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미국영화
감독 : 윌리암 와일러
출연 : 그리어 가슨, 월터 피전, 테레사 라이트
메이 위티, 리처드 네이, 헨리 트래버스, 레지날드 오웬
미니버 씨 부부(Kay Miniver: 그리어 가슨 분 / Clem Miniver: 월터 피전 분)와 그들의 3자녀 한가족은 영국의 평범한 중류 가정이다. 대학을 졸업한 큰 아들 네이는 갓 결혼한 신혼의 아내 라이트를 두고 공군 조종사로 출전한다. 미니버씨는 던커크 철수 작전에도 참가한다. 부인은 추락한 독일군 조종사와 맞부딪히기도 한다. 본격적인 독일의 공습이 시작되고, 방공호가 거의 일상적인 생활공간이 되다시피 하지만 가족은 굳건히 견디어 나간다. 그러나 어느날 공습에서 임신 중이던 며느리를 잃고 만다. 라스트에서 폐허가 된 교회에서 올려지는 예배.
잰 스트로서(Jan Struther)의 단편 여러개를 연결시켜 구성한 윌리암 와일러 감독의 전쟁 영화로, 미국이 영국의 전쟁 수행을 원조해주고 있던 시점에서 제작이 되었고 개봉시에는 이미 미국도 참전을 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전시의 대국민 홍보용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평범한 한 가정이 겪는 전쟁의 여러 모습들을 잔잔하면서도 뚜렷하게 부각시켜 반전 영화로도 의미가 깊다.
특히 명장 와일러 감독이 던커크 철수 작전 상황을 연출한 씬들은 압권이다. 던커크 철수 작전이란, 2차대전 초기에 프랑스로 출전했던 영국군들이 참패를 하고 독일군에게 밀려서 간신히 탈출한 해안의 이름이다. 수송수단이 부족했던 영국은, 처칠수상이 전국의 모든 배들에게 동원령을 내려 개인소유의 작은 배나 고기잡이 배까지 수백척의 배들이 던커크 해안으로 가서 그저 올라타는대로 싣고서 영국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남편은 자신이 소유한 작은 배를 가지고 그저 라디오의 방송만 듣고는 다른 배들과 함께 나간다. 그리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미니버 부인. 무사히 돌아오는 남편. 그 과정의 긴박감이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던커크 해안은 단 한장면도 안나오지만, 그 급박한 상황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멋진 연출이었다. 아카데미 감독상 자격이 충분하며, 많은 명작들에서 콤비로 활약한 그리어 가슨 - 월터 피전 커플을 중심으로 모든 등장인물들이 호연을 보여주었다. 두 주역은 아카데미 남우, 여주 주연상을 받았다.
미니버부인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2차 대전 참전국을 위한 위문공연형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개봉될 1942년 당시는 아직 종전이 안된 상황이었죠. 따라서 2차 대전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1939년에 발반된 2차 대전에서 미국은
처음에 중립을 지켰지만, 1941년 12월 진주만 공격을 받고, 본격적으로 연합군측에
합류, 참전을 하였죠. 이후 미국이 2차대전을 연합군승리로 이끈 주역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죠.
미니버부인이 제작될 당시는 미국이 본격적으로 2차대전에 참전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영화제작기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는 미국의
'국민감독'인 윌리암 와일러의 작품이지만, 무대는 '영국'입니다. 영국의 평온한
중류가정인 미니버 일가의 따뜻하고 평화로운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죠. 전쟁이
터져서 미니버 부인의 큰 아들이 참전하기 전까지는 그냥 따뜻한 가정드라마였죠.
그러나 전쟁이 터지고 독일의 영국공습이 이어지고, 희생자들이 생겨나면서 이
영화는 히틀러의 독재에 항거하고, 연합군의 승리를 기원하고,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영화로 마무리됩니다.
지금 보면 그냥 2차대전을 되새기면서 볼 수 있지만 전쟁이 '현재진행형'이던 당시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면, 더구나 연합군의 승리가 확정적인 2차대전 막바지도 아닌,
전쟁의 결과에 대해서 유럽전역이 불안해하고, 특히 폴란드와 프랑스가 독일에게
침공당해서 불행을 겪던 시기에 개봉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의미깊은 영화였죠. 만약 2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지 않았다면 미니버부인
이라는 영화는 역사속에서 사장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상 최대의 작전' '미드웨이'
'발지 대전투'등 이미 2차대전의 승리의 결과를 가지고 여유롭게 만든 전쟁영화와는
그래서 의미가 다르죠.
미니버 부인으로 등장한 그리어 가슨
친절한 미니버부인과 역장, 아름다운 장미를 키우는 역장을
장미의 이름을 '미니버부인'으로 정한다
남편역의 월터 피전
미니버부인에서는 여러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그중 여배우들이 유난히 더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인 미니버부인역의 '그리어 가슨'은 전형적인 '현모양처형 배우'로
익히 알려져있고, 항상 현명하고 인간적인 숙녀역으로 등장했던 배우입니다.
