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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三回 魯桓公夫婦如齊 鄭子亹君臣為戮
제13회: 노환공 부부가 제나라에 가고, 정공자 미는 군신이 죽임을 당하다.
卻說,齊襄公見祭足來聘,欣然接之。正欲報聘,忽聞高渠彌弒了昭公,援立子亹,心中大怒,便有興兵誅討之意。因魯侯夫婦將至齊國,且將鄭事擱起,親至濼水迎候。卻說魯夫人文姜,見齊使來迎,心下亦想念其兄,欲借歸寧之名,與桓公同行。桓公溺愛其妻,不敢不從。大夫申繻諫曰:「『女有室,男有家』,古之制也。禮無相瀆,瀆則有亂。女子出嫁,父母若在,每歲一歸寧。今夫人父母俱亡,無以妹寧兄之理。魯以秉禮為國,豈可行此非禮之事?」桓公已許文姜,遂不從申繻之諫。
한편, 제양공이 제족(祭足)을 만나보고 기쁘게 대접했다. 바로 답례 사절을 보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고거미가 소공을 시해하고 자미를 군주로 옹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여 즉시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토벌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마침 노환공 부부가 곧 제나라에 당도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일단 정나라의 일은 뒤로 미루고 친히 낙수(濼水)에 나가 노환공 부부를 영접하기로 했다. 한편, 노나라 환공의 부인 문강이 제나라 사자가 온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 오라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친정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자기도 노환공과 동행하겠다고 했다. 환공은 그 아내를 매우 사랑했기 때문에 감히 따라오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대부 신수(申繻)가 말하기를, “‘여자는 내실에서 살고 남자는 바깥채에 산다’는 것은 예부터의 제도입니다. 예를 지키지 않으면 서로 업신여기게 되고, 업신여기게 되면 변란이 일어납니다. 여자가 출가하여 그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매 년 한 번씩 친정을 다녀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부인의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는데, 누이가 오빠에게 문안을 드리러 친정에 가는 법은 없습니다. 노나라는 예를 숭상하는 나라인데, 어찌 이런 예에 어긋나는 일을 하겠습니까?” 했다. 노환공은 문강에게 이미 허락했으므로, 신수의 간언을 따르지 않았다.
夫婦同行,車至濼水,齊襄公早先在矣。慇懃相接,各敘寒溫。一同發駕,來到臨淄,魯侯致周王之命,將婚事議定。齊候十分感激,先設大享,款待魯侯夫婦。然後迎文姜至於宮中,只說與舊日宮嬪相會。誰知襄公預造下密室,另治私宴,與文姜敘情。飲酒中間,四目相視,你貪我愛,不顧天倫,遂成苟且之事。兩下迷戀不捨,遂留宿宮中,日上三竿,尚相抱未起。撇卻魯桓公在外,冷冷清清。魯侯心中疑慮,遣人至宮門細訪。
부부를 태운 노나라 군주의 수레가 악수에 이르자 제양공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은근한 정으로 맞이하여 각각 인사말을 나누고, 그들은 다시 어가에 올라 제나라 도성인 임치(臨淄)에 도착했다. 노환공은 제양공에게 주왕의 명을 전하고 양공과 왕녀와의 혼사를 의논했다. 제양공이 아주 감격하여 크게 잔치를 열고 노환공 부부를 환대했다. 그런 다음 옛날의 궁녀와 비빈을 만나보게 한다는 핑계로 문강을 궁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나 양공이 미리 만들어 놓은 밀실에 따로 술상을 준비하여 문강과 정을 나눌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두 사람이 술을 마시는 중간에 서로 눈길이 마주쳐 사랑에 탐닉하여 천륜을 돌아보지 않고 마침내 (말하기) 구차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두 사람은 계속해서 궁중에 유숙하며, 해가 높이 뜰 때까지 서로 껴안고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노환공은 궁궐 밖의 역관에 버려두어져서 쓸쓸하게 밤을 보냈다. 노환공의 가슴속에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궁궐 안으로 들여보냈다.
回報:「齊侯未娶正妃,止有偏宮連氏。乃大夫連稱之從妹,向來失寵,齊侯不與相處。姜夫人自入齊宮,只是兄妹敘情,並無他宮嬪相聚。」魯侯情知不做好事,恨不得一步跨進齊宮,觀其動靜。恰好人報:「國母出宮來了。」魯侯盛氣以待。便問姜氏曰:「夜來宮中共誰飲酒?」答曰:「同連妃。」又問:「幾時散席?」答:「久別話長,直到粉牆月上,可半夜矣。」又問:「你兄曾來陪飲否?」答曰:「我兄不曾來。」魯侯笑而問曰:「難道兄妹之情,不來相陪?」姜氏曰:「飲至中間,曾來相勸一杯,即時便去。」
그 사람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제양공은 정부인을 들이지 않고 다만 편궁에 연씨(連氏)만을 두었습니다. 연씨는 곧 대부 연칭(連稱)의 사촌 동생인데, 요즈음 총애를 잃어 제양공과 함께 지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강부인께서 제나라 궁궐에 들어간 이후에 다만 오누이가 정을 나눈다면서 다른 궁녀들과는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했다. 노환공은 좋은 일이 아님을 분명히 알았으나, 한스럽게도 제나라 궁정으로 뛰어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라, 동정을 살필 뿐이었다. 그때 마침 어떤 사람이 보고하기를, “부인께서 궁궐을 나와 오십니다.” 했다. 노환공이 화를 내며 기다렸다가 문득 강씨에게 묻기를, “어젯밤에 궁중에서 누구와 같이 술을 마셨소?” 하니, 문강에 대답하기를, “연비와 같이 마셨습니다.” 했다. 환공이 다시 묻기를, “언제 술자리가 끝났소?” 하니, 문강이 대답하기를, “헤어진 지가 오래되어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흰 담장에 달이 솟았으니 밤중이었습니다.” 했다. 환공이 또 묻기를, “그대의 오라비가 와서 같이 마시지 않았소?” 하니, 문강이 대답하기를, “저희 오라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했다. 노환공이 웃으며 묻기를, “오누이의 정을 말하기가 어려워 자리를 같이하지 않았소?” 하니, 문강이 말하기를, “잔치 중간에 잠깐 와서 술 한 잔을 권한 후에 곧바로 갔습니다.” 했다.
