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미국 최북단에 있는 미네소타 주의 미네아폴리스이다. 뉴욕에 사는 작은딸 집에 체류한지, 벌써 3개월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딸과 사위의 배려로 귀국하기 전에 2박 3일 일정으로 ‘미네아폴리스’를 여행하게 되었다.
뉴욕 ‘아스토리아’에서, 새벽 4시부터 제이닥(사위 애칭), 비니닥(딸 애칭), 작은딸 그리고 나와 집사람, 이렇게 일행이 되어, 여행 준비물을 챙기느라 부산을 떨었다. 그리고 5시 반경에서야 사위 제이닥이 이미 예약하여 불러 둔 우버(Uber) 택시를 타고 뉴욕 아스토리에 있는 집에서 가까운 라구아 공항에 소요시간 20분도 못 되어서 도착했다. 그런데 우버(Uber) 택시는 택시가 아닌 택시였다! 직업 택시 기사가 아닌 민간인이 우버에 가입하여, 한가할 때 자기 차 근처에서 콜하는 전화가 오면 금새 달려와서 용돈을 버는 아마추어 택시이다. 요금도 정식 택시보다 싸고 팁을 안 주어도 된다. 우리나라에도 우버 택시가 생겼다는데, 여기 와서 우버 택시를 타보니 신기하다. 우리 일행은 가벼운 여행 일정이라 기내 수화물용으로 손잡이와 바퀴 달린 가방 두 개와 각자의 소형 손가방을 준비해 왔다. 모두 핸드캐리용이다.
이른 시간임에도 공항 화물 안전 체크를 하는 곳에는, 벌써 길게 줄을 서서 각자가 큰 가방들을 체크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기내 반입용 수화물 가방이라 수화물만 보안 체크를 하는 곳에서만 체크를 받았다. 모든 짐은 죄다 움직이는 벨트를 따라 꼬마 장난감 같은 밀폐된 터널을 통과해서 나왔다. 그런데 집사람의 가방이 투명 엑스레이 조사 모니터에 체크를 당했다. 그 가방에는 한국 식품이 있었는데, 여성 보안요원은 가방 속 물건 중에 체크를 직접 받아야 할 내용물이 있으니 잠시 검사를 하겠다고 한다. 걸린 물건은 작은 쌈장 통이었다. 알뜰 여행, 알뜰 살림을 추구하며, 이를 자랑으로 삼는 집사람이 아니나 다를까! 이번 여행에서도 가급적 외식을 줄이고 경비도 절약해서, 갓 결혼한 딸 내외에게 ‘알뜰 여행’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아니면 알뜰 경제의 경력을 유지하겠다는 심뽀에서인지 여러 가지 음식물을 준비해 왔던 모양이다.
여성 보안 요원이 “이게 뭐냐?”고 따진다. 쌈장 통을 열어보고, 코를 가까이 대고 씩씩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이마를 찌푸린다. 이번에는 두 눈을 쌈장 통에 밀착시키고 쌈장을 살핀다. 누런 된장을 보는 동안 그 여성 보안 요원이 제발 회장실에서, 큰일 볼 때 누런 거시기(?)로 연상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는 숨죽이고 지켜보았다.ㅋㅋㅋ ‘콩으로 만든 한국식 버터’같은 것이라고 말해서, ‘거시기’로 연상되는 것을 막아주려고, 영어 소통이 능한 작은딸이, 신속하게, 설명을 하였지만, 막무가내로 기내 반입을 거절한다. 차라리 얼려서 왔으면 기내 반입이 가능하지만, 이렇게 물렁물렁 주물럭거릴 수 있는 상태로는 잠재적 폭약으로 간주되어, 기내에 반입이 불가하다면서 수화물이 아닌, 정식 화물 체크를 받아서 기내 화물칸으로 보내라고 한다. 집사람이 ‘고까짓 것’,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 집 주소를 물으며 택배비를 부담한다면 집으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집사람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러면 자기들이 마음대로 폐기 처분하겠다고 동의를 요구한다. 집사람은 아깝고 서운하지만 동의를 했다. 