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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무기북한 스크랩 칼리시니코프..... 다목적기관총
트로이의목마 추천 0 조회 96 15.05.14 16:1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소련의 다목적기관총, PK 기관총 <출처: 미국 정부>
제정 러시아 이래로 소련을 거쳐 현재의 러시아 연방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운용하는 군, 특히 육군은 가히 대단한 수준이다. 국토가 무지막지할 정도로 넓어서 상비군의 규모가 다른 나라에 비해 필연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국력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군의 규모가 크다 보니 군사강국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거대한 북극곰의 군대가 정작 위협적인 존재로 각인된 것은 2차대전 중반 이후부터다.

▲ PK 기관총. 헝가리 육군의 사진이다.
그 이전에는 허우대만 큰 무기력한 군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20세기 초기에 있었던 러일전쟁, 1차대전, 겨울전쟁 등에서 보여준 모습이 그런 편견을 더욱 부채질했는데, 사실 이는 거대한 군대를 효과적으로 조련하지 못한 위정자와 군 지휘부의 무능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다. 결론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사상 최대의 전쟁인 2차대전에서 승리하였다는 사실은 소련군이 강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히틀러는 소련을 무시하였지만 당시 소련군이 보유한 무기는 상당히 뛰어난 수준이었다. 하지만 모든 무기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유독 기관총 분야는 경쟁국, 특히 독일과 비교하여 그다지 좋지 못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곧바로 냉전이 시작되며 군사력 우위를 계속 점하기 위해서는 보다 좋은 기관총이 필요했던 것은 당연하였다. 그러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한 소련의 다목적기관총이 바로 PK 기관총이다.

▲ 1943년 제식화 된 SG-43 중기관총. 바퀴식 거치대에 장착하였을 경우 무게가 40kg이 넘어 공격용으로 사용하기 어려웠다.
승자에게 부족했던 것

 

앞에서 러시아, 소련의 기관총이 좋지 않았다고 표현했지만 그렇다고 형편없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1차대전 발발 이전에 맥심 기관총을 라이선스 생산하여 자국 여건에 맞게 개량한 PM M1910을 보유했던 것처럼, 여타 열강과 비교하여 기관총의 도입과 보유가 늦은 것은 아니었다. 2차대전 당시에는 경기관총인 DP와 중기관총인 DShk, DS-39, SG-43 같은 다양한 기관총을 제작하여 사용했다.

 ▲ MG 42는 강력하기도 했지만 이동이 편리하여 다양한 종류의 전투에 투입이 가능하였다. <출처: cc Bundesarchiv>
PM M1910은 2차대전이 되었을 때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 받았지만 그래도 방어전에서 유효 적절히 사용할 수 있었고 1930년대 본격 제식화한 여타 기관총들도 제 몫을 해주었다. 단지 결과만 놓고 본다면 소련은 전쟁에서 승리했으므로 그들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최종 승리를 얻기 위해 바친 대가는 너무 컸다. 승전국임에도 2차대전 당시 가장 많은 2,000만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사실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전쟁은 상대적이어서 내가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남이 더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이기기 어렵다. 당시 소련과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인 독일은 MG 34와 MG 42 같이 뛰어난 다목적기관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MG 42는 앞으로 기관총이 나가야 할 방향을 선도한 획기적인 걸작이었다. 사실 소련군의 기관총이 나빴다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기관총이 너무 좋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 RPK는 상당히 뛰어나고 호환성이 뛰어난 경기관총이다. 하지만 서방의 다목적기관총에 비해 화력이 열세였다.
다시 한번 오판하다

 

소련은 이런 질적 격차를 양으로 보완했지만 다목적기관총을 소부대의 화력으로 삼고 작전을 펼치는 독일군의 전술에 번번이 당하였다. 소련은 많은 종류의 기관총을 운용하였지만 독일군과 같은 고속 기동전을 펼치기에 정작 마땅한 기관총이 없었다. 일단 PPSh-41 같은 기관단총을 떼거리로 동원하여 보았지만 결코 기관총을 대신할 수는 없었고 DP 같은 경기관총으로 이 역할을 담당하려 했지만 화력이 부족했다.

 ▲ 화력 부족을 절감한 소련군 당국은 새로운 다목적기관총 개발에 착수하였고 그 결과 PK 기관총이 탄생하였다. 사진은 훈련 중인 우크라이나군 PK 사수.
결국 서방처럼 MG 42를 모델로 한 새로운 기관총을 만드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M60이나 FN MAG에 비한다면 소련의 다목적기관총 개발은 상당히 늦게 시작되었는데 이유는 AK-47의 등장 때문이었다. 자신만만하게 채택한 SKS 반자동소총을 불과 2년 만에 용도 폐기했을 만큼 AK-47의 성능은 뛰어 났다. 여기에 더불어 같은 규격의 총탄을 사용하는 RPK 기관총도 분대 지원화기로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즉 7.62×39mm 탄을 사용하는 AK-47과 PRK의 조합이면 굳이 소부대에 다목적기관총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에 사용하던 중기관총들은 기갑차량, 대공화기, 진지 거치용으로 계속 사용하도록 교통정리 하였다. 아무리 냉전이 격화되어 군비 증강이 필요했어도 기존에 생산되어 보유 중인 엄청난 양의 중기관총과 탄환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 칼라시니코프를 기리기 위해 사후 발행한 러시아 기념우표. 그가 만든 총은 소련,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사용 중이다.다시 떠오른 악몽