魯侯曰:「你席散如何不出宮?」姜氏曰:「夜深不便。」魯侯又問曰:「你在何處安置?」姜氏曰:「君侯差矣!何必盤問至此?宮中許多空房,豈少下榻之處?妾自在西宮過宿,即昔年守閨之所也。」魯侯曰:「你今日如何起得恁遲?」姜氏曰:「夜來飲酒勞倦,今早梳妝,不覺過時。」魯侯又問曰:「宿處誰人相伴?」姜氏曰:「宮娥耳。」魯侯又曰:「你兄在何處睡?」姜氏不覺面赤曰:「為妹的怎管哥哥睡處?言之可笑!」魯侯曰:「只怕為哥的,倒要管妹子睡處!」姜氏曰:「是何言也?」魯侯曰:「自古男女有別。你留宿宮中,兄妹同宿,寡人已盡知之,休得瞞隱!」
노환공이 말하기를, “잔치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궁궐 밖으로 나오지 않았소?” 하니, 문강이 말하기를, “밤이 깊어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했다. 노환공이 다시 묻기를, “잠은 어디에서 잤소?” 하니, 문강이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틀렸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캐묻습니까? 궁중에는 빈방이 허다한데 어찌 작은 몸 하나 잠잘 곳이 없겠습니까? 첩은 서궁에서 잠을 잤는데, 그곳은 제가 처녀 시절에 지내던 곳입니다.” 했다. 노환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당신은 어찌하여 오늘 이렇게 늦게 나왔습니까?” 하니, 문강이 말하기를, “어젯밤에 술을 마셔서 피곤한지라, 오늘 일어나 머리를 손질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지난 줄 몰랐습니다.” 했다. 노환공이 또 묻기를, “잠자리는 누구와 같이 했소?” 하니, 문강이 말하기를, “궁녀와 잤지요.” 했다. 노환공이 다시 묻기를, “당신 오빠는 어디에서 잤소?” 하니, 문강이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며 말하기를, “여동생이 어떻게 오라버니가 잠자는 곳을 알 수 있습니까? 그 말씀은 우습습니다.” 했다. 노환공이 말하기를, “그래 무엇이 무서워서 오빠가 여동생이 자는 것까지 지켜주었소?” 하니, 문강이 말하기를, “그게 무슨 소립니까?” 했다. 노환공이 말하기를, “자고로 남녀는 유별한데, 당신은 궁중에 머물러 남매가 함께 잤다는 걸 과인은 이미 다 알고 있소. 속이지 마시오.” 했다.
姜氏口中雖是含糊抵賴,啼啼哭哭,心中卻也十分慚愧。魯桓公身在齊國,無可奈何,心中雖然忿恨,卻不好發作出來,正是「敢怒而不敢言」。即遣人告辭齊侯,且待歸國,再作區處。卻說齊襄公自知做下不是。姜氏出宮之時,難以放心,便密遣心腹力士石之紛如跟隨,打聽魯侯夫婦相見有何說話。石之紛如回復:「魯侯與夫人角口,如此如此。」襄公大驚曰:「亦料魯侯久後必知,何其早也?」少頃,見魯使來辭。明知事洩之故,乃固請於牛山一遊,便作餞行。使人連逼幾次,魯侯只得命駕出郊。文姜自留邸舍,悶悶不悅。
문강이 비록 입으로는 얼버무리면서 잡아떼려고 흐느껴 우는 척하고는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역시 부끄러운 생각뿐이었다. 노환공도 역시 몸이 제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비록 분했지만, 밖으로는 내색도 하지 않았다. 이야말로 ‘화가 났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노환공은 즉시 사람을 제양공에게 보내 작별의 인사를 전하게 하고, 노나라에 돌아간 후에 다시 따져서 처리하기로 작정했다. 한편. 제양공은 자기가 한 짓이 옳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문강이 궁궐을 나가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몰래 자기의 심복인 장사 석지분여(石之紛如)를 시켜 뒤따르게 하여, 노환공 부부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오게 했다. 석지분여가 돌아와 복명하기를, “노환공과 부인이 이러이러하게 말다툼을 했습니다.” 했다. 제양공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노후가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알 줄은 몰랐다.” 했다. 잠시 후에 노환공이 보낸 사자가 와서 귀국 인사를 전하자, 문강과의 일이 누설되었기 때문임을 알았다. 제양공은 즉시 노환공에게 사람을 보내 우산(牛山)에서 환송 잔치를 베푼다고 전하고 참석을 청했다. 사람을 연이어 보내 여러 번 독촉했다. 노환공은 어쩔 수 없이 어가를 교외(우산)로 향하게 했다. 문강은 스스로 역관에 머물면서 혼자 속을 태웠다.