'오만과 편견' '마음의 행로' '사랑의 결단' '브룩휠드의 종(굿바이 미스터 칩스)'등의
대표작이 있죠. 이 영화에서도 아주 현명하고 용감하고 따뜻한 귀부인으로 등장하여
영화 전체를 훈훈하게 만들어줍니다. 남편역의 월터 피전은 아쉽게도 들러리역할밖에
하지 못했죠. 미니버부인 못지않게 돋보이던 여배우는 미니버부인의 며느리로 등장한
테레사 라이트입니다. '우리생애 최고의 해'나 '의혹의 그림자'등에서 항상 개성있는
역할을 했던 재능있는 여배우인데, 미니버부인에서도 당차면서도 똑똑하고 겸손할 줄도
아는 아리따운 처녀로 등장했죠. 테레사 라이트가 다른 영화에서 보다 미모와 이미지가
더욱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테레사 라이트의 할머니이자 귀족가문의 노부인으로
등장한 메이 위티라는 배우도 7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고집세지만 속깊은 노인역을
기품있게 해냅니다.
특히 테레사 라이트의 첫 등장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고, 당당하지만 겸손함도 잃지
않는 지혜로운 젊은 처녀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었고, 미니버부인의 아들과의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굉장히 흐뭇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테레사 라이트와 미니버 부인의 큰 아들 빈(리처드 네이 역)과의 첫 만남은
심한 언쟁으로 시작되었지만 둘은 얼마 안 가서 사랑에 빠진다.
테레사 라이트
미니버 부부의 행복한 시간
미니버 부인의 큰 아들과 사랑에 빠진 손녀 테레사 라이트의 문제로
찾아온 귀부인(메이 위티역)에게 젊은이들의 결혼을 허락하자고 현명하게
설득하는 미니버부인
평화로운 마을의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아픔, 그리고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하려는 훈훈한 이야기, 전형적인 휴먼드라마이고, 모범적인
영화입니다. 너무 '표준화된 모범적 스토리'라서 어찌 보면 특징이 없는 영화같지는
하지만, 당시의 불안하던 정서를 어루만져 주기에는 딱 적합한 영화같습니다.
미니버부인은 1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 여우주연,조연을 비롯한 6개부문을
휩쓸었고, 윌리암 와일러의 첫번째 아카데미 석권이었죠. 흥미있는 가정을 한다면
16회 아카데미상은 '카사블랑카'의 독주였는데 원래 두 영화는 같은해 개봉된 작품으로
당시 아카데미규정은 이듬해 봄에 열리는 시상식 출품자격으로는 12월 어느 기한까지가
정해져있었는데 카사블랑카는 년말이 다 되어 개봉해서 15회 시상식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16회에서 경쟁하게 되었죠. 만약 카사블랑카와 미니버부인이 함께 경쟁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두편의 영화 모두 '위문공여형 작품'인것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실 2차대전중의 시기에 만들어지는 영화중에서 이러한 작품들이 강점을 띠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공습으로 엉망이 된 가정
그리어 가슨과 테레사 라이트
두 배우는 나란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조연상을 수상
도주중인 독일 부상병을 만난 미니버부인
슬기로운 대처로 그를 체포하여 경찰에 넘긴다.
꽃 품평회에서 역장에게 1등상을 양보하는 벨던 부인
미니버부인과 사돈간이 된다.
공습으로 지붕이 날아간 교회와 전투기를 보여주면서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끝나는 엔딩씬
카사블랑카에서 카페에서 '노래'로 분위기를 역전시키는 장면이 작위적이지만 인상적인
장면이었는데, 미니버부인에서는 도주중인 독일 부상병을 만나서 침착하게 그를 체포하여
경찰에 넘기는 미니버부인의 용기와 꽃품평회장면에서 고집스런 귀족처럼 느껴졌던
메이 위티가 현명하게 상을 양보하는 장면등이 인상적입니다. 평화와 화합의 메신저같은
영화 미니버부인은 다시금 전쟁의 아픔과 자유와 평화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입니다.
우리나라도 6.25라는 참혹한 전쟁의 아픔을 겪었고, 1차,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전쟁의 아픔과 무고한 희생자의 슬픔을 겪은 나라는 많았죠. 미니버부인은 그런 사람들에게
바쳐지는 헌정같은 영화로 느껴집니다.
ps : 미니버부인은 8년뒤인 1950년 그리어 가슨과 월터 피전이 다시 출연하여 '미니버 스토리'
라는 속편이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본 영화는 아니지만. 물론 그 영화는
윌리암 와일러가 감독하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