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과 어린 시절 이야기
2022.10.23. 고명운 권사
[미리 살펴 보기]
예수 탄생과 어린 시절 이야기들을 넓은 시선으로 살핀다.
예수가 당시의 중첩된 사회적 모순들을 온 몸으로 체험하며 성장.
예수 뿐 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역의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삶도 발견.
→ 이들은 모순된 사회의 억압에 어떻게 저항 했고, 얼마나 깊은 절망에 빠졌는지, 왜 메시아를 갈망하며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를 소망했는지
[예수의 탄생 이야기]
마가복음 – 예수의 공생애부터 시작
마태복음/누가복음 – 예수의 어린 시절과 탄생 이야기를 추가
객관적인 사건들을 기록한 기사라기보다는 “예수의 의미”를 밝힌 이야기
예수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들은 초기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라는 존재의 의미를 밝히고 자신들의 신앙을 드러내는 데 천착한 결과
요한복음 – 아예 예수께서 태초부터 계셨다고 말한다
[예수의 탄생시기]
예수의 탄생 시기에 대해서는 마태와 누가가 서로 다른 진술을 한다.
마태복음
예수는 헤롯 치하(주전37-주전4년)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마태2:1 헤롯 왕(헤롯 대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예수의 양친이 헤롯이 죽은 직후(주전4년) 그의 후계자 아르켈라오 시대(주전4년-주후6년)에 이집트에서 돌아왔기 때문이다(마태2:19-23).
그러므로 예수는 늦어도 주전 4년에 태어난 셈이다.
누가(복음)
누가도 마태와 똑같은 사실을 전제한다. 세례 요한이 헤롯(헤롯 대왕)치하에 태어났고(누가1:5), 예수는 그보다 여섯 달 늦게 태어났다고 한다.
누가1:5 유대 왕 헤롯 때에
1;57 엘리사벳은 해산할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누가는 2장에서 예수 탄생을 퀴리노(구레뇨-개역) 시대에 실시한 “호구조사”, 즉 납세자 등록과 서로 연결시킨다.
이 호구조사는 주후 6년에 실시한 것이기에 누가는 예수 탄생일을 마태보다 최소한 10년 늦게 잡은 것으로 보인다.
[주전 4년 탄생설의 정치적 배경]
주전 4년, 악명 높은 유대의 폭군 헤롯(대)왕이 사망
사망으로 인한 정세
-유대 왕실의 후계권 장악 분쟁이 치열
-대중적 분노는 그의 통치가 끝날 무렵에 분출
-민중의 분노가 폭발하고 봉기가 속출
공백 기간 중 임시로 임명된 로마 총독 사비누스가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 재산을 몰수 하려하자 폭력으로 맞서 총독을 감금
이 일로 인한 민중의 힘이 오랫동안 다양한 형태로 반복
-갈릴리 반군의 지도자인 히즈키야의 아들 ‘유다’가 갈릴리 농민을 이끌고 세포리스(나사렛 부근)에 있는 헤롯 요새를 공격
-양치기 아쓰롱게 : 유다의 구릉지역에서 3년 동안 게릴라 전쟁을 이끌었다.
이러한 소요가 일어나자 시리아의 로마 총독 바루스는 소요를 진압하였고, 이로 인해 유다의 북서부는 그 지역 전체가 불바다, 피바다가 되었다.
주전4년의 이러한 열광적인 봉기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민중의 염원이 분출된 시기였다.
[주후 6년 탄생설의 정치적 배경]
BC4년 헤롯이 죽자 세 아들 아켈라오(유대,사마리아,이두매), 안티파스, 빌립2세에게 유대 왕국을 분할 상속
AD6년 아켈라오의 가혹한 통치로 유다 귀족은 아르켈라오를 반대하는 사절단을 로마로 파송했고, 폐위 당했다.
그 후 호구조사, 세금부과 업무를 시작
호구조사는 잔인한 심문을 동반했다. 폭동과 반란이 일어났다.
이러한 조세납부를 위한 호적등록은 지배와 착취구조의 전모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저항의 분위기는 점차 고조 되었고, 특히 갈릴리 지역에서 반란의 열기가 거셌다. 요세프스의 증언에 따르면, 갈릴리의 바리새파 민족주의자들의 운동은 그 후 유다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던 민중당으로 발전한다.
복음서에서 서로 다른 예수의 출생연대인 주전4년과 주후6년은 모두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 열기가 최고조로 분출한 시기이다.
복음서가 이런 민중의 격동기를 각각 예수의 탄생시기로 제시하는 것은 민중이 예수에게 걸고 있던 기대를 반영한다.
[하나님의 뒤집기 한 판 – 임마누엘 예언]
이사야 7:14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문자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교리가 생성된 본디 자리, 처녀 탄생이나 동정녀 탄생이어야 했던 시대의 중요한 의미를 새겨야 한다.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것이지, 처녀나 동정녀가 예수를 낳은 것이 아니다.