卻說齊襄公一來舍不得文姜回去,二來懼魯侯懷恨成仇,一不做,二不休,吩咐公子彭生待席散之後,送魯侯回邸,要在車中結果魯侯性命。彭生記起戰紀時一箭之恨,欣然領命。是日牛山大宴,盛陳歌舞,襄公意倍殷勤。魯侯只低頭無語。襄公教諸大夫輪流把盞,又教宮娥內侍,捧樽跪勸。魯侯心中憤鬱,也要借杯澆悶,不覺酩酊大醉,別時不能成禮。襄公使公子彭生抱之上車。彭生遂與魯侯同載。離國門約有二里,彭生見魯侯熟睡,挺臂以拉其脅。彭生力大,其臂如鐵,魯侯被拉脅折,大叫一聲,血流滿車而死。
한편, 제양공은 첫째 문강이 돌아가는 것이 싫었고, 둘째는 노후가 원한을 품어 원수지간이 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그는 공자 팽생(彭生)을 시켜 술자리가 끝난 뒤에 역관으로 돌아가는 노환공을 전송하면서 기회를 보아 수레 안에서 노후를 살해하도록 분부했다. 팽생은 옛날 기(紀)나라 정벌전에서 화살을 맞았던 원한을 기억해 내고 흔쾌히 양공의 명을 받들었다. 이날 우산의 송별연은 노래와 춤을 성대하게 벌이고, 제양공도 정성을 다하여 접대했다. 그러나 노환공은 머리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제양공은 여러 대부들에게 명하여 노환공과 함께 술잔을 돌려 마시게 하고, 또한 궁녀와 내시들에게 명하여 술독을 받들고 옆에 꿇어앉아 술을 따르게 했다. 노환공은 마음속의 울분을 술잔에 담아 괴로운 심정을 잊고자 들이켜다가 모르는 사이에 대취하여 헤어질 때 인사도 할 수 없었다. 제양공이 공자 팽생에게 노환공을 안아서 수레에 태우게 했다. 팽생은 곧 노환공과 함께 타고 성문을 나와 2리 쯤 갔을 때, 노환공 깊이 잠들었음을 보고 팔을 뻗어 그의 옆구리를 잡았다. 팽생은 힘이 장사라 팔뚝은 마치 쇠뭉치 같았다. 노환공의 옆구리를 잡아 꺾으니, 그가 크게 한 번 소리 지르고, 피를 수레 안에 가득 쏟은 후에 죽었다.
彭生謂眾人曰:「魯侯醉後中惡,速馳入城,報知主公。」眾人雖覺蹊蹺,誰敢多言!史臣有詩云:「男女嫌微最要明,夫妻越境太胡行!當時若聽申繻諫,何至車中六尺橫?」齊襄公聞魯侯暴薨,佯啼假哭,即命厚殮入棺,使人報魯迎喪。魯之從人回國,備言車中被弒之由。大夫申繻曰:「國不可一日無君。且扶世子同主張喪事,候喪車到日,行即位禮。」公子慶父字孟,乃桓公之庶長子,攘臂言曰:「齊侯亂倫無禮,禍及君父。願假我戎車三百乘,伐齊聲罪!」大夫申繻惑其言,私以問謀士施伯曰:「可伐齊否?」
팽생이 여러 사람에게 말하기를, “노환공이 취하여 중독되었다. 빨리 수레를 몰아 성으로 들어가 주군에게 알려야겠다.” 했다. 여러 사람이 수상쩍게 생각했으나 아무도 감히 말을 하지 않았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남녀 사이는 항상 분명해야 하는데, 부부가 어찌하여 함께 국경을 갔더냐? 전날에 신수(申繻)가 간했을 때 그 말을 들었다면, 어찌 수레 안에서 비명에 죽었겠는가?” 했다. 제양공은 노환공이 갑자기 죽었다는 말을 듣고 거짓으로 통곡한 후에, 즉시 극진히 염하여 입관하라고 명하고, 사자를 노나라에 보내 노후의 영구를 모셔 가도록 알렸다. 노나라의 수행원들이 귀국하여 노후가 수레 안에서 피살된 경위를 노나라 신료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대부 신수가 말하기를, “나라에는 하루라도 군주가 없을 수 없습니다. 우선 세자 동(同)을 받들어 장례를 준비하게 하고, 선군의 관을 실은 수레가 도착하는 날에 세자의 즉위식을 행해야 합니다.” 하니, 자를 맹(孟)이라고 하는 환공의 서장자 경보(慶父)가 팔을 걷어 부치면서 말하기를, “제양공은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고 무례하여 그 화가 아버지에게까지 미쳤습니다. 원컨대 저에게 전차 3백 대만 내어주면, 제나라를 정벌하여 그 죄상을 알리겠습니다.” 했다. 대부 신수가 그 말에 혹하여 은밀히 그의 모사 시백(施伯)에게 말하기를, “제나라를 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했다.
