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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멜산에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
열왕기상 18장 1절-40절 2022년 9월 4일 주일 오후 말씀지
시대마다 쓰실 자를 쓰셔서 삼위로 계신 것과 그 역사가 어떠함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입니다. 영광 받을 자들을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사 복음으로 살리시고 진리의 양식을 공급하시고 자라나 열매와 생명역사를 하게 하시고 그 영광으로 인도하시는 산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눅20:38-
가장 악했던 북이스라엘에 7대 왕 아합 때에 엘리야를 들어서 어떻게 역사하셨나? 이야기로 받지 말고 지금도 삼위로 계시는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삼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이루시는 역사로 봐야 합니다. 먼저는 불러서 자라게 하시고 용사같이 담대하게 하셔서 보내사 아합 왕을 경고케 하셨습니다. (왕상17:1) 지금도 왕 앞에서도 조금도 두려움없이 내게 주신 말씀을 담대히 증거하는 자들이 오늘날의 엘리야입니다. 말4:5-
세례요한도 헤롯 왕의 잘못을 지적하였고 (마14:4) 예수님도 대제사장과 장로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마23:33) 그리고 베드로도 대제사장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다 하며 담대히 죽으면 죽으리라 증거하였고 (행4:19) 스데반 집사도 대제사장과 건물뿐인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겠느냐? 고 책망하였습니다. 행7:48-
사도 바울도 총독 왕 심지어는 황제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변명하였습니다. (빌1:13) 모두 여호와를 각자의 하나님으로 삼고 살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1절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많은 날은 아합 왕에게 수년 동안 비가 없으리라 경고하게 하신 후입니다. (왕상17:1) 벌써 3년이 지나간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의 기간이요 아합 왕은 왕궁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는 기간입니다. 치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사 엘리야를 보내시려 새벽에 엎드리게 하시고 가서 외쳐야 할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그냥 비를 내리시면 되는데 왜? 엘리야를 보내셔서 비가 오지 않으리라 하시고 이제는 비가 내리리라 하시는가요?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이루시는 역사를 나타내주시려는 것입니다. 지금도 되어지는 일들을 이미 선지자들과 사도들로 통하여 예언하셨고 그대로 이뤄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루신 첫 삼년반 환난과 대 환난에 관한 그 예언들을 살피지 않으면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 힘들어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리에 떨어지게 됩니다. 계16:11-
이제 불쌍히 여기사 다시 은혜를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비를 내리심으로 아합왕에게는 회개의 기회를 백성들에게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좇게 하시려는 역사입니다.
2절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당장에 죽이려고 설치는 아합 왕 앞에도 조금도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용사인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에 수도입니다. 그의 아버지 오므리가 산을 사서 왕궁을 지은 곳입니다. (왕상16:24) 여호와를 격노케 함으로 3년간 비가 오지 않음으로 다 죽을 지경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우상을 섬기는 나라에는 비가 오지 않거나 오면 너무 많이 와서 고통이 극심합니다. 삶이 비참해지는 것이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사44:10,11-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 고통을 주실 것이 예언되어 있고 그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택자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면 어느 시대라도 기근이 닥치는 것입니다. 육신의 기근만 보지 말고 영적 양식을 받지 못하는 답답한 자리에 떨어지는 것을 봐야 합니다.
3절 아합이 궁내대신 오바댜를 불렀으니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영광 받을 의인들을 위해 악인을 두셔서 악인들을 악한 일을 의인들은 선한 일을 하게 하셨는데 그중에 하나가 오바댜입니다. 주의 종이라는 뜻으로 악한 자 밑에서 선한 일을 하게 하신 자입니다. 요셉도 악한 바로 왕 밑에서 선한 일로 충성하였고 다니엘과 세친구도 느브갓네살 왕 밑에서 흠이 없이 충성하였습니다. 단6:4-
이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당시에 하나님을 저버린 왕과 백성들인데 그 왕 밑에 오바댜는 그 왕의 악한 일에 동참하지 않고 요셉처럼 다니엘의 세친구처럼 신앙을 지키며 나간 자입니다.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왕의 권세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저 백성들을 위하여 궁내 대신의 자리에서 자기가 할 일을 하며 하나님께 충성하였다는 것입니다.
