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곧 카페로 출근해야 했고 몇 명인가 내 주위를 돌며 자리가 나길 기다리고 있는듯했다. 1시간이 넘게 이곳에 앉아있었으니 눈치가 보일만한 시간이었다.
‘이놈의 나라는 도서관 말고는 무료인터넷 되는 곳이 없나?’
올 때마다 같은 생각이지만 명색이 대륙에 필적하는 이곳에 인터넷 선을 설치한다는 생각을 하면 눈앞이 깜깜해졌다. 결제 버튼을 누르면 앞으로 내게 펼쳐질 일들처럼.
고민 끝에 결국 티켓을 사기로 했다. 이미 오래전에 내린 결정이었고 5대륙을 밟으려면 이곳에서 두 가지 일을 하면서 돈을 아껴봤자 한계에 부딪힐 것 같았다.
출구는 눈앞에 있었고 모른 척 미로를 헤매봤자 결국엔 내가 내 등을 미는 수밖에 없었다.
‘Carnarvon(카나본) 행 편도 90달러’
확인 버튼을 눌렀고 마지막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이곳 퍼스에서 지낼 날은 앞으로 2주정도. 처음으로 타국의 도시에서 생활했던 6개월은 이제 곧 추억의 도서관으로 사라질 것이다. 6개월간 날씨를 제외하곤 한 번도 뉴스에 오른 적이 없는 도시. 이곳은 적막한 낮과 고요한 밤의 기운이 어우러지는 낯설고 조용한 도시였다. 그 흔한 감기한번 걸리지 않았으니 얼마나 이곳의 기에 눌려 있었던 걸까.
곧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아쉬울 법도 했지만, 아마 이곳은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을 기억의 서고에 잠들 것 같다. 적응기가 끝나고 일을 구한 날부터 난, 아침에 일어나면 자전거를 주워 타고 호텔로 향했다. 그곳에서 하우스 키퍼들에게 수건이나 그 외 물품들을 날라주는 일을 했고 저녁때는 어느 한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모두가 퇴근한 건물을 청소하는 일을 했다. 두 달 전부터 조그만 이탈리아 식당에서 서빙을 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6개월간 쉬지 않고 두 가지 이상의 일을 이어왔고 주말이면 음악을 들으며 30분이 걸리는 근처 해변을 산책하거나 도서관을 찾아 인터넷으로 중고거래 물품을 거래했다. 적당히 지겨워질 즈음엔 책을 읽었다. 통장잔고는 어느새 1000만원. 이곳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은 딱히 없었다. 외로웠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고 힘들었지만 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도서관을 나와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말이라 4시간동안 정신없이 손님들이 들이닥쳤고 일이 끝나자 늘 그렇듯 메시가 저녁을 내왔다. 일이 끝나면 저녁을 제공해 주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었다.
“메시, 앞으로 2주 뒤에, 그러니까 다다음주 월요일에 전 이곳을 떠나 카나본이란 곳으로 가게 되었어요. 오래 일하지 못해 미안해요. 후임자를 고용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별로 놀라지 않은 듯 담담하게 반응하더니 마지막 인사를 하는 내게 넓은 등을 살짝 움직여 보였다. 그리곤 눈짓으로 내게 지긋지긋한 설거지 거리를 묵묵히 가리켰다.
다음날, 앤도 메시와 거의 비슷한 각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6개월간 일한 호텔이기에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인사말을 준비했지만 그녀는 나의 다음 말을 받아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내게 보인 건 안경 밖으로 슬쩍 들어난 불투명한 눈빛의 작은 움직임뿐. 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전화를 마치고는 고개를 숙인 체 일정표에 무언가를 계속 적어나가기만 했다. 혹시나 해서 조금 기다려봤지만 그녀는 이내 의아한 눈빛을 내게 보낼 뿐이었다. 예상보다 더 외로운 반응. 아마 이 사람들은 누군가 나와 대화를 하지 말라고 보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도시라는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서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가방 속에 절반을 남겨두었지만 어쨌든 6개월을 넘게 지내다보니 꽤나 많은 물건들을 버려야했다. 일할 때 편하게 입었던 티셔츠, 영어공부를 위해 샀던 몇 가지 책들, 처음으로 구멍이 날 때까지 신어본 신발 등. 한국이었다면 추억이랍시고 어떻게든 꾸깃꾸깃 간직했을 물건들이었지만 그러기에 내가 이곳으로 가져온 가방이 너무 작았다. 몇 번의 고민 끝에 버릴 물건들을 골라내보니 이제 정말 이곳을 떠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이 조금 가벼워 졌지만 이상하게도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 남은 한가지 일. 마지막 일이 남았다. 이것만 마치면 이곳과 작별이다. 몇 주 동안이나 고민했던 마지막 일.
