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금) 잘 있어라, 베트남. 그 순한 웃음과 눈망울도.
새벽에 조금 더워 선풍기를 틀어놓고는 그 소리에 놀랐다. 비가 거세게 오는 줄만 알았다. 느긋하게 아침 7시에 일어나 빵과 커피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여성박물관과 역사 박물관, 그리고 레닌 공원을 구경하기로 한다. 하노이에 도착한 날 산 시내지도를 잃어버려서 다시 산다. 20,000동.
자전거로 다닐까 하다가 비도 조금 오고, 자신도 없어서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4$을 부른다. 무슨 소리? 나도 이제 빠꼼이다. 2$에 한다. 오토바이 기사는 밤에 공항까지 오토바이로 가자고 한다. 50,000동(4,000원). 택시로는 8$(9,600원)이다.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계속 비가 오면 자신이 없다. 그리고 45km를 오토바이로?
역사박물관과 여성 박물관, 그리고 레닌 공원을 구경한다. 아직도 여기는 레닌의 동상도 서 있고, 공원도 있다. 호치민은 마르크스와 레닌을 좋아했다. 다른 나라에선 이미 줄에 매여 끌어내려진 우뚝 선 레닌을 보았다. 여성 박물관이 별도로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혁명 과정에서 투쟁하던 여성들의 모습도 있고, 전통 의상도 있다. 역사와 문화에 있어 여성이 담당해 온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check-out 전 마지막으로 샤워를 한다. 그리고 짐을 잘 정리한다. 이제 가는 일만 남았고, 전통 술만 한 병 사면된다. 천천히 해도 될 것 같다. 점심을 먹기 위해 호엔끼엠 호수 옆 근사한 레스토랑을 찾는다. 우리의 석촌호수? 5,000원도 안되는 돈으로 우아한 식사를 한다. 이곳에서 다시 독일인 부부를 만난다. 오늘 오후에 사파에 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 정말 마지막인 듯 하다. 헤어지면서 계속 우리는 “Have a nice days” 혹은 “Have a good times”를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고 했더니 이젠 “See you later”로 인사하잔다. 수많은 헤어짐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벌써 몇 번을 만났던가? 그러나 이젠 정말 마지막이리라. 금슬 좋게 여행을 다니는 저 부부의 모습이 훗날 내 모습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제 남은 것은 비행기표의 재확인뿐이다. 카페로 돌아와 아시아나 항공에 전화를 한다. 아시아나항공은 호치민에만 있고 하노이에는 없다. 자동안내 때문에 20,000동을 버렸다. 간신히 통화하니 한국말이 가능한 직원은 12시 이후에나 가능하단다. 돈만 날렸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마지막 확인을 이곳에서 다시 해야 하는지를 물어 보았어야 하는데.. 이상은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못내 불안하다. 여기는 외국이니까..
대충 이곳에서 볼 건 다 보았으니까 일찍 공항에 가도록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땀꼭에 가볼걸 그랬나? 하롱베이보다 훨씬 사람 사는 냄새가 강한 곳이라고 했는데.. 그러나 호치민에서도 달랏을 남겨 둔 것처럼 이곳에서도 땀꼭을 남겨두자. 모든 것을 다 보고 나면 다음엔 할 게 없을 테니...
잔잔히 비가 내리는 하노이의 풍경이 너무 평화롭다. 언젠가 이곳에 전쟁이 있었고, 투쟁하던 사람들이 있었으리라. 이름 없이 죽어간 그들의 덕분으로 오늘의 분주하고, 평화로운 도시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모습을 가지게 될 수 있을까? 보기엔 너무나 가난하게 살고, 곳곳엔 장사꾼과 손을 내미는 거지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미래’를 가지고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선뜻 ‘미래’를 얘기하는 데 주저하지만 그래도 ‘사회주의’다. 그것도 100년의 투쟁으로 이겨 낸. 기나긴 투쟁의 역사는 쉽게 없어지지 않으리라. 누구도 다시 이 나라를 침략하진 못하리라. 끈질긴 투쟁이 남긴 흔적은 이 도시와 역사에 깊이 각인되어 있으리라..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일찍 공항에 가기로 한다. 그동안 많이 도와 준 친구들에게 몰래 팁을 준다. 한 처녀는 “My name is Thu”라고 써 준다. 영어로 가을이라는 뜻이란다. 아주 예쁜 눈을 가진, 탤런트같이 생긴 처녀다. 처음부터 도와 준 남자친구도 서글서글하다. 돈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게 미안하지만 받는 그들은 너무 좋아한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불러 준다. 하얀색이나 감색 택시를 타야 하는 데 이상한 택시가 왔다. 운전기사도 약간 불량기가 있는 젊은애다. Thu와 남자친구가 막 뭐라고 한다. 분명 돈 문제이리라. 8$이 아닌 10$을 얘기하고 있다. 그냥 가지고 한다. 싸우는 바람에 마지막으로 그들과 사진 한 장 못 찍고 헤어진 게 너무 아쉽다. 운전기사는 이상하게 운전하는 친구다. 시동을 키고 가다가 중간에 시동을 끄고 달린다. 그러다가 다시 시동을 켜고.. 그게 기름이 적게 드나??
