진 기술자였던 알버트 프리드리히와 자동차 엔지니어였던 동료 하인리히 뢰슬러가 유니목을 만들었다.
1948년 유니목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고, 1951년 벤츠의 세 꼭지별을 단 유니목이 가게나우어 공장에서 굴러 나오기 시작했다. 1954년부터는 군용차로 영역을 넓혔고, 1966년에는 판매 10만 대를 돌파했다. 1992년 한 차례 모델 체인지가 있었고, ‘탄생 50주년’이었던 지난 2000년 지금의 3세대 모델로 거듭났다.
유니목은 크게 U300~500을 통칭하는 UGN과 U3000~5000을 부르는 UHN으로 나뉜다. UGN은 다용도성, UHN은 오프로드 성능을 강조한 모델. 차체 크기에 따라 ‘U’ 뒤에 다른 숫자가 붙으며 각 모델은 다시 적재함 길이에 따라 장축과 단축으로 나뉜다. 직렬 4기통과 6기통의 두 가지 디젤 엔진을 기본으로 출력을 150∼279마력까지 다양하게 세팅해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