집사람은 내가 서양 상추에 쌈장 밥을 좋아하니까 서양 상추 두 포기와 쌈장을 준비했다고 하면서, 비행기 탑승 후에도 한동안 아쉬워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두 시간이 지나, 시카고 공항에 내려서 환승을 했다. 다시 사우스 웨스트(South west)를 타고 1시간 후에 ‘미네아폴리스’ 공항에 도착했다. 하얏트 레전시 호텔에 도착하니 낮 12시경이었다. 이 호텔은 미네아폴리스 중심가에 있었다. 3시에 호텔 방에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은 지 오래되었는지 인테리어가 엉성한 느낌이었지만, 룸은 스페이스가 아주 넓었다. 그리고 사위 제이닥이 하얏트 호텔 VIP 골드 회원이라 가는 곳마다 특별서비스를 받았다. 룸에 들어서자 제이닥을 환영한다는 쪽지와 환영 케이크 그리고 음료가 무료로 서비스되어 대기하고 있었다. 또한 룸 TV를 켜자마자, 화면에 VIP 제이닥의 하얏트 호텔 투숙을 환영한다는 멧세지가 뜬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여름에, 알라스카를 제외하고는 가장 시원하다는 피서지 미네아폴리스이다. 미네아폴리스는 미네소타 주의 수도이다. 미네∼, 미네∼? 왜 이곳에 지명에는 ‘미네’가 그렇게도 자주 붙어있을까? 미네(minne)가 원래는 컬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하기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 토박이들, 아메리카 인디안의 한 부족인 ‘다코타족’의 ‘말’이라고 한다.
이 ‘미네’는 원래 물을 뜻한다고 한다. 하기야 이곳에 올 때 비행기 유리창 밖으로, 반은 호수이고 반은 들과 낮은 산들만 보였었다. 그때 이미 알아보아야 했다. 미네소타는 ‘물’ 세상이라는 것을! 호수가 무려 1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아! 물 천지다! 그래서 별명이 〈일만 호수의 땅(Land of 10,000 Lakes)〉! ‘일만 개의 호수가 있는 땅’이라고 한다. 미네소타는 그래서 주의 애칭을, 아니 별명을 〈워터 스테이트(water state)〉, 즉 ‘물 동네’, ‘물의 주’라고 불러달라 한다. 이곳 교포 어른들은 자식들 따라 한국에서 갓 온 노인들에게 ‘미네소타’ 이름을 힘들게 외우지 말고, 그저 우리말식으로 ‘작은 소다’에서의 ‘소(cow)’와 ‘미니수퍼’의 ‘미니’를 연상하여, 그저 ‘작은 소다’ 아니 ‘미니소다’ 하고 외우라고 한다. 물론 그저 우수개 소리겠지만, 그러면?! ‘미네소타’도 인디안 다코타족 말이겠네? 그랬다! ‘소타’는 푸른 물색을 말했다. 그래서 ‘미네소타’는 ‘파란 물’ 또는 ‘푸른 물’을 뜻한다. 여름이면 호수 주의가 온통 푸른 들과 푸른 산뿐이다. 하늘도 오염이 없어 푸르고 푸르다. 그래서 호수도 그저 푸르름을 머금어, 저리도 푸를 수 밖에 없나보다.
“그러면 〈미네아폴리스〉도, ‘다고탕’가 ‘가고탕’가 그 족속들 말일까?” “No∼! 일부는 맞는데, 일부는 틀렸어. 그래서, No야~!” “우웽∼ 아니, 맞으면 전부 맞고 틀리면 전부 틀려야지, 어디 그런 고얀 말이 있어!” “잠깐, 비 콰이엇(Be quiet)! 잘 들어 보라고∼ ‘미네아’는 다코타(Dakota) 말로는 물이지! 워터(water)란 말이야~! 그러니 반은 맞은 거야. 그런데 ‘폴리스’는 아니야!” “아! 생각난다. 고것 그리스 말이지? 그렇지! 그리스에는 ‘고대 도시’를 ‘폴리스’라고 불렀잖아∼ 역사책에서 그렇게 배웠잖아!” “〈미네아폴리스(Minneapolis)〉를, 잘 못 알면 ‘물 경찰’ 도시로 번역하는 웃기는 친구도 있지” “‘미네아폴리스’ = ‘물 경찰’로? 설마?!” “‘물 경찰’하니까 몇 년 전에 광우병 데모 때, 물대포 쏘던 경찰 아저씨들이 갑자기 생각난다. 그럼 그때 물대포 쏘던 그 경찰 아저씨들은 ‘미네아폴리스들’이네!”ㅋㅋㅋㅋ 이렇게 자문자답해 보며 낄낄대어 본다.
