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리오 카메리니
출연: 커크 더글러스, 실바나 만가노, 안소니 퀸, 로산나 포데스타
(1954년 이탈리아 영화 '율리시스')
요즘엔 어찌하다보니 예전부터 좋아했던 그리스 로마신화에 얽힌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이리저리 구해서 보고 있다.
어린 시절에 신화나 전설에 빠져들었던 건 책이나 그림 등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할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아버지와 함께 보던 명화극장이나 토요명화에서 열심히 방영해주던 신화를 주제로 한 일명 스펙터클 대서사시 고전영화의
영향이 첫손에 꼽히지 않을까 싶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모르면 유럽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역사학자들의 말처럼 그리스 로마신화는 어딘가에 반드시 흔적을
남겨놓는다.
오늘 소개할 이 영화와 그림들도 모두 요즘 미국드라마 제작에 자주 이용되는 그리스 로마신화의 '스핀오프'격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주 접해왔던 그리스 로마신화의 신과 영웅이 어우러지는 대서사시를 작품으로 전해오게 만든 이야기꾼 '호머'가 지은 두 편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중에서도 바로 '오디세이아'가 이 율리시스에 관한 영웅담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기독교적인 대작이 아닌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영웅담 '율리시스'
1956년작 '전쟁과 평화'의 마리오 카메리니 감독과 강렬한 터프가이 커크 더글러스와 실비아 망가노, 그리고 대배우 안소니 퀸이
출연하는 이 작품은 1954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대작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리스 못지 않게 신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라에서 만들었으니 그에 따른 표현기법도 나름 세련된 느낌도 들었고,
무엇보다 헐리웃 대작과는 또 다른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비슷한 시기 찰턴 헤스턴이 주연했던 '벤허'나 '십계'와 같은 기독교 대작영화의순교자나 신의 메시지에 대한 교훈에 짓눌리는 보잘 것 없는 인간에 대한 깨달음보다는 신과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가던 고대 신화의 재연이 훨씬 더 마음을 가볍게 하고 시청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방대한 대서사시를 100분의 러닝타임으로 압축해서 만든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지만 너무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연스레 이야기는 전개된다.
우선 이 작품을 보기 전 사전 정보... 일리아드, 트로이 전쟁, 오디세이아 이야기...
기원전 1200년경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트로이 전쟁이 올림푸스 여신들의 질투때문에 시작되었다고 입을 여는
'일리아드'에 따르면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고 적힌 황금사과를 서로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고 중간에 낀 우유부단한 제우스는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못했다고 한다(언제나 사고치는데는 능숙하지만;;;).
이에 양치기 미소년 파리스가 판정을 위임받았는데 하필 이 소년이 트로이의 왕자였고, 아프로디테가 그 사과의 주인공이
되면서 그에게 최고의 미녀를 주겠다는 약속을 덜컥 해버렸는데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가 그 주인공이었다고 한다.
(야...이야기 정말;;;) 결국 아프로디테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파리스와 헬레네를 트로이로 사랑의 도주하게 해줬고,
이에 화가 난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 왕의 형인 아가멤논이 트로이를 공격한 것이 그 유명한 '트로이전쟁'의 이유였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전쟁에 참전한 영웅들이 또 눈부시다.
그리스군에겐 용맹한 불사신 아킬레우스가 있었고, 이타카섬의 왕이자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율리시스) 역시
아름다운 정숙녀 페넬로페와 귀여운 아들 텔레마코스를 남겨두고 출전했다.
이에 대항하는 트로이군에 무용과 인품이 뛰어난 헥토르와 문제의 발단인 파리스가 존재했다.
그런데, 이 전쟁이 무려 10년이 걸린 것이다. 난공불락의 성을 자랑하는 트로이의 수비와 낯선 지형에 그리스군은 서툴게
대응했다.
그러던 전쟁이 어느 순간 끝나버리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율리시스'의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차후 포스팅을 통해 고고학적 관점으로 한 번 알아보기로 하고
자, 이제 '오디세이아'는 바로 이 부분에서부터 시작인 것이다. 율리시스의 파란만장 모험담으로 빠져들어가 보자~
'트로이의 목마' 를 통해 성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 그리스군은 대약탈을 감행한다.
10년이나 쌓인 적대감과 피로가 군인들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잘 보여주는 오프닝이라 할만한데
이 때 신성한 바다의 신 넵튠(포세이돈)의 동상마저 무너뜨리고 신성모독을 감행하는 율리시스 일행...