施伯曰:「此暖昧之事,不可聞於鄰國。況魯弱齊強,伐未可必勝,反彰其醜。不如含忍,姑請究車中之故,使齊殺公子彭生,以解說於列國,齊必聽從。」申繻告於慶父,遂使施伯草成國書之稿,(世子居喪不言,乃用大夫出名。)遣人如齊,致書迎喪。齊襄公啟書看之。書曰:「外臣申繻等,拜上齊侯殿下:寡君奉天子之命,不敢寧居,來議大婚。今出而不入,道路紛紛皆以車中之變為言。無所歸咎,恥辱播於諸侯,請以彭生正罪。」襄公覽畢,即遣人召彭生入朝。彭生自謂有功,昂然而入。
시백이 말하기를, “이 일은 뚜렷한 증거가 없으니, 이웃 나라에까지 알려지면 안 됩니다. 더욱이 노나라는 약하고 제나라는 강하므로 정벌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싸움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그 부끄러움만 더할 뿐이니 참아야만 합니다. 잠시 선군이 수레 안에서 죽은 변고를 밝혀 달라고 청하여 제양공으로 하여금 공자 팽생을 죽이도록 하고, 그 사유를 열국에 설명하도록 요구하면 제나라는 반드시 우리의 말을 들을 것입니다.” 했다. 신수가 경보에게 고하고, 이어서 시백을 시켜 제나라에 보내는 국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세자는 상중이라 노후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고, 대부들이 연서하여) 사자에게 주어 제나라에 보냈다. 그리고 노환공의 상여를 영접하기로 했다. 제양공이 노나라의 국서를 받아 읽어보니, 국서에 이르기를, “외신 신수 등은 제나라 양공 전하께 절하고 국서를 올립니다. 우리 주군께서 천자의 명을 받고, 감히 편히 있을 수 없어, 귀국 혼사를 논의하기 위해 떠나신 후 돌아오지 않으시니, 도로의 백성들이 모두 수레 안에서 변이 생긴 것이라 분분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 책임을 따질 곳이 없어, 치욕이 제후들에게 알려질 것입니다. 그러니, 청컨대 팽생의 죄를 다스리십시오.” 했다. 제양공이 읽기를 마치고, 즉시 사람을 보내 팽생을 입조하게 했다. 팽생은 스스로 공을 세웠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쳐들고 입궐했다.
襄公當魯使之面罵曰:「寡人以魯侯過酒,命爾扶持上車。何不小心伏侍,使其暴薨?爾罪難辭!」喝令左右縛之,斬於市曹。彭生大呼曰:「淫其妹而殺其夫,皆出汝無道昏君所為,今日又委罪於我!死而有知,必為妖孽,以取爾命!」襄公遽自掩其耳,左右皆笑。襄公一面遣人往周王處謝婚,並訂娶期。一面遣人送魯侯喪車回國,文姜仍留齊不歸。魯大夫申繻率世子同迎柩至郊,即於柩前行禮成喪,然後嗣位,是為莊公。申繻、顓孫生、公子溺、公子偃、曹沫一班文武,重整朝綱。庶兄公子慶父、庶弟公子牙、嫡弟季友俱參國政。申繻薦施伯之才,亦拜上士之職。以明年改元,實周莊王之四年也。
제양공은 노나라 사자의 면전에서 큰소리로 팽생을 꾸짖기를, “과인은 노환공이 술에 너무 취했기에 너에게 잘 부축하여 수레에 태워 편안히 모시도록 명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조심하여 모시지 않고 갑자기 돌아가시게 만들었느냐? 네 죄를 용서할 수 없구나!” 하고, 좌우의 무사들에게 소리쳐 팽생을 포박하여 시정에서 참수하라고 명했다. 팽생이 큰소리로 외치기를, “누이를 범하고 그 남편을 죽인 일은 모두가 무도한 혼군인 네가 한 짓인데, 오늘 다시 그 죄를 나에게 덮어씌우느냐? 내가 비록 죽겠지만 명심하고 있다가 반드시 귀신이 되어 너의 목숨을 취하러 오겠다.” 했다. 제양공이 급히 자신의 귀를 막자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제양공은 한편으로 주왕에게 사람을 보내 혼인에 감사하고 혼례를 올릴 날짜를 통지했다. 또 한편으로 사람을 보내 노환공의 상여를 귀국하게 했다. 문강은 제나라에 머물며 돌아가지 않았다. 노대부 신수가 세자 동(同)을 모시고 노환공의 영구를 교외에서 맞이하여, 곧 관 앞에서 장례 의식을 치르고, 그런 다음에 군주의 자리를 이었다. 이가 노장공(魯莊公)이다. 신수, 전손생(顓孫生), 공자 익(公子溺), 공자 언(公子偃), 조말(曹沫) 등 노나라의 일반 문무 대신들은 다시 조정의 기강을 세웠다. 노장공의 서형 공자 경보, 서제 공자 아(公子牙), 친동생 공자 계우(季友) 등도 모두 국정에 참여했다. 신수가 시백의 재주를 높이 사서 장공에게 천거하니 상사(上士)의 직에 임명했다. 다음 해에 개원하니, 이는 주나라 장왕 4년(기원전 693년)의 일이었다.