이사야 7:14-15
그 아기가 태어나 사리를 분별하게 될 때, 새로운 나라가 도래하리라고 한 예언이 임마누엘 예언이다.
마태는 이사야의 예언을 예수 탄생과 연결했다. 예수께서 거룩한 몸으로 오셨다는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사건이다.
‘동정녀 탄생’ 담론의 목적은 그 경계를 허물기 위함이다.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처녀의 몸을 통해서 인간으로 오셨다는 메시지는 성(스러움)과 속(세)의 이원론적 구분 속에 갇혀 인간을 차별하고 나누는 인간의 천박한 상식을 뒤집는 하나님의 거룩한 판갈이다.
[베들레험 출생의 의미]
민간에 널리 퍼진 메시아 대망(大望) - 다윗의 후손에서 기름부음 받을 왕이 나올 것이다. ‘유대인의 왕’으로 다윗 왕국을 다시 복원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다윗왕조 신학은 수도 예루살렘이 기초가 되고 대대로 왕들이 나온 예루살렘이어야한다. 그러나 예수를 베들레헴 출신이라고 하는 것은 다윗 왕조와는 거리 두기를 시도하는 담론이다.
미가5:2
베들레헴은 농촌마을이며 목동들의 마을이다. 이 허름하고 사람취급 받지 못하던 목동 집안에서 왕이 나왔다. 바로 다윗이다.
가슴 벅찬 새 세상이 밝아오는 밤에, 첫 번째 증인은 몸에 똥 냄새가 가득 배어 있는 목자들이다. 이것이 베들레헴 출생의 숨은 뜻이다.
[예수의 족보 이야기]
누가는 예수부터 아담까지 77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42대를 내려간다.
마태복음의 족보에서 시대 구분의 척도가 되는 인물은 다윗이다.
왜 다윗이 모든 역사의 중심이 되었을까?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를 잃은 후에 가장 강력한 국가를 세웠던 다윗에게 민족적 기대가 모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의 족보에는 어울리지 않는 네 여인(다말-시아버지를 유혹/라합-기생/룻-모압 여자/우리야의 아내-밧세바)의 이름이 나온다.
성서는 이 이상한 행적의 네 여인들을 특공대처럼 파견해서 그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뒤흔든다.
첫째, 이 여인들은 경건과 불경건, 순결과 더럽힘, 선과 악-이런 가치들을 뒤집어 놓고 그 당시 사회가 죄인으로 규정한 이들을 전부 친구로 받아들인 예수의 행적과 일치시킨다.
둘째, 이들은 모두가 이방인이다, 유대인과 이방인, 종족과 혈통, 종교, 사회적 관습, 법 등은 이스라엘 사회의 중요한 구분이다. 그러나 이방여인들은 이스라엘 안에 축적되어 왔던 인간에 대한 모든 편견을 무너뜨린다.
셋째, 이들은 한결같이 여자들이다. 히브리 사회에서 족보는 당연히 남자만 들어가고, 여자나 어린아이들은 인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인들의 등장으로 예수의 족보는 남과 여의 성 차이를 극복한다. 이런 혁명들은 예수에게서 시작하였고 초대교회 안에 제도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사상의 변화가 이제는 족보로 나타난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마태의 족보에서 최종 결론은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한다.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불가사의한 언술에서 역사적 진실을 따지는 것은 어리석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기껏 혈통을 따라 제시해온 인간사의 오든 흔적들을 뒤집는 언술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를 뒤집고 이제까지 전혀 나타난 적이 없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신다. 성령 잉태는 인간사의 불의한 계보를 끊어버리는 단절 선언이며, 새로운 역사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이다.
[마리아 찬가]
마리아는 예수에게 위대한 정신을 심어준 어머니이다. 마리아의 찬가는 그 당시 민중이 열망하던 메시아 상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이 잘 나타나 있다.
메시아는 “권세 있는 자, 교만한 자, 부유한 자를 내치시고 비천한 자, 배고픈 자를 구원하실”분이다. 이것이 ‘마니피캇(Magnifikat)’이라고 불리는 이 노래의 주제이다.
전하는 말로는 러시아의 짜르(러시아 혁명으로 무너진 러시아 황제)가 이 노래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또 남미의 독재자들도 이 노래에는 ‘혁명을 일으키는 세균’이 들어 있다고 했다.
예수 운동을 사회학적으로 연구한 종교학자 호슬리(Horsle)는 마리아 찬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결정적인 행위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아니라 예수의 전면적인 활동에 담겨 있는 뜻이, 이미 예수 탄생에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 전통은 마리아가 영적인 겸손함을 가진 어머니로 남아 있기를 원하지만, 진짜 마리아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혁명가로 이러한 전통을 뚫고 나온다.
첫댓글 덮어놓고 믿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깨어있는 신앙인들의 모습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