*
“어쩔 수 없지 뭐”
예상했던 답변. 전화박스로 건조한 바람이 새어 들어왔고 전화기를 쥔 내 손엔 조금 힘이 들어갔다.
“미안하다. 별다른 이유는 없어. 그냥 이유 없이 혼자 해보고 싶어졌어. 그냥. 말 그대로 그냥”
“그래. 네가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뭐. 네 목소리가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다 내렸구만 뭐.”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스쳤고 마른침이 몇 번인가 목을 축였을 즈음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건강은 하냐? 밥은? 돈은 좀 모았어? 엄마한테 전화 좀 드려라 걱정하시던데”
그는 국제전화를 하는 나를 배려하듯 빠르게 다음 말을 이어갔고 난 끄덕임 없이 “응”이라고 답했다.
이번에는 그가 짓는 표정이 눈에 잡힐 듯 선명해졌다가 곧 사라졌다.
우린 다시 일상적인 대화로 돌아왔다. 힘이 들어갔던 손은 곧 제자리로 돌아갔고 난 도망치듯 전화 부스를 외면한 체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쉬웠지만 익숙한 듯한 그의 답변 때문인지 가방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승범이요”
누군가 가장 친한 친구를 물어오면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난 습관처럼 그의 이름을 읊조렸고 한 번도 답변을 바꿨던 적이 없었다.
“내가 먼저 끝나면 너희 반 앞에서 가서 기다릴게. 네가 먼저 끝나면 우리 반 앞에서 기다려”라고 그가 내게 말을 건넨 순간부터.
그를 만나기전까지 난 매년 다른 친구와 등하교를 함께 했다. 주위엔 늘 참새 같은 친구들로 북적했지만 누구도 내게 내년에 같이 등교하자는 말을 해주진 않았다. 지하철 2호선처럼 그들은 당연하듯 자신들끼리만 순환하는 정거장을 만들었고 해가 지나면 나만 다른 목적지로 향하듯 반환점을 돌아 새 친구들을 맞이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내 방앗간엔 늘 새로운 참새들만 들락거렸었다.
그런 나에게 그는 처음으로 2년 동안 등하교를 함께한 친구였다.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중학교가 지났을 무렵부턴 더 이상 그와 같은 반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늘 내 옆자리였고 난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이기에 나의 결심을 말하기가 더 어려웠다. 우린 자동차를 빌려 함께 유럽을 여행하기로 했고 6개월 전 대책 없이 이곳으로 날아오기 전 이맘때쯤이면 그럴만한 여유가 생길 거라 생각했다. 곰팡이처럼 피어난 생각. 5대륙 여행이라는 미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아마 난 자연스레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을 것이다. 결국 난 그와의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고 매번 늦는 나를 기다려주던 그에게 처음으로 그곳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해버렸다. 미안함과 후련함. 난 발자국도 남기지 않은 채 그렇게 퍼스에서의 생활을 모두 정리해버렸다.
*
‘이들 중 카나본으로 가는 사람은 몇 명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버스 정류장엔 열 명이 조금 안 돼 보이는 인원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절반은 한 무리였고 나머지 절반은 모두 나처럼 혼자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시끄러운 친구들은 없는 듯 보였고 저마다의 사연으로 조금 지친 듯 보였다. 애써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열린 문지방을 보듯 슬쩍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마 뒤 유독 눈에 띄는 차림새의 한명을 발견했다.
