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결이 스승 왕예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외물에서
누구나 옳다고 동의할 수 있는 측면을 알고 계십니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나?
선생님께서는 선생님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 아닙니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나? 그러면 외물이란 알 수 없다는 겁니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나?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 말이나 좀 해보세
도대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게
사실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고 알 수 있겠는가?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하는게
사실 아는 것이 아니라고 알 수 있겠는가?
이제 시험 삼아 자네에게 묻겠네
사람이 습지에서 자면 허리가 아프고 반신불수가 되겠지
마꾸라지도 그럴까? 사람이 나무 위에서 산다면 겁이 나서
떨 수밖에 없을 것일세 원숭이도 그럴까?
이 셋 중에서 어느 쪽이 올바른 거주지를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사람은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고, 지네는 뱀을 달게 먹고
올빼미는 쥐를 좋다고 먹지 이 넷 중에서 어느 쪽이
올바른 맛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원숭이는 비슷한 원숭이와 짝을 맺고, 순록은 사슴과 사귀고,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놀지 않는가?
모장이나 여희는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지만
물고기는 보자마자 물속 깊이 들어가 숨고, 새는 보자마자
높이 날아가 버리고, 사슴은 보자마자 급히 도망가 버린다네
이 넷 중에 어느 쪽이 옳바른 아름다움을 안다고 하겠는가?(제물론)
이 이야기를 인생의 궁극적 정답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이며, 온전한 참음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 철학은
분별의 쳇바퀴을 끝임없이 돌리므로
문화와 문명을 발전과 발달시키는 철학서 등을 만들고
불교는 싯달타 등이 부처나 불법이 정답이라고
불경 등을 만들고, 유교는 공자 맹자 등이
도덕천의 인이 정답이라고 사서삼경 등을 만들고,
도교는 노자 등이 유무상생의 도가 정답이라고
도덕경 등을 만들고, 기독교는 모세와 바울 등이
야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정답이라고
성경을 만든 것처럼
장자를 대단한 선생이나 정답으로
이미 결론을 내어놓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말들로 분별하여
장자를 도구로 스스로 대단한 선생이 되는
무례한 오지랖을 펼치고 있지만
이 이야기의 본질은 온전한 참을 찾기 위한
조건과 환경의 유불리를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라
분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만물이 인정하는
온전한 참이 없다란 넉두리로 바로 알 때
참이 없고 모든 것이 헛된 이 세상에서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라 원인이나 이유나
결과 등의 유불리를 분별하여 연합이나 야합하여
상생이나 공생하려고 정답처럼 철학서나 종교의
경전 등을 만들어 스스로를 속이는 삶이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수행하는 삶은
바른 정답의 삶이 아닐 뿐 아니라 우리란 이념을
진짜 나로 착각하여 내가 원하는 너로 변화시켜
정복하여 다스리려는 감탄고토의 연기인
무례한 오지랖이 된다
따라서 온전한 지혜는 무분별 지혜이고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기쁨과 평안과 자유가
온전한 조화를 이룬 행복을 소유하여 누리는
사랑으로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또 너와 내가 아닌
스스로 거듭난 온전한 우리만 가능한 것으로
그 실상은 부모나 보호자가 없이 가능한 어린 아이의 삶이나
야훼 하나님 없이 가능한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의 삶으로
결국 스스로 만든 나만의 에덴동산에서만 온전한 행복을
소유하여 누리는 무주상의 삶인 진짜 사랑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