신과 인간이 밀접한 관계에 있던 신화의 시대인만큼 트로이의 신녀 카산드라는 율리시스 일행에게 저주를 내리고 율리시스에겐 그보다 더 큰 3배의 저주를 내리게 된다.
저주를 받고 풍랑을 만나며 도착한 어느 섬... 그곳엔 또 그렇게 풍성한 먹을거리가 있는 동굴이 있었고,
우리 단순용감한 율리시스는 일행들과 함께 주인의 허락도 없이 열심히 식량을 먹어치우고 와인을 마셔댄다;;;(이놈의 성질은;;;)
이윽고 외눈박이 거인이 등장하자 일은 벌어지는데 알고보니 넵튠(포세이돈)의 아들이었다네;;;
결국, 율리시스의 기지로 이 위기를 모면하는데 이때 제법 유명한 장면이랄 수 있는 와인 제조장면이 등장한다.
사람이나 신이나 술을 좋아하는건 다 똑같다는 그 인간미... 결국 와인에 잔뜩 취한 거인의 눈을 못쓰게 만들면서
탈출 성공...
'율리시스'에서 사이렌의 소리를 듣는 장면
이 위기를 벗어나고도 모험은 끝나지 않았으니...바로 항해자들을 유혹하는 천상의 소리 '사이렌'이 출몰한 것이다.
사실, 이 장면은 정말 유명하고도 중요한 장면이랄 수 있는데 정작 영화에서는 사이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유혹을 벗어나기
위해 귀를 틀어막는 장면만 연출될 뿐이다. 특히나 그 빨간색 사이렌이 울리는 장면은 은근히 좀 웃겼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그를 유혹하지만 결국 이겨낸다.
이 슬픈 사이렌의 노래는 독일 라인강의 '로렐라이' 라던가 인어공주와 같은 슬픈 전설들을 낳게 하는 테마로 고금을 막론하고 자주 쓰이는데 그에 못지 않게 최근에는 소비의 유혹을 끊지 못하는 현대인의 심리와도 연관지어지기도 한다.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인간이란 존재에게 다가오는 가장 큰 유혹의 소리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아마 '오디세이아' 최대의 절정이 이 율리시스와 마녀 키르케의 만남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는 키르케가 율리시스의 아내
페넬로페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1인2역을 한 셈인데 정숙한 부인과 마녀가 한 배우의 연기로 보여진다는 것도 독특한 것이었다.
마법의 봉이랄까 지팡이로 율리시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어버린 마녀도 영웅 율리시스에게 한눈에 반해버리고 그가
갈망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오디세이아에선 율리시스가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전설의 섬에 들어서고 돼지로 변신한 부하들을 발견하지만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한다고 나온다. 그리고 부하들을 구하고서는 그만 마녀의 유혹에 빠져 1년여를 섬에 머물면서 결국 부하들은 죽음을 당하고 율리시스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섬을
빠져나오는데...
영화에서는 중요한 장면이 빠져있다.
바로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텔레고노스...
율리시스는 훗날 이 아들에게 목숨을 잃고 텔레고노스는 페넬로페와 결혼하게 된다는...비극적이면서도 신화다운 이야기.
천신만고끝에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온 율리시스...그러나 10년의 세월이 흐른 그곳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만 기다리고 있는것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페넬로페와 왕좌를 노리는 수많은 경쟁자들... 거지로 변장한 자신을 못 알아보는 아내...
그러나 이제는 늙어버린 애완견은 달라진 그의 행색에도 불구하고 주인을 알아보고 이어 아들 텔레마코스도 그를
알아본다. 여기서 느끼게 되는 점은 아들과 개가 남편을 오매불망 기다려온 부인보다 더 눈썰미가 있구나;;;
그런데, 참고로 호머의 '오디세이아'에서는 텔레마코스가 갓난아기였을때 전쟁이 시작되는데 영화에선 어떻게
강력한 사랑의 라이벌로 등장한 젊은 시절의 안소니 퀸의 모습도 좋았고,
어딘가 또 그렇게 특유의 썩소를 날리는 커크 더글러스의 연기도 좋았던 작품으로 기억에 남는다.
실비아 망가노의 연기가 눈부셨던건 역시 비운의 여인으로 1인2역을 해냈다는 점이다.
페넬로페나 키르케나 모두 한 영웅을 사랑하고 그 때문에 고통받는 여인네의 비애를 간직한 여인네들이 아닌가...
그래서 호머는 율리시스를 영웅으로 만들었지만 또 다른 이야기에선 율리시스가 그렇게 간사한 인간으로 그려졌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