그는 누가 봐도 일본인처럼 보이는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한국인처럼 보이는 뿔테안경을 썼고 다시 일본인처럼 보이는 꽁지머리를 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틀은 안감은 듯한 머리는 180이 훌쩍 넘어 보이는 키와 잘 어울렸다. 팔이 길다 못해 무릎에 곧 닿을 것 같아 보이는 친구였다. 몸에 비해 작은 가방을 수줍게 멘 친구. 그는 뜨문뜨문 눈을 깜빡이며 무심한척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그러하듯.
그는 둘이서만 공유하는 공기를 느꼈다는 듯 자연스레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짐을 푼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게 말을 걸었다.
“한국사람?”
“응. 너는 일본사람?”
“응. 실은 제일교포 3세야. 할아버지가 한국 사람이지”
그는 내게 여권을 보여줬다. 내가 지니고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초록색 여권. 한국말로 김세일이 그의 이름이었고 그는 본인을 세이루 킴이라고 소개했다.
“어디로 가는 길이야?”
“카나본. 농장으로 일을 하러 가는 길이야.”
“혹시 이전에 그곳을 방문해 본 적이 있어?”
“두 번째 방문. 4개월 전쯤 캐나다로 여행을 떠나기 전 농장에서 일을 했지.”
“그곳은 어때? 난 첫 번째 방문이거든.”
“그냥 시골 같은 곳이야. 퍼스가 대도시로 느껴질 만큼.”
그는 우직함을 풍기는 말투와 제스처로 소박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불필요한 말을 내뱉는 일이 없었고 대답의 타이밍은 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모두 끝난 이후였다. 상대의 눈을 오랫동안 마주하지 못하지만 그 느낌이 어색하지 않고 수줍게 느껴지는, 눈빛사이의 여백을 지켜보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그런 친구였다.
“그런데 카나본에선 어떤 일들을 해봤어?”
“주로 농장 일을 했어. 한 농장에서 오래 일을 했지. 바나나농장이었는데 시급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주인이 아주 착했어. 내가 지낼 곳도 마련해주었고 주말이면 같이 낚시도 하고 식사도 함께 했었지.”
“그럼 또다시 그곳으로 가서 일을 할 생각인가? 4개월 전이라면 그도 충분히 널 기억하고 있을 텐데.”
“물론 기억하고 있을 테지. 그런데 이번엔 가능하다면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 다음 여행 때까지 시간이 많지 않거든. 더 빨리 돈을 벌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
“더 빨리 돈을 벌수 있는 일? 카나본에 그런 농장이 있어?”
난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진 그가 갑자기 동지처럼 느껴졌다.
“응 한 가지 일이 있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는 일이야. 그곳엔 농장만 있는 게 아니거든. 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는 비밀을 말하듯 뜸을 들였다.
“어떤 일인데?"
“Fishing Job”
직관적인 단어였다.
“물고기를 잡는 일? 그곳에 그런 일이 있어? 근처에 해변이 있다고 하긴 하던데.”
“가리비를 잡는 일이야.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는 거지. 보통 3주간 바다에 나가고 1주일간 쉬면서 6개월간만 지속되지. 새우나 게도 부가적으로 잡는다고 들었어. 아주 힘든 일이지만 페이가 좋아서 일을 구하는 게 아주 어려워. 보통 힘을 많이 쓰는 일이라 아시아인들을 거의 고용하지 않아.”
‘말로만 듣던 새우 잡이 배 같은 건가?‘ 그런 일이 호주에 존재하는지도 몰랐지만 어쩐지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페이가 좋다는 점 그리고 3주 만 바다로 나간다고 하니 일단 3주 만 버티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아시아인을 거의 고용하지 않는다면 그 일을 구하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려운건가?”