魯莊公集群臣商議,為齊迎婚之事。施伯曰:「國有三恥,君知之乎?」莊公曰:「何謂三恥?」施伯曰:「先君雖已成服,惡名在口,一恥也;君夫人留齊未歸,引人議論,二恥也;齊為仇國,況君在衰絰之中,乃為主婚,辭之則逆王命,不辭則貽笑於人,三恥也。」魯莊公蹴然曰:「此三恥何以免之?」施伯曰:「欲人勿惡,必先自美;欲人勿疑,必先自信。先君之立,未膺王命。若乘主婚之機,請命於周,以榮名被之九泉,則一恥免矣。君夫人在齊,宜以禮迎之,以成主公之孝,則二恥免矣。惟主婚一事,最難兩全;然亦有策。」
노장공은 여러 신하를 모아 선군이 천자의 명으로 받았던 제양공을 위한 혼사를 의론하도록 했다. 그러자 시백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치욕스러운 일이 셋이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알고 계시는지요?” 했다. 노장공이 말하기를, “세 가지 치욕이란 무엇이오?” 하니, 시백이 말하기를, “선군은 비록 세상을 떠나셨지만 (지난날 은공을 죽이고 군주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나쁜 구설수가 백성들 입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치욕입니다. 선군의 부인이 아직도 제나라에 묵고 있으면서 돌아오지 않아 백성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것이 두 번째 치욕입니다. 제나라는 원수의 나라이며 더욱이 주군께서는 상중인데 제양공의 혼사를 주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어 만약 이 일을 사양하면 왕명을 거역하게 되는 일이고 사양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그것이 세 번째 치욕입니다.” 했다. 노장공이 불안해 하며 말하기를, “그 세 가지 치욕을 어떻게 하면 면할 수 있겠소?” 하니, 시백이 말하기를, “사람의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자기가 먼저 아름다운 일을 해야 하며,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자기 자신부터 믿어야 합니다. 선군은 (은공을 시해하고) 즉위하여 아직 주나라 왕실의 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번 제양공의 혼사를 주관하는 기회를 틈타서, 주나라 왕실에 승인을 요청하여 허락을 받는다면 구천에 계시는 선군에게는 영화로운 이름을 얻게 해주는 일이니, 즉 이것으로 첫 번째 치욕을 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직 제나라에 머물고 있는 선군의 부인을 마땅히 예를 다하여 모셔 오면 이는 주공께서는 효를 이루게 되니 두 번째 치욕을 면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제양공을 위하여 혼사를 주관하는 일은 (끝까지 보아주느냐 거절하느냐) 두 가지가 다 완전히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이것 역시 별도의 계책이 있습니다.” 했다.
莊公曰:「其策何如?」施伯曰:「可將王姬館舍,築於郊外,使上大夫迎而送之,君以喪辭。上不逆天王之命,下不拂大國之情,中不失居喪之禮,如此則三恥亦免矣。」莊公曰:「申繻言汝『智過於腹』。果然!」遂一一依策而行。卻說魯使大夫顓孫生至周,請迎王姬;因請以黻冕圭璧,為先君泉下之榮。周莊王許之,擇人使魯,錫桓公命。周公黑肩願行,莊王不許,別遣大夫榮叔。原來莊王之弟王子克,有寵於先王,周公黑肩曾受臨終之託。莊王疑黑肩有外心,恐其私交外國,樹成王子克之黨,所以不用。
장공이 말하기를, “그 계책이 무엇이오?” 하니, 시백이 말하기를, “장차 왕희(王姬)가 오면 성 밖에 관사를 짓고, 상대부를 시켜 맞이하고 보내시되, 주군은 상중이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위로는 천자의 명을 거역하지 않고, 아래로는 대국에게 정리를 저버리지 않게 됩니다. 또한 안으로는 상중의 예를 잃지 않으니 이렇게 하면 세 가지의 치욕을 면할 수 있습니다.” 했다. 장공이 말하기를, “신수가 말하기를 그대는 ‘지혜가 뱃속에 넘치는 사람’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렇소!” 했다. 마침내 시백의 계책대로 하나하나 시행하도록 했다. 한편 장공은 대부 전손생을 주나라에 보내어 왕녀를 모셔 오도록 하고, 한편으로는 불면(黻冕 ; 무릎 가리개와 관, 제복)과 규벽(圭璧 ; 서옥과 등근 옥)을 하사해 주시면, 지하의 선군에게 영광이 되겠다고 주왕에게 청하게 했다. 주장왕은 허락하고 사람을 골라 노나라에 사자로 보내어 노환공을 노나라 군주로 인정한다는 칙명을 전하도록 했다. 주공(周公) 흑견(黑肩)이 노나라에 사자로 가기를 청했으나, 주장왕이 허락하지 않고 대부 영숙(榮叔)을 대신 보냈다. 원래 주환왕이 살아 있을 때 장왕의 동생 극(克)이 환왕의 총애를 받았고 주공 흑견에게 극을 잘 보살피라는 유언을 했다. 그래서 주장왕은 흑견이 다른 마음을 품고 은밀히 제후국들과 우호 관계를 맺어 왕자 극을 위한 무리를 만들지 않을까 의심하여 흑견을 보내지 않았다.