4절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이세벨은 고상하다는 뜻이요 두로에 엣바알의 딸이요 아합 왕에게 시집와서 온 이스라엘 나라에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세워 백성들을 죄에 빠드린 악처로 왕을 휘어잡고 자기가 권세를 행사하였습니다. 왕상16:31-
이때에 여호와의 선지자들은 엘리야를 통해서 길림을 받던 자들로 장성하면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외치게 하실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그 선지자들을 멸하게 하십니까? 그들이 순교의 믿음으로 자라났으니 악한 시대에 악한 왕으로 순교케 하신 것이지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 거짓되고 악한 여자 이세벨이 자기 종들을 멸하는데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 인을 가져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었더라 오직 여호와를 섬기며 우상을 배척한 오바댜입니다. 왕의 다음 권세자로 아합왕을 대적하며 선지자들을 멸하려 할 때에 숨긴 자입니다. 엘리야 당시에 100명이나 되는 선지자가 길림을 받고 있었는데 그만큼 잘못하는 북이스라엘에 백성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매무지한 백성들은 이세벨의 권세가 무서워 다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숨김을 받은 선지자들로는 앞으로 할 일이 있기에 오바댜로 굴에서 떡과 물을 먹이게 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까마귀로 사르밧 과부로 먹이셨습니다. 왕상17:9-
5절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러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악한 아합 왕은 백성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왕궁에는 신하들이 그나마 어떻게든 물을 구해서 먹는데 자기가 타고 다닐 말과 노새에게 먹일 물 걱정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한다고 하면서 자기가 타고 다닐 차만 걱정하는 사이비 교주같은 자들이 많은 것을 보게 합니다. 무지한 교인들의 귀한 연보를 자기가 타고 다닐 차에 쓰는 자들입니다. 심지어는 목사의 신변을 호위하는 무사같은 자들까지 두는 현실입니다. 나중에는 왕궁 근처에 나봇(뛰어난 사람)의 포도원을 자기 나물 밭 삼으려고 모함하여 죽이는 악을 행하는 아합인 것입니다. 왕상21:2-
6절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악한 자 밑에서 선을 행하고 있는 오바댜요 오로지 자기 안일만 추구하는 아합 왕의 가는 길이 다릅니다.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아합은 언제나 호위무사들까지 데리고 멸망 길로 가고 오바댜는 오직 하나님만 믿고 홀로 생명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길은 좁고 협착하여 홀로 가며 오로지 주신 말씀만 의지하고 가는 길입니다.
7절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저를 만난지라 어쩌다 만난 것이 아니라 모든 타이밍을 하나님께서 맞추신 것입니다. 그래서 걸음을 인도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잠16:9-
저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엘리야를 통해서 이루시는 일들을 본 오바댜입니다.
8절 대답하되 그러하다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나를 죽이려 하는 아합 왕을 만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9절 가로되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오바댜의 신앙을 나타내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크게 경외하면서 아합 왕의 칼을 두려워하니 순교의 믿음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붙여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
10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주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찾지 아니한 족속이나 나라가 없었는데 아합왕이 엘리야를 죽이려 얼마나 찾은 것을 알려주면서 나보고 엘리야가 여기 있다하면 당장에 당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희가 말하기를 엘리야가 없다 하면 그 나라와 그 족속으로 당신을 보지 못하였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거늘 수년 동안 비가 없으리라 한 후부터 비가 오지 않음으로 오로지 엘리야를 찾아서 죽이면 모든 고통이 없어진다고 하는 이세벨의 말만 듣고 찾고 찾았던 것입니다.
11절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나
12절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신이 나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가 계획한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빌립 집사처럼 성령이 이끌어 가시는 삶을 사는 것으로 알고 있는 오뱌다입니다. 행8:39-
내가 가서 아합에게 고하였다가 저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어려서부터 삼위로 계신 여호와를 경외하였지만 아직 순교의 믿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디모데도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지만 사도 바울을 만나기 전 복음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딤후3:15-
성경을 알 뿐이요 율법적으로 철저히 계명을 지켰다는 것인데 복음이 믿어지게 하심으로 영이 살아나게 하셨고 자라나 일군되게 하셨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13절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일백 인을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께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자기가 한 일을 이사야 선지 때에 히스기야 왕처럼 업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14절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니 그리하면 저가 나를 죽이리이다
15절 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모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만 섬기는 오바댜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만군의 여호와를 섬기는 엘리야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천사 만군단을 거느리시고 지금이라도 무엇이든 다 하실수 있는 전능하신 여호와를 만군의 여호와라 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골리앗에게 나아갔던 것입니다. 삼상17:45-
내가 오늘날 아합에게 보이리라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신앙이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는 것은 순종하는 엘리야인 것입니다. 단3:18-
16절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 하여 가다가
17절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왕이 되어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책망을 하며 백성들로 따르지 않게 함으로 괴롭다는 것입니다. 그저 축복이나 빌었으면 온갖 대우를 받고 왕의 상에서 먹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회개케 하시려 주신 기근을 괴롬으로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누가를 통해서 나타내신 생선을 구하지 않음으로 뱀을 주며 알을 구하지 않음으로 전갈을 주신 것입니다. 눅11:11-
18절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여로보암의 악을 좇았고 이ㅣ세벨의 사악을 좇음으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괴롭게 하신 것을 알지 못하는 아합인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죄를 지적해주나 듣지 않는 아합 왕입니다.