“응. 처음엔 아시아인을 아예 고용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날밤 Fishing job 을 하고 복귀했던 일본인을 만났어. 아주 덩치가 큰 친구였는데 손에 해산물을 잔뜩 들고 나타나서는 그곳에 묵던 모든 이들에게 나눠졌지.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역전의 용사 같았어. 그의 말에 따르면 구하기 힘든 일이지만 타이밍이 잘 맞으면 일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
‘Fishing Job’
나름대로 도서관에서 인터넷을 뒤져가며 카나본에 대해 열심히 검색해봤지만 배를 탔던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다. 혹은 누군가가 열심히 일을 구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를 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 일을 하다 바다에 빠져 글을 남길 수 없었는지도. 이유가 어찌되었든 ‘Fishing Job’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박혀버렸다. 왠지 그 일을 위해 이곳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
“혹시 카나본에서 나와 함께 일을 구하고 생활할래? 포트호텔은 2인1실이나 1인 1실인데. 1인 1실은 비싸거든”
버스가 두 번째 정차했던 편의점에서 그는 내게 음료를 건네며 물었다. 함께 (Together) 란 말. 흔한 말이지만 6개월간 호주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누군가 내게 함께 하자고 이야기한 것이 얼마만인지. 아주 잠시지만 내 눈빛에서 설렘이 새어나오는 것이 느껴졌고 난 그가 원하는 타이밍을 아는 듯 대답을 건넸다.
“물론이지. 안 그래도 퍼스에서처럼 혼자 외롭게 일을 구할까 걱정했는데.”
그는 처음과 같이 일관적인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우린 민망스럽게도 캔으로 건배를 하고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11시간이 지나 카나본에 도착했다.
다행히 포트호텔에 방이 남아있었다. 세이루와 난 내가 가져온 컵라면을 나눠먹고 곧 잠자리로 향했다. 세이루는 버스에서처럼 눈을 감는 찰나의 시간이 넘어가자 곧 잠이 들었고 신라면이 맵다고 연신 땀을 흘린 탓인지 밤에 몇 번이나 깨서 물을 마셨다. 그리고 난 그가 3번째 물을 마시고 다시 쥐죽은 듯 잠드는 것을 온연히 느끼며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라면을 먹는 내내 테라스에 터줏대감처럼 자리한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혹시나 침대위로 기어오를까 무서웠고 인터넷을 떠돌며 봤던 농장에 대한 않 좋은 글들이 자꾸 떠올랐다.
혹시나 다치기라도 하면 병원도 없을 것 같은 이곳에서 어떻해야 하는지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이 머릿속에 한올 한올 떠오르기 시작했고, Fishing Job 은 어떤 일인지 나는 과연 이곳에서 돈을 얼마나 벌수 있을지 같은 생각들이 번갈아 덤블링을 탔다. 일을 구할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불안감이 가장 크게 다가왔고 그렇게 난 결국 아침을 맞이해버렸다.
다행히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그다지 피곤한 느낌은 아니었다. 세이루와 난 아침부터 장을 보며 분주하게 오전을 보냈고 그가 예전에 일했던 농장부터 돌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농장주인의 이름은 필. 그는 내가 상상했던 여느 호주의 농장 주인처럼 긴 수염과 커다란 덩치 그리고 그에게 어울리는 큰개를 대동하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덩치에 비해 작은 얼굴의 반을 선글라스로 가렸고 내 허벅지만큼 두꺼운 팔뚝엔 모기들이 두려워할 수북한 털들이 가득했다. 세이루는 캐나다를 여행하며 산 기념품을 건넸고 그는 우리에게 비스킷과 커피를 내왔다.
“캐나다 여행은 어땠나! 나의 친구 카누여행을 한다고 했지?”
그는 말끝마다 나의 친구(my friend)라는 말을 붙였다
“최고였죠. 카누를 타고 보우강과 콩강을 일주했어요. 세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캠핑하면서 꿈같은 시간을 보냈죠”
“와우 멋진데. 캐나다는 호주만큼 자연이 아름다운 곳인데. 부럽군. 마이 프렌드”
생각해보니 난 그가 한 캐나다 여행에 대해서 한 번도 묻지 않았었다. 카누여행이라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네. 반 년간 여행할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럴 생각이었죠. 그런데 그곳에서 아주 멋진 카약을 사버렸죠. 캐나다 목재는 세계 제일이거든요.”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역시 마이 프렌드답군. 자네가 선물한 이 낚싯대도 캐나다 목재로 만든 건가?"
“맞아요. 비싸진 않지만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낚시 대중에 하나죠.”
“보물이 늘어났군. 그래 다시 카나본으로 돌아온 건 일을 하기 위해선가?"
