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엔 풀이 하늘엔 달이
저녁을 강진 옥이네 생선구이 집에서 먹고 왔다. 값이 올라 아쉬웠지만 주인이 잡은 우럭과 쏨뱅이는 싱싱했다. 얼마 전 주인은 제주바다까지 가서 갈치를 200마리나 잡았다고 한다. 읍에 소문이 났다. 해풍에 그을린 주인이 새삼스레 보였다. 어린 시절 골목대장의 무용담을 듣는 느낌이었다. 별 양념 없이 구운 생선을 맛있게 먹으며 신선함의 맛을 잊고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자각했다. 얻어먹기는 쉬워도 새벽에 나가 잡기는 어려운 법이다. 이 맛이 어찌 쉬울까?
쏨뱅이는 크지 않아도 눈이 크고 붉다. 현산어보의 배경이 된 흑산도 부근에서는 북저구라고 하는 모양이다. 진도와 해남 등에서는 쏨뱅이로 불리는 모양이다. 우럭은 좀 크다. 쏨뱅이에 비하면. 거뭇거뭇해서 현산어보에서는 검처귀라고 썼다. 조피볼락의 대중적인 이름이 우럭이라고 한다. 모두 볼락류에 포함할 수 있는데, 맛이 담백하다. 다윈의 갈라파고스 핀치새의 분류처럼 볼락을 기준으로 삼아 연안 생태에 각기 적응해 모양과 크기와 빛깔이 달라진 것으로 추측해보면 더 생생한 느낌이 든다.
겨울 강진에 와 자주 먹는 것은 젓갈도 젓갈이지만 매생이국이고 매생이무침이다. 사실 나는 매생이를 이곳에 와 처음 먹어보았다. 파래 같으면서도 물이끼처럼 가늘어 처음에 별로 내키지 않았다. 개흙이 씹히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두어 번 먹어보니 매생이가 가진 특유한 풍미가 겨울의 맛이라는 걸 실감하겠다. 미역국처럼 먹기 편하다.
학교 북쪽 담 남향의 담 아래에는 동네 노인이 갓과 배추를 심어놓았다. 한파와 폭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게릴라 텃밭 자리를 찾아낸 노인의 눈매가 섬세하다. 봄동 한 뿌리로 된장국을 끓어먹고 싶다. 노인의 텃밭을 게릴라 가드닝이라 바꿔 불러보면 금방 오래된 미래가 된다. 사람이 닿지 않지만, 바람을 막고 햇볕 따뜻한 구석 담 밑이 몹시 아름답다.
소한 추위 뒤 대한이다. 땅엔 뿔 돋은 풀이. 하늘엔 뿔 돋은 초승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