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면서
‘세 닢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 ‘이웃이 좋으면 매일 즐겁다(프랑스 속담)’, ‘바다를 격해 있는 형제보다 벽을 격해 있는 이웃이 낫다(알바니아 속담)’, ‘가장 가까운 이웃은 부모보다도 가치가 있다(몽고 속담)’, ‘좋은 집을 살 것이 아니라, 좋은 이웃을 사야 한다(스페인 속담)’, ‘원족근린(遠族近隣)’,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잠언)’ 등 이웃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속담이나 격언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인간은 이웃이 돈을 쌓는 것을 부러워한다(헤시오도스)’고 한다. 이러한 부러움이 나쁜 감정을 일으키거나 나쁘게 표출되는 것을 경계하여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나 울타리 나무는 뽑지 말라(독일 속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십계명 중 제9, 10계명)’,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잠언)’, ‘너의 이웃집이 불타면 네 자신의 안전도 위태롭다(호라티우스)’는 속담과 격언들도 있다. 민법에는 이웃간에 자제하거나 수인하여야 할 일들에 관한 법조문들이 있다. ‘이웃사촌’이 보편적이던 때에는 이러한 법조문은 삭막한 서구문화에서 유래된 교과서적인 것으로 생각하였고, 일반인들이 법적 분쟁의 근거로 삼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거의 한 집안과 같은 구조를 가진 아파트에 살면서도 옆 집 사람과 인사도 나누지 않는 일이 낯설지 않은 요즈음에는 이웃간의 법적 분쟁도 적지 아니하여 이웃에 관한 속담과 격언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한다.
2. 사안의 개요 및 쌍방의 주장
가. 신청인은 피신청인과 같은 아파트의 바로 아래층에 거주하고 있었다. 신청인은 피신청인의 집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피해가 많다고 주장하면서 피신청인을 방문하여 소음을 줄여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 쌍방 가족들은 어느 정도 친분도 쌓게 되었다. 피신청인과 그 가족들은 조심하느라고 하였으나, 신청인은 여전히 견디기 힘들어, 어느 날 피신청인을 찾아가 소음방지를 위해 카페트를 사서 깔아주겠다고 제의하였다. 그러나 피신청인은, 가족 중에 천식과 비염환자가 있어 카페트는 깔 수 없다고 하였다. 소음의 내용은 청소소리·물건 놓는 소리·의자 끄는 소리·발걸음 소리·서랍 여닫는 소리 등 이른바 생활 소음이었고, 그 외의 특별한 소리는 없었다고 신청인도 인정하고 있었다. 피신청인의 가족은 부부와 성년의 딸 2명인데 피신청인이 가족들에게 소리내지 말라고 주의를 주면, 내 집에서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작은 소리도 내지 못하느냐, 사람이 살다보면 어느 정도의 소리가 나는 것인데 그때마다 소리난다고 일일이 이의를 한다면 그게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고 피신청인에게 항의하곤 하였다. 신청인은 소음을 견디다 못해 이사하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이사를 하였다.
나. 신청인은 이사과정에서 생긴 비용 중 일부인 500여만원을 위 소음으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청구하였다. 다. 피신청인은 문제가 되는 소음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나는 소음에 불과한 정도이고 피신청인과 그 가족들이 소리날까 봐 신경 쓰느라 오히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하였으며, 특별히 타인에게 피해를 줄 정도의 소음을 낸 일이 없으므로 신청인의 청구에 응할 수 없다고 하였다.
3. 조정의 경과
가. 이 사건의 발생원인은 피신청인측의 과도한 소음 발생일 수도 있지만, 건축시 층간 방음처리가 불충분하였거나 신청인의 과민 반응 때문일 수도 있다.
나. 상임조정위원은 당사자들에게 이 사건이 조정으로 끝나지 않게 되면 일반 소송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이 경우 소음의 유무, 발생원인 및 정도(일반적으로 수인해야할 범위 내인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이고, 그 점을 판사가 금방 알아 볼 수는 없을 터인즉, 꼭 승패의 판가름을 내려고 한다면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해야 할 것이고(그것도 낮과 밤으로 나누어 두 번), 그렇게 되면 시간과 비용이 엄청 들게 될 뿐만 아니라 신청인이 살던 아파트에 새로 입주한 사람에게까지 폐를 끼치게 될 터인즉, 한때 이웃이었으니 서로 양보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냐고 설득하였다.
다. 쌍방을 분리하여, 먼저 신청인에게 조정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물었더니 조정할 의사가 있다고 하여 한참동안 금액을 두고 말을 주고받은 끝에 50만원까지 내리도록 설득하였다. 다음 피신청인(피신청인은 배우자와 동행하였다)을 들어오게 한 뒤 신청인이 500여만원을 청구하였으나, 50만원만 받으면 끝내겠다고 하니 이 조정안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다음기일에 답하겠다고 하였다.
라. 2주 후 2차 조정기일에 피신청인이 5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하여 조정이 성립되었고, 쌍방에게 서로 악수를 하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더니 그에 응하여 악수와 동시에 ‘그동안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하며 웃으면서 헤어졌다.
4. 이 사건 조정의 특성 및 의의
가. 법률전문가인 상임조정위원이 소음 발생의 여러 원인과 그 책임소재 규명을 위한 입증방법을 설명하고, 입증절차 및 그 과정에서 제3자에게까지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하여 설명함으로써 쌍방의 양보를 이끌어 합의에 이르게 된 사건이다.
나. 아울러, 쌍방이 이러한 조정위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분쟁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게 된 것은 그나마 이웃으로 지내면서 서로 교류와 소통을 가져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 ‘이웃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으면 이웃 사람과 싸워 보라(로디지아 속담)’는 말도 있다. 이 사건 당사자들은 비록 법적 분쟁에 이르기는 하였지만, 조정에 의하여 분쟁이 해결됨으로써 적어도 상대방이 자신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있었음은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