“네. 돈을 모두 써버렸거든요. 원래는 일본에서 카누관련 사업을 하기위해 돌아가려 했는데 그전에 한 번 더 캐나다를 여행하고 싶어서요.”
“그렇군. 근데 아쉽지만 지금은 일자리가 없어. 지금 일하는 친구들을 몇 주 전에 고용했거든. 혹시 그들 중 한명이라도 그만두면 자네에게 제일먼저 연락할게.”
“아쉽네요. 가능하면 제 친구도 같이 일할 수 있을까요? 이곳으로 오는 버스에서 만난 친구에요.”
나는 어색하게 한 번 더 자기소개를 했고 그는 자신의 농장에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일했다며 나를 반겼다.
그들은 낚시이야기를 시작하더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이어갔다. 난 대화에 참여하지 못한 체 저녁식사까지 함께했고 결국 그가 우리를 차로 바래다 줄때까지 거의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헤어질 때 그가 건네 준 과일이며 음식을 받아들고 나지막이 말한 Thank you 가 내가 한말의 전부였다. 침대로 돌아오니 피로가 몰려왔고 난 그렇게 카나본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질 것 같은 밤이었다.
*
그리고 다음날, 우린 항구로 발걸음을 돌렸다. 포트호텔의 주인인 맴의 말에 따르면 Fishing Job 은 카나본의 모든 일이 유통되는 포트호텔에서도 구할 수 없다고 했다. 직접 항구로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아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순간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이 되었지만 세이루는 예상했다는 듯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는 지체 없이 항구로 걸어 나갔다. 난 그의 긴 보폭을 따라 한 시간을 함께 걸어 항구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훨씬 작은 크기. 마치 자급자족하는 한국의 여느 어촌 같은 그곳에는 10척이 조금 넘어 보이는 작은 배들이 겸허히 물살에 흔들리고 있었다. 작은 컨테이너가 곳곳에 쓰러져가는 모습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중 하나에는 사무실이라고 써진 간판이 붙어있었다. 우린 그곳에 들어가 아무렇게나 쓴 이력서를 던져놓고는 30분이면 돌아볼 작은 항구를 분주히 걸어 다녔다. 배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일자리가 있는지를 물었고 새로운 사람이 보일 때마다 열심히 자기소개를 했다. 그들은 가끔은 모른 척 혹은 관심 없는 척 우리를 응대했고 혹여 대답을 하더라도 짧게 "no"라고만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전달했다. 우린 오전 내내 그들이 일하는 걸 구경하다 도시락으로 가져온 샌드위치와 볶음밥을 먹었고 그 이후로 10일 동안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가끔 오후에는 이곳저곳 농장을 찾아 걸어 다니며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했다.
퍼스에 처음 당도했을 때와 비슷했다. 난 몇 개의 질문과 같은 대답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나를 허락해줄 공간을 향해 걸었고 그들은 자로 잰 듯 날렵하게 다음 말을 잘라버렸다. 다만 이번에는 옆에 말없이 함께 걸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점. 그것이 조금 달랐다. 우린 곧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가끔은 서로 이어폰을 꽂고 걸으며 혼자만의 공상을 했고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 날도 더러 있었지만 그게 어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나처럼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었고 서로의 취향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혹은 따로 항구에 출근한지 12일째가 되던 날. 기어호라는 배의 선장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일을 구하는 친구들 맞지? 한자리가 있어. 다음 달에 합류할 예정이라 이번 출항에는 함께 할 수가 없데. 둘 중 누가 가능하니?”
그야말로 불쑥 다가온 말. 그는 여느 기회처럼 불현듯 우리에게 선택권을 던져버리고는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갑작스럽게 다가온 그의 말에 세이루와 난 잠시간 서로를 마주봤다.