19절 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한칼로 멸하시려 모으게 하시려 도전장을 내라고 이미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알은 눈에 보이는 이세상의 주요 아세라는 풍요와 다산의 여신으로 오늘날 세상 것만 바라고 평안과 자녀에게 재산을 물리는 자들입니다.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을 잘못 섬기는 자들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시17:14-
20절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백성을 미혹하여 우상 섬기는 자리에 떨어지게 한 선지자들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 갈멜의 뜻은 비옥한 하나님의 정원, 과수원이라는 뜻으로 엘리사는 이곳에서 선지들을 양육하였습니다. 왕하 4:25
21절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가죽옷 구원과 생명나무의 실과인 영생을 얻게 하시는 조상들의 신앙을 저버리고 먼저는 여로보암의 교훈과 이세벨의 교훈에 빠져 신비주의가 되어 기도만 광적으로 하는 자들입니다. 그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기도가 오로지 세상에서 잘되게 해달라는 기복신앙입니다. 엘리야를 통해서 책망을 들으면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지 하다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들의 말을 들으면 기도만 하면 무엇이든 다 되는 것이니 열심히 기도해야지 하며 신비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통해서 마지막 말씀을 주시면서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수24:15-
지금도 복음으로 살리심 받고 진리의 양식으로 자라는 길을 택할 것인가? 세상 복만 말하는 곳에서 장로 권사되어 열심 충성할 것인가? 중간에서 머뭇하다가 세월이 다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여호와는 나를 택하여 지어주신 성부요 구원해주신 성자요 그영광으로 인도하시는 성령으로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린 자에게 그 영광을 얻게 하시는 영적 양식을 주시는데 바알은 오로지 눈에 보이는 세상 축복입니다. 백성이 한 말도 대답이 없는 것은 아합 왕과 이세벨의 칼날이 두려워서입니다. 요12:42-
22절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 이것은 착각입니다. 이미 오바댜로 선지들 100명을 숨겨 살려 남게 하셨고 그 외에도 우상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000이 있었습니다. 왕상19:18-
‘나만 잘하고 있다’는 이 잘못된 생각이 ‘내가 거짓 선지자들을 다 죽였으니 이제야 백성들이 대접하겠지’ 하고 아합왕보다 먼저 왕궁에 도착하였고 (왕상18:46) 이세벨로 죽이라 할 때에 도망하여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게 된 것입니다. 왕상19:14-
23절 그런즉 두 송아지를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저희는 한 송아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며 두 송아지는 북이스라엘에 두 금 송아지로 땅에서 복많이 받고 죽어서 천국가게 하소서 하며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한 송아지는 각을 뜨라고 하신 것은 너희 속에 원죄가 가득한 것을 보게 하시는 것이요
나도 한 송아지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고 우리 속에 가득한 원죄를 누가 이기게 하나? 나무 위에 올려 불은 놓지 말라는 것은 누가 우리 속에 원죄를 이기게 하나? 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불은 성령의 역사이니 어떤 심령에 성령의 역사가 있느냐? 는 것입니다. 렘23:29-
24절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바알과 아세라는 세상 것만 보여주는 신이요 여호와는 영원태초부터 계셔서 택하신 자들을 지으시고 구원하시고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삼위로 계신 하나님입니다. 요1:1-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이셨으니 이제 속에서 올라오는 원죄를 이기고 날마다 신령한 기쁨과 감사로 열매맺게 하시는 그 역사가 있게 하시는 것이 응답입니다.