黑肩知莊王疑己,夜詣王子克家,商議欲乘嫁王姬之日,聚眾作亂,弒莊王而立子克。大夫辛伯聞其謀,以告莊王。乃殺黑肩,而逐子克。子克奔燕。此事表過不提。且說魯顓孫生送王姬至齊;就奉魯侯之命,迎接夫人姜氏。齊襄公十分難捨,礙於公論,只得放回。臨行之際,把袂留連,千聲珍重:「相見有日!」各各灑淚而別。姜氏一者貪歡戀愛,不捨齊侯,二者背理賊倫,羞回故里,行一步,懶一步。車至禚地,見行館整潔,嘆曰:「此地不魯不齊,正吾家也。」吩咐從人,回復魯侯:「未亡人性貪閒適,不樂還宮。要吾回歸,除非死後。」
흑견은 주왕이 자기를 의심하고 있음을 알고, 밤에 왕자 극의 집을 찾아가서 왕희를 제나라로 시집보내는 날을 틈타 난을 일으켜 장왕을 죽이고 극을 세우기로 음모를 꾸몄다. 대부 신백(辛伯)이 그 모의를 알고 장왕에게 고했다. 장왕은 곧바로 흑견을 죽이고 왕자 극을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왕자 극은 연(燕)나라로 도망쳤다. 이것은 다 다음날의 이야기다. 한편, 노나라 전손생은 왕희를 제나라에 데려다주고 노장공의 명을 받들어 문강을 영접하여 귀국하려고 했다. 제양공이 내키지 않았으나 공론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문강의 귀국을 허락했다. 이별할 때가 되자 두 사람은 서로 소매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며 몸조심하라는 말과 앞으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는 소리를 천 번도 더했다. 두 사람은 각각 눈물을 흘리며 이별했다. 문강이 첫째는 애욕에 눈이 멀어 제양공을 버리지 못했고, 둘째는 천륜을 어기고 인륜을 어지럽힌 자신이 옛집에 돌아가기가 부끄럽기도 해서 한 걸음 가다가 한 걸음 쉬었다. 수레가 작(禚) 땅에 도착하여 역관이 정결함을 보고 한탄하며 말하기를, “이 땅은 노나라도 아니고 제나라도 아니라서, 바로 내가 머물 곳이로구나!” 했다. 문강이 종자들에게 돌아가서 노후에게 전하도록 분부하기를, “이 미망인은 한적한 곳을 좋아하여 환궁하기 싫다. 죽은 후에나 돌아갈 것이니 너희들만 돌아가라.” 고 했다.
魯侯知其無顏歸國,乃為築館於祝邱,迎姜氏居之。姜氏遂往來於兩地。魯侯饋問,四時不絕。後來史官議論,以為魯莊公之於文姜,論情則生身之母,論義則殺父之仇。若文姜歸魯,反是難處之事,只合徘徊兩地,乃所以全魯侯之孝也。髯翁詩曰:「弒夫無面返東蒙,禚地徘徊齊魯中。若使靦顏歸故國,親仇兩字怎融通?」話分兩頭。再說,齊襄公拉殺魯桓公,國人沸沸揚揚,盡說:「齊侯無道,幹此淫殘蔑理之事。」襄公心中暗愧,急使人迎王姬至齊成婚,國人議猶未息;欲行一二義舉,以服眾心。
노장공은 문강이 귀국할 면목이 없어 안 돌아오는 줄 알고, 곧바로 축구(祝邱)에 관사를 짓고 문강을 그곳에서 살게 했다. 문강은 수시로 양쪽 땅을 마음 내키는 대로 드나들었다. 노장공이 음식을 준비하여 철마다 문안을 올리기를 끊이지 않았다. 후에 사관이 논하기를, 노장공에게 있어서 문강은 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기 몸을 낳아 주신 생모이고, 의리로 말할 것 같으면 자기의 부친을 살해한 원수이다. 만약 문강이 노나라에 돌아왔더라면 장공으로서는 오히려 매우 난처한 일이 되었을 것이며, 단지 제나라와 노나라 양쪽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노장공으로서는 효도를 다한 것이었다고 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남편을 죽이고 무슨 면목으로 동몽산에서 돌아올 수 있었겠는가? 작(禚) 땅에 머물면서 제나라와 노나라를 배회했도다. 만약 부끄러운 얼굴을 들고 시가에 돌아왔다면, 노장공은 모친과 원수를 어떻게 융통했겠는가?” 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제양공이 노환공을 살해하자, 제나라 사람들이 분분하게 비난하여 모두 말하기를, “제양공이 무도하여, 음탕하고 인륜에 어긋난 일을 범했다.”고 했다. 제양공이 마음속으로 부끄러워서 급히 사람을 시켜 왕희를 제나라로 맞아들여 성혼을 했으나, 사람들의 분분한 의견은 가라앉지 않았다. 제양공은 세상에 의로운 일을 한두 가지 행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수습하려고 했다.
想:「鄭弒其君,衛逐其君,兩件都是大題目。但衛公子黔牟,是周王之婿;方娶王姬,未可便與黔牟作對。不若先討鄭罪,諸侯必然畏服。」又恐起兵伐鄭,勝負未卜。乃佯遣人致書子亹,約於首止,相會為盟。子亹大喜曰:「齊侯下交,吾國安如泰山矣!」欲使高渠彌祭足同往;祭足稱疾不行。原繁私問於祭足曰:「新君欲結好齊侯,君宜輔之,何以不往?」祭足曰:「齊侯勇悍殘忍,嗣守大國,侈然有圖伯之心。況先君昭公有功於齊,齊所念也。夫大國難測,以大結小,必有奸謀。此行也,君臣其為戮乎?」
제양공이 생각하기를, “정나라의 공자 미가 고거미와 작당하여 소공을 시해하고, 위나라의 두 공자는 위혜공을 몰아내고 검모를 새로운 군주로 세웠으니, 두 가지 일은 모두가 큰일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위나라 군주인 공자 검모는 주나라 천자의 부마라, 내가 방금 왕희를 부인으로 맞이하여 동서간이 되었는데, 검모와는 맞설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정나라의 죄를 먼저 물어서 제후들이 반드시 나를 두려워하여 복종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했다. 그러나 제양공은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쳤다가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경우를 걱정하여, 짐짓 국서를 써서 정나라 공자 미에게 보내어 두 나라의 군주가 수지(首止)에서 만나 회맹을 하자고 약속했다. 