머릿속을 꽉 메우는 갖가지 생각. 5대륙 여행, 통장잔고, 오늘 아침 달력에서 본 날짜까지. 그동안 천천히 생각했던 것들이 한 번에 밀려왔고 그가 먼저 말을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무엇보다 다른 생각들을 밀어냈다. 하지만 곧 세이루에게 먼저 제안하는 게 옳은 행동일거라는 마음이 다가왔다. 그가 아니었으면 난 이 일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거고 무엇보다 그는 이 일을 해보기 위해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심지어 그는 오랫동안 낚시를 해오고 스시 집에서 일한적도 있는 친구였다. 난 선장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누가 가능하냐고 묻자마자 제멋대로 그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날오후 우린 농장을 돌아다니지 않고 바로 포트호텔로 돌아왔다. 혹시나 해서 주인인 ‘맴’에게 일자리가 있는지 물었지만 그녀는 2주전과 같은 대답과 표정만 지어보였다. 세이루와 난 함께 저녁을 먹었고 난 그날 처음으로 그에게 캐나다 여행은 어땠는지 물었다. 홀로 생각하고 있던 5대륙 여행에 대해서도 이야기했고 내가 좋아했던 일본영화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이야기들을 늘여 놨다. 그는 담담히 그리고 소박하게 이야기를 이어갔고 Fishing Job 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대신 다음날부터 난 혼자 항구와 농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5일 동안 홀로 샌드위치를 먹고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큰소리로 따라 부르며 걸어 다녔다. 항구의 배들은 곧 떠날 채비를 마친 듯 보였고 농장에서 들려오는 답변은 항구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세이루와는 매일 저녁식사를 함께 했고 내 달력엔 빨간색 X 표시가 15개 채워졌다. 카나본에 오기 전 일을 구하기까지 걸릴 거라 생각했던 날에 정확히 하루가 더 멀어졌다. 이곳에서 일을 구하는 건 예상보다 훨씬 힘든 일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보다는 어떤 외로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퍼스에서보다 더 긴 시간이 외로워질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잠들기 전마다 찾아와 무언의 압박을 하는 기분이었다. 매일 밤 읽는 책은 같은 페이지에서 3일간 멈춰있었다.
세이루의 출항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옆자리에 작은 스탠드에 불빛을 밝히고 늘 보던 책을 보며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자니?”
“응? 아니.”
그는 스탠드 불을 끄고 몇 분인가 지났을 즈음 내게 말을 건넸다.
“잠 안와? 맥주 한 캔 더할래?”
“아니 괜찮아. 그보다 너에게 할 말이 있어.”
그는 잠시간 시간을 낚아챘고 내 기척에 움직임이 생기는 다음순간 말을 이었다.
“오늘 필에게 전화가 왔어. 농장에 일자리가 났데.”
선장이 우리에게 처음 말을 걸었을 때처럼 난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분명 그는 그 다음 말을 준비하고 있을 터였다.
“듣고 있어?”
그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난 그대로 누워 그의 말에 답했다.
“응”
“그런데 이번에 그가 제안한 일자리는 그냥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자리야. 6개월간 함께 관리자로 일해달래. 그래서 말인데 난 Fishing Job 보다는 그의 농장에서 일하는 것이 더 도리에 맞는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해?"
그가 내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있는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둠속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어느 타이밍에 그에게 답변을 주어야 하는지 잠시간 생각에 잠겼다.
“Fishing Job. 내일 선장에게 이야기하면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그는 내가 해야 할 말을 대신했고 난 몸을 돌리지 않은 채 “응”이라고만 답했다. 왜인지 모르게 몸을 돌려 스탠드 불빛 속 그를 보면 안 될 것 같았다. 사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가위에 눌린 듯 몸이 움직여 지지 않았다. 그는 잠시간 그대로 있다가 스탠드의 불을 껐고 “내일 함께 항구에 가자”라는 말을 남긴 채 돌아누웠다. 불이 꺼진 후에도,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깬 후에도 난 그날 밤 끝까지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선장은 아무 문제없다는 듯 우리의 결정을 따랐다. 그는 내게 비자나 통장계좌 같은 정보를 요구했고 알아보지 못할 긴 문서 몇 개를 주며 사인을 하라고 했다. 세이루는 묵묵히 옆자리에 앉아 자신이 일전에 사인한 문서들을 반납했고 선장은 내일 아침 7시까지 오라는 말을 남기고는 자리를 떠나버렸다.