“미네소타주 인구가 약 5백 50만명 인데, 그중에서 60퍼센트가 ‘미네아폴리스’와 ‘세인트 폴’이라는 쌍둥이 도시에 살고 있다 하니, 어디 보자∼, 무려 320만이 살고 있네! 그러고 보니 부산 인구와 맞먹네!” “우와, 백인이 90퍼센트나 된다고?!” “그렇다! 10퍼센트를 가지고 흑인, 동양인, 다코타 원주민이 나누어 분포한다. 10퍼센트 중 원주민은 고작해야 1퍼센트란다. 흑인이 5퍼센트, 동양 아시아인이 4퍼센트란다. 아, 이 먼 곳에 아시아 사람도 꼽살이로 살고 있네?” “그렇다! 그런데,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지?”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산단다. “아니, 월남 사람들이? 왜? 여기까지 와서 살지?” 미네소타는 겨울에 영하 40도가 되는 때도 많아서, 알라스카 빼고는 본토 미국에서 가장 추운 곳인데∼ 베트남 열대에서 왜 가장 추운 곳에 와서 살지?” “그거야 이유가 있지롱! 월남전 있었잖아, 정글 속이나 땅굴 속에 숨었다가 개미귀신 출몰하듯이 들쑥날쑥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게릴라 전법을 쓰는 베트콩들의 난리 통에 결국은 미국이 손들고 나왔잖아∼!ㅉㅉㅉ 그 시기에 베트콩 잡는데 비밀리에 정보를 모아 다 주고, 또 일부 게릴라 소탕전에서 전공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던 산속에 사는 소수 부족들이 있었지! 그들이 바로 ‘몽족’이라는 소수 민족이었어. 언젠가 베트남이 통일이 되면, 미국 CIA는 그들을 독립국가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나 봐. 이스라엘인들이 2차 대전 중에 연합국 도와주고, ‘벨푸어 선언’ 얻어서, 2000년간 떠났던 가나안 땅에 독립국가 만드는 것 본뜨려고 했었지. 그래서 그들은 이른바 ‘통일 대박’ 약속을 믿고 미군들을 목숨 걸고 도와주었는데, 앗뿔사! 미군이 갑자기 손을 빼고 철수를 해버린 거지. 그때 통일 대박을 꿈꾸며 목숨을 걸고 미군에 협조했는데, 이제는 월남이 패망을 하자, 베트남 몽족들은 대박의 꿈이 깨지고 쪽박이 된 거지. 이제 월맹이 이 ‘몽족’들을 작살을 내어, 그 쪽박을 왕창 깨버릴려고 하였지. 그들은 ‘깨질 쪽박 신세’를 미정보 당국에 하∼ 애걸복걸을 하며 우리들 ‘쪽박신세’를 구원해 달라고 하소연을 했었지. 생각나나? 월남 패망 직후에 월남 정부에 협조했던 사람들은 이제 월맹이 통일을 해서 ‘우리는 죽었구나!’하면서 쪽배를 타고 무작정 망망대해를 향해 월남을 떠나서 정처 없이 태평양을 떠다녔었지. 그래서 이들을 세계 언론들은 ‘보트 피플’이라고 대서특필을 했었지. ‘보트 피플’ 이것은 ‘몽족 말’이나 ‘다코타 말’이 아니야. 영어 보트(boat)와 사람들(people), 두 단어로 된 영어 합작품이야. ‘보트 피플’ 그중에 상당수가 바로 월남에서 산속에서 살던 ‘몽족’들이었어. 미국 당국은 세계의 눈들이 보고 있으니까, 인도주의적 차원에 그들을 미국 이민으로 받아들였지. 그런데 좋은 주(state)는 월남 평지나 도시 출신들이 할당된 몫을 찾이했고, 불쌍한 산속 몽족 촌사람들은 기꺼이 이민을 받아 주려는 주가 많지 않았었대. 그런데 미네소타 주에서 몽족들에게 ‘웰캄 투 미네소타(Welcome to Minnesota)!’ 하면서 얼른 받아들였대, 무려 10만명 이상이나 받아주었지!