 

하지만 AK-47과 PRK 조합으로 구성된 소련군 방식의 소부대가 중동전쟁을 비롯한 여러 국지전에서 문제점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7.62×51mm 탄을 사용하는 M60이나 FN MAG에 화력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처럼 낙관적인 예상과 달리 보유하고 있는 공용 화기에 따라 실제 교전에서 많은 차이가 벌어졌다. 2차대전 당시 MG 42에 속절없이 쓰러져 갔던 악몽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화력의 열세를 극복하려면 중기관총을 사용해야 하는데 너무 무거워 기동력이 떨어졌다. 결국 소련은 그 동안 묵혀놓았던 다목적기관총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새로운 기관총을 만들면서 중구난방으로 갈라져 보급이나 유지 보수에 문제가 많은 기존 중기관총을 모두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서방과의 기술 격차는 그만큼 벌어진 상태여서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대 중반 소련 당국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걸고 각 설계국에게 새로운 다목적기관총의 개발을 지시했다. 기존 제식탄인 7.62×54mm 탄을 사용할 것, 삼각대 및 기관총과 일체화된 양각대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 일선 보병들이 충분히 휴대하고 다닐 수 있을 것 등이었다. 이때 최종적으로 경합을 벌인 후보는 니키틴과 AK-47의 제작자인 칼라시니코프(Mikhail Kalashnikov)가 제출한 작품이었다.

 ▲ 쿠르드족의 준군사조직인 페시메르가 대원이 사용 중인 PK.
다시 한번 칼리시니코프

 

1956년 7월, 니키틴의 기관총이 먼저 개발 완료되었는데 빠른 총신 교환이 가능한 공랭식이었다. 반면 칼라시니코프는 자신이 만든 RPK를 상당히 신뢰하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새로운 다목적기관총의 개발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AK-47와 RPK에 무한 신뢰를 가지고 있던 군 당국이 강력하게 요청을 하면서 뒤늦게 개발에 나섰고, 시간이 부족하자 AK-47 작동방식을 바탕으로 일사천리로 기관총 설계에 착수했다.

 

무게가 10킬로그램 이하이기를 바라는 당국의 요구에 부응하여 칼라시니코프는 AK-47의 가스압 구동 회전노리쇠 방식과 손잡이를 그대로 사용했고 RPK제작에도 사용한 프레스 방식을 적용하여 생산성을 높였다. 그리고 탄띠에서 탄을 신속히 뽑아내기 위해 노리쇠 뭉치 위에 발톱을 달았다. 총기의 천재답게 칼라시니코프는 단기간 내에 기존 기술을 최대한 접목하여 새로운 다목적기관총을 신속히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 (좌)핀란드 군이 사용 중인 PK 기관총
(우)몽골군이 PK에 폴란드제 PCS-5 망원경을 부착하여 사용하고 있다.
니키틴의 모델보다 늦게 개발되었음에도 1961년 최종 경합에서 당당히 선정되어 ‘칼라시니코프 기관총(Pulemyot Kalashnikova)’, 약자인 PK라는 이름을 얻고 1965년부터 일선부대에 공급되었다. 이로써 소련군 소부대의 제식화기는 칼라시니코프가 만든 AK-47 소총, RPK 분대지원화기, PK 다목적기관총으로 구성되었다. 한마디로 소련 및 동구권 소부대의 총은 그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게 된 셈이었다.

 

PK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칼라시니코프가 만든 총답게 싸고 질 좋은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개발을 의뢰하였지만 칼라시니코프에게 주어진 시간이 적어 결과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소련군 당국이 흡족해할 만큼 기대보다 좋은 성능을 발휘했다. 늦었지만 이렇게 일산천리로 개발된 PK 기관총은 기존에 사용하던 여러 종류의 중기관총을 급속히 대체하며 서방의 FN MAG, MG3, M60 기관총의 대항마로 자리 잡았다.

 

칼라시니코프가 만든 총기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PK도 오랜 기간 동안 많이 생산되다 보니 다양한 파생형, 개량형이 등장하였다. 그 중에서도 휴대에 편리하도록 무게를 7.5kg까지 줄인 PKM이 대표적인데, 경쟁 상대인 FN MAG(M240)의 무게가 10kg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경량화에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1969년부터 본격 도입되었는데 현재 사용 중인 대부분의 PK가 바로 PKM이다.

 ▲ (좌)차드에 파병된 핀란드 평화유지군의 PK 사수
(우)폴란드군 PK 사수
PK는 차량 등에도 거치하지만 보병들이 손쉽게 휴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성능 또한 만족스럽다 보니 냉전 기간 중 100만 정 이상이 생산되어 전 세계에 공급되었고 현재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카피 생산되고 있다. 그래서 어느덧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국지전이나 분쟁에 반드시 등장하는 무기가 되었다. 현재 러시아에서 이를 대체하는 개발 사업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오랫동안 현역에서 활약하리라 예상한다.

 

 

제원

 

탄약 7.62×54mm R / 급탄 100, 200, 250발 탄띠 / 작동방식 가스작동식, 회전노리쇠 / 전장 1,178mm / 중량 8.99kg(초기형), 7.5kg(PKM) / 발사속도 분당 650발 / 유효사거리 1,000m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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