난 세이루의 짐을 들고 일전에 방문했던 필의 농장으로 향했다. 그는 앞으로 6개월간 이곳에서 살며 일을 하기로 했다. 자신이 살던 곳에 들어가듯 자연스레 냉장고에 물건을 넣는 그를 보며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평선처럼 넓게 펼쳐진 필의 농장을 바라보며 함께 맥주를 마셨고 필은 세이루에게 나를 데려다주라며 자신의 차키를 내줬다. 우린 포트호텔에서 맥주를 한 캔 더 나눠 마시고 헤어졌다. 그는 내게 배에서 일하는 건 고된 일 일거라며 비상약품 같은 것을 한 아름 던져주고 떠나갔다. 다시 혼자가 된 아침이 두려웠지만 그럴수록 아침은 더 일찍 그리고 강렬하게 찾아왔다.
*
배 위에서의 일은 간단했다. 배는 양옆으로 길게 늘어진 날개에 각각 두 개의 그물을 바다 깊숙이 내린 체 빙빙 돌며 30분간 돌았다. 바다 밑에 가리비를 포함해 나와 다른 곳에서 숨을 쉬는 다양한 생물들을 그물로 거둬들였고 30분이 지나면 선장이 벨을 울리고 그물을 올렸다. 나보다 다섯 배는 큰 그물이 올라오면 양쪽에서 한명씩 훅을 던져 그물에 매달린 줄을 낚아채 당기기 시작했고 그물이 배 근처에 오면 그것들을 올려 배의 한가운데 적재소로 모았다. 그들이 거대한 몸을 부딪치며 자리를 못 잡으면 내가 올라가 그물의 위치를 조정했고 OK 사인을 보내면 그물이 풀리며 가지각색의 생물들이 튀어나왔다. 새로운 공기를 마주한 그들이 팔딱거리며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면 난 작은 상어처럼 기계를 막을 생물들을 골라내 다시 바다로 던지고 기계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나선 바로 뛰어내려와 끊임없이 분만하는 기계 앞에서 칼을 들고 섰다. 가리비가 나오면 살점만 발라내 통에 넣었고 돈이 될 만한 큰 게나 가재가 나오면 소쿠리에 분리를 하면 되었다. 중간 중간 통이 가득 채워지면 배 밑에 냉동 창고에 그것들을 옮겼고 그들이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면 커피를 타가거나 담배를 입에 물려주는 일들을 했다. 일은 톱니바퀴처럼 굴러야 했고 난 그것의 일원이 되어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다.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나열해보면 힘들 것도 없는 일.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내 머릿속과 몸은 점점 뒤죽박죽이 되어갔다. 혹시 지옥이란 곳이 진짜 존재한다면 이곳에서 평생 일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물을 당기기 위해 훅을 던지고 그것을 당기기에 내 힘은 너무 비루했다. 손은 난생 처음 보는 모양으로 벗겨지기 시작했고 난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그들이 일러준 대로 그물을 당기기전마다 매번 손에 오줌을 누었다. 걸을 때마다 밀려들어오는 짠 바닷물은 장화 속 내발을 얼리다 못해 조금씩 살을 도려내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4시간도 못잔 무의식의 상태에서 30분마다 밀려오는 그물을 상대하는 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게임을 이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물에 맞아 부러진 안경과 기계 사이에 부딪혀 부어오른 손은 승패가 정해진 게임을 향해 힘겨운 움직임을 이어갔다.
함께 배를 탄 선원들도 끔찍했다. 그들은 나를 벌레보다 못한 사람으로 대했고 알아듣지도 못할 욕들을 퍼부었다. 가끔은 내 얼굴에 물고기를 던졌고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내 목덜미를 움켜쥐고 그렇게 일 할 거면 바다에 던져버릴 것이라며 위협을 하기도 했다. 참혹했지만 눈물을 흘릴 시간도 없이 그물이 올라오는 벨소리가 고막을 때렸고 난 일부러 물을 들이켜 손에 오줌을 누며 아주 잠시간 고통을 잊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시간.