공자 미가 제양공의 국서를 받고 대단히 기뻐하며 말하기를, “제양공이 수호를 맺자고 하니 내 나라는 안전하기가 마치 태산과 같이 되었다.” 했다. 공자 미가 고거미와 제족을 불러 같이 수지에 동행하기를 명했으나 제족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원번이 제족을 찾아와 묻기를, “새 군주가 제양공과 수교를 하려고 하는데 대부께서는 마땅히 도와야 함에도 어찌하여 가지 않으셨습니까?” 하니, 제족이 말하기를, “제후는 날래고 사나우며 잔인한 사람입니다. 또한 큰 나라를 물려받아 항상 패업을 이루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더욱이 선군 소공(홀)은 세자 시절에 제나라를 도와 공을 세운 적이 있어 제나라는 항상 소공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큰 나라의 속셈은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라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게 청하여 회맹하려고 하는 것은 그 속에 필시 음흉한 계략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이번 행차에 임금과 신하가 모두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原繁曰:「君言果信,鄭國誰屬?」祭足曰:「必子儀也。是有君人之相,先君莊公曾言之矣。」原繁曰:「人言君多智,吾姑以此試之。」至期,齊襄公遣王子成父管至父二將,各率死士百餘,環侍左右,力士石之紛如緊隨於後。高渠彌引著子亹同登盟壇,與齊侯敘禮已畢。嬖臣孟陽手捧血盂,跪而請歃。襄公目視之,孟陽遽起。襄公執子亹手問曰:「先君昭公,因甚而殂?」子亹變色,驚顫不能出詞。高渠彌代答曰:「先君因病而殂,何煩君問?」襄公曰:「聞蒸祭遇賊,非關病也。」
원번이 말하기를, “대부의 말이 과연 믿을 만하다면 앞으로 정나라 군주는 누가 되어야 할까요?” 하니, 제족이 말하기를, “반드시 공자 의(子儀)가 되어야 합니다. 공자 의의 얼굴에는 군주의 상이 있다고 돌아가신 선군 장공께서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했다. 원번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말하기를 대부께서는 지혜가 많다고 합니다. 제가 잠시 믿고 기다려 보겠습니다.” 했다. 회맹하기로 한 날짜가 되어, 제양공은 왕자 성보(成父)와 관지보(管至父) 두 장수를 시켜 각각 자객 백여 명을 거느리고 좌우에 시립 하게 하고, 장사 석지분여(石之紛如)는 양공의 뒤에 바싹 붙어서 수행하게 했다. 고거미가 공자 미를 인도하여 회맹을 거행하는 제단에 같이 오른 다음 제양공에게 예를 올렸다. 제양공의 총신 맹양(孟陽)이 희생의 피를 담은 그릇을 손으로 받쳐 들고 공자 미 앞에 무릎을 꿇고 입술에 피를 바르기를 청했다. 제양공이 공자 미를 노려보자 맹양이 급히 일어났다. 제양공이 공자 미의 손을 잡고 묻기를, “선군 소공은 어떻게 해서 죽었습니까?” 했다. 공자 미의 얼굴색이 바뀌면서 놀라 몸을 부들부들 떨고 말을 못하자, 고거미가 대신 답하기를, “선군께서는 병이 들어 돌아가셨는데 어찌하여 군후께서 물어보십니까?” 했다. 제양공이 말하기를, “나는 소공이 증제(蒸祭 ; 겨울 제사)를 올리려 성 밖으로 나가던 중에 도적을 만나 살해당했다고 들었지, 병으로 죽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소.” 했다.
高渠彌遮掩不過,只得對曰:「原有寒疾,復受賊驚,是以暴亡耳。」襄公曰:「君行必有警備,此賊從何而來?」高渠彌對曰:「嫡庶爭立,已非一日,各有私黨,乘機竊發,誰能防之?」襄公又曰:「曾獲得賊人否?」高渠彌曰:「至今尚在緝訪,未有蹤跡。」襄公大怒曰:「賊在眼前,何煩緝訪?汝受國家爵位,乃以私怨弒君。到寡人面前,還敢以言語支吾!寡人今日為汝先君報仇!」叫力士:「快與我下手!」高渠彌不敢分辯。石之紛如先將高渠彌綁縛。子亹叩首乞哀曰:「此事與孤無干,皆高渠彌所為也。乞恕一命!」
고거미가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대답하기를, “선군께서는 원래 한질(추위를 느끼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거기다가 다시 도적들을 만나 놀래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했다. 제양공이 말하기를, “임금이 성밖으로 나가는데 경비가 없을 수 있는가? 그 도적들은 어디서 왔는가?” 하니, 고거미가 대답하기를, “적자와 서자가 다투기를 하루 이틀이 아니어서 각각 사당을 만들어 항상 틈만을 노리고 있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제양공이 또 묻기를, “그 도적들은 이미 잡았는가?” 하니, 고거미가 말하기를, “지금까지 수색하고 있으나 아직 종적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했다. 제양공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도적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어찌 번거롭게 수색한다고 하느냐? 너는 나라로부터 작위를 받았을 텐데 개인적인 감정으로 임금을 죽이고 과인의 면전에서 다시 감히 말로 얼버무리려고 하는가? 과인이 오늘 너희 선군의 원수를 갚아 주겠다!” 하고, 장사들을 향해 소리치기를, “빨리 잡아 포박해라.” 했다. 고거미는 감히 변명하지 못했다. 석지분여가 먼저 고거미를 포박하자, 공자 미가 제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애걸하기를, “이 일은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모두가 고거미가 저지른 일입니다. 부디 이 한 목숨을 불쌍히 여겨 살려주십시오.” 했다.