25절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 숫자부터 많은 거짓된 자들입니다. 큰 예배당을 세우고 많은 숫자가 모여 ‘하나님’ 하고 부르지만 ‘바알이여 아세라여’ 하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불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성령의 역사로 원죄를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26절 저희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아무리 오랜 시간 기도하지만 아무 응답이 없는 것은 원죄는 사람의 힘으로는 이길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 복 받으려 오랜 신앙생활을 한자들 다 원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큰소리로 찬양하고 큰소리로 기도하여도 아무 응답이 없는 것은 성령의 역사 없다는 것입니다. 단 주위에서 뛰노는 것은 하나님을 잘못 알고 오늘날 예배가 변질되어 각종의 악기를 동원하고 목소리와 몸매를 자랑하는 자들을 앞에 세워 세상 축제처럼 집회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자기 자녀들이 나가서 감정적으로 찬양하는 것을 좋아하는 장로 권사 부모들인 것입니다. 출애굽 후에도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을 때에도 금송아지 주변을 뛰놀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출32:19-
27절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거짓된 자들은 결국 조롱을 받게 됩니다. 세상 복을 받으나 더 욕심에 빠져있고 가난하게 되면 원망하는 자리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 하매 신비를 앞세우는 자들의 기도는 무조건 오래 자기들의 힘을 다해 큰소리로 부르짖는 것입니다. 복음과 진리를 알지 못하고 믿는다 하는 자들 다 이 자리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런 역사가 없습니다. 말씀 주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시는 여호와를 잘못 알았기 때문입니다.
28절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기도원에서 큰소리로 기도하게 하고 큰 예배당마다 더 큰소리로 기도하게 하고 있습니다. 가까이에 계셔서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4:7-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기도를 하여도 응답이 없음으로 이제 규례에 따라 몸을 상하면서 떼거지를 쓰는 것입니다. 그 규례는 응답하실 때까지 한단계 한단계 더 간절히 부르짖게 하는데 오늘날 말씀은 없이 철야, 금식기도는 몸을 상하게 합니다. 바리새인의 금식은 나 몇일 금식기도 한다고 광고하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5:17:18-
29절 이같이 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 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지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말씀없는 기도는 결코 듣지 않으십니다. 복음을 모르니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으니 하루종일 몸을 상해 가면서 기도해도 속에서 올라오는 원죄는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언(陳言)은 말만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응답이 없는 이것이 정상인데 오늘날 사람들을 속이며 응답이 왔다고 하는 자들이 많이 생겨난 것입니다. 특히 전도관, 이재록, 순복음, 베뢰아 성락교회 등등 각종의 세상 것으로 거짓말 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0절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850명의 시끄럽고 요란한 제사는 끝이 났습니다. 핫된 제사는 자기들 몸만 상하여 지쳐 갈 뿐입니다. 이제 엘리야 차례인데 백성들로 오게 합니다.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여호와의 단은 1.아담 때 (가죽옷) 2.노아 때 (방주로 구원) 3.아브람 때 (가나안에 열매) 4.야곱 때 (환도뼈 꺽으심) 5.모세 때 (애굽에서 나오게) 쌓던 단으로 앞선 자의 신앙을 잇는 것입니다.
31절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두 돌을 취하니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신 하나님이신데 북이스라엘은 다시 야곱으로 돌아간 자들입니다. 열두 돌은 열두방백 열두지파를 의미하고 예수님 때 열두제자요 하늘에 영원한 영광성에 문이 열 둘입니다. 계21:12-
다 같은 영광에 합당한 똑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열두 반열로 나아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야곱은 여호와께서 옛적에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창세기서에 간교한 야곱을 자랑할 것 없는 이스라엘로 바꾸셨습니다. 창32:28-
32절 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로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 아를 용납할만한 도랑을 만들고 삼위로 계셔서 역사하시는 여호와 십니다. 도랑을 파는 것은 물이 흘러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33절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각을 떴으니 송아지가 다 해부되어 내장은 버려지고 그 고기만 나무 위에 올려진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제물되신 것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각을 뜨는 것은 우리들 속에 죄를 보게 하시는 것립니다. 각을 뜨지 않으면 아브라함 때에 솔개(악령)가 내리듯 원죄에 지고 악해집니다. 창15:11-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통 넷은 사복음서입니다. 번제물은 십자가 구원으로 희생하신 예수요 나무는 십자가입니다. 물을 붓는 것은 십자가 은혜입니다. 잘못하는 북이스라엘이지만 택자들이요 구원을 이루신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34절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 그리하라 하여 세 번 그리하니 세 번 그리한 것은 복음서를 통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역사를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게 하시려 세 번 기도한 것과 같습니다. 왕상17:21-
35절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도랑에 물이 차는 것은 주시는 말씀마다 아구까지 채우는 것입니다. 요한을 통해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으로 나타내주셨습니다. 물이 가득한 것은 아구까지 채웠다는 것입니다. 요2:7-