“짝! 짝! 짝! 이때, 모두 박수쳐야지!ㅋㅋ” “와! 암튼 미네소타 사람들 착하기도 하지. 이곳 사람들 백인 중에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이나 독일 사람들이 많아. 대부분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이민 온 후손들이지. 백인들 중에서는 질이 좋은 루터파의 개신교들로써 참다운 기독교인들이라고나 할까. 그야말로 굳 피플(Good People)들, 착한 사람들이지! 미네소타의 미식축구팀 이름이 ‘바이킹스’이지. 덴마크 등 북유럽 이민자들은 따지고 보면 바이킹족의 후손들이니까. 미네소타의 주류인 그들이, 용감무쌍한 바이킹을 축구단 이름표로 삼은 것은 당연한 거지!” “아∼ 그렇구나! 그런데 한국 사람도 꽤 있다면서?” “응, 그래, 한국 사람도 꽤 있어! 어∼ 한∼, 2∼3만 명쯤 미네소타에 살고 있지. 여기 오기 전에 뉴욕에서,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한인회장인 ‘한현숙’씨와 통화를 했었지. 한회장은 한국인 고아 입양일을 35년간이나 하다가 이제는 그만두고 한인회 일을 돌보고 있더군. 한회장을 통해서 여러 입양아들의 애환을 많이 들었지. 미국에서 미네소타가 한국 고아 입양아 수에서 제일 많다고 하더군!” “그렇게 많아?” “응, 그래!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이민을 왔다 하면 자녀교육이나 취업 등을 생각해서 L.A. 뉴욕, 워싱톤 D.C. 등 큰 도시에서 많이 산다던데∼” “그래, 그래 맞아! 그 숫자, 놀란만도 하지!” “현재 미국에 약 250만명 정도(불법 체류자 포함)가 한국인들이 산다고들 하지. 그런데 이곳 미네소타에 살고있는 2∼3만명의 한국사람들은 과거의 슬픈 이야기를 품고 살고 있어” “그게 뭔데?” “그건 말이야∼ 대부분이 어렸을 때 온 입양아들이야. 이 중에서 2만명은 입양아 출신이고, 1만여명 쯤이 한국교포나 유학생들이래!” “오, 마이 갓!” “특히 입양아들은, 부모가 버리고, 고국에서는 입양을 받아 주지 않았던 불쌍한 우리 배달의 후손들이 여기로 이민, 아니 입양되어 온 거지” “아아! 이 소리 들으니 슬프고 눈물 나네!” “그렇지, 눈물 나는 소리지” “그래서 이 검투사(?) 양 검지로, 이 키보드와 싸우며(?) 이렇게 잠 못 이루는 밤을 미네아폴리스에서 보내는 중이지. 이 사실을 모르고 이곳에 온 한국인이 있다면, 이것만은 알고 오라고 하는 뜻에서 알려주려고 이 대목도 써넣고 있지.ㅋㅋ”
“야∼ 이제부터 미네소타하면 달리 보아야 하겠다!” “아무렴, 그래야지!” “그런데, 우리와 또 무슨 인연이 더 있나?” “아∼ 미네아폴리스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있어, 시간이 되면 거기에는 꼭 한번 가 봐야 돼, 왕창! 나는 이곳에 도착했던 다음날 구경했었지!” “아니! 6.25 때 이곳 미국 북단 꼭대기에서 그리고 호수들 속에서, 몇 명이나 참전해서 죽었길래! 참전용사 기념공원까지 만들어 놓았을까?” “허허∼ 추운 곳에 산다고 함부로 무시하면 안 돼!” “그럼 한 20∼30명 죽었나? 그도 대담무쌍 용감하게?” “허!? 허!? 무슨 소리야! 무려 3,000명인가, 4,000명인가 하는 아까운 미네소타 청년들이 한국 땅에서 왕창 목숨을 잃었었지!” “아∼ 그렇게나 많이?” “응, 정말이야!” “‘6.25∼전쟁’, 생각나? 아니, 나이가 60세 이하면 말로만 들었겠지. 생생한 기억은 없을 거야. 그러면 ‘1.4 후퇴’ 이야기랑 ‘흥남부두’ 이야기랑, 그때 생긴 그 노래∼ 들어 보았는가 몰라?”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보았다 찾아를 보았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산천 그리워지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히 떴다∼” “아! 그 노래, 나도 대충은 알아. 그런데 고것하고 여기에 만든 ‘참전용사 공원’하고 무슨 관련이 있느냐∼ 이 말이예요?” “이것 알랑가 몰라? 