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만평 김용민의 그림마당 11월 19일]
강용석 무소속의원(이하 강용석)이 개그맨 최효종을 고소하였다가 취하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블로그에 '최효종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전하고 싶다.'고 썼다고 합니다.
이 일의 처음과 끝을 알려면 작년에 벌어진 아나운서 명예훼손에서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강용석은 작년 7월 당시 한나라당 의원으로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나온 여대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사실 심사위원들은 (토론)내용을 안 듣는다. 참가자들의 얼굴을 본다.'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 김윤옥 여사가 없었으면 너에게 전화번호도 알려달라 했을 것'
'(아나운서를 하려면)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
'(패널은) 못생긴 애 둘, 예쁜 애 하나 구성이 최고다. 못생긴 애 하나에 예쁜 애 둘은 오히려 역효과'
이뿐 아니라 여성의원들과 정치인들에 대한 외모발언 등이 문제로 떠 올랐었습니다.
대통령과 인척관계인 그는 두려운 것이 없었을까요? 결국 저 발언을 보도한 중앙일보를 무고죄로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에 의해 그 발언이 사실임이 밝혀지고 국회윤리위원회로 넘겨졌으며 급기야 한나라당이 그를 탈당시킵니다.
그리고 아나운서들은 아나운서 명예훼손죄로 그를 민사고소합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강용석은 집단모욕죄라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 하고 물으며, 개그맨 최효종이 KBS 개그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에서
국회의원 되는 것에 대해 희화한 것을 물고 늘어집니다. 말을 요약하면 그것은 국회의원이라는 집단을 모욕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아나운서를 집단모욕한 것이 범죄라면 개그맨이 국회의원을 집단모욕한 것과 비교해 달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최효종을 국회의원 집단모욕으로 형사고소합니다. 최효종이 무죄면 나도 무죄고, 그가 죄인이면 나도 감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참 합리적인 것 같지요. 배워서 이 짓하는 게 배운 자들의 꼬락서니입니다.
개그를 고소대상으로 본 짓에 대해서 국민들은 말도 안 된다며 강용석을 질타합니다.
강용석의 의도는 '그것 봐라, 말이 안 되지? 그럼 나도 아나운서를 집단모욕한 것이 말이 안된다.'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한 개인 최효종을 이용하여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안했다는 발언이 나오는 것입니다. 고소하면서 속으로 미안했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그는 동료 국회의원들의 감싸기로 국회의원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아나운서들은 재판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강용석은 '자, 내 논리가 이겼다.' 하면서 최효종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예수께서 아주 경멸하셨던 바리새인들의 태도를 보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가 드러나기 위해서 사람을 갖고 공기돌 돌리듯하며 시험을 합니다.
그들의 무기는 해박한 법률(율법)적 해석과 그것을 실행하는 논리였습니다.
그것으로 그들은 종종 예수 한 개인을 잡으려고 덫을 놓습니다.
그 한 예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죄지은 여성을 돌팔매로 쳐 죽이려고 하면서 예수께 저 죄인을 죽일까 말까 묻습니다.
말꼬리로 예수를 잡으려는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성서는 그들이 고소거리에만 목을 매었기 때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말이 나와도 예수를 고발하여 죽일 것입니다.
더구나 그 와중에 저 죄인이라 칭함을 받는 여인의 생명은 온 데 간 데 없습니다.
예수만 잡으면 되니까 저 여자는 돌로 쳐 죽이건 목을 매달아 죽이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악한 인간들의 꾀가 있습니다.
악한 자들은 자신이 고소 혹은 고발하는 자의 인격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의가 드러나야 하며 남의 인격이나 체면 혹은 생명은 잠시 나에게 이용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학벌이 높을 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을 수록, 권력층일 수록 이런 생각은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못한 지위의 사람을 나를 위한 소모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내 체면이 살았으면 됐다로 모든 문제를 종결시킵니다.
강용석은 개그 콘서트를 보던 자기 아들의 반응을 소개합니다.
"자기 아빠가 계속 디스 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낄낄대는 두 아들을 보며 `역시 사내는 강하게 키워야 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지간한 코너에는 가족들과 함께 웃으며 지나갔는데 '사마귀유치원' 성희롱대처방법에서는 마음 약한 큰아들이
'저건 성추행이지… 아빤 누구 만진 적은 없잖아'라며 분개했다"
아들이 실제 그렇게 얘기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들마저도 자신의 처한 처지를 모면하기 위해 이용하는 모습이 제게는 보였습니다.
더구나 큰 아들(중1)과 작은 아들(초6)이 낄낄대며 같이 봤다고 하는데 개그콘서트 원래 15금 아닌가요?
아하, 부모 보호 아래 같이 봤으니 괜찮았던가요? 하지만 '아빤 누구 만진 것은 없잖아.'라는 발언이 왜 이리 징글맞은지요.
중1이 이렇게 아빠한테 말합니다. 아빤 누구 만진 것은 없잖아. 아빤 누구 만진 것은 없잖아?
여자 아나운서와 학생들을 있는 자리에서 성희롱하여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것과
개그와 코메디에서 사회적 현상을 희화한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앞의 것은 심각한 도덕적 결함이 있는 자의 발언이고, 뒤의 것은 사회현상에 대한 소극적인 풀이입니다.
전혀 다른 둘을 같은 선상에 놓고 법률적인 면에서는 문제 없다는 것을 만들려는 시도는 옳지 못한 것입니다.
성도의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글이 길었습니다.
첫댓글 이런 사람들을 볼때마다 사람의 저급한 한계성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분명 저보다 많이 배우고 열심히 노력해서 저 자리에 갔을텐데, 그런 사람들은 또한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인간의 바보같은데에 저도 포함되있다는 사실이 슬프네요
진정한 배움은 자신만 살기 위한것이 아니라 다른 자들을 이롭게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배워서 남주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너열심히해서 잘먹고 잘살라는 것입니다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배워서 남에게 줘라!
이번엔 학생 정보 자기에게 안 준다고 서울대 교수를 고소하더니
여자 아나운서들 집주소를 적나라하게 공개했다고 합니다.
보좌관의 실수라고 하고서 지웠다지만 인간성 진짜 아닌 것 같습니다.
강용석은 누가 자기 주소를 인터넷에 게시하면 그냥 실수로 넘어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