襄公曰:「既知高渠彌所為,何不討之?汝今日自往地下分辯。」把手一招,王子成父與管至父引著死士百餘,一齊上前,將子亹亂砍,死於非命。隨行人眾,見齊人勢大,誰敢動手,一時盡皆逃散。襄公謂高渠彌曰:「汝君已了,汝猶望活乎?」高渠彌對曰:「自知罪重,只求賜死!」襄公曰:「只與你一刀,便宜了你!」乃帶至國中,命車裂於南門。(車裂者,將罪人頭與四肢,縛於五輛車轅之上,各自分向,各駕一牛,然後以鞭打牛,牛走車行,其人肢體裂而為五。俗言:「五牛分屍」。此乃極重之刑。襄公欲以義舉聞於諸侯,故意用此極刑,張大其事也。)
제양공이 말하기를, “고거미가 한 짓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어찌하여 죄를 주지 않았는가? 그대는 오늘 지하에나 가서 변명하라.” 하고, 손을 들어 올리자 왕자 성보와 관지보가 자객들을 인솔하고 들어와 일제히 제단에 올라와서 공자 미의 몸을 난도질했다. 공자미는 비명에 죽었다. 공자 미를 따라온 수행원들은 제나라 사람들의 세력이 큰 것을 보고, 감히 대항해서 싸우지 못하고 일시에 모두 흩어져 도망가 버렸다. 양공이 고거미에게 말하기를, “너의 임금은 이미 죽었다. 아직도 너는 살기를 바라고 있느냐?” 하니, 고거미가 대답하기를, “내 죄가 중한 것을 스스로 알고 있소. 오로지 죽기만을 바랄 뿐이오.” 했다. 제양공이 말하기를, “한칼에 죽인다면 너에게 너무 편하리라!” 했다. 곧 고거미를 제나라 도성으로 압송하여 남문에서 거열형에 처하도록 명했다. (거열형이란 죄인의 머리와 사지를 다섯 개의 수레의 끌채에 묶은 후, 각자 방향을 나누어 소에게 멍에를 맨 뒤에 채찍으로 소를 때려, 소가 달려 수레가 가면 그 사람의 몸과 팔과 다리가 찢어져서 다섯 조각이 되는 형벌이었다. 속칭 ‘다섯 마리 소가 시체를 나눈다’라고 했다. 거열형은 극히 무거운 형벌이었다. 양공이 의로운 일을 한 것을 제후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일부러 이러한 극형을 행하여, 자기가 행한 일을 세상에 크게 선전하고자 했다.)
高渠彌已死,襄公命將其首,號令南門,榜曰:「逆臣視此!」一面使人收拾子亹屍首,藳葬於東郭之外。一面遣使告於鄭曰:「賊臣逆子,周有常刑。汝國高渠彌主謀弒君,擅立庶孽,寡君痛鄭先君之不弔,已為鄭討而戮之矣。願改立新君,以邀舊好。」原繁聞之,歎曰:「祭仲之智,吾不及也!」諸大夫共議立君,叔詹曰:「故君在櫟,何不迎之?」祭足曰:「出亡之君,不可再辱宗廟。不如立公子儀。」原繁亦贊成之。於是迎公子儀於陳,以嗣君位,祭足為上大夫,叔詹為中大夫,原繁為下大夫。子儀既即位,乃委國於祭足,恤民修備,遣使修聘於齊陳諸國。又受命於楚,許以年年納貢,永為屬國。厲公無間可乘,自此鄭國稍安。
고거미가 이미 죽자 제양공은 그 머리를 남문에 효시하고 방을 붙여 이르기를, “이 역신을 보아라.” 했다. 제양공은 한편으로는 사람을 시켜 공자 미의 시신을 수습하게 하여 동쪽 성곽 밖에 묻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을 정나라에 보내 말하기를, “항상 주왕실은 역적에게 형벌을 내렸다. 그대 나라의 고거미가 주모하여 군주를 시해하고 제멋대로 서자를 세웠다. 내가 정나라의 선군 소공의 상에 참석하지 못한 일을 애통해하다가, 이미 정나라를 위해 두 사람을 죽였다. 바라건대 새 군주를 세워 옛날의 우호 관계를 맺도록 합시다.” 했다. 원번이 듣고 감탄하기를, “제중의 지혜는 내가 감히 미치지 못하겠구나!” 했다. 정나라의 여러 대부가 모두 모여 새로운 군주를 세우는 일을 의논했다. 숙첨이 말하기를, “옛날의 군주(여공)가 역성(櫟城)에 있습니다. 어찌 그를 모셔 오지 않습니까?” 하니, 제족이 말하기를, “망해서 달아난 임금을 모셔 와서 또다시 종묘를 욕보이게 할 수 없습니다. 공자 의를 세루는 것이 좋습니다.” 했다. 원번도 역시 제족의 말에 찬성했다. 이에 공자 의를 진나라에서 맞아들여 정나라 군주의 자리를 잇게 했다. 제족은 상대부가 되고, 숙첨은 중대부가 되고, 원번은 하대부가 되었다. 공자 의가 즉위하여 제족에게 정사를 맡겨서 백성들을 구휼하고,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제나라와 진(陳)나라에 수호를 구하는 사절을 보냈다. 또한 초나라를 받들기로 하고 매년 조공을 바쳐 영원히 초나라의 속국이 되기로 했다. 정여공이 틈을 노릴 수가 없어서, 이때부터 정나라의 정세는 조금 안정을 찾게 되었다.
不知後事如何,且看下回分解。
뒷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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