장진호 대혈전! 6.25 때, 국군과 미군이 평양을 진격하여 점령하고, 북진을 계속했었지. 그때 북쪽은 X나게 쫒겨서, 중국 국경선 근처인 강계에 임시 수도를 삼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을 때, 그저 목숨을 연명하면서 중공군이 빨랑 와서, 지네들 도와주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지” “맞아, 맞아!” “그때 확 밀어버려야 했었는데∼ㅉㅉㅉ!” “그래, 그래∼ 미군과 국군은 바로 이때 이북을 싹쓸이하여 그 참에 한반도 통일의 기회를 잡으려고 했었지, 그런데 중공군이 무려 30만명이나,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인해전술의 깃빨을 쳐들고 참전을 했었지. 그래서 사실상 남북전쟁이 아니라 미중전이 되었지. 미군과 중공군이 함경남도 산속 계곡에 있는 저수지, 아! 그 이름이 장진호수라 했지. 여기서 맞붙은 거야. 그런데 중공군이 숫자가 워낙 많은데다가 인해전술로 미군을 둘러싸고 막무가내로 포위 공격을 했었지. 그래서 그곳 혹한 속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었지. 그때 그곳에서의 전투를 역사에서는 〈장진호 전투〉라 명명했었지” “장진호 전투는 문대통령이 워싱톤을 방문했을 때, ‘장진호 전투’를 언급했었지. 워싱톤 D.C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탑’이 있는 곳을 맨 처음 방문 일정으로 잡았었지. 바로 거기에도 ‘장진호 참전용사 기념비’가 있지. 그 때문에 ‘장진호’란 지명이 인터넷에서도 검색 순위 상위권 단어로 한때 떠 올랐었지. 그런데 문대통령은 ‘장진호’를 들먹거리며 팔아서, 제법 미국인과 한국인들의 기억에 남을 ‘어록’이 될 만한 말을 남겨었지” “그게 뭔데?”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들이 잘 싸워주고, 그 덕분에 1.4 후퇴 때 흥남에서 부모님이 ‘메리데스 빅토리아’ 상선을 타고, 경상남도 거제도로 부모님이 피난을 왔기에 “오늘날 문재인이 있고, 대통령도 되었다”고, 이런 찡하는 감회를 ‘장진호’를 팔아서 남겼었지!” “그건 맞는 말이야! 문대통령 부모가 ‘1.4 후퇴’ 때 거제도로 피난을 와서, 그 후 2년 뒤에 문재인 아기가 남쪽에서 탄생되었던 것을 그렇게 잘도 표현했었지. 미국 방문이니까 미국 측에 듣기 좋으라고 약간 아부성의 여운도 담겨 있었지만∼ㅋㅋ, 암튼 나도 그 말 들으니까 찡하더라. 영화 〈국제시장〉 때 나오는 흥남 철수 장면도 그렇게 생각되지. 바로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들이 중공군과 싸우면서 시간을 벌어주었기에,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적으로 이끌어진 것이지. 장진호 전투와 1.4 후퇴, 흥남철수작전! 그때는 북한에서 가장 추운 때인 12월 중순에서 1월 초순에 다 벌어진 일들이지. 말하자면 그때 날씨가 겨울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혹한기였었지. 미군들은 겁 없이 에워싸고 포위망을 만들며 몰려드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걸려서 이제는 진격을 포기하고, 오히려 옴싹달싹 하기가 어려운 지경에서 다만 포위망을 뚫고 벗어나려고만 용을 썼었지. 그러니까 장진호 철수 작전과 뒤를 이어서 흥남철수 작전이 실패했다면 문재인의 부모는 남한으로 피난을 오지 못했을 거야. 그렇게 되었다면 아마도 ‘문재인 아기’도 탄생할 기회가 전혀 생기지 않았을런지도 모르지. 아무튼 이 장호진 전투에 참여한 미군들 중에는 미네소타 출신이 무척 많았다는거야! 우리 한국 사람들 이런 사실 알랑가 몰라. 사실, 이 이야기할려고 긴 썰(說)을 앞에 깐거야.ㅋㅋ 최소한 미네소타에 살고 있거나, 이곳으로 여행, 또는 유학을 오는 사람들은 참말로 이 정도는 알고 왔으면 좋겠구먼!” 나는 자문자답을 계속하며 미네소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계속 이어갔다.