배는 한 번도 마주한적 없는 어둠속에 규칙에 출렁였다. 그들은 나에게 5대륙 여행을 생각할 여유도, 온전히 자리에 앉아 밥을 먹을 짬도, 벌겋게 부어오른 손이나 장화 속 찢긴 발이 아물 시간도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이곳엔 내가 말할 수 있는 상대도 도망칠 곳도 없다는 것이었다. 퍼스에서도 늘 두 가지 일을 했기에 일이 힘든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그곳에서도 늘 혼자 보내는 시간을 잘 견뎌냈기에 모르는 사람과 3주정도 보내는 건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배에 올라선 첫날밤 봤던 돌고래들을 보며 괜찮다고 다짐했던 생각들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빠르다는 말은 이곳에서 허락되지 않는 금지어였다.
믿을 수 없는 1분 1초. 시간은 내 눈앞에서 수없이 뺨을 휘갈기며 자신의 잔혹성을 알리기에 정신이 없었다. 난 3주 동안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보름달을 맞이한 순간까지도 이 시간이 끝날 것이라 믿지 못했다. 안경이 없어 희미해진 내 눈은 초점을 잃었고 보름달덕에 움직임이 달라진 생물들 덕에 선장이 마지막 벨을 울리고 나서야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다시 인지하기 시작했다.
어둠이 겹겹이 덧칠을 마친 하늘.
출렁거리는 배위에서 희미한 별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난 거대한 그물을 응시했다. 뱃멀미 때문에 잠을 잔건지 구토를 한 건지 모르는 밤이 토막처럼 잘려나갔고 난 물이 가득 찬 장화와 벗겨진 손을 감싸줄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채 그물이 올라오면 낚아챌 훅을 들고 서있었다.
“마지막 수확이다!”
난 손에 오줌을 누고 장갑을 꼈다. 그리고 갈고리가 매달린 줄을 잡았다. 내 기다림을 무시한 채 늘 떠올랐던 그물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더니 눈앞에 부풀어 올랐고 그것이 마지막으로 적재소에 안착하는 순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내 세포들을 자극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장이 운전석에서 얼굴만 뺀 체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짐정리 시작해. 육지로 간다.”
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살았다는 안도감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하늘은 아직 어두웠고 커다란 보름달 속에 잠시 엄마의 얼굴이 스쳐갔다. 배가 잠시 출렁거렸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은 아직 일하는 시간임을 기억하듯 나와 상관없이 뛰고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난 멍하게 몸을 뉘인 체 하늘을 응시했다. 뜬금없이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잠시간 스쳐갔고 곧 하늘이 검뿌옇게 보이다가 선명하게 보이고 다시 뿌옇게 변했다.
렌즈가 된 눈물이 눈앞의 풍경들을 반복적으로 깜빡였다. 퍼스에서 지낸 시간들이 떠올랐고 5대륙여행이 떠올랐다. 필의 농장에서 그와 낚시 이야기를 했던 내 모습이 스쳐갔고 세이루와 캔으로 건배하던 장면이 스쳐갔다. 3주 동안 살아남아야 된다는 생각만 해왔기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잠시간 어색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전류가 몸에 흐르듯 내 몸의 작은 부분들이 모두 일렁거렸고 그에 맞춰 내 몸도 살짝 떨렸다. 헛웃음이 나왔고 잠시간 눈을 감았다 뜨니 해가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
3주 만에 도착한 항구는 북적거렸고 바다와는 또 다른 내음이 가득했다. 난 다른 선원들과 턱밑까지 차오른 냉동 창고의 박스들을 옮겼고 선장은 수고했다며 내게 페이가 담긴 봉투를 건넸다. 난 그것을 열어보지 않았고 대신 포대에 게나 가재들을 듬뿍 담고 어깨에 들쳐 멨다. 한쪽손이 부어올라있었지만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항구로 나오니 어떻게 알았는지 세이루가 차 옆에서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아마 오늘 배가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는 필이 타고 다니던 차 옆에 서 있었고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듯 보였다. 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펴며 그를 응시했고 그는 뿌예졌다 선명해지며 내게 다가왔다.
난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내게 맥주를 내밀었다.
“돌아 왔구먼 마이 프렌드”
그는 필이 말하는 것처럼 말끝에 나의 친구(My Friend)란 말을 붙였다.
난 주저앉았고 내 옆에 선 포대를 가리켰다.
무언가를 말을 하고 싶었지만 힘이 없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주저앉은 내 얼굴에 맥주 캔을 댔다.
차가운 기운이 온 얼굴로 퍼지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