36절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십자가 구원을 이루시려 저녁에 기도하러 산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끌려가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사 가나안에 들이셨고 이삭의 하나님은 그 가나안에서 백배의 열매를 맺게 하셨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환도 뼈가 부러지듯 자기 의를 꺽은 자에게 열두 방백을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바로 나타내는 자가 주의 종이요 그들을 통해서 나타내신 말씀대로 이루심으로 계속 인도를 받아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왕상17:24-
37절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무엇을 응답하라는 것인가? 먼저는 엘리야 속에 있는 원죄를 이기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그리고 백성들도 원죄를 이길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교훈을 받아 세상 복을 구하는 자리에 떨어져 욕심만 더했고 주신 것에 대한 감사는 없고 안 주신다고 원망만 한 백성들입니다.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제 가나안에 들이신 뜻을 깨닫게 하사 다시는 육신주의로 살지 않고 영적 생활을 앞세우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38절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여호와의 불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 사랑을 깨닫게 하시매 마음이 뜨거워서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번제물은 예수님이요 나무는 십자가 구원을 이루신 것을 알게 하십니다. 돌은 내 고집이요 흙은 육신입니다. 지금도 그 불은 진리의 말씀과 함께 원죄를 태워주시는 것입니다. 눅12:49-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도랑의 물은 아구까지 채워주신 영적 양식인데 사람의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한말씀 한말씀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39절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눈에 나타난 이적만 보고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도 병고친다 이적보여준다 예언한다고 하는 곳에는 떼로 몰려가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입니다.
40절 엘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거짓되고 악한 자들은 어느 때나 있었고 그들의 결국은 속히 베임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설치고 있지만 하나님의 주권역사로 내버려 두시는 것이요 조금이라도 자기 속에 거짓을 이기지 못하면 끌려가게 돤다는 것입니다. 기손은 신의 강이라는 뜻으로 드보라 사사 때 시스라가 철병거 900승과 온군사를 기손강으로 모았으나 여인 야엘에게 죽임을 당하고 패배하였습니다, 삿4:13-
41절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지금이라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큰 비는 많은 은혜입니다. 왕까지 되게 하신 것은 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하나도 없고 욕심만 더 커진 것은 복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42절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 가니라 엘리야는 영적 양식을 먹고 마시라는 것인데 육신만 보는 아합 왕은 육적 양식만 먹으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더 높은 신앙의 경지에 올라가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는 기도는 지극히 간절한 심령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눅22:41-
43절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바다는 죄악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많은 물이 땅을 삼키지 못하는 것은 경계를 그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육신으로 났으니 속에는 원죄의 역사가 올라오고 세상은 온갖 유혹으로 육에 치우치게 합니다. 거기다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같은 자들이 왕에게 온갖 대접을 받으면서 거짓 예배를 하게 하니 속는 자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이제 원죄를 이기게 하시는 역사를 일곱 단계로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일곱 단계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계1:4) 일곱 단계 영광의 영인 성령으로 충만케 하실 때 스데반처럼 나를 죽이는 자들까지도 불쌍히 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44절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성령이 충만하다고 누구라도 큰소리쳐서는 안 됩니다. 잠시라도 깨어있지 못하면 어느새 원죄를 보지 못하고 또 실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손 만한 작은 구름은 이제 점점 커져서 온 하늘을 덮게 됩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십자가 사랑과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비에 막히면 많은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창수가 나는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있는 아합은 무엇이든 복으로 주면 오히려 그 복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복을 받아 날마다 호화롭게 연락하는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눅16:19-
악인들의 최후를 알게 하시려 당장에 죽이시지 않으시고 미리 내려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45절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비가 내리는지라 구름은 영광이요 바람은 환난입니다. 하늘이 캄캄해지는 것은 세상의 소망을 끊어주시는 것입니다.
큰비는 창수로 가물어 메마른 땅을 적셔 회복케 하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그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고 또 넘어질 뿐입니다. 마7:27-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이스르엘의 지명의 뜻은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뜻입니다. 갈수록 악해지는 아합으로 인해 그백성들은 722년에 이리저리 흩어지고 맙니다. 이때에 일을 호세아 선지로 음탕한 고멜로 아내를 삼게 하시고 첫 번째 낳게 하신 자식 이름이기도 합니다. 호1:4-
46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제 나라는 거짓된 것을 추방하고 엘리야가 대접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저가 허리를 동인 것은 달려가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아합은 마차를 타고 달리는데 멸망길로 달려가고 엘리야는 영광 길을 뛰어서 달려가는데 항상 아합의 왕 앞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