“맥아더 사령관이 이 전투를 앞두고 본부에 이렇게 요청을 했었다지. 이것도 다들 알랑가 몰라! ‘이곳 한국의 북쪽 지방은 지금 너무 추워서 미군들 동상환자가 다수 발생, 고전하고 있으니 추가 병력은 제발 추위에 잘 견디고 동상 예방법을 아는 병력으로 더 보충해 달라’고! 이때 미국 본토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소문난 미네소타에서 한국전에 참가하겠다는 지원병과 차출병이 많이 나왔지! 미네소타는 한 겨울에 날씨가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니까. 이곳 젊은이들 이북 날씨 쯤이야 잘들 견디어냈겠지. 그래서 6.25 때 미네소타에서 무려 10만명 쯤의 젊은이들이 미군에 입대하여 한국전에 참전했었다고들 말하더군. 그런데 그중에서 3, 4천명이 장진호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었지. 그래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만든 추모공원! 이게 바로 미네소타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공원〉이지”
참전용사 공원 추모비 입구에는 2m 40cm 키 높이에 완전 무장을 한 미네소타 출신의 한 보병의 동상이 있었다. 아마, 저런 미네소타 용사들이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겠지∼ 우리는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한 바퀴 삥하고 돌아보았다. 그 공원에 있는 기념비를 둘러싼 여러 개의 현무암 돌비에는 한국전에서 전사한 700명의 참전용사 이름들이 빼곡히 돌비 마다에 새겨져 있었다. 정말 그 기념비와 그 명단들, 그리고 보병의 그 동상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지고 숙연해졌다! 두 손도 모아지고, 고개도 숙여지고! 난 동상을 어루만지다 떠나면서 존경과 추모를 나타내기 위해서 그만 보병 동상에게 거수경례를 멋적게 하면서 떠나왔었다.
뒤돌아 서는데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때마침 비가 한두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빗방울은 참전용사들의 애환의 눈물이 갑자기 빗방울이 되어 내 뺨에 내리치는 필링을 느끼면서 나와 우리 일행은 1시간 이상을 〈한국전 참전용사 공원〉에서, 한동안 침묵의 묵언 속에 머물렀던 그곳을 무거운 걸음으로 떠나왔다.
▲한국전 참전용사 공원
자~ 이제 이정도 썰(說)까고, 고흥의 첫 기독교 신자였던 한의사 ‘신우구’의 후손이 살고 있다는 미네소타 ‘하워드 레이크’를 향해 떠났던 얘기를 계속해 본다. 이왕 미네소타에 왔으니 당최 내가 찾아가 보려고 하는, 고흥에서 첫 기독교 신자였던 한의사 신우구의 후손을 기어코 만나고 귀국하려고 작심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오전에 하워드 레이크를 향해서 떠났다. 미네아폴리스에서 80Km를 한시간 가량 자동차도 달리니까 하워드 레이크 타운이 나왔다. 인터넷에서 알고 왔던 옛 병원 ‘하워드 레이크 클리닉 병원’을 찾아냈다. 야∼ 하는 환호성이 나왔다! 가지고 온 비디오 캠으로 촬영을 했다. 그리고 인근에 있다는 그의 부인이 사는 집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 집도 발견했다. 병원 뒤쪽에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413번지 12가 하워드 레이크(Howard Lake)! 하워드 레이크 타운은 50년 전에 인구가 1000명이었는데, 현재 인구는 꼭 두 배인 2000명이다. 가구 수는 800여 가구쯤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작은 면 정도 되는 마을이다.
하워드 레이크는 서서평 선교사의 맏수양딸 과애럐의 첫째 아들 신록우과 그의 부인이 산다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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