노이바이 공항은 한가하다. 인천공항 정도를 생각하고 일찍 온 게 잘못이다. 탑승권으로의 교환은 밤 10시 55분이 되어야 가능하단다. 3층에 있는 아시아나 사무실을 찾았지만 굳게 닫혀있다. 의자도 오로지 철제 의자만 있다. 죽으라는 얘기다. 해서 기다리기로 한다. 지금 시간이 4시 30분. 그러나 시내에 있었어도 할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후에에서는 기차역에도 있었는데 이 곳에는 인터넷 하는 곳도 없다.
해서 식당에 앉아 책도 보고, 충분히 정리할 시간을 가진다. 물론 맥주도 한잔하면서.. “하노이에 별이 뜨다”를 다시 한번 읽는다. 그리곤 구찌 터널 책을 읽는다. 베트남 돈은 다른 나라에선 환전해 주지 않으므로 수집용을 제외하곤 다 써버린다. 이곳은 공항 안에서도 담배를 필 수 있다. 첨에 괜히 나가서 피웠네..
아시아나 항공을 다시 찾으니 열려 있다. 조금 빨리 떠나는 아시아나 비행기는 없다. 다른 편을 이용하려면 다시 표를 사야 한단다. 해서 또 기다린다. 어제도 카페에서 인터넷을 기다리면서 “Waiting is my life”라고 했었다. 지금도 그렇다. 기다리지 뭐.
공항 안에서 프랑스 처녀 스테파니를 다시 만난다. 그녀도 오늘 프랑스로 돌아간단다. 짐이 되게 많다. 화분도 하나 있다. 열심히 여행 기록을 하고 있다. 호치민에서 산 지도를 보여 달란다. 지역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필요하면 가지라고 했더니 돌려준다. 여행은 누구에게나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준다. 뭔가를 적을 시간을 준다.
check-in을 하러간 스테파니가 낭패한 얼굴로 돌아온다. 뭔가 잘못되었나보다. 최종 confirm을 하지 않는 바람에 자리가 비어야만 갈 수 있단다. 자리가 없으면? 이곳에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이틀 정도. 사방으로 뛰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낭패한 표정이 역력하다. 3층에 있는 식당에 가서 차를 한 잔 한다. 이번에는 그녀가 돈을 낸다. 대학에서 영어와 독일어를 공부했단다. 그녀 역시 사람에게 가장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나와 다르게 옛 왕궁의 도시 후에에서도 많은 걸 느꼈나보다. 그리고 해변에서도. 대개의 유럽인들은 햇볕을 되게 좋아한다.
시간이 되어 내 check-in을 하고 들어가기 전 그녀를 쳐다본다. 00시 20분 프랑스로 출발이므로 아직 시간은 있다. 걱정하지 말란다. 먼저 들어온 후 한참 후에 프랑스 출국 대기 gate에 가보니 11시 50분에 그녀가 들어온다. 잘 된 일이다. 해서 정말 마지막 인사를 한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베트남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만남도 이제 끝이다. 한국 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데 하롱베이 여행을 같이 한 남녀가 보인다. 한국계 미국인 오누이라고 한다. 수영을 즐기던.. 인천공항을 거쳐 시애틀로 간다고 한다.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여행 중에 말이라도 해 볼 걸.. 어째 동생이라는 총각이 한국사람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드디어 대기실에서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동포들을 본다. 낯설다. 시끄럽다. 3년 동안 김포에서 일했다는 월남 청년도 만난다. 공항 면세점에서 전통 술을 사면되겠지 하는 생각이 틀렸다. 전통 술을 없고, 유명 외국 술만 있다. 그리고 전통점은 되게 비싸다. 5배정도..비행기에 탄다. 역시 마찬가지로 windows seat를 얘기해서 창가에 앉는다. 잘 있어라, 하노이.. 베트남..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은 일본대학생이란다. 7일부터 베트남 여행을 혼자하고 집에 가는 중이란다. 후쿠오카. 법을 공부한다고.. 대충 여행 코스가 같았다. 느낀 점을 얘기한다. 젊은 아이들이 해외 여행을 많이 하는 게 부럽다. 혼자서 10여개 국을 돌아다닌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은지도 그럴 수 있을까?? 드디어 베트남 시간으로 5시, 우리 시간으로 7시 정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한다. 11월 22일(토)이다. 우리 시간으로 7시 30분. 일산으로 가는 공항버스에 탔다. 한국은 되게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